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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제 분량할당 능력이 미숙한 탓에 이번 편은 상당히 깁니다. 중간에 적당히 끊어 읽으시길 권장합니다.)



#6



 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속에서 호드는 달린다.


 북서쪽의 호프필드로 향하던 그녀들이 북동쪽의 무레스버그를 향해 갑자기 선회하자 뒤따라오던 철충무리가 흩어지며 길을 막아서려했다.

 그러나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한들 무거운 쇳덩이들은 호드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옆을 멀찌감치 지나가는 호드를 향해, 철충은 닭 쫓던 개가 짖듯이 총을 쏴대는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총알은 우측에서 조여오는 대규모철충무리에게서 날아왔다. 빗발치는 총알 속에 미사일이 날아와 박힐 때마다 불꽃과 흙먼지가 치솟았다. 작게 으깨진 돌부스러기가 피부를 때렸다.

 칸이 지휘관에게 딱 달라붙으라고 충고했다. 그는 이미 한참 전부터 그녀의 등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얼굴도 내밀지 않고 있었다. 앙상한 팔목이 젖가슴 위를 꾸욱 누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칸은 태연했다.

 화염과 총알 사이에서 달리는 게 일상인 워울프들은 아직 여유로워 보였다. 심지어 몇몇은 폭발에 목소리가 묻히는 와중에도 낄낄거리며 담배를 나누고 있다.


 뒤쫓아오는 총알로는 호드를 잡을 수 없다.

 그렇게 온몸으로 말하는 것마냥 호드는 나아갔다.


 다만, 그런 호드에 속하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타다다당!

 타다다다다당!


 요란한 총성과 함께 황금빛 예광탄이 흩뿌렸다. 머리 위로 뜨거운 탄피가 팝콘처럼 날아다니는 탓에 퀵카멜은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의 위에 올라타 있는 레프리콘이 거칠게 휘날리는 붉은 머리칼 사이로 예리한 눈빛을 번뜩였다.


 타다다당!

 탄띠가 기관총으로 빨려들어가 우수수 튀어나온다. 총알이 하늘을 가르고 날아간다. 곧 그 위로 쏜살 같은 섬광이 떨어진다.


 쾅!


 불꽃과 함께 먼지구름이 치솟았다.


 -명중.


 피닉스가 통신으로 표적이 제거되었음을 알렸다.

 레프리콘과 피닉스, 두 스틸라인의 역할은 호드의 진로에 나타나는 몇몇 철충을 보이는 즉시 제거하는 것이었다.


 -2시 방향 900m, 이쪽에서 안 보여.


 레프리콘이 재빨리 총구를 돌렸다. 상당히 먼 곳에 폐허가 된 주유소가 보였다. 너무 멀어서 점처럼 보인다. 퀵카멜이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탓에 총구가 자꾸 흔들렸다.

 귀에 벼락 같은 고성이 터졌다.


 -뭐해 빨리 확인 안 하고!


 피닉스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레프리콘이 눈을 찌푸리며 답했다.


 "잘 안 보여요!"

 -그렇다고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래?! 그것도 못 볼 거면 왜 여기있어!

 "철, 철충입니다! 중장형!"

 -지붕에 가려서 안 보인다니까! 빨리 표적지시 해!


 타다다다당!!

 레프리콘이 방아쇠를 당긴다. 총알이 주유소 방향으로 날아갔다. 곧 그 위로 피닉스의 포격이 떨어졌다. 쾅! 주유소의 조금 옆에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 범위 밖에 있던 거대한 철충, 빅칙이 시뻘건 빛을 내며 호드일행을 조준했다.

 그 순간,

 쾅! 쾅! 쾅! 콰광!

 포격이 수차례 더 떨어지며 주유소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치솟는 불길 앞에 빅칙은 갈기갈기 찢겨 사라졌다.


 -야! 정신 안 차려?! 어디에 쏘는 거야!!


 피닉스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레프리콘은 숨돌릴 틈도 없이 탄띠를 재장전하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반드시 맞출게요!"

 -네 말만 믿고 있다 거기 애들 다 죽겠다!

 "잘 쏘겠습니다!"


 굴러떨어진 탄피 하나가 퀵카멜의 머리에 부딪혔다. 더욱 심기가 불편해진 그녀였으나 레프리콘이 이미 호되게 까이고 있는 탓에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곧 기관총이 불을 뿜고 하늘에서 포탄이 떨어진다.


 지휘관이 슬쩍 고개를 들더니 칸의 통신채널을 통해 물었다.


 "바쁠 때 물어봐서 미안한데, 어때? 철충이 이쪽으로 더 붙은 거 같아?"

 -아마도. 내 눈으로 보기에는 100마리 정도 더 붙었어. 정확히 셀 수는 없지만.

 "저놈들도 영 답답하게 움직이네. 다른 변화 있으면 알려줘."

 -알았어. 레프리콘! 11시 방향 폐가 아래! 정신 차려!


 타다다다당!

 쾅! 콰광!

 총소리와 함께 연이어 포격이 떨어진다.


 지휘관이 다시 칸에게 밀착하며 중얼거렸다.


 "쟤들은 분위기가 불 같구만. 브라우니들이 피닉스 저거 성격 지랄맞다고 하던 걸 듣긴 들었는데."


 칸은 무표정한 얼굴로 앞만 보며 답했다.


 "각자에게 필요한 방식이 있는 거다. 덕분에 우리가 안전하지 않나."

 "그래도 적당히 구슬리지. 막 갈구기만 하면 총 더 잘 쏘나. 보니까 아직 신참이구만 저 피닉스."

 "지휘관."

 "왜."

 "아직 이쪽 통신 열려있다."

 "아니-"


 곧바로 피닉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잘, 잘 쏘고 있어 브라우, 아니 레프리콘! 이대로만 계속해! 탄알 아끼고! 못 맞출 것 같으면 내가 쓸어버리면 되니까!


 레프리콘이 씩씩하게 답했다.


 "아니에요 피닉스 대령님! 계속 다그쳐주시는게 반응하기 더 좋습니다! 계속 그렇게 해주세요!"

