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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탕!

 

 수복실 앞에서 총성이 울렸다.

 

 얼굴 바로 옆의 벽에 총알이 박혔지만 블러디팬서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녀의 앞에는 블랙리리스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블러디팬서를 향한 총구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페로가 놀란 얼굴로 블랙리리스를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염치도 없이 기어들어 온 거죠?"

 

 죽일 듯이 물어보는 블랙리리스에게 블러디팬서는 대답했다.

 

 "사령관님을 뵈러 왔어."

 "어딜 감히-"

 

 블랙리리스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페로가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그녀는 블러디팬서를 노려보면서도 최대한 정중하게 부탁했다.

 

 "사령관님은 아직 수술이 끝나지 않아 만날 수 없습니다. 자매님 몸도 안 좋아 보이시는데 지금은 돌아가 쉬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페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블러디팬서 또한 완전히 망가졌던 몸뚱이를 막 수습한 참이었다.

 으스러졌다던 다리는 깁스에 꽁꽁 둘러싸여 있고 목발 두 개가 그녀의 다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 목발을 지탱하고 있는 팔도 압박붕대로 단단하게 매여있다.

 붕대 사이로 드러난 피부에 꿰맨 자국이 가득했다.

 

 당분간은 걷지 말라는 다프네의 충고도 무시한 채 그녀는 결국 여기까지 왔다.

 

 "여기서 기다리면 안 될까."

 

 그녀의 말에 블랙리리스가 더욱 살기를 뿜었다. 페로는 가까스로 언니의 분노를 억누르며 애원하듯이 외쳤다.

 

 "제발 지금은 돌아가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아머드메이든 격납고

 

 블러디팬서는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녀의 앞에 완전히 전소된 방벽모듈이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어렵게 회수했으니 잘 보관해두라고, 수리날짜 잡히는 대로 알려준다고, 닥터는 말했다.

 

 블러디팬서는 계속 쳐다봤다.

 하루도 빠짐없이 닦아왔던 방벽이 반 토막 났다.

 뜯어먹힌 듯이 처참하게 뚫린 자리 위에 아머드메이든의 해골마크가 절반 남아있었다.

 

 해골마크가 남은 한쪽 눈구멍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그녀도 해골마크의 하나 남은 눈구멍을 쳐다본다.

 

 ..............

 

 복도

 이오와 스프리건이 격납고를 향해 걷고 있었다.

 이오의 손에는 아우로라에게 부탁해 만든 초콜릿케이크가 들려있었다.

 

 "대장 입맛에 맞으면 좋을 텐데요."

 "싫어하면 안 되지. 부하들이 이렇게 챙겨주는 건데."

 "맘고생이 심할 거예요."

 "그건....... 그렇지. 그렇겠지. 어쩔 수 없어."

 

 이오의 얼굴에 먹구름이 꼈다.

 

 "우리가 위로해줄 수 있을까요?"

 "노력해 봐야지. 아, 나한테 아이디어가 있어."

 "뭔데요?"

 "대장이 지금 사령관을 못 보니까 사과영상이라도 미리 찍어두는 거지."

 "그게 좋은 생각일까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잖아."

 

 이오는 더욱 슬픈 표정이 되었다.

 

 "대장이 사과해야 할 상황이라니......."

 

 줄곧 웃으려 노력했던 스프리건도 조금 침울해졌다.

 

 ".........대장은 사과하고 싶을 거야."

 "그건 그렇겠지만-"

 

 쾅!

 

 갑자기 울린 큰 소리에 이오와 스프리건이 놀라 시선을 돌렸다.

 격납고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쾅! 쾅! 쾅!

 

 요란한 쇳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그녀들은 재빨리 격납고를 향해 뛰었다.

 격납고에 들어선 순간, 두 아머드메이든은 얼어붙었다.

 

 소리의 원인은 블러디팬서였다.

 

 쾅! 쾅!

 

 그녀가 망치로 방벽을 사정없이 내려치고 있었다.

 

 쾅!

 

 망치로 불에 탄 쇳덩이를 칠 때마다 손을 감싼 붕대에서 피가 터졌다.

 

 쾅! 빠각!

 망치가 부러졌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주변에 있던 쇠파이프를 아무렇게나 집어 방벽모듈을 향해 던졌다.

