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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제 분량할당 능력이 미숙한 탓에 이번 편은 상당히 깁니다. 중간에 적당히 끊어 읽으시길 권장합니다.) 



#10



 "나는 가지 않을 걸세."


 그는 창밖으로 불타는 도시를 보았다.

 손에 쥔 고급 와인잔에는 피처럼 붉은 액체가 담겨 있었다.


 알몸에 말끔한 가운만 걸친 여유, 곱게 늙은 외모, 서있는 자세와 와인잔을 드는 방식까지, 모든 것에 기품이 있다. 금으로 금을 깎아 조각한 것 같은 기품이었다.


 발자국과 그림자에서마저 돈이 보이는 모습.

 금은보화로 쌓아 올린 산의 정상에 선 모습.

 너무 높은 곳에 살아서 다른 동물처럼 보이는 그 모습.


 팀장에게 재벌이란 그런 존재였다.


 그는 애수에 젖은 눈동자로 기계들의 침략을 지켜봤다.

 문명은 불타고 비명마저 핏빛 강물 아래 침몰했다.

 구세주의 방주처럼 홀로 살아남은 이 대저택에서도 모든 방향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불과 비명이 사방에서 밀어닥친다.


 '망국의 왕.'

 그는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고는 했다.

 그 늙은 남자는 여전히 이 나라의 주인이었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피하지 않으시면 기회가 없을 겁니다."


 공손히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선 팀장이 진지하게 조언했지만 재벌의 늙은 얼굴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왜 그렇게 집착하는가?"


 그가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둔 채로 물었다. 팀장은 문 옆에 서있던 바닐라에게 눈짓을 주며 답했다.


 "집착이라뇨?"


 신호를 받은 바닐라는 주인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방을 나갔다. 그녀는 지금부터 최대한 빨리 인원을 모아 짐을 챙기라는 지시해야 했다.

 주인의 고집을 꺾는 건 같은 인간인 팀장의 몫이었다.


 재벌이 시선을 돌려 팀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바닐라가 사라졌다는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난 이 나라의 모든 부를 손에 쥐었네. 그다음에는 무능한 정치가들을 몰아냈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나라를 얻었지."

 "그렇습니다."


 팀장은 잽싸게 고개를 끄덕여 말을 받았다. 시간이 없었다. 알렉산드라와 블랙리리스는 이미 한계에 달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과 달리 재벌은 여전히 느긋한 속도로 말을 이었다.


 "난 이 나라의 주인일세. 나라가 죽을 때 나도 죽는 거지. 다른 곳에 무덤을 파지는 않네."

 "놈들에게서 나라를 되찾으려면 일단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다른 인간들을 찾아 연합해서 안전을 확보하고, 그 뒤에 군대를 편성해 놈들을-"

 "되찾을 수 없어."


 단번에 말을 끊은 재벌은 다시 창밖을 응시했다.


 "사람은 모두 죽었고 건물은 전부 불탔는데 무엇을 되찾는단 말인가?"

 "싸울 군대만 마련한다면 어떻게든-"

 "저게 바로 군대야. 지금 우리를 죽이려고 몰려드는 저것들이 군대였단 말이네. 저것들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강한 무기였는데, 무엇으로 맞선단 말인가? 내 가정부들로? 지금 자네가 하고 있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전쟁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날 설득하고 싶은 건가?"


 재벌은 고개를 젓더니 와인잔을 입에 댔다. 그 순간-


 쾅!!


 커다란 굉음이 터지며 창밖이 환해졌다. 저택 동쪽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었다. 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폭발의 원인을 알기도 전에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이 숨통을 조였다.


 아니, 아직 늦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그 어떤 불가능한 상황도 헤쳐나오지 않았던가.

 그와 그녀들이 힘을 합친다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팀장은 의지를 굳히며 침을 삼켰다.

 그런 그의 귓속에 블랙리리스의 통신이 닿았다.


 평소의 거만하고 도도한 태도는 사라진, 당황하여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팀장님, 팀장님, 전기뱀...... 알렉산드라가 자폭했어요! 내 쪽이 뚫려서...... 나 때문에! 자폭했다고요!! 뚫렸어요!! 어서 주인님을 데리고 도망쳐요!! 어서!!


