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글&출처: 이상한 옴니버스





* 다음의 네 가지 이야기는, 과거 일본의 익명 스레드에서 '실제로 겪었던 일을 이야기해 보자'라는 주제로 진행됐던 것 중 인상 깊으면서도 국내에 전파되지 않은 것들을 선별해 보관해 오던 이야기입니다. 번역 과정에서 보다 원활한 감상을 돕고자 문체를 다듬었다는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 1


예전에 나는 어느 남자 배우의 팬이었다.


그냥 팬이 아니고 열성팬. 아주 열광적이었으니까.


그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모두 DVD 소장, 그 배우가 나오는 텔레비전 프로는 무조건 녹화, 그 배우가 인터뷰한 잡지는 모두 구입, 그 배우와 관련된 팬시상품도 모두 구입 등등.


그야말로 직장 일을 제외하곤 몇 년간 생활 전반이 오롯이 그 배우 위주로 돌아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배우가 갑작스러운 병세로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며 돌연 활동 중단을 선언하는 일이 발생했다.


나는 매일매일 기도했다. 어서 빨리 병세가 호전돼 다시 활동을 재개해 달라고.


그러나 그 배우는 병에 걸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갑자기 병세가 악하되더니, 곧 그대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나는 엄청나게 쇼크를 받았다. 회사를 관두고서 한 달여간 온종일 식음을 전폐하는가 하면 손목을 긋는 짓도 여러 번 했을 정도.


끝에 가서는, 그 배우가 죽은 것에 대한 원망을 해소할 데가 없어 생전 배우가 속해 있던 소속사 사무실로 전화와 팩스를 몇 통씩 해댔다. '그가 죽은 건 너희들 때문이야!'라며 말이다.


그렇게 매일을 울부짖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는, 급기야 그 배우를 살리고자 온갖 오컬트에 심취하게 됐다. 악마, 정령, 교령, 부활술... 이런 것들에.


물론이지만, 그 배우가 다시 살아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완전히 절망했다. 너무나 절망해서, 차라리 내가 죽어 그 배우가 있는 세상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할 정도였다.


급기야 정신이 완전 나가버린 나는 내가 살던 맨션 옥상으로 올라갔다.


12월 14일, 지금도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그날 나는 새벽녘 달을 한번 올려다보고선 그대로 주저함 없이 뛰어내렸다.


여기까지가, 그 배우의 병세서부터 내 극단적 선택 시도 기간까지에 남아있는 기억 조각들이다. 맨션 옥상에서 뛰어내려 떨어지던 다음 순간 눈을 뜬 곳은 내 방 침대였다.



뭐지? 꿈이었나? 하지만 말도 안 되게 생생했는데..



한동안 얼빠져있던 나는 곧 꿈이었음을 납득할 수밖에 없게 됐다.


텔레비전 아침 방송에서 12월 14일이라고 나오고 있었으니까.


또 이상하게도 그 기간 동안의 기억들이 모두 흐릿했다. 마치 긴 꿈을 꾼 것처럼 부분부분 이미지만이 떠오를 뿐, 당장 극단적 선택 시도 직전도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한 건, 아니,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그날 잠에서 깬 직후부터, 그 배우에 대한 내 감정이 완전히 無가 됐던 것이다. '정말이지, 내 타입도 아니었는데 어째서 그리 목매달았던 거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을 정도.


그런데 진짜 놀라운 건 정작 따로 있었다.


그날이 있고 얼마 안 있어 집에 쌓여있던 그 배우와 관련된 상품들을 처분하고자 인터넷 경매 사이트 등에 접속하던 차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그 배우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하던 중, 그의 신작 드라마 출연이 확정됐다는 기사를 본 것이다.


'분명 죽었었는데..' 패닉에 빠진 채 그로부터 몇 시간 동안 검색을 해봤으나, 죽기는커녕 병에 걸렸던 사실조차 없던 것으로 나왔다.


넋이 나가선 전에 추모글들을 올렸던 팬 사이트도 접속해 봤으나, 마찬가지로 그런 추모글들 모두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배우가 병에 걸렸던 것부터 사망하기까지의 일들만, 말 그대로 깡그리 사라진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작년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이다.


지금은 새로 파견직을 다니고 있고, 가끔 버라이어티 토크쇼 등지에서 그 배우를 볼 적마다 '저거 건강하네'라며 픽 웃곤 한다.


어쩌면 그 배우가 병에 걸려 사망하기까지의 3-4개월이 통째로 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 친한 친구 몇에게 당시의 내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질 물었지만 오히려 머리만 더 복잡해질 뿐이었다. 친구들이 '그 배우의 팬인 건 알았지만 그냥 평범한 정도였다', '그때 회사를 관두고서 연락도 안 되고 집에 틀어박히길래 직장 스트레스 때문으로 생각했다'라고 대답해 주었기 때문.


당시 내게 진짜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진 지금도 모르겠다.


