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넷이 있는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편의상 길쭉이 홀쭉이 뚱땡이 난쟁이로 얘기하겠다.


녀석들은 캠핑 도구들을 이용하여 모닥불을 피워두고

둥그렇게 앉아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얘기하고있었다.


내가 동굴에 발을 디딘 순간 번개가 근처에 떨어지며

주변이 일순간 환하게 밝아졌고

동굴 입구를 등지고있던 셋을 제외하고

입구쪽을 보여 앉아있던 길쭉이는

내쪽을 바라보며 갑자기 헉 하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나 역시 그 모습에 놀라 고개를 돌려 동굴 밖을 바라보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뭐야...뭔데, 뭐 있었어?"

내가 녀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으며 물었다.


"아...아냐 아무것도 아냐..."

녀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무언가 겁먹은 표정으로 모닥불만 바라보며

미세하게 손을 떨고있었다. 


말이 없어진 길쭉이를 제외하고 우리는 다시금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혈기 왕성한 남정네들이

이름도 모르는 숲에 낭만을 찾으며 

캠핑하잡시고 들어왔다가


비가 세차게 오는 바람에 

어설프게 설치했던 텐드들은 다 무너지고

현재는 급하게 찾아 들어온 동굴에서

언제 올지 모를 구조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렇다곤 해도 어떻게 핸드폰도 안터지냐"

한놈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리자

나머지도 내심 동의하는듯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우리 남은 물자들부터 확인해보자"

젖었던 몸이 대충 마른 내가 의견을 냈고 

우리는 가져온 가방들을 모두 열어서

먹을것과 사용할 도구들의 수량을 확인했다.


캠핑용 도구들은 조금 남아있었으나

먹을것이 얼마 남지 않아있었다.

어차피 하루만 있다가 갈 생각으로 챙긴것인지

영 씹을게 나오질 않았다.


그날은 일단 몸을 마저 말리고 

간단하게 에너지 바로 요기를 한 뒤

각자 옷을 여민채로 동굴 안에서 잠이 들었다.


'자나?'


다른 녀석들이 모두 자는것을 확인한 뒤 

비가 어느정도 잦아들었을때

나는 몰래 빠져나와

동굴에서 좀 떨어진곳으로 와서

가져온 식량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너네는 그걸로 요기가 될지 몰라도

나는 그걸로 택도 없단말이야...'


키에 비해 몸무게가 많이 나갔던 나는

에너지바 한두개로는 도저히 허기를 채울수 없었다.

언제 나가게 될지도 모르는데

녀석들에게 들킬수는 없었다.


뭘 먹은게 티나지 않게 뒷정리를 하고

추가로 빼돌렸던 식량은 나만 알아볼수 있게

표시를 하고 낙엽속에 잘 숨겼다.


동굴로 다시 돌아와서 

다른 녀석들이 다 잘 자는것을 확인한 후

부른 배를 기분좋게 쓰다듬으며 

나도 다시 잠에 들었다.


배가 불러서 조금 느긋하게 일어나니

다른녀석들은 허기가 져서 잠이 금방 깼는지

제법 일찍 일어나서부터 무슨 얘기를 하고있었다.


나도 부스스한 몸을 일으키며 무슨일인지 물어보자

길쭉이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 어두운 밤에 대체 어딜 갔다는거야...?"


"혼자 뭐 먹으러 갔다가 길 잃어버린거 아냐?"


조금 뜨끔했다.


"산짐승이 물어가기라도 했나?"


"다 같이 잤는데 비명도 없이 걔만...?"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지만 

이렇다 할만한 확실한 증거가 나오질 않았다.


"이 숲에 무슨 귀신이나 괴물이라도 나오는거 아냐?"

난쟁이가 덜덜 떨며 조심스레 얘기했다.


"아이 괴물은 무슨...어린애도 아니고 그게 뭔소리야"

홀쭉이가 받아쳤고


"그...그렇게 말하는놈이 항상 제일 먼저 잡혀가더라"

하며 난쟁이가 삐진듯이 다시 맞받아쳤다.