 -어, 어 그래! 알았다!


 지휘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린다.


 "야 저거 진짜 신참 피닉스다 야."

 "지휘관, 아직 통신 안 껐다."

 "좀 꺼!"


 그걸 듣고 껄껄 웃던 워울프들 옆으로 포탄이 떨어진다. 쾅! 굉음과 함께 파편이 튀었지만 워울프는 짐승 같은 반사신경으로 이미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렇게 날렵하게 움직이던 워울프 하나가 갑자기 크게 자세를 틀었다. 하마터면 땅을 굴러 온몸이 비틀릴 뻔했지만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왼쪽 다리의 기동장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스파크를 뿜고 있었다. 곧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오른다.


 "어어어? 이거 왜 이래?"


 펑! 작은 폭발과 함께 기동장치의 바퀴가 빠졌다. 반응할 틈도 없이 워울프가 고꾸라진다. 고속으로 달리던 몸이 바닥에 처박히며 거칠게 굴러날아갔다.

 웃고 있던 다른 워울프들이 경악하며 급제동한다. 그 순간 칸이 소리쳤다.


 "속도 늦추지 마라! 호위 4조가 워울프 33을 들어라! 움직여!!"


 퍼뜩 정신을 차린 워울프들이 급하게 속도를 붙였다. 대열의 후방에서 달려온 워울프 둘이 바닥에 널브러져있던 워울프를 부축했다. 퀵카멜 하나가 재빨리 붙어 워울프의 상태를 살폈다. 칸이 곧바로 통신으로 물었다.


 "퀵카멜 09, 상태는 어떻지?"

 "기절했어. 큰 출혈은 없고,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거 같은데....... 팔이 나갔네. 당분간 총은 못 쥐겠는 걸. 일단 내가 알 수 있는 건 이 정도야."

 "다리는?"

 "지금은 괜찮아 보여."

 "알았다. 호위 4조는 전투에서 빠지고 대열 안으로 들어와라. 워울프 33을 보호하는 걸 최우선으로 해. 퀵카멜 09, 달리는 속도를 늦출 수는 없다. 응급처치 할 수 있겠나?"

 "해봐야지."


 칸은 차가운 표정으로 통신을 마쳤다.


 동료 중 하나가 기동력을 잃었다는 것이 호드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칸은 알고 있다.

 그녀의 부하들 모두가 알고 있다.


 칸이 무거운 얼굴로 침묵하는 와중에 지휘관이 급하게 물었다.


 "아니 씨발, 저거 살았다냐? 응? 살았대?"

 "목숨에는 지장 없을 거라고 한다. 그만 물어봐라."


 쯧.

 지휘관이 혀를 찬다.


 "나중에라도 전해줘. 나 때문에 미안하게 됐다고."

 "너 때문이 아니다. 호드의 대장은 나니까, 내가 선택한 결과다."


 칸은 시퍼런 칼날처럼 답했다.


 "내가 져야할 책임이고."



 ...................



 맘스베리 시가지.


 철충무리가 줄지어 움직인다.


 두꺼운 장갑과 중기관포로 무장한 빅칙이 거대한 전봇대처럼 일정한 간격마다 서있다. 그 아래 바글바글 깔린 나이트칙이 빅칙과 속도를 맞춰 움직였다.

 빅칙과 나이트칙의 보호를 받는 디텍터는 이 순간에도 레이더신호를 쏘며 하늘을 경계하고 있었다. 빅칙 사이에 다연장미사일발사기로 무장한 빅칙런쳐도 간간히 보였다. 날개 달린 바이오로이드들의 끔찍한 천적인 이 거대한 철충은 디텍터칙의 신호에 따라 언제든지 미사일을 쏟아부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쿵 쿵 쿵 쿵

 감염된 AGS의 육중한 발이 낡은 도로를 밟아 부수며 먼지를 일으켰다.

 먼지구름 안에서 철충의 붉은 빛이 반딧불처럼 흔들렸다.

 동시에 찍히는 수 백의 발자국, 수 백의 울림.

 한 걸음 한 걸음이 지진처럼 밀고 나아간다.


 그렇게 인류문명의 잔해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밟혀 사라져갔다.


 철충이 모를 리 없다.

 이 시커먼 살인기계의 능력은 기본적으로 인류가 만든 AGS에 기반하고 있다.

 이곳에 스틸라인의 잔존병력이 있다는 것.

 그녀들의 얼마 안 되는 공중병력이 이륙했다는 것.

 그녀들이 식량을 섭취한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

 AGS의 고성능 광학 장치는 이러한 단서들을 놓치지 않았다.


 문제는 그게 위협이 되느냐다.

 철충은 바이오로이드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집요하게 인간만을 노렸다. 바이오로이드가 아무리 목숨을 바쳐 벽을 쌓아도 결국에는 인간에게 도달해 목숨을 앗아갔다.

 일단 인간이 죽고 나면 바이오로이드는 대부분 전의를 상실하고 패닉에 빠진다. 철충은 절망한 바이오로이드를 그냥 지나가면 된다.

 앞을 막고 있다면 밟고 지나가면 된다. 싸우려 한다면 죽이고 지나가면 된다.

 중요한 건 다음 인간이 어디에 있느냐, 오직 그것뿐이다.


 낙엽. 땅을 구르는 신문지. 부스러기.

 철충이 패전한 바이오로이드를 대하는 태도는 딱 그 정도였다.


 맘스베리의 스틸라인 또한 특별할 게 없었다.

 그녀들의 전력은 10분의 1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나 있던 인간의 신호는 북쪽으로 도주했다.

 싸울만한 전투력도, 지킬 인간도 남아있지 않은 그녀들은 위협이 될 수 없었다.


 도망쳤다면 도망치게 둔다. 공격해온다면 쓸어버린다.

 간단한 문제였다.

 철충은 진격 속도를 늦출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진로 앞에 당당히 서있는 바이오로이드 하나를 확인했을 때에도 철충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폐허밖에 남지 않은 널찍한 도로 한 가운데에 마리 7호는 서있었다.