혹시 직장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퇴사하고선, 그 스트레스를 무의식적으로 해소하는 과정에서 해리성 기억상실과 더불어 일련의 기억 조작이 일어났던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 2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동네마다 꼭 '바보'나 '모자란 아저씨'가 하나는 있었다.


우리 동네에도 '모자란 아저씨'가 하나 있었다. 노모와 단둘이 살던 아저씨였는데, 항상 동네를 배회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른들은 초등학생인 우리들에게 '저 아저씨한테 가까이 가지 마'라곤 주의를 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래서 부모님 말을 깨끗이 무시한 채 그 아저씨를 볼 때마다 달려가 '바보~ 바보~'라고 놀려댔다. 그러면 아저씨는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달아났고, 우리는 또 그게 재밌다고 한참을 쫓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나는 학교 점심시간에 편을 갈라 축구 시합을 하던 중 그만 사고를 당했다. 다이빙 헤딩을 하겠다고 까불대다가 착지를 잘못했던 것이다.


결국 담임의 호출을 받은 엄마가 나를 데리러 급하게 달려왔다. 그렇게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으며 교문을 나서는데, 멀리서 '모자란 아저씨'가 그런 나를 지켜보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한편, 병원으로부터 쇄골에 비교적 가벼운 골절상을 입었다는 진단을 받고선 나는 몸통에 웃기는 모양의 깁스를 했다. 그 이틀 후부터는 학교에 정상적으로 등교했는데 당연 깁스를 한 나는 친구들로부터 인기 폭발이었다.


일주일 정도가 흘렀을까.


엄마로부터 외출금지령을 받았던 나는 도저히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그래서 엄마가 시내로 장을 보러 나간 사이 근처 놀이터로 가 내 또래들과 공놀이를 했다.


공놀이 후, 엄마가 먼저 도착할까 봐 서둘러 집으로 가던 중 '모자란 아저씨'와 마주쳤다. 하지만 워낙 급했기에 아저씨를 놀려먹을 짬도 없이 그대로 가던 길을 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저씨가 달려와 나를 멈춰 세웠다. '뭐지?' 하고 의아해하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저씨는 내 쇄골 부위에 두 손을 대고선 멍한 눈으로 자신의 두 손을 쳐다봤다.


그렇게 한 수십 초 동안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그리고 비일상적인 상황 앞에서 그저 눈만 껌벅일 뿐이었다.


이윽고 쇄골에서 두 손을 뗀 아저씨는 언제 흘렸는지 이마가 땀범벅이 돼선 그대로 뒤도 안 보고 달아났다. 나는 잠시 '뭐야, 저거?'라며 눈으로 그 뒷모습을 쫓았지만, 이내 엄마 생각이 떠올라 급히 집으로 뛰어갔다.


이후 해당 일에 대해선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그 며칠 후 엄마랑 정례 검사차 병원에 들렀을 때까진 말이다. 병원에선 의사가 놀라워하며 말했다.



"뼈가 제대로 붙었는데요? 거 참, 이상하네.. 애들이라 뼈가 잘 만들어지긴 해도 최소한 보름은 더 있어야 되는 거였는데."



그렇게 완치한 나는 깁스를 풀고선 다음날부터 학교에서 다시 축구 시합에 낄 수 있었다.


물론, 친구들 모두 내가 갑자기 완치한 것에 제법 놀라워했다. 그래서 나는 '모자란 아저씨'와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줬다.


그 후, 나와 내 친구들은 더는 '모자란 아저씨'를 바보라고 부르지 않았다. 대신에 아저씨를 '덴데(주: 일본의 국민 만화 <드래곤볼> 속 캐릭터로, 상대에게 두 손을 갖다 대 치유하는 능력을 갖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축구를 하다 무릎이 까지는 일이 생기면 아저씨에게 가 '어이 덴데, 치료해 줘'라고 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아저씨는 예전과 같이 아이들이 다가오면 그대로 겁먹은 표정을 하고선 멀리 도망갔다.


그로부터 1~2년 후, 아저씨는 노모와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자취를 감췄다. 지금에 와서도 당시 그 아저씨한테 고맙다고 했어야 하는 건지 반신반의.




# 3


5-6년 전, 아직 대학생이던 시절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당시 근처에 살던 사촌 형이 주변 상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사촌 형 역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주야간 타임을 나눠 주중엔 3교대로 알바생을 고용하고 있었죠.


그런데 주중 주간 타임의 경우 1년 넘게 꾸준히 나오고 있는 알바생이 있었던 반면, 주중 야간 타임의 경우엔 다른 편의점처럼 비교적 알바생 교체가 빈번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휴학계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선 당분간 자기 편의점에서 야간 타임 근무를 해보라며 권유를 해왔죠.


이에 자취생이던 저는 괜찮은 기회라고 생각해 당장 사촌 형의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두세 달 정도 일했을 때였어요.


편의점에서 야간 타임 근무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겁니다. 주간 타임 근무자가 시간관념이 없으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다행히도 저랑 교대하는 주간 근무 알바생은 그야말로 시간관념이 딱 부러지던 남자로, 바로 1년 넘게 꾸준히 나오고 있다던 그 알바생이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단 1분이라도 늦게 교대하는 일이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저보다 연상에다 과묵한 편이었기에 따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그 남자를 1년 넘게 봐왔던 사촌 형은 그를 무척이나 신뢰했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요.


