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출처 : https://www.reddit.com/r/nosleep/comments/sva7z6/my_wife_has_been_peeking_at_me_from_around/?utm_source=share&utm_medium=web3x&utm_name=web3xcss&utm_term=1&utm_content=share_button

번역 출처 : https://cafe.naver.com/sumalco 방송인 슈말코님 카페, <가랑이찢어진뱁새>님. 문제시 삭제.



내 아내 린(Lynn)과 나는 만난 지 6년째고 결혼한 지는 11개월이 됐다. 우리는 지금까지 항상 아주 평범했고 이상한 행동이나 쎄한 신호 같은 건 한번도 없었다. 이 모든 게 얼마나 그녀답지 않은지 진짜 아무리 설명해도 부족하다. 


린은 아주 친절하고, 똑똑하고, 사려깊은 사람이다. 언제나 허튼 소리는 하지 않는 타입이었고. 유치한 행동이나 나를 놀래키는 짓은 전혀 할만한 사람이 아니다.


린은 공포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가 처음 데이트를 시작했을 때 그녀는 나랑 샤이닝을 보기로 했다. 내가 얼마나 공포물을 좋아하는지 알았거든. 린이 너무 무서워해서 반도 못 보고 꺼야 했지. 그녀는 섬뜩하거나 기괴한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몰카나 장난 같은 것도 한 적이 없다. 린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고, 그래도 나는 항상 괜찮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게 너무 이상한 점이다. 그냥 너무 그녀답지 않아.


또 린은 정신 건강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고, 내가 아는 한 가족력도 없다는 것도 말해야겠다. 자기 정신 건강 문제를 숨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지난 6년 동안 내가 뭔가 눈치챌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두 달 전에, 나는 출근하기 전에 부엌에서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그 날 아침엔 좀 늦어서 평소에 가는 던킨 도너츠에는 못 가겠다고 생각했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서둘러서 현관문으로 갔는데, 그때 린이 내 앞에 있는 모퉁이에서 나를 훔쳐보고 있는 걸 깨달았다. 내 눈엔 그녀의 눈이랑 벽에 걸려있는 긴 검은 머리카락 한 가닥 밖에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 몸은 모퉁이 뒤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거의 커피를 흘릴 뻔했고, 입술은 엄청 데었다.


“어우, 린” 바지에 떨어진 커피 몇 방울을 닦으면서 내가 말했다. “나 진짜 깜짝 놀랐잖아.”


린은 어린애가 들킨 것 마냥 곧바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거실로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고, 내가 현관문에 다다랐을 땐 보이지 않았다.


이건 진짜 이상하고, 내가 말했듯이 전혀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나는 린이 좀 덜 진지하고 장난스러워진 게 웃기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사랑한다고 소리치면서 린을 괴짜라고 불러줬다. 내 뒤에서 현관문이 닫힐 때 그녀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린의 행동은 조금 이상했지만 분명 뭐 신부님을 불러오거나 할 일은 아니었다. 나는 점심쯤에는 완전히 잊어버렸고 집에 돌아왔을 땐 린은 평소랑 같은 모습이었다. 우리 둘 다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사건은 3일 후에 벌어졌다. 오전 2시 정도였고 나는 깨서 뭘 좀 마시려고 했다. 부엌 식탁에 서서 오렌지 주스 통을 들고 있었는데,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바닥 쪽을 쳐다봤고, 웃고 있는 내 아내랑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식탁 반대편에서, 눈을 아주 크게 뜨고 깜박하지도 않으면서 씨익 웃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고양이처럼 웃고 있었다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인정할게. 짜증이 아니라 완전 공포심 때문에. 그 순간 나는 진짜로 무서웠다.


내 비명 소리에 린은 미끄러져서 내 시야에서 나갔고, 급하게 네 팔다리로 기어서 부엌에서 나가면서 손발이 바닥 타일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를 쫓아가지도, 심지어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그냥 충격에 얼어붙어서 거기 서 있었다. 대체 뭔 귀신이 들렸길래 저런 짓을 하나 생각하면서.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기까지 한참이 걸렸지만 결국 올라가긴 했다. 침실에 들어갔을 때 린은 자기 쪽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아니면 자는 척을 하고 있었거나. 나는 잠깐 서서 린이 진짜 자고 있는 건지 확인하려고 그녀가 숨쉬는 걸 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침대에 눕자마자 린이 나한테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지. 나는 침대에 기어들어갔고 린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부드럽고 깊게 숨을 쉬고 있었고 나는 내가 꿈을 꾼건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에 나는 린이 커피를 마시러 내려오기를 기다렸고, 그녀한테 머그컵을 건네주고 볼에 키스를 해준 다음에 이 일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어젯밤에 그건 뭐였어?” 나는 린이 기분 나쁘거나 부끄럽지 않도록 가벼운 톤으로 물어봤다.


