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메이트 판매 기념으로 쓴 짧은 단편입니다.





이미 판매 시작한지 4개월이나 지난 완벽한 뒷북이지만...





주제는 어하, 이외에 이런저런 아이들이 나옵니다.

가볍게 읽어주세요.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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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공고’

‘여러분과 함께하는 나만의 소울워커!’

‘서부 클라우드림의 수호자인 9명의 소울워커를 모티브로 한 인형입니다.’

‘절찬리에 판매중!’

 

상인 연합회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신상품, 소울메이트가 런칭 되었다.

소울워커들을 데포르메화하여 아장아장 걸어 다니면서 고유의 대사를 외치며 애교부리는 모습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할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그 무렵에 발생한 일이다. 





 

“사, 사버렸다…”

 

하루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구매한 소울메이트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자기 자신과 동료들을 캐릭터화 한 소울메이트들 중, 그녀가 선택해서 가져온 것은 바로 어윈 아크라이트였다.

 

“으으… 대체 나는 무슨 생각으로…”

 

짜리몽땅하면서 의외로 디테일한게, 둥글둥글 귀염 귀염 하게 깎여 있는 어윈이었다.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고 미소를 잃지 않는 인형을 보며, 하루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자, 이대로 가자!”

“네!? 자, 잠시만요! 어윈씨!”

 

몇 시간 전, 그레이트 그레이스 승강장 앞. 하루는 서둘러 수송기에 오르려고 하던 어윈의 팔을 제지했다. 이들은 최근 갑자기 거대해진 이상공백 내 안정기를 설치하는, 소위 ‘더 비욘드’ 작전의 추가 지원을 위해 모인 것이었다. 데자이어 에너지 안정기의 수명이 짧어서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사라 박사의 의견이 있었다.

 

“왜? 어차피 별거 없잖아? 둘이서도 충분하다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안전하게 가면 좋잖아요? 다른 분들도 기다리면 금방 오실 거고…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좋지 않겠어요?”

“그거 기다릴 시간에 가면 더 빨리 끝낼 수 있어. 내가 최적의 루트를 짜줄 테니까, 넌 그저 따르기만 하면 돼!”

“하지만 이미 모집 공고를 올렸…”

“아 그거?”

 

어윈은 통신 단말기를 꺼내 버튼 하나를 눌렀다. 그러자 소울워커 팀들이 사용하는 채널에 메세지가 하나 발송되었다.

 

‘완’

“자, 됐지? 얼른 둘이서 끝내 버리자!”

“……. 또 멋대로 하시는거에요?”

“멋대로 라니, 가장 효율적인 방법대로 하는거지! 너도 해보고 나면 엄청나다고 생각하… 아…”

 

어윈은 말을 끝내 잊지 못했다. 그녀의 표정을 본 순간,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자기 하고 싶으신데로 다 하시면서 책임은 저한테 다 떠넘기고. 이러려고 저 리더 시킨거에요? 그럼 저 오늘부터 리더 안 할래요. 어윈씨 알아서 다 하세요.”

“자, 잠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돌아와줘!”

“몰라요. 다신 말 걸지 마세요. 미워요.”

 

하루는 등을 돌린 채로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녀를 붙잡기 위해 뛰어가는 어윈이었지만, 야속하게도 문은 그의 눈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닫혀버렸다.

그녀를 붙잡는 건 물론, 자신의 이마조차 지켜내지 못했다. 그레이트 그레이스의 승강장에 철문과 부딪히는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야… 이거 큰일인데…”

“잘하는 짓이다, 에휴…”

“괘, 괜찮으신 겁니까…?”

 

이마를 어루만지며 아파하는 그의 옆에서 비아냥과 걱정하는 말이 들려왔다.

 

“뭐야… 너희 언제 왔어?”

“한참 전부터 와 있었어. 너네가 뒤 한번이라도 돌아보면 손짓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덕분에 엄청난 걸 봐 버렸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인사하려고 했는데 이리스씨가 제 입을 막으셨습니다…”

“넌 눈치 좀 챙겨! 둘이 데이트하려고 하는 건데 그걸 방해할 순 없잖아!”

“죄송합니다…”

“……. 너… 보기보다 눈썰미가 좋구나…”

 

이리스 유마와 진 세이파츠. 어윈이 생각하는 것 보다, 이 두 사람은 빠르게 이곳에 올라와 있었다. 부지런한 진에 의해 끌려와서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보았다는 이리스의 첨언은 덤이다.

