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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팀장님!"


 콘스탄챠의 다급한 외침에 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몹시 피곤했음에도 그는 평소처럼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행복한 생각을 떠올리거나 웃긴 장면을 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계속 웃고 있으려고 노력했다.

 인간의 표정이 그녀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콘스탄챠는 그의 표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동쪽 방어선이 뚫렸어요! 녀석들이 밀고 들어올 거예요!"


 팀장의 미소가 굳었다. 하마터면 그는 울상을 지을 뻔했다.

 그러나 간신히, 그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답했다.


 "여기까지 도달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어. 그 구역 애들 전부 복귀시키고 재정비 하면 되지 뭐."


 콘스탄챠는 어깨에 쌓인 초조함을 누그러뜨리며 고개를 숙였다.

 흙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피부. 찢기고 타들어간 하녀복. 손에 꾹 쥐고 있는 윈체스터 소총. 성격만큼이나 둥글둥글하던 안경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모든 것이 그녀의 평소 모습과 동떨어져 있었다.

 더 이상 향기도 나지 않고,

 오직 따가운 화약 냄새뿐이다.


 팀장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쥐었다.


 "걱정 마. 곧 이동할 거야.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주인님은 움직이지 않으실 거예요."

 "내가 어떻게든 설득할 테니까. 넌 일단 쉬어. 계속 싸우려면 숨 좀 돌려야지."


 콘스탄챠가 몸을 돌려 자신이 들어온 문을 가리켰다.


 "말씀하신대로 회수할 수 있는 자매들만 데려왔어요. 얼마 안 되지만요."

 "알았으니까 어서 쉬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팀장은 그녀를 휴게실로 보낸 뒤 책상에 놓아뒀던 돌격소총을 들었다. 약실에 탄이 장전된 걸 확인하며 몸에 내장된 통신장치로 신호를 보내자 곧 답신이 돌아왔다.


 -들었어요. 역시 동쪽이 뚫렸군요.


 알렉산드라의 목소리였다. 팀장은 복도로 나아가며 통신을 계속했다.


 "시간이 필요해 알렉산드라. 방어선 애들 빼내고 고용주랑 면담도 해야하는데, 버틸 수 있겠어?"

 -흠....... 인정하긴 싫지만 리리스도 필요해요. 둘이서라면 15분 정도는 벌 수 있겠네요.

 "리리스 걔 지금 외팔이잖아."

 -팔 하나 없어도 블랙리리스는 블랙리리스죠.

 "알았어. 부탁할게. 꼭 살아돌아와야해. 지금 너희 잃으면 진짜 난리난다."

 -후후, 명심하죠. 경호팀장님이야말로 주인님을 잘 설득해주시길. 부탁해요.


 통신이 끊겼다.

 복도에 거의 도착한 그는 방탄조끼를 잘 입고 있는지 점검한 뒤 자세를 낮추고 빠르게 진입했다.


 말끔한 대리석이 깔린 넓은 복도가 시야를 채웠다. 바닥과 벽에 군데군데 총알에 맞아 깨진 흠이 보였다. 온갖 휘황찬란한 장식이 붙은 기둥 너머로는 이 도시의 전망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높은 빌딩과 알록달록한 불빛으로 빛나던 대도시가, 지금은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바다가 되었다.

 지옥 같은 불길은 하늘마저도 태워 하루종일 노을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계속 들려오는 총소리와 폭발소리가 팀장의 발걸음을 초조하게 했다.


 그는 기둥 옆에 몸을 숨긴 채 경계임무를 하던 콘스탄챠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드넓은 복도에 촘촘히 배치된 그녀들은 하나 같이 피곤에 절은 누추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팀장님, 여기에요."


 한 콘스탄챠가 저택 내부로 들어가는 코너에서 손짓했다. 팀장은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갔다.

 팀장이 다가오자 그녀는 바닥에 가지런히 늘어놓은 것을 보여주었다. 콘스탄차와 바닐라의 시체들이었다. 팀장은 웃어야 한다는 생각도 잊은 채 눈을 찌푸렸다.


