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보던 젊고 가난한 20대들이 화려한 아파트에 살면서 매일 외식하러 나가는 시트콤을 기억하는가? 나도 그랬다. 덕분에 독립해서 살 아파트를 찾는 일에 약간 싫증이 났고, 내 예산으로 구할 수 있는 집들은 그다지 멋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겨우 자리를 잡은 이 건물은 우리 조부모님보다 나이가 많고, 여전히 가격도 비쌌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자유를 생각해보면 그럭저럭 가치는 있었다.


우선 집 구석구석에 최대한 사모은 청소용품들을  쏟아붓는 것으로 그럭저럭 집을 치장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내 소박한 예산으로 굿윌과 차고 세일에서 멋진 가구와 그림 몇 점을 발견했고, 핀터레스트의 DIY를 보며 새 집 꾸미기에 몰두했다. 하루가 끝나갈 즈음에는, 여전히 멋지고 젊은 여자가 사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세트장 같은 곳은 아니었지만, 더 집처럼 느껴지기는 했다. 


도시로 이사오기는 했지만, 시골뜨기인 나는 본능적으로 이웃을 갈망하고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 층에 사는 사람들과 만나보고 싶어졌다. 우리 어머니는 언제나 손수 만든 과자는 새 친구 사귀기에 최고라고 말씀하셨기에, 나는 베티 크로커 요리책을 꺼내서 쫀득한 초콜릿칩 쿠키 반죽을 휘저을 준비를 했다.


방금 청소했던 부엌과 나를 한바탕 밀가루로 칠갑한 뒤, 나는 쿠키 세 바구니를 얻었다. 내 층에 사는 아파트에 각각 한 바구니씩 줄 생각이었다. 나는 씻고 쿠키 한 바구니를 꺼내서 내 바로 옆집, C아파트로 향했다. 


녹이 슬어 썩어가는 문을 약하게 두드리자 곧바로 문이 열렸다. 문고리는 녹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문간에 서 있는 사람을 보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내려야 했다. 내 앞의 나이 든 여자는 덩치가 작고, 머리는 내 가슴팍에 겨우 오고 있었다.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은 우아하게 말려 있긴 했지만 뻣뻣하고 곱슬거렸다. 그리고 이 따뜻한 봄에 입기엔 너무 두꺼워 보이는 꽃무늬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가운 끝자락이 복도에 질질 끌렸다.


 "저기요?" 그녀의 목소리는 타닥거리는 모닥불처럼 갈라지는 소리였다.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나는 미인대회 참여자처럼 최대한 환하게 미소지으며 나의 새 이웃을 함락시킬 쿠키 바구니를 건넸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서 한번 인사드리려고 왔어요."


 그 여자는 속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는 쿠키를 든 채 계속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는 몰리에요." 나는 악수를 위해 손을 뻗었다.


 "몰리?" 그 여자는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네, 쿠키를 좀 가져왔어요!" 나는 그녀에게 온기가 전해지길 바라며, 내가 만든 쿠키보다 더 달콤하고 폭신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한동안 이 여자를 찾아온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당황스러워 보였다. 내가 외로운 그녀를 이 아파트에서 찾아준 것 같았다. "이름이 뭔가요?"


 "아그네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부드럽고 녹슨 문틀이 열리는 소리처럼 진중했다. 


 "안녕하세요 아그네스. 당신을 만나서 기뻐요." 나는 쿠키를 덮은 포일을 살짝 들추고 초콜릿과 바닐라 향기를 풍겼다. "초콜릿칩인데, 맘에 드시면 좋겠어요!"


그녀의 입술은 주눅든 미소를 지었다. 최소한 입술 근처의 피부는 그렇게 움직였다. 아그네스는 손을 뻗어 쿠키 접시를 받고는 무뚝뚝하게 문을 닫아버렸다.


