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기념으로 짧은 단편 소설 하나 올리고 갑니다.

어윈의 1인칭 시점에서 서술한 어-릴 소설입니다.





다들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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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성탄절에는 각지에 눈이 많이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 소상공인들은 각기 성탄절을 맞이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 거리에는 벌써부터 캐롤송으로 한껏 분위기를…”

“... 시민들은 성탄절의 기적을 소원하며 오늘도 즐거운…”

 

올해의 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테네브리스 – 켄트의 위협이 사라진 이후, 그야말로 고삐풀린 날의 연속이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는 뜨거운 만남과 데이트, 놀이 등등.

다른 의미에서 나의 전성기였다.

 

그런데…

 

“왜… 아무도 없는거지…?”

 

휴대폰의 스케줄러 – 불과 1주일 전만해도 가득 차있던 약속이 이번주는 깨끗했다. 

이번주가 성탄절인데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다들 약속이 있다고? 나랑 만나는건 약속이 아닌거야? 이게 말이 되는…”

 

머리를 감싸쥐고 고민에 빠진다.

심지어, 남자에 쑥맥이라고 한껏 무시했던 진 세이파츠 마저 약속이 생겼다고 한다. 이리스 유마랑. 

에프넬은 농담삼아 둘 사이에 끼어 들어 진을 훔쳐 갈거라고는 하던데, 눈빛에서 진심이 읽어졌다.

스텔라 유니벨과 치이 아루엘은 성탄절 특별 공연을 해야 한다고 한다.

나비 누님조차 성탄절 행사 경비 업무로 바쁘다고 한다.

언제나 얼굴을 붉히던 하루 에스티아 마저 약속이 있다고 거절했다.

 

“바쁘답니다. 무도회에 갈거니까요.”

 

릴리 블룸메르헨은 살살 튕기며 눈치보던 평소와는 달리 이번엔 성탄절 무도회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런게 있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직접 개최한다나…? 이렇게 나를 버린다고?

갑자기 하루 아침에 솔로가 된 이 기분. 실로 착잡했다. 

가까운 관계인 워커들조차 이모양인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거기에.

 

“어윈씨, 약속 없는거 아니까 저 좀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마틴 아저씨는 그걸 귀신같이 알아채서 나를 불러다 일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 불평은 하지 말아주세요. 저도 억울하니까요. 아만다 중사한테 낚였거든요.”

 

대충 이 아저씨도 솔로 탈출하려고 여기저기 집적대다가 아만다 한테 뭔가 약점이 잡혔던 모양이다.

 

“성탄절 무도회 예산 문서 좀 검토해줘요. 릴리씨가 급하다고 했어요.”

“……”

 

릴리가 작성해온 예산 사용 신청서와 견적서 몇장을 훑어본다. 마침 내 눈앞에 앉아 있는것도 릴리였다.

 

“뭘 빤히 보시는거죠? 빨리 승인 해주시죠. 시간이 없답니다?”

“흠…”

 

왠지 반려 처리하고 싶어졌다. 일단 상식적인 선에서 예산이 짜였고… 이 소품은…

 

“샹들리에가 왜 필요한데?”

“무도회장에 샹들리에가 없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건가요 지금?”

“그거 설치할 시간은 있어?”

“이미 설치 중이랍니다?”

“뭐!? 너 돈은 어디서…”

“사전 신청을 먼저 했답니다. 사실 이 신청서는 무조건 승인이 날 수밖에 없는 서류죠. 그러니 잔머리 굴리지 말고 빨리 도장이나 찍어요.”

 

그럼 이걸 대체 왜 나한테 검토하라고 준거?

 

“그럼 내가 이걸 검토할 이유가 없잖아?”

“확인자가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문제 생겼을 때 책임져줄 사람도.”

“이거 완전 날 호구로 보는거네? 내가 미쳤다고 이거 서명해줘?”

 

아무래도 릴리의 버릇을 고쳐줘야 할 거 같다. 저 거만한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보고 싶어졌다. 

