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들보가 끼익댄다.

새벽녘 마룻목에서는 뿌연 연무가 새어나온다.

덧바른 창호문은 떨어질랑말랑 덜컹거린다.


입 안이 텁텁하다.


낡아 빠진 대들보의 이음매 소리에, 민구는 선잠에서 깨어났다.

꽹과리인지 벼락인지 모를 그 소리가 염통을 쪼그라들게 한다.


창호지 너머 간헐적으로 지는 그림자가 마치 마귀 할멈처럼 들썩거린다.

그 모습이 너무 두려워, 민구는 머리 맡의 요강을 꺼내 들었다.


지린내가 진동한다.

요강을 비울 때가 머지 않은것 같다.


바깥은 아직도 새찬 비바람이 몰아친다.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 엄마... 사랑하는 우리 엄마... '


장마당에 다녀 온다던 엄마는 열 손가락을 내리 접어도 소식이 없다.

하룻 밤, 이틀 밤, 사흘, 나흘...


보름 째 되었을 즈음, 민구는 밤낮을 세길 그만 두었다.

그야, 집 안에 더이상 숫자를 셀 손가락과, 젓가락이 더 이상 없는 까닭.


엄마가 해두었던 고슬고슬한 쌀밥도, 

어느새 딱딱한 누룽지로 변해 있다.


하지만 괜찮아.


민구는 누룽지를 좋아하니까.


-


민구는 남생이마냥 목을 뻗대 목청껏 엄마를 불렀다.


반응이 없다.


목이 쉬었는지, 가래 끓는 소리만이 비명처럼 새어 나온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이럴 때 엄마가 곁에 있었다면...

하는 수 없이, 민구는 어릴 적 사진첩을 보며 적적한 마음을 달래 보기로 한다.


엄마의 사진은 달랑 몇장.

개구진 표정을 짓는 민구의 사진이 대부분이다.


어렸을 적, 엄마와 단 둘이 나들이를 갔던 기찻길 사진이 보인다.


' 이 때도 추억이지... ' 


민구에게 엄마는 전부이다.

그렇기에 엄마에게도 민구만이 전부였다.


민구에게 엄마는 가족을 넘어 세상이요,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민구가 놀림당할 적에 엄마는 항상 기세등등한 우군이었고, 민구가 곤란해할 때에도 곁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다.


민구가 손가락질을 당할 때에 엄마는 민구를 위해 대신 싸워 주기도 했다.


나들이도, 다림질도, 요강도, 사랑도... 


엄마는 민구를 위해 많은 것들을 바쳤다.


하지만 민구는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바칠 수 있는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


" 열 밤만 자면 돌아 올게. 지난 번 처럼, 알지? "


떠나던 날, 

엄마는 솥 안에 늘러붙어 있던 누룽지를 민구의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 열 밤, 손가락 열 개. '


아무리 어리고 약한 민구여도 그 정도는 너끈히 버틸 수 있으리라.

오줌은 요강으로 해결하면 되고, 식사는 엄마가 넉넉히 준비해 두었으니까.


민구는 한 입 가득 누룽지를 오독오독 씹으며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한 맛.


하룻 밤, 이틀 밤, 사흘, 나흘...


몇날 밤이 지났을 즈음, 민구는 엄마가 돌아오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엄마는 민구에게 줄 시루떡을 한가득 안고서 돌아왔다.

시루떡은 민구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햇살이 내리쬐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미소짓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따끈한 떡을 앙다물고 한 입에 오물오물 씹는다.


언제 쯤 이런 시간을 보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살금.


' ? '


민구는 마당에 서성이는 낯선 인기척에 그만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 엄마인가? '

' ... '


창호문 하나를 두고 불안한 기색이 감돌 즈음, 민구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 맞아, 산에서는 가끔 삵이나 멧돼지가 내려온다고 했지... '


당부대로, 민구는 문을 걸어 잠근 뒤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살금.

살금.

또 살금.


그리고 정적.


이윽고, 쿵! 소리와 함께, 무언가 지붕 쪽에서 굴러 떨어진다.

묵직한 소리로 보아, 아마 멧돼지가 내려왔던 모양이다.


때 아닌 불청객에 달콤한 꿈을 방해받은 것이 못내 아쉬웠던 민구는 다시 새우등을 하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 ...그나저나, 엄마는 대체 언제 쯤 돌아 오실까? '


-


...


낡아 빠진 대들보의 이음매 소리가 한껏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다.

아마도 간밤의 멧돼지가 대들보를 완전히 망가뜨려 놓고 간 모양이다.


비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치며, 창호지에 비치는 그림자가 마치 민구를 잡아먹을것만 같이 일렁인다.

그 모습이 너무 두려워, 민구는 이불 속으로 숨어 들었다.

마치 엄마의 품처럼 푸근하다.


어렸을 적의 나들이도 이런 느낌이었지...

그 때의 엄마는 울고 있었다.

빨리 엄마가 돌아왔으면...


새벽 연무가 지욱해진다.

시간이 지날 수록 연무가 자욱해진다.

새벽 연무가 이부자리 주변을 온통 뒤엎는다. 

점점 졸려 온다.


뭉게뭉게 풍기는 연무가, 마치 시루떡 같다.

매캐하고 고소한 느낌이, 마치 누룽지 같다...


입 안이 텁텁하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또 졸음이 오기 시작한다.

피곤하다.


하지만 괜찮아.

민구는 누룽지를 좋아하니까...


엄마가 올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며칠밤이 지났는지 좀처럼 기억이 나질 않는다.


' 끼익- 끼익- '


대들보가 끼익댄다.

새벽녘 마룻목에서는 뿌연 연무가 새어나온다.

덧바른 창호문은 떨어질랑말랑 덜컹거린다.


***

재미있게 봐준 사람들 고맙고맙


구찮은 사람을 위한 해석

> 애가 장애가 있어서 애엄마가 장마당 갔다온다고 뻥치고 대들보에서 ㅈ살, 애랑 같이 죽으려고 연탄 피움. 

이미 예전에 한번 죽이려고 한 적 있음.(기찻길) 애는 지금 주마등 상태라 오락가락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