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한 백바가 보이는 테이블에 깔끔한 게이밍 노트북을 열고 클래식에 맞춰 소울워커를 하고 계셨다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살짝살짝 말을 붙이다 보니


소울워커를 오래 하신 분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그 분이 부캐는 내가 좋아하는 걸로 하나 만들고


자기도 같은 걸로 하나 만들겠다고 하시길래


캐선창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스텔라 유니벨을 골랐다


왜 스텔라 유니벨이냐고 물으시길래


"심플하고 귀엽잖아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 소울워커에 입문할 때, 나랑 내 절친한 친구에게 페도를 알려 준 의미있는 캐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근데 얘가 출시되고 6년도 넘고 다나도 나와서 이젠 퇴물인데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물으니


"그래요? 더 좋은데요?" 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웃으면서 소울워커 캐선창에 페도가 빠질때로 빠진 스텔라 유니벨을 한마리씩 만들어줬다


페도들과 과거의 슬픔이라는 설정은 전부 빠질 대로 빠지고 남은 건 정박아 밖에 없었다


멋쩍게 웃으며 댕라를 돌려보았다


"역시 페도가 빠지니까 심심하네요."


하지만 그 분은 그저 빙긋 웃으며 계속 댕라를 여기저기 비춰보고, 향을 맡으며 가만히 감상했다.


자못 여유마저 느껴지는 모습에 나도 내가 놓친 뭔가가 있나 싶어 가만히 댕라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여전히 심심하고 퇴물이었다.


그러나 그 분은 뭐가 그리 좋은지 그저 가만히 댕라를 살펴만 볼 뿐이었다.


그 분은 고즈넉히 미소를 지었다.


"이거지, 스텔라는 후타인데 사람들은 로리에만 집중해."


그 말이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사람들은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만을 바라본다.


어린왕자에서 나왔듯 어른들은 숫자만을 바라본다.


"하루는 후타나리 거근빅부랄이에요." 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하며 


"그거 좋은 거니?" 라고 되묻는다


하지만 "하루는 52.3cm 거근 빅부랄 D컵 빅빵디 도내 TOP 10에 들어가는 미소녀에요." 라고 하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그거 참 좋은 설정이구나!" 하면서 박수를 친다.


어느 순간 나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에서 모자를 보게 된 것 처럼 외면에만 집중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한 수 배웠습니다."


가볍게 목례를 하자 그 분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 분은 카메라를 살짝 기울이며 덧붙였다.


"그저 잊고 계셨을 뿐이지요."


좋은 사람의 배움에선 좋은 향이 난다.


나는 그 분과 같이 댕라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잊고 있었던 댕라의 본질에 취했다


그 날은 퇴근할 때까지 내내 기분이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