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소울워커 팬픽 써본거 올려봄. 지금 생각해보면 테네 일찍 퇴장한 게 좀 아쉬워서 적어본듯


발퀄이지만 모쪼록 즐감




아직 시야가 흐릿하다.

터벅거리는 자신의 발걸음과, 새로운 삶을 얻은 듯이 요동치는 심장 소리만이 자신의 머리에 조용히 울려퍼질 뿐이였다. 


힘 없는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본다.


한 때, [정의의 소울워커]라고 불렸던 자신.


시선을 아래로 내려본다.

우선, 하얀 붕대에 꽉 묶여진 자신의 손이 시야에 보였다. 후드가 있는 하얀 코트가 도시에서 불어오는 작은 바람에 휘날렸다. 코트 안에는 알맞게 채워진 상의와, 매여진 허리띠, 그리고 검은색 하의가 자신이 입고 있는 하얀 코트의 상반대의 색을 띄고 있어 더욱 돋보였다.


이어서, 얼굴에 감겨있는 붕대 사이로 옅은 금색의 눈동자가 허리춤에 시선을 돌렸다.


'타락한 신'의 힘을 받아 모습이 변형된 자신의 검.

한 때, 정의의 소울워커로써 활동하던 온전한 시절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검의 도신이 붉은 색을 조금씩 띄고 있었다. 여전히 탐탁치 않은 에너지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전처럼 신의 힘을 방출하는 기능은 깔끔하게 소멸했다. 


자신을 점검하는 동안, 안개처럼 뿌옇던 시야가 마침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순간, 옅은 금색의 두 눈이 크게 띄여졌다.


그는 푸른 하늘의 밑에서 평화로운 도시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클라우드림 서부의 최대 도시이자 마지막 방어선인, 그레이스 시티(Grace City)였다.


은총의 도시.


그는 다시 한번 발을 들인 것이다.


'어째서...'


아직 멀쩡하지 않은 머리를 거칠게 붙잡자, 정지된 사고 회로가 뚝 끊겨졌다. 어떻게든 생각을 이어 나가려고 했으나, 누군가의 말이 자신의 생각을 이어주듯이 귓가에 들렸다.


"어째서 테네브리스가 여기에...?"


시민으로 보이는 한 남자의 선명한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았다. 건강한 성인의 체격을 갖춘 남자였지만, 나의 눈초리로 인해 움직임이 멈췄다.


남자의 목소리는 걸어다니는 괴물을 눈 앞에 두고 보는 듯이 공포에 질린 음색이였고, 그의 이름을 듣고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겁에 질린듯이 급히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흐릿하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우스웠다.


누구나 믿고 따르던 '전설의 소울워커'의 이명을 가졌던 남자.

자신의 올곧은 강인함과 정의를 실현했던 소울워커 테네브리스, 그가 인류 최대의 적이 되버렸다.


결과적으로 이 세계의 희망이라고 불린,

[9인의 소울워커]. 

그들과의 거대한 싸움으로 인해 운명이 사라진 그였다. 


그런데 지금, 무슨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가?


인류 최후의 적으로 토벌당했던 그가, 멀쩡히 살아서 돌아왔다.


"테네브리스!"


그런 자신의 모든 것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목소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바람에 나부끼는 금발, 서글한 푸른 눈동자, 그녀와 알맞은 별숲리그 의무부대 포츈 소속의 복장.


그 모습을 보자 멈춰있던 심장이 다시 크게 울리고, 생기가 없던 눈동자에 활력이 돌아왔다.


"미리엄..."


자신의 연인이였던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미리엄은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을 지으며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내게로 달려왔다.


"보고 싶었..."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말게. 미리엄 대위."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장난스러운 목소리.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색은 하나도 없었고, 긴장이 역력한 말투로 미리엄을 막아서며 주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내가 아직도 인류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주위의 시선, 방어선을 구축한 전투부대. 그 중에는 반가운 얼굴도 여럿 있었지만, 거리를 두고 눈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그의 굳어버린 표정을 보아하니 서로 한가롭게 인사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당신은 또 방해하는 겁니까?"


중장비 운용부대 헤비 기어즈 소속, 서부부대 임시 대대장.


"토오루...소령님."


그리운, 상관의 이름이였다.


