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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虚淵玄 (@Butch_Gen) / 트위터 (twitter.com) 

이전에 했던 번역 마음에 안들어서 수정하다가 이제서야 다시 올림.

명칭이나 말투, 단어만 좀 바꾸고 매끄럽게 한거라 큰 차이는 없음.

아직 마음에 안드는 부분 있긴 한데 일본어 전공도 아니고 이정도만 함...




돌풍에 나부끼는 보라빛 머리. 슬픔을 간직한 비취색의 눈동자.
처참한 사투 끝에 피폐하기 짝이 없음에도 그녀는 의연하게 가슴을 펴고 *만뢰의 갈채를 받는다.
(*우레와도 같은)


그 아름다움, 거룩함에 나는 그저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틀림없이 그녀는 신화 그 자체였다.

"이 승리는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바치는 것이다. 비열한 *사과의 계략이 없는 한 나의 **준족을 능가할 것은 없다!"라고 큰 함성에, 객석의 성원이 더욱 열기를 더했다.
불패로 불리던 콜로세움 퀸을 물리치고 이날, 덴세츠 토너먼트에 새로운 패자가 나타났다.
(*아탈란테의 일화. 황금사과에 정신을 뺏겨 달리기 경주에 패배하였다)
(**빠른 다리)


그 이름은 질주하는 아탈란테. 팀 [아카디아의 처녀들]의 필두에 있는 전사.
우리가 경애하는 여왕이며 - 그리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사]의 바이오로이드.
즉 인간들의 애완인형이다.


"오늘의 멧돼지는 유달리 강했다. 드디어 나도 명계의 강을 건너게 될까 체념할 뻔했다."
대기실로 돌아와 흐르는 물로 씻으며 아탈란테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담담한 어조에 흥분의 기색은 없다. 기록적인 시청률의 대승리를 한 뒤인데도.


"당신은 챔피언을 쓰러뜨렸어요. 오늘의 싸움은, 전에 없는 위업이었죠?"
그렇게 내가 말해도, 아탈란테는 시원하게 웃을 뿐이다.


"챔피언? 이상한 말을. 멧돼지에게는 패자도 아무것도 없다. 짐승은 짐승. 여신이 우리의 무용을 시험하기 위해 내린 시련일 뿐이다.”


“하지만 콜로세움 퀸은 ---” 이라 말하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탈란테는 항상 대전 상대를 멧돼지라고 부른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현상의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그녀의 시각에서 모든 적이 멧돼지의 모습으로 인식이 변환될 수도 있다.
내겐 확인할 길이 없다.


"아아,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 이곳은 그리스의 아카디아와는 다른 땅, 다른 시대. 전쟁터도 *지고스산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카디아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려기 위해 되살아났다. 바로 **오이네우스의 소환에 응했을 때처럼 말이야."
(*아탈란테의 일화.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의 주된 장소)
(**칼리돈의 왕)


“그러니까 말이야, 사냥꾼이여. 다른 사람들이 이 싸움을 뭐라고 부르든, 여긴 나의 칼리돈. 무용을 보이고, 여신을 찬양하는 시련의 장이다."
시원하게 웃는 아탈란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게 설계되고, 그렇게 정신구조가 초기화되어 있는 그녀에게는.
이곳이 인간들의 오락을 위해 바이오로이드끼리 죽이는 '흥행'의 무대라는 현실은, 결코 아탈란테의 마음에는 와닿지 않는다.


아마도 콜로세움 퀸도, 같은 정신 구속을 받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들 같은 일선급의 간판선수들에게는, 쇼를 띄울 연출로 그런 조치가 이뤄지는게 관례이다.


나는 아탈란테와 달리 시합을 떠들석하게 하기 위한 잡병. 즉 쇼의 들러리이다.
그래서 정성들여서 정신 구속도 하지 않고 있어, 바이오로이드로서 표준적인 충성원칙만이 주입되어, 디렉터들이 시키는 대로 무대의 싸움을 받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사냥꾼이여. 오늘 너의 움직임은 정확하고 흠잡을 데 없었다. 너가 다른 멧돼지들을 잘 막아주었기에, 나도 리더에게 전념할 수 있었다."


"----과분하신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내 등을 맡기고 싶다. 함께 여신 아르테미스를 우러르는 동포여"
다 씻어낸 아탈란테는 나를 향해 돌아보며 치하의 말을 건넸다.
완벽한 균형의 나체는 마치 여신의 조각상처럼 아름답다.


떨어지는 물방울조차 보석의 알갱이로 보일 정도로.
그 나체에 약간의 얇은 천만 감싼 모습으로, 그녀는 창과 방패를 들고 다시 전장에 선다.
숨막힐 정도인 그 아름다움은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사의 바디 디자이너가 계산한 성과이다.
어떤 미녀가 피범벅이 됐을 때 관객을 흥분 시키는지는, 그들이 잘 알고 있으니까.


그 끔찍한 사실을 이해하고 있어도, 나는 그녀의 나체에 시선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나에게는 '미'를 이해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객석에 앉는 쪽이 아니다. 피를 흘리거나, 오히려 피를 흘리는 쪽이다.
그녀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 따위는 쓸데없는 것인데.


"왜---"
"응? 왜 그러지? 사냥꾼이여"
"왜 저에게는... 우리에게는 마음 같은 것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싸우기에는 쓸데없는 것이다.
검을 휘두르고, 검에 찔려, 동포의 단말마를 들으며 살아가는 나날에는, 차라리 마음 같은건 없었으면 했다.


"그건 바보같은 질문이다. 이 가슴속에 마음이 있기에, 우리들의 싸움은 의미를 갖는다"
아탈란테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가르쳐 주듯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싸워서, 잡은 사냥감을 아르테미스 신에게 바친다. 하지만 신은 단지 멧돼지를 탐내는 것이 아니다. 그 사냥감을 죽이기에 이른 용맹과 불굴의 투지,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제물이다. 삶과 죽음의 틈을 견디는 우리의 정신이야 말로, 신에게 기쁨을 주는거다"


"그렇....네요"
나는 반박할 길이 없었다.