 전방에서 서는 바닐라들은 평소처럼 몸에 생긴 총상이나 폭발물의 파편에 의해 죽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훨씬 후방에 배치된 콘스탄차는 유독 머리가 날아간 경우가 많다. 엄폐한 채 머리만 내밀고 저격하는 콘스탄챠를 잡아낼 정도로 녀석들의 총알 또한 정확하다는 의미였다. 콘스탄챠 모델의 긴 사거리를 이용해 물량차이를 상쇄하는 것도 이미 한계에 이른 것이다.


 아니, 애초에 모든 것이 한계를 뛰어넘었다.

 페로와 바닐라가 케이블카를 이용해 게릴라를 할 때도,

 건물들을 폭파시켜 콘스탄챠들에게 저격지대를 만들어줄 때도,

 끊어진 수도관을 이용해 알렉산드라가 전격폭발을 일으킬 때도,

 리리스가 팔 하나를 바쳐가며 감염된 쉘주크를 박살냈을 때도,

 그와 그녀들은 가능한 것 불가능한 것 따지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말도 안 되는 교환비로 놈들을 물리쳐왔다.

 숨을 쉬는 매 순간마다 기적을 갱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계를 넘고 있다는 것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기도 했다.


 "잘 보관해줘. 지금 이 난리가 끝나면 저택으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그때 잘 보내줘야지."

 "저도 잘 보내주실 건가요?"


 콘스탄챠의 갑작스런 질문에 팀장은 한 대 얻어맞은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몇 번 입을 움찔거리던 그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한 백 년쯤 뒤에 네 수명이 끝나면, 그때 생각해보지 뭐."


 그때 저택 안에서 바닐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팀장님! 주인님께서 부르십니다!"


 팀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제서야......"


 그는 툴툴거리면서도 희망을 찾은 표정으로 발을 옮겼다.


 탕!


 그 순간 복도에 총성이 울린다.

 팀장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며 주위를 살폈다. 그의 곁에 있던 콘스탄차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총을 치켜세웠다.


 "접근하지 못 하게 해요!"


 복도 쪽에서 콘스탄차의 날카로운 목청이 울린다.

 곧 작은 자동차 크기의 쇳덩이가 난간을 깨부수며 복도 안으로 굴러들어왔다.


 재빠르게 중심을 잡고 일어선 그것은 블랙리버사의 이족보행 AGS, 폴른이었다. 그것의 둥근 몸체에 이질적인 까만 금속이 곰팡이처럼 퍼져있었다. 놈들에게 감염되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팀장은 곧바로 폴른을 총으로 겨누며 다가갔다. 폴른이 그를 인지하고 총구를 돌리는 순간, 팀장의 돌격소총이 먼저 불을 뿜었다. 세 발의 총알이 폴른의 총구를 다시 밀어냈다.

 타다당!

 그 다음 세 발은 폴른의 오른다리에 박혔다. 다리가 밀린 폴른이 자세를 고쳐잡기 위해 몸을 기울였다. 그 틈에 폴른 위로 날렵하게 올라탄 팀장이 몸체를 향해 총알을 내리갈겼다.


 몸 안이 산산조각난 폴른이 푹 주저앉았다. 그와 동시에 박살난 몸뚱이 안에서 무언가 쏜살 같이 튀어나와 팀장의 심장을 꿰뚫으려 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을 걷어차 날리고 총알을 쏟아부었다. 수 십 발의 총알을 맞으며 복도 구석으로 밀려난 그것은 붉은 금속질로 이루어진 벌레 같은 것이었다.


 그게 '놈'이었다. 기계를 감염시켜 인간들을 죽이는 벌레들.

 그와 그녀들은 그 벌레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그저 싸우기 위해 '놈들'이나 '적들'이라 부를 뿐이었다.


 팀장이 한 탄창을 전부 쏟아부었지만 놈은 생선 마냥 펄떡 거리고 있었다. 곧 콘스탄챠들이 호출한 페로가 매서운 속도로 복도를 건너와 벌레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단분자 클로에 토막나고 나서야 놈은 움직임을 멈췄다.


