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과 낙하

 하루 에스티아 | 에프넬 | 진 세이파츠 | 스텔라 유니벨


“평생 먹고살 만한 돈을 주지.”


 웨이언스 기장은 이 굉장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두고 일생일대의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돈이다. 그가 경비행기를 몰고 관광업을 시작한 지 어언 삼십 년, 오십 대가 된 지금까지 하늘을 누비며 돈을 모아왔지만 아직도 통장 잔고는 늘 바닥이다.


 물론, 그의 사치스러운 생활 탓도 있었다. 웨이언스 기장은 술, 그것도 고가의 위스키에 미친 사람이었다. 새파란 하늘과 맑은 바다를 내려다보며 위스키를 병째로 들이켜면 그만큼 짜릿한 순간이 없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두어 번 정도 면허를 정지당하기도 했지만, 안 들키면 장땡인 것 아니겠는가. 석 달 정도 면허가 정지된다고 해서 이 고난의 시기 동안 비싼 돈 내고 하늘 구경을 하고자 하는 갑부의 수가 적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평화로운 것은 맞지만 도시는 어수선했고, 동부에서 누굴 잡아가려 사람을 보낸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물론 웨이언스 기장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정말로 동부에서 수송기 한 대가 호위기 네 대를 끼고 날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잡혀가는 사람은 캔더스와 디플루스에서의 일로 호평과 혹평이 오가는 인물, 아론 중령이었다.


 웨이언스 기장은 속으로 꼴좋다고 생각했다. 섬으로 도망쳐 항전하다 사망한 사람 중에 그의 아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정말로 동부에서 굉장히 살벌한 기세로 비행기와 병사들을 보내 그를 압송해가자 관광업이 망해버리는 것은 당연한 순리였다. 그레이스 시티는 비록 평화로웠지만, 그건 소울정크의 침공이나 베시들의 침략이 없단 소리였다.


 단순히 위협이 없다고 해서 사람들의 지갑이 열리지는 않는다. 험악한 표정의 병사들이 실탄이 가득 장전된 총을 들고 돌아다니는데, 그곳으로 놀러 오고 싶은 사람은 없다.


 “적나? 그렇다면 그 두 배를 주겠어. 이 정도면 수지타산이 맞고도 남을 텐데?”


 그렇기에 웨이언스 기장은 눈앞의 꼬맹이가 내미는 제안을 진지하게,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다.


 “…나는 말이다, 꼬마야. 새 비행기를 살 만한 돈을 원해.”


아내도, 아들도 잃어 이제는 아무도 곁에 남아있지 않은 사람. 더 이상 인생의 의미가 사라졌을 사내가 새 비행기를 들먹인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에프넬은 그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금전적 신뢰관계만 구축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은 오지랖에 불과하니까.


 “그 정도는 충분할걸. 소울워커 이름값으로도 못 믿겠냐?”

 “쉽게 믿을 만한 액수는 아니지 않나.”


 에프넬은 한 쪽 입술을 삐딱하게 올려 웃더니, 온갖 보석이 가득한 주머니를 품에서 꺼내 탁자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의 아들이 입대하기 전에 놓아준 탁자였다. 물론 하도 거칠게 술병을 내려놓다 보니 애저녁부터 삐걱거리고 있었다.



“살살 놓게. 아들의 유품이네.”


 아무리 앞뒤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의 에프넬이라도 이걸 무시할 수는 없었다.


 “…거 참, 그걸 내가 알고 그랬나.”


 웨이언스 기장은 잠시 눈을 감고 고민했다. 술과 슬픔에 빠져 살던 세월 때문인지, 그의 찌푸린 미간에는 오십 대답지 않게 유난히도 주름살이 깊었다.


 “선불인가?”

 “당연히. 나도 이번 일이 그쪽의 인생을 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 잘못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경비행기를 몰아서 바다를 건너 동부로 간다라. 엔진 두 개 달린 그의 비행기로 아슬아슬하게 가능한 거리였다.


