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귀신이 어딨겠습니까. 안심하세요.”


호언장담하며 말했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지만, 상대는 동의하지 않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 귀신이 거기 있다니까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듯한 얼굴이었다.


내가 귀신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여타 사람들에 비해 그 존재를 확신하고 있는 편이다.
다만 그 존재의 정의를 남다르게 해석하고 있을 뿐.


사람들은 귀신을 인간의 영혼으로 여긴다.
자신의 삶에, 혹은 타인의 삶에 미련을 남겨 저승에 가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도는 영적 존재라고.
그 인간의 마음과 한을 그대로 품은 채 산 사람에게 간섭하는, 두려운 미지의 존재라고.


그렇지 않다. 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은 인간이 살아생전 품고 있던 영혼 따위가 아니다.
인간이 오랫동안 살아오며 쌓아온 욕망의 찌꺼기가 실재하지 않는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마치 언젠가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보이고 또 행동하지만, 그것은 그저 정신적인 잔상일 뿐이라 나는 확신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것들은 산 사람에게 물리적으로 간섭하지 못한다.
이따금 형태를 볼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는 있으나 그게 전부다.
물리적으로 사람을 만지거나 닿을 수 없다.


그저 보이고 들릴 뿐인 존재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이 내가 모두가 꺼려하는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였다.
온갖 흉흉한 소문이 나도는 흉가를 무너뜨리고 새 터를 다듬는 일은 그다지 선호 받는 직업이 아니었다.
그리고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제법 만족스러운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나라에는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폐가가 있다.
단순히 복잡한 돈 문제가 얽혀 방치된 폐건물도 있겠으나, 내가 붙잡는 일거리는 조금 다른 종류다.
한낱 귀신을 향한 두려움으로 손대지 못한 채 버려진 집이 얼마나 많은지 알려주면 열에 아홉은 놀랄 것이다.


“자, 그러면, 기존의 터도 남기지 말고 완전히 밀어버리란 말씀이시죠?”


“네. 그냥 그 흉물스러운 집의 흔적조차 남지 않게 해주세요. 안에 남겨둔 가구나 물건도 다 필요 없으니 전부 치워버리고요. 석면이랑 신고는 다 해놨으니까, 그냥 가서 철거만 해주시면 돼요.”


운이 좋았다. 건물 철거에 있어서 가장 번거로운 작업이 석면 조사와 철거 신고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객들은 그 과정을 거쳐야만 건물이 철거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렇기에 보통은 그 과정의 대행까지가 업무로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마 다른 업자에게 요청을 했지만 도중에 파토가 난 것일 테지.
종종 그런 경우가 있기는 했다.
그리고 그런 경우일수록 페이도 세다.


“걱정 마십시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만들어 놓겠습니다.”


최대한 건강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직업을 택한 이상, 말끔하고 혈색 좋은 외모를 유지하는 건 필수적인 일이다.
전문적으로 흉가를 철거하는 업자가 조금이라도 초췌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고객의 상상력은 날개를 펼친다.
왜 저리 피곤해 보이지, 잠을 못 자기라도 하는 건가?
왜 잠을 설치는 걸까? 혹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십중팔구 의뢰를 취소한다.
일반 건설사가 아닌 나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흉가를 철거하는 일에 불안을 품고 있다는 의미다.
거기에 나쁜 상상이 가미되면 불안은 확신으로 돌변한다.


그렇기에 최대한 몸을 건강히 유지하고,
언제나 유쾌한 미소를 잃지 말아야 했다.
매일같이 흉가를 밀어버려도 그 어떤 악영향도 없었음을 어필하기 위함이다.
그 모습을 보면 사람은 자연스레 긍정적인 희망을 품는다.
철거를 직접 진행하는 책임자도 이렇게 멀쩡한데, 나도 별일 없겠지.



물론, 고객의 긍정적 상상과는 별개로, 내가 흉가를 해체하고 난 뒤에 무언가 변화를 겪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변화란 것이 썩 유쾌하진 않다는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뭇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끔찍한 변화는 아니라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생명조차 없는 비존재가 산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보이는 것뿐이다.
창밖에 우두커니 서 있다든지, 옷장 안에 웅크리고 있다든지, 침대 아래에 엎드린 채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든지.


물론 세상에는 그런 모습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그것들이 천장에 붙어 있든, 냉장고 안에 있든, 욕조 안에 있든 내게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손짓 한 번이면 흐릿하게 흩어져 비켜나가는 그런 영적 찌꺼기들이 날 두렵게 할 수는 없었다.


