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창작물검색용 채널

눈을 떴을때, 모모가 본 천장의 모양이 평소 눈에 익은 오르카 함의 숙소는 아닌듯 했다. 규칙적인 무늬가 새겨진 연분홍색 천장과 벽, 소녀풍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침대 위 인형과 공부방 책상과 의자같은 가구, 옷을 넣는 서랍장 등은 잠수함 속의 숙소가 아니라 평범한 여자아이의 방을 보는듯 했다. 상황파악이 안된 모모는 잠시 눈만 깜박이다가, 일어나 방 바닥에 발을 딛었다.

"여기는..."

모모가 의문을 품기도 전에 방문이 열렸다. 문 밖에서 당황한 기색으로 그녀와 눈을 마주친 이는 그녀의 동료, 뽀끄루였다. 뽀끄루는 모모를 보자마자 약간은 안도했는지 한숨을 쉬었다.

"휴... 모모 씨는 여기 있었군요."

"무슨 일이죠?"

모모가 묻자, 뽀끄루는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오르카는 아닌것 같은데, 사장님이나 다른 분들도 안 보이시고... 모모 씨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아시겠어요?"

난데없이 그렇게 말하면 모모라고 해도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모모는 뽀끄루와 함께 건물 내를 수색하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녀들이 아는 얼굴인 백토가 다른 방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있었다는 것이고,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두 바이오로이드의 말을 듣고 창문 밖을 보더니,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어쩌면 평행세계에 와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백토의 말은 상황을 더욱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녀가 저러는 것 쯤이야 하루이틀도 아니긴 하지만, 이 건물은 아무리 봐도 멸망 전 인간들이 살던 '주택'이라는 것과 비슷해보였고, 창문 밖에는 그녀들이 모르는 얼굴의 남자나 여자들이 걸어다니고 있었기에, 그리고 바이오로이드로서 그녀들의 뇌파는 창 밖의 사람들을 '인간'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정말 백토의 말대로 멸망 전의 인간들이 사는 평행세계일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만약에 정말 그러면... 오르카나 사장님이 없는 평행세계면 어떡하죠? 우리는..."

"뽀끄루, 정말로 그걸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네에?"

백토는 침대 옆에 놓인 자신의 전기ㅌ... 핑크 문 라이트를 집어들고 당당히 드높였다.

"여기가 다른 시간선의 평행세계라고 해도, 우리는 마법소녀로서 우리의 역할을 빛낼 뿐이야. 그건 절대로 변하지 않아."

"하지만, 멸망 전의 세계에는 철충도 없고..."

"악은! 어디에나 있어!"

백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비장한 얼굴로 외쳤다.

"여기가 얼마나 먼 과거일지는 나도 몰라. 어쩌면 마법소녀나 악의 무리도 없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마법소녀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아! 마법소녀는 모두의 꿈을 지켜야만 해. 그리고, 모두를 위협으로부터 지켜야만 해!"

숨을 들이마시고, 그녀는 다짐을 받아내듯 뽀끄루와 모모를 한 번씩 보며 소리쳤다.

"우리가 다른 세계로 왔다는 건, 필시 이 세계에 우리가 필요한 일이 있음에 틀림없어! 마법소녀의 존재의의는 그것 뿐이니까. 우리는 그러한 악의 무리를 찾아내서, 맞서 싸운다!"

진지하게 현재 상황에 심취해있는 백토와 달리, 모모와 뽀끄루는 마법소녀가 무엇인지 알고있었다. 그녀들은 바이오로이드,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생체도구이다. 그녀들이 만들어진 이유는 조금 특별했는데, 다름아닌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라는 기획물의 마법소녀 역할을 맡는 배우로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뽀끄루는 모모나 백토와는 달리 두 마법소녀가 물리쳐야 할 대마왕의 역할을 연기하는 개체로서 만들어졌지만... 백토는 제조상의 오류인지 제 역할에 과도하게 심취한 나머지 기획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때문에 뽀끄루의 안전을 위해서 그녀를 굴복시켜 마법소녀로 만드는 '연기'를 했었다.