 “지금 동부로 가는 비행 노선은 모두 취소되었으니…지금 내가 비행기를 띄운다면 불법이겠지.”

 “그래. 심하면 몇 년간 갇혀서 썩어야 할 거야.”


에프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알고 돈을 받으라는 의미였다.


 제대로 된 각오도 없이 돈만 받아먹고 중간에 꽁지 빠지게 조종간을 돌릴 놈은 사양이다. 보석을 한 주먹이나 챙겼으면 인생을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좋다.”

 “무르기 없기다.”


 에프넬은 내려놓은 주머니에서 손을 떼고, 평소처럼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


 다시, 아무도 없는 가게에 그 혼자 남겨져 있었다.


 웨이언스 기장은 사라진 에프넬의 뒷모습을 잠시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그 보석들을 챙겨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한때는 아들과 함께 탔던 비행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엔진에 시동을 걸 때면 곁에 앉던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올해로 스무 해가 된, 그의 아들 네로가 태어날 무렵에 구입했던 녀석이었다. 할부를 모두 갚은지도 어언 십 년째다. 혹독하게 굴려지던 중고 비행기였지만, 웨이언스 기장의 손놀림은 박물관에 틀어박혀도 이상하지 않을 놈을 지금까지 굴러가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부기장 없이도 잘만 굴러가지 않았소, 달리아?”


 일찍 죽은 아내의 이름을 붙여놓았었다. 그렇게라도 떠나간 이의 이름을 매일같이 부르면 아픔에 무뎌질까 싶어서였다. 결과는 실패였고, 노년을 앞둔 장년의 사내는 이제 혼자였다.


 주름진 눈가를 타고 눈물이 흐른다.


 “이 정도면 더 크고 좋은 녀석을 살 수 있겠지. 녀석은 더 높이 올라갈거요.”


 십오 년 전, 탐욕스럽게 입을 벌리던 검은 구멍.


가게 밖으로 나온 웨이언스 기장은 저 멀리, 6구역 쪽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내를 삼킨 공백은 아직 저 너머에 있을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주시오.”


 그는 오십 년 조종사 인생의 마지막 종착점을 앞두고 있었다.


 


 *


 


 “준비는 됐나?”


 헤드셋을 타고 기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프넬은 그의 옆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개의 버튼을 누르고, 다시 몇 개의 스위치를 올리자 양 날개 밑에 붙은 엔진이 발작하듯 몸을 떨었다. 녀석은 회색 연기를 뿜어내며 굉음을 울리고, 매달린 프로펠러를 힘차게 돌린다.


 “그럼 출발하겠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인지, 달리아는 더없이 매끄럽게 이륙했다. 바다 위를 스치며 스로틀을 당기는 주름진 손을 따라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프넬은 주저 없이 부기장석의 문을 열었다.


 “지금 뭐 하는 건가! 그러다 떨어진다고!”


 기겁한 웨이언스 기장에게 에프넬이 눈을 찡긋였다.


 “이렇게 안 하면 내가 아니라 이 비행기가 떨어져. 아마 지금쯤이면 내가 숙소에 없다는 걸 모든 소울워커들이 알았을걸? 동부로 튀려는 나를 누가 잡으러 올지는 조금 기대가 되기는 하는데, 내가 비행기 위에서 저지하지 않으면 아마….”


 그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에프넬 씨!!!”


 대체 뭐에 대고 고함을 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에스티아의 외침이 마치 폭풍 속의 천둥이라도 된 것처럼 바다 위를 울렸기 때문이었다.


“미친, 더럽게 시끄럽네!”


 거대한 그림자가 에프넬과 비행기를 한꺼번에 뒤덮었다. 곧 희미하게 더 큰 엔진의 굉음이 들린다. 에프넬이 고개를 들자, 커다란 수송기가 그들의 머리 바로 위에서 날고 있었다.


 에프넬은 비행기 위에 올라서서는 자세를 잡고 창을 꺼내 꼬나쥐었다.


 “소리만 지르지 말고, 날 잡고 싶으면 내려오던가!”


