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얀데레인 하루와 연애하는 어윈에 대한 짧은 소설 입니다.
죽무새 시절의 하루를 좀더 격하게 만들다 보니 얀데레가 되어버렸다고 할까...요.
얀데레 미연시 처럼 멀티 엔딩으로 만들어보았습니다.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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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하늘은 참 맑았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던 그 하늘을 다시 못보게 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
어느 한 가정집. 소울워커 어윈 아크라이트는 식탁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돈가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아직도 표면에 남아있는 기름이 자글자글 소리를 낼 것 같은 큼직한 돈가스.
빛깔 좋은 갈색의 돈가스 소스가 뿌려져 있지만, 굳이 없어도 한입 베어 물기만 하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처럼, 눈으로만 먹어도 충분히 배부를 것 같은 모양새였다.
이를 증명하듯, 그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눈에 생기가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어서 드세요 어윈씨. 제가 어윈씨를 위해 직접 만든거에요.”
그의 맞은편엔 앞치마를 두른 채 생긋 웃고 있는 하루가 앉아있었다.
직접 만들었다는 돈가스를 맛있게 먹어주기를 바라는 모양새였다.
어윈은 이 광경만 몇 번째 본건지 기억하지 못했다.
플레마와의 결전이 끝난 이후, 소울워커들은 며칠간의 휴가를 얻었다.
각자 하고싶었던 일들을 하며 짧은 휴가를 즐길 무렵, 어윈은 하루에게 ‘앞으로의 작전 및 행동 방침’에 대한 논의를 하자는 핑계로 데이트를 신청했다.
온갖 작업용 멘트로 그녀와 사귀는데 성공한 그는 그녀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저녁 식사 이후 이것저것 할 것을 미리 생각해놓은 그는 싱글벙글하며 집 안으로 발을 내딛었지만…
저녁밥으로 나온 하루의 수제 돈가스를 먹을 때, 그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가스를 입에 넣는 순간, 돈가스를 먹기 전으로 시간이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분명, 그녀의 돈가스는 매우 맛있었다. 마침 돈가스를 좋아하는 그 이기도 했고.
확실히 생에 먹어본 돈가스 중에서는 최고의 맛이었다.
매 끼니를 이걸로 먹는다 해도 조금도 질리지 않을 맛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몇 십분 단위로 먹어야 한다면 맛있다고 말하는 게 더 신기할 것이다.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그래…”
그는 왼손에 쥔 포크로 돈가스를 고정하고 키친 나이프로 돈가스를 자르기 시작했다.
천천히 거의 자르는 듯한 시늉만 하며 그는 살살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앞서 말했듯, 이 돈가스를 잘라서 먹으면 다시 시간은 먹기 전으로 돌아간다.
그의 기억에 처음 10번 정도는 계속 잘라서 먹었던 걸로 기억했다.
시간이 돌아갈 때 마다, 그녀는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했고, 돈가스의 질은 언제나 최상이었다.
물론 그런 돈가스를 수백번 먹게 된다면, 당연히 쓰레기를 씹는 듯한 맛이 나는 것이었다.
“하루, 부탁이 하나 있는데…”
“네?”
“물 한잔 마실 수 있을까?”
“아, 제가 물을 안가져다 드렸네요… 아하하… 얼른 가져다 드릴게요.”
머리를 긁적이며 혀를 빼꼼 내미는 하루. 처음 볼땐 정말 귀여웠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맛있는 돈가스를 만들수 있는 그녀가 사랑스럽기도 했고.
그러나 돈가스를 계속해서 먹어주다가 결국 신물이 올라와 구역질을 했던 그때, 어윈은 하루의 진면목을 확인하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돈가스를 먹지 않고 보자마자 구토하는 어윈에게 달려들어 가슴에 칼을 꽂는 것이었다.
‘어윈씨… 실망이에요… 제가 만든 돈가스를 먹지 않겠다니…’
목소리는 낮고 음산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도 행복한 – 아마도 이 표현이 맞을 거 같은 – 모습이었다.
