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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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물은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는거 같아요!”

“소울 정크들이 늘어나면서 해양 생물이 전부 죽었거나 오염되었다고 들었는데, 별도로 양식하던 것들은 건재했나봐.”

“다행이에요… 공백 이전에 먹은게 마지막 일줄 알았는데.”

‘덕분에 지갑은 텅텅 비고있지만…’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둘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윈은 예상보다 더 큰 금액이 지출되는 것에 조금 당황했다. 

분명 사전 조사할 때 보았던 식사 비용이 실제로는 배로 뛰어오른 것이었다.

겉으론 웃고 있지만, 나중엔 잔고가 부족해서 결제가 안되는 민망한 상황이 머리속에서 그려지자 조금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잔액이라도 확인 해 봐야... 아차.'

어윈은 계좌의 잔액을 확인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가 급히 집어넣었다.

그가 계속해서 휴대폰을 피하려고 하는 건, 휴대폰에 떠 있는 수많은 부재중 알림을 보게된다면 도피행에 대한 의지가 약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하루에게도 휴대폰은 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본인이 먼저 그 약속을 깨버린다면 참 면목이 없을 것이다.

  

내색하진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이 외면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엄습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별숲리그 마크가 보이고, 관련된 소재에 눈길이 가는건 그 때문일 것이었다.

 

“또 멍하니 무얼 하고 계세요? 아까부터 좀 이상하네요.”

“아, 미안. 저 뒤에 헤이븐 아일랜드가 보여서…”

“제가 눈앞에 있는데 그게 보여요?”

“읏… 그, 그런건 절대 아니…”

“후훗, 농담이에요. 하지만, 한 번 더 한눈 팔면…”

 

해맑게 웃던 그녀의 표정과는 달리, 식탁 아래는 하루의 발이 어윈의 발등을 꾹 누르고 있었다.

더 이상 불안해하지 말고 지금 이순간을 즐기라는, 그녀의 일침에 그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 마냥 정신줄을 붙들었다.

 

“무, 물론이지… 새우 까줄까?”

“이미 다 까놨어요. 자, 아~”

‘그래… 내가 먼저 무너지면 안 되지…’

 

마음을 바꾸자, 그간 지나가던 풍경처럼 보이던 연회장이 다시 현실로 느껴졌다. 

그리고 감각이 돌아오자, 그는 불안을 떨쳐내고 다시 데이트에 임했다.

 

 

 

…….

 

 

 

“뭐야, 결국 말했어?”

“제가 멍청했답니다. 부끄러워서 고개 들기가 힘들군요.”

“그냥 가만히 있으라니까… 왜 도발해서 일을 키우고 그래?”

 

마틴의 조사가 끝난 이후, 이리스와 에프넬은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간 릴리를 붙들고 이것저것 추궁하고 있었다.

집무실 밖의 사각지대에서 숨어 있던 그녀들은, 마틴이 집무실을 나가면서 어윈의 위치를 알아 냈다는 보고를 엿들은 것이었다.

 

“그, 그래도 지금까지 시간을 끌었으면 그 두사람에겐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지금 당장이라도 수송기에 올라타서 헤이븐 아일랜드 쪽으로 끌려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현재 시간이면 딱 기분 좋게 식사하고 있을 타이밍인데, 퍽이나 충분했겠다?”

“수송기는 내가 막아볼게. 멀미난다고 하면 좀 늦게 가지 않겠어?”

“그럼 당신만 빼놓고 가겠지요. 한심한 소리는 하지 마시길.”

“그러니까 너가 그런 실언만 안했어도 이럴리가 없잖아!”

“그으으…”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건, 그저 아무일 없길 기도하거나 어윈이나 하루에게 문자를 보내 현재 상황을 알려주는것, 그 뿐이었다.

머리를 맞대어 생각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릴리씨, 이리스 씨, 에프넬씨, 마침 여기 다 모여계시는 군요. 잠시 저와 같이 동행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왜요, 감옥에라도 집어넣으려고요?”