그날은 구조대를 기다리며

길쭉이를 찾아보고

겸사겸사 먹을만한것도 찾으러 

각자 돌아다녔다. 


해가 지기 직전에 다시 동굴로 모두 모였으나

길쭉이도 찾지 못하였고 나가는 길 역시 찾지 못했다,

그나마 건진거라곤

먹어도 될지 확신이 들지 않는 버섯 몇개와

낙엽 속에서 찾아낸 도토리 한줌정도였다.


별수없이 그날도 가져왔던 음식들로 간단히 요기를하고

나는 다시금 주려오는 배를 부여잡으며

자는척을 하기 위해 돌아누웠다.


그날 밤 역시 밤에 몰래 빠져나와

숨겨뒀던 식량으로 주린 배를 채웠고 

녀석들과 있을때 먹은게 영 부실했는지

내가 쟁여뒀던 식량도 

그 자리에서 나 동나버리고 말았다.


바스락-


배를 마저 다 채우고

잠깐 트름이 나오려는것을

기다리고있을때


조금 떨어진곳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바로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았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그쪽에 있던 나무 뒤를 확인해보았으나

별다른 이상함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너무 예민했던걸까


나는 찜찜한 기분을 뒤로하고

다시 동굴로 돌아가서 

누워있는 녀석들의 얼굴을 잠깐 살펴보았다.


'음 얘네는 아닌거같은데...'


이제는 돌바닥에서 자는것도 꽤 익숙해졌는지

한놈은 코까지 골아가며 자고있었다.


그걸 보고있자니 

나 역시 다시금 몰려오는 졸음에

잡생각은 떨쳐내고 내 자리에 다시 누웠다.


다음날도 전날과 같이

먹을것과 길쭉이를 찾고

운이 좋다면 나갈 길도 찾기 위해 

시간을 정해둔 뒤 각자 흩어지기로 했다.


다른놈들은 이틀째 부실하게 끼니를 떼우니

얼굴이 처음 봤을때보다 꽤나 홀쭉해져있었고


나 역시도 이젠 몰래 먹을 식량이 

모두 떨어졌기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먹을것을 찾아다녔다.


그때였다.


운좋게도 적당한 크기의 사냥감이 나타났고

녀석은 고개를 개울에 처박은 뒤 물을 마시고있었다.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사냥감의 목을 찔렀고

녀석은 조금 저항하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사냥을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먹을걸 구하러 다니던것에 혈안이 되어

숲을 뛰어다녔던 나는

너무나도 배가 고파져있었다.


나는 다른녀석들에게 들키기 전에

잡은 사냥감을 그 자리에서 잘 갈무리 한 뒤

먼저 배를 조금 채웠고

남은 부분은 잘 포장하여 숨겼다.


그렇게 한바탕 식사를 하고 나니

해는 이미 점점 기울고 있었고

다른 녀석들이 갔을만한 방향으로 가보자


난쟁이와 뚱땡이가 모여서는 

심각하게 뭔가를 보고있었다.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으나 점점 가까이 가보니

그 앞에는 하얀 뼈같은것이 있는것이 보였다.


"야! 거기서 뭐해?"


내가 녀석들을 부르며 다가가자

녀석들이 내쪽을 보고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라 

뭔가 있나 싶어 뒤를 돌아본 나는


'아차...!'


하며 황급히 녀석들이 달려간 방향을 따라 내달렸다.


기다려...!


나도 같이가...!


나도 살고싶어!!


너네만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돌아오란 말이야!


우드득 뚜둑-


내 다리에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양 팔로 땅을 짚으며 절규했다.


기다려!!


기다리라고...


나만 두고가지마!!




...







어차피...


너희는...



내게서 도망칠 수 없어.







뺨에 묻어있던 홀쭉이의 피를 혀로 핥은 뒤


나는 앞발톱을 땅에 박아넣고


녀석들이 도망친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