 그 대화 자체가 나에게 기이함을 풍겼지만 그건 여자의 태도 때문은 아니었다. 무언가가 잘못된 느낌이었다. 나는 고독을 즐기는 것 같은 다른 이웃들을 만나느니 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내가 왜 이렇게 당혹스러워하는지 나 자신도 몰랐다. 물론 아그네스가 기묘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 친절함과 외향적인 성격을 거스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 아파트로 돌아가자 한결 편안하고 가벼운 기분이 되었다. 나는 그날 남은 저녁은 휴식을 취했다. 엡솜 소금과 페퍼민트 오일을 푼 목욕물로 오래 목욕을 했다. 그리고 푹신푹신한 가운을 입고 다른 이웃에게 줄 예정이었던 접시에서 쿠키 몇 개를 들고 텔레비전 채널을 휙휙 넘겼다.


 이 아파트에서 유일한 새 것들 중 하나인 내 싸구려 소파의 쿠션에 몸을 파묻으면서, 나는 전에 몇 번 본 적 있는 로맨틱 코미디를 보기로 했다. 이웃집에서 들리는 음악 때문에 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벽을 뚫고 시끄러운 왈츠가 들리고 있었다. 나는 tv볼륨을 높였지만 음악의 음에는 못 미쳤다.


 결국, 짜증이 난 나는 옆집으로 향했다. 나는 다시금 내 얼굴에 미인대회 미소를 바르고 복도를 걸어갔다. 음악이 너무 시끄러워서 아그네스 집의 문손잡이가 떨리고 있었다. 내가 긴장한 채 문을 두드리기 위해 주먹을 쳐든 순간 음악이 멈췄다. 고요함이 방금 전의 음악보다 더 거세게 내 귀에 안착했다. 당황스러웠지만 내 짜증의 원인이 사라졌으니 더 이상 항의할 명분은 없었다.


 다음 날 나는 다른 이웃들을 보기 위해 다시 가보자고 결심했다. 호일을 덮은 쿠키 접시를 들고 A동의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집에 없었다. B동으로 향한 뒤 나는 로저를 만났다. 로저는 20대 후반이고 가디건과 빳빳한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했고 우리는 쿠키를 나눠 먹었다.


"드디어 여기 층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어 기쁘군요," 그는 커피를 저으며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여기 살고 있으면 좀 외롭거든요."


 "다른 이웃들은 그다지 사회적이지 않은가 봐요?" 나는 머그잔을 받으며 물어봤다.


 "다른 이웃이요?"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커피에 크림이나 설탕 넣나요?"


 "네, 둘 다 넣어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로저는 부엌 찬장으로 향했다, "글쎄요, A동에 사는 다른 사람은 못 만나봤지만, 아그네스에게도 쿠키를 드렸거든요." 


 "아그네스?" 로저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크림과 설탕을 넣고 자리에 앉았다.


 "네, C동에 사는 키 작은 노부인 있잖아요." 난 그 여자는 내내 집 안에 있어서 로저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 여자는 한 번도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처럼 생겼다.


 "C동에는 아무도 안 살아요." 로저는 눈썹을 찌푸렸다. "당신이랑 저 둘만 여기 층에 살고 있어요." 


 "그 분도 막 이사온 게 아닐까요?"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하고 말했다. "아니면 그 분이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아서 당신이 못 본 게 아닐까요? 그 분은 정말로 집안에서만 사는 것 같았어요."


 로저는 눈썹을 더욱 찌푸렸다. 친근했던 태도는 걱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몰리, 당신이 누굴 만난 건지 정말로 모르겠어요." 로저는 고개를 저었다. "제 매형 제이슨이 이 건물의 소유주입니다. 노후된 건물이라 헐값에 샀거든요. 이 층 전체랑 두 번째 층이 화재로 손상됐었거든요. 사람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제이슨이 고치긴 했지만 여기는 겨우 6달 전에 수리가 끝났어요. 그리고 당신의 집은 저번 주에 수리가 끝났고요. 당신이 오기 전까지 제대로 청소할 시간조차도 없었거든요." 


 "그럼 제이슨 씨가 C동의 수리를 끝낸 지 얼마 안 되어 아그네스가 들어온 게 아닐까요?" 나는 논리적인 듯한 설명을 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아니에요," 로저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제이슨은 이번 주 A동 작업을 시작했지만, C동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릴 거에요. 거기서 불이 났었거든요. 거기 있는 걸 전부 수리하고 교체해야 돼서 몇 달은 걸릴 거에요." 