“아뇨, 그런건 아닙니다만.”

 

마틴이 손짓하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소녀들의 팔을 붙들었다.

 

“이, 이거 놔!”

“무슨 짓이죠?”

“해야할 일이 있거든요. 우선은 저를 따라와 주시죠.”

 

 

 

…….

 

 

 

“정말… 모든게 다 최고였어요…”

“나도 너랑 같이 보낼수 있어서 최고였어. 이제 조금 쉴까?”

“네… 그런데, 왜 어윈씨 방은 이렇게 넓죠? 제 방은 엄청 작던데요.”

“아 그거? 이따 같이 잘거 아냐?”

“무, 무슨 소릴 하시는거에요!?”

“농담~”

 

식사와 이벤트 홀에서 진행하는 공연까지 모두 즐긴 뒤 어윈은 하루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왔다.

호텔에서 준비된 대부분의 이벤트가 종료되고 조명도 대부분 꺼져 있어 처음 보았던 야경과는 달리 많이 적막했다.

 

“와인 한잔 할래?”

“수, 술이요!? 그… 어… 한 번도 안 마셔 봤는데…”

“그럴줄 알고 특별히 달고 안 쓴걸로 챙겨왔어.”

 

어윈은 테이블에 샴페인 잔 두개를 준비했다. 우선은 가볍고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디저트 와인을 집어 들었다.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자, 진하고 달큰한 포도향이 올라왔다.

그는 각각 절반 정도 와인을 따라준 뒤 잔을 들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에요 어윈씨!”

 

서로 눈을 마주보며, 잔을 부딪히자 새빨간 폭죽 한송이가 터지며 창밖을 화사하게 수놓았다.

 

“우와아… 폭죽…!”

“오늘의 하이라이트! 이걸 위해 이렇게 높은 데를 예약했지.”

“너무 오랜만에 봐요…! 예쁘다…”

 

방의 불을 끄고, 손을 꼭 마주 잡은 채로 둘은 각양 각색으로 터지는 불꽃들을 바라보는 두 사람. 

거기에 달짝지끈한 아이스 와인이 입안을 적시자 흡사 아름답게 번쩍이는 폭죽을 직접 맛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한병을 모두 비우게 되자, 그는 아무 병이나 집어 들고 개봉했다.

 

“에헤헤… 마싰어요…”

“네 입에 맞아서 다행이야. 더 따라줄게.”

“어윈씨… 저 정말 행복해요… 이번 연말은 렐름에서 보내게 될 줄 알았는데… 덕분에 이런 곳도 와보고…”

“나도야. 솔직히 굉장히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을 건데, 너도 군말 없이 잘 따라와줘서 고마워.”

“어윈씨는 옛날부터 그랬었자나요? 기억은 안나지만… 15년 전에도 이렇게 절 데리고 나오셨다고하니까… 결과야 어떻든, 전 어윈씨를 계속 믿고 따를 거에요.”

 

술이 오르는지, 혀가 꼬인 상태로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15년 전의 이야기, 당연히 그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더럽혀진 기록으로만 접해본 것이지만,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 라며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긴 그와 달리 하루는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 아까 그 기시감이… 그건가…’

휴게소에서 느꼈던 기시감. 상황도, 시기도 달랐지만 자신은 언제나 같은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그 뿐만 아니라, 하루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상황이었든, 둘의 종착지는 항상 같았다. 

이른바 운명의 상대.

그런걸 의식하자, 어윈은 갑자기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게 느껴졌다.

 

“그…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라고 해야하나…”

“네, 무얼까요?”

“너만 괜찮다면… 이런 여행을 좀 더 가볼까 하는데… 단 둘이서만 말야… 어떻게 생각해?”

 

그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가슴을 쥐고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런 두근거림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15년 전에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후훗… 답은 알고 계시잖아요?”

 

그녀는 대답 대신, 입술을 내밀었다. 서로의 입술을 포개고 끌어안자, 창 밖으로 하트 폭죽이 터지며 두 사람을 축하하듯 그 밝은 빛을 내리쬐었다.

