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빛에 보기 흉하게 그을린 손이 토마토를 잡아 한 소녀를 향해 던졌다. 토마토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소녀를 향해 거친 말과 물건을 던지며 둘러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을 담은 푸른 눈동자, 순수한 영혼을 표현한 백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는 며칠 전 마을에서 벌어진 괴수에 의한 살인사건 때문에 뭇매 맞았다.




"너 때문이야! 네가 이 마을에 와서 우리 마을이 저주받았어!!"

"스텔라 유니벨, 네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없어. 꼴도 보기 싫으니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


스텔라는 마을 사람들이 던지는 과일, 빵, 돌로 인해 생기는 상처보다 그들의 악에 받친 고함이 더 아팠다. 스텔라는 어렸을 때부터 저주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악령들과 교감 할 수 있는 스텔라는 주변 사람은 물론 부모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어린아이가 풍선을 쉽게 하늘로 날리듯 부모는 스텔라의 능력이 세상에 드러나자 스텔라의 손을 놓아버렸다. 스텔라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보며 경멸하는 엄마와 딱딱하게 굳은 체 납빛의 얼굴을 한 아빠를 마음에 묻은 채 외로운 여정을 걸었다. 스텔라에겐 저주받은 아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스텔라가 머물던 마을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스텔라의 저주라는 말이 돌았다. 이번 일 역시 스텔라를 색안경 끼고 보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주도하였다. 스텔라는 주저앉아 무릎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작고 가녀린 손은 비수처럼 날아드는 말을 조금이라도 차단하려 귀를 막았다. 무서움, 떨림, 두려움, 억울함 등 부정적인 감정이 스텔라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폭풍처럼 일어났다. '괜찮아, 저 사람들은 단지 화가 난 거야.' '이렇게 나에게 화풀이하다 지치면 돌아갈 거야. 그때 조용히 가자.' 스텔라는 자신을 위로하였다. 스텔라를 어렸을 때부터 지켜보며 보살펴주는 악령들은 억울하고 분하지만, 조용히 있었다. 악령들이 날뛰면 인간들은 스텔라를 해칠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뜨겁게 위세 부리던 태양이 몰려오는 밤의 기운에 스스로 물러날 때쯤, 스텔라 주위엔 사람들이 떠나며 뱉은 침, 던져진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데다 먹을 것을 잘 구하지 못해 힘이 없는 스텔라는 비틀거리며 조용히 일어나 마을을 떠날 채비를 했다. 스텔라는 자신에게 두 번째로 소중한 기타를 들고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로 소중한 것은 악령인 "영감님"이었다. 스텔라는 영감님 때문에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상처를 안게 되었지만, 자신에게 헌신하고 지켜주는 영감님이 가족 같이 느껴졌다. 비록 따뜻한 체온을 나눌 수 없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맛보진 못하지만, 스텔라의 지치고 아픈 영혼을 달래는 건 영감님이었다. 스텔라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혼령들의 보호 속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스텔라가 마을에서 나와 정처 없이 방랑하고 있을 때, 어느 날 하늘에 매우 크고 어두운 구멍이 났다. 그것은 아무도 가보지 못한 지옥의 형상 같기도 했고,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공백"이라 칭했고, 그 "공백"을 두려워하며 도망쳤다. 스텔라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받았고, 항상 외로웠다. 사람들이 피하는 저 공간에 들어가면 스텔라는 더 아프지 않고 영감님과 행복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영감님, 저것이라면…. 우리들만 있을 수 있을까?"

"네 좋을 대로 하자꾸나."


스텔라는 공백이라는 공간이 두렵게 느껴졌지만, 영감님이 지켜줄 거라 믿고 있었기에 천천히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곳은 어린 스텔라가 눈대중으로 봐도 한없이 넓고 스텔라의 깊은 마음처럼 어둡고 영감님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스텔라와 영감님은 공백에 머물며 공백을 조사하는 바보들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한 공간을 거처로 삼았다. 거처로 삼은 집은 어느 부잣집의 별장처럼 매우 크고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넓은 집을 외롭지 않게 채워 주었다. 방도 매우 많고 넓어 스텔라는 영감님과 숨바꼭질할 생각에 너무 기뻤다. 스텔라는 영감님과 숨바꼭질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며 몇 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밤을 좋아하는 스텔라를 위해 영감님은 항상 집을 어둡게 유지하였고, 스텔라는 무겁고 끝없는 어둠 속에서 평안을 얻었다. 가끔 공백에서 생성되는 괴수들이 스텔라를 위협하러 왔지만 그럴 때마다 영감님은 스텔라가 눈치채지 못하게 처리하였다.