그녀의 구속된 정신은... 스스로를 신화속 영웅이라고 믿도록 되어있어, 의심할 능력마저도 빼앗겼음에도, 그럼에도 진리를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공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피가 아니다.
우리의 아픔이. 비명이. 그리고 아름답고 고상한 것이, 더 이상 더럽혀지지 않았으면...
그런 기도가 언젠가 헛되이 부서지는 순간이야말로, 분명 그 객석에 모인 인간들을 흥분시키고, 환희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러기 위해 싸움을 계속한다.
우리는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사의 바이오로이드다. 오리진 더스트의 *비적이 가져온 새로운 오락의 행태이다.
(*신의 은총을 받기 위한 기독교의 의식)




"매지컬! 핑크! 무우운 라이트!"
마법소녀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강철톱니가 요란한 구동음을 뿜어낸다.


머리 위쪽에서 내리치는 전기톱 끝에는 또 다른 소녀가 있었다.
마법소녀의 사악한 원수라는 설정…의 바이오로이드 여배우가.


화면이 선혈로 물들기 직전의 프레임에서, 공포에 질린 여배우의 표정이, 내눈에 강하게 새겨진다.
나와 같은 염가판 모델의, 분명 배양조에 나와 번호만으로 불려왔을, 이 장면에서 참살당하기 위해 태어난 소녀.


영상은 특수효과 따위가 아니다. 안목 높은 시청자의 기호를 만족시킬 것은 진짜 고통. 진짜 죽음.
스타급 아이돌부터 일회용 엑스트라까지, 다양한 등급의 바이오로이드를 다수 갖춘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사라면, 그를 제공할 수 있다.


영상을 응시하는 내 얼굴을, 면담자는 차분히 살핀 뒤에, 홀로그램 프로젝터의 음성 출력만을 뮤트하고, 질문을 시작했다.


"지금의 영상을 본 소감을 들려줘. 거짓말은 하지말고. 여기서의 대화는, 뭐 기록되겠지만 비밀은 보증하지"
거짓말을 금지당한 이상 솔직하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
그는 인간이고, 나는 바이오로이드다.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래도, 내 입을 비집고 나온 말은, 아마 그가 기대하던 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기뻤던 것 같아요"
"기뻤다고? 살해당한, 그 여배우가?"
"네"
"알고 있겠지만, 이 영상은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사의 것이다. 죽은 바이오로이드는 너의 동료라는게 되지."
"알고 있습니다"
"백토에게 잘려 죽은것은, 어쩌면 너였을지도 모른다만?"
명확하게 대답을 해달라는 질문이 아니었기에, 나는 침묵했다.


그런 나의 반응에, 그는 가지고 있던 단말기에 무언가 코멘트를 기입한 후,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죽은 바이오로이드는 기뻐했다는... 너의 견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라."
"그녀는 존재의의를 다했습니다. 그것은 덴세츠사의 바이오로이드에게 명예이고, 환영할만한 결말입니다."
답변으로서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보다 단적인 소감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해방된거다'라고는.


"나는, 너희들 바이오로이드의 아군이라는 입장인 셈이다만, 그건 이해하고 있는건가?"
그의 질문을 받고, 나는 면담을 시작할 때 건네준 명함을 다시 봤다. 피터 코스타.
직함에는 '바이오로이드 인권위원회'라고 되어 있다.
나는 고개를 흔들고, 그걸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걸 깨닫고, 말을 덧붙였다.


"아군이라는 건, 경기에서 같은 진영에 배치된 바이오로이드를 말합니다. 당신은 인간이지, 토너먼트의 참가자가 아닙니다."
나의 대답에, 코스타씨는 분노나 초조함은 보이지 않고, 그저 조용히 침묵으로 받아들였다.
그 반응으로, 그가 자기도취의 수단으로 정의감을 운용하는 타입의 인물이 아니란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내 동료들은 말이지, 너 같은 바이오로이드의 목소리를 계시로 사회를 바꿀 수 있지않을까 생각해서, 이런 활동을 하고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스타씨는 무음 상태로 재생을 계속하는 프로젝터를 흘깃 봤다.
영상은 슬슬 클라이막스에 달해, 카메라의 초점은 백토에서 사무라이 마법소녀 모모로 바뀐다.


"매지컬☆백토 & 매지컬☆모모.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의 캐릭터 타이틀이다. 대상 연령은 알고 있는가?"
"타겟층은 6세에서 12세의 여아입니다."


모모의 티타늄 합금도검이 엑스트라 여배우를 양단해 간다.
만약 이들에게 매지컬 발도술의 초음속 충격파를 피할 성능이 있다면, 영상부문이 아닌 콜로세움에 배속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이제는 이런표현이 당연해졌다만. 지난 세기에는 언어도단이었다. 방송윤리 규정은 전례없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 확실히 덴세츠 엔터테인먼트는 트렌드를 이끌어 나간다만, 그뿐만 아니다. 시청자의 가치관에 변천이 없다면, 이정도 변화는 없다."


"오리진더스트가 발명되기 이전엔, 시체 묘사나 사지 결손은 윤리적 금기였다 하더군요."


"소생이나 재생의학의 발전으로 상대적으로 잔혹한 표현에 안일해졌다 보는 식자들은 많다만. 내 견해는 다르다. 키는 바이오로이드 보급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임이? 저희에게 있다?"
화면에 흩어져 있는 여배우의 시체는, 나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게 한다.


바이오로이드의 성능은 배양조에 입력되는 설정에 달려있다.
녹화대본에 저항하는 것을 허락되지 않고 참살당할 것인가, 콜로세움에서 생존경쟁의 시련을 겪게 될 것인가.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다.