 스패너를 던지고, 드릴을 던지고, 옷걸이를 던지고 서랍을 던졌다.

 던질 게 없어지자 맨주먹으로 철판을 후려쳤다.

 마구 걷어차고 또 걷어차다 손에 잡히는 대로 뜯어버린다.

 

 보다 못한 스프리건이 블러디팬서의 허리를 감싸 안고 말렸다.

 

 "그만해 대장! 그만하라고!"

 

 블러디팬서는 대답도 없이 계속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쇳조각에 베이고 찔려 피투성이가 되었다. 손을 감싸고 있던 붕대는 휴짓조각마냥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래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울부짖듯이 괴성을 지르며 팔다리를 마구 휘둘렀다.

 

 버티지 못한 스프리건이 결국 블러디팬서를 뒤로 당겨 넘어뜨렸다. 블러디팬서가 넘어지며 휘두른 팔에 주위에 있던 공구상자가 맞았다. 우당탕, 온갖 쇳덩이가 떨어지며 신경질적인 소리를 냈다.

 격납고 안에 천둥이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맴돌던 소음이 가라앉은 뒤

 

 스프리건이 식은땀을 흘리며 블러디팬서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대장?"

 

 블러디팬서가 코를 훌쩍이며 시선을 피했다. 그녀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는 것을, 스프리건은 알았다.

 블러디팬서가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왔어? 몰랐네."

 

 방금까지 날뛰고 있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였다.

 스프리건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흑, 흑, 끅-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블러디팬서와 스프리건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이오가 선 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흐르고 있다.

 

 그녀의 발 옆에 뭉개진 초콜릿케이크가 널브러져 있었다.

 

 "지, 진정해 이오."

 

 당황한 스프리건이 이오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열심히 이오를 달래는 스프리건을 보며, 블러디팬서도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었다.

 

 그러나 끝내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새까맣게 망가진 방벽모듈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숙여 피투성이가 된 손을 보았다.

 새빨갛게 얼룩진 바닥을 보았다.

 

 손이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들어가 껌을 찾았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이 입에 껌을 넣어준다.

 

 이오가 우는 소리가 맴돈다.

 

 쇠맛과 섞인 단맛을 느끼며

 

 블러디팬서는 눈을 감았다.

 

 

 #8

 

 

 방벽이 뚫리고 몸이 찢어지더라도

 사령관님을 지키겠습니다.

 

 방벽이 뚫리고 몸이 찢어지더라도

 사령관님을 지키겠습니다.

 

 방벽이 뚫리고 몸이 찢어지더라도

 

 사령관님을 지키겠습니다.

 

 

 #9

 

 

 격납고 안에 방송이 울렸다.

 

 'A-1 블러디팬서, 사령관님의 호출입니다. 지금 바로 수복실로 와주세요.'

 

 거울 앞에 서있던 블러디팬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차림새를 정돈했다.

 

 전투복이 꽤나 잘 다려져 말끔했지만 손과 다리를 감싼 붕대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다.

 블러디팬서는 팔목의 붕대 사이로 삐져나온 흉터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곧 격납고를 나와 계단으로 향했다.

 붕대에 감긴 손이 쥐락펴락 계속 움직였다.

 깁스에 싸인 다리를 절뚝이며 한 칸 한 칸 계단을 올라가던 그녀는

 

 생각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슴다.

 용서해주십쇼.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쇼.

 방벽이 뚫리고 몸이 찢어지더라도

 기필코 사령관님을 지켜내겠슴다.

 

 저를 버리지 말아주십쇼.

 

 지키기 위해서 다쳐왔슴다.

 지키기 위해서 매일 같이 싸우고 매일 같이 훈련해왔슴다.

 지키기 위해서

 제 몸을 깎으며 상처를 남겨왔슴다.

 

 그런 제가 흉했슴까.

 그런 제가 무능했던 검까.

 

 그런 제가 결국은 당신을 다치게 만든 검까.

 

 이윽고 계단이 끝나고,

 복도 끝에 수복실의 입구가 보였다.

 이상하게도 지키고 있는 바이오로이드가 없었다.

 알 바 아니다. 블러디팬서의 딱딱한 시선이 수복실의 문짝을 쳐다보았다.