 

“…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그… 젠장… 좀 부탁할게. 하루를 뒤쫓아 가야겠어.”

“그래, 좋은 선택이야. 후… 어디 바보 성실군처럼 작전 따라간다고 했으면 한 대 쥐어박으려고 했는데.”

“왜… 절 보시면서 말하시는 거죠?”

“됐어… 난 어쩌다가 이런 애를… 아무튼 다녀와! 그리고 하루한테도 잘 전해줘! 우리 4명이서 간다고!”

“어… 뭐? 4명?”

 

4명? 하고 돌아보는 순간, 이리스와 진 뒤로 갑자기 짜잔 하는 소리와 함께 스텔라와 치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스댕라!”

“치이!”

“합쳐서 댕치댕치!!”

“이 귀요미들이랑 같이 갔다올게! 아휴~ 이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야!”

“하하하… 여긴 저희한테 맡겨주세요 어윈씨!”

 

저들이면 확실하게 맡기고 갈 수 있을 것이었다. 어윈은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레이트 그레이스를 나와 목적없이 방황하는 하루.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몇 방울 달려 있었다. 대체 어윈은 왜 그녀에게만 이러는 건지. 그가 평소에도 자신을 이렇게 골려먹는걸, 하루도 적잖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오늘은 유독 심했다.

물론, 그런 그가 싫은 건 아니었다. 소중한 동료이고, 고독한 리더의 자리를 전적으로 지원해주는 든든한 아군이었다. 항상 하루의 옆엔 어윈이 있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성격 치고는 수수하게 생긴 – 적어도 그녀의 생각엔 - 자신의 옆에 찰싹 붙어주는 것 만으로도 그녀는 감사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일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완전히 달랐다.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기 위해 역할을 무시한다든가, 특유의 잘난 태도로 분위기를 흐린다든가. 특히 리더인 하루는 그저 그의 작전에 명분을 제공해주는 역할만 맡을 뿐이었다.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어라, 하루씨? 무슨 일 있으신 가요?”

 

눈물을 닦으며 방황하던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상인연합회 유니폼을 입고 있는 요미였다. 요미는 상인연합회에서 신규 출시한 소울메이트 판촉 행사를 위해 마련한 팝업 스토어 앞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이미 목소리에서부터 펑펑 우신 거 같은데…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드, 들켜버렸나요…? 아하하…”

“……. 이리 들어오세요. 마침 저도 조금 쉬려고 하니까…”

 

요미는 하루를 가게 안으로 들여보낸 뒤, 밖에 있는 팻말을 뒤로 돌려 폐점 상태로 만들었다.

 

“자, 여기 인스턴트 커피라도 드세요. 아메리카노라도 타드리고 싶은데, 남은 게 없네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요미는 하루의 하소연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어윈을 같이 욕해주었다. 오히려 잘했다면서, 가끔은 충격 요법도 필요한 것이라고 그녀의 행동을 칭찬하기도 했다. 항상 하루가 어윈에게 끌려 다니고 곤란 해하는 표정을 종종 보아왔던 요미였기에, 그녀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하고 조언도 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하지만… 어윈씨가 조금만 더 배려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싸우지는 않았을 건데… 더군다나 저희가 안가면 작전은 어떻게 수행하고…”

“흐음…”

“아무리 억지로 떠밀린 자리라지만, 리더는 리더잖아요? 아무리 혼자서 할 수 있다고 하셔도 거긴 위험한 곳인데… 걱정되고…”

“끄응…”

“어윈씨는 겉으로는 괜찮다고 해도 속으로는 고뇌하고 힘들어 하실 거란 말이에요. 그래 놓고 나중에 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헤헤 웃을 거고…”

“저기… 잠시만요…?”

 

그녀의 하소연은 벌써 30분을 경과하고 있었다. 도저히 끊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이대로면 가게 재오픈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 요미는 말을 끊고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되면 저는 또 혼자 나쁜 사람이 되는거고… 주변에선 어울린다고 그러는데… 저는… 저는…”

“…… 그런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그녀의 눈앞에 인형 하나가 아른아른거렸다. 각 잡힌 갈색 코트와 특수요원을 연상시키는 셔츠 정장이 돋보이는, 영락없는 어윈이었다.

 

“소울... 메이트요?”