‘먹지 않으시겠다면, 먹을 수밖에 없게 만들어 드리겠어요…’
그녀는 고통스러워하는 어윈의 입 안에 돈가스를 직접 잘라 넣어주는 것이었다.
이렇게라도 한입을 먹는 순간, 시간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왔다.
“여기 있어요.”
얼음이 가득한 컵에 담긴 생수 한잔. 사실 목이 마르진 않았지만, 시간을 끄는 수단이었다.
물 끓이는 시간까지 얻어볼 요량으로 뜨거운 물을 요구해 본 적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뭐,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윈은 물컵을 잡고 차갑게 식은 냉수를 먼저 들이켰다.
그는 돈가스를 먹지 않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행해보았다.
가령 예를 들면, 돈가스를 먹지 않겠다고 말하거나.
‘돈가스… 안 드실거에요?’
그녀의 목소리에선 마치 버림받는 강아지의 울음소리 마냥 두려움이 느껴졌다.
물론 그 전에, 자신의 가슴에 박힌 칼에서 흘러나오는 핏방울이 더 두려웠지만 말이다.
다른 방법으로, 돈가스 접시를 냅다 집어 던지고 도망가보았더니.
“도망치는 거야?”
돌아오는건 상당한 거리를 도약해오며 붉게 물든 대검으로 다리를 잘라버리는 그녀를 보거나,
대검과 도가 결합된 그녀의 소울웨폰이 자신의 가슴을 꿰뚫어버리는 것을 목격하거나.
어느 쪽이든 어윈은 맥없이 쓰러지고, 그러면 그녀는 돈가스를 들고 와 한입 먹이는 것이었다.
시간이 돌아갈 때마다, 그는 죽기 전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돌아갔다.
하루도 기억을 가져가는지 알아보려고 똑 같은 행동을 5번 반복해본적도 있었다.
다행이랄까 아니라고 해야할까, 그녀는 기억을 못하는지 언제나 같은 행동을 취했다.
이는 그의 인내심이 허락하는 한, 이것저것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얼른 드세요… 드시고 맛이 어떤지…”
그녀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어윈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물론, 그에게 있어선 더할 나위 없이 공포스러운 눈빛이다.
저 눈빛이 바래지는 순간, 머지 않아 시간은 되돌아 가는 것이다.
어윈은 커팅하는 순간조차 시간을 최대한으로 끌어가며 버텨본 적도 있었다.
물론 결말은 언제나 동일했다.
마침내 한 덩어리를 자른 그는 입가로 서서히 가져간다. 그녀의 눈이 조금씩 커지는 게 보인다.
한번은 이렇게 먹는척하며 몰래 뒤로 버린 적도 있었다.
‘제 돈가스를… 바닥에 버려? 어윈씨도 바닥에 버려드릴까요?’
그가 기억하는건 이미 피투성이가 된 채로 그저 고개만 끄덕일 수 있는 상태인 자기 자신과, 떨어진 돈가스를 집어들어 입가에 밀어넣어주는 그녀였다.
설령 안 들킨다고 해도, 식사 시간이 끝나면 그녀의 눈에 들어가 곧바로 칼을 맞았다.
그는 포크로 찍은 돈가스 조각을 입 안에 넣었다가 기침을 하며 괴로워하는 척을 했다.
“괘, 괜찮아요!? 어윈씨?”
“뜨, 뜨거워… 조, 좀만 식혀서 먹으면 안 될까?”
“죄, 죄송해요… 이렇게 뜨겁게 돈가스를 튀기다니… 저는…”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하는 하루. 이때가 바로 기회였다.
“그, 화장실 좀…”
“네, 다녀오세요…”
냅다 화장실로 도망가는 어윈. 그는 변기에 걸터 앉아 한숨을 푹 내쉰다.
이런식으로 화장실에서 농성해본 적도 있었다.
물론 돌아오는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대검과 돈가스.
환기용 창문을 넘어 도망간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귀신같이 그녀는 곧바로 뒤를 따라와 그의 다리를 베어버렸다.
