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글&출처: 이상한 옴니버스





* 다음의 세 가지 이야기는, 과거 일본의 익명 스레드에서 '실제로 겪었던 일을 이야기해 보자'라는 주제로 진행됐던 것 중 인상 깊으면서도 국내에 전파되지 않은 것들을 선별해 보관해 오던 이야기입니다. 번역 과정에서 보다 원활한 감상을 돕고자 문체를 다듬었다는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 1


내가 4년 전 가을에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이다.


감기에 걸려 오한이 심하기에 평소 다니던 오쿠보 역(주: 도쿄 신주쿠에 위치) 근처 병원으로 가던 길이었다.


승차장에서 철도를 기다리던 중 일순 찌릿찌릿한 두통이 엄습해 와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고는 두 눈을 감은 순간, 갑자기 기억이 끊기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웬 낯선 골목길에 우뚝 서 있는 나. 주위를 둘러보니 어두컴컴한 밤인 데다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는 어째서인지 갈색으로 염색돼 있고.


패닉이 와 옆에 보이는 라멘 가게에 들어가 다짜고짜 여기가 어디며 며칠이냐고 물었다.


이를 통해 나는 내가 있는 곳이 오사카 후쿠시마이며, 기억이 끊긴 순간으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났음을 알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은 원래 내 폰과는 다른 종류인 데다, 전화부에는 내가 알던 사람들의 연락처 대신 생전 처음 보는 이름의 전화번호가 10개 정도 저장돼 있었다.


나는 잔뜩 겁에 질려 핸드폰을 근처 강에다 던지고선 경찰서를 찾아갔다.


곧이어 경찰에서 우리 집으로 연락을 취했는데, 집에서도 내가 갑자기 사라져 이미 실종신고를 한 상태였다.


아무튼 그 이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나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정신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리고 다니던 직장은 당연히 복귀가 불가능해 파견직을 다니고 있다.


최면요법을 시도해 봤으나 나 스스로가 최면에 빠진 상태에서도 그때의 기억을 격렬하게 거부하더라고 들었다.


지금도 당시 기억이 끊겼던 순간의 기억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 2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중3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학교 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저를 포함한 스무 명 정도가 홈스테이로 캐나다를 간 적이 있었죠.


밴쿠버 공항에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공항 카페에서 잡담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친구가 황급히 '뒤에 봐봐'라고 말하기에 그쪽을 보니, 무려 저랑 똑같이 생긴 애가 'CANADA'라고 적힌 촌스러운 트레이닝복을 입고선 캐리어를 끌고 있었습니다.


분명 옷이나 들고 있는 짐가방은 달랐지만, 얼굴과 체형은 그야말로 제가 봐도 저 자신으로 보일 정도.


그 순간, 이쪽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그 애는 당황해하며 어디론가 가버리더군요.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은, 얼마 전 캐나다로 여행을 갔다 온 엄마가 밴쿠버 공항에서 저랑 똑같이 생긴 얼굴에 똑같은 체형을 한 동나이 대의 사람이 'CANADA'라고 적힌 트레이닝복을 입고서는 캐리어를 끌고 어디론가 뛰어가더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때 그 애가 저랑 똑같은 모습으로 성장했던 것일까요?




# 3


내 이야긴 아니고, 전직 교사였던 우리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


당시 할아버지는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한다.


교사를 하다 보면 으레 두뇌 명석한 학생이 눈에 띄곤 하는 법인데, 할아버지의 경우엔 자신의 교사생활 중 '그 중학생'이야말로 살면서 본 진짜 천재였다고 한다.


그 중학생은 특히나 수학에서 두각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내심 그 학생을 수학자의 길로 인도하는 게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가난한 집안의 차남이었던 그 학생은 더 이상 진학이 아닌 생업에 매달려야 할 판국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학생의 집을 찾아가 부모를 설득하는 한편 진학을 시키고자 사방팔방으로 애썼으나 결국엔 실패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 학생은 집안을 도와 생업에 종사하게 됐지만, 할아버지의 당부에 따라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독학을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30여 년 후.


한동안 연락이 끊겼었던, 이제는 중년이 된 그 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은퇴한 할아버지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 학생은 눈에 광채를 머금고는 자신의 손에 들린 한 권의 노트를 가리키며 외쳤다고 한다.



"선생님, 대발견을 했습니다!"