내가 신경질을 내자, 그녀는 표정을 살짝 풀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윈씨, 성탄절의 기적이라고… 믿어 보신적 있어요?”

“아니. 그걸 내가 왜 믿어. 지금 봐. 약속도 없고 잘못되면 인생 망하는 서류에 서명이나 해야 되고… 여기서 뭔 기적을 바래?”

“그런 태도면 뭘 해도 안 될 거랍니다?”

“아, 그러셔? 릴리, 있잖아.”

“왜죠?”

“잘봐?”

 

나는 바로 반려에 체크했다.

 

“성탄절에 기적 따윈 없어. 다시 해와.”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데자이어 에너지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얼른 방어막을 전개했다.

 

“이, 이 !@#!@$@#$!@#!!!”

 

정말 심한 욕을 했지만 우리 릴리의 이미지를 위해 필터링 했다. 

아무튼, 그녀는 미쳐 날뛰며 낫을 꺼내 창구를 냅다 부수기 시작했다.

 

“어윈씨, 장난 치시면 안 됩니다.”

“알았어, 알았어. 릴리, 이거 투명 필름에다가 체크한거야. 자자. 여기 승인. 기적이다 그래.”

 

결제 서류 위에 덮어놓은 투명 필름을 치우고 제대로 승인 결제한 문서를 주자, 그녀는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서류를 받아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야, 야! 잠깐! 창구 부순건 어떻게 하고!”

“자업 자득입니다 어윈씨. 파손 비용은 어윈씨에게 청구할게요.”

“아저씨 대체 누구편이야?”

“애초에 어윈씨가 장난쳐서 생긴 문제 아닙니까…”

 

 



 

… 여기까지가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말이다.

 

거룩한 밤. 정말 거룩했다. 나 혼자니까 말이다. 

캐롤송이 울려퍼지는 거리에 서로 짝지어 이동하는 시민들. 다들 짝이 있는 것이었다.

나만 홀로 이 거리를 걸어간다.

 

“이, 이리스 씨…”

“이리스라고 불러! 그리고 나랑 손잡고 걷는 게 싫어?”

“아, 아닙니다! 다, 단지…”

“존댓말 금지!”

“아, 아… 으, 응…”

“싫다고?”

“아, 아뇨! 아, 아니… 조, 좋아…”

 

맞은편에 진과 이리스가 지나간다. 이리스가 완전히 쥐어 잡고 있긴 하지만, 서로 잘 어울리고 있다. 

내가 왜 이런 걸 평가하고 있지?

 

“어윈씨! 어디 가세요?”

“오늘은 릴리 안 만나?”

“어… 아냐. 잠시 일이 있어서.”

“그래? 별일이네… 내가 듣기로 릴리는 무도회장에서 너 기다린다고 하던데…”

“오늘 꼴보기도 싫다고 한걸?”

“어… 싸웠어…? 미, 미안…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어윈씨!”

“어, 어. 메리 크리스마스…”

 

이렇게 초라할 수가. 공백 이전에도 혼자이긴 했지만 그래도 수많은 선물상자와 함께 했었는데. 

진이 부럽다고 생각한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윈 아크라이트. 대체 어쩌다 여기까지 몰락한 것인가?

 

 


 


“어! 어윈 아냐! 너 설마 혼자야?”

 

궁시렁거리며 걸어가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에프넬이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잠깐 일이 있어서.”

“일은 무슨,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너 계속 혼자였잖아? 궁시렁 거리는거 보니 약속 하나도 못잡았나 보네!”

 

얘는 또 왜이렇게 쫑알 거리는 걸까.

 

“원하는 게 뭔데?”

“흠… 원하는거? 뭣하면 내가 좀 어울려 줄까? 마침 여기 모텔도 있어!”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 그레이스 모텔이 있었다. 몇번 가본 곳이다만.

 

“……..”

“뭐야, 고민하는거야? 내가 니 ‘동료’라서 고민되는거?”

