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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지휘관

 그는 그곳에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동시에 세상에 몇 남지 않은 인간이기도 했다.

 그곳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이름을 말해줄 이는 예전에 잃어버렸다.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를 지휘관이나 지휘관님이라고 불렀다. 하도 이름을 말할 일이 없으니 자기 이름을 자신이 까먹을 지경이었다.

 상관없었다. 지금은 지휘관이라는 호칭에 얽매여 숨을 붙들고 있는 걸로 만족했다.

 쉬지 않고 달려온 인생 내내 좀처럼 만족을 몰랐는데, 결승선이 다가오니 너그러워진다.

 우스울 정도로.

 

 “좀 더 안정을 취하셔야 한다니까요.”

 

 호위하는 레프리콘이 말렸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축 늘어진 막사의 입구에 아침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하얗게 빛나는 게 꼭 천국이 손짓하는 것 같다.

 앙상하게 삐걱거리는 몸으로 나아가며 그는 중얼거렸다. 내가 천국 갈 놈은 아닐 텐데.

 그렇게 막사 밖으로 나왔을 때, 스러지는 빛에 감싸인 풍경은 역시나 천국이 아니었다.

 

 구름이 조금 낀 파란 하늘.

 그 아래 드넓게 펼쳐진 문명의 폐허가 있었다. 지평선을 가릴만한 구조물은 전부 무너져 납작하게 엎드렸다. 한때 인간이 살고 거닐던 공간은 콘크리트 부스러기로 가득 차있었다. 포장된 도로를 뚫고 나온 배수관에서는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았고, 철근에 눌려 찌부러진 차는 더 이상 구르지 않았다. 연결된 것 없는 전신주가 홀로 서 있었다.

 갈라진 건물 틈으로 간간히 삐져나온 잡초가 이 땅의 새 주인이었다.

 

 지휘관은 모든 게 쓸려나간 맘스베리의 폐허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바람에서 흙맛이 났다.

 

 문득 건물잔해 속에서 무언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브라우니였다. 미어캣 마냥 고개를 쭉 내밀고 지휘관을 본다. 지휘관은 흐린 눈에 힘을 주고 브라우니의 얼굴을 살폈다.

 오랫동안 씻지 못 한 얼굴에 흙먼지가 가득했다. 귀염성 있던 볼살은 홀쭉하게 들어갔다. 깨진 조준경을 낀 이마에 땀자국이 가득하다.

 

 “엉망이네.”

 

 지휘관은 실실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때 다른 브라우니가 빼꼼 고개를 들었다. 지휘관이 새로운 브라우니에게 시선을 돌릴 찰나, 다른 방향에서도 누군가 고개를 내민다. 레프리콘이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요란하게 일어난 꼴이 브라우니 못지않게 엉망이었다.

 빼꼼 빼꼼, 폐허 곳곳에 숨어있던 스틸라인의 병사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족히 백 명은 넘길 숫자였다. 그것은 지휘관이 한 눈에 둘러보기엔 너무 많은 수였으며, 동시에 절망적으로 적은 수이기도 했다.

 

 “쉬시라니까요.”

 

 지휘관을 뒤따라 나온 레프리콘이 말했다. 일주일동안 그의 곁을 지켰다는 레프리콘이었다. 지휘관은 그녀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제조넘버를 묻는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담배 있어?”

 “없습니다. 지금 지휘관님은 피면 안 되고요.”

 “여기 꼴을 보니까 숨이 막혀서 그래. 담배 없이 어떻게 버티냐 너희는.”

 “바이오로이드에게 담배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탄광 안 가 봤구나.”

 

 지휘관은 마른 입술을 핥으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땅은 죄다 흙투성이 망가진 것들 뿐인데 하늘은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들어가시죠. 지금은 더 쉬세요.”

 “싫어. 여기가 따뜻해. 햇살이 비추잖아.”

 “침상이 추우셨나요?”

 

 지휘관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아니, 그냥 여기가 좋다는 거지. 기왕 죽을 거라면 따뜻하고 푹신푹신한 데에서 안락하게 가고 싶잖아. 원래 다 그래.”

 

 레프리콘이 전선의 자매들을 힐끗 보며 답했다.

 

 “곧 죽을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지휘관은 고개를 돌려 브라우니와 레프리콘들을 훑어보았다. 다들 표정이 없다.

 그는 이내 시선을 거두며 답했다.

 

 “너는 오래 살 것처럼 말하네.”