린은 커피잔을 들고 찡그리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또 나 훔쳐보고 있었잖아. 저쪽에서.” 나는 식탁 쪽 바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린은 내 시선을 따라갔다가, 다시 나를 돌아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크게 웃어서 나도 따라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린이 무서웠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나를 훔쳐보는 걸 점점 더 자주 보게 됐다. 가끔은 소파 뒤나 거실 커튼 뒤에서 훔쳐보고 있었다. 한번은 우리 침대 발 쪽에 있는 자기 할머니의 오래된 트렁크 안에 어떻게 들어갔더라고.


트렁크의 낡은 경첩이 아니었으면 린이 거기 있는 줄 알아채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린은 자기 얼굴 반만 보이게 뚜껑을 살짝 열고 있었다. 마치 신난 아기처럼 씨익 웃고 있었고. 소름끼쳤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냥 쳐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드디어 한 마디 꺼낼 수 있게 되었을 때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물어봤다. 린은 대답은 하지 않고, 천천히 뚜껑을 닫아서 트렁크 안으로 숨었다. 난 그냥 뒤돌아서 나갔다. 불쾌한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린이 왜 이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분명 린은 이걸 재밌어하고 있었다. 난 그냥 그녀가 이 게임인지 뭔지에 빨리 싫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다음 2주 동안은 린이 훔쳐보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이 이상한 장난을 그만뒀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안심이 됐다. 하루는 같이 넷플릭스를 보면서 내가 농담으로 요즘은 훔쳐보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스파이 놀이는 포기했나 보다고 얘기했다. 린은 나를 올려다보더니 살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면 그냥 내가 더 잘하게 된 걸 수도 있고.”


난 아무 말도 안했지만 속으로는 이게 농담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 다음 며칠동안 나는 린이 무슨 말을 한 건지 계속 생각했다. 안 보일 때 지금까지도 계속 나를 훔쳐보고 있었는데 내가 그냥 눈치채지 못했던 건가? 그리고 그렇다면 대체 언제 이 짓을 그만두려는 거지?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혹시 린이 코너나 문 뒤에서 나를 보고 있는지 확인했다. 집에 들어가는데 그녀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바보가 된 기분에 약간 정신이 나가는 것 같았지.


하지만 아무런 사건없이 몇 주가 지나자 나는 진정하기 시작했다. 가구나 벽 뒤를 확인하는 것도 그만뒀고 그냥 나쁜 기억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일이 진짜 심각해졌다….


린은 친구를 보러 나갔고, 나는 소파에 누워서 노트북으로 게임을 좀 했다.


오후 9시 쯤에 샤워하러 들어가서 비누로 머리를 감고 있었는데,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눈을 떴고 진짜 존나 심장마비가 올 뻔 했다.


린은 샤워 커튼 뒤에서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몸은 밖에 두고 머리 전체가 샤워실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긴 검은 머리카락이 커튼에 매달려있고,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입은 끔찍한 웃음을 지으면서 벌려져 있었고 크게 뜬 눈은 한참 동안 깜박이지 않은 것 마냥 시뻘갰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벽 쪽으로 튀어올랐다. 린은 움직이지도 웃음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화장이 흘러내려서 볼에서 두 개의 검은 물줄기로 흘러내렸다. 린은 현기증이 나고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진짜 미칠듯이 무서웠다.


우리는 둘 다 아무 말도 안 하면서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영원처럼 느껴진 시간이 지나간 다음에 드디어 린은 천천히 샤워실에서 머리를 뺐고, 나는 커튼 뒤로 그녀의 그림자가 화장실 문 쪽으로 움직이는 걸 봤다.


몇 초 후에 화장실 문이 거울이 흔들릴 정도로 쾅 닫혔다. 나는 다시 비명을 지르고, 샤워실에서 튀어나와서 화장실 문을 잠갔다. 나는 화장실 안에서 한 시간 넘게 있었다. 아마 내가 과잉 반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장난이든 아니든 난 더 이상 이 미친 짓거리를 참지 않을 생각이었다. 화장실 안에서 서성이면서 계속 나 자신한테 이 말을 했다. 몇 분마다 멈춰서 문 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듣기도 했고.