 이유 있는 패기였다. 저건 별숲 리그 소속의 수송기다. 절대로 민간 항공기를 쏘거나 격추시킬 수 없다. 그랬다간 무시무시한 비판에 직면하게 될 테니까.


 그러니 녀석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급하기 저기에 태워 온 하루 에스티아를 이쪽으로 떨구는 것 정도다.


 에프넬의 예상은 적중했다.


수송기의 해치가 열리고, 조그마한 점이 이쪽으로 낙하한다. 에프넬은 기꺼이 다가오는 방해자를 맞이했다.


 “하, 그렇게 하기 싫다더니! 아직도 리더 노릇을 하려는 거냐?”

 “그렇게 말씀하셔도 별 수 없어요! 저희는, 저희는 에프넬 씨를 잃을 수 없으니까요!”



에프넬은 달리아의 동체 위에 올라탄 하루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대탈출을 감행하는 자신을 막으러 오면서 칼 한 자루 안 차고 오다니.


 그 순간, 엔진에서 ‘무언가 잘못된’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회색 연기가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하고, 달리아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영감! 스로틀 더 땡겨!”


 에프넬의 외침에 웨이언스 기장이 마찬가지의 고함으로 답했다.


 “이미, 이미 최대다!”


 달리아의 두 엔진이 기장의 말을 곧 증명해냈다. 강렬하게 돌아가는 프로펠러가 강철의 커다란 몸을 다시금 밀어올린다. 하지만 그건 선고된 시한부 수명을 더 짧게 만들 뿐이었다.


 “순순히 멈추시는 게 좋을 거예요!”


“싫은데?”


 에프넬의 등에 매인 창의 녹색 창날이 투명하게 빛났다. 구름 없는 하늘의 햇살이 창대를 타고 날끝으로 흐른다. 하루는 어쭙잖은 대응으로는 그녀를 막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저 보라색 눈동자 아래 깊은 곳에 바다 건너를 향한 증오가 가라앉아 있다. 자신의 인생을 철저히 짓밟은 자들을 향한 마땅한 복수가.


 “내가 왜 이러는지 알잖냐. 너라면 공감할 텐데?”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하루는 분노에 찬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면서도 결코 무기를 들지 않았다.


 “네. 알아요. 우리 팀 분들 중에서는 제가 누구보다도 잘 알겠죠.”


 고개를 떨군 채로 가로젓는다. 이해해 주려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제가 가장 먼저 나선 거에요.”


에프넬의 얼굴이 밟힌 캔처럼 구겨졌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지껄이지 마!”


 그 순간, 곧 수명이 다한 엔진이 털털거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고도가 점차 낮아질수록 웨이언스 기장은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소용없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수면을 뚫고 무언가가 솟구친 것은 그 즈음이었다.


 “피해!”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에프넬은 그대로 몸을 날려 하루를 밀어 날개 끝에서 떨어트렸다. 그리고 잽싸게 몸을 돌렸다. 수면에서 솟구친 소울정크의 날카로운 촉수 끝이 날개를 뚫고 올라온 것이다.


 뽑아든 창대로 재빠르게 빗겨내긴 했지만 스치는 것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흘러갔다.


녀석이 수면 위로 몸을 드러내면서 촉수를 힘껏 휘두른 것이다. 박혀 있던 촉수는 그대로 비행기의 날개를 종잇장처럼 찢어놓았고, 에프넬은 한 쪽 날개를 잃고 추락하는 동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직 웨이언스 기장이 그 안에 타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촉수가 그 동체를 꿰뚫기 위해 날아들고 있었다.


 에프넬은 고민했다.


 지금 자신이 있는 힘껏 창을 쏘아낸다 할지라도, 시간이 부족하다. 팔을 뒤로 당겨 준비 자세만 취해도 이미 웨이언스 기장은 꼬챙이가 될 거였다. 그 짧은 찰나의 시간 동안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어림도 없습니다!”