 

 

 

#1

 

 

 막사 안으로 허리를 굽혀 들어온 마리가 똑바로 섰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키가 크다. 바이오로이드의 육체는 대부분 완벽했지만 그녀는 더욱 완벽에 가까웠다. 굴곡도 균형도, 어긋남이 전혀 없다. 지휘관은 미소 지으며 감탄했다. 그의 수척한 미소는 친절하기보다는 음흉하게 보였다.

 마리는 경례를 생략하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먼저 의식을 되찾으신 걸 축하드립니다. 부디 충분히 휴식을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보고 드릴 게 많습니다만, 최우선 사항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일 10시 45분경 상부의 지침이 하달되었습니다.”

 “그걸 나한테 보고할 필요 있어? 이미 지휘권은 너에게 다 줬잖아.”

 

 지휘관의 목소리에 악의는 없었다. 그저 순수한 호기심에 물어보는 것이었다.

 마리의 노란 눈동자가 지휘관의 옆에 서있던 레프리콘을 쳐다보았다.

 

 “잠시 밖에서 대기하도록.”

 

 레프리콘은 곧바로 그녀의 명령을 따라 막사 밖으로 나갔다. 마리는 부하가 나가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지휘관은 그런 마리를 훑어보았다. 장신의 글래머한 몸에 착 달라붙는 전투복은 언제 보아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그녀의 긴 금발머리가 단발이었다면 더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그는 생각하고는 했다.

 레프리콘이 완전히 나간 걸 본 마리가 입을 열었다.

 

 “‘쥐덫’작전이 취소되었습니다. 참모진에서 휩노스가 연달아 발병한 탓에 열핵병기 사용을 허가할 지휘계통이 마비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의 몸만 보던 지휘관은 그제야 눈을 크게 뜨고 대답했다.

 

 “아니 뭔 그런 일이 있어? 허 참, 그럼 너희는 이제 어떡하래?” 

 “현 위치를 사수하라고 합니다.”

 “사수하라고? 어떻게? 둠브링어가 와서 폭격해준대? 호드도 후방 쳐주고?”

 

 마리는 특유의 강인한 눈빛을 유지한 채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둠브링어와 앵거오브호드 모두 퇴각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곳, 맘스베리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금지되었습니다. 요새가 발각되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지휘관이 피식 웃는다.

 

 “여기서 시간 벌어라 그거지? 요새 문 닫을 때까지.”

 “오늘 총사령관 각하께서 요새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든 버텨야 합니다.”

 “하하하, 그렇겠지.”

 

 그는 피곤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엉겨 붙는 검은 머리카락의 질감이 영 지저분했다. 그렇게 두피를 벅벅 긁어대다 이내 깊은 한숨을 쉰다. 입가에 쓰디쓴 미소가 번진다.

 

 “그 새끼들이 이렇게 엿을 먹이네. 휩노스는 옘병. 다 뒤져버려라.”

 

 마리는 말없이 지휘관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지휘관으로 파견되었을 때만 해도 단단했던 근육질이 지금은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붙었다. 입고 있는 군복이 깃발마냥 펄럭일 지경이다. 휩노스로 쓰러진 이후로 계속 영양공급을 해주었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문득 지휘관이 고개를 들어 마리를 보았다. 그의 퀭한 갈색 눈동자를 보자마자 마리는 시선을 피했다.

 

 “그래. 이제 대충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았어. 알려줘서 고마워. 이제 가 봐.”

 “다른 지시사항은 없으십니까?”

 “지시? 어차피 상부에서 시킨 대로 하면 되잖아. 할 수 있고. 너 혼자 할 수 있는데 내가 왜 지시를 해.”

 

 마리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휘관님께서는 여전히 이 전선의 지휘관이시기 때문입니다.”

 

 지휘관이 장난스럽게 대답한다.

 

 “내가 아직 지휘관인가?”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지휘관은 뭘 해야 하지? 잠깐 졸다 눈떠보니 병력 다 잃고 또 언제 꿈나라로 갈지 모르는 시한부 지휘관은 뭘 해야 할까.”

 

 그의 비아냥거리는 말투에도 마리의 표정은 변함없이 강인했다.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서, 승리하기 위해서, 생각하십시오.”

 “난 더 지킬 것도 없어. 자는 사이에 다 없어졌는데 뭘. 네들을 부하라고 할 정도로 연이 쌓인 것도 아니고, 이 개판인 상황에 승리할 재주도 없고.”

 

 지휘관은 양손을 벌리며 웃었다.