“두려우신 거잖아요? 먼저 쓴 소리해서. 얼굴보기가 미안한 것일 거고.”

“...... 네...”

“그이와 똑같이 생긴 인형에다 사과라도 하면,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 이미 그런 건 하나 있는 걸요.”

“어… 그, 이건 좀 다른거에요! 뭐랄까, 평소에 구매하신게 A급이라면 이건 USS급!”

 

요미는 살짝 당황한듯 말이 빨라졌다. 소울메이트를 이미 구했을 줄이야…? 그녀는 황급히 판매 전략을 수정했다.

 

“등급이 있어요…?”

“네! 쉽게 말하면 초 슈퍼 레어급! 일반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구요? 특별한 대사가 들어있다 라든지!”

“…… 결국 저한테 한 개 더 판매하시려는 거잖아요.”

“읏… 그, 그게… 그렇긴 하지만…”

 

정곡을 찔려 말문이 막혀버린 요미. 이미 하나 있는 사람에겐 아무리 최고등급이라고 이야기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졸지에 눈치 없이 상품을 팔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었다는 이미지를 심어준 건 덤이었다.

 

“그래도 요미씨가 추천하신 대는 이유가 있으시겠죠… 구매할게요.”

“하, 하루씨… 고마워요… 참고로 200백만 제니에요. 할인해서 150만 제니에 드릴게요.”

“에, 예!? 비, 비싸잖아요!”

“이거 VVIP 상품이에요… 원래 할인 같은 건 없는 상품이라구요…”

 

결국 150만 제니를 지불하고 소울메이트를 구매해버린 하루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사실 집에소울메이트 같은 건 없고, 이번이 처음이었다. 행여라도 누가 볼 까봐, 그녀는 상품을 품에 안고 총총걸음으로 뛰어갔다.

 



 

 

한편…

 

“누님, 그러니까 하루가 이쪽으로 갔다고?”

“네. 그렇습니다. 제가 아까 경계근무를 서는 동안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엥? 그래? 의외네… 아무튼 알겠어 누님!”

“수고하십시오.”

 

“하아? 하루씨요? 그건 갑자기 왜 궁금하신 거죠? 두분께서 이상공백 다녀오신다 하지 않았었나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생겨서! 그래서 너는 위치 모른다 이거야?”

“뭐, 한참 전에 이 근처의 가게 안으로 들어간 거 같았는데 말이죠. 지금도 여기 있으실 지는, 저도 모른답니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저와 잠시 어울려 주시…”

“어… 그래. 고맙다.”

“뭐, 뭔 가요, 그 반응… 마음에 안 드시는 건지요…?”

“아니. 나중에 보자.”

“자, 잠깐만…!”

 

어윈은 다른 동료들에게 물어보며 하루를 찾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루? 그건 니가 더 잘 알지. 맨날 찰싹 붙어 다니면서 왜 나한테 묻는 건데?”

“그게 안되니까 물었겠지?”

“뭐 하긴. 그런데, 맨 입으로는 안 준다? 50만 제니는 내 놓으셔.”

“……. 이 날강도 같은… 자. 그래서 어디 있는데?”

“입금 감사~ 여기 소울메이트 팝업 스토어로 갔어.”

“그래.”

 

그나마 마지막으로 만난 에프넬이 소울메이트 팝업 스토어에서 발견되었다는 정보를 알려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어서오세…”

“요미!! 하루 못 봤어!?”

“어, 어윈씨? 오자마자 하루씨를 찾으신다니…”

“정말 미안한데, 하루를 본적 있는지 빨리 말해주겠어?”

“그… 일단 진정을…  천천히 말씀드릴 테니까, 우리 들어가서 이야기할까요...?”

 

 



 

“여어!”

“하…!”

 

깊은 회상에 빠져 있던 하루를 다시 현실로 불러온 것은 소울메이트의 외침이었다. 소울메이트 어윈은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반기고 있었다.

 

“갑자기 말을 거네…?”

 

손가락으로 소울메이트의 배부분을 툭툭 건드리자, 마치 배를 만져지는 강아지처럼 꿈틀거렸다. 살아있는 인형, 이것이 아마 옳은 표현일 것이다.

 

“흐음… 그나저나 어윈씨…랑 정말 똑같이 생겼어…”

“흐하하하!! 농담 아니지!!!”

“…… 웃는 것도 똑같네.”

