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됐다.



관리비 제외 월세 30에 보증금 250.

옵션 포함, 지상층에 물 잘나옴.

게다가 수도권 대학가 근처에서 이 정도 원룸이면, 정말로 거저 아닌가..?


뭔가 사연 있는 집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안 해본건 아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듯, 먹고 싸는데에 지장 없으면 괜찮지... 라고 생각 했었다.

거지귀신, 빈대귀신보다 무서운건 없으니 악바리로 버티다 보면 살만 하겠지... 나도 그리 생각 했었다.


막말로, 정말 귀신이랑 동거하게 되더라도 그게 대수인가?


근데...


근데 이정도일 줄은 몰랐지.... 

씨발.



-1-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바라본다.


웃풍이 든다.


핏기 없는 창백한 피부에 바닥까지 내려앉은 다크서클, 황달기에 살짝 충혈된 흰자.

누군가 지나가다 보더라면 백퍼 아 이놈 폐인이나 환자겠구나 싶은, 바로 그런 몰골이다.


다행히도 아직은 둘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는 않지만.. 

아마 머지 않았을지도.


왜냐하면, 바로 시시각각 나타나 날 괴롭히는 저 년 때문이다.


첫 등장은 추노해버린 전임놈 대신 야간조 대타를 뛴 날이었나?

..아냐 그 날은 정우랑 술 마셨지.


아마 그 다음 날일 거다. 그걸 보고 놀라서 액정을 깨먹었으니.


처음은 그냥 슬그머니 나타나 놀래키는 정도였다.


시야가 닿을락 말락 한 애매한 부분에서 나와 거슬리게 한다던지,

귀에다 바람을 훅 하고 분다던지.


앞서 말한 '버틸 수야 있겠지'수준의 것들이었다.

뭐 귀신 나오는 집 정도야,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굴릴 흔한 소재 아닌가?


불안했지만,

처음 몇번은 그냥 그렇게 웃어 넘겼던것 같다.


그럴 즈음, 


이 미친년이 점차 과감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피곤에 절어 귀가할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달려든다던지,

자고 있는 몸을 짓누른 채 머리 맡에서 웅얼거리기는 예사였고,

어느 날은 베란다에서 머리통만 둥둥 떠 다니는걸 집 밖에서 보고 졸도할 뻔한 적도 있다.


또한, 집에서 작업중일 때 등 뒤로 뜨거운 물이 부어진다던지,

깨진 유리 조각을 발치에 흩뜨려놓는다던지...


정신과 신체를 가리지 않는 산발적 위해들은 일상에 큰 타격을 입히기 시작했다.

시도때도 없이 일어나는 그 년의 괴롭힘은 점차 내 삶의 루틴을 망가뜨리기 시작했고,

입가에 있는 미소조차 사라져 간다.


혹시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맞닥뜨린 기분을 아는가..?


'내가 왜 당해야만 하는데'와 같은 분노와 우악스러움의 감정을 튀어 나온 공포심이 짓뭉개 버린다.

매번 같은 일을 당할 때마다 침착하게 대처해야겠다는 사고를 익숙치 않은 불쾌감이 마비시킨다.


뇌와 정신은 따로 놀고, 


그 때마다 점점 비이성의 도가니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장장 6개월.

내가 그 년의 장난질을 받아주며 시달린 기간이다.


악몽에 잠에서 깨고 졸도하기를 일수, 귓속은 이명으로 웅웅대고 머릿속은 깨질 듯한 두통이 밀려온다.

걷다가도 조는건 예삿 일이요, 사람 말과 깔깔대는 웃음소리를 구분짓기 어려운 지경에 왔다.


당연히 사회생활이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느 어디 지병이라도 있나?'

이사온 뒤로 가장 많이 듣는 말.

당연히 이전의 삶 동안 이런 말 언저리라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는 그렇게 천천히 허물어져만 가고 있었다.


"딱 하루만 자고 간다, 하루만. 진짜 죽을 것 같아서 그래."


정우는 싫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자취방을 내 주었다.

아무렴, 그 말 그대로, 나는 도피처가 필요했다.


