불꽃놀이.txt







"뭐야 너. 학생아니야? 대리운전 같은 거, 해도 되는거야?"


"아하하.. 아, 아닙니다! 저 대학생입니다. 그보다 얼른 타시죠. 댁까지 안전히 모시겠습니다."



진 세이파츠는 방학이 되면 아침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알바에 매진하는 소년이었다.


원래같으면 고등학생인 진에게 대리운전 알바는 말도 안되는 위험한 일이었고 그도 기피했을 테지만


갑작스런 세금 인상에 어쩔수 없이 목돈이 필요해진 진.


하루 알바를 구하는 인력사무소에서 평소 그를 좋게 봐준 소장님의 소개로


17살의 나이에 면허도따고(불법이었다), 대리운전 알바를 몰래 몰래 해오고 있던 진이었다.(이것 또한 불법이었고)


아무래도 취객들을 상대하다 보니, 어리다고 의심을 받아도 20대라고 어물쩡 넘어가면 그러려니 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상한데.. 아무리 봐도 어려보인단 말이지."


그런데 오늘 대리운전을 부른 이 20대로 보이는 여성은 정말 예뻤다. 아 아니, 정말 까다로웠다.


차량도 엄청 비싸보이는 외제차인데다가 진을 계속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흐으으음, 너 미성년자지?"


"아닙니다! 여기 면허도 있어요."


진에게 면허증을 건네받아 면허 속 진의 사진과 땀을 뻘뻘 흘리는 진을 번갈아 보던 여자는 피식 웃음을 흘리곤 면허증을 다시 돌려줬다.


"그래 뭐, 오늘 내 운전기사가 갑자기 몸이 안좋아져서 말이야. 오늘 하루동안 잘 부탁해."


오늘 하루라니, 이 예쁜 아가씨. 아 아니, 이 부잣집 아가씨는 대체 대리운전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걸까?




"오늘 하루요..? 저 손님, 그건 조금.."


"페이는 이정도면 되려나?"


그녀의 손에 들린 건 말그대로 '큰 거 10장' 이었다.


꿀꺽..


상상도 못한 액수에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진은 하루동안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정도 금액이라면 항상 진의 양심을 쿡쿡 찔러왔던 이 불법 대리운전 알바도 막을 내리리라.


"물론입니다 손님. 최고의 운전으로 모시겠습니다!"




진은 그녀를 목적지에 데려다 준 후 대기할줄 알았는데 여자는 무슨소리냐는듯 진을 이끌며 모든 일정을 함께했다.


여자의 요청으로 백화점에 들려 수천만원치 쇼핑을 할 땐 그러려니 했다. 이게 부자의 씀씀이인가 정도?


잠시 쉬자며 공원에 들렀을 땐 의외로 소박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땅이라는 설명을 들었을땐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다.


배가 고프다며 고급 식당에 갔을 땐 코스메뉴 하나에 수십만원을 하는 것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인형뽑기를 해보자며 인형을 뽑는 모습엔 귀엽다고 생각하다가도, 원하는 인형이 안뽑히자 기계 자체를 사버려 그 인형을 꺼낼 땐 할말을 잃었다.



진으로써는 처음 체험하는 상류층의 삶. 그도 모르게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더욱이 하루하루 바쁘게 사느라 이성과의 접점이 없던 진으로써는 데이트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쑥스럽기도 했다.


진의 마음 깊숙한 곳에, 몽글몽글한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늘 하루 즐거웠어.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알겠습니다. 집까지 가도록 하죠."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주는 길에 진은 룸미러로 그녀를 힐끔 보았다.


황금을 머금은 노을같은 예쁜 단발 머릿결에, 보석처럼 빛나는 듯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진 눈.


얼마일지 짐작조차 안가는 자주색 드레스.


부자들은 다 예쁜건가?


목에 걸친 비싸보이는 목걸이는 그녀의 파인 어깨와 쇄골라인을 그저 꾸며주기 위한 장신구로만 보일정도로 그녀는 지나치게 예뻤다.