그 내막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있는 두 사람으로서는 백토의 의견에 섣불리 동의해줄 수가 없었다. 마법소녀는 가상의 역할이었고, 그들이 나서야 할 정도로 강력한 악의 무리는 그들이 알고있는 한, 멸망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왜 아무도 말이 없지? 설마 두 사람, 마법소녀로서의 본분을 잊은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지만... 그 전에, 우리가 맞서 싸울 악의 무리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보는게 좋지 않을까?"

"마, 맞아요! 물론 악의 무리가 있다면 맞서 싸워야겠지만, 우린 아직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잖아요..."

"...일리는 있어. 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싸울 수도 없으니까."

백토는 두 사람의 말을 듣고서 잠시 눈을 감았다. 뽀끄루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모모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다 함께 악의 무리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까?"

"그렇군. 역시 나눠져서 찾는게..."

"악의 무리가 아직 어떤 존재인지 모르니까, 나눠지는 건 위험할지도 몰라! 만약에 싸워야 한다면 셋이 함께인게 좋으니까, 다 같이 찾아보자!"

인간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백토의 왜곡된 상식은 큰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모모가 백토의 말을 가로채며 다급하게 말하자 백토가 눈썹을 찌푸리곤 다시 말했다.

"모모, 네 말도 일리는 있지만 아무래도 수색을 하려면 나눠지는게 효율이..."

"오르카에 있었을 때면 몰라도, 지금 우리는 서로를 확인할 통신수단이 없잖아! 연락할 방법이 없다면, 떨어지는 건 위험해. 그러니까 다 같이... 응? 백토..."

"...모모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알겠어. 떨어지지 말고, 다 함께 찾아보자."

백토가 마지못해 동의하자, 이어서 모모도 안도의 숨을 내쉬곤 환하게 웃었다. 적어도 이 수색을 통해 계속해서 아무런 위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백토도 의지가 약해질 것이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모모는 백토가 포기하게 만든 다음에 오르카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런 모모의 계획은 놀랍게도, 사악한 존재를 발견함으로써 멋지게 틀어졌다.

모모는 눈 앞의 목 없는 시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바로 거대한 김밥같은 괴수는 그녀가 바라보던 시체까지 먹어버리더니 날아올라 몸을 말고 뒤집어지며 모모를 향해 입을 벌리고 날아왔다.

"우정과 용기, 월인들의 염원과 마법의 힘을 모아! 문라이트 소!"

"핫! 배, 백토..."

괴수가 모모를 잡아먹기 직전에, 백토가 체인소를 가동해 괴수의 꼬리를 가격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모모는 괴로워하는 괴수 앞에서 날아올랐다.

"모모, 정신 똑바로 차려!"

백토가 소리친다. 도대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그녀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뒤에서는 뽀끄루가 보통의 인간처럼 보이는 두 여자아이와 고양이처럼 보이는 하얀 생물을 살피면서 불꽃을 날려주고 있었다. 문 라이트 체인소가 닿지 않을 거리가 되자, 백토도 뽀끄루 쪽으로 가서 인간을 보호하기로 한듯, 그들의 앞에서 체인소를 치켜들었다. 모모는 숨을 들이마시고, 요술봉을 치켜들었다.

"마법이니까, 피하기 없기~!"

모모는 괴수의 입 속을 조준하고 요술봉 모양의 RPG로 폭격을 꽂았다. 꽤나 커다란 굉음이 들렸지만, 괴수는 괴로워하면서도 죽긴 커녕 추진력을 얻은듯 모모를 향해 날아올랐다.

"두 사람 다, 당장 나와 계약해!"

앳된 목소리가 이상한 공간에 울려퍼졌다. 분홍 눈의 이상한 고양이가 두 여자아이에게 외치고 있었다.

"마도카, 사야카! 소원을 정해, 빨리!"

"그럴 필요는 없어."

이상한 공간에 울려퍼지는 또다른 목소리,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공중에서 도약하며 나타났다.

"이 녀석을 없애는 건, 나야."