"너희들이 원한 것은 아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는 너무나 강하고, 유능하며, 또한 아름답다. 너희는 인간 이상의 구현이다. 그러한 존재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시대가 와 버렸다. 그걸 어떻게 사회가 받아들였느냐가 문제였지."


"너희들은 [인간을 초월한 인간]으로 용인될 수 있었다면, 종으로서의 진화의 길마저 뚫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현실은 달랐다. 인류는 왕년의 이상을 마침내 실현해놓고도, 그것을 단순한 물건으로 소모하는 길을 택했다."


스크린에 섬광이 *명멸했다. 싸움에 전념했던 모모가 클레이모어 지뢰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빛이 나타났다 사라짐)


상상을 초월하는 극심한 통증일텐데도, 모모는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아랫배에서 흘러나온 내장을 상처에 밀어넣은 뒤에, 매지컬 모모 스티커로 지혈처리한다.


"나는 바이오로이드의 아군이 되겠다 했다만, 정말 걱정되는 것은 인류의 미래다. 인간은 예전에 꿈꿔온 이상을 발로 차며 놀고 있다. 무엇이 고귀한 것인가를 잃어 버리고 있다. 이런 상태가 오래토록 지속된다면, 문명 자체가 퇴행할 수 있다."


코스타씨가 무엇을 우려하는가,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 그저 무음의 홀로그램 영상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모'는 배역을 계속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촬영 종료후 파기되어 다른 모모로 대체된 것일까. 복부의 흉터가 남았는지에 달려 있다.


"저희가 인류문명에 유해하다면, 그저 일괄적으로 처분하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T-1 고블린처럼, 말인가?"


실제로, 주로 군사용도로 운용되고 있던 남성형 바이오로이드는 그런 말로를 걸었다.
오리진더스트가 남성호르몬을 과다 분비시켜 폭주에 이르는 사례가 보고된 결과, 남성형 모델은 모두 사회로부터 제거되었다.
현행에 여성형 바이오로이드가 과도한 성징을 보이는 경향도 안전관리의 필요성 때문에 호르몬 균형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 이유다.


"이미 경제도, 산업도, 완전히 바이오로이드에게 의존하고 있다. 이제와서 바이오이드로 버리고 사회를 바로 세우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과거 문명은 화석연료나 프레온가스에도 크게 의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들을 벗어남으로 위기상황을 모면했다, 던데요"


"마치 바이오로이드 *러다이트 같은 주장이군"
(*산업시대 기계파괴운동, 노동자의 자리를 기계가 빼앗는다는 반발에 일어났다)


쓴 웃음을 짓는 코스터씨에게는 어째선지 내 발언이 우스꽝스러운 것 같았다. 가능한 이치에 맞는 말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너희에 대한 악감정은 결국 피상적이다. 문제는 더 뿌리가 깊다. 사람들은 바이오로이드를 폄훼함으로써, 자신에게 내재된, 더 관념적인것에 복수를 하고자 한다. ...그렇지, 굳이 말하자면 '동경'이라고 할 수 있겠지."


"동경...입니까?"
동경. 명확한 정의는 어렵지만 공감은 된다. 내가 아탈란테를 따르는 것과 같은 종류의 감정이겠지.
그러나 그것이 증오나 복수심을 유발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동경이... 어째서 증오로 이어지는 거죠?"


"인간은 오랫동안 동경의 노예였기 때문이다. 그 감정에 이끌려, 묶여, 굶주리며 인간은 역사를 쌓아왔다. 그리고 이제, '궁극의 인간'이라는 동경의 극치가 인간의 손이 닿는 데까지 와 버렸다."
어느새 길게 스태프 롤을 하기 시작한 무성의 홀로 영상을 바라보며 코스타씨는 피로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손이, 닿아버렸다. 목을 조를만큼, 가깝게 말이다."


"...이야기가 꽤 옆길로 빠졌군. 어쨌든, 너는 덴세츠사의 근무환경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그렇게 이해해도 되는가?"


"네"
코스터씨는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말을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뭔가 이야기할게 있다면 명함의 연락처로. 너 자신이 아니라, 너의 동료의 상담이라도 괜찮다."
"네. 감사합니다."
코스타씨가 퇴실한 후, 나는 그의 명함을 슬그머니 분쇄기에 밀어 넣었다.


본인은 내색하지 않았으나, 그가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내게 면담을 신청한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바이오로이드를 옹호하는 것은 바이오로이드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을 남겨두면 나중에, 그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코스타씨가 말한, 동경과 증오의 상관에 대해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아탈란테에게 증오를 갖게 될까. 고통받고 죽는 꼴을 보고 싶어할 정도로?


그것이 코스타씨가 말한 대로, 인간에겐 자연스러운 마음의 움직임이라면... 나는 바이오로이드로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단지 콜로세움에서 죽이고 죽일 뿐인 생애라고 하더라도.



다시 콜로세움의 개최일이 찾아왔다.


오늘의 참가자 수는 10명. [아카디아의 처녀들]이 총동원된다.
대전 상대는 비공개. 콜로세움에 들어 서기 전에는, 어떤 적과 상대하게 될지 모른다.
대기실에 모인 우리는, 긴장된 얼굴로 한 명 한 명, 서로의 얼굴을 기억했다.
오늘밤은 분명 격전이 된다.


여기 있는 몇몇은, 반드시 대기실로 돌아올 수 없다. 어쩌면 그건 자기자신일수도 있다.
총동원 --- 즉 팀의 손실이 도외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디렉터진은 다음 번 이후의 흥행에 [처녀들]의 출전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우리를 전멸시킬 수 있는 강적이 회장에 나타난다. 대전자가 은닉되어 있다는 사실이, 예감을 확신으로 바꾼다.