맹금처럼 날아드는 한 쌍의 강철 날개. 진의 부스트 실드가 녀석의 촉수를 빗겨냈다. 종잇장 찢기는 소리와 함께 비행기는 날개를 모두 잃었지만 웨이언스 기장의 목은 아직 어깨 위에 달려있었다.


 “추, 추락한다!”


 스로틀을 제아무리 밀어댄다 하더라도 엔진 두 통을 모두 잃은 비행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내 동체 위로 뛰어내린 진이 부스트 실드의 출력으로 고도를 유지하려 했지만 또한 무용지물이었다.


 “에프넬 씨! 받아주세요!”


 진이 냅다 던진 건 오퍼레이터 통신용 이어셋이었다. 에프넬은 이를 갈아 물곤, 상황을 인지했다.


 지금은 밑에서 난리 치는 저 소울정크를 잡아 족치고, 웨이언스 기장의 신변을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작전 목표를 변경합니다! 민간인 보호가 최우선!”


 클로이의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되지 않습니다! 출력이 부족합니다!”

 “거봐요! 제가 그 정도로는 비행기 못 든다고 했잖아요!”


 부스트 실드로 비행기를 들어 보이겠다는 허무맹랑한 발상은 역시 진의 것이 맞았다. 그다음으로 들려오는 스텔라의 목소리 역시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를 주장하고 있었지만, 진보다는 나았다.


 “거 봐! 역시 우리 영감님을 불러내는 게 낫다니까!”


 이내 새까만 늑대 유령을 타고 스텔라가 모습을 드러낸다. 조그마한 손으로 기타를 제법 사납게 켜자, 주변에 몇 마리의 늑대가 더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들이 모조리 달라붙어도 날개를 죄다 잃은 비행기를 다시 뜨게 만들 수는 없었다.


 “못 뜨는 건 똑같잖아!”


 에프넬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스텔라가 움찔거리며 울상을 지었다.


“나는 노력했는데에….”


 그때, 다시 수면을 박찬 소울정크의 촉수가 이쪽으로 날아왔다.


 “정말 쉴 틈이 없군요!”


 진은 아무래도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그대로 조종석의 문을 뜯어버리더니, 스텔라를 크게 불렀다.


 “스텔라 씨! 영감님께 여기 파일럿 분 좀 태워달라고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응! 가능해! 할 수 있어!”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 중에서 떠다니실 수 있는 분은 스텔라 씨뿐이어서요!”


 확실히 그랬다. 아무래도 진의 부스트 실드가 출력이 아무리 좋다 한들 비행을 목적으로 개발된 건 아니었으니까.


 “맡겨줘!”


크게 외친 스텔라가 이내 늑대 귀신 하나를 냅다 저 밑으로 던졌다. 아래에서 보라색 빛이 번쩍인다.


 “영감님! 부탁해!”


 던져진 녀석은 이내 갑옷을 갖추고 허공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그대로 튀어나온 커다란 소울정크의 머리에 장검 두 자루를 내려박고는, 이쪽으로 날아오던 촉수의 뿌리를 잘라냈다.


 『나락으로 떨어트려주마!』


 그 틈새에 스텔라는 잽싸게 웨이언스 기장의 팔을 끌어당겼다.


 “아저씨, 여기! 여기 타!”


 그 순간, 세찬 바람이 웨이언스 기장의 점퍼를 스치고 지나갔다. 등골에 섬뜩한 소름이 돋는다. 그의 눈 앞에서 조그마한 보석 주머니가 저 밑의 푸른 수면을 향해 낙하하고 있었다.


 “안 된다!”


늙은 기장은 미련 가득한 손아귀를 뻗었지만, 진이 그 뒷덜미를 움켜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보석의 모습을 빌린 티켓이 미끄러져간다. 그의 인생 마지막 종착지를 향한 티켓이었다.


 “위험합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걱정해주는 말이었지만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물을 잡으려는 사람처럼 허망하게 손을 내뻗다가, 그대로 손끝에 힘이 풀리고야 만다. 그의 마지막 목적이 주머니 입구를 팔락이며 저 멀리 사라져갔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놓으라고!”