 

웃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원본 같은 재수없는 모습에 하루는 검지손가락을 오므려 머리에 딱밤을 날렸다. 내부에 플라스틱 골격이라도 있는지 딱- 하고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흑흑… 어째서…”

“푸훗. 그래, 어윈씨는 좀더 맞아야지.”

 

맞은 부위를 쥐고 아픈 듯 칭얼거리는 소울메이트를 보자 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끌어안고 쓰다듬고 싶은 곰인형처럼, 가슴의 한 켠을 자극하는 묘한 귀여움이 넘쳤다. 설령 그 대상이 재수없는 어윈이라고 해도.

좀 원본도 이렇게 귀여우면 안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자 자기도 모르게 또 다시 소울메이트의 머리를 쥐어 박는다.

 

그러다 문득, 요미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이와 똑같이 생긴 인형에다 사과라도 하면,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머리를 쥐고 엉엉거리다 엎드리는 인형에서 다음날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사과하는 어윈의 모습과 겹쳐졌다.

평소의 그라면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다른 핑계를 대며 요리조리 빠져나거나 갑자기 냅다 끌어안고 사탕 발린 말을 한다 라던가.

 

“사과… 라.”

 

소울메이트 어윈이 다시 몸을 일으키자 못 마땅한 듯 딱밤을 한 대 더 날린다. 머리를 쥐고 엉엉 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배 쪽에 무언가 못 보던 버튼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알라뷰.”

 

버튼을 누르자 싸구려 곰인형에서나 흘러나올 법한, 어윈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알러뷰 음성. 설마 이게 요미가 말한 ‘특수 기능’ 인 걸까? 하루는 졸지에 사기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 어윈씨 때문이야! 150만 제니도 쓰고… 겨우 이 알라뷰나 듣고 있다니…!”

“알라뷰.”

“그렇게 잘났으면 혼자 다하지, 왜 나까지 끌어들여서… 내 성격도 잘 알면서…!”

“알라뷰.”

“미, 미워…! 매, 맨날…. 어…”

“알라뷰.”

“흐, 흠… 으음…”

 

투정을 부릴 때마다 배의 버튼을 누르는 그녀. 어윈에 대한 맹비난과 반복되는 모순된 애정표현은 스스로도 할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먼저 화를 낸건… 나네. 하지만 평소에도 늘 이래왔잖아…?”

“자기 편한대로만 하고… 정작 중요할 때는 뒤로 빠져서 나한테 다 넘기고… 위험할 때는 앞서서 막아주고… 어라?”

 

문득 자기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 하루. 그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신상 나오면… 제일 먼저 나한테 나눠줬지…? 내가 고민이 있으면 들어주고… 내가 부르면 가장 빨리 나타나고… 생일 축하도 제일 먼저 해줬고…?”

 

부정적인 면에 가려져 잠시 보지 못했던 ‘일상적인’ 기억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가렸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를 무작정 욕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고개를 들지 못했다.

 

“비록 잘못은 어윈씨가 했다고 해도… 나도 침착하지 못 했어…”

 

마침 오늘 저녁에 그와 약속이 있었다는 것도 떠오른 하루. 그 모든 것이 낮에 있던 일 한 번으로 무너졌다는 걸 생각하자 눈앞이 캄캄해 졌다.

품이 좁다는 듯 아둥바둥 거리는 소울메이트를 못 벗어나게 팔로 감싸며 그녀는 침대에 누워 들으라는 듯이 작게 속삭였다.

 

“미안해요… 어윈씨…”

“비록 어윈씨가 한 행동을 잊을 수는 없겠지만, 제가 좀더 참았어야…”

“…… 미안해.”

“네…?”

 

갑자기 소울메이트에서 어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형으로 서의 기능을 위해 녹음된 기계음이 아닌, 진짜 목소리였다.

 

“내가 잘못 했어. 너의 기분을 또 헤아리지 못하고… 멋대로 일을 저질렀지.”

“어… 어윈씨…? 진짜 어윈씨에요?”

“미안해. 직접 찾아가서 사과하고 싶지만… 아직 너의 기분이 풀리지 않았을 것 같… 아니, 그냥 내가 용기가 없어서 그랬어.”

 

하루는 조용히 어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것은 틀림 없는 어윈의 목소리였다.

 

“비록 초라하고 한심한 방법이지만, 이렇게라도… 너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어.”