 

아니, 진지하게 해볼까 고민하는건데.

 

“알다시피, 돈을 준다면 해줄 생각은 있거든. 성탄절의 기적이야~ 지금 아니면 평생 없을 기회라고?”

“얼만데?”

“롱에 5억 제니, 숏에 2.5억 제니.”

“꺼져 미친년아.”

“현금 직거래하면 1억 제니에 해줌.”

“진짜?”

 

수중에 1.5억 제니가 있다. 나는 계좌에 있는 1.5억 제니를 보여주었다.

 

“...... 랄까, 진짜라고 믿은건 아니지? 솔로 답네 진짜! 아하하하!!!”

“…….”

 

아. 개빡친다. 일단 무기를 꺼내 겨누었다.

 

“자, 잠깐만… 노, 농담이야! 지, 진짜로 하겠어 내가?”

“좋은말로 할 때 하든가, 아님 총알 한발 맞고 하든가.”

“하? 지금 역으로 협박하는거야?”

“아가리를 턴 대가를 받아야지.”

 

그 순간, 호각 소리와 함께 누군가 달려왔다.

 

“무기를 내려라. 성탄절에 무슨 소란이지 어윈 아크라이트?”

 

케인바렐이다. 이 아저씨는 또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어윈이 협박하면서 성관계를 맺으려고 했어!”

“뭔 개소리야!”

“나보고 총 맞기 싫으면 하자면서!”

“에프넬.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갈길 가거라.”

“알았어, 잘 처리해줘! 그럼 나 간다?”

 

에프넬은 나한테 윙크 한번 날리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한편 케인바렐은 에프넬이 사라지자 입을 다시 열었다.

 

“어윈, 원래면 즉시 체포해야 하지만 소울워커에 솔로인걸 감안해서 훈방조치 하겠다.”

“아니 잠깐만, 솔로가 사유인건 뭔데? 그리고 아저씨 나 억울하다니까?”

“이해하지만 어쩔수 없다. 다음엔 조심하도록.”

“아니 그게 무슨…”

“어윈~ 솔로면 조용히 있어~”

 

갑자기 케인바렐의 등 뒤에서 세듀린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아저씨도 짝이 있었지.

 

“케인, 이 불쌍한 솔로는 내버려 두고 빨리 가자~ 나 무도회 구경가고 싶어~”

“……. 알겠다. 메리 크리스마스다 어윈.”

 

세듀린은 나를 그렇게 비웃으며 케인바렐의 손을 잡고 사라졌다. 

아… 젠장. 온 세상이 나를 엿먹이려 하고 있다. 뭔놈의 메리 크리스마스인가.

이딴게 성탄의 기적이라고?

 

 

 



정처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다 보니,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꽤나 굵은 눈송이는 내 머리와 어깨위에 하얗게 쌓이기 시작했다. 

이 길거리엔 나 혼자 뿐이다. 이런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천재 소년의 굴욕.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지옥 같은 날이었다. 

이쯤 되면 흔히 반겨야 하는 떠돌이 개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내 옆으로 양갈래 머리를 한 어린 소녀와 머리가 약간 긴 한 소년이 손을 잡고 행복하게 걸어간다. 

이런 어린 아이들조차 나는 부러워해야 하는 건가. 왠지 가슴이 아려온다.

릴리가 떠오른다. 오전에 그 빌어먹을 서류만 아니었어도 한번 물어봤을텐데.


슬슬 이 거리를 걷는것에도 지겨워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참, 내 발걸음이 멈춘건 인파가 몰려 있는 한 장소였다. 

가설된 행사장. 이곳이 바로 릴리가 계획했다는 무도회장인 모양이었다.

 

“어윈님. 혼자 오셨습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입구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경비대원이 말을 걸어온다. 

아니, 자세히 보니 나비 누님이다.

 

“나비 누님?”

“여기에 혼자 오실 거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오늘은 릴리님과 같이 다니지 않는겁니까?”