 팀장의 얼굴에 생각이 사라졌다. 그는 곧바로 통신으로 되물었다.


 "야! 지금 어디야 리리스! 대답해!"

 -제가 최대한 버텨볼게요. 아직 저까짓 놈들 몇 마리는 더 데려갈 수 있어요.

 "이 병신새끼야 당장 거기서 튀어!! 누가 죽을 때까지 버티라고 했어!!"


 그가 매섭게 소리쳤지만 블랙리리스는 이미 통신을 끊은 뒤였다.

 팀장이 열이 오른 얼굴로 재벌을 향했다.

 재벌은 시큰둥한 얼굴로 팀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네도 한계인가 보군. 어때, 아직도 희망이 있나?"

 "이런 말 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가셔야 합니다. 방어선이 뚫렸어요."

 "몇 번이나 말하게 하지 말게. 나는 움직이지 않-"

 "지금 당장 가야 한단 말입니다!!"


 팀장이 소리 지르자 재벌의 여유롭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네 지금 내 말을 끊은 건가?"


 팀장은 대답도 안 하고 허리춤의 권총을 꺼내 들었다. 총구가 정확히 재벌의 가슴을 향했다. 자신을 향하는 차가운 쇳덩이를 보고도 재벌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건방지군. 그딴 걸로 내 생각을 바꿀 수는 없어. 죽음이 두려웠다면 애초에 여기 남지 않았겠지."


 그러고는 천천히 와인을 한 모금 음미한다. 팀장이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럼 도대체 저를 부른 이유가 뭡니까?!"

 "해고하려고."

 "네?"


 재벌은 잔으로 팀장을 가리키며 미소지었다.


 "자네는 충분히 역할을 했으니까. 마지막까지 나를 잘 지켜줬지. 뭐 방금은 좀 태도에 문제가 있었지만, 자네가 지금까지 해준 일을 생각하면 충분히 넘어가 줄 수 있네."

 "그럼 이제 제 갈 길 가라는 겁니까? 인제 와서야?"


 팀장은 더욱 열이 올랐다. 재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가 문제인가? 지금까지 계약한 것 이상으로 돈도 지불했잖나. 모자라다는 건 아니겠지."

 "이미 세상이 이 지경이 됐는데 돈은 뭔 돈입니까. 제가 그 휴짓조각 때문에 남아있는 줄 아십니까?"


 재벌은 더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이 손을 흔든다.


 "자네까지 같이 죽으라고 할 정도로 내가 그렇게 막돼먹은 인간은 아니야. 자네는 할 일을 하고도 남았으니 이제 자네가 살아남는 걸 생각하길 바라네."


 -팀장님! 동쪽에서 놈들이 몰려와요! 놈들이-

 -블랙리리스 사망 확인했습니다! 지원이 필요합니다 팀장님! 어서 명령을-


 통신채널 속에 여러 콘스탄챠들의 목소리가 엉켰다. 팀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곧바로 쏠 것처럼 총구를 내밀며 재벌을 압박했다.


 "그럼 혼자서 죽어! 왜 너 죽겠다는 거 지키다가 다 뒤지게 만드냐고!"


 그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재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누가 죽어? 나와 자네 말고 누가 있어서?"


 그가 문득 알아차렸다는 듯이 눈썹을 들었다.


 "자네 혹시 저것들을 살리겠다고 이러는 건가?"


 묻는 도중에 웃음이 섞인다. 그 웃음에 팀장은 더욱 열이 오른다.


 "애완견 하나에도 자식새끼마냥 사랑 쏟고 목숨 거는 세상인데, 사람 모양한 애들 살리자는 게 이상해?"

 "아니,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네가 그러는 게 이상한 거지."


 재벌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물었다.


 "내가 자네를 고용한 건 순전히 자네 능력 때문이지 인성 때문이 아니야. 정부기밀 기업기밀 다 팔고 사람 뒤통수 치는 걸로 밥 벌어먹고 산 자네가 이제와서 이타심이 생겼다고? 그걸로 저승길에 업보청산이라도 할 심산인가?"