 앙상한 중년의 팔이 진의 손아귀를 밀어 뿌리친다. 예고없이 튀어나온 초인적인 힘에 진은 경악했고, 이내 그가 스텔라마저도 밀친 채로 군청의 수면 위로 낙하하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괴물이 우글거리는 바다 따위 두렵지 않았다. 저 하늘 위, 세상을 삼키는 괴물의 입 속으로 들어갈 각오도 굳혔으니까. 설령 여기서 죽는다 할지라도 저 보석들을 포기해버릴 수는 없었다.


그리운 이를 만날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이 아무리 희박해도 좋다.


 날카롭게 휘몰아치는 낙하의 칼바람 속에서 기장은 다시금 손을 뻗는다. 이번에야말로 저 나비에게 손가락이 닿았다. 팔락이는 천의 감촉이 느껴진다. 손끝을 간지럽히는 마지막 희망을 결국은 손아귀에 넣고, 그는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삶이 여기서 끝나지는 않았다.


 “…위험하다고요!”


 밑에는 한참 전에 떨어진 하루 에스티아가 있었다. 스텔라의 늑대귀신에 올라 탄 채로 위를 바라보며 그를 받아낸다. 잔뜩 달라붙은 중력가속도에 둘의 몸은 밑으로 쭉 밀려내려갔지만, 가까이 날아오던 괴물의 촉수는 기꺼이 낙하한 진의 주먹질 한 번에 터져나갔다.


 “하루 씨!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일단 민간인부터 대피시키고 올게요!”


서로 스친 짧은 순간에 나눈 대화였다. 진은 그대로 낙하하여 괴물의 머리에 정권을 내질렀다. 스텔라가 불러낸 ‘영감님’은 거진 4분의 1에 달하는 촉수를 잘라내고 있었고, 녀석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제 몸에 붙은 조그마한 인간들을 납작하게 눌러죽이려 발악을 해댔다.


 하루는 늑대를 끌어안곤 최대한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 놈이 도망가는 것을 안 녀석이 촉수를 휘두르긴 했지만, 그 앞을 막아서는 스텔라 덕에 더 이상 쫓을 수는 없었다.


 “친구를 괴롭히면 못 써!”


 가녀린 손끝에서 기타줄이 울부짖고, 겨눈 기타헤드의 끝에서 펄스가 터져나가며 녀석의 사지를 잘라낸다. 녀석은 수세에 몰렸다고 판단했는지 남은 촉수들을 수습하고서는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일종의 방어태세였다. 그 덕분에 스텔라의 영감님도, 진도 일단 바다로 뛰어내려야 하긴 했지만.


 “이 상태로는 공격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 저도 알아요! 어떻게 해야…!”


이어셋 너머로 들려오는 클로이의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에프넬은 낙하하던 모습 그대로 허공에서 자세를 잡았다.


 “망할 가드는 내가 깨 줄 테니까!”


 곧 녹색 섬광이 번쩍였다.


 에프넬은 힘을 가득 모아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속해 그대로 녀석을 찍어 밟았다. 작열하는 녹색 전류와 함께 수면을 뒤흔들 정도의 강력한 충격파가 울린다. 곧 녀석의 찢어지는듯한 비명소리가 뒤따랐다. 녀석의 방어는 순식간에 부서졌고, 머리를 감싸던 촉수들은 수면 위로 나자빠졌다.


 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기어올라왔다. 뒤늦게 녀석이 사지를 휘둘러 보았지만, 그는 오히려 그 틈새를 파고 들어갔다.


 “하루 씨가 돌아오고 있어요!’


 클로이의 보고였다.


“오시기 전에…다 끝내겠습니다!”


 등 뒤의 부스트 실드가 불을 뿝는다. 진은 그대로 몸을 숙여 손바닥을 아래로 겨누었다. 건틀릿을 타고 이내 거대한 에너지가 고이기 시작했다. 이내 터진 힘은 녀석의 미간에 그대로 꽂혀들어갔다.


 “아직, 아직이다!”