영감님은 항상 스텔라가 잠든 밤사이에 넓은 집을 순찰하였다. 스텔라가 인간에게 받은 상처가 많기에 공백에도 인간이 있다는 걸 알면 불안해할 걸 알기에 인간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공백에 들어왔을 때 인간의 기운을 확연히 느꼈고, 인간들이 잔디 이불 캠프라는 곳에 모여 서식한다는 것을 알았다. 일부러 잔디 이불 캠프라는 곳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자리를 거처로 삼았지만, 인간들은 포기를 모른다. 그들의 추악한 성정은 스텔라를 밑도 끝도 없는 심연으로 밀어 넣었고 스텔라를 불행하게 하였다. 어리고 연약한 스텔라를 지키기 위해 영감님은 인간의 출입이 있을까 봐 항상 경계하였고 넓은 공간에 숨은 어리석은 인간까지 폭넓게 생각하여 스텔라가 모르게 스텔라의 곁을 비웠다.


 스텔라가 외로워 보인다며 이름을 붙여준 "22번째 방" 앞을 지나갈 때 영감님은 작은 울음소리와 익숙한 인간의 기운을 느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스텔라보다 체구가 작고 금발을 가진 인간 여자아이가 겁 먹은 채 떨고 있었다.  낮에 스텔라와 영감님은 조용히 산책을 다녀왔다. 영감님은 산책 중 그들을 따라오는 인간이 있다고 느꼈고 그 인간을 해칠 생각이었지만 스텔라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자리에서 인간을 해치면 스텔라에게 인간의 존재를 숨긴 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인간의 목숨은 인간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영감님은 아무 말 없이 인간 여자아이를 향해 강한 적기를 뿜어냈다. 인간 여자아이는 적기 속 숨겨진 살의를 느꼈는지 더더욱 크게 울면서 몸을 떨었다. 작고 티 없이 해맑은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며 영감님은 조소를 띄웠다.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게 빠르게 처리할 계획이었다. 검을 쓰면 핏자국이 남기 때문에 영혼을 먹고 껍데기는 스텔라의 눈을 피해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릴 생각이었다. 그때 굳게 닫아둔 문이 벌컥 열리며 스텔라의 처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영감님! 그 아일 해치지 마!! 우리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이 인간은 침입자다. 이 인간이 온전하게 돌아가면 우리의 정체가 탄로될 수 있다."

"내가 잘 이야기해 볼게. 한 번만 이해해줘, 영감님."

"넌... 네게 끊임없이 상처 주는 인간에게 관대하구나."


침입자의 울음이 그쳤다. 같은 인간을 보자 반갑고 안도감 들었는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같던 몸도 얌전해졌다. 스텔라는 조용히 침입자와 눈을 마주치며 앉았다. 침입자가 용기가 생겼는지 먼저 의문을 띄었다.


"...넌 이름이 뭐야? 공백에 왜 있어?"

"난 스텔라 유니벨이야. 여기 있는 영감님과 행복하게 살고 있어!"

"공백은 매우 무서운 곳이야. 소울정크들이 인간을 공격하는걸?"

"괜찮아! 항상 영감님이 나를 지켜줘서 난 안전해. 너의 이름은 뭐야?"

"난 캐서린이야.


영감님은 두 아이의 대화를 조용히 들으며 옆에서 한숨 쉬었다. 인간의 아이는 정말 혐오스럽지만, 스텔라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어린아이는 순진하여 조종하기 쉬우니 위험한 상황에서 미끼로 던져 스텔라를 구할 수도 있다. 스텔라는 처음으로 인간 친구가 생겨 매우 행복해 보였다. 매일 같이 잠을 자고 산책 때 구해온 식량도 나눠 먹으며 스텔라는 영감님 외의 존재에게서 유대감을 느꼈다. 처음 생긴 인간 친구는 영감님과 아주 달랐다. 영감님처럼 매우 세지도 않고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하지만 항상 차가웠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영감님이 헌신을 다하고 보석처럼 아껴주어도 스텔라는 언제부턴가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기도 복잡한 것이었다. 스텔라는 캐서린을 통해 우정, 친밀감을 배우고 외로움과 슬픔은 잠시 잊게 되었다. 정말 아주 잠깐이었다. 스텔라의 숙명인 건지 외로움과 슬픔은 또다시 스텔라를 찾아왔다.