 "괜찮으십니까?"


 어느새 다가온 바닐라가 팀장에게 물었다. 이미 그가 괜찮다는 걸 알고 있는지 걱정의 기색이 전혀 없는 새침한 표정이었다.

 팀장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더니 평소처럼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깜짝 놀랐네. 죽을 뻔했다 야."

 "그런 것 치고 깔끔하게 해결하셨군요."

 "운이 좋았지. 그래도 군인노릇한답시고 몸뚱이에 처바른 돈이 얼마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냐."

 "개조된 몸도 총알 한 발이면 박살입니다. 부디 명심하시고 앞으로는 나대지 마시길."


 팀장이 탄창을 갈아끼우며 툴툴거렸다.


 "코앞까지 왔는데 어떡해. 등돌렸다 총맞아 죽으려고."

 "직접 싸우지 말고 저희를 방패 삼아서라도 도망치라는 소리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지조차 모를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시겠죠."

 "어서 가기나 하자. 시간 없어."


 바닐라가 눈썹을 까딱이더니 등을 돌려 저택 안으로 향했다.


 -죄송해요 팀장님~ 저 전기뱀장어가 한 마리 놓쳤지 뭐예요.


 블랙리리스의 목소리가 귓속에 울렸다. 곧 알렉산드라가 말을 이었다.


 -역시 암코양이 아니랄까봐 남을 모함하는데 일가견에 있군요. 당신 때문에 제 힘이 분산된 건 생각 안 하시나보죠?

 "이미 처리했으니까 둘 다 신경 쓰지 말고 싸움에 집중해. 지금 고용주랑 이야기하러 가는 중이까 좀만 더 버티면 될 거야. 최대한 빨리 끝낼게."


 팀장의 걸음이 더 급해졌다. 어느새 안내하던 바닐라를 앞서 간다. 바닐라가 속도를 높여 그를 뒤따랐다.


 "상황이 좋지 않은가 보네요."

 "뭐 그렇지. 언제 좋은 적이 있었나."


 장난스러운 대답이지만 거짓말이었다.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절망적이다.

 알렉산드라와 블랙리리스가 버텨주고 있는 약간의 시간이 이 저택에 남은 모든 것이었다.


 더 이상은 놈들을 막아낼 수 없다.


 "긴장하지 마시죠. 어줍잖게 사명감을 부풀리다 일을 그르치는 법입니다."

 "내가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겁먹어서 정신 못 차리는 걸로 보이네요."

 "오, 정확해. 독한 입만큼이나 눈이 날카롭네."

 "칭찬으로 여겨두죠."


 바닐라가 팀장의 팔을 잡아세웠다. 그가 다급하게 뒤돌아 보았다. 그의 초조한 시선을 향해 바닐라는 입을 열었다.


 "차분하게 생각하고 가세요. 걱정 말고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 팀장님을 원망하는 자매들은 없을 겁니다. 모두 팀장님을 믿고 있으니까요."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오늘이 죽을 날이긴 한가 보다."

 "기껏 격려를 해줘도 받아먹질 못 하시네요. 어차피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으니 딱히 상관없지만요."


 팀장이 애써 웃는다.


 "그래. 그렇게 말해야 바닐라지. 오늘은 살겠다."


 그는 다시 몸을 돌려 나아가기 시작했다. 바닐라는 조심스럽게 그의 팔을 놓아주었다.


 탕! 탕!


 콘스탄챠의 소총 소리가 창밖을 두들겼다. 점점 간격이 줄어든다.

 팀장과 바닐라는 점점 걷는 속도를 높이더니 결국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저택의 복도를 달려나가다,

 연회장에서 음식을 차리고 있는 하얀 바이오로이드를 본다.

 불길처럼 밀려드는 총성 속에서도

 예술 같은 요리들을 묵묵히 내어놓는


 소완


 그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요리사 바이오로이드.



 ...........



