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한 답안으로 가득 찬 종이의 가장 윗줄에는 또다시 커다랗고 빨간 '0' 이 휘갈겨져 있다.

나는 이 숫자가 정말 싫었다.


'..집에 가면 또 혼나겠지.'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고 가방 안에 종이를 구겨넣는다.

돌아가려는 찰나, 누군가 말을 걸어 왔다.

새카만 단발머리. 늘 보던 내 앞 자리의 아이다.

"넌 어째 점수가 맨날 한 자릿수냐?" 하며 보여주는 시험지에는 100점이 자랑스레 내걸려 있다.

왜 시비지? 험한 말을 내뱉으려는데, 입을 열자마자 말을 끊는다.


"너도, 높은 점수 받아보고 싶잖아. 안 그래?"

"나도 그러고 싶지. 그게 되면 내가 이러겠냐고. 나라고 놀기만 하는 줄 알아? 왜 가만 있는 사람한테 와서 지랄이야?"

"그럼 이거, 줄게. 나도 먹는 건데,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대! 나도 원래는 공부 잘 못 했는데, 이거 먹으니까 진짜 나아지더라고!"


무언가 엉성하게 포장된.. 내용물은 비스킷,인가? 하기야 본 적이 있을 리가 없지. 상품명도 성분표도 적혀 있지 않으니까. 합법은 맞나?

이거 정말 먹어도 되는 거냐, 그런 질문을 하기도 전에, 그 아이는 이미 복도 저 끝에 있다.

봉투까지 가방 안에 쑤셔넣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일도 쪽지시험이 있었지. 이게 진짜라면, 나도...



++++++


넌 어째 매번 이 모양이냐느니, 하는 잔소리를 뿌리치며 방으로 돌아왔다.

가방에서 그 포장지를 꺼낸다. 겉면에는 상품명 대신, 조그맣게 가게 이름과, '과다 복용 주의!'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ㅁㅁ 문구'. 학교 뒤편에 있는 문구점 이름이다. 거기서 이런 걸 팔았었나?

포장을 열자, 안에는 정말로 치즈색의 조그마한 비스킷이 들어 있다. 모양도 조금 이상하다.

입에 넣자 바사삭, 하고 금세 부서진다. 조금 짭짤하고 눅눅하지만, 그냥 치즈 맛 비스킷이다.

영어 단어 학습지 옆에 노트를 펼친다. 무언가 바뀐 것 같진 않은데....



...이상하다. 내가 원래 이렇게 기억력이 좋았나?

외워진다. 영어단어가, 한번 봤을 뿐인데 기억에 남는다.

한 번, 고작 한 번 읽었을 뿐인데. 절반이나 기억에 남는다.

이거야, 이거라면 나도, 나도 남들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잘할 수 있어.

다 기억하기엔 조금 모자란다.

더 필요해.


6시.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니, 아직 문을 닫진 않았겠지.

지갑만 들고 문구점으로 달려갔다.

"비스킷, 그 비스킷 팔죠?"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되물었다.

"어떤 거 말하는 거니?"

주머니에서 잔뜩 구겨진 포장지를 꺼냈다.

"이거요. 먹으면 머리 좋아진다는 그..!"

아주머니는 조그만 진열대를 계산대 아래에서 꺼내서 보여주었다. 맨 아래에 잔뜩 진열되어 있는 껌 통 바로 위에, 샛노란 포장지가 잔뜩 늘어놓아져 있었다.

한 개에 오백 원. 지갑을 아무리 뒤져 봐도 만 오천 원 밖에 없다.

"스무 개 주세요."

"얼마나 살지는 자유지만, 하루에 세 개, 일주일엔 여섯 번. 그 이상은 먹으면 안 돼. 알겠지?"

곧장 뒤돌아 나왔다.

한 개에 오백 원. 오백 원이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었구나. 고작 오백 원으로...


+++++


쪽지 시험을 친 그 다음 날, 모든 것이 바뀌었다.

75점. 두 자릿수의 점수는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스무 문제 중에서, 고작 다섯 개밖에 틀리지 않았다니.

선생님께 칭찬 받은 건 처음이었다. 집에서도 고성이 오가는 일은 없었다.

