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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드의 인사법은 이런 거지.

 

 칸 대장이 먼저 쐐액- 달려간단 말이야. 그 한 갈래 머리카락이 일자로 휘날리게 돌진하는데, 너무 빨라서 철충들은 보고도 반응을 못 해. 그렇게 대장이 불쌍한 칙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 한 바퀴 휙 돌면 큼직한 두 다리가 댕강 잘려나가는 거지. 그러고는 대장은 이미 저만큼 멀리 가 있어. 몸뚱이만 남은 칙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서 아둥바둥 몸을 흔들고. 그때 뒤늦게 대장을 따라온 워울프들이 칙의 몸뚱이에 마킹을 하는 거지.

 지나가면서 칙의 머리에 총알을 한 대씩 탕 탕 탕.

 반갑다고 탕 탕 탕.

 그럼 내가 마지막으로 지나가며 잘 가라고 쾅!

 그렇게 불쌍한 칙 하나가 세상을 뜨는 거야.

 

 허풍 치지 말라고? 그럼 너도 호드 들어 와! 매일 두 눈으로 보게 될 텐데. 오늘만 해도 열일곱 마리를 해치웠다구. 우리들은 이 대륙에 온 뒤로 두 달 내내 이것만 했어.

 지금까지 스물여덟 번 습격, 파괴한 철충 271기. 그러면서도 단 한 명의 전사자도 없다니까. 대장 진짜 대단한 거 같지 않아? 칭찬을 해도 칼처럼 무뚝뚝한 표정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꼬-옥 껴안아 주고 싶지 뭐야. 

 

 그런데 요새 대장의 표정이 무겁더라. 원래 평소에 좀 날카로운 인상이긴 한데 요즘에는 유독 더 어두운 표정이야. 나는 척 보면 알지.

 

 생각처럼 전적이 안 나와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 어쩔 수 없어. 우린 원래 사막이 주전장이거든. 숨을 곳 없는 개활지에서 날벼락처럼 나타나 적들의 심장을 찔러왔다 이 말이야. 하지만 여기처럼 언덕도 없는 도시 사이에서는 움직이기 힘들어. 빌딩 사이로 들어갔다 나갈 길을 못 찾거나 속도가 느려지면 큰일 나니까. 게릴라란 게 그래. 찌를 때만큼이나 중요한 게 뺄 때야. 뺄 때 못 빼면 그대로 전멸하는 거지.

 문제는 모든 상황에 예외라는 게 있어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다는 거야. 특히나 건물들로 시야가 막힌 이 전장에서는 더욱 더 그렇고.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지. 속도가 곧 우리들의 목숨이니까.

 한정된 정보, 계속해서 급변하는 조건, 거의 주어지지 않은 시간, 그 속에서 대장은 완벽하게 우리를 이끌어 왔어. 되게 멋지지 않아? 칸 대장이 아니면 누가 이런 걸 할 수 있겠어?

 뭐? 너희 대장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 마리 대장이? 에이, 그건 아니지. 너희 대장의 전문분야는 방어전이잖아. 종목이 달라 종목이. 서로 잘하는 게 있지 않겠어?

 

 아니, 하여튼, 그렇게 우리 호드는 계속 철충들의 옆구리를 후볐지. 되게 많이, 아프게 후볐어. 조금 무리한다 싶을 정도로 계속 후볐지. 그런데 갈수록 효과가 떨어지더라. 철충들이 점점 뭉쳐 다니기 시작하더니 이젠 기습을 해도 속도를 멈추지 않아. 타격을 주기도 힘들어지고. 나중에는 우리한테 별 신경도 안 쓰더라고. 놈들은 우리보단 인간에게 관심이 많은 모양이야.

 이미 상부에 보고도 했어. 더 이상 철충의 발을 묶어둘 수 없다고. 사실인 걸 어쩌겠어. 세상에, 뭉친 철충 무리가 2천이래, 2천. 우린 30명도 안 되는데. 이건 방법이 없지. 아무리 칸 대장이라도 한 번 삐끗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전부 천국행이야. 실제로 저번 공격 때 부대원 하나가 낙오되기도 했고.