 

 “알잖아? 네들이 그렇게 치를 떠는 삼안 고급 바이오로이드들 데리고도 철충한테 탈탈 털렸다는 거. 그게 나야. 그런 내가 뭘 할 수 있겠냐? 내가 뭘 하리라 생각하고 파견 보냈겠어?”

 

 그의 양손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난 미끼야. 지휘관이 아니라 미끼라고. 귀하신 분들 기어들어갈 때까지 철충들 시선 끌 방패막이란 말이야.”

 

 마리의 어깨가 조금 늘어졌다.

 

 “지휘관님께서는 휴식이 필요하신 거 같군요. 잠시 나가있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그녀가 등을 돌려 나가려 하자 지휘관이 급하게 불렀다.

 

 “야, 마리. 담배 있어?”

 

 뒤돌아본 마리는 지휘관을 쳐다보며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이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 부대에는 없습니다.”

 “이런.”

 

 그녀는 곧바로 등을 돌려 막사 밖으로 나갔다. 지휘관은 허탈한 표정으로 그녀가 떠난 자리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밖에서 대기하던 레프리콘이 들어왔다.

 

 “무력하시네요.”

 “뭘 다 듣고 있어. 나가라는 건 귀 막으라는 뜻이잖아.”

 “남들한테 희망을 가지라고 하던 분이 어떻게 말하시는 지 듣고 싶었거든요.”

 

 지휘관은 입을 다물고 레프리콘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붉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본래 위치로 돌아갔다. 지휘관은 할 말을 찾아 몇 번 입을 뻐끔거리더니 결국 소리를 냈다.

 

 “마리가 말하는 건 들었어?”

 “아뇨. 대장님의 목소리는 못 들었습니다. 대장님께서 원치 않으시니까요.”

 “나만 푸대접이야.”

 “부하라고 할 연도 없는데 대접받아 뭐하시게요.”

 

 지휘관은 웃었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지쳤는지 마른 침을 삼킨다.

 지저분한 머리를 긁는다.

 

 레프리콘은 말없이 동상처럼 서있었다. 들고 있는 기관총이 무겁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그 저택에서 일할 때 바닐라라는 녀석이 있었지. 너랑 비슷했어. 입만 열면 톡 쏘는 게 은근히 스트레스란 말이야.”

 “기분 나쁘셨다면 주의하겠습니다. 앞으로 입 다물고 있을게요.”

 “아냐. 그 녀석도 다시 보고 싶다고. 다 추억이니-”

 

 지휘관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레프리콘은 힐끔 쳐다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지휘관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작게 말했다.

 

 “여기서 나가면 하고 싶은 일 있어?”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

 “없어요. 여기서 끝날 테니까요.”

 “곧 죽을 것처럼 말하네.”

 

 레프리콘이 지휘관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휘관은 앙상한 손을 장난스럽게 흔들며 말했다.

 

 “세상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잖아.”

 “적어도 우리들에게는 확실하잖습니까. 우리를 곧 죽을 소모품으로 본 건 당신 아닌가요.”

 “아냐. 나는 그냥........”

 

 그는 힘없이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막사의 안은 어두웠다. 어디를 봐도 어두웠다.

 

 “막상 나가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눈에 뭔가 보이면 하고 싶은 일이 되게 많아질 걸.”

 “당신이 하고 싶은 게 많은 거겠지.”

 

 레프리콘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있었다. 지휘관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답했다.

 

 “그래. 하고 싶은 일이 많지.”

 

 그가 손가락을 세워 입을 두드렸다.

 

 “일단 담배를 하나 태우고 싶어.”

 

 .............

 

 맘스베리.

 건물이란 건물은 모조리 무너진 폐허 속에 스틸라인의 병사들이 넓게 배치되어 있었다. 콘크리트와 철근을 방패삼아 급하게 구축한 방어선이었다.

 마리 7호는 전선의 뒤에 서서 천천히 배치상황을 살펴보았다. 팔짱을 낀 채 꼿꼿이 선 그녀의 모습은 전장의 등대나 다름없었다.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이 잔해 사이에 완벽하게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마리의 황색 눈에는 모든 게 훤히 비쳤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눈동자에 부딪혔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긴 금발과 찢어진 코트만 조용히 휘날렸다.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은 지쳐있었다. 얼굴은 더럽고 전투복은 늘어졌다. 몇몇 브라우니는 마리와 눈을 마주치자 어깨에 힘을 주고 씩씩한 티를 냈다. 그러나 억지로 짜낸 근성은 1분도 되지 않아 솜사탕처럼 사라졌다.