'하니까 되잖아. 이것 봐, 너는 할 수 있는 아이야....' 웃기는 소리. 나는 언제나 하고 있었는데.

비스킷을 가방에서 꺼내서 포장을 뜯는다.

살짝 짭짤한 치즈 맛. 눅눅하지는 않았다. 살짝 깨물자 입 안에서 바사삭, 하고 부서져 녹아간다.

이걸로 몇 개 째였지? 살짝 머리가 아프다. 몇 개 이상 먹지 말랬더라...


"너 또 그거 먹어? 하루에 세 개 까지만 된다니까? 아줌마가 얘기 안 해 줬어?"


검은색 단발. 저번의 그 앞자리 여자애다. 이름이 뭐더라, 저번엔 못 물어봤는데...


"나 은희야. 저번엔 인사도 못 했지. 그 비스킷 어때? 먹어는 봤어?"

"고마워. 덕분에, 훨씬 나아졌더라. 그런데 머리가 좀 아프던데 그건..."

"그거 부작용일걸? 일주일쯤 먹으면 그렇더라. 너무 많이 먹진 마. 한 개 더 먹었다고 피부도 막 가렵고 그렇더라고. "

"그래? 으음.."

"아, 다 먹었네. 나도 더 사러 가야겠다."
집에 돌아와서도, 교과서를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서랍에서 비스킷을 꺼내려는데, 텅 비어 있었다.

..사러 가야겠네.

문구점에 도착하니, 아주머니가 그 진열대를 채워 두고 있었다.

"그 비스킷, 주세요."

"마침 오늘 다시 들어왔단다, 몇 개 필요하니?"

"사십 개 주세요."

성적이 오르니, 용돈 정도는 얼마든지 주겠다며 잔뜩 받았었다.

성적 좀 올랐다고 왜 그렇게들 좋아하는지.

"저번에도 말했지만, 하루에 세 개 이상 먹으면 안 돼. 알고 있지?"

이만 원을 내밀고, 곧바로 포장을 뜯는다.

치즈 맛. 그리 짜지는 않다.

이번 건 맛이 약하네. 불량품은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은희가 안 보이네.

오늘도 앞자리가 계속 비어 있었고. 아픈가?

두통이 점점 심해진단 말이야. 피부도 가렵고. 다른 부작용은 없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걸음이 무겁다.

왜지?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앞으로는 조금 줄일까.

당장 내일 시험 같은 게 있지도 않으니까, 오늘은 그만 먹어야겠다.

피부가 가렵다. 특히 머리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은희는 등교하지 않았다.

곧 중간고사라, 비스킷은 다시 먹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하나 더. 다행히 하루 먹지 않았더니 부작용은 좀 가라앉았다.

여전히 머린 아프지만.

가방을 열어 비스킷을 꺼내려는데, 딱 하나 남았다.

또 문구점에 들러야겠어.



포장을 열어서 비스킷을 입에 문다. 치즈 맛이 약하다. 오늘은 이걸로 세 개째였지. 역시 불량품인가? 딱히 효과에 변화는 없는데.


문구점에 도착하니,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셨다.

"이거 치즈 맛이 좀 약한데요. 불량 아닌가요?"

"제품은 똑같단다. 그리고, 하루에 세 개 까지만이야."

계산을 끝내자마자 비스킷을 꺼내서 입에 물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하나 더까진 괜찮댔어....

어라? 발이 무겁다. 팔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

아주머니가 한숨을 푹 내쉬며 나를 붙잡았다.

바사삭, 하고 머리카락이 부서져내린다.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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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때 이거랑 비슷한 내용의 책을 본 적이 있음.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이 글과 비슷하게 공부잘하는애 몰래 스토킹하다 걔가 어떤 과자를 먹는다는 걸 알게 되고, 본인도 그 과자를 먹었더니 공부를 잘하게 되지만 과다복용해서 본인도 과자가 된다는 내용이었어.

이 글은 찾아내기전에 내가 완전히 잊어버릴까봐 기억안나는 부분엔 내 창작을 살짝 가미해서 써본거라고 생각해줘.
좀 많이 바뀐 감이 있지만, 전개가 잘 안 되는 바람에 좀 많이 틀어버렸다..


혹시 짐작가는게 있다면 댓글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