나중에 몇번씩 목숨을 걸어가며 물어본 결과 환기창에 좀도둑을 막기 위해 방범 장치를 달았다나 뭐라나.
감히 하루의 집을 터는 간큰 도둑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이는 화장실을 이용해 버티는건 좋은 수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어윈은 우선 배가 아픈척 하기 위해 물을 주기적으로 내리며 시간을 끌었다.
이 짓도 20분 이상 하면 하루가 의심했고, 문을 강제로 열었던 걸로 기억했다.
바지가 내려가 있으면 시간은 조금 더 끌수 있었지만, 그 뿐이고…
어윈은 괜히 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렇다. 시간. 현재 시간은 8시 30분이었다.
돈가스를 먹으면 시간은 8시로 돌아갔다. 이제 30분이 지난것이다.
그가 최대로 버텨본 기록은 11시 30분이었다.
그 날은 작정하고 돈가스 대신 그녀를 먹겠다고 하면서 밀어붙였었다.
애정 넘치는 온갖 미사여구와 애교, 정말 갖은 방법을 다해 11시 30분까지 돈가스를 먹지 않고 벼텨내어 드디어 이 지옥에서 벗어나나 싶었는데…
‘어윈씨, 잠시만요.’
하면서 침대 밖으로 나간 그녀는 돈가스를 들고 왔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어윈은 정말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어윈씨, 아직 이신가요?”
“거의다 했어… 조금만 더 기다려줘…!”
“돈가스 식어요, 얼른 나와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시간이 거진 20분 가까이 흐른 모양이었다.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슬슬 나갈때가 된 것이다.
“이제 별로 뜨겁지 않을거에요.”
“그래…”
어윈은 다시 하릴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아까처럼 기대 넘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접시엔 그가 잘라놓았던 돈가스 조각이 아직도 떡하니 올려져 있다.
“저기, 하루…”
“네?”
어윈은 여태까지 시간을 최대한 끌수 있었던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이 돈가스보다 더 중요한게…”
“네…?”
“오늘은, 너를 먹고 싶어.”
“에… 에!?!?”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끌어안는 어윈.
얼굴이 빨개지며 당장이라도 화를 내며 밀쳐낼 것 같던 그녀는 의외로 얌전하게 그에게 안겨 있었다.
잠시 이렇게 부등켜 안고 있다가 그녀의 입술을 빼앗으면,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여기까지 알아내는데는 수많은 죽음이 함께 했다.
잘못 움직이면 그녀의 대검을 맞는 것은 물론, 돈가스도 입에 물었다.
검을 맞지 않으면, 그냥 흥미를 잃은 그녀가 들이대는 돈가스를 입에 물었다.
“살살… 해주세요…”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한껏 기대하는 그녀와는 달리, 어윈의 표정은 어딘가 어두웠다.
더 이상 감흥은 없었다. 몸을 섞는 이 상황도 벌써 수십번째였다.
잘못 움직이면 그대로 모가지니 말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가 경계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방심하면… 현자타임이다…’
자기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리면, 온 몸이 축 늘어지는 현자타임과 함께 돈가스 시식시간이 돌아왔다.
이를 지키지 못해 재도전 한 횟수도 이젠 헤아릴 수 없다.
“조금은 이른 시간 같지만…”
침대 위에 누운 하루. 그녀는 시계를 가리키며 부끄러워했다.
9시. 확실히 그것을 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긴 했다.
이미 할만큼 다 해본 그가 이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을 다시 하려는 것은 단순 쾌락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수많은 루프를 겪으면서 깨달은 한가지 사실. 그리고 생긴 목표. 그것은…
‘12시만 넘기면 된다’
그는 하루가 11시 이후부터는 무언가 초조하거나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는 걸 눈치챘다.
마치, 12시가 되기 전에 돈가스를 먹이지 못하면 이 영원한 루프가 깨어지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가 시간을 끌면 끌수록 더욱 가혹하게 몰아붙였던 것이었다.