 "그 짓거리 안 해도 된다고 해서 너랑 계약한 거잖아!"

 "그래 봐야 자네는 변하지 않아. 희망도 가질 만한 사람이 가져야지."


 -팀장님! 제발 응답해주세요! 못 막겠어요! 어떻게 좀-

 -팀장님! 팀장님! 대답 좀 해주세요!

 -서쪽 방어선 포위당했어요! 구해주러 오실 수 있나요? 안 되면 안 된다고라도......


 통신채널이 점점 시끄러워진다. 너무 많은 목소리가 엉키는 탓에 알아듣기도 힘들 지경이다. 팀장은 총을 치켜세우며 소리쳤다.


 "내가 어떤 새끼든 상관없어! 그딴 말 할 시간에 움직여! 아니면 그 다리를 작살내서라도 끌고 갈 거니까!"


 재벌은 맘대로 해보라는 듯이 두 팔을 벌렸다.


 "자네에겐 내 최후를 망칠 자격이 없어. 이 나라는 나의 것이네. 이 저택도 나의 것이고, 이곳에서 싸우는 모든 것들도 나의 것이네."


 권총을 눈앞에 두고도 그는 한없이 진솔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내가 이룩한 것들과 함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은 것뿐이야. 망해버린 세상에 이 작은 소원마저 막을 셈인가."

 "지랄 마!"

 "저것들도 자발적으로 내 곁에 남은 거라네. 나를 지키다, 나를 위해 죽는 걸 본인들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어. 자네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그게 틀렸다고 말할 건가."

 "그럴 생각도 없어! 저 애들이 뭔 생각하던 내 알 바 아냐! 그냥 네가 움직이기만 하면 끝난다니까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재벌은 완고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가지 않아. 그만하고 돌아가게. 살고 싶은 자네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잖나."


 팀장은 이를 악물더니 통신 채널에 소리쳤다.


 "전부 퇴각! 모든 방어선은 저택으로 퇴각해! 알파를 2번 루트로 호송한다!! 탈출로 확보 개-"

 "나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전한다."


 팀장이 눈을 크게 뜨고 재벌을 쳐다봤다. 재벌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저택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에게 통신을 보냈다.


 "경호팀장의 직위를 해제한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오직 나의 명령만 따라라."

 "무슨 짓이야 이 새끼야."

 "마지막까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쳐라."


 그 순간부터

 뚝 끊긴 듯이 통신채널이 조용해졌다.

 아니, 그에게 닿지 않은 것뿐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

 구해달라는 목소리.

 자신을 포기하라는 목소리.


 수많은 필사적인 목소리가 얽히고 있을 테지만,

 더 이상 접근권한이 없는 팀장이 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재벌은 이제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등을 돌렸다.

 총성과 폭음이 울리는 창밖을 본다.

 한없이 느긋하게 와인을 음미한다.


 팀장은 바보처럼 서서 그의 뒤통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어서 가게."

 "......."

 "저것들은 자네의 것이 아냐. 내 것이지. 자네 맘대로 하고 싶다면 직접 사게나. 자네 돈으로는 안 되겠지만."

 "......."

 "이젠 대답도 안 하는 건가? 어쩔 생각이지? 진짜로 내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데려갈 건가? 그런다고 아무런 권한도 없는 자네 말을 저것들이 들을 것 같나? 도대체 거기 서서 뭘 할 수 있나?"


 재벌은 약간 짜증이 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알았으면 이제 그만 좀 내 눈앞에서-"


 탕!


 총성과 함께 재벌의 이마에 구멍이 뚫린다. 뒤통수가 뻥 뚫리며 방탄창문에 피가 튀었다.

 재벌의 몸뚱이가 스르륵 쓰러졌다. 팀장은 그의 시체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곧 그의 뒤통수에 손을 뻗었다. 터진 뒤통수를 몇 번 헤집으니 전선 몇 개로 이루어진 통신모듈이 나왔다. 팀장은 곧바로 그 통신모듈을 자신의 통신모듈과 연결했다.


