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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성이 계속 머릿속을 두들긴다.

 마리는 간신히 눈을 떴다.

 브라우니 둘이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등이 콘크리트 바닥 위로 질질 끌리며 핏자국을 그렸다.

 타다당! 타다다당!

 무언가를 향해 총을 쏘는 레프리콘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중 하나가 총에 맞아 쓰러진다.

 쓰러진 레프리콘의 시체 너머로 나이트칙들이 우글우글 몰려온다.


 마리의 충혈된 눈동자가 멍하니 하늘을 응시한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브라우니의 불안한 눈빛이 보인다.

 그 위로 피처럼 타오르는 하늘이 보인다.

 추락하는 불덩이들이 보인다.

 

 -대장님! 마리대장님!


 통신 속에 소리가 울린다.


 -지하조 브라우니7012임다! 그 말씀하신 기둥 거의 도착했슴다!!


 마리의 입이 조금 움직였다. 그러나 피만 나올 뿐 목소리는 없었다.


 지하의 브라우니7012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달려나갔다.

 이제 남은 지하조는 그녀와 동료 브라우니, 단둘.

 그녀들의 뒤에서는 무너지는 통로 사이로 빠져나온 나이트칙들이 매서운 기세로 추적해오고 있었다.


 "가!"


 브라우니 하나가 멈춰 서서 나이트칙을 향해 돌격소총을 갈겼다.

 브라우니7012는 마지막 남은 동료를 힐끗 쳐다보다 다시 달렸다. 그녀의 품에는 레프리콘6002가 넘겨준 기관총이 안겨 있었다.


 타다당! 타다당!

 요란하게 메아리치던 총성이 곧 멎었다. 그래도 브라우니7012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몇 걸음 앞에 지하통로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이 있었다.

 기둥 밑둥에 꼼꼼하게 설치된 폭발물 위로 크게 새겨진 E-32라는 글자가 보였다.


 브라우니는 더욱 악을 쓰며 다리를 움직였다.

 등 뒤로 나이트칙의 구동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것들의 총소리, 몸을 스치고 지나는 총알소리, 모든 것이 점점 가까워진다.

 이미 거의 따라잡혔을지도 모른다. 걸음을 멈추는 순간 나이트칙의 강철다리가 그녀의 머리를 깨부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브라우니는 자리에 멈춰 서서, 기관총을 들었다.


 그 순간


 콰과광!!

 굉음과 함께 무너진 천장이 그녀를 깔아뭉갰다. 그녀를 뒤따라 오던 나이트칙들의 선두도 함께 콘크리트에 파묻혔다.

 지하통로 전체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잇따른 폭발의 충격을 끝내 버티지 못한 것이다.


 통로가 무너진 걸 확인한 나이트칙들은 일제히 탈출루트로 걸음을 돌렸다.


 탕!!


 한 발의 총성이 나이트칙들을 붙잡는다. 시뻘건 철충의 빛이 매섭게 몸체를 돌려 총성이 난 곳을 응시했다.


 타다당!!


 무너진 콘크리트 안에서 총성이 울렸다. 레프리콘의 기관총 소리였다.

 잔해에 깔린 브라우니가 E-32 지지대를 향해 기관총을 쏘고 있었다. 하반신은 콘크리트에 짓뭉개져 보이지 않고 상반신도 잔해 사이로 간신히 팔만 드러내고 있었다. 피로 물든 브라우니는 목이 철근에 뚫린 탓에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그저 집념으로 뭉친 눈빛만 번뜩이며


 타다당! 타다다당!


 필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 몇 발이 E-32지지대와 거기에 설치된 폭약에 맞았다. 그러나 폭발하지 않는다.

 그래도 브라우니는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당! 타당!


 그리고

 총소리의 원인을 찾아낸 나이트칙이 브라우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까만 쇳덩이는 브라우니의 위치를 확인하더니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 콘크리트 위로 올라갔다.

 그 위에서 힘껏 뛰었다 착지한다. 나이트칙의 무게가 콘크리트를 짓누르자 그 아래로 피가 터져 나왔다. 브라우니의 팔이 펄떡 튀어오르더니 축 늘어졌다.

 나이트칙은 다시 한번 자리에서 점프하여 확인사살했다.


 브라우니7012는 죽는 그 순간까지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쏜 표적지시용 탄환의 신호를 받아야 했던 피닉스들이, 이제 하늘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피닉스056은 추락하고 있었다.

 손을 쓸 틈도 없었다. 빅칙런쳐의 미사일 세례 한 번에 그녀의 팀은 전멸했다. 그녀는 비행모듈이 폭발하기 직전에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다리에 불이 옮겨붙었다.