"---다들 짐작하고 있겠지만, 오늘밤 사냥은 유례없는 거물에게 도전하게 될 것이다."
긴장을 숨기지 못하는 [처녀들]을 향해, 아탈란테는 늠름하게 말하였다.


"하나 두려워할 건 없다. 밤의 어둠이 깊어지면 달은 빛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여신의 가호가 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아르테미스 신에게 기도 드렸다.
물론, 그리스 영웅이라는 인격적인 설정이 되어 있는 아탈란테 외에는, 아무도 여신에 대한 믿음은 갖고 있지 않다.


그 중에는 [아르테미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초교양도 인스톨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도했다. 다른 이에게 기원 할 수는 없기에.
사람을 사랑하고 인도한다는 신에게 바이오로이드의 기도는 닿지 않는다.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 아니니까.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잊혀진 달의 여신이 아닌, 우리의 여왕 아탈란테의 말 그 자체다.
우리를 지키고, 격려하고, 이끌어준 *상승의 전사. 그 말이 허구의 정신에 비롯된 것이라 한들, 우리는 믿고, 받들 만하다.

(*항상 이김)


"함께 보여주자. 아카디아의 영광을. 시대의 끝의 세계를 영원히 비추는 등불로!"
"본부대로. 우리의 여왕, 준족의 그대여."
아탈란테를 선두로, 우리는 의연하게 고개를 든 채 콜로세움에 입장한다.
맞이하는 것은 땅이 울리는 듯한 대환성. 이를 더욱 고무시키듯 스피커에서 진행자의 말이 울려퍼진다.


"방송을 보시는 전 세계 여러분! 그리고 객석까지 찾아와 주신 프리미엄 회원 여러분! 오늘이야말로 선혈의 궁전으로! 오늘은 덴세츠 엔터테인먼트가 총력을 기울인 스페셜 콜라보레이션을 전해 드립니다! 바로 선명하고 강렬한, 처참한 꿈의 경연을!"
흥분에 들끓는 객석의 열기는 뒷전으로,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자의 입장게이트는 닫힌 채, 전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막 경기가 시작되려는 사회자의 부추김을 뒤로 한 채, 콜로세움으로 서 있는 것은 우리 아카디아의 처녀들 뿐이었다.


"이건 대체..."
아탈란테가 언급했을 때, 머리 위로 흉조와 같은 실루엣이 순신간에 지나간다.
제7세대 개수형 스트라이크 엔진. 초음속. 위험할 정도의 저고도---


"엎드려!"
순간적으로 동료들에게 소리치며, 몸을 굽혔다.
다음 순간, 충격파가 행사장을 유린했고, 폭격이 터진 듯한 모래 먼지를 일으켰다.
하지만 방어필드가 전개된 객석에는 아무 위험도 미치지 않는다. 성대한 연출에 관람객들의 함성은 더욱 고조된다.


곧바로 몸을 일으킨 우리는, 오리진더스트에게 강화된 동체 시력으로, 두터운 모래 먼지 너머로 마침내 적의 모습을 인식했다.


엔진의 폭탄 수납공간에서 투입된 한 소녀.
낙하산도 쓰지않고 우아하게 콜로세움에 내려 앉는 기동형 바이오로이드.
그리고 울려퍼지는 소닉붐의 폭음의 잔향에, 맑게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모두들! 약속해줘! 악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그 순간 경기장의 열광은 바로 정점에 달했다.


"소개합니다! 오늘의 도전자,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 상대는 연전연승의 챔피언 '질주하는 아탈란테'가 이끄는 '아카디아의 처녀들'이다!"


"자, 피로 피를 씻는 향연 끝에! 콜로세움을 제압할 것은 누구인가!?"


"원형진, 준비!"
기동형 바이오로이드와의 대전법에 따라, 아탈란테가 호령한다.


적은 자유자재로 허공을 날아 이쪽을 농락하며 일격이탈전법을 걸어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철벽 방어의 진형으로 받아쳐서, 찰나의 카운터에 승기를 찾을 뿐이다.
하지만, 콜로세움에서 불패를 자랑했던 아카디아의 처녀들도, 영상 쪽의 콜라보레이션은 첫 경험이었다.
검투사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미지의 기습은, 우리의 판단을 그르쳤다.


"매-지-컬-"
"루치노이・플라치바탕카비・그라나타요트!"
모모의 러시아어 영창과 함께, 사랑스런 스틱 끝에서 폭탄이 쏟아져 나온다.
로켓 모터 불꽃과 함께 닥쳐오는 탄체가 성형 작렬탄이 아니라 파편 유탄이라고, 간파한 나는 전율에 등공이 오싹해졌다.


"산개!"
절박한 아탈란테의 지령에 우리도 다시 즉응한다.
그러나 첫 수에 진형을 잘못 세운 대가는 컸다.


게다가 우리의 평소 훈련은 격투전 뿐, 폭발물과 관한 전술은 상정외이다.
결국, 도망치는게 늦은 3명의 처녀가 모모의 초탄에 목숨을 빼앗겼다.


"이이런!? 다음 예고에 등장한 모모의 신병기가 한 발 앞서 이 콜로세움에 선보인다! 이것이야말로 매지컬 RPG 스틱! 세부까지 충실하게 재현된 복제품이 덴세츠 프리미엄 온라인으로 본 시각부터 예약접수 시작!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이 녀석, 그저 멧돼지가 아니다... 마성의 짐승인가!"
전례없는 적수에 경악하면서도, 그것으로 기죽을 아탈란테가 아니다.


"적은 단독이다. 포위해서 움직임을 멈추게 해라!"
하지만 그런 아탈란테의 용맹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제야 도전자 게이트의 셔터가 열리기 시작했다.


"자, 오늘의 스폐셜 서프라이즈 2탄! 모모의 궁지에 마음졸이는 당신을 위해! 본 회장에 준비한 무장AGS의 원격조종 패스를 특별가격으로 발급합니다! 집에 조종 콘솔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참가가능!"