 온몸이 날아갈 것 같은 관성에 지휘관의 눈이 번쩍 뜨인다.


 "으악!"


 다급하게 우는 소리를 하며 칸의 등에 달라붙으니 곧바로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훑고 지나갔다.

 총알이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튀며 얼굴을 때린다.


 "뭐야?! 뭐야 미친?!"

 "이번에는 도중에라도 깨서 다행이군."


 칸은 차분하게 대꾸하며 허리를 팍 굽혔다. 한계까지 낮아진 칸과 지휘관이 빅칙의 다리 사이를 쏜살처럼 통과했다. 나이트칙들이 매섭게 총구를 돌리며 칸을 추적했다.

 사방에서 총소리가 울리며 탄알이 쏟아진다.

 칸은 발버둥치는 뱀처럼 부산스럽게 선회하며 총알사이를 질주했다. 1초에도 몇 번 씩 그녀가 방향을 틀 때마다 지휘관이 날아갈것마냥 펄럭거렸다. 요란하게 비명만 질러대는 짐덩이를 업고 있음에도 칸은 속도는 눈으로 쫓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으아아!! 너 아까 분명 우회한다고-"

 "예상보다 철충이 더 빨리 산개했다. 남은 연료량에 맞추려면 이 부분은 강행돌파해야 한다."


 드넓게 퍼진 철충무리가 그녀를 잡기 위해 탄막을 흩뿌려댔다. 멀리서 쫓아오는 철충의 본대도 두터운 총알비를 퍼붓고 있었다. 칸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몇몇 나이트칙들이 동족의 오사에 휘말려 쓰러졌지만 상관없었다. 칸이 업고 있는 인간만 죽일 수 있다면.


 칸은 그저 계속 달렸다.

 피하고 지나가고 피하고 지나가고 피하고 지나가도 또 철충이 나왔다.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은 일말의 절망감 없이, 냉정했다.


 "잠 깼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매달려라."

 "으아아아악!"

 "호들갑 떨지 마라. 이 정도는 돌파할 수 있다."

 "으아악! 으아아아악!"


 그는 대답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칸은 입을 다물고 철충무리를 뚫는데 집중했다.



 ...........



 맘스베리.

 하염없이 우울한 잿빛 구름 속에서 피닉스의 포격이 이어지고 있다.


 "후방으로 모셔요! 어서!"


 레프리콘 하나가 소리치며 기관총을 갈겨댔다.

 그 뒤에는 브라우니와 레프리콘 몇몇이 모여 쓰러진 마리7호를 애워싸고 있었다. 그녀들은 하나 같이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마리의 가슴만 꾹꾹 눌러댔다.

 누를 때마다 피가 잔뜩 배어나왔다.


 -마리 대장님! 더는 못 버텨요! 폭파합니까? 마리 대장님, 명령해주세요!


 통신에 지하조의 간절한 목소리가 울렸지만 대답할 이는 없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 맞슴까? 피가 안 멈추시지 말임다!"


 브라우니가 울상이 되어 물었지만 레프리콘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몰라요! 모른단 말이에요!"

 "대장님 일어나시지 말임다! 아직 싸움 안 끝났슴다!"


 기관총을 쏘아대던 레프리콘이 뒤를 보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후방으로 모시라니까 아직까지 안 움직이고 뭐해요 지금!!"


 그 순간 전방에서 날아온 총알이 그녀의 머리를 뚫었다.

 푹 쓰러지는 레프리콘의 시체 위로 나이트칙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리를 둘러싸고 있던 스틸라인들의 시선이 나이트칙에게 쏠렸다.


 지혈하느라 총을 놓고 있던 브라우니들은 자신을 겨눈 나이트칙의 총구를 보자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레프리콘들은 망설이지도 않고 브라우니의 몸을 감싸안았다.


 타다다당!

 나이트칙의 총격에 마리를 애워싸고 있던 스틸라인들이 피를 터뜨리며 쓰러졌다. 치명상을 입고 신음하는 브라우니들 사이로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마리의 모습이 드러났다.


