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시절 기억에 

항상 방에만 있던 누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날때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엄마의 잦은 폭력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

어렸던 내게 그런걸 자세히 알려줄 사람도 

우리집엔 없었거니와


그 당시에 생각하기에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우리 집에서

먹는것 싸는것만큼 급한 일 외에 

쓸데없는 걸로 괜히 말을 꺼냈다가 맞는것이 

내게는 무척 큰 공포였기에

내가 뭘 물어보거나 말을 꺼내도


그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가로젓는 것 밖에 못하는 누나를 

나 역시 그러려니 하고 지낼 뿐이었다.


엄마는 때때로 우리가 잠들즈음 나가서 

무엇인지 모를 독한 향기를 몰고

새벽동과 함께 돌아오곤 하셨다.

어린 내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렇게 나갔다 오실때는 

뭔가 먹을것을 사오시거나 

평소와 달리 나를 안고 

울거나 웃기도 하셨기에


나는 엄마가 얼굴과 입술을 

하얗고 빨갛게 칠하고 나갈때면 

평소에는 맛보기 어려운 

엄마의 따듯한 품과 음식들을 기대하며

괜시리 설레곤 했었다.


하지만 내가 조금 더 컸을 무렵에는 

그런 빈도가 점점 잦아들었고 그와는 반대로 

어렸던 내 눈에도 꽤나 화려한 장신구들이 돋보이는,

덩치 큰 아저씨들이 우리집에 찾아오는 횟수가 늘었다.


평소라면 어디 잘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는 말도 못하는 누나와 

별달리 할수 있는 것도 없어서 

그런 아저씨들이 오면 괜시리 반가웠지만


엄마는 그럴때마다 크게 호통을 치며 

우리를 방에 밀어넣으셨었고

떨고있는 누나 품에 안긴 뒤 

방문 너머로는 엄마의 울음소리와 

애원하는 듯한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

.

.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손자닥 자국과 멍자국이 

몸에서 지워질 날이 없던 우리 누나를

그날은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더 목소리 톤이 높아져서 들어왔던 엄마가 

울며 웃으며 쓰다듬으시더니

별안간 구타하기 시작하셨다.


평소라면 30분, 1시간이면 끝났을 일상이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더 길게 

누나를 잡았던것으로 기억한다.


나와 누나는 서로가 맞고있으면 

옆에 붙어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손찌검이 옮겨가는 일이 흔했기에


눈물을 흘리며 매서운 손바닥을 견디는 피붙이를 

조심스레 뒤로 하고

나는 방을 나와 부엌 구석에서 

쪼그려 숨어있다가 깜빡 잠에 들었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오줌이 마려워서 눈을 떴을때

나는 참고있던 오줌을 

그 자리에서 다 흘려버리고 말았다.


내가 잠들기 전까지 큰 소리를 내며 맞던 

누나의 움츠러든 몸뚱이는


거실 천장 낡은 전등 고리의

그보다 더 낡아보이는 천에 매여서

언제 쭈그렸냐는듯 

길게 늘어진채로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여느때보다 밝았던 

아침의 햇살이 눈부시게 누나의 뒤로 비쳤으나

역광으로 검게 비친 누나의 모습에서

핏줄이 터질듯 시뻘겋게 선 누나의 눈동자만이

번뜩이며 나를 또렷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눈빛을 한 누나는 날 쳐다보며


늘 그렇듯


아무 말도 없이


좌우로 천천히 고개를 흔들던것 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부터였다.

평소라면 제대로 밥도 먹지 못했던 내가

그나마 밥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을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은


그리고 또한 그날부터였다.

엄마가 밭은 기침을 

신경질적으로 내뱉기 시작했던 것도


가끔씩이나마 먹던 맛있는 음식들은

어느새 다시 밥이라 부르기 힘들만한 

음식들로 바뀌었고

그 대신 엄마가 끼니마다 삼키는 약들을 

담은 봉투는 빵빵해져만 갔다.


엄마의 약 봉투가 더이상 커지지 못하고

다시 점차 줄어들었을 즈음


어느날 새벽에 깬 나는 

기침을 하며 자던 엄마의 머리맡에서

슬픈듯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누나와 닮은듯한 흐릿한 형체를 보았다.

내가 감겨있다가 막 떠진 눈의 초점을 잡으려

뻑뻑한 눈에 힘을 주자


이내 언제 그런것이 있었냐는듯

시원하게 기침을 한번 내뱉고 

찡그린 표정으로 고개를 바로한 엄마의 머리맡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아침

허기에 눈을 떠서 엄마 곁에 누운 난

평소보다 조용하게 잠든 엄마를 한번 바라보고

그 옆에 조금이라도 온기를 느끼고자 몸을 뉘었다.

그러나 하얗던 햇살이 붉은색이 되어갈때까지도

엄마의 온기는 내게 스며들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그 집에서 혼자가 되었다.


그후 얼마 안있어 찾아온 아저씨들에 의해

나는 나와 비슷하지만 각자 다른 사연들로 

흘러들어온 아이들이 가득한곳에 보내졌고


엄마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게 애정을 주던 사람들 손에 이끌려

학교를 다닐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핏줄은 속일수 없었던 걸까

그런 사회적 제도장치 안에서의 삶은


내게 적응하기 너무도 어려운 감옥같았다.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나는

사랑하는 엄마의 길을 답습하듯


다시 거친 길거리를 향해 

굳은살도 채 박히지 못한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엄마의 삶이 그러했듯

이런식으로 사는 인생의 방향 끝에는

절벽으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만이 있을 뿐이다.


어느정도 머리가 굵어졌을때쯤

마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 그게 내 인생의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배운것도 없고 모든게 서툴었던 우리는

감정적으로 서로에게 유대하지 못하고

육체적인 쾌락만을 추구하기 바빴다.