"그런..."
사회자의 안내에 귀를 의심할 틈도 없이, 셔터 안쪽으로부터 폴른형 AGS가 앞다퉈 콜로세움으로 들이쳤다.


"매진! 조종 패스, 1초도 기다리지 않고 매진입니다! 자, 오늘 밤 마법소녀를 구하는 매직젠틀맨은 누구인가!?"


10대, 20대... 계속 출현하는 폴른의 군단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오늘 밤 시합은 시청자 참가형... 매지컬 모모가 단독으로 팀 리그에 나타난 것은, 이런 취향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고마워! 모모는 반드시 지지 않을 거야!"


천진난만한 미소로 폴른의 무리를 격려하는 모모.
관중석의 흥분은 비점을 넘어, 모모콜 일색으로 물든다.
역시 경기 전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디렉터는 이 경기에서 아카디아의 처녀들을 쓸어 낼 작정이다.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의 다음 시즌 프로모션을 위해. 그것이 영상부문과 검투사부문을 총괄하는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사의 공통된 의견이다.


절망한 나머지 처녀 한 명이 무릎부터 쓰러질 것 같다. 나는 순간 그 팔을 잡고 어깨를 받쳤다. 하지만 그런 나의 하체도 떨리고 있었다.
이제 콜로세움은 투쟁의 장이 아닌, 우리를 씹어 부수고, 뭉개기 위한 처리장치일 뿐이다.


그 때였다. 아탈란테가 소리 높여 웃기 시작한 것은.


"아아, 이 무슨 난적인가! 이 무슨 역경인가! 신들의 기대가, 흥분이, 지금 얼마나 고조되고 있을까!"
동료들 누구할 것 없이 창백해지는 가운데, 그녀는 마치 축제에 들뜬 아이처럼 희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 우리의 생명은 여기서 의미를 얻었다. 자, 영광을 붙잡자. 이 싸움은 반드시 영원히 전해질 빛이 될 것이다!"
옳고 그름을 가릴 것도 없다.
여왕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녀의 그말에 아카디아의 처녀들은 공포를 버렸다.


그녀는 허구. 창조자의 장난으로 혈육이 주어졌을 뿐인 허구.
그래도 죽기 위해서만 낳아진 우리에겐, 선망의 대상이다.


죽음을 관념하고, 싸우는 의미를 외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고귀한 모습일까.
우리가 믿을 만한것, 존경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장을 달리는 준족의 용사 뿐이다.


"전원, 아탈란테의 원호를 돌아라! AGS를 여왕에게 접근시키지 마라!"
나는 동료들에게 그렇게 외치고, 선두를 끊어 폴른 무리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고함을 지르며 다른 처녀들이 뒤따른다.


일찍이 우리는 군용 AGS 3기와의 변칙 경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는 5명의 동료가 희생되었으나 간신히 이겼다.
우리가 들고 있는 검과 창은 군용기 장갑을 뚫기에는 너무 약하고, 얇은 천을 감기만 한 몸은 30mm 중기관포가 스치는 것만으로도 쉽게 터진다.


그 사투를 살아남은 처녀라면, 강철 살육무기의 위협은 뼈저리게 느껴진다. 30기가 넘는 대군에 돌격하는 건 자살 행위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유일한 활로가 있다면, 전세를 난전상태로 몰고 가 조금이라도 적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모한 돌격은, 뜻하지 않게 유효했다.


일찍이 우리를 고전시킨 AI 제어의 AGS와 달리,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시청자들이 원격 조작하는 폴른은 제대로 조종되지 않고, 오히려 수가많아 서로의 발목을 잡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더해 폴른의 대군은 모모의 공격을 봉쇄하는 방패막이가 되었다.


아마 모모는 상품 홍보를 위해 매지컬 RPG를 우선적으로 사용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거금을 내 참가권을 얻은 시청자들의 폴른을 오인사격 할 수는 없다. 유탄이라면 더 더욱 그렇다.


결국, 모모는 폴른 무리 한복판에 뛰어든 아카디아 처녀들을 공격하지 못했고, 오히려 아탈란테가 일방적으로 투창으로 모모를 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왕이 공격에 전념하도록, 다른 처녀들은 연계해서 폴른의 교란을 철저히 했다.
나를 포함해 처녀들이, 칼 외에 예비로 채찍을 들고 다닌 것도 다행이었다.
어차피 검으로는 AGS장갑에 유효하지 않다. 오히려 이족 보행 형태의 폴른 다리 부분에 채찍을 휘감아 넘어지게 하는 전법은, 참을성 없는 조종자들을 초조하게 하고, 판단력을 빼앗는 성과로 이어졌다.


난무하는 총탄 속에 하나 둘 처녀들은 상처를 입고, 쓰러져 간다.


하지만, 거기에 배에 달하는 수의 폴른이 서로의 오발로 파괴되고 있었다.
모모의 활약을 기대하던 객석에서도, 점점 야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이는 운영측도 상정외의 전개였을 것이다.


"지금부터 매직젠틀맨 제2차 모집을 시작하겠습니다! 조종패스를 원하시면 ---- 완매! 완매입니다!"
방송이 끝날 틈도 없이, 새로운 폴른이 게이트로부터 돌입해 온다. 그 외형에도 드러나는 무장변경에, 나는 전율했다.


화염방사기--아마 30㎜포의 취급이 힘들었던 시청자들의 클레임이 뒤따랐을 것이다.
신종 폴른의 앞에 장착에 무장은, 아군 AGS에 해를 끼치지 않고, 바이오로이드에만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흉기였다.


정체되어 있던 전황은 한 번에 타개되었다.


