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아토피는 나을 생각을 안하네'

나는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 두어개를 입에 털어넣었다.

괜히 반항하듯 혀 위에 붙어 녹아가는 약 한알을 

억지로 삼키려 용을 쓰다가

짜증이 나는 바람에 신경질적으로 목을 긁었다.


의사는 덧나니 긁지 말라고 했다만

굳이 근지러운 목이 아니더라도

별탈 없던 일상에 신경을 긁어대는 일이 좀 많았다.


뜯었던 약봉투는 지나가다 보이는 화단에 

대충 말아 던져버렸으나

갑자기 부는 바람에 다시 내 발치에 떨어졌다.

이런 사소한 일 하나까지도 유난히 거슬리는 하루다.


나는 별 생각없이 습관처럼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0시 6분 이라고 적힌 숫자 아래로 

오른손잡이인 내 엄지로 가려질만한 위치에

거뭇거뭇한 번인현상이 왠지 얼마 전보다 진해져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일 매시 매분 들여다보다시피 하는 핸드폰에서

뭔가가 서서히 생기는 것을 

자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랴

아마 사춘기 아이가 크는것보다 더 자각하기 어려울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화면의 번인현상 역시

동영상을 볼때 오른쪽 끝에 위치한 사람 얼굴을 

거의 송장마냥 만들때가 되어서야

뭔가 생겼다는것을 자각할수 있었다.

 

좀 거슬리긴 했으나 못봐줄 정도는 아니었다.

갑자기 이렇게 된것이면 좀 거슬렸겠으나

대충대충 살고자 하는 인생에서 이정도 현상은

별 불편함 없이 내 삶에 스며들고 있었다.


다만 두세시간이나, 길게는 24시간동안 

타탁거리는 소리만 내는

모닥불 ASMR 영상이라던지, 

우중충하게 비가 쏟아지는 영상을 

몇시간 내내 틀어둔것도 아닌데 

저렇게 애매한 위치에 얼룩처럼 번인이 생긴것은 

조금 의문스러웠다.


어째 진해지는것과는 별개로 크기도 조금씩 커지는듯한 

얼룩같은 번인이 찝찝하긴 했으나

사용에 문제는 없었기에 일단은 넘어가기로 한 지도

시간이 꽤 지났다.


'내가 저기 뭘 흘린적이 있던가...?'


'나중에 액정 갈아야겠다. 보험 기간이 남아있었나...'


어디 적어두지 않는다면 금방 까먹을만한 생각들을 하며

약봉투를 들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

.

.

그날 밤은 친구들과 술자리가 있는 날이었다.

뭣땜에 모인지는 잘 기억 나질 않는다.

약 먹을 동안은 술을 피하라고 했던 의사의 말 따위는

이미 동네 개 짖는 소리만도 못했고

앞에 앉은놈들의 얼굴은 안주로 나온 

화채의 수박만큼이나 달아올라있었다.


빈잔의 반이나 간신히 채울만큼 맥주가 남은 병을 털고

시끄러운 친구놈들 사이에서 벨을 찾아 누른 뒤

병을 높게 들어 한병을 더 추가했다.


목젖 뒤에서 술과 안주가 찰랑거리며 

넘치려고 하는 느낌이 들때쯤에서야

자리는 끝이 났다.

노래방 가자며 뭉그적대는 친구놈들을 

택시에 구겨넣고

나도 막차를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어두운 골목에서 네온사인의 빛이 

내 핸드폰쪽을 한번 훑고 지나갈때

나는 순간적으로 그 얼룩같던 번인현상의 위쪽쯤에서 

눈...같은것을 본것같았다.


너무 취한것인가 싶어 핸드폰에 입김을 두어번 불고

소매로 대충 비빈 뒤 다시 확인을 해 보자

이번엔 이전보다 더 또렷하게

나를 노려보는듯한 새빨간 눈같은 것이

거무죽죽한 번인 위에 있었다.