갑자기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문에 귀를 대고 들으려고 애썼다. 아무것도 듣지 못했지만 나는 린이 문 반대편에 서서 낄낄대는 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 집에서 무서워서 화장실 안에 한 시간 동안 숨게 되었다는 것에 화가 난 정도를 넘어섰다. 대체 뭐 때문에? 무슨 장난 때문에? 이게 장난이었다면 아주 끔찍한 장난이었다.


“대체 씨발 이게 뭐야 린!” 나는 이성을 잃었다. “이 개짓거리 이제 진짜 좆같이 짜증난다고.” 나는 린이 사과하거나, 아니면 나보고 나쁜 놈이라고 부르길 기다렸다. 하지만 대신에 아주 희미한 신음이 들렸다. 너무 조용해서 내가 들은 건지도 확신이 안 갈 정도였고, 그 다음에는 완전히 조용했다.


“린?” 나는 목소리가 떨리는 걸 숨기지도 못한 채 말했다. 대답이 없었다. 그냥 내 숨소리 뿐.


“그냥 씨발 그만 좀 해!” 나는 문을 주먹으로 치면서 소리질렀다.


나는 린이 나한테 뭐라고 하기를 기다렸다. 나는 한번도 린한테 소리지른 적이 없었거든.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샤워기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 뿐이었다.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문을 열고 내 아내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나는 30분 정도를 더 기다렸다. 그 정도면 겁에 질렸을 땐 거의 씨발 평생처럼 느껴진다. 결국에 나는 밤새도록 화장실에 숨어있을 수는 없다고 결정했고, 무릎을 꿇고 문 아래쪽으로 밖을 엿봤다. 나는 분명 린이 마주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복도 끝에서 계단 꼭대기 까지 볼 수 있었지만 린은 없었다. 그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더라. 나는 몇 분 동안 보면서 계단 아래에서 린의 얼굴이 튀어나오길 기다렸지만 끝내 그러진 않았다.


나는 일어나서 손을 문 쪽에 두고 열기 전에 마음을 다잡았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천천히 자물쇠를 돌리고 문을 막 열려고 할 때 지금도 생각하면 속이 메스꺼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전 보다 큰 신음 소리였다. 하지만 이번엔 어디서 들리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옷장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얇은 틈으로 날 훔쳐보고 있던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눈은 아직도 휘둥그레했고 헤벌레 벌린 입은 내가 봤던 가장 그로테스크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너무 무서워서 그것조차 못할 지경이었다. 린의 두 손은 가슴에 안겨 있었고 온 몸이 순수한 기쁨으로 떨리고 있었다. 마치 흥분을 간신히 주체하고 있는 것 마냥. 짧고 거슬리는, 깊은 날것의 신음 소리가 그녀의 목에서 뿜어져 나왔고 내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화장실 문을 열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계단 아래로 달려 내려가서 거실 책상에 있는 내 열쇠와 폰까지 챙기고 집 밖에 있는 내 차로 달려나갔다. 뒤에서 날카로운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린이 따라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현관문을 닫지도 않았다. 나는 속도 제한은 신경쓰지도 않고 빠르게 집으로부터 멀어졌고, 그러는 동안 내내 공포 때문이었는지 추위 때문이었는지 덜덜 떨고 있었다. 아마 둘 다 였겠지. 나는 코트는 물론 신발도 가져오지 않았다. 팬티 바람에 머리는 아직도 젖어 있었다.


나는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동생 크리스의 집으로 직행했고, 그동안 전화고 문자고 모두 무시했다. 동생네 집 앞에 안전하게 주차하기 전까지는 폰을 확인하지 않았다. 린은 4번 전화를 걸고 문자를 쏟아부었는데, 모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왜 “그렇게” 떠났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나는 린의 태연한 태도에 화가 나서 폰을 대시보드에 던졌다. 동생과 동생의 아내는 팬티 바람으로 갑자기 나타난 날 보고 깜짝 놀랐지만 자기들 집에서 필요한 만큼 지내라고 말했다. 크리스는 옷가지를 빌려주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린과 싸웠다고만 말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크리스가 내가 아무리 이상한 장난이라고 해도 아내를 버리고 떠나올 정도로 과잉 반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다. 사실 애초에 몇 년 동안 린한테 맨날 진지하게만 있지 말고 활기차고 가볍게도 지내보자고 해왔던 게 나였다. 나는 린이 좀 긴장을 풀고 여유로워지길 바랬지만 이딴 건 분명히 내가 생각한게 아니었다.


나는 소파에서 자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눈을 감을 때마다 옷장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린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가 그 시간 동안 계속 그 안에 나랑 같이 있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애초에 아예 그 좆같은 화장실에서 나가질 않은 거다. 옷장에 숨어들어가서 날 속이려고 문을 쾅 닫은 거다.