그러니, 12시를 넘긴다면 무언가 반드시 달라질 것이다.
“와주세요…”
옷을 스스로 벗는 하루.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눈에 들어오자 자기도 모르게 눈이 돌아간다.
매끈한 피부와 함께 돋보이는 새하얀 속옷. 군더더기 하나 없는 살집에… 튼실한 허벅지…
이를 인내해야하는 어윈에겐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겠지만, 하루의 몸매는 어윈의 취향에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한눈을 잠시라도 판다면, 그는 이성을 잃고 달려들 것이었다.
이 모든걸 참아가며, 그는 그녀의 살결을 만지면서 서서히 몸을 풀어 나간다.
천천히, 꼼꼼하게, 그러나 너무 루즈하지 않게.
빠르면 그녀의 흥이 먼저 식고, 느리면 그녀가 역으로 덮쳐올 것이다.
그 정확한 타이밍은, 수도 없이 많은 시도로 얻어낸 직감만이 맞출 수 있다.
아무리 지겹도록 겪었어도, 이 부분만큼은 심혈을 기울인다.
“하아… 하아…”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능숙하게 해내었다.
하루는 무너져 내렸고, 그는 아직도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이대로 2시간만 더 버티면… 이라는 생각을 할 무렵, 그녀는 갑자기 속옷을 벗어내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의 행동에 그만 전라의 모습을 바라봐 버리는 어윈.
“크읏…”
실수하지 않기 위해 질끈 눈을 감고 그녀를 끌어안는 어윈이었지만…
“어윈씨, 왜 눈을 감으세요?”
살짝 앙칼진 목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러 든다.
“부, 부끄럽다고 할까…”
“푸훗. 어윈씨, 은근 귀여운 면이 있네요…? 자, 눈을 뜨세요…”
하루는 강제로 어윈의 눈꺼풀을 잡고 위아래로 벌렸다. 억지로 밝아오는 눈 앞의 광경엔, 눈부시게 하얀 그녀의 살갖과 더 이상 가릴게 없는 부분이었다.
‘안돼…’
머리 속과는 다르게, 그의 몸은 점점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거기에 그녀가 불룩 튀어나온 허벅지 근처를 만지작 거리자 그나마 버티고 있던 이성의 끈마저 놓고 말았다.
이제부턴, 그저 그녀에게 모든 걸 다 내뿜고 뻗어버리지만 않기를 빌 뿐이었다.
“헤헤… 어윈씨도 할땐 하시네요…”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윈은 서서히 몸의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부둥켜안고 있는 하루의 옆으로 수많은 고무 덩어리들이 널려 있는 게 보였지만, 애써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시간. 다행히 이번엔 전처럼 기가 쪽 빨리지는 않아서 아직 저항할 여유는 있었다.
그렇다. 이대로만 잘하면…
“무슨 감상에 젖어있는거에요 어윈씨? 저는 아직 만족 안했어요!”
갑자기 그녀가 눈을 부릅 뜨며 그에게 매달렸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때쯤 2차전을 걸어왔다는게 떠오른 어윈이었다.
“이번엔 절대로 재우지 않을거니까요!”
그녀는 어윈의 허벅지 위에 걸터 앉아 간절하게 졸라오기 시작했다.
‘어어…’
지금까지의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려 보는 어윈.
하지만 그때마다 언제나 그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당했다.
이건 반드시 막아야 하는데…
“자, 잠시만!!”
“안돼요”
저항하려는 그의 옆에 대검을 냅다 꽂아버리는 하루.
검 주변으로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와 자신에게 스며들자, 갑자기 어윈은 그곳이 터질듯이 조여지는 것을 느꼈다.
“그아아아앗!!!!”
30분 뒤. 드디어 해방된 어윈은 무기력하게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윈씨, 정말 대만족이에요… 에헤헤…”
“…….”
“아… 그래. 어윈씨, 잠시만요.”
하루는 무언가 생각이 난 듯 갑자기 침대를 벗어나 거실로 나갔다.