 벽 뒤에 숨어 스팸을 먹는 브라우니도 있었다. 그녀는 마리를 보자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마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자 브라우니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후방의 이프리트는 박격포에 몸을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박격포와 그녀의 외투에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그 옆에서는 피닉스와 실키들이 옹기종기 모여 비행장비를 정비하고 있었다.

 

 마리 7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침을 한 번 삼켰다.

 

 팔짱을 낀 팔에 힘이 들어간다.

 

 “전원, 주목해라. 전달사항이 있다.”

 

 마리의 목소리에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이프리트는 서로를 깨웠고 실키는 두건을 걷었다. 피닉스가 대포를 놓고 마리를 쳐다본다.

 

 마리 7호는 다시 한 번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지치고 망가진 수많은 눈빛이 그녀에게 쏠리고 있었다. 마리는 평소의 강직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우리가 실행할 작전은 ‘쥐덫’작전이라-”

 “마리!”

 

 누군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마리가 뒤를 돌아보았다.

 부대원 모두가 그녀의 시선을 쫓았다. 마리의 뒤에 한 남자가 서있었다.

 지휘관이다.

 

 그가 손짓하며 부른다.

 

 “할 말 있어! 빨리 와봐!”

 

 스틸라인 전부가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마리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이내 부하들을 각자 업무로 복귀시키고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성큼성큼 걸어온 마리를 올려다보며 그는 대뜸 말했다.

 

 “호드 불러줘.”

 “앵거오브호드를, 지금 말입니까?”

 “그래. 지금 바로. 급해.”

 

 마리는 고개를 저었다.

 

 “호드는 퇴각 명령을 받았습니다. 여기 맘스베리를 지원하는 것도 허가 되지 않았고요.”

 “일단 불러 봐. 자기들이 올 거면 오겠지.”

 

 지휘관의 당돌한 태도에 마리의 미간이 조금 일그러졌다.

 

 “외람되지만 호드를 호출하시려는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꼭 필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

 “그게 뭡니까?”

 “필요한 일.”

 

 마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곧 이곳에 철충이 몰려올 겁니다. 확실한 이유 없이 자매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지휘관의 핼쑥한 얼굴이 씨익 웃었다.

 

 “거기 워울프들 골초잖아. 담배 다 있을 거 아냐.”

 

 

 ..........

 

 

 -응? 왜?

 -잠깐, 뭐? 다시 말해 봐. 뭐라고?

 -맘스베리에서 긴급호출이라니? 곧 핵이 떨어질 텐데 그게 무슨 소리야?

 -대장한테는 말했어? 어서 전해줘! 빨리!

 -뭐? 지금 뭐가 필요해서 부른 거라고?

 -장난해 지금?

 

 

 ..........

 

 

 “호출했습니다.”

 

 마리의 황색 눈동자가 지휘관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다만 말씀하신대로 담배 한 개비 때문이라고 이유도 밝혔습니다.”

 

 지휘관은 해맑게 웃었다.

 

 “좋아! 어서 오면 좋겠네.”

 “호드는 절대 오지 않을 겁니다.”

 “그건 걔네들이 판단할 일이지.”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일말의 거리낌도 없다.

 그 태도에 마리의 미간이 조금 일그러진다.

 금발 사이에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눈이 파랗게 달아오른다.

 

 그 익숙한 광경을 보고도 지휘관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지휘관님.”

 “응?”

 “전 이 전선에서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에서 지휘관님을 보좌해왔습니다. 남들이 아무리 지휘관님을 욕해도 저는 그것이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지휘관님에 대한 제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면 좋겠습니다.”

 

 그는 얄밉게 비웃는 얼굴로 고개를 살살 저었다.

 

 “네가 뭔데 날 평가해.”

 “.........”

 

 마리는 입을 앙다문 채 침묵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푸른 열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조용한 압력이 지휘관의 마른 피부를 짓눌렀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마리가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에는 원래의 황색 눈동자로 돌아와 있었다.

 

 “-호드는 절대 오지 않을 겁니다.”

 

 그녀가 살기를 거두고 등을 돌렸다. 등을 따라 코트와 금발이 휘날렸다.

 마리가 다시 전선으로 걸어가는 동안 지휘관은 그녀의 늠름한 등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캬, 확실히 뒤태가 대장감이야.”

 “대장님을 그런 저속한 눈으로 훑지 마세요.”