증원 폴른이 사방에 뿌려대는 네이팜탄은 콜로세움을 작열 지옥으로 바꾸고, 여기까지 아슬아슬한 분투를 벌여온 처녀들을 일소한다.
불덩이가 된 처녀 중 한 명이, 그래도 마지막 함성을 지르며 불을 뿜는 폴른 1대에 달려들어 장갑 틈새로 검을 들이 넣었다.


"아카디아를... 위해..."
불꽃에 그을린 폐 속에서 마지막으로 짜낸 숨에서, 그녀는 그렇게 고함지르고, 힘이 다하였다.


처참한 광경에 객석이 갈채를 보낸다. 필시 추하고 무의미한 저항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 탄화된 동료의 유해 옆에, 폴른에게서 떨어진 화염방사기가 굴러 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한 비를 뚫고, 나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거둔 성과에 달려든다.
방아쇠의 위치와, 연료의 잔량을 즉석에서 확인.
통할 수도 있는… 혹은 기사회생의 한 수가 될지도 모르는, 마지막 반격의 찬스가.
폴른 군단이 처녀들의 소탕에 전념하는 사이, 아탈란테와 모모는 일대일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모모는 아탈란테가 던지는 창에 견제되어 이쪽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 화염방사기를 측면에서 기습하면, 그녀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다!
주위 폴른의 방사기가 일제히 나를 향한다. 다음 순간, 나는 횃불처럼 불타오를 것이다.
그러나 한 수 앞서간다면---승리를, 아탈란테에게 바칠 수 있다.


나는 몸을 지키는 일 따위 생각하지 않고 화염방사기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불꽃이 튀는 것보다 한 순간 빨리 모모가 이쪽을 돌아보는 것을 보고 놀랐다.
기동형 특유의 가벼운 비상으로 나의 화염방사를 피하는 모모.
그런 바보 같은... 그녀는 아탈란테에게 못박혀 있었을텐데... 
그리고, 그렇게 당황할 시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에 거듭 놀랐다.
나를 불태워 죽이려던 폴른은?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나를 겨누던 폴른을 걷어차는 아탈란테의 모습이 있었다.
신과 같은 창솜씨로 센서만 파괴된 폴른이 엉뚱한 곳으로 화염을 뿌리며 달아난다.


"아탈란테!"
무심코 외치는 나에게, 여왕은 험악하게 비취색 눈동자로 눈빛을 보내며…그 눈빛만으로 모든 것을 내게 전했다.


이것은 영광의 싸움이라고.
동료가 스스로를 희생시켜서 거는 기습으로서는, 그녀가 요구하는 승리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하지만, 곁에 방해되는 폴른이 없어진 나와 아탈란테는, 모모에게 있어서 적당한 표적이었다.
그녀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다시 그 공포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루치노이・플라치바탕카비-..."


"하게 둘까보냐!" 아탈란테는 소리치면 왼손의 방패를 던졌다.
붕붕거리는 소리를 내며 비상하는 방패는 직격하면 바이오로이드의 강화 골격일지라도 꺾일 만한 위력이 있다.


그것을 파악한 모모는 몸을 비틀어 회피하고--- 마침내 아탈란테가 노린대로의 틈을 보였다.
신화에 이름난 준족의 처녀. 그 일화에 부끄럽지 않을 화살과 같은 질주로 아탈란테는 모모와 간격을 좁힌다.


그 때 나는 여왕의 의도를 이해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모모의 무기가 저 비열한 스틱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탈란테는 적을 [마성의 멧돼지]로밖에 보지 않는다.
그리스의 영웅으로서 칼리돈의 사냥에 임한다고 하는 좁은 세계관 속에서만 사는 그녀는---
영상작품으로서의 매지컬☆모모를 보지 않았다. [사무라이 마법소녀]라 하는 두 이름의 관계를 모른다!


"아탈란테, 안 돼!"
내가 그렇게 외쳤을 때는 이미 모모의 티타늄 합금 카타나가 칼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탈란테가 보기엔, 한 번 꺾었을 마저의 송곳니가, 전혀 다른 형태로 다시 태어난 것과 같았을 것이다.
왼손에 방패가 있다면 막을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이미 견제를 위해 투척해 버린 뒤였다.


칼날의 번뜩임은 --찰나---- 그러나 내 시야에서는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차갑게 빛나는 흰 칼날의 유성이 아탈란테를 꿰뚫고 있다.
심장. 간. 비장. 횡격막. 어느 하나라도 치명상에 달하는 압도적 살의의 연속돌출.
각혈하는 아탈란테. 그 눈빛은 이제 모모를 보지 않는다.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적이 아니라, 그 먼 앞을, 그저 허공을 바라본다.
나는 알았다. 그때 그녀는 시간을 훌쩍 넘긴 저편을 바라봤다. 그녀의 영혼을 끝까지 붙잡고 놓지 않았던 지중해 신화의 환영을.
그리고 나의 여왕은, 피에 젖은 입술로 환하게 웃었다.


"----영광을!"
달려나간 끝에 결승점을 밟은 환희를 담아, 아탈란테는 외쳤다.


"아르카디아의 영광을 여기에! 나는…질주…하리….”


"끝났다아아아아! 승자는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 리더 격파로 시합 종료! 시합 종료입니다!"
관중석이 끓어 오른다.


매지컬 모모의 승리에 도취된 광란의 소리 또 소리.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그 음압에 내 안의 무언가가 부서졌다.


웃기지마---


뭐가 영광이야. 당신은 최후까지 객석을 직시하지 않은건가?


저기 늘어선 조소를, 호기를, 정욕에 찬 눈빛을, 단 한 번도 알아차리려 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 절망의 세계를 등지고, 찬란할 정도로 경사스러운 신화의 환상에 잠긴 채, 당신은 그 너머로 가버렸다... 나 혼자 두고서는!


내 뇌 안에서 경기 조절을 담당하는 명령 회로가 경보를 울리게 한다. 싸움은 끝났다.
아탈란테의 죽음으로 승패는 결정되었다. 즉시 전의를 진정시키고 복귀해야 한다.