집에 돌아간다는 생각 자체만으로도 불안해졌다. 잠에 들지 못하고 계속 뒤척거렸다. 결국 크리스가 조금이라도 쉬라고 수면제를 줬고. 자는 내내 린의 웃는 얼굴이 나오는 끔찍한 악몽을 꿨다.


해가 뜨기 시작할 때 일어났다. 온몸이 아팠다. 언젠가 린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뭐라 말해야 할 지 몰랐다. 나는 린이 그 소름끼치는 지랄을 그만두겠다고 약속하기 전까지는 집에 갈 생각이 없었다.


난 그냥 내 아내가 돌아왔으면 했다. 맘에 들지 않았던 매사에 진지한 그 모습이 이젠 그리워졌다.


린한테 전화해서 이 말을 해주기 직전까지 갔을 때, 익숙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지켜보는 기분. 나는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시선을 돌리고 싶지 않았지만 무시하면 무시할 수록 지켜보는 기분은 더 심해졌다.


시선이 거의 저절로 돌아갔다. 린은 소파 옆에 있는 창문에 얼굴을 바짝 대고, 그 똑같은 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침이 흘러서 유리창에 긴 자국 두 개를 남기고 있었다. 거기에 대체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한참은 될 것 같았다. 어쩌면 밤새 있었을 수도 있고.


무섭기도 했지만 그 순간에는 화가 공포심을 억눌러서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나는 소파에서 뛰어 나와서 창문을 세게 쳤다.


“린! 미쳤어? 대체 뭐가 문제야? 집에나 가!” 내가 소리쳤다. “당장!”


린은 움직이지 않았고, 그 소름끼치는 표정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크게 웃는 것 같았다. 마치 살아생전 이보다 더 행복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크리스와 아내가 위층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린은 집 밖에서 어떻게 그 소리를 들었는지 그쪽으로 고개를 살짝 움직이더니, 입을 천천히 닫기 시작했다.


크리스가 걱정되는 목소리로 위층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뒤로 돌아서 크리스와 아내 레베카가 서둘러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다시 돌았더니 린은 없었다. 아직도 흘러내리고 있는 침 두 줄만 남아있었다.


나는 크리스와 레베카한테 깼더니 창문에 린이 있었다고 설명하려 했다.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하긴, 누군들 믿겠어? 크리스와 나가서 창문 밖을 살펴봤지만 살짝 움푹 들어간 곳 말고 발자국 같은 건 없었다. 크리스는 동물 아닐까 했고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크리스랑 레베카는 내가 꿈 꾼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난 설명하기엔 너무 지쳐있었다.


난 그날 병가를 냈고 폰은 꺼놨다. 린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땐 그녀랑 말하는 것도 무리였다. 나는 진짜 린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뭔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린이 앞으로 무슨 약속을 하든 절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생각을 하자 진심으로 슬퍼졌다. 아침 내내 울었다. 오후가 돼서야 린과 얘기할 준비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설명할 기회를 한 번 주는 거다. 6년을 함께했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폰을 켜자 수십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모두 그저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가 보낸 것처럼 보였다.


“얘기할 수 있어?”


“사랑해”


“전화 좀 해줘”


“나 진짜 걱정돼”


“답장할 수 있어?”


“그냥 집에 와 줘”


다 이런 식이었다. 사랑한다, 집에 와줬으면 좋겠다, 너무 걱정된다…. 자기가 한 미친 짓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없이. 무슨 스티븐 킹 책에 나오는 캐릭터 같은 짓을 한 게 다 없었던 일인 것처럼.


문자도 이상했다. 린은 보통 그냥 빵 좀 사오라는 말을 할 때도 거의 소설을 써서 보내곤 했다. 그 기이한 짓거리를 한 다음에는 뭔가 할 말이 더 많은 게 정상이다.


이런 일을 겪어보지도 못한 사람들한테는 내가 유치해 보일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린이 나를 봤던 표정, 무슨 야생동물처럼 네 팔다리로 뛰어가는 모습, 옷장 안에서 미친 놈처럼 웃고 있던 걸 본다면….. 그러면 누구라도 나처럼 행동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결국 크리스와 레베카의 집에서 하룻밤 더 있었다. 어제 오후가 될 때까지 깨지 않았고, 다행히도 창문에서 린이 보이지는 않았다.