분위기에 휩쓸린 할아버지는 노트를 낚아채다시피 해서는 그 학생이 적어놓은 수학기호들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잠시 후, 할아버지는 충격으로 인해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학생이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연립방정식 해법의 논리였던 것이다.


분명, 이러한 수학적 이론을 홀로 독학으로 쌓아 올린다는 것은 당대의 천재일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라고.


그러나, 방정식의 체계는 이미 500년도 더 전에 완벽하게 갖춰져 현재는 고등학생 내지 중학생 정도만 해도 일반적으로 수업 등을 통해 익히고 있는 것이었던 것.


하지만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슬펐던 것은, 먹고 사는데 바빠 그 긴 시간 동안 그러한 현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늙어버린 학생의 인생사가 떠올라서였다고.




Bonus track

(이상한 옴니버스 앞으로 투고해 주신 '현동규'님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 외증조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외증조할아버지가 생전에 어떠한 분이셨는지 말씀해주실 때까지는요.


외증조할아버지는 젊으셨을 때부터 도법, 도술 이런 쪽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에 몇 년간 유학도 다녀오시고 생전 처음 보는 책들도 많이 들고 오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책을 가지고 이것저것 공부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배우신 것 중에는 축지법 같은 도술을 배우는 데 근간이 되는 계산법 같은 것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축지법이란, 텔레비전 같은데 나오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돌아다닐 수 있는 축지법이라고 하심)


그리고 그런 것 중,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간단한 몇 가지를 아들들(외증조할아버지의 자식)께 가르쳐주시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께 듣기로는 구구단 같은 걸 배우셨다고 하는데 그게 참 특이하더랍니다.


어머니의 표현을 따르면 '오호로봉주(오호로봉주인지 오호로봉조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신다 함) 2는 3, 오호로봉주 4는 8' 이런 식의 구구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계산법이 있어야 책에 나와 있는 도술들을 이해하고 연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위에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셨다고 했는데, 이에 관해서도 일례가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외할머니께 들으시길 어느 날은 외할머니께서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셨는데, (외할머니의 시점에서)큰오빠와 작은 오빠께서 외증조할아버지께 자신들도 축지법을 배우고 싶다고 사정을 하고 있더랍니다. 눈물까지 보이며 한 번만 가르쳐달라고 애원을 하는데도 증조할아버지는 안된다며 단호하게 소리치시더랍니다.


그래서 큰오빠께서 이유라도 말씀해주시라고 하셨는데, 외증조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너희는 이걸 배우더라도 통제하지 못한다. 좋은 쪽으로 써야 하는데 너희는 이걸 악용할 것이다'라고 하셨답니다.


그 후로도 외증조할아버지는 절대 그런 도술을 가르쳐주시지 않으셨고, 돌아가실 때에도 자식들이 하나만 남겨두라고 애원해도 소장하고 계셨던 모든 책을 다 태워버리셨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외증조할아버지 얘기고, 아래는 외할아버지(외증조할아버지의 자식) 얘기입니다.


그때 당시 어머니가 사시던 동네에는 병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이들 민간요법에 의존해 아픈 곳을 치료했는데, 외할아버지께서는 의료용으로 양귀비를 재배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막 밭이나 이런 데 크게 기르셨던 건 아니고, 뒷마당에 천막을 치시고 거기서 몇 십 그루 내외로 기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 분들이 아프신 곳이 있으실 때마다 외할아버지께 부탁을 해서 조금씩 얻어가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리곤 뒷마당에 수상한 게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말하더랍니다. 내막은, 지나가던 행인이 뒷마당의 천막을 보고 수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경찰한테 들키면 안 되니 앞에서 외할아버지가 경찰과 얘기를 나누며 잠시 시간을 끌 동안에, 외할머니와 저희 어머니는 허겁지겁 양귀비를 뽑아서 숨기고 계셨답니다.


근데 절반도 다 뽑지 못했는데 경찰이 뒷마당으로 들어오더랍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이고 이제 우리 가족 다 잡혀가겠구나' 하고 털썩 주저앉으셨는데, 왜인지 경찰이 스윽 둘러보더니 그냥 나가더랍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일단 살았으니 안심하고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흐트러진 마당을 정리하고 계실 때 외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도술을 부려 경찰의 눈을 멀게 해 저것들을 못 보고 지나친 것이다. 하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양귀비는 인제 그만 길러야겠다."



그리고선 양귀비들을 다 처분하고 다시는 기르시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