야간 근무 시간을 모두 채웠는데도 그 남자가 오지 않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처음엔 이런 일도 있구나 하며 혹시 주말로 착각했나 하고 생각했죠. 그래서 문자를 보내봤는데 답장이 없더군요.


30분 정도가 흐르고 전화를 걸었는데 핸드폰이 꺼져있었습니다. 하릴없이 사촌 형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했죠. 이후 연락을 받은 사촌 형이 대신 교대해 줬고, 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서 집에 가 그대로 잠에 빠졌습니다.


늘어지게 자고서 깬 저는 도시락이라도 얻어먹을 심산으로 사촌 형네 편의점을 갔습니다.


마침 편의점에선 사촌 형이 다음 근무자와 교대를 한 직후. 저는 대충 인사 건네는 겸해서 사촌 형에게 주간 타임의 남자와는 연락이 닿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촌 형은 여전히 연락이 안 된다며 짐짓 심각한 표정이었습니다. 사촌형은 지난 1년간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무언가 사고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되니 함께 그의 집에 찾아가 보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촌형과 함께 그가 산다던 원룸을 방문해 초인종을 눌렀으나 안에선 기척이 없더군요. 사촌 형은 더욱 심각해져선 재차 초인종을 누르며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역시 묵묵부답.


그때 '이상하네'라고 중얼거리며 사촌형이 무심결에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고, 안에서 잠겨있지 않았는지 그대로 문이 반쯤 열렸습니다. 저와 사촌 형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보다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안에선 조용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재즈 취향이던 저는 단박에 그것이 글렌 밀러가 연주한 '아메리칸 패트롤'임을 알아챘습니다.


한편, 음악이 흘러나오는 걸 듣고서 사촌 형은 '있나 본데?'라고 중얼거리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도 사촌 형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저희는 동시에 방 한가운데의 '그것'을 봤습니다.


그것은 바로, 천장 한가운데로 고정시킨 로프였습니다.


목매달 때 사용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매듭의 로프였습니다.


순간 영 점 몇초 사이에 저와 사촌 형은 자연스레 목매단 채 죽어있는 그의 시체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로프 끝 원형에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습니다. 그냥 말 그대로 방 한가운데 천장에 끝이 원형으로 매듭된 로프만이 걸려 있을 뿐.


정신을 차린 저희는 방과 화장실을 둘러봤으나 그의 자취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사촌 형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곧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고, 그들 역시 현장을 둘러보고선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보네요."



이후 참고인 자격으로 간단한 조사를 받은 저희는 조사를 진행 중이던 경찰로부터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 방에선 범죄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음

· 방에서 당사자의 꺼져있는 핸드폰을 발견

· 옷가지 등이 그대로 남아있음

· 로프에서 무언가가 매달렸던 흔적은 발견되지 않음



여기에 사촌 형이 그의 월급날은 아직 반 정도 남았다고 진술하면서 경찰은 정황상 실종 사건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해 줬습니다.


훗날, 경찰로부터 전화번호를 받은 그의 모친이 사촌 형에게 전화를 걸어왔답니다. 하지만 사촌 형은 딱히 실종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어 대답해 줄 게 없었고, 그의 모친 역시 아들이 어째서 실종된 것인지 전혀 모르더라고.


결국 그의 모친은 그로부터 반년 후 끝내 그가 살았던 원룸을 뺐다고 합니다.


요전번 사촌 형을 만나 그 남자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는데, 듣기론 여전히 실종 상태라고 합니다.


그 사건으로부터 몇 년이나 흘렀건만, 저는 지금도 가끔씩 그날 현장에서 흐르던 '아메리칸 패트롤'이 떠오르며 소름이 돋곤 합니다.




# 4


어린 시절,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정신없이 차도를 건너던 때였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위험해!'라는 소리가 들려와 놀라 멈춰 섰더니, 순간 내 눈앞을 차량이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그대로 급정거한 차량 운전석에서 아저씨가 나와 나에게 호통을 쳐댔다. 나는 혼나면서도 '위험해!'라는 소리가 들려온 곳을 둘러봤으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이게 내 어린 시절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던 기억.


현재로 돌아와, 실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이곳저곳을 거닐고 있었을 때였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맹이 하나가 좌우 확인도 하지 않고서 그대로 차도를 건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꼬맹이는 주행 중이던 차량을 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뛰어들었고, 이에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위험해!'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 내 시야엔 하얀 천장이 들어왔다.


곧이어 놀란 간호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걸 보고서야 내가 병원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어, 울면서 내 손을 쓰다듬는 가족들 너머로 의사가 하는 말을 듣자 일순 모든 게 떠올랐다. 야밤에 편의점을 들르러 차도를 건너던 순간, 과속 중이던 차량에 치여 그대로 의식불명이 됐던 것을.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