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말했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만 내가 본 악마는 순간에 있었어요.


악마를 보았던 그 날은 아주 추운 아침이었어요. 녹아내리던 도로 위의 빙판이 다시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이었죠.


그래요, 나는 운전을 하고 있었어요. 시속 70km/h였고, 시내는 평화로웠어요. 브레이크를 밟기 전까지는.


몇일 뒤 경찰에서는 그게 블랙아이스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당시의 저는 영문을 알 수 없었죠.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늦었겠지만.


세상에, 브레이크가 먹통이 된걸 알아차렸을 때 머리속에 번개가 친 것 같았어요.


맞은 편 차선에서 달려오던 덤프트럭에 거의 박살이 날뻔 했죠. 사실 그게 가장 나은 미래였을거에요.


앞바퀴을 어느정도 통제할 수 있을 무렵, 악마는 나타났어요. 갑자기 모든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멈춰버렸거든요.


그 굳어버린 세상속에서 나는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었어요. 핸들을 쥔 두 손과, 아이들을 바라보는 제 두 눈동자 말이죠.


아침이었다고 말했었나요? 씨발. 대여섯씩이나 되는 아이들이 등교길을 걷고 있더군요. 왁자지껄 떠드는 것 같았어요.


이대로 가다간 시속 70km/h로 저 아이들을 받아버릴 것 같았죠. 결과는... 뻔하죠. 하지만 악마는 그 순간에 있었어요.


그 신난 아이들 뒤로 홀로 걷는 아이가 있더군요. 추욱 늘어진 어깨와 덥수룩한 머리카락에서 묘한 동정심이 들었어요.


하지만 내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기만 한다면 그 아이를 죽이는 대신 나머지 다섯 명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좆같은 트롤리. 아니, 조금 더 내게는 개인적인 문제였어요. 만약에 내가 저 다섯 명을 치여죽이면, 내가 어떻게 되겠어요?


다섯 명의 살인자가 되고, 부모들에게는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줘야하겠죠. 난 완전히 끝장나는거에요.


하지만 한 명이라면... 그런 생각이 드는거에요. 빙판길 사고로 한 명 죽는 뉴스는 겨울철이면 자주 나오지 않던가?


소름이 다 돋더군요. 내가 그런생각까지 다 하다니. 하지만 악마가 멈추어놓은 이 순간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죠.


나는 두 손으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야 했어요. 아무리 옳지 못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하더라도.


바퀴가 올바른 방향을 향해 놓이자 마자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어요. 내가 후회할 겨를도 없이 쏜살같았죠.


차는 순식간에 인도로 튀어올라갔고, 아이의 모습은 본닛 아래로 빨려들어갔어요. 덜컹거리는 느낌이 들면서 나는 정신을 잃었죠.


그 후의 상황은 저에게 있어서 기적같았어요. 언론에서는 경찰이 말한 블랙아이스의 위험성을 앵무새처럼 떠들었고,


그 외톨이같은 아이는 실제로도 부모가 반쯤 내놓은 자식이었어요. 우리 보험사에서 만족스럽게 처리했죠.


하지만 저는 여전히 그 순간의 악마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 모든 일들을 밝히고 이제 끝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목에 밧줄을 거는 이 순간에도 그 악마가 이곳에 있다는 느낌이 등줄기를 따라 느껴지거든요.


의자를 발로 차는 순간, 문뜩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핸들을 꺾는 그 순간에 악마는


나밖에 없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