 낙하산은 무게를 줄인다고 싣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녀들은 다시 땅을 밟을 예정이 없었다.

 중력에 이끌린 몸은 어찌할 도리 없이 지상을 향해 낙하했다.

 구름 아래로 뚫고 나오자 추락하는 다른 피닉스들이 보였다. 몇몇은 허공 속에 온몸이 불타며 발버둥 치고 있었고, 다른 몇몇은 탄약이 유폭하며 사방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딱 예상했던 결말이었다. 각오했던 장면이 그대로 눈앞에 옮겨진 것뿐이다.


 다리에 붙었던 불은 순식간에 몸을 기어오르며 그녀의 차례가 왔음을 알렸다.

 운이 끝났다.

 피닉스는 아쉬운 맘을 뒤로하며 눈을 감았다.


 감으려 했다.

 그러나


 삑-


 기계음과 함께 표적지시신호가 닿았다.

 바이저의 깨진 디스플레이에 레프리콘6002의 것으로 식별되는 표적지시신호가 신경질적으로 깜빡거리고 있었다.

 피닉스 056은 기름에 젖은 하반신이 타오르는 끔찍한 고통속에서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손에 아직 대포가 쥐어져 있고, 장전된 한 발의 탄환이 남아있다는 것을.


 지상에 닿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남았을까.

 기름 먹은 화염은 어느새 그녀의 가슴을 집어삼키고 있다. 관리하느라 애쓰던 초록색 머리카락도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행운아. 네 탓은 안 할게."


 온몸이 불타는 피닉스는 미소를 지었다.


 "이번 한 번만 도와줘."


 쾅!

 피닉스056의 대포가 최후의 빛을 뿜었다.

 발사된 포탄이 맘스베리를 향해 내리꽂혔다.

 바람을 가르며

 건물 사이를 지나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E-32 지지대와 그 앞에 깔려 죽은 브라우니 사이에 떨어진다.


 불기둥이 치솟았다.

 고막을 터뜨릴만한 굉음이 온 도시를 뒤흔들었다.

 맘스베리를 지지하고 있던 기둥들이 연달아 폭발하며 지하상가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이트칙들이 수십 톤의 콘크리트에 파묻혀 사라졌다.

 도로를 걷던 철충들도 땅속으로 침몰했다.

 2차 폭파선에 이어 3차 폭파선까지 폭발하며 후퇴 중이던 스틸라인들도 지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리와 마리를 호송하던 병사들도 무너지는 도로와 함께 가라앉았다.

 도심지 전체에 거대한 먼지구름이 뿜어져 나오며 모래폭풍마냥 시야를 가렸다.


 쿠구구구궁-


 폭발의 여진이 노쇠한 건물들을 위태롭게 흔들어댔다.

 그 사이로 불타는 바이오로이드 하나가 떨어진다. 이미 신원확인도 안 될 정도로 타버렸다.

 저 높은 하늘에서 떨어진 그 유해는 빅칙의 머리 위에 부딪히며 산산조각 났다.

 떨어져나온 팔은 금속뼈대만 남기고 타버린 와중에도 커다란 대포를 꼭 쥐고 있었다.

 빅칙의 발이 그 대포를 짓밟아 뭉개고 지나갔다.


 여전히 건재한 철충본대가 무너진 도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쌓인 콘크리트 잔해는 빅칙이 밀어내고, 밀어낼 수 없는 건 중기관포로 쏴 부쉈다.

 짙은 먼지구름이 시야를 가려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느리지만 묵직한 강철들의 걸음은 여전히 멈출 기미가 없다.



 ............



 "도착했다 지휘관. 우리의 거래도 끝낼 때가 왔군."


 칸의 말에 지휘관이 앙상한 얼굴을 들었다. 쭉 뻗은 도로 끝에 도시가 보였다.

 도시보다는 잔해에 가까웠다. 남아있는 것은 그저 무수히 많은 건물의 뼈대와 땅을 뒤덮은 콘크리트 조각뿐이다.

 호프필드라는 이름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너무도 파멸적인 상황이라 하늘을 뒤덮은 잿빛하늘이 어울릴 지경이다.


 "어째 동네 꼴이 지옥이 따로 없다 야."

 "이럴 줄 몰랐나?"

 "솔직히 더 개판일 줄 알았지."


 지휘관이 실실 웃으며 칸을 내려다본다.


 "복귀할 기름은 충분해?"

 "퀵카멜과 워울프의 것까지 합치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상처는?"