 엄폐물도 없고 호위병력도 없었다.

 그저 돌처럼 단단히 서서 다가오는 철충의 선두를 쳐다보았다.


 거리는 100m

 중장형 철충의 속도에 맞춘 진군 속도는 매우 굼떴으나 분명하게 마리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쿵 쿵 쿵

 땅이 울리는 소리와 진동이 피부로 느껴졌다.


 거리는 50m

 마리는 여전히 서있다. 철충도 그녀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거리는 계속 좁혀진다.


 10m

 나이트칙이 언제든지 달려들 수 있을만큼 가까워졌다.

 철충의 발소리, 몰아치는 먼지구름, 텁텁한 공기, 모든 것이 온몸에 들러붙는다.

 마리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녀의 두 다리는 철근처럼 굳건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내

 거리는 0

 선두의 나이트칙이 마리 옆을 지나갔다. 그녀의 코트를 스쳐지나갔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마리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이트칙 몇 마리가 더 지나가고 빅칙의 다리가 움직이며 거친 바람을 일으켰다. 흙투성이 바람이 마리의 금발을 요란하게 휘저었다.

 그래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곧 그녀 앞에 도달한 또다른 빅칙이 거대한 발을 들었다. 톤 단위의 육중한 다리는 바이오로이드의 금속골격을 손쉽게 찌부러뜨릴 수 있었다.


 -대장님, 전부 확인했습니다.


 레프리콘의 통신이 왔다. 마리는 그제야 슬쩍 몸을 비껴 빅칙의 다리를 피했다. 그녀가 서있던 자리에 두터운 금속다리가 찍혔다. 쿵. 둔직한 소리와 함께 먼지바람이 일었다. 빅칙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음 발을 내딛어 앞으로 나아갔다.


 -시작할까요?


 레프리콘이 물었다. 마리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무시하고 걸어가는 거대한 빅칙을 보았다.

 그러다 좀 더 시선을 내려 자신의 앞을 지나는 나이트칙을 보았다.


 "그래. 시작한다."


 그렇게 명령하며,

 마리는 다리를 들었다.

 나이트칙의 옆구리를 발로 툭 밀었다.

 그 무심한 듯한 발길질에 나이트칙이 중심을 잃고 옆으로 넘어졌다.


 전투능력이 있는 개체가 고의로 위해를 가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적대행위.


 그 순간 철충의 태세가 돌변했다. 일순간 마리를 둘러싼 모든 철충의 몸에 특유의 붉은 빛이 켜졌다. 앞서가던 나이트칙이 동시에 몸을 돌려 마리를 향했다. 빅칙도 거인처럼 무겁게 움직여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사방을 감싼 철충이 그녀를 향한다.

 마리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주위를 훑어보았다. 눈이 닿는 곳마다 시뻘건 빛이 빛나고 있었다.


 "음-"


 그녀의 콧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빅칙의 중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마리의 눈이 파랗게 빛난다. 그녀의 몸이 번개같은 속도로 후퇴했다. 총알이 아스팔트 바닥을 깨부순다. 박살난 조각과 마리가 일으킨 스파크가 뒤섞였다. 그와 동시에 나이트칙들이 짐승처럼 몸을 날려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나이트칙이 서로 부딪히고 매달리며 쇳소리를 냈다. 대부분의 공격이 헛발질로 끝나는 사이 나이트칙 둘이 마리의 어깨에 타올라 무게로 짓눌렀다. 곧바로 다른 나이트칙도 서로 매달리며 순식간에 마리를 덮어감쌌다.


 쾅!

 굉음과 함께 푸른 번갯불이 번뜩였다. 고철더미마냥 뭉쳐있던 나이트칙을 뚫고 마리가 튀어나왔다. 거친 스파크를 뿌리며 재빠르게 후퇴하는 그녀를 향해 빅칙이 기관포를 갈겨댄다. 마리는 순식간에 폐허속으로 몸을 숨겼다. 곧 뒤따라온 중기관포의 탄이 건물을 두부처럼 깨부쉈다. 콘크리트 잔해가 무너지고 먼지가 피어오른다. 그 위로 바글바글 달려온 나이트칙 무리가 마리의 뒤를 쫓았다.


 타다다당!


 다른 방향에서 총성이 울린다. 철충무리 측면의 건물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레프리콘이 사격을 가한 것이었다. 그녀의 총알은 철충의 엄중한 보호를 받는 디텍터를 노리고 있었다. 나이트칙 무리가 움직인 틈을 타 디텍터를 저격한 것이었으나 그녀의 총알 몇 발로는 디텍터를 완전히 파괴할 수 없었다.

 황금빛 총알이 디텍터의 외피에 박혔다. 디텍터가 곧바로 빅칙의 뒤로 숨었다. 주변에 있던 나이트칙이 일사분란하게 레프리콘이 숨어있는 건물로 달려들었다.

 낡은 벽과 창틀을 깨부수고 들어오는 나이트칙의 공세에 레프리콘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그녀가 건물 밖으로 뛰쳐나와 달리자 기다리고 있던 브라우니 셋도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건물을 부수고 나온 나이트칙이 무서운 기세로 그녀들을 추척했다.


 타다다당! 타다당!

 타다다다당!


 철충무리 여기저기서 총성이 울렸다. 폐허 사이에 매복하고 있던 레프리콘들이 집요하게 디텍터를 노리고 공격했다. 그녀들에게 주어진 것은 총알 몇 발만큼의 시간뿐이었다. 철충은 반사작용처럼 순식간에 기습을 인지하고 반격했다. 총소리가 난 뒤 2초도 안 되어 쫓아오는 나이트칙을 피해 레프리콘과 그녀를 호위하는 브라우니들은 이를 악물고 달려야 했다.