그 집만 나오면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 같았으니까...


월세방 계약을 중도해지하더라도 당장은 살 곳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가지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혹시, 그년이 날 따라왔는지.


그날은 집을 떠나온 것에 대한 위안인지,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친구의 자취방에 몸을 뉘였고,


예감은 귀신같이 적중했다.


그날 꾼 악몽은 최악이었고, 머리는 망치로 때려 맞은것처럼 울려대었다.

꿈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소름끼치는 웃음 소리가 잔상처럼 뇌리에 스치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 년이었던것 같다.


그래, 벗어날수 없는 것 같다.

아마 그 집을 나오더라도.


그리고 그 때 즈음이었던것 같다.



이 일을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고 결정한 시점이...



-2-



"쯧쯧쯧, 터주신이 노했네, 터주신이!"


또 같은 레퍼토리다.

터주신이니, 번뇌마(煩惱魔)이니, 사탄이니...


뭐 무슨 만신이었던가.. 애기동자? 처녀보살?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이름들.


태반이 사기꾼일게 뻔한 얄팍한 무리들을 매일같이 뚫고 뚫으며 저 년을 털어내기 위해 몰두했다.

하루는 불교, 하루는 크리스천, 무속에 도교까지..


한 달 동안은 순회일주를 하듯 전국을 배회했고, 또 배회했다.

소득은... 없었다.


아, 효과가 있긴 했던것 같다.


스님이나 선교사가 와서 그들의 법경을 읊어 대거나,

무당이 화려한 오방기를 흔들며 그 정신 사나운 춤사위를 한바탕 치르고 나면 며칠간은 조용했으니까,


하지만 또 며칠 뒤면 그년이 나와 내 머리맡에서 실실 쪼개는것이다.

두 눈에서 거무죽죽한 피눈물을 흘려 대며.


매일같이 무당이나 선교사를 불러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발적 효과를 얻자고 매번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껄끄럽고,

그들이 부르는 '싯가'는 고작 알바 몇개를 병행하는 대학생이 감당키에 너무도 고달팠으니까.


"그만해! 그만 좀 하라고!"


아무리 욕지기를 내뱉고, 미친듯이 물건을 집어 던져도 그 년은 떠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기라도 하듯, 내 눈앞에 다가와 날 조롱할 뿐이다.

뻥 뚫린 두 눈은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다.


내 삶은 이대로 끝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름 모를 귀신한테 묶여,

천천히 송장처럼...


하지만 매듭은 으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풀리는 법이다.



"CT촬영이랑 뇌파 검사에서 이상 징후가 있네요, 종양 의심 소견도 있구요."


"..예?"


그저 지속되는 두통이라도 잠재우고자 찾아간 대학 병원 의사로부터 듣게된 말.


'조현병'


그럴리가 없다고, 분명 실재했던 것이라고 여기지만,

그 자체로서 증상이 되는 병.


발병 초기라고는 하지만, 그 뿐으로 내가 겪었던 많은 일들에 대한 설명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밀려오는 것은 놀라움, 분노,

왜 처음부터 병원을 찾을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후회 등...

여러가지 감정이 복받쳤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으뜸으로 느껴지는 것은 '후련함'.

일생에서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해방감이었다.


아직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남아 있었지만,

받아 들고 온 약을 한달음에 들이키자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이명이 멎었다.


그리고 그 날은 아주 달콤한 휴식을 취했던것 같다...


몇달동안 감히 취하지 못했던 깊고 달달한 숙면...



이튿날,

난 다시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 년을 피해 몇 달동안 뻘짓에 생고생을 다 해가며 노력했던 기억들이 신기루처럼 여겨진다.

일생 최악의 기억이었고,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겨우 내 머릿속에 있는 좁쌀만한 응어리 때문이라니...

갑자기 실소가 터져 나온다.


정말 몇달 만에 세상이 떠나가랴 박장대소했다.

끅끅대는 소리를 진정시키려 아주 오랫동안 노력해야 했다.


공포를 감추려 부단히도 노력해야만 했다.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바라본다.


웃풍이 든다.



뒤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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