 

 

 

……..

 

 

 

“10분 뒤 도착합니다!”

“결국, 잡으러 가는군요.”

 

눈발을 가르며 별숲리그 공군 헬리콥터들이 헤이븐 아일랜드를 향해 날아갔다. 

가장 선두에 있는 헬리콥터에는 현장 지휘자인 마틴 소령과 마틴이 엄선한 4명의 대원, 그리고 릴리, 이리스, 에프넬이 탑승해 있었다.

 

“왜 우리들까지 가야되는거야? 다른 애들은 다 내버려 두고 왜 하필 우리들만?”

“이제 설명 드릴게요. 이번 일로 로우나 대위님이 상당히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군무이탈죄로 중대 처벌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이를 가시더군요.”

“우리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너무 하는거 아냐?”

“에프넬씨, 말 조심하시죠. 아무리 그들이 약하다곤 해도…”

“자자, 진정들 하시고.”

 

마틴은 릴리와 에프넬의 말을 끊고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일단 주된 처벌 대상은 어윈씨와 하루씨지만, 그 계획에 가담된 여러분들에게도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검토중인 걸 우연히 확인했습니다.”

“하, 진짜 막나가네?”

“그래서 이번 작전에 여러분을 합류시켰습니다. 수색 작전에 기여했다는 걸로해서 경감을 유도하고, 거기에 한가지 더 목적이 있죠.”

 

마틴은 구석에서 고개를 처박고 미동도 안하는 이리스를 흔들어서 깨웠다.

 

“아저씨 왜요... 저 진짜 토할거 같아요…”

“자, 잘들어요. 우린 도착하면 수색작전을 최대한으로 지연시킬겁니다. 투숙객 명단은 제가 확보할 것이고, 잘못된 정보를 계속해서 흘려서 시간을 허비하겠습니다.”

“에…?”

“그 사이, 여러분은 어떻게든 어윈씨와 연락해서 투항을 권고하거나, 얼른 도주할수 있도록 해주세요.”

 

멀미에 사경을 헤매던 이리스도, 그의 폭탄 선언에 눈을 번쩍 떴다.

 

“아, 아저씨…? 가, 갑자기 왜…”

“잘 알아두세요. 전 언제나 여러분들의 편입니다. 앞서 해온 행동은 군인으로써 명령 수행을 위해 어쩔수 없이 한겁니다. 지금부터는 소울워커들의 인솔자이자 인간인 마틴으로써 여러분을 대하는겁니다.”

“…….”

“어떤식으로 해도 두 사람의 처벌을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저는 최소한 할수 있는건 다 하고 갈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셋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착륙하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자유롭게 행동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어느정도 감시가 붙긴 할 테니 바로 어윈씨가 머무르는 방으로 가거나 하진 말아주세요.”

“…… 언제나 한심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오늘만큼은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죠.”

“평소에도 이러면 안 돼?”

“하하, 이 말 한마디 해보려고 작전 지휘권을 따왔죠. 그럼,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마틴은 멋쩍게 웃은 뒤 시선을 다시 전방으로 돌렸다. 저멀리 관측창으로, 우뚝 솟은 건물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

 

 

 

한창의 입맞춤이 끝나고, 호흡을 고르던 어윈은 목이 타는듯한 갈증을 느꼈다.

마치 퍽퍽한 닭가슴살을 한입 가득 먹은것 처럼, 목이 막혀왔다.

술이든 물이든 무언가 목을 넘길게 필요했다.


그는 창가에 있는 또 다른 와인병에 손을 뻗었다. 

마침 그 와인병의 위치를 알려주려는 것처럼 폭죽이 폭발하여 방 안을 밝혀주었다.

병을 잡고 시선을 돌리자. 불꽃의 옆으로, 나선형의 검은색 고철 덩어리가 공중에 떠 있는 걸 우연히 발견하였다. 

