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극혐 글카스가 나올 수 있으니

항마력 없으면 도망가는 것이댕


여기에 낙원은 없다



라일라 사건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겉으로는 어느 정도의 평화를 되찾은 아르카디아 렐름.

소울워커들은 다가오는 사성삼림 중 하나 비스타와의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 회의실에 모였다.


"그래서 모은 이유가 뭐야? 쓰잘데기 없는 걸로 일일이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늘 그렇듯 회의의 시작은 에프넬의 가벼운 불평으로 부터 시작했다.


"아하하... 별건 아니고 사성삼림과의 전투에 앞서서 최대한 정보를 취합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맞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 적의 특징을 알아두는게 손해가 될리는 없지요."


하루의 답변에 릴리가 힘을 보탰다.

겉으로는 차가워보여도 사실 속은 따뜻한 릴리에게 하루가 빙긋 미소를 보내자 릴리가 멋쩍은 듯 고개를 돌렸다.


"알다시피 저희가 상대하는 건 동부 별숲리그, 그 중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다는 수뇌부들이에요. 그래서 하이츠씨나 로우나씨한테도 정보를 받아오긴 했지만 아무래도 문서만으로 알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뭣보다 하이츠는 앓아누웠고, 덕분에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로우나에게 이런 것까지 부탁했다간 정말 머지않아 송장을 치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고민하던 진이 대답했다.


"저희가 직접 마주친 거라곤... 세번째 별, 비스타였죠."

"...맘에 안 들었어."

"맞아 맞아, 진짜 나쁜 사람 같았어!"


치이와 스텔라가 비스타를 떠올리니 몸서리가 쳐진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개와 고양이는 사이가 안 좋다는데 그런 게 반영된 걸까?

뭣보다 가장 표정이 어두운 건 에프넬이었다. 조용히 혀를 차는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짜증이 느껴졌다.

라일라와 있었던 일을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것 같았다.


"비스타는 마틴 말로는 불사신에 가까운 육체라고 했었어. 그럼 죽을 때까지 갈아버리면 되는 거 아냐?"

"뭐 그렇긴 한데... 사실 제가 가장 까다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 사람이에요."


이리스의 질문에 하루가 레이저 포인터로 하나를 가리키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사성삼림의 첫번째 별,

로드의 뜻을 잇는자,

별숲리그의 정상에 위치한 자,

장예섭.


"이 사람은 위험한 최면능력을 쓴다고 했어. 그렇죠 나비 씨?"

"...네. 아주 위험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머릿속을 잠식당하고 그 사람이 하는 말에 휘둘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비가 생각만해도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과거의 아픈 기억에 눌려 고개를 숙였다.


"만약 우리 중에 한명이라도 그 사람의 세뇌에 당하기라도 하면 동료끼리 싸울 수 있으니 대비책을 세워두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비 씨?"

"네."

"세뇌 방법이 뭐였는지... 아니 그 트리거만이라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하루의 질문에 나비는 가만히 기억을 더듬었다.

반평생을 세뇌한 사람의 수법이다, 잊혀질 리가 없었다.


'...쟈?'


오싹


"욱... 우우욱...?!"

"나비!"


갑작스레 구역질을 하는 나비를 보고 다른 워커들이 깜짝 놀랐다. 릴리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자 나비가 입에서 침을 방울방울 흘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기억 저편 어딘가에서 지옥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 떠오르려는 걸 무의식이 어떻게든 막아낸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괜찮으세요?"

"괘... 괜찮습ㄴ... 우욱..."

"무리해서 말할 필요 없답니다, 서부 별숲리그나 하이츠 씨가 회복되면 물어봐도 되니까요."


깨질듯 한 머리를 부여잡고 나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마음 속 어딘가에서 그 지옥과도 같은 세뇌를 다시 받고 있을 버나드가 떠올랐다.




동부 별숲리그, 지하 깊숙한 어딘가에 위치한 시크릿 룸.

그곳에는 한 남자가 사슬에 매달려 강제로 눈이 고정된 채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바닥에는 토사물이 가득했고 온 몸은 식은땀에 절어있었다.

버나드였다.


"허억... 허억... 장예섭... 장예섭...!"

"개가 주인을 보고 이빨을 세우다니 아직 교육이 덜 된게로구나."


장예섭이 느긋하게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방금 막 옷을 여민 듯 옷섶이 살짝 풀려있었다.


"이 씨발련아...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버나드가 고통과 증오로 얼룩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장예섭에게 욕지거리를 하자 장예섭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달칵, 다기를 내려놓자 맑고 청아한 소리가 거친 숨소리를 뚫고 퍼져나갔다.


"하나 그것 역시 좋다. 자고로 말을 듣지 않는 개일수록 길들이는 맛이 있는 법."


장예섭이 스윽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버나드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더 이상 그 지옥을 보고 싶지 않은, 몸의 무의식적인 반사활동이었다.


"제발... 제발..."


버나드가 아무 소용도 없는 몸부림을 치는 동안 장예섭은 천천히 다가왔다.


"걱정 말거라, 이번엔 너한테 하려는게 아니니."

"뭐...?"

"짐승과 인간의 공통점이 뭔지 알고 있느냐?"


장예섭이 손가락으로 버나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자기 자식이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사나워지는 법,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식이 위험에 처했을 때..."


버나드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올리자 머리카락이 뽑히는 고통이 두피를 타고 흘러내렸다.


"가장 고분고분해지지."


"할미 쟘지가 좋쟈?"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어어어!!!"

"이깅야아아아아앙아아아가!!!!"


지옥에서 악마들이 살고 있을 법한 역겨운 동굴, 그리고 사탄의 인장과도 같은, 커다란 왕점

살인마가 인피로 누더기를 기워입은 듯한 모습...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것 자체가 모독적이고 사악하기 그지없는 그 광경.

아마 세상의 종말과 함께 묵시록이 찾아온다면 이것이 펼쳐지리라.

그 형언하기 어려운 끔찍한 것을 본 2세대 소울워커들의 정신은 완전히 붕괴하고 있었다.


"할매 입이 주름이 쟈글쟈글하지~?"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버나드가 다시 한번 구토를 했다.

나올 것도 없어 맑은 위액만을 쏟아냈지만 살짝 피와도 같은 붉은 빛이 엿보였다.

버나드가 비명을 질렀다.



"아이구 이눔아 거긴 오줌 나오는 구멍이여~"



"살려줘 버나드!!!!!!!!!!!!!!!!!!!!!"

"이건 씨발 -10000000만 바버르다 이 씨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바버르도, 히어로아머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악마가 인간을 고문한다면 이런 방법을 쓰리라.

버나드의 동공이 극한의 공포로 인해 넓어지고 수축하길 반복하다 고개가 푹 꺼졌다.

장예섭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버나드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미 눈알은 뒤집히고 입에선 거품이 줄줄 흘렀다.


새로 만들기 위해선 파괴가 필요한 법, 새로운 인격과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려면 기존의 인격과 생각을 완전히 파괴해야 했고...

공백 이전 인간들이 사용하던 인터넷 테러전략병기 통칭 HAL-K 는 인격 파괴에 정말 효과적이고도, 잔혹하고, 효율적이었다.


자칭 서부의 영웅들도 이 정신공격을 피할 순 없으리라.


"자, 나의 아이야 이제 눈을 뜨려무나.

넌 나쁜 아이가 아니란다.

나의 말을 듣는 것만이 착한 아이.

반항하는 나쁜 아이에겐..."


"벌이 필요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