“캐묻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이게 좀 해결될 수 있을까요?” 레베카가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면서 물어봤다. 참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이 주제를 꺼내려는 것이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린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단어 선택을 조심스럽게 하면서 말했다. 나는 아직 레베카나 크리스한테 내가 어떤 미친 일을 겪고 있는지 완전히 알려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변하는 거에요, 벤. 하지만 린은 아직도 당신이 결혼한 그 사람이에요. 그냥 대화가 필요한 걸 수도 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든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요.” 레베카는 항상 평화수호자였다.


“이제 그 단계는 넘어선 것 같아요. 대화한다고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냥 린을 더이상 못 믿겠어요.” 내가 말했다. 이 말이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아내를 사랑했고 아내가 그리웠다. 하지만 대체 이런 사람이랑 어떻게 살까? 매일 공포 속에서 사는 건 못할 짓이다.


“린은 아직 벤을 사랑해요. 분명 엄청나게 상처받았을 거에요.” 레베카가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네요.” 내가 말했다.


“글쎄, 저한테는 확실히 그렇게 보였어요. 그렇게 슬퍼하는 건 본 적이 없어요. 제가 아는 린과는 엄청 달랐어요.” 레베카가 슬프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레베카가 한 말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1분 넘게 걸렸다. 온 몸의 피부가 오싹해졌다.


“잠깐만요. 무슨 소리에요? 린을 봤어요?” 입이 바싹 말랐다.


레베카는 이게 악몽같은 일이 아니라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한텐 아니었겠지.


“아침에 크리스가 출근하고 나서 들렀어요.” 레베카가 식탁에서 접시를 치우면서 말했다. “근데 린 차는 못 봤어요. 택시 같은 걸 타고 왔나봐요.”


“뭐라고 했어요? 혹시.. 혹시 안으로 들어왔어요?”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 걸 느끼면서 말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마치 맹수가 뒤에 숨어있을 것처럼 코너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뇨. 그냥 벤이 깼는지 물어봐서 아직 안 깼다고 했어요. 깨워줄까 물어봤더니 그냥 자게 두라고 하더라고요.” 레베카가 설거지를 하면서 말했다.


“그게 다예요? 다른 얘긴 안했고요?” 내가 물었다.


“아뇨. 근데 진짜 안 좋아 보였어요. 며칠 동안 잠도 못 잔 것 처럼요. 전화는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식탁에서 일어나서 레베카한테 샌드위치는 고맙다고 했다.


린이 적어도 들어오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래도 문이 이중잠금 되어 있는지는 확인해야했다.


잠깐 앉아서 다음에 뭘해야 할지 생각했다. 집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린을 도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플 때도 건강할 때도 검은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린을 사랑하고 지켜주겠다고 맹세 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분명히 린은 아주 아파보였다.


만약 린이 아프다면 나는 그녀가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다. 하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경찰을 부르고 싶진 않았다. 부른다고 해도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내 아내가 나를 훔쳐보고 있다고? 요즘 소름끼치게 행동한다고? 린이 아무리 이상해졌어도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경찰은 아마 내가 예민한 거라고 할 거다. 하지만 이건 장난 같은 게 아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위험하게까지 느껴진다. 린의 웃음 뒤에 사악한 게 숨어있는 것 같다.


남편으로서 나는 린에게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만약 린이 경찰 앞에서 그냥 평범하게 연기한다면? 그녀는 분명 그저 걱정하는 아내인 것처럼 레베카를 속일 수 있었다. 의사들이 린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72시간 후에 그녀를 풀어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완전히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에 처한 남편이라면 누구나 할만한 행동을 했다.


린의 어머니한테 전화했다.


그러고 싶진 않았다. 진짜로.


린의 어머니, 마리앤과 나는 사이가 좋은 적이 없었다. 싸우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는 그냥 별로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고, 같이 있기 쉽지 않았다. 거의 웃지 않았고 웃을 때면 입술만 살짝 움직이고 눈은 똑같이 공허했다. 언제나 공격적일 것만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마리앤을 두 번 밖에 만나보지 못했고 두 번 다 아주 짧은 방문이었다. 그녀가 나를 사위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린은 내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항상 나를 빨리 데리고 나갔고 나는 그래서 고마웠다. 마리앤과 함께 있는 건 유리조각 위를 걷는 것처럼 견디기 힘들었다. 멀리 이사가서 그녀를 자주 보지 않게 되었을 때 기뻤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마리앤과 정말 대화하기 싫었지만 린을 나보다 더 잘 아는 누군가에게 말을 해봐야 했다. 이를 악물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마리앤이 대답했다. 벌써 짜증난다는 투였다.