지금껏 내게서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고는 세상에 단 네 명뿐이었다.
내 아버지, 서로 못 볼 꼴 다 보고 자란 불알친구, 제법 오래 사귀었지만 끝내는 성격 차이로 헤어지고 만 전 여자친구, 그리고 대학시절 재미로 들었던 심리학 수업의 홍 교수.


아버지는 그것을 어린 아들의 유치한 상상력으로 이해했고, 오랜 친구는 술에 취해 내뱉는 헛소리로 치부했으며, 반년 전에 헤어진 전 여자친구는 귀신이란 말에 곧장 질겁하며 귀를 막았다.
오직 홍 교수만이 그 이야기를 유심히, 그리고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용케도 침착하게 말하는구나. 나였으면 며칠 잠 못 잤을걸.’


그는 술김에 비밀을 털어놓는 내게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었다.
홍 교수와는 어쩌다 보니 반쯤 술친구가 되어 몇 년째 술자리를 이어 가고 있었다.
아마, 그를 잘 몰랐던 때라면 내 말을 믿는 대신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며 그의 성격을 제법 파악했기에 그 말이 거짓 없는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모든 일들에 깊은 지적 호기심을 보였다.
그 며칠 잠 못 이룰 감정이란 것도, 분명 공포가 아닌 기대감일 것이다.


‘처음 봤을 때는 저도 많이 무서웠죠. 얼마 지나고 그것들이 나한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채기 전까지는.’


‘그래, 직접 만질 수는 없는 모양이군. 그러니 귀신이겠지.’


‘사실상 환각 같은 거라고 보면 됩니다. 어쩌면 정말 환각일 수도 있고.’


그 말과 함께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때 홍 교수가 무어라 답했는지는 어째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마 들뜬 목소리로 그 현상에 대해 몇 가지 더 캐물었을 것이다.
그는 궁금한 건 절대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때의 대화는 심리학 교수가 뭘 그런 것까지 다 알고 있느냐고 황당한 얼굴로 묻는 내 목소리만이 기억날 뿐이다.



“하, 씨발. 주소 들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검색하고는 대번에 욕설을 내뱉었다.
어쩐지 생소한 동네다 했더니, 답이 보이질 않는 산골 깊숙한 곳의 집이었다.
그것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야 하는 빌어먹을 깡촌.
5톤 트럭에 커다란 굴삭기를 싣고 직접 흉가까지 찾아가야 하는 나로서는 최악의 경로다.


철거 과정을 모두 내가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집을 무너뜨리는 것만은 내가 직접 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인부들이, 업계 터부니 기분이니 하는 말 같잖은 변명으로 흉가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거부하는 탓이었다.
물론 거부는 겉치레일 뿐이고, 그냥 돈을 더 달라는 뜻이다.


3층을 넘어가는 커다란 영업소 등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추가 비용을 내고서 인력을 써야 했다.
더 쉬우면 쉬웠지 더 힘들 것도 없는 흉가 철거에 그렇게나 돈을 쓰고 나면 속이 쓰려왔다.
그렇기에 정말 불가능한 수준이 아닌 한은,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만은 직접 하는 것이다.
어차피 가장 힘들고 번거로운 건 잔해를 치우고 터를 다듬는 일이니까.


덜컹!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차가 튀어 올랐다.
급커브 구간 한복판에 도로가 일그러져 턱이 올라와 있었다.
적재함에 중장비를 싣고 있던 채였고, 오르막이 가팔라 제법 세게 가속을 하던 참이었다.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그것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의뢰인을 향한 분노가 치솟았다.
물론 도로가 일그러져 있던 것이 의뢰인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당장의 기분을 풀기 위해 탓할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다.


“미친놈이, 도로가 이 모양인데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냅다 욕설을 내뱉었다.
어차피 듣는 귀도 없었다.
저번 주까지는 조수석에 강원도 삼척의 흉흉한 별장에서 달고 온 귀신이 앉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월요일 즈음에 사라져버렸으니까.



지겨운 산길도 끝이 보이고,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가드레일 너머로 무언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인가 싶어 속도를 줄이고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것이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 있는 두 발이 묘하게 어긋나 지면에 닿아 있지 않았다.


