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트라고 했나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수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군그래서 하나 더 질문하지무슨 꿍꿍이를 갖고 있는 거지?”

 

 포이즌이 한창 생각에 골몰했을 때 플레마가 켄트에게 물었다하지만 켄트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꿍꿍이보단 계획이라는 표현이 더 좋습니다만뭐 상관없습니다사실 계획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습니다그냥 재미를 위해서죠.”

 재미?”

 그렇습니다재미요제가 이 행성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말입니다여러분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개미같아요.”

 개미개미라고?”

 

 플레마의 눈썹 한 쪽이 씰룩였다자신을 한낱 미물 취급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기 때문이었다.

 

 개미요그 어떤 목적도의지도 없이 한 세력은 싸움에만 미쳐있고한 세력은 평생 한 대상만을 맹목적으로 섬기며 충성하죠다른 세력들도 별다를 것이 없어요마치 시계 속 톱니바퀴처럼 말이죠그러니 관리자인 저로서는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웃기는 소리로군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란 말인가?”

 

 플레마의 이죽거림에 켄트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죠태어난 건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하지만 조금 더 욕망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지 않겠어요한두 사람만 다르게 움직이면 별로 재미 없답니다여러 사람들이 각자 다른 욕망을 갖고 움직이는 편이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더 즐겁다구요.”

 

 플레마는 검지를 치켜들며 태연히 궤변을 늘어놓는 켄트의 모습이 사뭇 거슬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네가 정말 신이라면 애당초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이 실책 아닌가?”

 

 맞는 말이었다켄트가 스스로를 신이라고 소개한 이상플레마를 비롯한 존재들은 그를 막강한 무소불위의 권능을 휘두르는 존재로 인식하는 게 일반적인 판단이니까.

 

 그건 그러네요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여러분을 만들지 않았습니다저는 일개 행성의 관리자일 뿐생명의 창조는 제 권능이 아니니까요생명까지 창조할 수 있었으면처음부터 이렇게 만들었겠습니까?”

 아주 틀린 말도 아니군여전히 신이라고 주장하는 건 못 믿겠지만너무 황당해서 그만큼 궁금증도 끊이지 않아그럼 또 하나 질문하지우리가 있는 이 공간은 네가 만든 것인가?”

 그렇습니다이건 제가 만든 거죠. ‘공백이라고 부를 건데어떤가요괜찮은 이름 아닌가요?”

 

 아이처럼 기뻐하며 대답하는 켄트의 모습에 플레마는 눈앞의 미치광이 괴짜에게 점점 묘한 호기심이 들었다.

 

 공백이라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건가그럼 이 공백으로 넌 무엇을 할 셈이지?”

 그게 지금 제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이기도 합니다당신의 이름이⋯⋯아마 플레마였죠삶의 존재 의의는 오직 강자와의 승부가 전부고요맞나요?”

 

 특별히 소개한 기억은 없지만플레마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켄트가 정말 신이거나 그에 필적하는 존재라면 이름 정도 아는 거야 문제 될 것이 아니었으니까.

 

 맞다강자와 목숨을 걸고 전투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지.”

 그렇다면 더욱 말이 쉬워지겠네요당신도 알겠지만이 행성에서는 더 이상 당신의 적수를 찾을 순 없습니다그건 아시죠?”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자신의 처지를 훤히 꿰뚫어보는 켄트의 말에 플레마는 처음으로 눈앞의 인물이 어쩌면 정말 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만큼 내가 강하다는 의미 아니겠나?”

 맞습니다하지만 당신이 강하다는 기준을 행성으로만 두지 말고 우주로 잡아보면 어떨까요우주적 기준에서도 당신은 강자입니까?”

 

 켄트의 질문에 플레마의 주먹이 꽈악 쥐어졌다

 생각해보니 자신은 이제까지 행성을 기준으로만 생각했지우주 어딘가에 자신과 같은 존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그건 아니었다래피드 플레임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르겠으나그런 기술 따위는 남은 베시 세력을 닦달해보면 충분히 나올 수 있을 터였다당장 니힐 킹덤 녀석들이 자랑하는 템프테이션 스톤도 있고 말이다.

 

 혓바닥이 뱀처럼 교묘하군계속 들어보도록 하지당신의 계획은?”

 저는 이제부터 이 공백을 통해 다른 행성을 침범할 겁니다아니정확히는 공백의 크기를 더욱 키워서 잡아먹는다고 보면 되겠군요.”