그러나 토오루 소령은 여운에 잠긴 테네브리스와는 다르게 굳은 의지를 담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원, 전투 준비!"


파바밧!


도시 곳곳에서 총기들이 차례대로 테네브리스를 향해 겨냥했다. 살아서 돌아온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은 듯이 말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시선을 한번 주고 솔직한 감상을 들려주었다.


"꽤 놀랍군요."

"자네가 생각했던 세상보다는 좋아졌다고 말해두고 싶군."


보통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사람은 당황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때가 많다.

그것도 인류의 적이였던 사내가 평화로운 도시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한다면, 확실히 이전보다 경계 보안쪽이 남다르게 좋아졌다. 타락한 신, [켄트]가 물러간 이후, 서부 클라우드림의 주위가 상당히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전보다 원활한 식량 보급은 물론이며, 도시들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슥.


나는 허리춤에 매여진 검자루에 손을 옮겼다. 그러자, 철컥 하는 소리가 다발적으로 들리면서 쏘아진 탄환 몇 발이 자신의 발 밑으로 스쳐 지나갔다.


'더 움직이면 아주 벌집으로 만들 기세군.'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이 토오루 소령은 손을 올렸다. 그만하라는 신호였는지, 대기 상태로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테네브리스. 곧 이쪽으로 두 명의 소울워커가 올 것이다. 지금의 소울워커들은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해졌으니, 이 정도로도 자네의 발을 묶는데는 충분하고도 남겠지."


소울워커.


모든 시작의 출발점. 의미가 깊은, 그리운 단어였다. 그걸 곱씹듯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다시 한번 그들을 볼 수 있는 건가.


나는 하염없이 한 손을 천천히 허공으로 뻗었다. 손을 뻗은 쪽에는 미리엄이 그리운 얼굴을 하고 서 있었고, 표춘 의무부대와 포스 스트라이크의 모두들이 조마조마한 눈길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정의의 소울워커로 활동했을 때, 도움을 주었던 소중한 사람들.


"좋습니다."


손을 내린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주변을 억누르는 듯한 위압감이 서렸다.


"테네브리스...!"


그의 위압감을 버티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 둘 차례대로 신음을 흘렸다. 그건 미리엄도 마찬가지였다.


일종의 경고였다.


한 때, 적이였던 자신을 그렇게 쉽게 믿지 말라고.


스릉.


나는 허리춤에 매여진 검을 뽑아들었다.

은은한 검신에서 자신의 모습이 비춰졌다. 정의의 소울워커로 활동하던 '테네브리스', 그리고 오직 힘만을 갈망했던 '네브'가.


순수한 정의를 추구하는 소울워커의 시절로 돌아가느냐, 인류의 적으로 돌아가느냐.


지금 나에겐 두 개의 갈림길이 있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기회였다.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단 하나의 기회.


어느 갈림길이 되었던,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방황하던 나를 구해준, 소중한 사람을 만났던 그 순간.


나는 미리엄을 향해 살며시 웃어보았다. 지금 미리엄의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예전부터 그녀는 내 생각을 잘 읽었으니까.


"항복."


댕그르르.


그가 내던진 소울 웨폰은 주인을 잃고 바닥에 떨궈졌고, 동시에 고요한 정적만이 도시 한복판을 감쌌다.


"......"

"......"


얼빠진 표정들이 아주 가관이였다. 자신들도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몰라서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고, 결국 시선은 전부 예외없이 나에게로 쏠렸다.


다시 한번 말해달라는 눈길.

심지어 토오루 소령님 조차 눈을 반짝였다. 


'이미 눈치 채셨군.'


나는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크게 내쉬며 두 손을 올리고 항복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항복, 입니다."


그러자 말 끝나기 무섭게 도시 전체가 소란에 휩싸였다.


표면 상으로 항복이지만 그의 숨은 뜻은, 인류를 적으로 돌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눈치 빠른 상관님들은 기쁜 표정을 하고 계셨다. 한마디로...


"테네브리스!"


가녀린 체구가 나에게 안겼다. 그녀에게서 좋은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내 품 안에서 고개를 들어 활짝 미소 짓는 소중한 사람.


정말로 그리웠다. 그녀를 안는 것만으로 이때까지 해왔던 모든 짐들을 내려놓은, 보상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마지막까지, 나는.


구원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