모모가 요술봉을 다시 치켜들었지만, 모모를 잡아먹으려던 괴수는 자신만만한 소녀의 등장에 의기양양하게 뒤돌아서 그녀를 먹었다. 하지만 먹힌 소녀는 괴수의 입안이 아니라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나, 다음 발판으로 뛰었다. 괴수는 다시 한 번 소녀를 먹어보지만, 소녀는 계속해서 나타나고, 다시 먹히고, 또 나타났다. 이윽고 입맛을 다시는 괴수의 입안에서 연달아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다시 나타나선 어느 발판 위에 착지한 소녀를 노려보지만, 연이은 폭발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가는 괴수. 소녀는 녹아내리는 괴수의 잔해를 지켜보더니 뒤돌아 발판에서 뛰어내리곤 뽀끄루, 백토와 두 소녀들, 그리고 고양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온다. 마치 변신이 풀리듯 교복차림으로 바뀌는 검은 머리 소녀.

"구사일생했구나, 너희들."

소녀는 네 사람 앞에 섰다. 눈 깜짝할새 일어난 일을 멍하니 보던 모모도 뽀끄루와 백토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적막속에서 깨진 도자기가 나뒹구는 소리만이 울렸다.

"잘 기억해둬. 마법소녀가 된다는 건, 그런 거야."

이상한 공간이 일렁이며 사라져간다. 검은 머리의 소녀를 제외한 이들 중 그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단 한 사람, 백토만 빼고.

"이런 곳에서 또 다른 마법소녀를 만나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저는 백토, 달에서 온 마법소녀에요."

소녀는 결계가 사라지고 남은 검은 장식을 주워들곤 백토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너도 마법소녀라는 거지?"

"그래요. 당신은..."

"아케미 호무라. 너도 마법소녀라면... 경고하는데, 저 두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

"...네?"

"..."

되묻는 백토를 무시하고, 호무라는 검은 장식모양을 들고 걸어갔다.

"...돌려줘."

파란 단발 머리의 소녀가 말했다. 호무라는 걸음을 멈췄다.

"돌려줘. 그건... 그건, 마미 선배 거야!"

호무라는 파란 머리 소녀의 옆으로 지나쳐간다.

"마미 선배에게 돌려주라니까!"

백토를 비롯한 오르카의 마법소녀들은 심각한 분위기에 섣불리 끼어들지 못했다. 모모는 저 소녀가 말하는 '마미 선배'가 괴수에게 먹혀버린 노란 소녀를 말하는 것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이건 '마법소녀'를 위한 것."

호무라가 말했다.

"너희는 손댈 자격이 없어."

그녀는 가버렸고, 파란 머리 소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분홍색 양갈래 머리 소녀도 소리 없이 울었고, 뽀끄루는 그 분위기에 어쩔줄을 몰랐다.

"..."

눈 앞에서 알던 사람이 죽었다. 분명 그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고통이리라 짐작했고, 그래서 더욱이 무어라 함부로 입을 열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그녀도 충격을 받았는데, 관계가 있었던 이들은 오죽하랴.

"자, 여러분! 울고있으면 돌아가신 분도 슬퍼할 거예요. 그 분을 위해서라도..."

"시끄러워!"

"..."

파란 머리 소녀가 울며 외쳤다. 모모는 말을 멈췄고, 파란 소녀는 분노와 슬픔이 섞인 말을 내뱉으며 계속해서 흐느끼고 있었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서, 선배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 주제에! 당신이 마미 선배에 대해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하는 거야!"

"...맞아요, 저는 몰라요."

파란 소녀는 모모를 보았다. 모모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모모는 모두에게 희망을 줘야 해요. 그게, 제가 존재하는 이유니까... 모두의 꿈과 희망을 지키지 못한다면, 모모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걸요."

"...뭐?"

그녀를 바라보며 되묻는 말에도, 모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웃어보였다.