“제가 더 죄송해요. 제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내일… 12시쯤 시간 돼? 우리 맛있는 거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조, 좋아요... 내일 일찍 나올게요.”

“고마워... 내가 더 잘할 게.”

“자세한 건 내일 이야기해요… 저도 미안해요…”

“그래, 잘자고… 내일 봐!”

“네! 내일 봐요!”

 

전화 통화를 하듯 작별인사를 하자, 소울메이트는 입을 닫고 그대로 작동을 멈추었다. 아까부터 또르르 흘러내리던 눈물을 닦으며 하루는 소울메이트를 다시 꼭 끌어안고는 싱긋 웃었다.

 

“고마워요... 작은 어윈씨...”

“알라뷰.”

 

싸구려라고 욕했던 그 기능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그녀는 계속해서 버튼을 누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그럼 이제 다 된 거죠?”

“고마워! 덕분에 잘 해결된 거 같은데.”

“나 참… 앞으론 이런 일 자체를 만들지 말라구요. 어윈씨도 VVIP 고객이라 이번엔 그냥 넘어가겠지만 말이에요.”

 

아까의 스토어. 어윈은 들고 있던 마이크를 내려놓고 이마에 흐르던 땀을 닦았다. 요미가 하루에게 팔았다는 특수한 소울메이트에 내장된 기능 덕분에 어떻게든 그녀와 1차적으로 화해를 할 수 있었다.

 

“자, 여기. 어윈씨는 이거 가져가시면 되요.”

 

요미는 하루의 모습을 한 소울메이트를 건냈다. 시중에 판매하는 소울메이트와 동일하게 생겼지만, 배 부분에 정체 불명의 버튼이 하나 보이는 것이 하루가 가져간 것과 동일한 모델이었다. 버튼을 누르자 수줍게 알라뷰라고 외치는 하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윈씨는 할인 없어요. 200만 제니 다 주세요.”

“에이, 너무한데.”

“이 정도는 해주셔야죠. 이 시덥잖은 연애 행각을 도와드렸는데…!”

“아니면, 나랑 커피 한잔할까?”

“네에에?? 무, 무슨 소릴…”

“어울려주면 200만 제니에 사줄지도 모르지?”

“사주는 게 아니라, 사셔야 하는거 에요. 그따위 흥정으로 퉁칠 생각은…”

 

어윈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미를 벽으로 밀치고는, 양팔로 그녀를 감싸 벗어나지 못하게 막았다.

 

“으… 그…”

“이래도?”

“으으…”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라면, 어윈은 행동거지 때문에 그렇지, 전형적인 미남형이라는 것이다.

벽쿵까지 당하고 이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쳐다본다면, ‘연애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충분히 넘어올수 있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지금 요미가 그렇다.

자이트 말곤 남자 경험이 없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조, 좋아ㅇ…”

“어윈씨.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읏!? 하, 하루?”

 

갑자기 책상위에 올려놓았던 소울메이트에서 하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뿔사, 아까 버튼 테스트를 한다고 소울메이트를 작동시킨 게 문제였던 것이다!

 

“이, 이건…”

“.... 저 아직 화 안 풀렸거든요?”

“하루씨, 도와주세요! 어윈씨가 저를… 읍읍…”

“아, 잠깐만…! 아냐, 하루! 이건 오해가…!”

“어윈씨를 믿은 제가 잘못이죠. 죽어버려요. 앞으로 저랑 눈 마주칠 생각도 하지 마세요.”

 

앙칼진 하루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잠시 후, 소울메이트에선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침묵해버렸다. 그저 어윈은 입을 꾹 닫아버린 소울메이트를 붙잡고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50만 제니 아끼려다가 모든 걸 망쳐버린 어윈. 이제 그는 하루와 어떻게 다시 화해를 할 것인가?

연인을 이어주는 마법의 소울메이트! 지금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

 

“정말 한심하군요 어윈씨. 지나가던 굿보이도 비웃겠어요. 후후후…”

 

고풍스러운 어느 소녀의 방. 불을 밝히는 촛불에 비치는 건 양갈래 머리와 날카롭게 갈린 낫. 

방 안에 켜져있는 TV 화면엔 소울메이트를 붙잡고 좌절하고 있는 어윈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곧, 찾아 뵙도록 하죠.”


소녀는 어윈의 형상을 한 소울메이트를 들고 음흉하게 웃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