이제 돈가스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언가 하려면, 빠르게 생각하고 움직여야 했다.
어윈은 있는 힘을 다 짜내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정도로 쥐여 짜이고 나면, 할 수 있는 행동은 극히 제한되었다.
소울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더 있다면, 선택지는 늘어났겠지만.
지금까지는 이를 해결할 수단을 찾지 못했었…
‘응?’
그 순간 바닥에 보이는 새하얀 약병. 소울 풀 드링크였다.
왜 그동안 저게 있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을까?
어윈은 몸을 굴러 약병을 집은 뒤 뚜껑을 따고 마셨다.
끈적끈적하고 가래를 삼키는 듯한 끔찍한 식감과 함께 씁쓸하고 비릿한 맛이 뒤따라와, 마치 계란 흰자를 삼키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를 넘기자 몸에 힘이 흘러 넘치기 시작했다.
'좋아… 이거면…’
그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루가 돈가스를 가져오기 전에 이 곳을 나가야 했다.
대충 옷을 주워 입고 커튼을 살짝 치우자, 미닫이 창문이 나타났다.
잠금장치를 풀고, 어윈은 조심스럽게 밖으로 발을 내 딛었다.
하루의 집은 1층이었다.
그냥 냅다 뛰어내려도 되지만, 그러면 창문이 열린 것을 보고 그녀가 곧바로 추격할 것이었다.
창문을 조용히 닫고, 마침내 바깥으로 발을 내딛은 어윈은 온 힘을 다해 도망갔다.
그레이스 시티 거리를 질주하며 사람들의 수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정말 급하게 입은 옷이라 팬티에 코트 한벌 뿐인 변태 같은 차림이지만 죽는 것 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한겨울에 맨다리에 맨발, 코트 한벌만 걸치고 있음 누가봐도 의심할건 분명하지만.
자신의 자존심보단, 목숨이다.
“하아… 이정도면 되었겠지!”
그레이스 시티 주거 지구의 으슥한 뒷골목. 어윈은 숨을 고르며 시계를 쳐다보았다.
11시 55분.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그의 목표인 12시가 되는 것이다.
이곳엔 고장난 가로등 만이 불을 깜빡이며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울 풀 드링크가 이렇게 유용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네. 앞으론 종종 쟁여둬야겠어.”
그의 손엔 빈 약병이 들려있었다. 흔적을 없애기 위해 이것까지 들고 왔다.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빈 병을 집어넣으며, 그는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추스리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말끔하게 닦은 부츠 대신 정신없이 뛰어오느라 여기저기 긁히고 다친 추레한 발이 보이자 가슴이 쓰렸다.
“그래도… 난 살았어! 살았다고! 드디어 이 지옥을...!”
그 순간, 그의 옆으로 살의가 가득한 육중한 물체가 스쳐 지나갔다.
본능적으로 옆으로 굴러 피하긴 했지만, 맞았으면 그대로 죽었을 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깜빡이는 가로등의 불빛으로 응시한 그 물체는, 지겹도록 보았던 하루의 대검이었다.
“오… 신이시여…”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불빛이 깜빡일 때마다 성큼 성큼 다가오는 하루가 보였다.
검은색 예복은 예의 데자이어 하루가 입던 것과 동일했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골목길을 질주했다.
그의 머리가 욱신거릴 때마다 몸을 기울였고, 그 옆으로 대검이 스쳐지나갔다.
이제 12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그는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젠장! 막다른 길이야!?”
하지만 그를 막아서는 벽이 보이는 막다른 골목.
그 순간, 그의 아래 부분으로 살의가 가득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다리의 감각이 사라진 채로, 그대로 바닥에 나부러진다.
어윈은 이를 악물고 눈 앞의 막다른 벽으로 기어갔다.
