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편 써올립니다.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연말 감성을 가지고 한편 보면 좋겠다! 하는 느낌으로 썼습니다.

진, 이리스가 우울/행복하게 시간을 보내는 내용이에요.





그나저나 우리 소워 분위기는 우울하네요.

소설처럼 행복하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 겠... 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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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흩날리는 밤이다.

해가 저물고, 달빛이 머물 틈새 하나 없이 먹먹한 하늘은 이미 쌓여있는 눈에 반사되는 가로등에 의해 밝게 비추고 있었다.

하늘하늘거리는 굵은 눈송이는 휴일의 전야를 즐기는 연인들과 친구들의 행복한 마음에 어울리듯 사람들의 사이로 천천히 떨어진다.

그렇게 눈송이가 이미 하얗게 물들인 보도 블럭의 일부가 되려는 그 순간, 쏜살같이 지나쳐가는 재킷 위로 안착한다.

 

단결을 상징하는 노란색 방패 마크가 선명히 각인되어 있는 남색 재킷의 소년은 펑펑 내리는 눈발과 다정한 연인들 사이로 바쁘게 지나쳐간다.

어딘지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그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며칠 전의 이야기다.

소년의 휴대폰에 진동과 함께 화면이 켜진다.

 

‘이리스♥: 머해 진진?’

 

소년은 자신의 손목에 차고있는 – 별숲리그에서 제공한 - 스마트 워치를 통해 메시지가 왔다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그는 머지 않아 찾아올 성탄절을 대비하여 어린 아이들을 위한 선물 하나, 둘, 셋… 적어도 스무개가 넘는 선물 꾸러미들을 포장하고 있었다.

 

“진씨, 5개만 빠르게 준비해줘요! 관리구역 C로 가는 차량이 곧 출발한다고 합니다!”

 

시시콜콜한 메세지에 답장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무시하고 포장에 열중한다.

 

‘일해?’

‘왜 톡을 안 봐?’

‘바빠?’

 

선물 포장을 완료할 때마다 늘어가는 미확인 메시지.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 – 이리스 유마 – 는 여가 시간에 아무것도 안하는, 소위 말하는 백수였다.

자원봉사나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대민지원도 같이 겸하고 있는 그 와는 달리, 오로지 자기 자신의 재미 만을 위해 움직이는 니트족.

지금 이 시간에 바쁘게 일하고 있을 연인인 그에게 안부를 굳이 묻는 건,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게 아닐 것이다.

 

연인 관계라면 당연히 이해하고 답했을 터이지만… 안타깝게도 소년은 이해하지 못했다.

포장을 완료하고 운송 차량을 보내고 나자, 두 번째 운송 차량이 도착한다.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다시 선물 포장에 열중한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휴식 시간이 오자, 폰을 꺼내 든다.

 

‘씹냐?’

 

화면을 키자 마자 보이는 부정적인 단어에, 그는 즉시 답장을 보낸다.

 

‘일하는데요’

‘일하면서 인사나 답장 정도는 보낼 수 있잖아’

'바빠요'

‘나보다 그렇게 일이 좋냐?’

‘백수인 이리스씨는 모르겠죠’

 

순간 욱해서 보낸 답장, 그는 아차 싶어 메시지를 삭제한다.

숫자 1은 이미 지워져 있었다.

미친 듯이 울리는 휴대폰. 화면엔 자신이 저장한 그녀의 아리따운 얼굴과 같이 표시되는 이리스♥ 라는 이름이 표시되었다.

 

“야! 너 이 !@#!@# 말 다했냐!”

“저 오늘 자원봉사 한다고 몇 번이고 말씀 드렸을건데요.”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이 !#@!#!...”

“바쁘니까 나중에 연락 주세요.”

 

전화를 끊는 그의 표정엔 분노가 가득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빈둥대면서 일이나 방해하는 그녀가 야속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휴대폰에 관심을 끈 채, 그날의 업무를 완수했다.

 

 

 

 

 

“아이고… 이거 진 아닌가? 여긴 어쩐일인고?”

“사장님… 하아… 하아…. 혹시 장사… 끝났을까요?”

“에고, 숨 좀 돌리려무나. 막 마무리하려는 참이긴 했는데, 필요한 게 있니?”

 

소년이 도착한 곳은 꽃집이었다. 영업이 종료되었는지 간판의 불은 꺼져 있었지만, 그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꽃집 사장은 과거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던 소년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꽃… 사러 왔습니다…”

“무슨 꽃?”

“어… 그게…”

 

소년은 머뭇거렸다. 무슨 꽃을 사야할지, 얼마나 사야할지,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무슨 목적으로 사는것이니? 고백?”

“어…”

 

그는 얼굴을 붉히다가 조용히 ‘화해’ 라고 일러주었다.