 "제대로 응급처치했으니 걱정 마라."


 지휘관이 뒤따라오는 워울프를 힐끗 쳐다봤다. 워울프가 그의 시선을 눈치채더니 히죽 웃는다.

 칸의 배는 그녀가 감아놓은 붕대로 둘둘 싸여있었다.


 "저 녀석이 한 응급처치를 믿는다고?"


 그의 물음에 칸이 어깨를 으쓱였다.


 "퀵카멜 대위도 거들었으니 마냥 망치지는 않았겠지."

 "태평하구만."

 "너만 할까."


 지휘관이 고개를 돌려 워울프 옆에서 달리는 퀵카멜을 쳐다봤다. 여전히 심기불편해 보이는 그녀의 위에는 레프리콘이 앉아 있었다. 레프리콘은 고민에 빠진 듯한 답답한 표정으로 지휘관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휘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럼 본론으로 가자. 어떤 명령을 내려주기를 원해?"

 "명령?"


 칸이 되물었다. 지휘관이 답답하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나 호프필드로 데려다주면 원하는 명령 내려주기로 했잖아. 그게 거래였고. 아니면 뭘 거래라고 한 거야?"

 "아 그랬었군. 너무 난장판이라 잊을 뻔했다. 난 이 자살작전에서 호드를 탈출시켜주는 게 거래인 줄 알았지."

 "누군들 이렇게 복잡해질 줄 알았겠냐."

 "모두가 네 생각처럼 쉽게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한 마디를 안 지려고 하네."


 지휘관이 툴툴거리며 말을 돌렸다.


 "하여튼 뭔 명령 내려줘? 생각해 놓은 거 있을 거 아냐. 싫으면 말고. 난 아쉬울 거 없으니까."


 칸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곱씹었다.


 "명령이라......."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던 지휘관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또 졸린가?"

 "네가 지루하게 하니까 그렇지. 서로 시간 없는데 뜸 들이지 말자고."


 그러더니 또 한 번 하품하며 눈을 비볐다.


 "내 등에 업힌 동안 네가 몇 번 졸았는지는 알고 있겠지."

 "그래서 말했잖아. 시간이 없다고."


 그는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 담긴 무게는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칸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았다. 그럼, 내가 원하는 명령은-"



 ..........



 호프필드에 도착한 지휘관 일행은 도시 외곽에서 멈춰 섰다.

 칸의 등에서 내려온 지휘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말했다.


 "칸, 현장지휘관으로서 명한다. 귀관은 지금부터 자신이 했어야 했던 일을 해라."


 그러고는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정말 이걸로 되냐?"

 "그래. 제대로 명령받았다. 이걸로 우리의 거래는 완전히 마무리되었군."


 칸이 곧바로 부하들을 향해 고갯짓했다.


 "워울프, 퀵카멜, 쉬지 마라. 바로 출발한다."


 이제 막 쉬려고 새 담배를 꺼내던 워울프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지금 바로?"


 뒤에 있던 퀵카멜이 칸 대신 핀잔을 줬다.


 "지금 바로는 뭔 지금 바로야. 시간이 남아도는 줄 알아?"


 그때 퀵카멜 위에서 레프리콘이 뛰어내렸다. 갑자기 어깨가 가벼워진 퀵카멜이 놀란 눈으로 레프리콘을 쳐다봤다.


 "뭐야? 너는 또 왜 그래?"


 레프리콘이 조금 긴장한 얼굴로 답했다.


 "저는 지휘관님과 함께 갈게요."

 "뭐?"


 퀵카멜이 뭔 소리냐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지휘관도 마찬가지였다.


 "쟤는 또 왜 저래. 칸, 쟤 데리고 빨랑 가."

 "레프리콘, 나는 너를 복귀시킬 의무가 있다. 바로 이동할 준비 해라."


 레프리콘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제 임무는 지휘관님을 호프필드까지 모셔다드리는 겁니다."

 "그래.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 호프필드까지 온 거다. 임무는 끝났어. 복귀하는 것이 너의 새 임무다."


 칸은 얼음 같은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레프리콘 또한 물러나지 않았다.


 "더 가야 합니다. 지휘관님이 가려는 곳까지는 아직 더 가야 해요. 저는 그곳이 어디인지 압니다."


 지휘관이 워울프한테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왜 저래 저 아가씨, 미쳤나봐."

 "그러게 왜 저러지."


 워울프가 맞장구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빤 뒤 고개를 돌려 연기를 뱉고 보니 손에 들려있던 담배가 사라졌다.

 눈이 둥그레진 워울프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새 담배를 물고 있는 지휘관이 보였다.