 

 지휘관의 뒤에 서있던 호위 레프리콘의 말이었다. 지휘관은 여전히 마리의 뒷모습을 감상하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좋은 건 많이 볼수록 좋은 거 아니야 아가씨?”

 

 레프리콘이 그의 뒤통수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브라우니도 지휘관님보다는 염치 있을 겁니다.”

 

 그제야 지휘관이 레프리콘을 쳐다보며 웃었다.

 

 “그래. 이제 좀 레프리콘처럼 말하네.”

 

 ...........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로 풀 한 포기가 서있다.

 

 적막한 공기 속에 가느다란 바람 소리만 간간히 들려온다.

 새 하나 날지 않는 하늘에 먹먹한 구름이 끼어간다.

 

 ..........이이이이잉-

 

 멀리서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가까워진다.

 

 이잉- 위이이잉!!!

 

 바퀴가 구르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줄줄이 선 그림자가 휙휙 지나갈 때마다 풀이 거칠게 나부꼈다.

 거칠게 갈라진 포장도로 위로 25명의 바이오로이드가 질주했다.

 모두 가벼운 차림새로 날렵한 여성의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들의 다리외골격에 장착된 롤러블레이드 형태의 장치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바퀴가 낡은 도로 위를 미끄러지며 시원시원한 속도를 내뿜었다.

 선두에는 긴 갈색 머리카락을 한 갈래로 묶은 바이오로이드가 앞장서고 있었다. 그녀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방향을 바꾸자 나머지 일행도 한 몸처럼 움직여 그녀를 뒤따랐다.

 공기저항을 줄이려 자세를 낮추고 있던 그녀가 문득 고개를 높이 들었다. 늘씬하게 빠진 몸 구석구석에 새겨진 검은 문신이 드러났다.

 

 앵거 오브 호드의 대장, 칸은 거칠게 나부끼는 갈색 머리칼 사이로 10시 방향을 응시했다.

 

 이동 중에는 항상 자세를 낮추라고 입이 닳게 말하던 그녀였기에 지금처럼 몸을 세우고 달리는 것은 기행에 가까웠다. 뒤따라오던 워울프들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도 당연했다. 호기심을 느낀 그녀들은 곧 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대열의 중간에서 달리던 지원공격기 퀵카멜도 일행들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멀리 떨어진 다른 도로 위로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도로 위를 달리는 기차마냥 먼지구름이 길게 늘어졌다. 그 속에서 태양 아래 해변처럼 반짝반짝 수많은 빛이 흐른다.

 철충의 단단한 금속 몸뚱이가 번뜩이는 것이었다.

 

 평소에 말이 많던 워울프들이 입을 딱 다문 채 식은땀을 흘렸다. 말을 잃은 건 퀵카멜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야가 트일수록 멀리서 이동 중인 철충 무리의 모습이 더 많이 보였다. 거친 먼지를 일으키며 나아가는 살인기계의 행렬이 도로 위로 끝도 없이 이어진다.

 

 워울프 중 하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거 진짜 2천 마리야? 하하, 직접 보니까 소름 돋네.”

 

 맞장구 쳐주는 말이 없었다. 총알 앞에서도 나불거리던 입들이 전부 얼어붙었다. 모두가 여태껏 상대했던 적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에 전율할 뿐이었다.

 

 쿵. 쿵. 들릴 리 없는 육중한 발소리가 심장을 옥죄었다.

 

 불안한 침묵 사이로 기동장치의 바퀴 소리만 쾌활하게 울렸다. 칼날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철충무리를 응시하던 칸은 이내 자세를 낮추었다.

 

 “서두른다. 뒤쳐지지 마라.”

 

 그녀의 발아래 바퀴에서 스파크가 튄다. 기동장치가 시끄럽게 몸을 떨며 출력을 높여갔다. 칸이 앞서 나가기 무섭게 호드의 대원들이 속도를 붙여 그녀를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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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댓글달아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모든 댓글은 주의깊게 눈여겨 보고, 답글을 다는 게 제 개인적인 원칙입니다.

 다만 본래 제가 받아왔던 댓글보다 훨씬 댓글이 많은 경우도 있고, 이모티콘 댓글의 경우에는 뭐라 답글을 달아야 할 지 딱히 떠오르질 않더군요. 때문에 불가피하게 저에게 직접 말을 건넨다고 느껴지는 경우에 한 해 답글을 달고 있으니 부디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비록 답글을 달지는 못 하더라도 모든 댓글을 감사한 마음으로 빠뜨리지 않고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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