그의 등 뒤에서 부스트 실드의 불꽃이 빛의 날개처럼 아름답게 흩날렸다. 모두가 그 장면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손아귀에서 뿜어지는 빛과 힘의 흐름은 더 강렬해지더니, 곧 녀석을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거대한 폭발이 이어진 후의 수면 위에는 괴물이었던 시체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쵸. 고전하는게 이상한거죠. 네.”


 클로이는 조금이나마 걱정한 자신을 한심해했고, 모두가 그녀의 신세타령에 웃음을 터트렸다.


 에프넬만 제외하고.




 *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멸망을 앞둔 것도 아닌데, 진은 얼굴을 한껏 구기고 있었다. 침울해보이는 표정의 하루와 의기양양한 미소의 에프넬, 그리고 어떻게든 이 박살나버린 분위기를 수습해보려는 스텔라까지.


 결전 이후 각자의 생활을 즐기던 때라, 응접실은 오랜만에 바글바글했다.


 “동부로 그렇게 가고 싶습니까, 에프넬 씨?”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난 죽여버리고 싶은 놈들이 있다고.”


 에프넬은 테이블 위에 걸터앉은 채로 이죽거렸다. 어깨를 으쓱이면서 눈을 가늘게 뜬다.


 “다, 다들 싸우지 마! 싸우는 건 안 좋은 거야!”


모두가 스텔라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에프넬 본인만을 제외하고. 진과 하루의 눈빛을 본 에프넬은 결국 안절부절 못하는 스텔라를 두고 분통을 터트렸다.


 “누가 네 인생을 썩은 낙엽처럼 짓이겨놨다고 생각해 봐. 용서가 될 것 같아? 그건 저기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고!”


 하지만 하루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복수에만 사로잡혀서는….”


 돌아오는 건 비웃음 뿐이었다. 에프넬은 보는 사람이 다 두려울 정도로 눈을 치켜뜨고는 하루를 몰아붙였다.


 “그래서?”

 “네…?”

 “넌 그저 막연하게 공백, 막연하게 이계의 신이 복수 대상이라 그럴지 모르겠는데, 나는 말이야…그 가증스러운 종자들이 지금도 하루 하루 등따시고 배부르다고 생각하면 구역질이 나. 하루라도 빨리 얼굴을 진창에 처박고 손발목을 비틀어버리고 싶단 말이야. 알아들어?”


쉴새없이 쏟아지는 증오와 살의. 모여 있던 조그마한 응접실의 공기가 굳어 차갑게 딱딱해진다. 누구도 그 무게를 이겨내고 입을 열 수는 없었다. 


 에프넬은 입을 딱 다문 이들을 둘러보고서는, 그대로 응접실에서 나가버렸다.


 굳은 공기가 풀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에프넬이 많이 화가 났나 봐….”


 스텔라가 눈을 깜빡이며 침울하게 입술을 삐죽였다. 진은 그런 스텔라를 쓰다듬고 달래며 씁쓸하게 덧붙였다.


 “사실 이해를 못하진 않습니다. 저희의 인생을 망친 건 신과 공백이지만, 에프넬 씨의 인생을 망친 건 엄연히 인간과 베시니까 말입니다.”

 “…좀 더 가깝고, 그렇기 때문에 더 증오스러운 걸까요.”


 하루의 목소리에는 반쯤 체념이 섞여있었다.


“저 바다 너머에 켄트가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고 있는 느낌이겠죠.”


 진의 비유에 스텔라가 두 주먹을 높게 치켜들었다. 아주, 아주 단호한 표정이었다.


 “그럼 당장 뒤통수를 때려주러 갈 거야!”



그제서야 하루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좀 알 것도 같아요.”


 그 때, 하루의 호출기에 불이 들어왔다. 다급한 클로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 거기 소울워커 여러분들! 몇 분이나 계시나요!”

 “무슨 일인가요, 클로이 씨?”

 “6구역 쪽의 공백이 열렸어요! 생존자에요! 지금 포춘 부대가 그쪽으로 가고 있는데, 지원이 필요합니다!”