 

 "하하."

 

 그녀는 허탈하게 웃었다. 기름에 젖은 깃털 같은 웃음이었다.

 

 "그만하자. 이게 뭐냐. 그만하자 블러디팬서."

 

 쓸쓸하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수복실로 향했다.

 

 

 #9

 

 

 "몸은 좀 어때?"

 

 사령관이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멀쩡함다."

 

 그녀는 태연하게 말하며 침상에 누워있는 그의 몸을 살폈다.

 왼 다리는 무릎 아래로 다른 색깔의 피부가 붙어 있었다.

 복구불가 판정을 받은 왼팔은 아예 기계로 대체되었다. 인체를 수복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임시로 기계팔을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쇳조각을 빼낸 흉터가 가득했다. 안대를 끼고 있는 왼눈에 안구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환자복에 가려있는 붕대 감긴 몸은 무슨 문제를 숨기고 있을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사령관은 용케도 애처럼 웃어댄다.

 블러디팬서는 죽을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죄송함다. 전부 제 잘못임다."

 "그런 뻔한 소리 들으려고 부른 거 아냐. 더 가까이 와"

 "죄송함다."

 "가까이 와보라니까."

 

 블러디팬서가 떨리는 걸음을 내디뎌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다가오자 사령관이 윗몸을 일으키려 뒤척였다. 그러다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며 도로 누웠다.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줄래."

 "그냥 누워서 말씀하십쇼. 신경 쓰실 필요 없지 말임다."

 "도와줘."

 

 결국 블러디팬서가 조심스럽게 사령관의 윗몸을 일으켰다. 사령관은 이를 악물고 몸을 타고 흐르는 격통을 참았다. 그의 무게를 지탱하는 블러디팬서의 손에서도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령관의 등을 벽에 기대어 놓고서야 손을 뗐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사령관은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곧 웃음기를 되찾았다.

 

 "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

 "다 치료하시고 말씀하셔도 됨다."

 "지난번에 못 했던 이야기마저 하려고."

 "하지 않으셔도 됨다. 굳이 하실 필요 없지 말임다."

 

 문득 사령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려졌다. 잠시 천장을 보며 숨을 돌리던 그는 이내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그날 밤에 내가 놀랐던 건, 죄책감이 들어서였어."

 "........ 죄책감 말임까."

 "내 명령 따라 얘들이 싸운다는 것도, 그러다 다치거나 죽는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어. 하지만 직접 본 건 아니었어. 그런 건 다들 보여주지 않으려 하니까."

 

 사령관의 시선이 블러디팬서의 손을 향했다. 소독약에 얼룩진 붕대가 그녀의 손바닥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네가 방벽으로 다 막아내는 줄 알았지. 그렇게 안전하게 다른 얘들도 지켜주는 줄 알았어."

 "실망하신 검까."

 "아니. 나는 그냥, 속이 아팠어."

 

 사령관의 시선에는 미안함이 담겨있었다.

 

 "난 네가 그렇게 상처 입을 동안 아무것도 몰랐어. 그날 밤 네 몸을 보고 나서야, 네가 자매들을 지킨다고 한 게 어떤 일인지 알게 된 거야."

 

 블러디팬서의 눈이 커졌다.

 울컥 올라온 열기에 눈이 뜨거웠다.

 그녀는 달아오른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특별한 게 아님다. 보호기란 게 원래 다 그런 검다. 상황이 안 좋으면 몸으로 때워야 할 일이 생기지 말임다."

 "그제야 나는 네가 정말 죽겠구나 싶더라."

 

 그녀는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저 블러디팬서임다. 그렇게 쉽게 안 죽지 말임다."

 "무서웠어."

 

 사령관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을 멈추자 블러디팬서는 무언가 말하려 했다.

 고민했다.

 그녀의 입이 몇 번이고 소리 없이 열렸다 닫히길 반복했다.

 

 결국

 그녀는 말했다.

 

 "그랬던 검까."

 "응."

 "그랬던 검까."

 "그래. 그랬어."

 

 사령관이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이 실실 웃었다.

 

 "상관으로서 되게 한심하지 않냐."

 

 블러디팬서도 사령관에게 맞춰 미소를 지었다. 일그러지려는 입이 애써 웃는 모양을 한다.

