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7-58. 웨이팅 포 러브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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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오후 12시 10분경 카메유 백화점 앞. 여직원들이 유키카게에게 모여들었다.


“카와지리 군, 괜찮으면… 우리랑 같이 점심 먹지 않을 래?”


유키카게는 눈웃음을 지었다.


“감사하지만 사양할게요. 전 약속이 있어서요. 그럼 이만.”


유키카게가 떠나자 파란 양복을 입은, 노인을 바라보는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이 백화점의 지점장이었다.


“관둬, 관둬! 저 녀석은 이미 임자가 있거든.”


그는 시즈카와 함께 어디론가 향하는 유키카게를 보았다.


“카와지리 유키카게, 23세. 일은 성실하게 빈틈없이 잘 하고 열정도 넘치지. 엘리트 같고 기품이 있어 여사원들에게는 인기가 있지만, 휴학기간 아르바이트 생이다 보니 평범한 직원에 머무르지. 자기는 의식하고 있지 않아도 존재감을 뿜어낸다고 할까? 게다가… 저 녀석 아버지가 여기 직원이었거든. 이것도 ‘운명’인지…”


유키카게가 말했다.


“시즈카, 며칠 전에 말했지만 만날 사람이 있어.”


“그 전에, 죠린 언니부터 만나야 해. 오늘 도쿄로 돌아가거든. 가기 전에 유키도 보고 싶어 해.”


“죠린 씨가 나까지?”


잠시 후, 둘은 역 앞 광장에 도착했다. 이미 죠린은 죠스케와 에르메스, 엠포리오의 배웅을 받고 있었다. 죠린은 두 사람이 온 것을 보더니 죠스케와 악수를 나눴다.


“다음에는 도쿄에 놀러 와, 죠스케 오빠.”


“알았어. 네 남편만 어떻게 하면 말이지.”


죠린은 미소를 흘리더니 에르메스와 격한 포옹을 했다.


“잘 있어 에르메스! 다음에 볼 때는 안나수이랑 하루토도 데려올 게!”


“건강해라, 죠린! 그리고 안나수이한테도 안부 전하고.”


그러더니 죠린은 침울한 상태의 엠포리오와 마주했다.


“엠포리오, 표정 풀어.”


“오랜만에 봤는데… 벌써 헤어지려니 아쉬워서 그래.”


죠린은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슬슬… 나 말고 다른 여자도 찾고 그래야지?”


엠포리오가 당황한 듯 뺨을 붉히자, 죠린은 그런 엠포리오를 가볍게 안더니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다음에 볼 때는 네 여자친구도 봤으면 좋겠네.”


에르메스가 중얼거렸다.


“이거… 안나수이한테는 죽어도 말하지 말아야지.”


다음으로 죠린은 시즈카와 마주하더니 그녀의 양 뺨을 잡았다.


“시즈카, 돈 좀 아끼고 살아. 이번만 용서해주는 거다?”


“알았어… 건강해야 해, 죠린 언니.”


마지막으로, 죠린은 유키카게와 마주하더니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즈카 남자친구, 유키카게 군. 그땐 수고 많았어.”


유키카게는 두어 번 망설이더니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네, 가, 감사합니다.”


죠린은 유키카게와 시즈카를 슬쩍 번갈아 바라보더니 곧바로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시즈카랑 ‘끝’까지 갔으면 ‘절대로’ 시즈카 울리지 마라, 내 귀여운 ‘동생’ 울렸다는 이야기 들리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책임’을 물을 테니까.”


“네!”


죠린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그와 떨어졌다.


“농담이야.”


유키카게는 겨우 미소를 지었다.


“전혀 농담으로 안 느껴졌는데요…”


“잘 있어! 난 간다!”


죠린은 다시 발렌타인이 모는 차를 타고 떠났다. 다음으로 죠스케 일행도 사라지자, 유키카게는 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래서 누굴 만나러 가는 거야? 어디로 가는 거고?”


“내 ‘은사’나 마찬가지인 사람. 내 모교, 도호쿠 대학으로!”


유키카게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던 중, 유키카게가 물었다.


“그러고보니 야나기 녀석은 좀 어때?”


“어제 봤는데, 엄청 침울해하고 있었어. 그때는 워낙 정신이 없었던지라 떠올리지 못했겠지. 그런데 사건이 종료되니까 ‘다른 인격’의 죽음이 실감난 모양이야.”


“한동안은 혼자 있게 하자. 야나기도 그걸 원할 거야.”


오토바이는 달리고 달려 도호쿠 대학에 이르렀다. 유키카게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교수 사무실 앞이었다. 유키카게는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교수님, 카와지리 유키카게입니다.”


문 너머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유키카게가 먼저 들어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우 겐키 교수님.”


보우 교수는 자신의 책상 너머로 둘을 바라보았다.


“아닐세, 자네는…?”


시즈카는 유키카게의 눈치를 보더니 어색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시즈카 죠스타라고 합니다.”


그 때, 보우 교수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둘은 알지 못했지만.


“죠스타… 10년 정도 전에 죽은 ‘부동산 재벌’ 아닌가?”


“아… 네, 제 아버지입니다.”


유키카게가 말했다.


“교수님, 제가 말씀드렸던 건 어떻게 됐나요?”


“물론, 준비했네. 유키카게 군, 죠스타 양. 거기 둘 다 앉게.”


두 사람이 긴 소파에 앉자, 유키카게는 조용히 시즈카에게 귀띔을 했다.


“시즈카, 조금 있다가 교수님이 일어서면 놀란 표정은 짓지 마.”


“어째서?”


시즈카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아니, 들을 필요가 없었다. 보우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시즈카는 최대한 놀란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두 눈이 커지는 것은 막지 못했다.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절며 천천히 걸어오는 보우 교수는 한눈에 봐도 다리뿐만 아니라 전신이 만신창이라는 것이 드러나 있었다. 그가 간신히 다른 소파에 앉자, 시즈카는 그의 왼쪽 눈이 멀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 모습에 깨나 놀란 모양이구만.”


“앗…! 죄, 죄송합니다."


“아니야, 괜찮네. 그런 반응도 익숙하니까. 젊었을 적에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서 ‘버거씨병’에 걸려 왼쪽 발을 절단했다네. 폐기종도 있고, 왼쪽 눈은 ‘백내장’에 걸려서 실명했지. 가족력으로 ‘알츠하이머’가 있어서 관리받는 중이고. 사실 나이도 예순을 훌쩍 넘겼으니 올해 까지만 하고 퇴직할 생각이네.”


“교수님은 ‘중남미 역사학’을 전공하셨어. 정확히는 ‘아즈택 문명’을 전공하셨고 그 외에 ‘고대 이집트’에 관해서도 논문을 개제한 적이 있어. 취미는 나와 같이 ‘미스터리한 이야기’야.”


“카와지리 군이 신입생 때 내가 개설한 교양 과목을 제일 열성적으로 들었었지. 그 인연이라네.”


“그래서 유키, 교수님이랑 만나는 이유가 뭐야?”


“잠자코 들어 봐.”


보우 교수는 테이블 아래서 상자를 꺼내 테이블에 내려 놓았다.


“미스터리한 이야기… 죠스타 양도 좋아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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