마치 조잡한 3D 게임처럼 그것들은 이따금 실제 지형과 맞지 않는 곳에 서 있곤 했다.
그냥 귀신이라 공중을 떠다닐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죽을 당시에는 거기에도 땅바닥이 있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것들은 내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니 짜증스레 혀를 차고는 지나쳐갈 뿐이다.
놈도 나를 보지 못했다는 듯 여전히 멍청하게 땅바닥을 쳐다보며 서 있기만 하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를 지나서였다.
미리 식사를 하고 오기에도 애매한 시간과 장소였기에 굶주린 배가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이 외진 시골에는 식당 비슷한 것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그렇다고 여기까지 산을 올라와 놓고 다시 내려갈 수도 없었다.


최대한 작업을 빨리 끝내고 산을 내려가는 것이 가장 빠른 선택지였다.
다행히 의뢰받은 흉가는 아주 작고 낡은 집이었다.
이런 건물이라면 단 하루 만에 일을 다 끝내고 늦은 저녁이나마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굴삭기를 트럭에서 내리기 전에, 먼저 집안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고가의 물건 등을 미리 밖으로 빼두기 위함은 아니다.
내게 철거 의뢰를 넣은 이상 고객은 이미 이 집 내부의 모든 물건에 미련이 없다는 뜻이고, 나 또한 그런 낡아빠진 물건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상식과 타인의 상식이 가끔 맞지 않을 때가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언젠가 대차게 무너뜨린 벽의 파편 아래에서 LPG 가스통이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가스를 뿜어댈 때가 있었다.
바로 직전까지 담배를 물고 작업하던 나로서는 등골이 오싹하다 못해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내 일생 가장 두려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못해도 세 번째까지는 들 것이다.


그래. 귀신 따위는 진정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돈, 그 다음이 머리 나쁜 인간이다.



흉가의 현관은 커다란 불투명 유리가 두 짝 위아래로 붙은 스테인리스 문으로 되어 있었다.
유난히 시골에는 이런 문짝을 달고 있는 집이 많았다.
마당의 대문이 그리 튼튼해 보이지도 않았건만, 도대체 이 허술한 문짝에 무슨 보안성을 기대하는 것일까.
당장 지금만 해도 누군가가 문을 강제로 열기 위해 위쪽 유리판을 깨부순 탓에 안이 훤히 보이는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깨진 유리창 너머로 빌어먹을 귀신 하나가 보였다.
구식 브라운관 TV를 얹어둔 기다란 수납장.
그 한쪽 끄트머리에 쭈그려 앉아 어깨를 흠칫흠칫 떠는 모습이었다.


“쯧.”


인상을 구기며 크게 혀를 찼다.
귀신이 있다고 작업이 어려워지거나 거리껴지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런 곳이기에 내가 일을 받은 것이니까.
그러나 벌레 잡는 방역 기사라고 해서 바퀴벌레가 마구 기어 나오는 모습이 달가울 리가 없겠지.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가 됐든, 저런 지저분한 꼴을 보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런 짜증과는 별개로 일은 확실히 해야 했다.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소리에 반응하여 수납장 위의 귀신이 반응했다.
흠칫거리던 어깨는 그대로 멈춘 채, 목만을 빙글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눈을 마주치자마자 방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어딜, 귀신새끼가.


“이히, 이히힉, 이힉, 이히힛!”


귀신은 덜떨어진 웃음소리를 내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제 영역에 발을 디딘 나를 탐탁찮아 하는 반응이다.
그런 반응 자체가 나는 견딜 수 없이 짜증스럽고 역겨웠다.
이미 죽어 살갗도 남지 않은 놈들이, 사람의 땅을 탐하고 집을 취하려 한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전기는 안 들어오고. 수도는 끊겼고. 가스통은 밖에 있을 거고. 염병, 큰 가구는 좀 알아서 치울 것이지.”


놈들의 반응을 일일이 지켜보다간 날이 바뀌어도 일을 끝내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이미 죽어 아무것도 못하는 찌꺼기들.
모조리 무시해버리고 내 할 일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잡다한 가구가 많았지만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었다.
가구 채로 건물을 무너뜨리면 항상 인부들의 불만이 뒤따랐으나, 그것도 이젠 거의 인사말처럼 되어버린 지 오래다.


마지막으로 부엌과 보일러실에서 가스가 분리되어 잘 마무리 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사전준비는 이걸로 충분하다.
이제 중장비로 건물을 죄다 무너뜨리는 일만 남았다.


“이히히힉! 키히힛!”


그것의 발악소리가 더 커졌다.
내가 제 보금자리를 철거할 거란 사실을 알아챘을까.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뇌라고는 손가락만한 육편조차 남지 않은 영적 찌꺼기들에게 그런 사고 능력이 있을 거라고는 보기 어렵다.
아마 단순히 제 영역을 내가 활개치고 다니는 것에 분노를 표하고 있는 것이리라.