 


 *


 


 그로부터 며칠 후.


 유난히 하늘이 맑던 날이었다. 웨이언스 기장은 새 비행기에 물건을 싣고 있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권총 두 정이 걸려있었고, 옷차림은 네드의 병사들하고도 견줄 만했다. 똑같은 엔진 두 통짜리 프로펠러기이긴 했지만 보석을 한 주머니나 들여서 산 물건은 무려 수직이착륙을 위한 틸트 기능까지 붙어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정말 그 정도로 충분해?”


 누군가가 반쯤 닫힌 셔터 밑으로 들어왔다. 다짐을 굳히던 중년의 손이 멈칫한다.


 “…꼬맹이냐.”

 “하, 꼬맹이 아니라니까.”


 투덜거리며 가게로 들어온 에프넬은 씨익 웃으며 그의 새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비행기의 옆면과 날개 밑에 커다랗고 붉은 페인트로 이름이 붙어있었다.


 LUKE.


 “죽었다는 아들 이름이 루크야?”

“그래. 이 정도면…내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그녀도 알겠지.”

 “네 아내?”


 그는 이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은 에프넬에게 아내에 관한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었다. 


 웨이언스 기장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곤, 벨트의 홀스터에 손을 올렸다. 에프넬은 웃음기를 지우고 그와 눈을 마주했다. 얼마 전 동부로 압송된 아론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눈빛이다.


 검은 동공 밑바닥에는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를 자신의 행복에 마지막 희망을 건 사람의 처절한 기개가 깃들어있었다.


 “다 들었거든. 가게를 나서서도 조금 엿들었었지.”

 “그래서. 막으려고 왔나?”

 “일단 나는 아니라고?”

 “다행이군.”


홀스터에서 손을 내리고, 그는 구석에 처박혀있는 캐비닛으로 걸어갔다. 긴 캐비닛에는 조그마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열쇠조차도 잃어버린 캐비닛. 아내와 함께 하늘을 누비던 시절에 그녀가 손수 맞춰줬던 어설픈 기장복이 그 안에 있다. 그는 권총을 꺼내 자물쇠를 쏴서 부숴버렸고, 덜컥거리고 녹슨 문을 열어젖혔다.


 군데군데 헤졌지만 아직도 입을 만 했다.


 “영감, 이름이 루벤이었구나?”


 Capt. Ruben Wayans. 에프넬은 아직도 반짝이는 도금 명찰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루벤 웨이언스는 에프넬이 왜 끄덕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소울워커니 뭐니 하는 것들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래. 그냥 웨이언스 기장이라 불러라.”

 “뭐, 원하신다면.”


루벤 웨이언스는 묵묵히, 에프넬이 지켜보는 와중에도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쌍발 틸트 프로펠러기라는 값비싼 물건을 물렸다. 어렵긴 했지만 이륙 허가도 받아놨다. 물론, 보고된 항로와는 조금 운행 경로가 다르겠지만.


 목적지는 캔더스가 아니라 6구역 하늘의 거대한 공백.


 아내가 먹힌 곳으로 들어간다고 같은 곳에 떨어질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만약 살아있다면 위치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제, 공백이 누군가를 토해냈대.”


 가게의 셔터를 완전히 올리자 햇살이 쏟아지듯 들어찼다. 에프넬의 마지막 질문을 들으면서 그는 태양의 광채를 마지막으로 만끽하고 있었다. 눈이 부시고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에프넬이 미소지으며 덧붙였다.


 “앞을 봐봐, 영감.”


 찬란한 태양광에 동공이 적응하고, 루벤 웨이언스는 활짝 젖혀진 셔터 앞에 멈춰선 차 한 대와 소울워커들을 마주했다.


 “갈 필요가 없어졌다면요, 루벤 씨?”


 하루 에스티아의 목소리였다.


 “이제 여기를 지키셔야 할 텐데 말입니다.”


 진의 목소리였다.


 “이제 행복해질 일만 남았어!”


 스텔라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루벤, 정말 당신이야?”


그의 아내, 달리아 웨이언스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