 철컥, 공허한 격발음.

 탄이 떨어진 나이트칙이 마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상 당한 브라우니 하나가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 막아섰지만 나이트칙의 발길질 한 번에 머리가 깨진다.

 브라우니의 시체를 내팽개친 나이트칙은 곧바로 마리를 향해 짐승처럼 도약했다.


 그 순간 누워있던 마리가 다리를 들어 나이트칙의 몸통을 밀어찼다. 나이트칙은 그대로 대포알처럼 날아가 벽에 처박힌다.


 타다다당! 타다당!


 브라우니 하나가 벽에 박힌 나이트칙을 향해 돌격소총을 갈겨댔다. 나이트칙이 완전히 박살나 멈추는 걸 확인한 브라우니는 곧바로 마리를 향해 달렸다.


 브라우니871이었다.


 그녀는 마리 주위에 있던 자매들을 살필 겨를도 없이 곧바로 물었다.


 "괜찮으심까?"


 그러다 마리의 몸을 보자마자 얼굴이 하얘졌다. 그 무엇에 맞아도 멀쩡할 것 같던 몸이 새빨간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마리는 막 정신을 차린 듯이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살폈다.


 "내가....... 의식을 잃은 지 얼마나 됐나?"

 "몇 초 안 됐슴다. 방금 저격당하셨슴다. 마리 대장님 맞는 거 보자마자 달려온 검다."


 타다다당!


 가까이 울리는 총소리에 브라우니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지원하러 온 레프리콘과 브라우니들이 철충을 견제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대장님은 무사하신가요?!"


 선두의 레프리콘이 소리쳐 물었다. 브라우니도 힘껏 소리쳐 답했다.


 "아직 살아계심다!! 어서 치료해야 함다!"


 그때 마리의 손이 브라우니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전선 상황을 보고해라 브라우니871."


 브라우니가 당황하여 고개를 높게 들고 이리저리 전선을 둘러봤다.


 "모, 모르겠슴다. 저는 그런 거 잘 못 보지 말임다! 대장님 쓰러지신지 얼마 안 돼서 별로 변한 건 없는 거 같슴다!"


 마리가 힘겹게 고개를 움직이며 자신의 주위에 죽어있는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엎드려 있는 브라우니 하나가 아직 배를 움켜쥐고 가쁜 숨을 쉬고 있었으나 곧 숨이 멎어 축 늘어졌다.


 마리는 눈을 몇 번 껌뻑거리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난 이들이 죽는 걸 알지도 못 했다."

 "말하지 마시지 말임다. 지금 위험해보이심다."


 마리의 가슴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그걸 보는 브라우니 871은 초조하게 침만 삼켰다. 그녀의 간절한 시선이 다가오는 지원군을 향했다.


 "지하조, 응답해라."


 브라우니가 마리를 본다. 마리는 잿빛 하늘을 보며 통신을 이어갔다.


 "응답해라 레프리콘 3302."

 -듣고 있습니다!


 다급한 통신에 기관총 소리가 어지럽게 얽히고 있었다. 마리는 거친 숨을 고르며 또박또박 말했다.


 "폭파해라. 지금 당장."

 -불가능합니다! 방금 기폭장치가 파괴됐어요! 지금 다시 연결하는 중....... 잠깐, 잠깐!


 통신 안에 콘크리트 더미가 요란하게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빅칙!' 누군가 외친다.


 -지하잖아! 빅칙이 어떻게 여길-


 텅 텅 텅 텅! 묵직한 기관포 소리와 함께 레프리콘들의 비명이 울렸다.

 통신이 뚝 끊긴다.


 "레프리콘 3302. 응답해라."


 마리가 힘겨운 목소리로 불렀지만 통신은 다시 연결되지 않았다.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는 브라우니871도 상황이 안 좋다는 걸 직감했는지 말이 없었다.

 마리는 담담하게 눈을 껌뻑였다.


 "브라우니 871."

 "듣고 있슴다."

 "내 분대원이 된 기분은 어땠나."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심까."