“마리앤, 벤입니다. 잠깐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짜증나서 혀를 쯧쯧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가계부를 쓰는 중이었는데, 하지만 꼭 필요하다면 잠깐 시간은 낼 수 있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 벤자민?”


“린에 대한 겁니다. 요즘 좀… 이상하게 행동하고 있어서 혹시 아는 게 있으신가 궁금해서요.” 내가 빨리 끼어들었다.


“자네가 뭐라고 횡설수설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 벤자민, 내가 뭘 해줬으면 하는 건가?” 마리앤이 물었다. 그녀가 그 스웨터와 바지를 입고 서서 초조하게 식탁에 손톱을 두드리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상한 행동 같은 거 보신 적 없으셨나요? 아니면 혹시 정신 건강 문제라던지?” 내가 물었다. 아주 길고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마리앤이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뭔가 다른 걸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드디어 몇 초 후에 그녀가 대답했다.


“이게 무슨 농담인지 모르겠네 벤자민,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전혀 재미없네. 아까 말했듯이 나는 할 일이 있어서, 괜찮다면 -” 나는 그녀가 끊기 전에 말을 끊었다.


“마리앤, 농담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린의 정신 건강이 걱정돼서 그럽니다. 요즘 린의 행동이 굉장히 변덕스러웠어요. 저는 정말 걱정되고 어머니로서 똑같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목소리에서 좌절감 같은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자네가 정말로 걱정된다면 전문가를 찾아가야 할 것 같네. 나한테 뭘 기대하는 건지 모르겠구만.” 마리앤이 전화를 끊기 직전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왠지 나는 간절하게 그녀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녀가 뭔가 더 알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발요.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린을 위해서요.”


불안하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살짝 들렸다. 마치 차가운 모습을 유지하려 하지만 잘 안되는 것 같이.


“마리앤? 무슨-”


“벤자민,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군. 내가 해줄 수 있는 충고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는 것 뿐이네. 다시 나한테 전화하지 말게. 잘 가게.” 대답하려 했지만 그 전에 전화가 끊겼다.


전화 내용을 생각하면서 머리를 싸맸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왜 자기 딸을 도와주려 하지 않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 놓친 게 없나 찾기 위해 대화를 다시 재생해봤다.


 얼마 후 거의 포기하기 직전, 마리앤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라.’ 그녀는 그 말을 약간 다급하게 했다. 그냥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바뀌었다고 확신했다. 그 말이 아주 중요했던 것처럼.


무슨 뜻이었을까? 처음엔 의사를 얘기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다른 누군가를 얘기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로 그녀가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꺼려하는 누군가. 아니면 그냥 내가 확대 해석하는 걸 수도 있겠지.


나는 크리스가 집에 오기를 기다려서, 아주 길고 피곤한 대화 끝에 린이 정신과적인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크리스와 레베카를 설득했다.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아직도 그건 준비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번에 린이 화장실 옷장에 숨어서 나를 훔쳐보던 이야기는 해줬다.


그들은 당연히 충격받았지만 다행히도 나를 믿어줬다. 그들도 그저 린을 도와주고 싶었다. 아직도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지만, 위험하지는 않다고. 그들은 계속 린이 무슨 이상한 장난을 치는 걸 거라고 말했다. “유튜브나 그런 거 아닐까요?” 레베카가 가볍게 말했다.


크리스는 아직 경찰을 부르지는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대신 나랑 같이 집에 가보자고 했고, 나는 바로 그러자고 했다. 크리스는 차분하게 대화해서, 자발적으로 가도록 설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봤다. 나도 동의했다. 적어도 그 집에 혼자 들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는 오늘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바로 집으로 운전해 갔다. 밤에는 절대 갈 수 없었다. 우리 집 앞에 차를 대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린의 차는 없었지만 나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현관문은 열려 있었고, 순간 나는 그 사이로 린의 눈이 보인 줄 알았다. 덜덜 떨리고 땀이 났다. 반면 크리스는 아무렇지 않게 내가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무슨 시발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 마냥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게 부러웠다.


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썩은 냄새가 났다. 크리스도 냄새를 맡고 내 뒤에서 코를 막고 들어왔다.


“바닥 청소할 때 뭐 똥이라도 쓰냐?” 크리스가 중얼거렸다.


“닥쳐.” 나는 린의 흔적이라도 찾아보려고 두리번거리면서 대답했다.


집은 아침 10시인데도 쥐죽은 듯이 조용하고 어두웠다. 모든 커튼이 완전히 쳐져서 햇빛이 조금도 들어오지 못했다. 이틀 전에 떠난 게 아니었으면 오래 전에 버려진 집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우리는 방마다 들어가면서, 조심스럽게 린이 숨어있을 만한 곳들을 확인했다. 가끔씩 이름도 부르면서.