 

 "그럴 리 있겠슴까. 저희를 아껴주는 인간은, 그 자체로 보물이지 말임다."

 "아껴주긴 뭐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손 놓고 있던 것뿐인데."

 

 그는 그녀의 기색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너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냥 너를 작전에 내보내기 무서웠어. 그래놓고 보니 다른 얘들도 문제였지. 처음부터 다 문제였던 거야. 내 뭣 모르는 대가리 때문에."

 "그렇지 않슴다. 사령관님은 좋은 상관이심다."

 "너를 반년이나 방치해뒀는데도?"

 "방치해둔 게 아니잖슴까. 저를 신경 쓰고 계셨다면 말임다."

 

 블러디팬서는 힘껏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정말 기쁨다."

 "나를 원망하지 않았어?"

 "그럴 리가 있겠슴까. 제가 어떻게-"

 

 블러디팬서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간신히 붙잡아두고 있던 미소가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천장을 보았다.

 숨이 울컥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얼마나 더 그러고 있었을까.

 

 결국 쉰 목소리가 나왔다.

 

 "한 번 정도는, 한 번 정도는 말 걸어 주실 수 있지 않으셨슴까. 한 번 정도는-"

 

 그녀는 다시 말을 멈췄다. 목이 막혀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사령관은 쓴 침을 삼켰다.

 

 "미안해."

 "아님다."

 "미안해 내가."

 "괜찮슴다. 그냥 해본 말임다. 아무렇지도 않았슴다."

 "결심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

 

 그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내가 겁쟁이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

 

 문득 사령관이 오른팔을 움직였다. 거즈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그의 손가락이 블러디팬서의 손을 쥐었다. 그와 그녀 모두 통증에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사령관은 곧 아이처럼 순진하게 웃었다.

 

 "봐봐, 그걸 깨닫고 나서야-"

 

 상처투성이 남녀가 서로의 손을 잡고 있다.

 

 "너랑 조금은 비슷해진 거 같아."

 

 그는 진심으로 기쁜 듯이 말했다.

 그래도 블러디팬서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전부 제 잘못임다. 제가 잘못했던 검다."

 "왜. 너도 내 알몸 보면 도망가려고?"

 "그건,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슴까."

 "나는 이제 도망 안 쳐. 두 번 다시는."

 

 그의 기계팔이 뻣뻣하게 움직이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전에 항상 말했잖아. 방벽이 뚫리고 몸이 찢어져도 날 반드시 지키겠다고."

 "그렇슴다. 늘 진심이었슴다."

 

 사령관이 꺼낸 건 둥그런 금속이었다.

 블러디팬서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그 금속, '반지'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지 말라고는 안 할게. 그게 네 역할이고, 네가 해내고 싶은 사명이라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그는 블러디팬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려 했다.

 블러디팬서는 반사적으로 손을 뒤로 뺐다.

 붕대 사이로 나온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사령관이 시선을 들어 그녀의 상기된 얼굴을 보았다.

 

 "이게 뭔지 알지?"

 "알고 있슴다."

 "그래. 그럼 손 내밀어 줄래? 네가 괜찮다면."

 

 블러디팬서는 주뼛주뼛 머뭇거리다 급하게 손을 바지에 문질러 땀을 닦아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참았다.

 사령관은 웃고는 있었지만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는 내내 목이 탔다.

 

 이내 블러디팬서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사령관은 그녀의 하얗게 질린 상처투성이 손을 쥐고

 반지를 끼웠다.

 

 손가락에 반지가 들어가는 매 순간을, 그녀는 숨이 막히도록 지켜보았다.

 

 반지를 끼운 손을 기계손이 감싸쥐었다.

 차가운 금속에서 가장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팬서."

 

 사령관의 부름에 블러디팬서가 고개를 들었다.

 

 "네 임무를 다해줘. 가장 앞에 서서 나와 다른 애들을 지켜줘."

 "알겠슴다."

 "너만이 할 수 있는, 네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해줘."

 "알겠슴다."

 "그러다 방벽이 뚫리고 몸이 찢어져도 상관없어."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살아서 나에게 돌아와.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해줄게."

 

 블러디팬서는 어금니를 세게 물었다.

 이를 악문 그녀가 크게 콧소리를 냈다.