 워울프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휘관은 태평하게 담배를 뻐끔거리며 레프리콘을 흘겨보았다.


 레프리콘은 그런 그를 향해 물었다.


 "여기서부터 스스로 갈 수 있으신가요? 호프필드에 남아있는 철충과 맞닥뜨리면 어쩔 거죠?"

 "그럼 죽는 거지 뭘. 아가씨가 책임질 건 아닌데."


 지휘관은 여유롭게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레프리콘은 그게 맘에 들지 않았는지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죽으시라고 자매들이 희생한 게 아닙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맞아. 그런데 그게 지금 나랑 같이 가겠다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제 눈으로 보고 싶으니까요."


 레프리콘이 불처럼 뜨거운 눈빛으로 지휘관을 노려본다.


 "무엇이 지휘관님을 여기까지 오게 한 건지-"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는 날카롭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저는 직접 보고 싶어요."

 "별 시답잖은 걸로......"


 지휘관은 고민도 없이 툴툴거리며 칸에게 고갯짓했다. 칸이 레프리콘에게 다가가며 힘을 주어 말했다.


 "네 임무는 끝났다. 마리는 너에게 복귀하라고 명령했다 레프리콘. 따르지 않을 셈인가?"


 마리의 이름을 듣자 레프리콘의 눈빛이 흔들렸다. 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마리는 너를 믿고 보냈다. 실망시키지 마라."


 그러자 레프리콘이 물었다.


 "저 정말 마리대장님께 복귀할 수 있는 건가요?"


 그 말에 칸의 말문이 막혔다. 새 담배를 꺼내려던 워울프도, 그 옆에서 기다리던 퀵카멜도 표정이 굳었다.

 바람처럼 잠깐 스쳐 간 침묵이었지만 레프리콘은 무언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알고 말았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


 지휘관이 가래침을 한 번 뱉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비아냥거린다.


 "환장하겠네."


 칸이 그를 보며 물었다.


 "생각해둔 말 있나?"

 "없다니까. 지가 죽고 싶다는데 뭔 말을 해줘."

 "그래서 죽게 놔둘 건가?"


 지휘관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칸을 흘겨보았다. 칸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칼날 같은 눈빛을 보고 있던 지휘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야윈 손가락이 담배꽁초를 튕겨 바닥에 버렸다.


 "오고 싶으면 와. 아가씨 맘대로 해."


 레프리콘이 표정을 굳히고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칸이 의외라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너와 같이 가면 레프리콘은 죽는다. 알 텐데."

 "뭐 어쩌라고 자기가 그러고 싶다는데."

 "그녀를 안전하게 복귀시킬 방법이 있나?"

 "방법은 얼어 죽을, 내 형편에 뭔 방법이-"


 지휘관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레프리콘의 무거운 표정을 보았다.

 말문이 막혔다.


 몇 번 눈을 깜빡거리던 그는 쓰게 입맛을 다시며 말꼬리를 고쳤다.


 "내가 알아서 할게. 네들은 가. 시간 없다며."


 칸은 더욱더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알아서 한다고?"


 지휘관은 대답 없이 퀵카멜과 워울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뜬금없는 작별인사에 그녀들도 멍하니 손을 흔들었다.

 그다음은 칸을 쳐다본다. 칸은 여전히 대답을 요구하는 표정이었지만 지휘관은 실실 웃기만 했다.


 "잘 가."


 그게 그의 마지막 말.

 그걸 깨달은 칸은 질문을 뒤로 미뤘다. 영원히 오지 않을 저편으로.


 "행운을 빈다 지휘관."


 지휘관은 호프필드를 향해 발을 떼며 답했다.


 "나도 아직 나한테 행운을 빌어."


 지휘관이 망설임 없이 나아가자 레프리콘도 칸을 향해 외쳤다.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프리콘이 지휘관을 쫓아 움직이려다 급하게 멈추고 말을 덧붙였다.


 "스틸라인을 위해 싸워주셔서 고마워요!"


 그리고 힘껏 경례한다. 칸은 그게 낯설었는지 잠시 자세를 고치더니 짧게 경례로 받아주었다.

 손을 내린 칸이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마리의 명령은 남아있다. 살아남는 걸 잊지 마라 레프리콘."

 "호드 자매님들도 몸조심하세요. 퀵카멜 대위님 태워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퀵카멜이 부드럽게 손을 흔들어줬다.


 "몸조심해."


 레프리콘은 기관총을 품에 안고 곧바로 달려나갔다.