오늘 하루로 끝나기에는 아쉬운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진이었다.




"뭐야 저거, 폭죽?"


"네? 아.. 오늘 이 근방에서 불꽃놀이가 있다고 들었긴 했습니다."


"흐응, 예쁘네. 잠깐 좀 세워봐."


"네..? 여긴 세울때가 마땅히.."


"뭐 어때, 지나다니는 차도 없는데. 잠깐 저 갓길에 세워봐."



그리고 그녀는 차 안에 비치된 냉장고에서 와인과 잔을 꺼내들더니 진에게도 잔을 하나 나누어 주었다.


"저도 마십니까?"


"왜 싫어?"


"아니 저는 운전해야 되는.."


"혼자 마시긴 좀 그렇잖아? 한잔 받아."


막무가내 같은 그녀의 행동에 어쩔수 없이 와인 한잔을 받은 진.


이걸 마셔야 되나 고민하던 중에, 불꽃놀이가 점점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듯 무수한 폭죽들이 하늘에 수놓이기 시작했다.



"사진 한장 찍을래?"


"네?"


"뭐, 같이 찍기 싫으면 사진기사라도 해. 나 좀 찍어주라."


SNS에라도 올리려는 건가? 그리 생각한 진은 마지못해 그녀를 카메라에 담았다.


카메라의 담긴 그녀는 진을 잠시나마 두근거리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불꽃놀이가 끝날 때 까지 도로 난간에 기대어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진에게 있어 한 폭의 그림 같았고, 정말 할 말을 잃게했다.


그러고 얼마가 지났을까.



"재밌었어 오늘. 다음에도 운전 기사 해줄 수 있지?"


"물론이죠. 불러만 주세요"


오늘 일당을 받으면 다시는 안 할 대리운전이었지만, 어째선지 그녀라면 괜찮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녀의 운전기사 일을 시작한지 2주 쯤 되었을 때.


공백이 세상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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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타운에서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점점 이름을 알려가던 진 세이파츠.



그는 벤자민의 부탁으로, 캔더스 시티로 향하게 된다.



캔더스 시티에서 아론중령을 만난 진은, 15년 전 자신이 그의 부인을 구해냈다는 사실을 듣고 기뻐했다.



'15년 전이라니..'



공백에서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진에게 있어서 공백에 들어가기 전의 일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로 며칠 전의 일 같은데.. 이상한 기분이군.'



예전 기억을 떠올리려 할 때 마다 가슴이 뭔가 허전한건 왜인가. 의문을 품는 진이었다.




"그래서, 해안도로에 위치한 소울정크들을 섬멸해줄 수 있겠는가? 진 세이파츠 군."



"물론입니다 아론 중령님! 맡겨만 주세요."




'그레이스시티로부터의 보급로 확보를 위한 해안도로의 소울정크 섬멸' 이라는 임무였다.


해안도로에서 소울정크들을 차례차례 쓰러트려가던 진은 뭔가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뭐지..? 뭔가.. 떠오를 것 같기도하고.. 이 도로가.. 그리고 바다.. 큭..!'



억지로 뭔가를 기억해내려는 과정에서 오는 두통에, 진 세이파츠는 잠시 이마를 짚고 신음을 흘렸다.



"무슨일 있으신건가요? 갑자기 왜.."


"아..아무것도 아닙니다. 오퍼레이터씨."


클로이의 걱정스런 질문에 제정신을 되찾은 진이었다.



'지금은 임무가 먼저겠지.'







임무를 끝내고 귀환한 진을 환영한 아론중령은 오늘밤은 푹 쉬라며 캔더스 시티의 고급호텔에 방을 잡아 주었다.


"와 어떻게 이런 방이.. 이게 고위층의 삶인가..?"


언제나 생계유지를 위해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해오던 진으로써는, 고급호텔의 스위트룸이란 정말 영화속에서나 볼 법한 그런 풍경이었다.