팔을 들어올릴 때 마다 새빨간 물이 묻어나오는 것을 보아, 설령 그녀에게서 멀어진다고 해도 과다출혈로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히려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죽어버려서 이 지옥을 벗어나는 것도…
“자, 어윈씨. 이제 도망갈 수 없어요. 이제 제가 만든 돈가스를…”
그의 눈 앞에 하루의 부츠가 보였다. 결국 따라 잡힌 것이었다.
그녀의 왼손엔 돈가스를 쥐어져 있었다.
이미 다 식어서 딱딱해졌을게 분명했지만, 그녀는 그 맛과 상태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이것을 그에게 먹이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보다.
“자, 입 벌리세요.”
그 순간, 어윈의 휴대폰이 울기 시작했다.
그가 설정해놓은 알람이 작동했다.
그의 표정엔 다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에선 나올수 없는 행복한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흐흐흐… 하루… 이번엔 내가 이겼어.”
어윈은 폰 화면을 하루에게 보여주었다. 00:00. 12시가 지난 것이었다.
“이 빌어먹을 지옥에서… 난 드디어 벗어날 수 있다고! 그 망할 돈가스… 너나 쳐 먹으라고!”
그는 크게 당황하는 하루의 표정을 기대하며 폰을 집어던졌다.
정말 몇 만번의 시도 끝에 얻어낸 승리인가.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승리의 증표라고 할 수 있는 하루의 썩은 표정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어윈씨?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구요?”
어째선지 그녀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당황해하는 어윈의 입을 강제로 벌렸다.
“아, 아니.. 그럴 리가…! 아!@#!@$!”
“후후… 맛있게 드셔주세요. 흘러가는 시간은 그저 어윈씨가 식은 돈가스를 먹을지, 뜨거운 돈가스를 먹을지의 차이뿐이죠. 늦게 먹는다고 못 먹는거 아니잖아요?”
그의 눈에서 눈물이 수돗물처럼 흘러내린다.
가만 생각해보니, 12시가 넘으면 모든게 해결될 것이라는건 자신의 상상 속의 일이었다.
왜 그는 그 상상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었을까.
그나마 이 돈가스를 먹으면 시간은 다시 돌아갈 테니 다른 방법을 시도는 해볼 수 있겠지만…
의미가 있을까?
“아하하… 귀여워… 사랑스러워… 어윈씨… 영원히 함께하는 거에요…”
그녀는 어윈을 끌어안고 그의 턱을 억지로 움직여 돈가스를 씹게 만들었다.
서서히 흐려지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선, 점점 멀어지는 감각의 사이에서 그가 본 것은 자신을 쳐다보며 소름돋게 웃고 있는 하루의 행복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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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1
어윈은 돈가스를 먹은 이래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입도 무언가로 막혀 있는지,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어머, 일어나셨나요?”
“!@#!@#”
“후후, 놀라셨나요? 이제 돈가스를 드신다고 해도, 시간이 돌아가거나 하진 않아요.”
어윈은 잠시 놀란다. 확실히 그가 지겹도록 겪었던 식탁에 앉았던 그때와는 달랐다.
무한대로 반복되던 그 지옥은 벗어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몸은 그때보다 더 불편했고, 무엇보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 가리개를 풀어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답답하셔요? 조금만 더 참아요. 곧 저와 하나가 되게 해줄테니까요.”
그녀의 말에 그는 몸서리 친다. 아니, 정확히는 몸서리 친다는 상상을 했다.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아예 없는 것처럼.
“곧 식사 시간이죠? 어윈씨가 제일 좋아하는 돈가스를 만들어 드릴게요.”
고개조차 가로 저을 수 없었다. 어윈은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 했다.
“요새 릴리씨가 어윈씨를 집요하게 찾고 있더라구요. 그 요망한 계집애… 감히 어윈씨가 누구껀데… 그래서 제가 이렇게 처리했어요. 저 잘했죠?”
그녀의 말을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한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비린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말 특별한 재료로 만든 돈가스에요. 제가 먹여 드릴게요.”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윈은 그 돈가스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거부하고 싶지만, 그에게 그런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았다.