 사방에서 스틸라인과 나이트칙의 추격전이 일어났다. 디텍터를 쏘고 도망가는 스틸라인을 나이트칙이 쫓아간다. 두꺼운 줄기를 이루며 진군하던 철충무리가 검은 뿌리를 내리듯이 맘스베리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시가전에 특화된 폴른을 토대로 만들어진 나이트칙의 추적능력은 무시무시했다. 돌격병으로 만들어진 브라우니는 동급 바이오로이드 중에서 가장 빠른 몸을 가진 병사중 하나였지만 지치지 않고 쫓아오는 나이트칙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이 사력을 다해 골목길을 내달렸지만 이족보행에 바퀴주행을 겸비한 나이트칙의 기동력에 점차 거리가 좁아져갔다.


 결국 나이트칙 무리가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을 따라잡는다.


 타다다당!


 그 순간 측면에서 날아온 예상치 못 한 총격에 나이트칙이 고꾸라진다. 뒤따라오던 나이트칙 하나가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깨진 도로 아래로 노출된 지하통로에 브라우니 하나가 숨어있었다. 나이트칙에게 발각된 걸 알아챈 브라우니는 곧바로 통로 안으로 몸을 숨겼다.

 나이트칙 두 기가 지하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깨진 보도블럭을 뚫고 쏜살같이 지하에 침입한 나이트칙이 브라우니가 있을 방향으로 총구를 돌렸다.


 타다다다당!!


 요란하게 메아리치는 총성과 함께 나이트칙 두 기는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 주저앉았다.

 지하상가 안에 매복하고 있던 브라우니 다섯의 일제사격에 반격할 틈도 없이 파괴된 것이었다.


 총격이 멈추고, 브라우니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나이트칙이 무력화된 것을 확인했다. 그 순간 지하상가의 어두운 통로 저너머에서 굉음이 들린다. 천장이 울리며 먼지를 떨궜다.

 쿠구구구궁- 진동이 울린다.

 점점 크게, 점점 격하게, 다가오고 있다.

 브라우니들은 재빨리 광학렌즈가 달린 고글을 쓰고 진동이 다가오는 반대쪽으로 달렸다. 지하통로의 시커먼 어둠 속으로 광학렌즈의 노란 빛이 반딧불이처럼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뻘겋게 빛나는 철충의 빛무리가 그녀들이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달려라 제군들! 평소에 구르고 날던 체력을 아낌없이 발휘할 때다!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이 나는 마리가 부하들에게 전했다.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나이트칙이 총구를 돌려 그녀의 머리를 향했다. 그 순간 조그만 레이져드론 하나가 나이트칙의 둥근 머리 중앙에 섬광을 쐈다. 몸뚱이에 조그만 구멍 몇 개가 뚫린 나이트칙이 길 위에 고꾸라져 박살났다. 그 산산조각난 나이트칙을 밟고 달려오는 수 십 기의 다른 나이트칙들이 마리를 향해 총을 쏘아댔다.

 마리는 폐허에 남은 건축물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나이트칙의 추격을 피하고 있었지만 시커먼 살인병기들은 결코 포기를 몰랐다.


 이내 다 무너진 빌딩 안으로 들어간 마리는 자리에 멈춰서야했다.

 빌딩의 복잡한 구조를 이용해 철충과의 거리를 벌릴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예상보다 나빴다.

 빌딩의 안에 10기가 넘는 나이트칙이 이미 진을 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곧이어 그녀를 뒤따라온 나이트칙 무리가 퇴로를 막고 포위망을 형성했다.


 사방을 둘러싼 철충의 붉은 눈빛.

 자신을 향하는 수 십 개의 총구를 보며 마리는 턱을 괴었다.


 "음, 경로계산능력은 나쁘지 않군."



...............


 

 "우왓!"


 워울프가 발 밑에 치솟는 폭발을 피해 풀쩍 뛰어올랐다. 아슬아슬하게 넘어지지 않고 착지했지만 쏟아지는 총알 탓에 숨돌릴 틈도 없이 회피기동을 했다.


 무레스버그에 가까워질수록 철충의 공격이 거세졌다. 넓게 퍼져 철충을 물리치며 나아가던 호드도 점점 강렬해지는 적의 탄막에 진형이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레프리콘과 피닉스의 연계로 전방에 등장하는 중장형 철충들은 미리 제거하고 있었지만 이 또한 적의 머릿수가 많아짐에 따라 점점 한계에 부딪혔다. 대열의 후방에서는 달리는 와중에 워울프의 몸에 붕대를 감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방에 메아리치는 총성과 폭음속에서 칸이 전황을 살핀다.


 납탄과 불길을 피해 몸을 날리는 워울프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워울프와 함께 다가오는 철충을 요격하던 퀵카멜들도 여유가 없었다.

 철충은 더욱 많아지기만 한다. 앞에서 기다리는 철충도, 뒤에서 쫓아오는 철충도, 옆에서 조여오는 철충도, 계속 늘어난다. 그렇게 점점 호드의 목을 졸라간다.


 타다다다당!

 쾅 쾅! 쾅!


 레프리콘의 기관총이 쉴틈없이 불을 뿜고 포격이 비처럼 쏟아진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나빠져나갔다. 워울프들의 농담도, 지휘관의 실없는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는 소리와 터지는 소리, 먹먹해진 귀의 이명만이 세상을 채웠다.


 그러나

 '어떡하지?'

 이런 질문을 하는 자는 없다.


 칸이 가고 싶다고 했고, 그녀들은 가자고 했다.

 그녀들은 호드였다.

 자신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었다.

 거센 총알비가 시야를 막더라도, 암울한 미래만이 분명해지더라도,

 결코 방황하지 않는다.


 종착점이 낭떠러지 아래 깊은 나락일지라도 그녀들은 전력을 다해 일직선으로 달릴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기에

 칸은 말했다.


 -전원 들어라.


 칸이 부대원 전원에게 통신을 보냈다. 호드가 일제히 귀를 기울였다.


 -철충의 공격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지휘관을 살리기 위해서는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다.


 칸의 등 뒤에 코알라마냥 딱 붙어있던 지휘관이 고개를 힐끔 들었다. 뜬금없이 왜 나를 언급하냐는 표정이다. 칸은 지휘관이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지만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전부 총알에 파묻힐 거다. 놈들의 화력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내가 신호하면 각자 다른 방향으로 산개해라. 철충과의 교전을 피하고 포위망을 뚫는 것에만 집중해.