 

“엇…”

 

순간, 그는 병을 놓쳐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윈씨? 괜찮으세요…?”

“아아, 괜찮아… 조금 술기운이 올라와서 그런거 같아…”

“저희 조금 쉴까요…? 사실 저도 머리가…”

 

술병을 집어 테이블 위로 올리자, 또 다른 폭죽이 터지며 밖을 밝혔다. 

아까 보았던 나선형 물체가 좀더 선명하게 비춰졌다. 마치 생선처럼 생긴 물체가 바닥을 비추면서 천천히 하강하고 있었다.

 

“어, 어… 그러자… 일단 방부터 조금 치울까?”

 

갑자기 술이 확 깨는게 느껴진 어윈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부터 쳤다. 

그리고 하루를 부축하여 그녀의 방으로 옮겨준 뒤, 대충 자리를 치우고는 다시 커튼을 살짝 들쳐서 밖을 내다보았다.

나선형 물체는 헬리콥터였다. 어느새 착륙한 헬리콥터에서는 무장을 한 병사들이 내리고 있었다.

 

“서, 설마… 들킨건가…!”

 

그제서야 휴대폰을 켜서 알림을 확인하는 어윈. 휴대폰에는 120통의 부재중 전화와 최소 300 통 이상의 문자가 와 있었다.

 

“서, 설마… 아냐… 그럴리가…”

 

문자를 확인하는 어윈. 그의 동료부터 상관까지 모두 연락이 와 있었고, 대부분은 그의 안부와 부재 사유를 묻는게 대부분이었다.

 

‘어윈씨, 어디 있는지 다 압니다. 하이츠 대령님이 화 내시기 전에 신속히 연락 주세요.’

‘어윈씨, 지금 어윈씨가 머무르는 호텔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자수하시면…’

 

마틴 소령의 투항권고 문자 라던가.

 

‘어윈씨, 저의 멍청함으로 그만 위치가 밝혀지고 말았답니다. 이 문자를 보는 즉시 도망가세요.’

 

릴리의 실수로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었다는 걸 알게되자, 그는 문자가 도착한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7시. 하루와 한참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그의 기억에, 잔고가 얼마인지 확인하려고 폰을 꺼낼뻔 했던 그 시간과 일치했다.

 

“그때라도 열어 봤어야 했나…”

 

‘야. 나랑 이리스, 릴리랑 해서 너 있는 호텔로 가고 있어. 우리가 최대한 시간 끌어봐줄 테니 대충 정리되었으면 튀어. 차는 버리고 가.’

 

에프넬도 10분 전에 문자를 보낸 걸로 확인되었다. 헬리콥터가 아마 착륙했으니 상공에 있을 때 연락한 것 같다.

이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 지금이라도…”

 

그는 얼른 짐을 싸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겉옷을 벗었다. 그때였다.

‘똑똑똑’

순간, 어윈은 등골이 얼어붙는 걸 느꼈다. 벌써 별숲리그 군인들이 도착해버린 걸까?


여기서 끝을 볼 순 없었다. 그는 소울웨폰까지 꺼내 겨누고,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천천히 문을 향해 걸어갔다.

‘똑똑똑’

다시 한번 노크가 가해지자, 그는 숨을 죽이고 문에 달린 렌즈를 통해 누가 문 앞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건 다름아닌…

 

“하루…?”

 

그는 급히 무기를 집어넣고 문을 열었다. 하루는 잠옷을 입은 채로, 배게를 들고 있었다.

 

“어윈씨… 미안해요…”

“어…? 왜??”

“제 방은 추워서 잠이 안와요… 어윈씨의 방에선 잠이 잘올 거 같아요.”

“그, 하루… 그게 말야… 지금 잠을 잘…”

“…… 안될까요?”

 

그녀의 간절한 표정을 보자, 어윈은 그녀를 방 안으로 들이고 말았다. 

머리속에선 정신 차리고 얼른 밖으로 나가라고 외쳐도 이미 몸은 그녀를 침대 가까이 들이고 있었다.