 그날은 스텔라가 캐서린과 함께 캐서린의 버닝레드라는 로봇 장난감을 찾으러 가는 겸 피크닉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영감님은 스텔라가 인간을 친구로 삼은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스텔라에게 공백에도 인간이 있다는 걸 긍정적으로 알려준 계기가 되었기에 캐서린도 케어해주었다.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목소리를 배경으로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영감님은 공백에 들어올 때 방대한 에너지를 가진 인간들이 몇몇 있다는 걸 파악 했다. 그 방대한 에너지를 정의 내릴 순 없었지만, 상당히 불쾌하고 조용한 평화를 깰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영감님은 자신의 동료들을 이용해 그들을 막으려 애썼지만 동료들은 힘도 쓰지 못하고 허수아비처럼 쓰러져버렸다.



"스텔라. 이번 침입자는 나의 동료만으론 해결할 수가 없구나. 위험하니 캐서린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가 있으렴."

"영감님, 나도 도와주면 안 돼? 영감님은 매우 세지만 혼자서 안되는 상대일 수도 있잖아!"

"스텔라, 너를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진 않다. 더군다나 너의 친구 캐서린은 자신의 몸 하나 지킬 수 없단다. 캐서린이 다치면 누가 가장 마음이 아플까? 내가 잠시 시간을 벌 테니 먼저 도망치거라. 내가 곧 쫓아가마."


스텔라는 뾰로통 해졌지만, 자신의 친구를 정체 모를 것들에게서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캐서린의 손을 잡고 긴 복도를 달렸다. 물건들이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 오래된 나무 복도가 삐걱거리며 불길한 기운을 뿜어냈다. 스텔라가 캐서린과 처음 만났던 22번째 방으로 들어가 숨을 고르고 있는데, 그들 앞으로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는 잿빛이 도는 금발을 가지고 있었고, 가늘게 웃는 눈에서 왠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 남자는 상당히 불만족스럽다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설마 당신이 이렇게 인간과 같이 지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이거, 제 뜻대로 되지 않아 불쾌하군요."

"내가 전부 지킬 거야...! 캐서린은 내 친구야!"

"후후후... 어디 한 번 해보시죠. 데자이어 워커가 되어 줄 작은 아가씨?"


그 남자는 스텔라의 발악과 공격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스텔라의 비명은 지나가는 참새들의 지저귐에 불과했고 캐서린을 지키기 위한 행동들은 그 남자에게 여흥 거리가 될 뿐이었다. 그 남자는 재밌는 광대의 연기를 보는 사람처럼 웃음을 참지 못했다. 스텔라가 힘에 부쳐 경계를 느슨하게 할 때 그 남자는 스텔라를 가뿐히 제압하고 캐서린을 붙잡았다.


"안돼... 안돼!!! 캐서린은 나의 친구란 말이야!! 캐서린을 놔줘!!!!"

"이런, 이런. 당신은 인간과 절대 어울릴 수 없어요. 자, 순순히 데자이어 워커가 되어주세요! 다음에 만났을 땐 멋지게 성장해있길 바라며, 캐서린은 내가 데려가겠습니다."


 스텔라는 맞서 싸우고 싶었지만 모든 힘이 빠져나간 건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발을 굴러보고 주먹을 쥐어보고 하염없이 울며 캐서린의 이름을 외쳐봐도 그 남자는 캐서린을 데리고 사라졌다. 스텔라는 마음속 간절하게 잡고 있던 끈이 놓인 기분이었다. 마음이 찢어지다 못해 넝마가 된 거 같았다. 하나둘 떨어지는 눈물은 22번째 방의 공기와 다르게 뜨거웠다. 이제야 인간과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비열하고 기분 나쁜 웃음을 짓는 남자에게 빼앗겼다. 다른 아이처럼 행복하게 웃고 미소를 짓고 같이 놀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왜 나만? 왜 나만? 왜 나만? 왜 나만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모르겠다. 스텔라는 뜨겁게 활활 타는 분노와 차갑게 식어가는 마음을 붙잡으며 주먹을 쥐었다.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나만 공격해. 나만 아프게 해. 내게서 소중한 것을 가져갔으니 나도 똑같이 할 거야. 부숴버릴 거야.


========== 작년에 썼던건데 많이 봐줬으면 해서 올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