 "그럼 전 누굴 만난 거에요?" 나는 점점 걱정이 들어서 물어봤다. "거기 분명 여자가 있었어요."


 "보통은 무단으로 들어온 사람일 거에요," 로저도 불안한 것 같았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오늘 밤에 제이슨을 불러서 확인해보라고 할게요."


나는 로저의 계획이 확실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바로 옆집에 불법 침입자가 산다니 도저히 편안하지 않았다. 나는 이 도시에 겨우 일주일 살았고, 이런 일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


 "그럼 당신은 어젯밤 그렇게 음악을 시끄럽게 튼 사람은 저일 거라고 생각하셨겠네요." 나는 웃었다. "제가 민폐였다고 생각하셨을 텐데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놀랐어요."


 로저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표정이 당혹스러움으로 일그러졌다. "무슨 음악이요?"


 나는 로저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해 웃었지만,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들으셨잖아요, 어젯밤 누가 왈츠를 틀어놨거든요. 들어보셨어야 하는데!"


 "아니요. 저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어요." 로저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이 문제를 파고들지 않았다. 어쩌면 로저는 유머 센스가 이상하거나, 집 벽이 내 집보다 두꺼운 걸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 있고 싶지 않아, 나는 커피 대접에 고마움을 표한 뒤 작별 인사를 했다. 그는 헤어질 때도 예의발랐고, 원할 때마다 놀러 오라고 말해줬다. 그는 친절하고, 귀여웠으며, 그에게 내 전화번호를 주거나 또 찾아갈지 고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 집으로 돌아와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내 페이스북을 켰다. 로저는 자기 이름을 성까지 알려줬기에, 나는 로저한테 여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뭐 그런 것들을 좀 기웃거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슷한 성씨의 로저들이 가득한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겼다. 막 포기하려던 찰나, 나는 그가 여기 건물주와 가족이라는 점을 기억해내고, 만약 그 사람을 찾으면 쉽게 로저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남자는 곧바로 나왔다. 심지어 나랑 친구 몇 명이 겹치는 것 같았고, 놀랄 것도 없이 내가 다니는 대학이랑 집이 가까웠다.


 제이슨의 페이스북은 그를 기혼자로 표시하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로저의 '매형' 이라는 표현은 그냥 '내 누나나 여동생이랑 사귀는 남자'라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나는 로저와 연결된 여자친구를 찾아 사진들을 넘겼다. 앨범을 클릭하자 한 사진에 옷을 차려입은 제이슨이, 그리고 옆에는 가운을 입은 나이 든 여자 한 명, 아그네스가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예전에 봤던 그 미소와 똑같았고, 그녀의 어두운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나에게 그런 충동을 일으킨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로저에게 이걸 보여줘야 했다. 내 핸드폰을 쥐고, 나는 화면을 캡쳐한 뒤 잠옷 차림으로 복도를 내달렸다. 나는 곧바로 그의 집으로 향한 뒤 떨리는 손으로 시끄럽게 문을 두드렸다.


 문이 삐걱이며 열리자 나는 로저가 거기 서서 나를 미친 여자처럼 보고 있는 모습을 생각했다. 하지만 로저는 거기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문을 조금 더 열어젖히고 안을 살폈다. 그 아파트는 텅 비어 있었다. 내가 불과 몇 시간 전에 앉아 있었던 탁자는 사라져 있었고, 맵시 있게 꾸며진 거실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 내 집에 돌아와 벌벌 떨면서 글을 쓰고 있다. 로저의 집 안을 본 직후 나는 거의 즉시 뒤돌아서서 복도를 달려갔는데, 아그네스가 자기 집에서 머리만 내민 채 미소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고...윙크를 했다. 나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혹은 진짜 저 여자가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문을 잠그고, 저 시끄러운 음악을 막기 위해 귀마개를 꼈지만 아직도 저 왈츠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