 호드의 세 바이오로이드는 레프리콘이 지휘관을 따라잡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지휘관과 레프리콘이 멀어져간다.

 워울프가 은근슬쩍 담배 한 개비를 새로 꺼내 입에 문다.

 퀵카멜이 재촉했다.


 "우리도 가야지 대장."

 "그래."


 칸은 선선히 답하며 워울프를 쳐다보았다.


 "칼 옮기느라 고생했다. 이제 줘라."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워울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의 등을 끌어내리던 커다란 칼날을 재빨리 벗어버렸다.

 칸은 칼날을 받아 자신의 기동장치에 장착하며 말했다.


 "워울프, 호프필드 안을 한번 훑어보고 와라. 퀵카멜은 철충현황을 기록하고."


 퀵카멜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우리 안 가?"


 칼날을 단단히 고정한 칸이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온종일 도망치며 얻어맞기만 했다."


 그녀가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워울프가 엉망으로 감아놓은 붕대 위에 붉은 핏자국이 조금 남아있었다.


 "맞고만 있는 건 성에 안 차서 말이지."

 "대장, 지금 몸상태도 안 좋은-"

 "게다가."


 칸이 퀵카멜의 말을 잘랐다.


 "놈들이 내 부하의 팔을 분질렀다. 화풀이 정도는 하고 싶은데."


 칸의 미소가 날카롭게 벌어진다.

 그걸 본 퀵카멜은 난감하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반면에 옆에 서 있던 워울프는 신나게 쌍권총을 꺼내 든다.



 ..........



 레프리콘은 표정이 탐탁지 않다.

 걷는 내내 지휘관이 술에 취한 것마냥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호프필드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길바닥에 쓰러질 판이다.


 "그런 몸 상태로 혼자 가겠다고 하신 건가요?"


 그녀가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지만 지휘관은 실실 웃기만 했다.


 "그러게 누가 따라오랬나. 너도 몇 주간 잠만 자 봐라. 개조한 몸뚱이 아니었으면 걷지도 못했어."

 "저는 바이오로이드라서 그런 식으로 약해지지는 않아요."

 "그래 너 잘났다."


 지휘관의 대답에 점점 숨이 섞였다. 레프리콘은 주위를 경계하면서도 그의 상태를 눈여겨보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분명 철충이 남아있을 테니까."

 "이제 철충 만나면 그냥 죽는 거라니까 그러네. 뭘 자꾸 어떻게 해보려고 이 아가씨가."

 "죽는다는 말 좀 그만 해요."


 호프필드의 길목은 삭막했다.

 건물은 모조리 무너졌고 거리에는 폐차만 가득했다.

 나도는 것은 먼지 섞인 바람뿐이다. 색칠을 한다면 짙은 회색만이 어울릴 풍경이었다.


 레프리콘은 앞장서서 꼼꼼하게 폐허를 살폈다.

 지휘관이 마냥 헛소리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분대원 없는 그녀가 근거리에서 나이트칙과 맞닥뜨렸을 경우 이길 가능성은 낮다. 빅칙 같은 것과 마주치면 상대할 방법 자체가 없다.


 하지만 그걸 모르고 지휘관을 쫓아온 것은 아니었다.


 털썩

 문득 뒤에서 소리가 났다. 레프리콘은 재빨리 등을 돌리며 총구를 치켜세웠다.


 철충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보이는 것은 쓰러진 지휘관뿐이었다.


 "지휘관님?"


 불러도 대답이 없다. 레프리콘은 서둘러 그를 일으켜 흔들어댔다.


 "지휘관님, 정신 차리세요 지휘관님!"


 그는 전혀 의식이 없었다. 숨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살아는 있다.

 레프리콘은 일주일 동안 보아왔던 지휘관의 모습을 떠올렸다.


 침상 위에 누워 꿈만 꾸던 살아있는 시체.

 어떤 필사적인 부름에도 답해주지 않고

 어떤 처절한 노력도 알아주지 않던

 그녀들에게 남겨진 인간의 마지막 모습.


 휩노스.


 철컥,

 묵직한 쇳소리가 멀찌감치 들려온다. 레프리콘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철컥, 철컥, 철컥-

 분명 철충의 발소리다. 점점 다가오고 있다.


 레프리콘이 초조한 얼굴로 지휘관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의식을 되찾을 기미가 없었다.


 "하여튼 당신은 도움이 안 돼......."


 그녀가 투덜거리는 와중에도

 철컥, 철컥, 철컥-

 쇳소리는 더욱 가까워진다.


 레프리콘은 소리가 다가오는 방향과 잠에 빠진 지휘관을 번갈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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