"미안해요, 안 그래도 정신 없을텐데 제 얘기만 했네요. 물론 저는 그분을 몰라요. 하지만 여러분이 그 분을 이렇게까지 소중하게 여기시는걸 보면, 분명 좋은 사람일 거예요. 그런 분께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두 분의 눈물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파란 소녀는 모모를 바라보았고, 분홍 소녀는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 말이 맞는것같아. 마미 선배는 좋은 사람이니까, 분명 우리가 웃는 모습을 더 보고싶을 거야... 그렇지, 사야카?"

분홍 소녀의 웃음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서, 사야카도 애써 눈물을 닦아낸다.

"그러네... 모모라고 했던가? 아깐 윽박질러서 미안해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텐데..."

"모모는 괜찮아요! 분명 지금 모모보다 더 힘든 건 사야카일테니까요. 이제라도 기운을 차리셔서 다행이에요."

모모는 사야카의 손을 잡고, 손등에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자! 어렵게 힘을 냈으니까, 잘했다는 의미로 모모 스티커를 드릴게요!"

"모모 스티커?"

"푸흐, 귀엽다..."

"귀엽죠? 자, 분홍머리 아가씨도 힘냈으니까 모모스티커!"

"아, 고맙습니다! 저기, 저는 카나메 마도카에요."

"마도카, 귀여운 이름이네요! 이 쪽은 아까도 들었겠지만, 달에서 온 백토라고 해요. 그리고 이쪽은..."

"저기, 뽀끄루라고 해요..."

"그럼... 세 분 다 마법소녀인 거예요?"

마도카가 물었다. 모모가 입을 열기도 전에, 하얀 고양이가 말했다.

"그럴리가. 저 세 사람은 마법소녀가 되기 위한 소원을 빌지 않았는걸?"

"에...? 큐베, 그게 무슨..."

"무례하네요. 방식이 어떻든, 우리는 마법소녀에요."

큐베는 백토를 응시한다.

"그렇구나, 사실 네가 보통의 인간이 맞는지를 고민하고 있었어."

"나는 인간이 아니에요. 달에서 온 월인의 후예이죠."

"달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너는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는 거야?"

"뭐라고요?"

큐베는 이어서 모모를, 그리고 뽀끄루를 보더니 말했다.

"아무튼 알겠어, 너희는 이 시간축의 사람이 아니구나? 또, 사람도 아니고."

큐베는 고개를 기울였다. 백토만이 뒷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뽀끄루와 모모는 큐베가 자신들이 바이오로이드임을 알아보는 거라고 생각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기, 그보다 설명이... 필요한데요. 아까 그건, 대체 뭐였죠? 이상한, 크고 길었던 괴물..."

뽀끄루가 말하자, 두 소녀는 다시 침묵에 빠졌다. 그녀들을 대신해서 큐베가 말했다.

"그들은 마녀라고 해. 마법소녀가 물리쳐야 할 존재들이지. 너희가 본 것은 마녀의 결계였고, 마녀를 없애면 마녀의 알인 그리프시드가 떨어져. 그리프시드를 통해 마법소녀들은 그들의 생명인 소울젬을 정화할 수 있는거야."

"그럼, 아까 호무라 씨가 가져간 게..."

"맞아, 그리프시드야."

모모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그 마녀라는 존재는 인간의 뇌파를 뿜고 있었다. 아니, 인간과 유사한... 어쩌면 철충이라고 볼수 있을까?



세 바이오로이드는 어쩐지 피곤함을 느끼며 아침에 눈을 뜬 주택처럼 보이던 장소로 돌아갔다.

"모모 씨, 괜찮아요...?"

"네? 왜요?"

"그게, 아까..."

"모모는 항상 괜찮은걸요?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괜찮은 척 하는 게 아니고요?' 라는 말은 애써 삼켜내었다. 괜히 들쑤셨다간 더 상처가 될지도 모르니까.

"...네."

"...아무래도 여기는 우리가 알던 멸망 전의 과거와는 다른 것 같아."

백토가 말했다.

"맞아. 이 세계에는 바이오로이드도 상용화되지 않았고, 우리 말고 진짜 마법소녀가 있었어."

"우리는 진짜 마법소녀야."

"그게 아니라, 이 세계만의 마법소녀 말이야."