그렇게 호텔의 창 밖을 보며 야경을 감상하고 있다가 문득 뭔가 먹으면서 이 풍경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진은,


뭐라도 사와야겠다는 마음에 호텔 로비로 나섰다.



그때였다.


어떤 중년 여성의 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진의 귀를 파고들었다.


"이놈의 운전기사는 왜 허구헌날 아픈거야? 짤라버리든지 해야지 원."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 본 진은 정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겉모습은 조금 나이가 들긴 했지만, 분명히 그녀였다.


그녀는 공백에 휘말리지 않았던 건가?


다행이란 생각이 듬과 동시에 진의 몸은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운전기사가 필요하신건가요?"


"....넌 뭐야?"


"하하, 그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돕는게 취미라서요. 제가 잠시 운전기사를 해드려도 될까요?"


"어린애같은데 운전을 한다고? 장난치지 말고 갈길 가."




그때와 별 다를 바 없는 대화 내용에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린 진은 능청스럽게 그녀의 손에서 차키를 빼앗아 들었다.


"그러지 마시고 한번 맡겨보시죠. 제가 또 한 때 베스트 드라이버였습니다."


"참나 오래살다보니 별..그래 뭐. 한번 맡겨볼게."




아무래도 그녀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15년이나 흘렀으니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한 진은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며 운전을 시작했다.




"어디서 온 사람이야?"


"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이 캔더스시티에서 당신같은 청년을 본 적 없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아.. 그 왜, 사정이란게 있지 않습니까."


"쳇 이상한 애새끼구먼."



자신이 공백에 들어갔다가, 나오게되어 소울워커란 존재가 되었다고 설명 할 수 있을리가 없었던 진은 대충 얼버무렸다.




한참을 운전하던 도중, 중년여성이 입을 열었다.




"잠시 바닷가 좀 보고가지."


"바닷가 말인가요?"


"나이가 나이인지, 요즘 차멀미가 조금 생겨서 말이야. 바람이라도 좀 쐬어야겠어."



그렇게 바닷가에 잠시 차를 세우고 차문을 나서 잠시 담배를 피는 여인.


진은 차 안에서 자신의 처지가 웃기다고 생각이 들어 실소를 흘렸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걸까'


잠시 운전대에 기대어 엎드리는 진.


'추억..인가..'




그때 대시보드 한 쪽에 붙어있는 사진이 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사진은...'




덜컥.


차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돌아 본 중년 여인은 물었다.


"너도 바람쐬게?"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라고? 무슨 소.."


중년여성이 마저 대답하기도 전에, 진은 몸을 빠르게 날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중년여성은 피던 담뱃재가 떨어지고 있음도 눈치채지 못한채, 멍하니 멀어져가는 진을 바라보았다.


"..뭐야..?"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진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돌아왔다. 손에는 웬 봉투가 하나 들려있었다.


"그래서? 운전기사 해준다던 사람이 대체 어딜갔다온건지 설명해보시지 그래?"


중년여성은 살짝 화가 난 듯 보였다.




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 불꽃놀이 하죠."


"....뭐?"


"그때처럼 불꽃놀이 구경..은 아니지만, 어떻습니까?"



"너..어떻게.."


"사진. 아직 가지고 계시더라구요."




피식


웃음을 흘린 중년여인은 봉투에 들어있던 폭죽을 하나 꺼내어 불을 붙였다.


진도 폭죽 하나를 들어 불을 붙이곤 그녀와 함께 나란히 바닷가를 보며 쪼그려 앉았다.





"어디갔다 이제온거야?"


"사정이 있었습니다."


"너무 늙어있어서 실망했어?"


"..그럴리가요."


"하하하, 여전히 거짓말 못하네. 티 나, 멍청아."





"뭐 여튼..오랜만이야."


"그때처럼, 와인이라도 한잔 할까?"


"좋죠. 뭔들 안되겠습니까."






그렇게 이제는 폐허가 된 캔더스시티의 한 해안가에서,


15년이나 소식이 없던 불꽃축제가


작게나마 열리고있었다.










예전에 소갤에 알바왕진 대회때 썻던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