 곧바로 호드의 여러 목소리가 얽혔다.


 -무슨 소리야 대장!

 -저 포위망을 흩어져서 뚫고 가라고?

 -다른 애들이 어떻게 될 줄 알고?


 칸은 일일이 대답하지 않고 꿋꿋이 말을 이었다.


 -두 시간 뒤에 다시 집결한다. 집결 장소는 그 녀석이 있는 곳이다. 어디인지 잊어버린 워울프들은 가까운 퀵카멜에게 물어라.


 다시 한 번 통신채널 안에 소란이 일었다. 워울프가 분통을 터뜨리는 소리와 퀵카멜의 질문이 어지럽게 울렸다. 칸에게 업혀있던 지휘관도 슬그머니 말해본다. 야, 저러다 네 부하들이 나 죽이겠다.

 칸은 여전히 칼처럼 차가운 표정이었다.


 -너희들의 대장이 누구지?


 그녀의 무뚝뚝한 질문에 호드의 소란이 일시에 가라앉았다.


 -당연히 대장이 대장이지 누가 대장이야.


 한 워울프의 대답이었다.


 -그래. 내가 너희들의 대장이다. 대장인 내가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서 명령을 내렸다. 못 따르겠나?


 그녀의 질문에 다시 한 번 호드가 침묵했다. 퀵카멜은 물론, 계급장 떼는 게 일상인 워울프들도 아무 말이 없었다. 여전히 사방에서 포탄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칸은 몇 초동안 부하들의 침묵을 확인했다.


 이견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 확실해지자 칸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단순한 임무다. 흩어져라. 살아남아라. 그리고 팔다리 멀쩡하게 나에게로 돌아와라.


 그녀는 부하들의 시선을 외면한 채 앞만 보았다.


 -너희가 호드의 일원이라는 걸 증명하고


 차가울 정도로 날카롭게.


 -너희가 내 부하라는 걸 증명해라.


 호드의 대답은 없었다.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칸은 곧바로 명령했다.


 -전원, 산개.


 그와 동시에 호드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야말로 전속력. 일행인 지휘관과 레프리콘이 상황파악조차 못 할 정도로 빨랐다. 서로 엇갈리는 일 없이 빗발치는 포탄을 거슬러 철충을 향해 나아간다.

 퀵카멜을 타고 있던 레프리콘이 놀라 소리쳤다.


 "대위님! 퀵카멜 대위님!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잠깐만요! 멈춰보십쇼!"

 "안 돼."

 "대위님!"


 레프리콘이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퀵카멜은 딱딱하게 대꾸할 뿐 방향을 바꾸려하지 않았다. 레프리콘이 뒤를 돌아보자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칸과 지휘관이 보였다. 이내 날아온 포탄이 땅을 터뜨리고, 흙먼지가 하늘로 휘날린다. 열기와 먼지가 흩어졌을 때에 이미 칸과 지휘관의 모습은 지평선의 점처럼 작아져 있었다.

 퀵카멜은 더욱 자세를 낮추며 속도를 높였다. 칸이 평소에 질리도록 말했듯이, 더욱 더 자세를 낮춘다. 더욱 더.

 저 멀리서 날아온 포탄이 얼굴 옆을 스쳐갔다. 퀵카멜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가속했다.


 한편 지휘관은 퀭한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많던 호드가 순식간에 줄행랑을 쳤다. 함께 달릴 때도 놀라웠던 속도였지만 멀어지는 건 그 이상으로 빨랐다.


 -뭐야? 아래 무슨 일이야?


 피닉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칸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답했다.


 -지금 상황에 기동보병은 표적밖에 되지 않는다. 호위에 별 의미가 없어. 최대한 일행을 줄이고 기동력을 높이는 편이 났다.

 -어...... 그래? 그거 괜찮은 거야?

 -그래. 괜찮다.


 피닉스는 멋쩍은 듯이 입맛을 다셨다.


 -알았어. 나는 계속 위에서 보고 있을게.


 지휘관이 실실 웃으며 칸의 등에 딱 달라붙었다.


 "말하는 게 왜 이리 어설프냐."

 "그렇게 들리나?"

 "상관 노릇하려면 사기꾼기질이 아주 몸에 배어야하는데, 넌 좀 많이 연습해야겠다 야."

 "내가 원래부터 지휘모델이었던 건 아니라서 말이지."


 칸에게서 멀어진 퀵카멜과 레프리콘이 어느새 철충과 가까워져간다. 중장갑을 걸친 빅칙과 나이트칙 몇몇이 칸이 나아가는 방향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도 당황한 기색을 추스르지 못 한 레프리콘이 기관총을 겨누었다. 퀵카멜은 더욱 가속했다.

 바람 가르는 소리가 귓속에 맴돌았다.

 두 바이오로이드는 순식간에 철충을 지나쳐갔다.

 철충은 퀵카멜과 레프리콘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총구는 여전히 칸을 향하고 있었다.


 "??"


 레프리콘이 의아한 얼굴로 철충을 쳐다보았다. 칸이 그러했듯이, 철충도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대위님, 지금 뭐가........."


 레프리콘이 물었지만 퀵카멜은 대답 없이 계속 달렸다.


 사방으로 흩어진 호드는 철충의 화력을 전혀 분산시키지 못 했다. 여전히 공격이 집중되는 곳은 칸이 달리는 지점이었다.

 사정거리 안에 인간이 있다는 것

 오직 이 하나의 사실만이 철충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눈앞의 인간을 죽일 때 다른 것들은 전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포탄이 계속 쏟아진다.

 사방에서 솟아나는 화염과 흙먼지에 숨이 막힌다. 지휘관은 칸에게 딱 달라붙어 얼굴을 찌푸렸다.

 칸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흠, 워울프들이 걱정이군. 얼마 안 가서 철충을 들쑤실 거 같은데."

 "화내면서 돌아오는 거 아니냐!"

