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어느 12월의 마지막 날 밤. 찬바람이 몰아치는 강남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퍼블리셔들에게 소워를 팔던 누더기 차림의 한 PD 소녀는 아무도 소워를 사 주지 않아 돈을 벌지 못했고, 그 상태로 귀가했다간 수전노 회사 대표에게 맞을까봐 회사에 돌아가지도 못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원래 일을 해줬어야 하는 PD까지 물총을 너무 많이 맞은 나머지 건강이 악화되어 한 사람의 환자로  돌아가 버렸고, 잇다른 실수로 인해 얼마 남아있지않은 석상들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상심한 채로 인적 드문 골목길에 앉은 소녀는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위해 담배를 피우려고 라이터를 켰다. 그런데 담배를 하나씩 태울 때마다 신기하게도 소녀가 마음 속으로 늘 바라고 있던 화려하고 웅장한 레이드, 개연성 있는 스토리, 모든 유저를 만족시키는 황금 밸런스 등의 환영이 차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녀는 그것들을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도중에 담배가 다 타버리자 그 풍경도 곧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하늘에서 별똥별이 하나 떨어졌는데, 소녀는 그 별을 보고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강남 판교에서 유성이 떨어지는 건 게임이 섭종을 했다는 뜻이라던데... 어떤 게임이 접혀버리고만걸까?"


그리고 소녀가 네 번째 성냥을 켜자 생전에 소녀의 주캐이자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던 릴리가 나타났다. 소녀는 행여나 릴리마저 사라져 버릴까봐 필사적으로 남아있는 모든 담배를 다 꺼내서 코와 입에 쑤셔넣고 불을 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마저도 불이 꺼지자 소녀는 점점 흐려지는 릴리의 환영을 붙들려 애쓰며 울부짖었다.

"릴리야! 내가 잘못했어! 근데 밸런스는 어떻게 잡아야할지 아직도 감이 안온단다!"


그러자 릴리의 환영이 따뜻하게 웃으며 소녀를 자신의 품으로 이끌었고, 소녀는 릴리의 품에 안겨 천국으로 가서 돌아가신 테네브리스와도 재회를 했다. 이제 소녀는 더 이상 춥지도, 배고프지도 않았다.


다음 날 강남의 출근길, 사람들은 온몸에 눈이 쌓인 채 쓰러져 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주변에는 소녀가 몸을 녹이려고 켰던 담배가 다 탄 채로 흩어져 있어 모두들 안타까워했고, 어제 저녁 소워를 사지 않고 소녀를 무시한 자신들의 과거를 딱히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었으며, 그러면서도 그녀가 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