“거 씨발, 존나게 시끄럽네. 주둥이 좀 다물고 있어.”


성큼성큼 놈에게 다가가 냅다 발길질을 했다.
내 발이 뻗어나간 자리부터 놈의 형상이 울걱울걱 밀려나는 듯하더니, 이내 슬쩍 옆으로 자리를 피했다.
내게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작게 똑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놈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산 사람을 겁먹게 하려 들지만, 정작 그것들의 약점은 산 사람이었다.
원리는 알지도 못하고, 궁금하지도 않다.
확실한 사실은 산 사람의 기운이 죽은 것들의 기운을 밀어낸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사람에게 손을 대기는커녕 가까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 귀신으로서의 존재가 흐려진다.
그러니 언제나 멀찍이, 구석진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분위기만으로 인간을 겁주려 애쓸 뿐.
그저 보일 뿐이라면 두려워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김 군. 이건 내 생각인데, 그것들이 전혀 자네에게 간섭하지 못한다는 건 틀린 말 같아.’


문득 그날 밤 홍 교수가 했던 말이 기억 위로 떠올랐다.
그래, 분명 그는 그런 말을 했었다.
그러나 그 뒤의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게 왜 틀렸다고 했었더라.


술기운도 있었지만, 애초에 그의 뒷말을 진지하게 듣지는 않았었다.
홍 교수는 항상 모든 가능성에 반대되는 가설을 제시하길 좋아했다.
그러니 그때의 말도 아마 그 버릇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홍 교수의 말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굴삭기가 벽을 박살내고 가구를 으스러뜨릴 때마다 분노인지 절규인지 모를 유령 놈의 악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거의 묻어버릴 만큼, 새삼스레 그 생각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지금껏 수많은 흉가를 철거해 왔고, 수많은 영적 찌꺼기들을 목격해 왔다.
개중에는 꺼지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며 악다구니를 쓰는 놈도 있었다.
그 정도로 구체적인 문장을 말하는 놈은 처음 봤었기에 제법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놈도 별것 없이 결국 내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귀신이란 싸구려 존재에 더 큰 자신감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얼쩡거리는 빌어먹을 잡것은 그보다도 훨씬 별 것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이 순간에 홍 교수의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걸까.
자그마한 집채가 본래의 모습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무너질 때까지, 나는 그 이유도, 홍 교수가 했던 말도 떠올려내지 못했다.




어느새 하늘은 완전히 새까만 밤이 되어 있었다.
산속이라 해가 빨리 지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순전히 내 예상보다 작업이 오래 걸린 탓이다.


하지만 내 작업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건물을 반쯤 무너뜨렸을 때쯤, 마을 이장이라는 영감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온갖 트집을 잡아 왔기 때문이었다.


집주인의 의뢰도 받았고, 나라의 허가도 받았으며,
먼지가 지나치게 날리지 않도록 대처도 하고 있었다.
한낱 마을 이장 따위가 작업을 막을 권리는 없었다.


그러나 이런 깡촌에서는 그런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다.
언뜻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장이라는 이름에는 생각보다도 묵직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암묵적인 힘만큼이나 묵직한 탐욕도 뒤따랐다.


이런 자들이 작업 현장까지 쫓아와 언성을 높이는 것은 정말 주민들의 민원이나 마을의 평안을 위한 것이 아니다.
‘누구 허락 받고 이런 짓을 하느냐’는 말은 정말로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허가를 받은 공사인지를 묻는 말이 아니다.


내 구역에 들어와 경제활동을 하려거든, 정부고 나발이고 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라고 그들만의 법칙을 선포하는 것이다.


보통은 십만 원 정도 찔러 주면 입을 다무는 법이다.
헌데 그 영감은 어찌나 탐욕스러운지, 거의 두 배나 되는 돈을 받아내고서야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이미 죽어 없어진 주제에 제 영역을 주장하는 귀신이란 것들도 뻔뻔하고 염치가 없었으나, 이조차도 살아 있는 인간이 더했다.
귀신보다도 무서운 것은 돈, 그리고 머리 나쁜 인간.
그것을 다시 한 번 체감하고 나니 머릿속을 가득 메우던 홍 교수의 목소리도 완전히 가라앉았다.


여느 때와 같이, 거실 한복판을 점거하고 있던 그 잡것도 건물이 완전히 붕괴되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지 않았다.
보통 이렇게 사라진 귀신은 내가 알지 못하게 조용히 내 집까지 따라오곤 했다.
그리고 며칠간 나를 괴롭히려 애를 쓰다가, 그게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어느 순간에 사라지곤 했다.