---하지만 몸이 멈추질 않는다. 가슴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거무스름한 감정이 강제 명령을 덮어 써 간다.


나는 달렸다. 아탈란테의 피에 젖는 카타나를 든 채 모모를 향해.
물론 그 발은 준족의 여왕에겐 못 미친다.


모모는 시합 종료 명령과 모순되는 나의 행동에 당황해 했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매지컬 RPG의 총부리를 겨눌 만큼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탄두가 사출되었다. 이제 회피해도 늦었다. 공포는 없었다. 그저 사납게 용솟음치는 충동만 있었다.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나는 오른손의 채찍을 휘두른다.
스스로도 놀랄 만한 속도와 위력과 정확도를 가지고, 내 채찍 끝은 모모가 쏜 탄두에 명중하고, 뿐만 아니라 탄두의 진로를 뒤집었다.
팽이처럼 선회하면서 모모의 발밑에 떨어진 유탄이 터진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한 채, 넝마처럼 날라가는 모모.
하지만 그 것으로는 죽지 못한다.


내 안의 짐승도 가라앉지 않는다. 쓰러진 모모에게 나는 다시 채찍을 휘둘러 그 가느다란 목을 움켜쥐고 끌어당긴다.
탈진한 적의 멱살을 움켜쥐고, 물어 뜯을 듯이 코끝까지 끌어당겨서는, 그제서야 나는 모모의 외모를 직시했다.


가련함, 청초함, 천진함을 구현한 듯한 소녀. 그 뺨이 피와 검댕으로 범벅이 된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코스타씨가 보여 준 영상이 생각난다. 그때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배가 갈라져서도 마치 아픔도 슬픔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주민처럼.
그리고 지금도 모모는 상냥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나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거기서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압도적인 위화감에. 있을 수 없는 정적에.
객석이 쥐죽은듯이 조용하다. 모모를 지키기 위해 달려온 원격조종 폴른이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있다.


마치 질량을 수반한 듯한 시선의 압력. 폴른의 카메라 너머로 모니터를 응시하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그 뜻을 미루어 볼 수 있다.


그건, 기대.


회장의, 그리고 온 세상의 누구든 지금,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다.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가 무명의 검투사에게 목졸려 죽는, 그 끔찍하기 짝이 없는 최후의 광경을.


모든 것을 이해한 나를 향해, 모모는 귀엽고 무구한 미소에, 창백해진 입술이,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죽여줘.


그리고 나는 망가졌다.
아니, 시합 종료시의 제지 명령을 무시해 버린 시점에서, 벌써 나라는 인형은 고장나 버린 것이다.


질식 직전의 모모에게서 손을 떼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폴른에게 달려들려 했다.
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것은 겨우 3보.
거기서 두 번째 강제 정지 명령어가 내 뇌간을 직격했다.
이번엔 어찌 하지 못하고, 나의 의식은 어둠에 휩싸였다.




어디라 할 수 없는 장소에서, 나는 깨어났다.
지면도 없고, 상하좌우 감각도 모호한 장소. 애초에 자기자신의 신체감각이, 없다.


"깨어났어?"
그런 부름을 듣고, 나는 누군가 옆에 있는 것을 느꼈다.
모습도 보이지 않는데, 마치 손을 잡고 있는 듯한 친밀한 거리에. 목소리는 영락없는,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의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이 이해할 수 없는 공간 인식에 대한 이해가 갔다.


"이건 - 코어링크?"
"맞아. 지금 나와 당신은 연결돼 있어. 다행이야. 다시 한 번 얘기하고 싶었어."
코어 링크. 복수의 바이오로이드의 사고 회로를 접속해 의식을 공유하게 하는 기술.
하지만 병렬 처리의 효과를 완전히 발휘하려면 동형 모델의 바이오로이드끼리 링크시킬 필요가 있다.
나와 모모 같은 등급 격차가 심한 바이오로이드들이 링크를 해도 효과는 적다.


“나는…너의 보조회로에 넣어진거야? 그러니까 내 몸에 감각이 없는거야?"
“아니야. 내가 너의 몸에 연결되어 있어. 어디까지나 임시 링크일 뿐이야."
점점 더 알 수가 없었다.


모모 같은 고급 모델이 나에게 링크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애초에 ---
"그렇다면 왜 나는 몸에 감각이 없어?"


모모는 말하기 어려운 듯 우물쭈물한 뒤, 한 마디씩 말을 고르며 설명을 시작했다.
"당신의 멘탈 코어가, 심각한 손상을 입었어. 첫 번째 강제 명령어 때랑... 두 번째 명령어가 치명상이 돼서."


"……"


"그래서 나는, 당신의 자율신경을 대체하기 위해 이렇게 링크를 구축하고 있어. 지금 당신의 몸에는 고농도 오리진 더스트가 투여되어 있고, 대폭 업그레이드되는 중이야. 그 동안, 잠을 자면서도 부하를 견뎌야 하니까, 내가, 응."
모모의 설명은 더더욱 나를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다.


“내가? 업그레이드? 왜?"


"콜로세움에서 당신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프로듀서가 너를 다음 시즌 빌런으로 발탁하기로 결정했어. 매지컬 모모의 숙적, 뽀끄루 대마왕으로 말이야."


"그런 거, 내가 할 수 있을리가..."
말을 듣고, 그제서야 나는, 모모가 말하는 진실에 대해 이해했다.


"…그렇구나. 할 수 없으니, 지금 너가 여기 있는 거구나."


"...응."
더는 못 속인다고 체념했는지, 모모는 그제서야 진상을 말하고자 했다.


"너의 멘탈 코어는 새로운 포맷에 맞춰 초기화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명령위반으로 망가진 회로를 살릴 수 없어서..."