 

 사령관의 순진한 웃음을 보며,

 웃어주려고 노력하는 그를 보며,

 그녀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저는 보호기임다. 사령관님과 자매들을 지키는 게 제 존재 이유이지 말임다. 그러니 언젠가, 그 이유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날이 올검다. 방패를 든 자매들이 모두 맞이한 운명을, 저라고 피해갈 수는 없을 검다."

 

 사령관의 손을 맞잡으며

 

 "하지만 저는 돌아오겠슴다."

 

 한 점 거짓 없이, 진심을 다해 말했다.

 

 "방벽이 뚫리고, 몸이 찢어져서, 운명의 그 순간이 와도."

 

 저는

 죽어서라도 살아서

 당신의 곁으로 복귀하겠슴다.

 

 

 #10

 

 

 수복실을 나온 블러디팬서는 계단을 향해 걸었다.

 깁스에 싸인 발이 둥실둥실 뜨는 기분이었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단단한 금속의 감촉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았다.

 

 절뚝 절뚝

 

 몇 걸음 걷던 그녀는 문득 멈춰 서서 손을 얼굴 앞에 가져갔다.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똑똑히 보였다.

 

 "하하."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는 웃었다.

 

 "수영복쪼가리로 자랑하던 스프리건 녀석도 이거 보면 입 다물겠지."

 

 히히 웃어대며 다시 걷는다.

 

 절뚝 절뚝

 

 절뚝 절뚝

 

 그렇게 몇 걸음 가다 멈춰 서서 반지를 본다.

 제대로 손가락에 끼워져 있다.

 다시 걷기 시작한다.

 

 절뚝 절뚝

 

 절뚝 절뚝

 

 그러다 또 멈춰 서서 반지를 본다.

 

 다시 걷는다.

 

 절뚝 절뚝

 

 절뚝 절뚝

 

 그러다 또 멈춰 서서 반지를 본다.

 울음이 터진다.

 뜨거운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혹시 누가 들을까 끅끅 소리 죽이며 눈물을 닦는다.

 손을 감싼 붕대가 흠뻑 젖는다.

 닦아도 닦아도 계속 눈물이 흐른다.

 

 절뚝 절뚝

 

 절뚝 절뚝

 

 어린아이처럼 계속 울면서

 그녀는 계단을 내려갔다.

 

 

 <보호기>

 

 끝

 

 

 #0

 

 

 나도 하나만.

 

 오, 사령관님도 씹어보고 싶으심까. 여기, 어느 게 좋슴까.

 

 무슨 맛이야?

 

 빨간 게 딸기맛, 옆에 게 멜론맛임다.

 

 멜론맛 줘.

 

 여기 있슴다. 단물 금방 빠지니까 천천히 드시지 말임다.

 

 오........ 우물우물, 음? 생각보다 맛있네 이거?

 

 껌 안 씹어보셨슴까?

 

 씹어볼 일이 없었지. 근데 진짜 맛이 금방 빠진다.

 

 그러니 천천히 씹으시라고 한 검다.

 

 우물 우물

 

 우물 우물

 

 우물 우물 후욱 탁

 

 우물 우물

 

 있잖아 팬서.

 

 뭠까.

 

 서약반지 알아?

 

 아는데 말임다.

 

 갖고 싶어?

 

 잘 못 들었슴다?

 

 반지 갖고 싶냐고.

 

 아니 이걸- 허, 참 분위기 없이 물어보시지 말임다.

 

 갖기 싫은가 보네.

 

 그걸 또 그렇게 말하면 섭하지 말임다.

 

 오~ 천하에 블러디팬서도 갖고 싶은 게 있다?

 

 지금 사령관님 말씀하시는 거 되게 기분 나쁜 거 아심까?

 

 하하, 그럼 이렇게 하자. 오늘 내 방에 놀러 와.

 

 놀긴 뭐하고 놈까 거기서.

 

 밤에, 시간 좀 늦으면 그때 와.

 

 어. 이거.........

 

 ..........오면 반지 준다.

 

 ..........

 

 나 나름 준비 많이 해놓았어. 진짜.

 

 이거 완전 군기문란 아님까? 지금 반지로 매수하려는 검까?

 

 그래서 온다고 안 온다고.

 

 가, 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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