술김에 너무 놀란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손에서 털듯이 던져버렸고

공중에서 네온사인을 반사하며 두세바퀴정도 돌던 핸드폰은 

정확하게 그 번인이 있던 모서리쪽으로 떨어지며 엎어졌다.


술기운도 술기운이지만 

지금의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머리가 멍해졌다.

집도 가야 하는 마당에 핸드폰이 박살났다는 

현실적인 생각에 다다르자 머리가 피가 쏠리기 시작했고

갑자기 근지러워진 목을 신경질적으로 벅벅 긁었다.


폰을 버리고 갈수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막 만지기도 조금은 무서워서

엎어진 핸드폰을 나뭇가지로 툭툭 쳐서 다시 들춰보았다.


공교롭게도 그 번인이 있던 자리는 

액정이 깔끔하게 부셔지며 번개무늬를 그리고있었고

번인은 커녕 뒤로가기 버튼조차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취한채로 밖에서 더 있고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놓칠뻔한 막차를 간신히 잡아탄 나는

반쯤 졸며 집에 도착했다.


입고있던 옷들을 대충 벗어 의자에 던지고

부서진 핸드폰은 충전기를 꽂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날은 그대로 쓰러져 잠에 들었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핸드폰을 수리하려 했으나

주중에는 회사를 가야 하니 서비스센터를 갈수가 없었고

주말에도 결혼식 등의 일이 자꾸 생겨 

차일 피일 미루게 되었다.


그날 본것에 대한 불안한 마음도 있었으나

아마도 취해서 잘못 본것일거라 생각하며

'이제는 보이지도 않으니 괜찮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불안한 마음을 덧씌웠고

며칠 후에는 그런 생각조차도 다 까먹어버렸다.


그러나 목의 아토피가 이젠 거의 피멍이 되어 

병원을 꼭 가야 할 일이 생긴 나는

연차를 내고 겸사겸사 병원과 

서비스센터를 다녀올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어째서인지 목을 심각하게 바라본 뒤

정밀검사를 해보자는 의사를 뒤로하고

임시방편으로 늘 먹던 약에 늘 바르던 약을 처방받은 뒤 

서비스 센터로 향했다.


평일인데도 어찌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핸드폰을 수리기사님에게 뺏기고 

시답잖은 프로를 틀어둔 티비를 보며 

목을 만지작댄지 한시간정도 지나자 내 이름이 불렸다. 


친절하지만 크게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 설명에

대충 대답을 해서 넘기고 재시작이 되어 

로고가 뜨고있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뒤

나는 바로 차를 몰고 집으로 출발했다.


얼떨결에 수리하고 아직 폰을 켜보지도 못했던 나는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다시 제대로 핸드폰을 확인할수 있었다.


수리는 잘 되었다.


하지만...


번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씨발...저건 번인이 아니다.


화면안에 반사된 그것...


여태 번인의 형상을 하며 날 속여온 그것은


이제는 반사된 화면 안에서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내 목을 물고있다.


더이상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싶지 않다.


아니, 더이상 핸드폰을 들여다 볼수 없었다.


액정 안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그것은 


내 목을 문채로 입꼬리처럼 보이는 것을 올리며


서서히 내 목에서 검은 침이 흐르는 


그 거무죽죽한 이빨을 떼어냈다.


이제는 굳이 핸드폰 화면을 통하지 않아도 느껴질정도로


그것의 축축하고 역겨운 냄새와 참는듯한 웃음소리...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볼수 없을만큼 찢어진 입을 벌리며 


이제 목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듯 서서히 고개를 들어올린다.


이윽고 내 눈 높이에 다다르고 나서야 움직임이 멈춘다.


사람의 형상은 아니었지만 


눈...같은것에서 웃음기가 느껴졌고


아까보다 더 입꼬리가 올라가는게 느껴진다.


이제는 내 머리를 향해 칠흑과도 같은 


입을 벌리는 그것...


나는 고개조차 돌리지 못한채


눈물이 흘러 넘쳐 젖은 눈알만 굴려


천천히 오른쪽을 바라보면서도


떨리는 손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숨 한줌조차 내쉴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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