"그래…"
나는 냉혹한 선고를,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죽는다…아니, 정확히는 이미 죽은 뒤구나."
두 번의 명령 위반으로 인한 자율 신경 시스템의 충돌로, 나는 육체의 생명 활동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그런 나를 대신해 지금은 모모의 코어링크가 심폐기나 순환계를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생각을 유지하고 있는 나는, 육체에서 쫓겨난, 말하자면 유령과 같은 것이다.
확실히 나의 신체'만'은 재생된다.


하지만 멘탈 코어는 새롭게 초기화되어 찌꺼기나 다름없는 '나'라고 하는 자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유령을, 새로 태어나 변화한 몸에서 털어낸다는 것이다.


"...미안해"
다른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 모모는 신음하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됐어, 하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야. 콜로세움에서 서로 죽이려 한 적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왠지 그게 내 생각이었다.


죽음.
지금 나의 사고도, 기억도,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다. 뒤에 남겨진 신체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된다.


예전에는 이 때를 학수고대했다. 아픔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치고 싶었던 괴로웠던 날들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떠오르는 것은 아탈란테.


그 아름다운 모습. 그 눈빛.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를 이끈 거룩한 미소. 짧은 생애 동안 내가 모은, 소소한 보물들.


그래--- 영광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안에 아탈란테의 모습과 함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결코 빼앗기지 않는 빛으로서.
하지만 그것도 나라는 자아의 단절과 함께 사라진다.


그 상실감에 나는 울었다. 아직 신체가 있었을 때는,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소리도 없고, 눈물도 없는 가상공간에서의 오열. 그걸 모모는 의아해하지도 않고, 멸시도 하지 않고 그냥 지켜봐 주었다.


"옛날에, 누군가 말했어. 모든 것은 빗속의 눈물처럼 사라져 간다고. 분명 우리 같은 것들을 위한 말일 거라고 생각해."


"---아아. ---우는 건, 좋은 거야. 씻겨 나간 것 같은 기분이야."
한바탕 울고 난 후, 나는 의외로 진정이 됐다. 마치 자신이 가볍고 투명해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모모는 대화를 더 이어가기가 망설여진 것 같았다.
나와 얘기하고 싶다고 했는데, 우물쭈물 고개를 숙이는 모모의 침묵은, 다소 어색했다.
결국, 나와 그녀는, '그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선택할 수 있는 화제가 없는 것이다.
너무 곤란하게 하는 것도 좀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말문을 열기로 했다.


"왜, 아탈란테를 죽였어?"
어쩔 수 없이 지독한 질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모는 왠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게 모두의 꿈이었으니까."


모두 --- 터무니 없이 크고, 적절한 주어였다.
그 싸움을 지켜본 모두들. 우리의 용기를 비웃고, 우리의 고통을 노리개로 쓴 모두들.
그러기 위해서 나를, 모모를, 아탈란테를 설계해 세상에 내놓은 모두들.


"꿈은... 이뤄져야 하니까. 그 걸 위해 나는 태어났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지뢰 파편에 배를 쿡쿡 찔려도, 내 채찍으로 목이 졸려도.
그 광경을 기대하고 꿈꾸는 이들을 위해 미소를 짓고, 그 소원을 계속 이뤄준다.


"...미안해. 쓸데없는 질문이었어."


"아니, 고마워. 나도 이렇게 얘기하니, 이제야 마음이 정리됐어."


“응, 얘기해서 좋았어. 하지만..."


나와 모모가 만날 기회는, 이 물거품같은 한때 뿐인 것이다.
다음에 깨어났을 때 나는, 대마왕인지 뭔지가 되어버려서, 분명 모모를 상처입히고, 매도하고, 소중한 것을 빼앗곤 할 것이다.
그녀를 미워하고, 때로는 죽이는 일조차 있을 것이다.


"뽀끄루대마왕, 이었나?… 나는 다음 번에도, 또 너한테 지독한 짓을 할까?”


"그럴 수도 있고...아닐 수도 있어.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라고 할 수도 없고."
언제나의 일이지만, 라고 모모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콜로세움에서의 신체 파손, 재생비용의 품의서가 통과할지 모르겠어.
안 되면 다음 분기의 '모모'는 내가 아니라, 다른 모모가 기용될 것 같아."


"그렇구나."
나도, 모모도, 같은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사의 바이오로이드인 이상, 그 운명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인간들은 향락의 꿈을 계속 꾼다.
우리는 싸우고, 사용되어 버려지고, 또 싸우기 위해 다시 만들어진다.
그 끝없는 순환 속에서, 지금처럼 내가 모모의 친절을 만날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저기, 언젠가 아무도 꿈을 꾸지 않게 되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나는 생각난 대로 말했다.


"우리에게 꿈을 부여하는 인간들이, 한 명도 없어지는 날이 오면, 그때는."
그것이 너무나 바보같은 망상이라는 걸 깨닫고, 나는 도중에 말을 끊었다.
만일 그런 날이 왔다간, 누가 우리를 배양조에서 살려줄 것인가.


인간들의 일그러진 꿈속에서만 있을 수 있는 우리에게, 누가 다시 생명을, 삶의 방식을 선택할 기회를 준다는 것인가?


하지만 모모는 미소를 지으며--- 모두의 희망을 이루어주는 마법소녀의 미소로, 내가 하던 말을 받아주었다.


"그땐... 우린, 분명 친구가 될 수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할 바 없이 허무하다, 이루어질 리가 없는 약속이라는 걸 뻔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모모의 말은, 충분히 안도가 되어 나를 치유해 주었다.


"어쩐지 피곤하네... 조금, 잠을 잘게."


"응, 잘 자. 좋은 꿈 꿔."
모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나는 안식에 몸을 맡긴다.


그곳은 차갑고, 깜깜한 장소였지만, 왠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멸망 전의 어떤 기록 아카디아의 처녀들
--완 --





질주하는 아탈란테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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