 "그건 아닐 거다. 눈치 좋은 녀석들이니 내 의도도 알고 있겠지. 좋은 부하들이다."

 "하여튼 저 벌레놈들 맹목적인 거 하나는 알아줘야 해! 진짜 이쪽으로만 총알 날리는 거 봐! 사람 죽이는 거 말고는 관심이 없네! 어?! 추진력이 아주 좋아! 이런 건 쟤들이 인간보다 낫다 야!"


 폭음속에 지휘관이 꽥꽥 소리를 질러댄다.

 칸의 표정은 여전히 칼날처럼 날카롭다.


 "걱정 마라 지휘관. 배달은 제대로 한다."


 그녀의 자세가 낮아진다.


 "난 너와 다르게 죽을 생각 따위는 없다."

 "누가 뭐 죽고 싶어서 죽나! 죽을 상황이니 죽는 거지!"

 "그럼 꽉 잡아라. 안 그러면 그나마 남은 명줄도 짧아질 테니."


 칸의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진다. 지휘관이 손에 꽉 힘을 주고 그녀의 상체에 매달렸다.

 일행들과 함께 달릴 때보다 거의 두 배정도 빠른 속도였다. 끔찍한 가속도에 등골이 아찔해진다.


 그리고

 그런 긴박한 속도감을 느끼면서도 두 눈이 자꾸만 감겼다.

 잠기운에 흐려진 눈을 깜빡이며, 지휘관은 최선을 다해 팔에 힘을 주었다.



 .................



 한때 인류 부랑자와 잡상인으로 북적대던 지하상가 통로에는 쓸쓸한 잔해만 남아있었다.

 버려진 빈 상자, 먼지 낀 거미줄, 깨진 창틀과 널브러진 쓰레기봉투.

 모든 것이 시커먼 어둠 속에 갇혀 실루엣조차 보이지 않았다. 무너진 천장의 틈으로 가늘게 들어오는 빛줄기만이 가시처럼 암흑에 박혀있었다.


 그 빛줄기를 무언가 관통해 지나간다.


 브라우니 셋이 어둠을 달린다. 간간히 천장을 뚫은 빛줄기에 모습이 비쳤다.

 휘날리는 갈색 머리칼, 노란 광학렌즈, 땀에 젖은 얼굴, 악문 이, 두 손에 꼭 쥔 돌격소총,

 아주 잠깐 모습을 보인 뒤 까맣게 사라진다.

 그녀들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쯤, 붉은 눈빛 무리가 무서운 속도로 통로를 채웠다.


 브라우니의 튼튼한 다리가 사력을 다해 지면을 튕겼다. 짐승처럼 날랜 몸이 암흑 속의 장애물을 묘기부리듯이 넘어갔다. 두두두두두, 등 뒤로 나이트칙의 무수한 발소리가 울린다.

 브라우니는 분명 빨랐다.

 온갖 잡동사니로 어지러운 통로를 지나면서도 전혀 속도가 느려지지 않았다.

 그녀들은 속도에 자신이 있었고, 분명 일생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트칙과의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가장 뒤에서 달리던 브라우니가 파이프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녀의 몸이 관성을 따라 거칠게 바닥을 굴렀다. 피가 터지고 광학렌즈가 박살났다. 필사적으로 윗몸을 일으키며 눈을 떠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두두두두, 나이트칙의 발소리만 귓가에 울릴 뿐.


 타다다다당! 총성과 함께 브라우니의 몸이 찢겨나간다. 풀썩 고꾸라진 그녀의 몸을 나이트칙들이 짓밟고 지나갔다.


 두 브라우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달렸다. 체력에 자신있는 브라우니였지만 계속 이어진 전력질주에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이내 거리를 좁힌 나이트칙 하나가 벽을 딛고 뛰어올랐다. 강철다리가 브라우니 하나의 머리를 후려쳤다. 목이 으스러진 브라우니가 실이 끊긴 인형마냥 힘없이 쓰러져 굴렀다. 나이트칙이 쓰러진 브라우니의 뒤통수를 세게 밟았다. 깨지는 소리가 둔하게 울린다.


 마지막 브라우니는 계속 달렸다.

 몇 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몇 미터나 더 갈 수 있을까.

 상관없다. 그녀는 달렸다.

 타다다다당!

 이윽고 총성이 울린다.

 그래도 브라우니는 계속 달렸다.

 그러다 푹 쓰러져 바닥을 구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일으킨다.

 일어날 수가 없다.

 고개를 내린다.

 조금 깨진 광학장치의 렌즈에 토막난 다리가 보인다.

 고개를 드니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나이트칙들이 보인다.

 브라우니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방어하며 몸을 움츠린다.

 금속 골격과 강화근육도 대구경 납탄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총성과 함께 팔이 날아간다. 가슴팍에 구멍이 뚫리고 등이 터진다.

 브라우니의 생존력은 강하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너덜너덜해진 브라우니가 거칠게 피를 토하며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렸다.

 몸 절반이 없더라도 그녀는 아직 살아있다.


 하나 남은 팔로 기어간다.

 부러진 손가락이 필사적으로 바닥을 긁는다.

 손톱이 빠지며 붉은 선을 그린다.


 이내 나이트칙이 다가와 그녀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그것은 철저히 기계적인 동작이었다. 유언의 기회를 주지도 않고 감상을 말하지도 않는다.

 총구가 브라우니의 머리를 향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격발한다.


 타다다다당!!


 요란한 총성과 함께 나이트칙이 박살났다. 시커먼 금속이 거친 불꽃을 튀기며 사방으로 찢겨나간다.

 어둠 속에서 날아온 황금빛 총알 세례가 통로 안을 뒤덮었다. 통로를 달리던 나이트칙들은 피할 장소도 찾지 못 한 채 벌집이 되어 고꾸라졌다.


 순식간에 나이트칙이 모조리 파괴되고 총성이 멎는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곧 어둠 속에서 노란 렌즈알이 번뜩인다.

 하나, 둘, 넷, 열-

 수많은 광학렌즈의 빛이 반딧불떼처럼 일어났다.


 곧 다급한 발소리가 울렸다.