 

 음, 이것 때문에 대장이 속을 썩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단 몇 초가 예상과 달라서 워울프 하나를 적지에 두고 와야 했거든. 대장은 구하겠다고 했지만........ 그 후로 쏟아진 상부의 공격 요청도 겨우 소화해냈고, 그걸 끝내자마자 퇴각 명령이 떨어졌어. 그래 퇴각. 지금 워울프들이 죄다 짐가방 싸 들고 있는 게 그 퇴각 명령 때문이야.

 나도 그 워울프 좋아했어. 건방진 구석이 있긴 하지만 재미있는 친구거든. 게다가 사막에서 활동할 때 인간남자랑 동침해본 경험이 있는 녀석이라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들려주는데, 이게 딱 마침 흥미진진한 부분에서 끊긴 채로 떨어져 버려서....... 아니, 하여튼, 이런 말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워울프를 구하러 가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야. 갈수록 더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어. 일반 병사인 우리들도 아는데 대장은 훨씬 더 잘 알겠지.

 

 봐봐. 딱 그런 표정이야. 자기 책임을 거울에 비춰보는 표정. 누가 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야. 바보 같아.

 

 아....... 그래도 그 워울프 녀석도 호드니까 쉽게 죽지는 않을 거 같은데. 평소처럼 시원하게 웃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싶어. 아아, 아니지. 자꾸 이런 망상을 하게 된다니까. 정신 차려 퀵카멜. 흔들리는 건 대장으로 충분해. 지금만큼은 대장의 힘이 되어줘야지. 고럼.

 

 상황이 어찌 됐든 우린 슬슬 철수해야 해. 너도 빨리 짐 싸. 들 거 많잖아. 둠브링어가 오고 있어. 몇 시간 뒤에 이 근방은 죄다 불바다가 될 거라고.

 응? 너 못 들었어? 열핵병기를 쓸 거래. 그 멸망의 메이란 거창한 대장이 진짜로 온단 말이야. 맘스베리에 남아있는 스틸라인이 철충의 관심을 끌 동안 그 위로 몰래 가서 아주 크게 쾅!

 어쩌겠어. 철충을 막을 수단이 그것밖에 없다는 거겠지. 지금 요새의 존재를 들킬 순 없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스틸라인 애들은 안타깝네. 너도 그렇듯이 그 녀석들도 여기 와서 꽤 자주 봤어. 슬슬 정이 붙으려던 참이라구. 음....... 그러니까........ 만약에 우리 힘이 더........ 아니다. 그냥 미안하다는 말만 할래.

 

 아마 이것도 대장의 표정에 한몫했겠지. 모든 게 다 원인일 거야.

 힘에 부쳤던 임무도, 놓고 온 부하도, 핵병기와 함께 증발할 자매들도,

 속이 훤히 보이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내가 더 강하고 유능했더라면, 부하를 잃지도 않았을 거고, 철충을 더 많이 줄여놓아 자매들이 핵을 맞게 하지도 않았을 거고, 어쩌면 맘스베리의 스틸라인 전부를 구했을지도 몰라.

 

 냉철한 표정으로 꼭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그래서 더 안아주고 싶은 거야 우리 바보 같은 대장.

 

 하지만 이미 지침은 정해졌어. 미끼는 스틸라인으로도 과분해. 인간들은 이미 너무 많은 걸 잃었어. 지금은 최대한 전력을 보존할 때야.

 철충을 줄이는 것도, 워울프를 구하는 것도, 스틸라인을 돕는 것도,

 포기해야 해.

 

 그걸 위해 대장이 있는 거야. 우린 그런 거 못 하니까.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금방 결정을 내릴 거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짧다는 것도 대장은 잘 알고 있으니까.

 

 그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명령을 내리겠지.

 대장도 참 피곤한 바이오로이드야.

 

 우리한테는 그냥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해도 되는데.

 

 바보 같은 대장.

 

 .........

 

 응? 왜?

 

 잠깐, 뭐? 다시 말해 봐. 뭐라고?

 

 맘스베리에서 긴급호출이라니? 곧 핵이 떨어질 텐데 그게 무슨 소리야?

 

 대장한테는 말했어? 어서 전해줘! 빨리!

 

 

 

<퀵카멜과 실키의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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