“뭐… 그, 그냥 일이 있어서… 그, 그나저나 누님은 여기 안들어가?”

“전 교대자가 오면 들어갈겁니다…”

“나비 하사. 왜 아직 들어가지 않고 있는거지?”

 

뒤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왠 깔끔한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걸어온다. 

이건… 소울워커의 기운이다.

 

“버, 버나드님… 아, 아니. 하사 이나비, 명령 대기중이었습니다.”

“작전 중이 아니니 편하게 대하도록. 교대자는 이미 선정해 놓았으니 무도회장으로 들어가라.”

“알겠습니다. 파트너는 구해야 합니까?”

“내가 파트너다.”

“여, 영광입니다…”

 

어, 그니까 방금 무슨일이 일어난거지?

 

“거기의 소울워커. 자네가 잠시 이곳을 지키면 되겠네.”

“뭐라고? 잠깐만. 당신 뭔데?”

“현장 사령관 명령이다. 어차피 솔로라서 들어가지도 못할건데, 잠시 도와주게. 진... 세이파츠.”

“어윈 아크라이트다 이 개자식아!!!”

 

소울 웨폰을 꺼내 저 빌어먹을 자식의 머리에 한발 꽂아주려고 하려던 참에, 누군가 등 뒤를 덮쳐 나를 제압했다.

 

“어윈군. 진정 해주게!”

 

고개를 돌려보자 토오루 중령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아니, 이거 놔요! 저 새끼 대갈통을…”

“저 자는 동부쪽 주요 인사라 죽이면 동부와 전면전을 감당해야 하니, 제발 참아주게. 서부의 어느 한 솔로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는건 좀 웃기지 않겠나.”

“…….”

 

어이가 없지만, 어쩔수 없었다. 진짜 나 하나 때문에 전쟁 일어난다고 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지 않을까.

 

“대신 여기 경비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테니, 자네도 들어가게. 허가는 내놓을 테니. 러블리 릴리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 일단 분을 삭히고 무도회장에 한번 들어가 보았다. 

가설 건물 치고는 꽤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영화에 나올법한 느낌이 물씬 들었다. 

이래서 그 예산서류가 그 모양이었던 걸까?

 

“어윈씨, 혼자 오신거예요?”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군복 대신 캐주얼한 스웨터가 돋보이는 평상복을 착용한 베티가 카메라를 들고 나를 불렀다.

 

“어… 일행 있어.”

“거짓말하지 마세요. 혼자이건 다 알아요. 아까 에프넬씨한테 협박도 했다면서요?”

“너 도시에 감시카메라라도 달았냐?”

“제가 모르는건 하나도 없죠! 히힛, 이번 사건은 조용히 묻어둘게요. 솔로인 어윈씨가 불쌍하니까요!”

“죽고 싶어?”

“꺄- 여기서까지 그러시면 안 돼요! 전 사진 더 찍어야 되서, 이따가도 혼자면 같이 춤 춰드릴게요!”

 

그렇게 말하고는 내뺴버리는 베티. 젠장. 대체 오늘 내 이미지는 왜이렇게 되는거야? 

그런데 주변을 보니 확실히 혼자인 내가 좀 돋보이긴 한다.

 

“크흠, 흠... 여러분 잠시 주목해주세요. 오늘 무도회에 다들 참석해 주셔서, 저 릴리 블룸메르헨이 대표하여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요.”

 

그렇게 멍하니 있다보니, 조명이 갑자기 무대로 비추어 지며,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릴리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그녀가 무릎을 살짝 굽히며 인사를 건내자 모두다 박수를 쳤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시는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주시는 우리 연주자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려요.”

 

조명이 이번엔 옆쪽에 마련되어 있는 또 다른 가설 무대를 비추었다. 

지휘자 정복을 입은 류 중위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같이 연주하던 스텔라와 치이, 에프넬이 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쟤네는 언제부터 저기서 연주를 하고 있던걸까?

 

“그리고 이 무도회를 승인해 주신 토오루 중령님께도 감사를 드려요.”