 노란 렌즈빛 하나가 브라우니에게 다가갔다.


 레프리콘은


 조심스럽게 브라우니의 몸을 뒤집었다.


 눈을 감겨준다.



 철컥,

 쇳소리가 난다. 레프리콘이 고개를 들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나이트칙 하나가 바들바들 떨며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리가 망가져 일어날 수가 없다.

 레프리콘이 곧바로 기관총을 들어 쏴갈겼다.

 나이트칙이 산산조각 났다. 완전히 파괴된 몸뚱이가 쓰러졌지만 레프리콘은 멈추지 않는다.

 계속 방아쇠를 당기며 다가간다.

 갈기갈기 찢겨나간 금속을 향해 총알을 퍼붙는다.


 툭 툭

 다른 레프리콘이 어깨를 두드릴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방아쇠를 놓았다.

 말리러 온 레프리콘이 통로쪽으로 손짓했다.

 철충이 온 통로 너머에서 둔탁한 발소리가 소나기처럼 울렸다.


 레프리콘들은 곧바로 발소리를 피해 달렸다.

 암흑 속을 50m정도를 나아가자 다른 통로와 연결된 넓은 원형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 20기의 레프리콘이 진을 치고 있었다. 온갖 물건을 쌓아놓고 기관총을 거치해둔 임시 바리케이트였지만 그녀들이 기대기에는 충분히 든든했다.

 곧 연결된 다른 통로에서 브라우니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 뒤를 따르는 나이트칙 몇 마리가 있었으나 레프리콘의 사격에 쓰러졌다. 브라우니들이 바리케이트 안으로 들어와 쓰러지듯이 엎드렸다. 그곳에는 조금 먼저 도착한 브라우니 수 십 기가 지친 몸을 벽에 기대고 있었다.

 레프리콘 중 하나가 막 도착해 헐떡이는 브라우니들에게 수통을 건네며 말했다.


 "고생했어요. 빨리 마시고 준비해요."

 "하....... 더, 더 기다림까?"

 "아뇨. 지금이 마지막 조에요."


 바리케이트를 지키는 레프리콘이 상가에 버려진 잡동사니를 쌓아 벽을 높였다. 아까전부터 통로 너머에서 들리던 소나기 같은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브라우니가 복귀한 모든 통로에서 공명하듯이 울려댔다.


 그녀들을 감지한 철충이 지하에 나이트칙을 산더미처럼 밀어넣고 있는 것이었다.

 지하통로를 가득 채운 나이트칙이 우글우글 몰려왔다.

 천둥이 메아리치듯이 울리는 발소리를 들으며 레프리콘들은 바리케이트에 바짝 붙었다.


 기관총의 총구가 통로의 어둠 속을 향한다.



 .............



 지상.

 스틸라인과 나이트칙의 추격전이 한창이다.


 레프리콘과 브라우니가 폐허의 건물 사이를 뛰어넘고 나이트칙이 그 뒤를 쫓는다. 철충에 의해 강화된 몸뚱이는 낡은 콘크리트를 손쉽게 부수고 들어왔다. 최단거리로 벽을 뚫고 들어오는 나이트칙을 피해 레프리콘과 브라우니는 건물의 코너를 감아돌았다. 시야의 단절이 조금 시간을 벌어주었지만 나이트칙과의 거리는 계속 줄어들었다.


 선두에서 달리던 레프리콘이 문득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도로쪽을 보았다. 건물 몇 채의 폐허 너머로 도로를 가득 채운 철충 본대가 보였다. 그 먼지구름으로 가득한 철충무리속에서 거대한 실루엣이 움직인다.

 그것은 둔중하게 시선을 돌리는 집채만한 몸집의 중장형 철충.


 레프리콘이 번개처럼 소리쳤다.


 "빅칙!"


 뒤따라오던 브라우니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빅칙의 중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무거운 총성과 함께 날아온 대구경 탄환이 콘크리트 잔해를 스틸로폼 부수듯이 뚫고 지나갔다. 달리는 레프리콘의 한참 앞에서부터 벽이 터져 날아갔다. 바람가르는 소리와 함께 먼지와 콘크리트가 쏟아졌다. 콰과과과광! 중기관포가 쏘아낸 파괴의 흐름이 바이오로이드들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고개 숙여요!"


 그녀가 소리치기 무섭게 붕괴의 파도가 몰아닥친다. 대구경 탄환이 훑고 지나가며 벽돌과 철근이 튄다. 기둥이 사탕처럼 부서져 날아가고 건물이 힘없이 무너져내린다. 레프리콘과 브라우니들이 자세를 낮추며 계속 달렸다. 중간에 달리던 브라우니 하나가 옆으로 휙 날아갔다. 뒤따라오던 브라우니가 고개를 돌려보니 반토막난 하반신만 바닥을 구르고 있다.


 "앞만 보고 계속 뛰어!!"


 선두의 레프리콘이 소리쳤다. 브라우니는 다급하게 정면을 보며 계속 달렸다. 무너져내리는 벽에서 뿜어져나온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았다. 시야가 새까맣게 막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 깔렸지만 레프리콘과 브라우니는 멈추지 않았다.

 콘크리트와 철근이 비처럼 쏟아져도 나이트칙은 똑같은 속도로 그녀들을 쫓아오고 있었다.


 얼마나 더 달렸을까.

 이내 환한 빛이 비춘다. 레프리콘은 눈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브라우니들이 먼지 밖으로 하나 둘 빠져나왔다.


 그러다 작은 비명소리가 들린다.


 레프리콘은 망설이지도 않고 달려온 길을 거슬러갔다. 지나치는 브라우니에게 계속 달리라고 말한 그녀는 무너지는 건물 안으로 몸을 날렸다.


 먼지를 거칠게 휘저으며 폐허 안으로 들어가니 잔해에 깔린 브라우니가 보였다.

 하반신은 완전히 콘크리트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오른손도 총과 함께 벽에 깔렸다.

 가슴을 뚫고 들어간 철근에 피와 먼지가 엉겨붙어 있었다.