"철충처럼, 인간과 유사한 뇌파를 가진 마녀도 있고..."

"무엇보다, 달에 아무것도 없다는 게 말도 안돼."

"만약에 잠들면... 다시 사령관님이 계신 오르카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모모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어느새 밤이 깊어가던 중이었고, 슬슬 자도 괜찮겠지. 모모는 장비를 내려두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떴을때, 모모가 본 천장의 모양은 평소 눈에 익은 오르카 함의 천장으로 보였다. 무늬 없는 하얀 천장, 비록 잠수함 안의 숙소라도 모모만을 위한 공간인 그곳. 상황파악이 안된 모모는 잠시 눈만 깜박이다가, 일어나 방 바닥에 발을 딛었다.

"여기는..."

모모가 의문을 품어도 방 문은 열리지 않았다. 분명 여기는 사령관이 있는 오르카 함의 숙소임이 틀림없다.

방을 나서자 먼저 일어나 있었던 백토와 뽀끄루가 모모를 맞이했다. 뽀끄루가 말했다.

"모모 씨, 혹시 이상한 꿈 꾸지 않았어요?"

"이상한 꿈이요?"

"저랑, 백토 씨랑 모모 씨가 멸망 전의 다른 세계로 갔는데..."

"...맞아요, 그런 꿈을 꾼 것 같아요."

"역시... 백토 씨랑도 이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우리, 셋 다 같은 꿈을 꾼 것 같네요."

"이상한 일이야. 셋이서 나란히 같은 꿈을 꾸다니..."

"꿈 얘기야? 재밌는 꿈이면 나도 들려줄래?"

"사, 사장님?!"

사령관이 D-엔터테인먼트 숙소에 문을 열고 들어오자 모모가 물었다.

"사령관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다들 자꾸 무리하지 말라고 면박주길래 쉴겸 산책겸 복도나 걷고있었는데, 너희 하는 얘기가 재밌어보여서. 그래서, 무슨 꿈 꾼 거야?"

사령관은 그들로부터 꿈 이야기를 들었다. 셋이 같은 꿈을 꾼 것부터, 꿈 속에서 같이 활동한것, 마법소녀와 마녀를 만난 것, 이상한 고양이를 본 것도.

"어... 그거 이거 아니야?"

"네? 사장님, 그건..."

사령관이 보여준 것은 마법소녀☆마도카☆마기카 만화책의 표지였다.

"멸망전에 유행했던 만화인것 같은데, LRL한테서 뺏어왔다가 은근히 재밌길래 보고 있었거든."

"그럼, 우리가 꾼 꿈은... 만화 내용...?"

뽀끄루가 어버버 하며 말하자, 백토가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거들었다.

"달에 아무것도 없을리가 없다고."

"사령관님, 그 책 저도 봐도 될까요?"

"어... LRL거긴 한데, 다 보면 돌려줘?"

"걱정 마세요!"


그 날 하루동안 모모는 만화책의 내용을 정독했다.

그제서야 모든 의문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호무라가 마도카를 마법소녀로 만들지 않으려 했던 이유, 큐베의 정체, 그리고... 마녀에게서 인간의 뇌파가 느껴지는 이유.

"마도카는 상냥하고 강한 아이였구나... 나도 좀 더 힘내야겠어."

책의 끝표지를 덮으며, 모모는 슬슬 탐색을 이끌 시간임을 확인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사령관님!"

결말이 정해진 책과 달리, 그녀와 사령관은 아직 살아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좀 더 나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작가가 정한 결말을 멋대로 바꿀 자격은 오르카의 마법소녀들에게는 없었다.

작가가 만족스러운 결말은 오직 작가만이 인정하고,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결말이 작가의 입장에서도 그녀들에게 최선이었던게 아닐까?

하지만 오르카의 그녀들은 책속의 주인공이 아니다. 배우로서 연기했던 시절이라면 맞다고 할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들의 삶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니 할수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면 그걸로 괜찮은게 아닐지.

https://arca.live/b/lastorigin/1512321?mode=best&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