 

니 예산 승인은 내가 했어 이 놈아.

 

“그럼 성탄절까지 남은 1시간, 즐겁게 즐겨주세요. 그리고 혹시라도, 혼자 계신분은 제게 와주세요. 같이 어울려 드리죠.”

 

그녀가 말을 마치자, 음악이 다시 연주되며 분위기가 다시 무르익기 시작했다. 

주변을 다시 돌아보자, 홀로 인건 나 혼자 인듯했다. 저 멀리 춤 추는 진과 이리스도 보인다. 베티나 찾아볼까…

 

“네. 거기 혼자 있는 당신. 당신 말이에요.”

 

어느새 릴리가 내 눈앞에 왔다. 자세히 보니 보랓빛이 가득한 블루밍 드레스다. 

예전에 본적이 있는 옷이다.

 

“어. 너도 나 놀리려 온거야?”

“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말에서 극도의 혐오감이 느껴지는 군요. 마치 모태솔로의 한탄같은…”

“…… 됐네요. 집에 갈 거야.”

“네? 자, 잠시만요…! 제, 제가 당신에게 춤을 신청하는 거랍니다?”

“기분 상했어. 저리가. 이 불쌍한 솔로는 집에가서 잠이나 잘거니까.”

 

주변에서 내 말을 들은 커플들이 피식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 더 있어봤자 놀림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내일 별숲일보 1면에 내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지. 

설령 릴리와 춤을 춘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웃을 건가. 

춤추는 것도 고결한 그녀가 마지못해 나에게 배푸는 ‘동정’에 가까운 것이지 않겠는가. 

모두 계산된 행동인 것이다. 나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 잠시만… 가지 마요…”

 

무도회장 밖, 나는 뒤따라온 릴리에게 붙잡혔다. 

강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내 소매를 겨우 잡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제가 왜 이렇게 무리해서 무도회를 기획했겠어요…”

“나를 이렇게 놀려 먹으려고?”

“속 좁은 소리 하지 마시죠… 진짜, 당신을 위한 거니까요. 당신이랑 같이 춤 추려고… 거기에…”

“그럴 거면 평소에 좀 잘 하든가. 이런다고 내가 갑자기 감동하고 그럴 줄 알아?”

 

솔직히 말하면 방금 말은 좀 흔들리긴 했다. 

그녀의 표정만 보아도 금방 울 것 같은 얼굴이다. 

잠시 내가 무언가에 씌여서 그녀를 매몰차게 거절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와 함께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성탄절의 기적이라고… 믿어 보신적 있어요?”

 

아니. 아까 낮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거 같은데.

 

“비록 제가 평소엔 그렇게 툴툴거려도… 언제나 당신을… 에취!”

“풉.”

 

나름 감동적인 순간에 재채기를 하다니. 솔직히 좀 웃겼다. 나는 코트를 벗어서 그녀에게 입혀주었다.

 

“이, 이렇게 추운데서 말하니까 그런거랍니다! 애, 애초에 왜 제가 여기까지 나와 있… 에취!”

“알았어 알았어. 들어가자. 어울려 줄 테니까.”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녀도 싫지는 않은지 나한테 기대어 온다.

갑자기 오늘 하루 종일 당해온 모든 설움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 그럼… 저기 무대 중앙에서 같이… 훌쩍, 아, 아니… 콧물이…”

 

많이 추웠나보다. 손수건을 꺼내 콧물과 눈물을 닦아주었다. 

고결한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에, 진심이 느껴졌다. 

그 드높은 자존심을 굽혀가면서까지 말이다.

 

그래. 릴리. 주변의 시선이 어떻든, 우리는 강렬한 조명 아래에,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다.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선, 그녀의 소원대로 입맞춤으로 마무리했다.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쏟아진다. 그와 동시에,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성탄절의 기적이라고… 믿어 보신적 있어요?’

아니. 하지만 이제는 믿을 수 있을거 같네.

릴리, 너와 함께라면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