“예, 철거는 다 끝났으니 내일 아침부터 바로 작업해 주세요. 저번에 삼척에서 사고 쳤던 그 양반은 부르지 마시고. 아니, 그때도 부르지 말랬는데 불렀잖습니까.”


현장을 적당히 정리한 뒤 굴삭기를 다시 트럭에 올리고 작업반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전화를 끊을 때쯤 등 뒤에서 그 잡것이 웃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히힉, 으히힉!”


굳이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어차피 뒤돌아봐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늘 있는 일이기에 새삼스레 놀랄 이유도 없었다.
그저 그것들이 사람을 겁주기 위해 부리는 수작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 웃기지도 않는 개수작보다도 주린 배가 더 고역이었다.
계획했던 늦은 저녁조차도 시기를 놓쳤다.
이젠 집에 들어가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는 수밖에 남지 않았다.
옘병, 그 영감쟁이만 없었어도.
차에 올라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길바닥에 거칠게 침을 뱉었다.




가뜩이나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은 해가 지면서 더 위태롭게 느껴졌다.
길 곳곳에 튀어나온 산줄기가 연신 헤드라이트를 가렸다.
길이 한 번 굽을 때마다 나는 매번 눈을 감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올라오는 길에 보았던 전체적인 구조는 기억하고 있었다.
길이 유난히 좁은 것도 억지로 속력을 줄일 필요는 없었다.
이런 산골구석의 심야에 다른 차가 올라올 리는 없으니, 걱정 없이 넉넉하게 맞은편 차선까지 밟을 수 있었다.


“킥……. 키킥…….”


문득, 그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일순 긴장감으로 눈썹을 꿈틀거렸다.


놈의 소리가 들린다는 게 긴장의 이유는 아니었다.
작업 후 귀갓길에 그것들의 소리가 들리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저 그것의 목소리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챘을 뿐이다.


지금까지의 웃음소리가 광인의 발작적인 웃음소리와 같았다.
그리고 지금 들려온 것은, 너저분한 장난질을 꾸미고 그것이 드러나길 기다리는 음흉한 웃음소리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인간을 겁주기 위해 온갖 음산한 소리를 내는 귀신은 몇 번이고 있었지만, 갑자기 다른 소리를 내는, 그것도 뭔가 속내가 있는 듯한 웃음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김 군. 이건 내 생각인데, 그것들이 전혀 자네에게 간섭하지 못한다는 건 틀린 말 같아.’


홍 교수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왜 하필 이 순간에 그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것일까.
그리고 그가 그 뒤에 했던 말은 무슨 말이었을까.


그 귀신 놈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날 해할 방법은 없다.
내 목을 조를 수도 없고, 내 눈알을 파낼 수도 없고, 트럭 타이어에 펑크를 내는 것조차 할 수 없다.
그런 무형의 존재가 어떻게 내게 간섭할 수 있단 말인가.


“푸힉, 으키킥…….”


불쾌한 웃음소리가 다시 고막을 찔러왔다.
그리고 문득 바라본 트럭의 사이드미러 너머로 놈이 트럭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차에 달라붙은 채로도 머리가 휘날리거나 옷자락이 휘날리는 일은 없었다.
당연했다. 놈은 실체가 없으니까.
사람은커녕 바람에조차 영향을 끼치지도, 받지도 못하는 허상이니까.


그런데도 어째선지 이마 위로 식은땀이 찌걱찌걱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극도의 긴장감에 얼굴에 피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듯한 감각도 느껴졌다.
마치 선명한 위험 앞에 동물적 본능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허. 뭐가 틀렸는데요?’


그날, 그 술자리에서, 홍 교수의 말에 반문하는 내 목소리가 떠올랐다.
별로 흥미도 없었지만, 일단 홍 교수의 이야기는 대체로 재밌게 들을 수 있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다음 말을 듣기 위해 그런 말을 물었었다.


“키히힉! 케헤헤헤!”


놈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지고 더욱 음산해졌다.
트럭 옆면을 타고 운전석 가까이로 빠르게 기어오는 것이 사이드미러에 비쳤다.
보통 사람이라면 놀라 까무러칠 광경이었겠지만, 나는 아니다.
보이고 들리는 것뿐이라면 겁을 먹을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네는 관측이라는 행위를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어. 보고, 보인다는 건 생각보다 실질적으로 영향이 있는 행위거든. 과학적으로.’