매일 매일 식사도 거르며 서로의 몸을 탐했다.


그리고 그런 결과로는 당연하게도

서로에게 불행만을 안겨줄,

그여자를 닮은 핏덩이만이

내 품에 안겨있었다.


결혼식 같은건 생각도 할수 없었다.

혼인신고도 하지 못했다.

한가롭게 구청이나 가고있을 여유따위는

우리에게 없었다.


매일매일이 고통의 연속이었고

단지 우리의 육체적 쾌락에서 탄생한 부산물에

나는 별다른 애정을 느끼지 못했다.

제대로된 부모의 애정을 느끼지 못했으니

아마 그 반대 역시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그래도 밥정도는 굶기지 않고자 

나는 매일매일 노가다판을 전전했다.

관절이 마모되어 부서지려 하는 내 몸뚱이에

약 대신 소주로 대충 공구리를 쳐버리고


하도 힘을 줘서 닳아버린 어금니로 

살기위해 주는 밥을 씹어삼키며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나의 노력에도 무색하게

가진것 없던 우리에게는

아이를 키우는것 조차 너무 큰 사치였다.


아이가 조금 컸을 때 쯤...

아마도 유치원생 때 쯤인가,

아니면 초등학생 때 쯤이었던가?


나날이 신경질이 많아지고 

바가지를 긁어대던 그 여자는

나의 능력과 가난을 탓하며 


그 작은 집에서 

돈 될만한 것을 모두 챙긴 뒤

모성애를 너무도 쉽게 털어버리고

글도 제대로 못 읽는 아이를 버려둔 채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병원에 가재도 낳겠다며 

울며불며 내게 매달리던

그 위선적인 여자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렇게 답도 미래도 

흐리멍텅해진 내게 남겨진건

우체통에 넣다못해 

신경질적으로 구겨밀어넣어진 

명세서, 고지서들과

그런 망할년을 꼭 닮은 어린 딸이었다.

해맑게 웃는 딸은 어째 조금씩 커갈수록

내 얼굴보다 그 여자만을 닮아갔다.


일정한 주기로 찾아오는 인생의 풍파에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버린 나는  

일용직으로 버는 돈을 

저축과 딸을 위해 사용하기 보다

점점 더 독한 술의 대가로 지불하며  

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되었고


현관문을 열었을때 배고프다며 

내게 매달리는 아이에게 가는 손길은

마치 내 엄마가 그러하였듯

더이상 쓰다듬는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까지 

높이 올라가고있었다.


그러던 하루

그날은 유난히 술이 더 달았고 

그날 하루 벌었던 돈을 술집에서

기분좋게 털어낸 뒤 집에 들어가던 날이었다.


얼큰하게 취했음에도 

우체통에 박힌 종이뭉치들을 보자 

짜증이 확 치밀었고

이를 거칠게 움켜쥐어 빼낸 뒤 

집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자마자 쭈뼛거리며 다가오던 딸을 

신경질적으로 털어내고

취기에 흐려진 눈으로 

짜증나는 고지서들을 하나하나 찢어발기고 있을때


문득, 보험이라고 적힌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집나간 그년과 사이가 나쁘지 않을때쯤 

딸에게 들어두었던 보험일 터였다.


한참전에 집을 나간 여자때문에 

여즉 이런걸로도 내가 쓸 돈이 빠지고 있었다 생각하니

불현듯 화가 치밀었다.


그여자만 아니었으먼

아니, 그년만 아니었으면

내 인생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것이다.

짜증이 확 치밀며 술기운과 함께

뒷목이 뜨거워지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목을 '우두둑' 소리가 나게

꺾어 풀어주고 옆을 보자

나를 무서워 하는건지 

혐오하는건지 모르겠는 눈빛으로

반쯤 숨어 바라보는 딸이 있었다.


지독하리만치 닮은

그 얼굴을 보자 또다시 그년이 떠오른다.


내 얼굴과는 닮은 구석 하나 없는

저 얼굴...

혹시 내 딸이 아닌건 아닐까


'저 쓸모없는 애새끼 하나만 없애면 

나는 더 이렇게 살 필요가 없다.'


그런 차마 입에 담기에도 어려운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튕기듯 일어난 나는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가

거칠고 우악스럽기만 한 손으로 

어느새 그 여자를 닮은 딸의 목을 옥죄고 있었다.


'그년이 죽어가는 얼굴을 보고싶다.'


'네년만 아니었으면 내 인생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것이다'


이성이 끊어져버린 내게

이 아이의 얼굴은 더이상 딸로 보이지 않았다.


짧은 비명이 튀어나왔으나

저항을 하기에는 너무 여리고 어렸던 딸은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한채 

금새 모가지에 힘이 빠지며 고개를 떨궜고


부성애랄게 남아는 있던것인지 

영문도 모른채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으며

술기운에 열이 올라 뜨거워진 손으로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아이의 목을 끝도없이 옥죄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이미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배어나오던 아이의 목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은채 주저앉아 잠시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있을때

문득 돌린 시선에는 어릴적 봤던

누나를 닮은듯한 형상이 


그때의 그 핏발 선 눈으로 날 쳐다보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마치 그때와 같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내려 다시 쳐다본 아이의 눈은

마치 어릴적 아침에 본

누나의 그 시뻘건 눈처럼

나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갑작스레 답답해진 목에서 터져나온 기침을 한번 내뱉으며 

나는 알게되었다.


엄마의 기침이 무엇을 의미했던것인지


그리고 누나를 닮았던 형상은 


무엇을 하고 있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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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정말 어렵다

필력 좋은 사람들 많이 있던데 

괴담 느낌보다는 그냥 밑도끝도 없이 우울한 얘기가 만들어진거같아서 아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