“대체 시발 소파 아래는 왜 보는 건데?” 결국 크리스가 물어봤다. “형 아내 찾고 있는 거 아니었어?” 나를 바보 보듯이 쳐다봤다.


“그냥 위층 올라가자.” 내가 속삭였다. 크리스는 고개를 흔들었지만 화장실과 침실을 확인하기 위해 위층으로 나를 따라왔다. 올라가다가 버려진 유리조각 같은 걸 밟았다.


계단 벽에 걸어놓은 린과 나의 결혼 사진이 부서져 있었다. 액자는 비스듬히 걸려 있었고 유리는 다 깨져 있었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울컥하면서 목이 메었다. 그 사진은 서약을 하고 교회에서 나오자마자 찍은 거였다. 하얀 가운을 입은 린은 정말 예뻐보였다. 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얼굴을 보고 공포에 질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단을 마저 올라가서 침실을 확인했지만 누가 건드리지도 않은 것 같았다.


화장실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그날 밤의 기억이 갑자기 전부 돌아왔다. 크리스가 알아채고는 혼자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같이 들어갔고, 옷장과 샤워실을 확인했다. 화장실은 내가 떠난 날이랑 완전히 똑같아 보였다.


“린은 없는 것 같은데. 옷이나 좀 챙겨서 내일이나 이럴 때 다시 오는 게 어때.” 크리스가 말했다. 나는 끄덕이고 침실로 가서 가방에 옷을 집어넣었다. 옷장 안을 확인했을 때 나는 그 썩은 냄새의 근원을 찾고 헛구역질을 했다.


크리스는 한 번 보고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계단 난간에 기대서있어야 했다.


 내 침실 옷장에 들어있는 것을 충격 속에서 바라봤다. 적어도 수십 개의 눈알들이, 조심스럽게 한 쌍씩 정리된 채로 깔개를 적시면서 놓여 있었다. 어떤 건 동전만큼 컸고 어떤 건 구슬만큼 작았다. 린이 작은 동물들로부터 모은 눈알을 내려다보며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얻었는지 생각하자 몸서리가 쳐졌다.


“미친, 레베카가 신발 모으는 거에 질렸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씨발, 형 아내는 여기다 눈알을 모아놓고 있잖아.” 크리스가 헛구역질을 하면서 말했다. “벤, 우리 가야 할 것 같다.” 크리스가 복도에서 말했다. “토할 것 같아.”


“그래.” 나는 가방을 집고 옷장을 닫았다. 복도로 나와서 숨을 들이쉬니 혀에서 썩은 맛이 느껴졌고 또 구역질이 났다.


“누가 씨발 눈알을 저렇게 정리해놔?” 크리스가 중얼거렸다.


“린한테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내가 말했다.


“도움이 아니라 망할 퇴마사가 필요하겠어.” 크리스가 말했다. “갈거야 말거야? 이 냄새는 도저히-” 크리스가 말을 멈추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그러는지 묻지 않았다.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고 옷장 속의 눈은 아니었다. 나는 뒤로 돌아서 침실을 천천히 살펴봤다.


“세상에” 우리가 놓쳤던 걸 드디어 발견하고 내가 속삭였다. 침대 아래에, 웅크려서,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난 아이처럼 흥분한 채로, 내 아내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손은 턱 아래로 모으고, 미친듯이 떨리고 있었다.


이제 린이 들킨 걸 알아채고 나니 그녀가 내는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목에서 나오는 딸꾹질 같은 소리였는데, 흥분을 견딜 수 없어서 내는 것 같았다. 크게 뜬 눈에, 그 커다란 웃음. 소름끼쳤다.


내 모든 감각이 도망가라고 하고 있었지만, 무시했다. 이건 내 아내다. 얼마나 뒤틀려있건 간에 내가 결혼한 여자였다. 내가 도와줘야 했다.


“린…”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린은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머리를 앞뒤로 빠르게 움직였다.


“자기야. 나는 그냥 도와주고 싶어. 알지? 그래도… 그래도 되겠어?” 내가 물어봤다. 나는 위험한 맹수한테 접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발짝 다가갔다.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린?”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말했다. 넓게 벌린 입에서 작은 신음이 새어나왔고 나는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린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눈이 거의 컵받침만하게 커졌다.


린을 더 잘 보기 위해 엎드리자마자 피가 보였다. 린의 손이 피로 덮여있었다. 린은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가까이 갈수록 더 떨었다.