 마리의 손이 브라우니의 팔을 꾹 쥐었다. 그게 이별의 말처럼 느껴지기라도 한 것인지 브라우니의 표정이 더 다급해진다.


 "솔직히 얼마 안 돼서 잘 모르겠슴다. 대장님 뒤꽁무니 쫓아가는 것만 해도 힘들었지 말임다."

 "그랬나. 내가 좋은 동료는 못 됐나보군."

 "그, 그건 아니지 말임다!"

 "오늘은 나름 노력했지만 생각처럼 안 되는 모양이다."


 마리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조금 힘들다."


 말을 하는 도중에 입에서 피가 흐른다. 브라우니가 서둘러 피를 닦아주려다 흙에 얼룩진 자신의 손을 보고 그만뒀다.

 애처롭게 쳐다보는 브라우니를 보며 마리는 괜찮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표정이 그게 뭔가."


 웃음과 함께 입 안에 고여있던 피가 터져나왔다.


 "피 엄청 나오심다! 말 줄이시지 말임다!"

 "그래야겠지. 그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군. 모두가 내 말을 기다리고 있다."

 "제발 그만 말씀하시지 말임다."


 브라우니는 필사적이었다. 그럼에도 마리는 말했다.


 "날 봐라. 브라우니 871."

 "보고 있슴다."

 "내가 아직 귀관의 앞에 서 있나?"


 브라우니는 당황한 얼굴로 마리를 빤히 쳐다봤다.

 가슴의 관통상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는 마리 7호.

 아무리 쳐다봐도 현실은 변함이 없다.


 "아님다. 쓰러져계심다."

 "귀관의 대답이 맘에 들지 않는군. 다시 묻겠다."


 마리는 여전히 미소짓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아직 귀관의 앞에 서 있나?"


 브라우니는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대신 대답을 해줬으면 했다.

 그만 말하고 쉬라고. 피부터 멈추고 숨쉬는데 집중하라고.


 하지만 지금 그곳에는 마리와 브라우니 871 밖에 없었다.


 그녀는 대답을 해야 했다.


 "아님다! 마리 대장님은 쓰러지셨슴다!"


 그녀는 대답을 해야 했다.


 "지금 바로 후방으로 가셔야 하지 말임다!"


 그럼에도 마리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물었다.


 "내가 아직, 귀관의 앞에, 서 있나?"


 브라우니 871은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눈을 질끈 감은 그녀는 말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내 어깨에 힘이 풀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물론임다."


 브라우니는 눈을 떴다.


 "여전히 대장님은 저희 앞에 서계심다. 앞으로도 계속, 대장님은 저희 앞에 서계실 검다."


 마리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브라우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브라우니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님은 쓰러진 적이 없었슴다."


 마리는 그제야 브라우니에게서 시선을 떼고 하늘을 보았다.

 총성과 폭음이 메아리 치는 잿빛하늘에는 그 어떤 구원의 빛도 없었다.

 한없이 막막하게 그늘만 진다.


 그렇게


 가만히 눈을 껌뻑이던 그녀는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파지직!

 사방에 번갯불이 튀며 먼지가 타올랐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레이져드론, 비홀더의 눈이 다시 기동하며 공중에 떠올랐다.


 폭풍을 가르고 일어나는 거인처럼

 마리가 움직이는 매 순간 압도적인 존재감이 주위를 내리눌렀다.


 그녀가 계속 몸을 움직이자 가슴에 뚫린 상처에서 피가 팍 튀었다.

 그러나 브라우니는 마리를 부축하지 않았다. 그녀가 도움을 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브라우니는 느낄 수 있었다.

 마리는 고개를 돌려 거칠게 피를 뱉어낸 뒤 완전히 자리에 일어섰다.

 두 다리로 굳건하게 선 그녀가 팔짱을 끼며 소리쳤다.


 "총을 들어라 브라우니!"


 천둥 같은 목소리는 어느때보다 우렁찼다. 그러나 마리의 가슴팍을 적시는 피는 그 이상으로 불길한 것이었다.