 레프리콘은 곧바로 브라우니 곁에 앉아 기관총을 놓고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부서진 콘크리트의 거친 표면에 스쳐 손바닥이 찢어졌지만 레프리콘은 신경 쓰지 않았다.

 브라우니가 먼지가 쌓인 얼굴을 간신히 움직여 레프리콘을 보았다. 피를 머금은 입으로 무어라 말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다.


 문득 먼지구름 너머에서 나이트칙의 발소리가 울린다. 레프리콘이 초조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잔혹한 강철의 소리는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두터운 먼지 너머에 붉은 빛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레프리콘은 기관총을 들어 먼지 너머를 겨눴다.


 "상병님은 쏘면 안 됨다."


 숨이 옅은 브라우니의 목소리.

 레프리콘이 무거운 표정으로 브라우니를 내려다보았다. 브라우니는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왼손으로 탄입대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스팸통조림이었다. 충격 때문에 약간 찌그러져있다.

 브라우니가 스팸을 레프리콘에게 내밀었다.


 "이걸 왜 남겼어요. 다 먹었어야지. 왜 남겼어요........."


 레프리콘이 나이트칙이 다가오는 방향과 브라우니의 스팸을 번갈아 본다.


 촉박한 시간. 어쩌면 처음부터 내면 안 됐던 시간.

 레프리콘은 까맣게 타들어가듯이 망설였다.


 결국 그녀는 브라우니의 스팸을 쥐어들었다.

 그리고 나이트칙을 피해 달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총소리와 벽이 무너지는 소리, 쇳소리가 울렸다.


 철충본대는 여전히 대로를 따라 줄지어 이동중이었다. 사방에서 스틸라인의 습격과 후퇴가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나이트칙만 추격조로 보낼 뿐 진격속도를 늦추지는 않았다.


 건물에 숨어있던 레프리콘이 무너진 천장에 깔려 죽고

 도와주러 온 브라우니가 기관총만 회수하고 도망가고

 나이트칙이 뿌린 총알이 도망가던 브라우니의 오른쪽 눈에 박히고

 또 다른 브라우니가 머리가 뚫린 브라우니 대신 기관총을 들고 달리고

 몇 겹의 벽을 부수고 날아온 대구경탄환이 브라우니를 반토막낸다.


 수많은 브라우니와 레프리콘들이 사력을 다해 달렸지만

 나이트칙의 자비없는 추격에,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대구경 탄환에,

 바이오로이드들은 허무할만큼 쉽사리 죽어나갔다.


 브라우니 871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분대는 나이트칙 디텍터의 몸뚱이에 총알 두 발을 박았다. 그 대가로 레프리콘은 나이트칙의 다리에 차여 즉사했고 브라우니 둘은 산산히 박살나버렸다. 홀로 남은 그녀 또한 나이트칙 7기를 뒤에 매달고 있었다.


 심장이 멈춰달라고 애원했지만 브라우니 871은 이를 악물고 허벅지를 움직였다. 폐가 요란하게 들썩여도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시야가 흔들리고 옆구리가 쿡쿡 쑤셔온다. 등 뒤로는 나이트칙의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따라붙는다.

 아무리 그녀가 버려진 자동차와 쓰레기통을 잘 뛰어넘어도 나이트칙은 우습다는 듯이 거리를 좁혀왔다.


 이곳의 모든 스틸라인의 운명은 같다.

 얼마 가지 않아 그녀도 자매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그저 몇 분 몇 초가 다른 것뿐이다.


 그러나 그게 다리를 멈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저 몇 분 몇 초-

 그 몇 분 몇 초가 필요하다고

 그녀들의 대장은 말했다.


 그렇기에

 포기하지 않고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그 자체가 그녀들이 달리는 이유가 되었다.


 브라우니 871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달렸다.


 결국

 한계를 넘어선 질주에도 끝이 찾아온다.

 쇳덩이처럼 무거워진 발이 콘크리트 더미에 걸린다. 브라우니가 중심을 잃고 굴렀다. 간신히 멈추고 자세를 고치려했지만 한 번 멈춰선 다리가 어마어마한 피로감에 짓눌렸다. 부들거리는 팔로 몸을 일으킨 브라우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를 향해 무자비하게 달려오는 나이트칙 7기가 보였다.


 브라우니는 침을 삼키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뜬 눈에는 나름의 각오가 담겨있었다. 그녀의 떨리는 팔이 총을 들어 견착했다. 가늠쇠가 다가오는 나이트칙 무리를 향했다.


 쾅!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브라우니와 나이트칙 사이에 있던 건물의 벽이 폭발했다. 뿜어져나온 콘크리트와 먼지구름이 브라우니 871의 앞을 가렸다. 나이트칙들이 먼지구름 앞에 멈춰섰다.


 퉁 퉁 퉁,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먼지구름 속을 굴렀다.

 토막난 나이트칙의 몸뚱이였다.

 절단면이 불로 달군 듯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처참하게 절단된 동족을 본 나이트칙들이 무너진 벽을 경계했다.

 브라우니도 놀란 눈으로 무너진 벽에서 뿜어져나오는 먼지구름을 보았다.


 짙은 먼지구름 안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비친다.

 곧 번갯불이 튀며 눈부신 섬광을 터뜨렸다. 점멸하는 스파크 사이로 먼지구름이 불타 날아갔다.

 그 안에서 공중에 약간 뜬 바이오로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꽃잎처럼 흩날리는 작은 불꽃무리가 팔짱을 낀 그녀의 몸에 부딪혀 사라졌다.


 그녀, 불굴의 마리 7호는 어깨에 매달린 나이트칙의 토막난 다리를 여유롭게 털어냈다.

 둥둥 떠있는 몸으로 미끄러지듯이 건물 밖으로 나온 그녀가 쓰러져있는 브라우니를 발견했다.


 브라우니의 놀란 눈동자와 마리의 푸른 눈동자가 마주쳤다.

 마리가 입을 열기도 전에 브라우니가 먼저 소리쳤다.


 "뒤에!"


 마리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이미 나이트칙 세 기가 그녀를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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