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며칠 전에 공유했던 아날로그 호러 'THE BOILED ONE PHENOMENON' 내용을 정리해보면 대충 다음과 같아.


2003년 8월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일대에서 대규모 전파납치가 발생하고, 각 가정의 TV로 정체불명의 방송이 송출되었어.



그 방송에서는 이렇게 기괴하게 생긴 괴생명체가 나와서 불쾌한 소리를 내며 웅얼거렸는데, 이 괴생명체가 바로 'PHEN-228', 혹은 '보일드 원(Boiled One)'이야. 보일드 원의 영상을 본 사람들은 영상을 본 이후에도 보일드 원의 생김새가 목소리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고, 며칠 뒤에는 거짓혼수(pseudocoma) 상태에 빠져서 눈을 깜빡이는 것을 말고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어. 이런 일이 발생하자 당국에서 이 사안에 대해 조사를 한다는 것이 영상의 주된 내용이야.


이 보일드 원의 존재에 대해서 몇 가지 추측이 존재하는데, 내가 처음 봤을 때는 보일드 원이 얼터네이트처럼 일종의 사탄이나 적그리스도라고 생각했어.



영상 초반에 시편이 언급되고, 피해자들 중 한 명인 잠페리니를 대상으로 한 면담에서도 그가 보일드 원을 본 뒤에 집에 있던 십자가가 뒤집혔다고 하는 등 기독교와 관련된 내용과 묘사들이 간간히 나와. 


또한 보일드 원의 생김새가 묘하게 가시관을 쓴 예수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보일드 원이 일종의 적그리스도가 아닐까 싶어.


그런데 레딧이나 유튜브 등지에서 보일드 원의 정체에 대한 또다른 흥미로운 해석이 있는데, 다름 아닌 보일드 원이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 제국 측 전범이라는 주장이야. 겉보기로는 뜬끔없는 소리처럼 들리겠다만, 이것도 나름대로 그럴듯한 근거는 있어. 



영상 후반부에 보일드 원이 다시 나타나는 화면의 하단에 일본어 문장이 적혀 있는데, 저 일본어를 대충 해석해보면 '유일무이한 와타나베 버드(Bird)를 두려워하다'라는 뜻이야. 여기서 말하는 와타나베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 육군 중사였던 와타나베 무쓰히로를 말해.



와타나베 무쓰히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복무했는데, 이 때 포로들로부터 '새'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해. 또한 포로들을 구타하거나 맹장 수술 환자한테 유도 연습을 시키는 등 정신나간 포로 학대 행위로 악명이 높았어. 결국 전후에 전범으로 지목되었지만 어찌저찌 기소를 피해서 잘 살다가 2003년 4월 1일에 죽었다고 해. '새'라는 별명이 앞서 언급한 '와타나베 버드'라는 표현을 연상시킨다는 점, 그리고 그가 죽었던 해에 보일드 원의 전파납치가 일어났다는 점(심지어 그가 죽은 건 4월이고, 전파납치가 일어난 건 8월이야)에서 와타나베가 보일드 원이 아닐까 싶기도 해. 


그리고 와타나베가 보일드 원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또다른 근거가 있는데, 바로 영상 중반에 나왔던 잡 잠페리니(Job Zamperini)라는 가명을 쓰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면담이야. 영상 속에서 잠페리니는 손자가 그의 집을 찍은 사진 속에서 보일드 원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뒤로도 집에 있는 십자가가 뒤집어지는 것과 같이 불길한 일을 겪게 되었다고 해. 이런 사건들로 인해 자신의 집에 귀신이 들렸다고 확신하던 잠페리니는 우연히 tv에서 송출된 보일드 원의 방송을 보고서 거짓혼수 상태에 빠지게 되었어. 또한 잠페리니는 면담 과정에서도 보일드 원이 계속해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어.



영상에서는 잠페리니가 참전 용사였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실제로 태평양 전쟁 당시에 루이스 잠페리니(Louis Zamperini)라는 올림픽 선수 출신의 군인이 있었어. 그리고 이스 잠페리니는 실제로 일본군에게 잡혀서 와타나베의 포로수용소에서 고초를 겪기도 했어.(이 내용은 영화 '언브로큰'으로도 유명하지.)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다면 잠페리니를 비롯한 포로들을 마구 학대하던 와타나베가 죽은 뒤에도 일종의 악령이 되어서 생전에 자신이 괴롭혔던 잠페리니를 비롯해서 다른 미국인들을 죽어서도 괴롭히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어.(실제로 와타나베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자신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 사과하기를 거부하는 등 인성이 아주 빻은 놈이었어.)


나는 이 해석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지긴 하지만, 보일드 원이 와타나베의 영혼이라고 가정했을 경우에 보일드 원이 보여주는 적그리스도적인 이미지(가시관, 역십자가 등)와 다소 상충하는 것 같아. 일본 제국 시대에 살았던 사람답게 높은 확률로 국가 신토를 믿었을텐데, 그런 사람이 죽어서 십자가를 뒤집는 등 사탄숭배적, 반기독교적인 행동을 한다? 좀 이상하지 않나? 하지만 그래도 적그리스도, 사탄과 같이 흔해 빠진 추측보다는 전쟁범죄자였다는 추측이 확실히 참신하게 느껴지긴 해. 


아무튼 나는 이 아날로그 호러 영상이 가진 특유의 기괴함과 공포스러움도 마음에 들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흥미로운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잘 만든 아날로그 호러라고 생각해. 그동안 많은 아날로그 호러를 보았지만 이렇게 인상깊은 작품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