“린. 다쳤어? 피 나잖아.” 내가 말했다. 린은 머리를 다시 끄덕이고, 마치 투명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피 묻은 손가락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중간중간 손가락이 턱에 닿아서 피가 묻었다.


역겨움에 몸을 뒤로 젖히고 싶었다. 린한테서 나는 냄새는 메스꺼웠다. 토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린의 입술이 바싹 말라서 갈라진 틈으로 피가 새어나오는 게 보였다.


린이 스스로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그녀를 이 상태로 내버려두고 가고 싶지 않았다.


더 가까이 다가가서 린에게 손을 뻗었다. 흥분된 딸꾹질 소리가 점점 커지고 손가락에 힘을 주면서 그녀의 손이 떨렸다. 그때 피가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신이시여, 린. 너 피 흘리고 있잖아.” 내가 말했다. 본능적으로 린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내가 닿기도 전에 린의 손이 내 쪽으로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고통이 팔을 지나갔고 나는 뒤로 넘어졌다. 팔이 화끈거렸고 피가 카펫에 떨어지는 게 보였다.


나는 충격에 휩싸여서 린을 돌아봤고, 그녀가 커다란 유리조각을 꽉 쥐고 미친듯이 웃고 있는 걸 봤다.


“거기 괜찮아?” 크리스가 뒤에서 물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서 크리스에게 끄덕이고 팔을 가슴쪽으로 가져갔다. 다시 돌아서 린을 봤을 때, 그녀가 이제 다른 걸 신경쓰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린은 더 이상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웃고 있지도 않았다.


린을 나를 지나서 배고픈 사자가 사슴을 보는 것처럼 크리스를 보고 있었다. 입은 아직도 크게 벌리고 있었지만 이젠 이상하게 비틀려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린한테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복도 쪽으로 뒷걸음질쳤다.


“지금… 피 흘리는 거야?” 크리스가 물었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린은 아직도 유리조각을 든 채로 빠르게 침대 아래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크리스. 뛰어. 가!” 내가 소리질렀다. 몇 초 뒤에 등이 크리스와 부딪쳤다. 너무 무서워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거였겠지. 그는 아직도 계단 꼭대기에 서서 공포스러운 내 아내를 보고 있었다.


린은 침대 아래에서 완전히 기어나와서 이제 침실 문에 서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분노로 뒤틀렸다. 온몸이 눈에 띄게 긴장되어 있었고,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세상에, 린…” 크리스가 말했다. “그, 어… 숨바꼭질하는 거에요?” 나는 뒤돌아서 그를 계단 쪽으로 밀었다.


“쳐 움직여 크리스” 나는 최대한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린은 머리를 빠르게 흔들더니 웃기 시작했다. 입을 어찌나 크게 벌리는지 턱이 가슴에 닿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크리스가 기도를 중얼거리고는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계단 꼭대기에 서서, 도움이 절실한 이 여자에 대한 사랑과 자기 보호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난 그냥 도와주고 싶은 것 뿐이야.”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린은 다시 나에게 집중하면서 유리조각을 천천히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흥분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 쪽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본능이 나를 집어삼켜서 나는 두 세 계단씩 밟으며 달려내려갔다. 현관문에 닿기 전에 린이 등 뒤로 달려들어 팔을 내 목에 감았다. 열린 입이 바로 내 귀 옆에 있어서 그 끔찍한 딸꾹질 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그녀를 떨쳐내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등에서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문을 열어제끼고 차로 달려나갔다.


크리스는 앞마당에 서서 폰으로 경찰과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차에 올라탔고 크리스도 알아채고 계속 전화하면서 따라들어왔다.


백미러를 봤다. 우리를 쫓아오는 린이 보일 줄 알았지만 그러진 않았다.


나는 바로 응급실로 가서 팔에 11바늘 등에 3바늘을 꿰맸다. 경찰은 많은 질문을 했고 집에 돌아가서 수색을 했지만 당연하게도 린은 없었다.


경찰은 한동안 친구나 친척과 함께 지내고 최대한 빨리 접근 금지 명령을 신청하라고 했지만 그런 건 전부 소용없을 거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알았다.


나는 크리스를 집에 내려주고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모텔로 갔다. 린과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그게 지난 4시간 동안 내가 있었던 곳이다. 나는 어쩌면 경찰이 린을 찾아서 그녀한테 필요한 도움을 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일이 그렇게 풀리진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40분 전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를 하나 받았거든. 딱 한마디:


“찾았다.”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 어둡고 얼룩덜룩 했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린의 눈이다.


그 직후부터 이걸 쓰기 시작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혼자고, 무섭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