마침내, 홍 교수의 뒷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때의 나는 헛웃음과 함께 소주 한 잔을 꺾고 그에게 말했었다.


‘심리학 교수님이 또 과학 타령입니까.’


‘취미로 얕게 배운 말들뿐이지만, 그래도 정말이야.’


홍 교수의 신이 난 목소리가 귓가를 그득이 메웠다.
그리고 그것의 웃음소리가 홍 교수의 목소리를 마구잡이로 파헤쳤다.


“키히히히힛! 캬하학!”


놈의 팔이 사이드미러를 붙잡고, 차체 프레임을 짚고, 마치 높은 곳에 올라가듯 훌쩍 상체를 들어 트럭의 전면유리 위로 엎어졌다.
얼굴을 유리 앞으로 바싹 들이밀고 찢어질 듯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캬하하하학! 키하하하핫!”


귀가 아플 정도로 웃음소리가 커졌다.
그제야 놈이 노리는 바를 깨달았다.
내 눈에는 놈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했다.
놈들이 내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시야 한 구석에 보이는 것뿐이라고.
실제로 그러했지만,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아무리 실체가 없는 듯해도, 다른 변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더라도, 일단 눈에 보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관측자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거지. 그리고 관측자도 영향을 받는 거고.’


놈들이 내 눈에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해 내 눈에 비쳐야 할 무언가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내 눈에 보여야 할 도로를 완전히 가리고 있는 놈의 몸뚱이처럼.



이를 꽉 깨물며 브레이크를 반쯤 밟았다.
반쯤 감각에 맡겨 핸들을 틀었다.
급격한 커브길에 도로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놈이 가리지 못한 유리창 너머를 필사적으로 확인했다.


적재함에 실린 커다란 굴삭기 탓에 그 이상 제동을 걸 수는 없었다.
가뜩이나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이 상황에 급제동을 걸었다간 그대로 굴삭기에 깔려 뭉개질 것이다.


“캬하하하하하! 키하하하하하하학!”


핸들을 너무 많이 꺾었는지, 한쪽 바퀴가 커브 안쪽의 배수로에 덜컹이는 것이 느껴졌다.
차라리 이게 나았다.
적어도 가드레일을 뚫고 하늘을 날지는 않을 테니까.
굴삭기가 튕겨나가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더라도 내가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는 와중에도 놈은 남은 하체를 끌어올려 완전히 차량 앞면을 덮듯이 엎어졌다.
이제 전면유리로 볼 수 있는 도로의 모습은 거의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놈이 늦었다.
이미 커브길의 각도는 감각으로 찾은 뒤였다.
속도도 순조롭게 줄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안전하게 차를 세울 수 있을 터였다.



덜컹!



그 순간, 이미 한 번 들은 적이 있는 둔탁한 소리가 차체를 울렸다.
핸들이 조향을 잃고, 바퀴가 허공을 달렸다.
전면유리를 가로막고 있던 놈의 얼굴이 더욱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드디어 장난에 성공했다는 듯, 웃음소리가 절정에 달했다.


급커브가 가장 가파르게 꺾이는 산길 한복판에 도로가 일그러져 턱이 불쑥 올라온 바로 그 위치였다.
산을 오르며 이미 한 번 경험했고, 내리막길에서는 충분히 눈으로도 볼 수 있는 턱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떠올리지 못했고, 발견하지도 못했다.
그 빌어먹을 영적 찌꺼기 따위에게 간섭을 받고, 영향을 받고 있었기에.
그것이 내 주의를 빼앗고 내 시야를 빼앗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에.


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반동이 전신을 강타했다.
그러나 중장비를 실은 중형 화물차를 그런 것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차량은 가드레일을 뚫고 그대로 새까만 어둠을 향해 뛰어들었다.
나는 그 광경마저도 볼 수 없었다.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놈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귀 밖으로는 그것의 웃음소리가, 귀 안으로는 홍 교수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니 자네도 그것들이 눈에 보이는 한은 조심해야 한다는 거야.’


“크햐하하학! 키햐하하하핫!”


그의 말이 옳았다.
이 순간까지 그의 말을 떠올리지 못한 것은 그저 나의 기억이 흐려진 탓일까.
아니면 또 다른 간섭을 받은 것일까.
이제 와서는 그 해답을 홍 교수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래. 자네는 귀신을 보고 있는 게 아니야. 그들의 악의에 눈을 가려지고 있는 거지.’



출처) https://humoruniv.com/fear79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