 침범잡아먹는다고으하하으하하하하!”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너무나도 오만한 계획에 광소를 터트린 플레마는 한참을 웃은 후 대답했다.

 

 좋아잡아먹은 다음에는무엇을 할 거지다른 행성도 지금 여기처럼 황폐하게 만드는 게 고작인가?”

 아니죠그렇게만 할 거라면 애당초 당신을 찾아오지도 않았습니다우선 저는 공백의 능력을 이용해 평범한 존재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할 겁니다이미 눈여겨 봐둔 행성도 있고요그리고 일정 단계가 지난 후 공백을 통해 그들을 배출할 겁니다그럼 평범하고 평화로웠던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혼란스러워지겠지.”

 

 플레마의 대답에 켄트는 손가락을 퉁기며 대답했다.

 

 빙고바로 그겁니다세상은 혼란스러워지고그 혼란함을 잠재울 인물들도 등장하겠죠개중에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이들도 나올 거고 그들을 주축으로 한 새로운 세력이 탄생할 겁니다그게 반복되고 반복되다 보면일정 규격을 뛰어넘는 강자도 탄생하겠죠.”

 그럼 나를 찾아온 이유는⋯⋯.”

 

 플레마가 말끝을 흐리자 켄트는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공백이 다른 행성을 침범할 즈음 저는 다른 계획을 준비해야 합니다그래서 조력자가 필요한 상황이죠그러니 어떻습니까강자들과 마음껏 싸우게 해드릴 테니제 계획을 조금만 도와주시죠더욱 강한 힘을 원하신다면 드릴 수도 있고요.”

 

 켄트의 대답에 플레마는 낮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의 의미는 그를 얕잡아 보거나 그의 계획이 허세라고 느껴져서가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또 그의 계획이 어떤가와는 별개로 켄트라면 오랜 갈증을 해소해줄 것만 같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크크큭하하하하재밌어정말 재밌군오랜 갈증 끝에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일까?”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후 한참을 웃은 플레마가 대답했다.

 

 좋아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지나 말고도 다른 세력들을 포섭하지 않은 이유는?”

 아아그게 말이죠이상하게 다른 세력들은 제게 반항만 하고 이유조차 들어보려고 하지 않더라고요아무리 제가 성격이 좋아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들까지 너그럽게 봐줄 정도는 아니라서 말입니다.”

 정말 미치겠군하지만 이렇게 온몸이 떨릴 정도로 흥분되는 것도 생전 처음이야!”

 무엇을 선택하든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좋아네게 협력하지하지만⋯⋯.”

 하지만?”

 

 !

 

 켄트의 되물음에 한 차례 발을 구르는 플레마.

 갑작스러운 발 구르기에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래피드 플레임 단원들이 생겼지만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일단은 나를 꺾은 후에 네놈의 미친 계획을 실행에 옮기던가 해라우리 래피드 플레임의 상징이자 존재 목적은 오직 힘강대한 힘뿐이다!”

 아아저런그런 상황을 피하려고 일부러 그 긴 시간 동안 설명한 건데 말이죠결과적으론 시간만 손해봤군요역시 당신도 제 막강한 힘을 보지 않고선 굴복하지 않는 건가요?”

 

 얕은 한숨을 쉬며 실망했다는 듯 대답하는 켄트에게 플레마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초면부터 미친 계획을 설명하곤 그대로 믿을 거라고 생각했던 네가 지나치게 순수한 거겠지게다가 나는 그렇다 쳐도 내 부하들도 납득할 수 있는 명분 정도는 있어야지 않겠어?”

 

 플레마의 대답에 켄트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과연 그런 이유도 있군요제가 생각이 조금 짧았습니다그럼⋯⋯.”

 

 우우우웅!

 

 켄트가 말을 끝내자 그의 주변엔 검은색의 구체가 생성되며 돌풍이 일었다이윽고 어느 정도 힘이 모인 듯하자, 그는 이제까지 감은 것처럼 보였던 눈을 부릅뜨며 대답했다.

 

 전력으로 상대하면 크게 다칠 테니까 우선은 30% 정도만 힘을 써보도록 하죠.”

 

 켄트의 말을 끝으로 플레마가 힘차게 도약하자 그도 지지 않겠다는 듯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며 뛰어올랐다.





삽화 도움 : 게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