 찢어진 심장에서 용암처럼 튄 피가

 곧게 편 등을 타고, 튼튼한 다리를 지나, 창백한 콘크리트 바닥에 스며들었다.

 평소처럼 당당하게 선 육체가 휴지처럼 빨갛게 젖어갔다.


 브라우니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저 마리의 명령대로 총을 들고 쳐다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잘못 건드리면 이 단단한 기적이 깨져버릴까봐, 쳐다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 됐다는 듯이

 마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우니는 그 끄덕임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된 것 같은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곧 철충의 사격을 피해 헐레벌떡 달려온 지원조가 도착했다. 선두에 있던 레프리콘이 진을 치고 철충들을 막는 사이 다른 레프리콘이 달려와 마리를 살폈다.


 "대장님, 괜찮으세요? 어서 상처를-"

 "주목! 귀관들에게 새 임무를 주겠다!"


 마리의 힘있는 목청에 막 도착한 지원조 모두가 놀라 쳐다봤다.


 "날 저격한 철충 개체가 있다. 지금까지 확인하지 못한 강도의 공격이었다. 분명 그에 걸맞는 크기의 무기나 전원공급장치를 갖고 있는 녀석일 거다. 하지만 앞서 놈들을 살필 때 특이한 개체는 보고된 바가 없었으니, 놈이 위장을 하거나 자신의 위치를 숨길 정도로 머리가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녀의 눈에 투지가 번뜩인다.


 "귀관들이 저격수를 찾아 죽여라. 오늘 우리가 전멸하더라도 그 녀석만은 다른 자매들에게 보내지 말아야 한다."


 마리의 상처를 본 레프리콘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리 대장님, 심장이......"

 "뛰고 있다! 그러니 정신 차려라 레프리콘 4405!!"


 그녀의 호통에 퍼뜩 정신을 붙잡은 레프리콘이 빠르게 분대원들을 모아 추슬렀다. 그 사이에 마리가 브라우니 871을 보았다. 브라우니 871도 마리의 뚫린 가슴을 보고 있었다.


 "분대장으로서 명령하겠다 브라우니 871, 귀관은 지금부터 레프리콘 4405와 함께 저격수 사살 임무를 수행한다."

 "저기...... 대장님은......."

 "대답은 크게 하라고 하지 않았나!"

 "아, 알겠슴다!"


 브라우니의 힘찬 대답을 들은 마리는 그제야 평소처럼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좋은 대답이다 브라우니 871! 기회는 한 번 뿐일 거다. 살아돌아오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죽어서라도 놈을 죽여라."

 "알겠슴다!!"

 "그럼 이제 레프리콘 4405와 합류해라."

 "알겠슴다!!"


 브라우니 871이 레프리콘 4405에게 달려가려는 찰나, 마리가 불러세운다.


 "잠깐."

 "?"


 의아하게 돌아보는 브라우니를 향해 마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귀관의 커피 덕분에 오늘 이렇게 힘이 나는 걸지도 모르겠군. 고맙다."


 그 순간 브라우니 871은 직감했을 것이다.

 이것이 마리와 나누는 마지막 대화라는 것을.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마리의 피흘리는 가슴을 향하고 있었다.

 마리가 아무리 건재하게 서있어도, 평소처럼 팔짱을 끼고 있어도,

 그 커다란 상처만 자꾸 눈에 박혔다.


 브라우니 871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리 대장님은 이제 어떡하실 검까?"


 마리 7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앞에 선다."


 그 말을 들은 브라우니의 눈이 확 달아오른다.

 총을 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벌개진 눈을 껌뻑이는 브라우니를 보며, 마리는 턱으로 레프리콘 4405를 가리켰다.


 "이제 출발해라 브라우니 871. 귀관은 귀관에게 주어진 성능보다 강하다는 걸, 항상 명심해라."


 그제야 브라우니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가보겠슴다!!"


 휙 몸을 돌려 뛰어가는 브라우니를 보며 마리는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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