 

“화해라… 아무래도 애인이랑 싸운 모양이구나. 이렇게 기쁜 날에 앙금이 있다면 좀 곤란하긴 하지…”

 

꽃집 사장은 온실을 둘러보다가, 꽃 몇 송이를 집어 들었다.

 

“히아신스에는 미안하다는 꽃말이 있단다. 봄에만 피는 꽃이지만, 온실에 키워놓은게 몇 송이 남은게 있고... 이거랑 장미 15 송이. 이렇게 해서 꽃다발을 하나 만들어 주마.”

“그, 그렇게 나 많이요? 도,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

“마음으로만 받겠네. 자네한테 내가 얼마나 빚을 많이 졌는데 말야. 애인과 화해 잘 하려무나.”

 

 

 

 

 

“아예 안받네…”

 

전화를 끊었던 그날 저녁. 소년은 연결되지 않는 전화를 붙잡고 주저 앉은 채로 고개를 떨구었다.

메신저엔 그가 보낸 여러 메시지와 짧은 사과문이 읽히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를 무시하고 만만하게 보는 건 참을 수 없어.”

 

그는 항상 끌고 다니며 곤란하게 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저런 이유로 머뭇거리는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일단 뛰어들고 보던 연상의 누나.

곤란한 일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었다.

아무리 좋은 추억이 있어도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나쁜 일이 먼저 떠오르는 법.

아직은 그녀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뭐, 이 참에 일에 집중하자. 나중에 화 풀리면 보겠지… 늘 그랬듯.”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이번 성탄절 전에는 자기 혼자 풀려서 사과하고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굳게 믿었다.

 



“진! 조심해!”

“으앗!? 죄, 죄송합니다 치이씨!”

“…. 요즘 이상해. 대체 무슨 생각하고 있어?”

“요, 요새 아르바이트를 자주해서 그런가 봅니다…! 좀 더 집중해서 싸우겠습니다!”

 

지속되는 연락 두절은 집중력의 급격한 저하를 불러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르바이트고 뭐고,  어떠한 일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지경이 되어갔다.

 

“……. 너. 끝나고 잠깐 나 좀 보자.”

“에프넬씨…?”

“나도 갈래!”

“고양이는 빠져. 야 스텔라, 얘 좀 데려가.”

 

그런 과정을 보다 못해 도움의 손길을 건낸 건, 의외의 사람이었다.

 

“솔직히 말해. 뭐 땜에 이러는 거냐?”

“……. 그건 말씀드리기가…”

“대충은 눈치 까고 있으니까 짜증내기 전에 제대로 말해. 너 이리스랑 싸웠냐?”

“엇… 그, 그걸 어떻게…”

“그럼 그렇지… 걔도 너랑 똑 같은 표정 지으면서 헛짓거리 하는데 당연한 거 아냐? 뭔 일 있었는지 솔직하게 털어놔.”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다 침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그걸 듣던 에프넬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가서 화해해.”

“연락을… 받질 않습니다…”

“그럼 집에 쳐들어 가서 머리부터 박아!”

“그, 그건 엄청난 결례입니다…!”

“지금 그딴 걸 따질 때냐고!”

“그, 그래도 이리스씨가 무단침입이라고 신고라도 하면…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요…”

“이런 뭐 병신같…”

 

욕을 퍼부으려던 에프넬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입을 닫았다.

그리고…

 

“너, 이것만 물어보자. 얘랑 화해하고 싶어?”

“화해요? 무, 물론이죠…”

“그치?”

 

능글능글한 웃음을 띄우는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돈.”

“예?”

“돈 내놔. 그러면 방법을 알려줄게.”

 

기분 나쁜 웃음 가득한 표정을 보며 불안함을 느끼던 그는, 고민하다 마침내 지갑을 꺼내 들었다.

 

 

 

 

 

하늘을 뒤덮던 새하얀 눈발은 더욱 거세어졌다.

어쩌면, 사람이 줄어들어서 그렇게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광장에 걸려있는 거대한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산한 만남의 광장을, 소년은 또다시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전까지 눈발을 맞아가며 나부끼던 자켓은 더욱 차가워지는 공기에 얼어 딱딱 해지고, 머리카락에 맺힌 땀방울도 얼어 고드름처럼 매달렸다.

이런 강추위에도 불타오르는 것은 그의 마음, 그리고 품에 품은 꽃다발뿐이었다.

 

‘너. 이리스를 떠올리면 무슨 생각이 먼저 드냐?’

‘망치요.’

‘그딴 거 말고, 장난해? 니 애인이잖아. 뭐 생각나는거 없어?’

‘이리스씨가... 평소에 뭐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래. 그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그럼 걔가 그날 왜 너한테 그렇게 물었겠어?’