 

“가, 가야돼 우리…”

“맞아요. 꿈의 나라로, 갈 시간이죠…”

 

점점 다가오는 하루와 뒷걸음치던 어윈은, 마침내 침대에 이르러 그대로 넘어졌다.

 

“라스트 댄스, 같이 추지 않겠어요?”

 

어윈은 자신의 위로 올라탄 하루의 속삭임에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아직도 탁자위에 올려져 있던 휴대폰은 메아리 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들어주지 못했다.

 

‘신이시여… 어디에라도 있으면 잠시 시간을 내줘…’

마지막으로, 어윈은 스스로에게 외쳤다. 



 



“……. 읏…”

 

문득 정신이 든 어윈은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는 들렸지만, 머리 위에 걸려있는 시계라 볼 수가 없었다.


하루를 끌어안고 나서 부턴, 시간이 멈췄다고 생각했었다.

마지막으로 외쳤던 말 처럼, 그대로 둘 만의 영원한 시간이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과연 자신의 기도는 닿았을까?

 

“……. 일어나셨네요…”

 

몸을 잠깐 움직이면, 옆에서 팔을 끌어안고 있던 하루가 반응했다.

 

“……. 응. 일어났어.”

 

어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오늘 즐거웠어?”

“네… 너무나도 좋았어요…”

 

그녀는 어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는 꼭 끌어안았다.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의 기도가 먹혔을지도 모른다고.

자신들이 묵는 방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방 밖에 걸어놓은 방해 금지 푯말이 효과를 본 것일지도 모른다고.

자신의 가명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러나 밖에서 들리는, 귓가에 스치는 군화 소리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제 남은 시간이 다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루도 이를 알고 있을까? 최소한 그녀에게만큼은… 실패를 알리고 싶지 않은 어윈이었다.

 

“하루, 우리 다음 여행지 말인데…”

“…… 네.”

“이번엔 남부로 가볼까 해. 거기로 가면 좀더 편하게 놀 수 있지 않을까…”

“…… 좋네요…”

“그러니, 그때까지 우리…”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하루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엔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어윈씨… 애써 사과하지 않으셔도 되요…”

“하루…”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걸요… 실패할거를…”

“…….”

 

하루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저도 처음엔 기적을 믿었어요… 분명, 우린 노력하니까 하늘도 들어줄 거라고…”

“…… 윽…”

“하지만, 기적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우린 정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거야…? 불공평하잖아 세상이… 그 빌어먹을 성탄의 기적도, 선물도 우리에겐 없는거냐고...”

 

그도 참아온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사실 처음부터 결말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착각했을뿐.

이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그럴수 없는 굴레라는게 있는 법이다.

 

“어윈씨…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준다고 했었죠…”

“어… 그렇지…”

“우린, 이미 울고 있잖아요…”

 

말을 끝맺기도 전에, 둘은 오열하고 말았다. 방 밖에선 위치를 확인했는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우리... 꿈에서 깨어나요…”

 

마지막으로 그녀가 미소를 짓자, 객실 문이 열어 젖혀지면서, 별숲리그 사병들이 들이 닥쳤다.

 

 

 

…….

 

 

 

현장에서 체포된 이후, 둘은 군사 재판에 회부되었다.

미성년자의 음주, 신분 위조, 군무 이탈 등 수많은 죄명이 언급되었지만, 다행이도 마틴의 노력과 하이츠의 선처, 다른 소울워커들의 탄원으로 참작되어 사회봉사 형으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


그 날 이후, 둘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좋은 친구이자 동료로서 지냈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울워커들의 불만이 접수되어, 안전한 장소에 한해서는 영외 외출/외박이 허가되었다.

이렇게 짧지만 낭만 넘치던 그들의 도피행은 마무리되었다.

 



“오늘은 어디로 가실건가요?”

“일출 보러 가지 않을래?”

“좋아요!”

 

아니, 어쩌면 다시 시작한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