“우후후… 맛있죠…? 이게 사랑의 맛이에요…”
이전처럼 억지로 입에 물려지고 씹혀진다. 돈가스 라지만 뭔가 국물이 가득했다.
국물의 정체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성의 끈은 놓아버린지 오래다.
정말 필사적으로 붙들었던 전과는 달리, 이젠 놓아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영원히 함께에요 어윈씨… 영원히… 영원히…”
그녀의 광기에 물들은 목소리를 들으며, 어윈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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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2
정신을 차리자, 어윈은 다시 예의 식탁에 앉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서 드세요 어윈씨. 제가 어윈씨를 위해 직접 만든거에요.”
실패한 것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시간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지긴 했다.
그런데 이제 어떤 방식으로 이를 탈출해야 한단 말인가?
“식기 전에 드세요.”
이제…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걸 하기엔, 너무나도 지쳤다.
어윈은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하루가 뭐라고 하든, 그녀가 돈가스를 잘라 입으로 먹여주든 말든.
말 그대로 모든걸 포기하고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럴때 마다 수도 없이 반복당해졌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어서 드세요 어윈씨. 제가 어윈씨를 위해…… 뭐, 이제는 못 들으시려나…?”
하루는 그저 멍하니 앞만 보는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제가 기억을 못한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애초에 이 루프를 누가 만들었는데요? 안그래?”
싱긋 웃던 그녀의 샛노란 눈동자에 공허한 눈빛이 스며든다.
새하얀 점퍼는 어느새 검은색 예복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그 아인 행복해선 안 되거든… 그 나약한 정신으론 켄트를 상대하는데 아무런 쓸모도 없어.”
데자이어 하루. 그녀는 폐인이 된 어윈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걸로, 너의 애인은 나의 것이야… 무너져 내리라고... 아하하… 하하하하하!!!”
데자이어 하루는 어윈을 안아 들고 침대로 간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그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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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3
“으아아!!”
어윈은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숨을 고르던 그는 예의 식탁도 아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도 아닌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꾸, 꿈이었나…!”
얼른 두 손을 움직여보고 여기저기를 꼬집어 본다.
얼얼한게 현실이었다.
주변을 돌아보자, 일단 자신의 방은 아니었지만 꽃무늬 벽지가 보였다.
“으흐음… 어윈씨… 무슨일이에요…?”
자신의 옆에서 하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이불을 덮은채 반쯤 감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하루가 있었다.
“어… 아냐… 뭔가 악몽을…”
“아..하…하… 어윈씨… 악몽도 꾸시네요… 흐아아암…”
잠이 덜 깼는지, 그녀는 기지개를 피며 하품을 크게 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장면이었다. 어윈의 손은 전율에 젖어 떨려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 지옥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성공이야...!”
그는 온 몸이 멀쩡하고, 아픈 곳도 없고, 하루의 방에서 동침하고 있는것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정상임을 확인했다.
가슴 깊은곳에서 올라오는 안도감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하루를 꼬옥 끌어안았다.
“우우응… 어윈씨… 왜그래요…”
“하루… 너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불과 몇분 전만 해도 그를 죽이려 들던 그녀였는데 말이다.
“부, 부끄러워요…”
“사랑해 하루… 너는 절대 변하지 말아줘…”
“아이 참…”
“이대로 행복하게 지내자…”
한참을 그녀를 끌어안던 어윈이 포옹을 풀자, 그녀는 바닥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그건… 돈가스였다.
“어…?”
“배고프시죠…? 이거 드실래요?”
“아, 아니 괜찮…”
“제가 직접 만든거에요. 맛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는 체감했다. 이건 강요다.
“드시지… 않을건가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맞부딪히는 걸 보자, 어윈은 어쩔수 없이 포크를 집었다.
한 입을 베어먹자, 전처럼 시공간이 우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아, 안돼!!!”
한 입 베어문 돈가스를 뱉으려고 했지만, 이미 그의 감각은 전처럼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에요… 허접한 어윈씨 이번에도 버텨주세요 ”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건 황홀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는 하루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