‘그래도 제가 뭐 하는지 뻔히 알면서…’

‘진짜 몰라서 물었겠냐? 넌 그렇게 애가 멍청할거라 생각해?’

‘…. 아… 그, 그런건가… 이제…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알겠어?’

 

건널목을 지나칠 때마다, 머리 속에선 에프넬이 알려주었던 이야기가 맴돌았다.

그리고 지난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과 대비되듯 자신이 사소한 불화에 화를 내던 모습이 떠올랐다.

 

‘꽃을 싫어하는 여자는 거의 없어.’

‘너도 고백할 때 꽃 줬을 거 아냐.’

‘다시 고백한다는 심정으로, 이미 너한테 지쳐버렸을 걔한테 깜짝 선물을 주는 건 어때?’

 

그렇게 그는 오늘 꽃을 준비했다. 이번 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과오를 해결하겠다고.

그동안 그녀의 이해를 받아왔던 것을 인정하고, 그녀를 더 이상 지치지 않게 하겠다고.

그런 다짐은 혼자 소심하게 삐져있던 그를 움직이게 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이 말 혹시 누구한테 들었어요?’

‘어윈이 말해주던데? 난 그걸 정리해서 너한테 알려줄 뿐이고! 돈은 돈대로 받아먹고~’

‘사기이지 않습니까 이건!’

‘뭐, 어윈은 남정네한테 직접 말하기는 싫다 했으니 내가 대신 전달해줬다 왜! 꼽냐?’

 

여전히, 어딘가 기분은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버스입니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린 티켓을 바라보는 소녀. 그녀는 위에서 쏟아지는 눈송이와 이를 비추는 침울한 가로등 빛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역시… 쑥맥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걸까…”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도 속으론 찔리는 부분이 있었다.

직접 대면해서 그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매번 무심한 채 어리숙한 걸 당연하게 여기는 당당한 그의 태도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크게 다를게 없었다는 점은 자괴감을 일으켰다.

그 끝없이 반복된 고뇌의 결과는,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멀리 도망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정 마저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고 원수처럼 지내던 에프넬에게만 넌지시 이야기한 것도, 그녀는 스스로를 용서하기가 어려웠다.

 

“미안하지만… 나를 완전히 잊은 이후엔… 너를 다시 볼 수 있겠지…”

“티켓 보여주세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소녀는 손에 들린 티켓을 천천히 건넨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들린 티켓에 검표원의 손가락이 닿아간다.

 

“잠깐만요!!!”

 

그 순간, 우렁찬 목소리에 기다리던 모두가 돌아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얼어붙은 남색 자켓의 소년이 고개를 숙인채 소녀의 근처에 서 있었다.

 

“지, 진…!?

“이, 이리스씨!”

 

그는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품에 넣어두었던 꽃다발을 꺼내 건냈다.

 

“사과, 하고 싶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파르르 떨리던 소녀의 눈이 빨간색과 보라색 꽃송이에 맞춰지는 그 순간, 시간은 멈추었다.

 

“그 동안 전혀 신경쓰지 못해서 죄송했습니다! 이리스씨의 마음도 모르고 계속 혼자 멋대로 행동했습니다! 애인이라면서 철없는 애처럼 행동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소년의 턱을 타고 물방울이 흐른다. 영하를 넘는, 어떤 물이라도 순식간에 얼어버릴 만큼 추운 날씨였지만 그 물방울은 온천수처럼 얼지 않고 흘러내렸다.

 

“이 바보야… 왜 이제야 온 거야…”

 

소녀에게서 흘러내리는 물방울과 소년의 물방울이 서로 맞닿자, 멈춰 있던 시간은 비로소 흘러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을 버스 정류장에 남아 있는 건 나란히 찍혀 있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었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포근하게 내리는 함박눈이 서서히 덮어갔다.

 

 

 

 

 

“메리 크리스마스다… 이 멍청이들아.”

 

멀어져 가는 한 커플의 형체를 보며, 에프넬은 기둥에 기대 따끈한 코코아 한잔을 기울였다.

 

“고마워. 덕분에 두 사람을 살렸네.”

“저 멍청이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상관없는데, 네가 돈 준다니까…”

“그런거 치고는 너도 꽤나 애썼잖아. 여기까지 따라오기도 하고 말야?”

 

그녀의 옆에는 어윈이 나란히 커피잔을 들고 서 있었다.

 

“끝을 봐야 풀리는 성질이라서 그런 건데. 착각하지 마시지?”

“그래 그래. 그나저나… 이제 우리도 돌아갈 차편이 없는데 말야.”

 

그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저 옆의 건물로 눈을 흘겼다.

그 시선의 끝엔 ‘그레이스 모텔’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 있어?”

“뭐,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거 아냐?”

“풋.”

 

그 말에 씨익 웃던 두 사람은 팔짱을 끼면서 모텔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