 "모두 들어! 알파 다운! 알파 다운! 방어팀 전원 2번 루트로 후퇴해라! 반복한다! 알파 다운! 2번 루트로 후퇴! 씨발 네들 주인 죽었다고! 그만 좀 싸우고 빠지란 말이야!!"


 그는 있는 힘껏 외쳤다.


 그리고

 거기에 돌아온 것은 대답, 이 아니라


 불지옥처럼 메아리치는

 비명소리의 집합이었다.


 팀장은 그 끔찍한 소리에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나 머리에 연결된 통신채널의 소리는 막을 수 없었다.


 들렸다.

 저택에서 싸우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동시에 울부짖는 소리가.

 실성한 듯이 비명을 지르며 현실을 부정하려는 소리가.

 마구 얼굴을 긁어대며 눈물을 흘리는 소리가.


 팀장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방어선이 종잇장처럼 무너지며 AGS들이 밀려들어 왔다. 어디에 바이오로이드들이 있는지, 어디서 싸우고 어디서 퇴각 중인지 구분이 안 된다.


 저택은 함락됐다.


 "정신 차려 이 망할년들아!! 제발 내 말 좀 들으라고!! 제발 내 말 좀 들어 씨발 제발 좀!!"


 팀장은 주저앉으며 절규했다. 마구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비명과 울음에 섞여,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벌컥!!


 급하게 문 여는 소리. 팀장이 뒤돌아보자 문턱에 선 바닐라가 보였다.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팀장은 그제야 구세주를 본 듯이 애원하는 투로 물었다.


 "바닐라! 이동 준비는 어떻게 됐어? 너희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철컥.

 바닐라가 그를 향해 총을 겨눴다.


 팀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옆에 재벌의 시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옷에 피가 튀었다는 것도,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를 악물었다.


 "...... 나중에. 나중에 날 어떻게 하든 좋아. 목매달고 총으로 갈겨도 상관없어. 일단은 네 자매들부터 살리자. 여기서 누구라든 살아나가야 할 거 아냐. 난 그다음에 죽여."

 "......"


 바닐라는 말을 할 표정이 아니었다. 이미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려있다.

 팀장은 무어라 더 말하려다, 포기했다.


 포기했다.


 그는 권총을 바닥에 던지며 자리에 똑바로 섰다.

 입은 다물었다.

 눈도 감았다.


 '희망도 가질 만한 사람이 가져야지'

 흘려버리려 했던 재벌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바닐라가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까지.


 "가세요."


 바닐라의 얼음처럼 서늘한 목소리에 팀장은 눈을 떴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겨누고 있었다.

 적의가 가득 담긴 눈동자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다른 자매들은 팀장님을 살려주지 않을 겁니다. 어서 가세요."


 한껏 억누른 목소리가 억지로 또박또박 말했다. 못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팀장은 말했다.


 "제발 바닐라, 여기서-"

 "가라고요."


 바닐라는 짧게 답하며 총을 내렸다. 그녀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가왔다. 평소의 깐깐하고 날카로운 모습은 없고, 그저 실성한 듯이 휘청거리는 모습만 남았다.


 팀장은 발에 못이 박힌 듯이 움직이질 못했다. 바닐라는 더는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의 옆에 엎드려서, 재벌의 시체를 붙들고 울었다. 그게 그녀의 마지막이라는 듯이, 하염없이 서럽게 울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원망하지 않을 거라며."


 그가 중얼거렸지만 바닐라는 울기만 했다.


 팀장은 그제야 도망쳤다.


 방을 나와 복도를 달리는 동안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구슬프게 울부짖는 소리와 AGS가 벽을 무너뜨리는 소리가 사방에 울린다.


 복도에 기대어 있는 콘스탄챠가 보였다. 팀장이 손을 내밀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미친 듯이 흐느낄 뿐이었다.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무너진 벽 옆에 널브러져 있는 페로가 보였다. 다가가니 상반신밖에 없었다. 팀장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더욱더 가까워졌다.

 팀장은 계속 달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계속 달렸다.


 그러다 식당에 주저앉아 있는 하얀 바이오로이드를 보았다.

 소완. 그 요리 잘하는 바이오로이드.

 팀장은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말을 걸었다.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멍하니 허공을 볼 뿐이었다. 애써 만들었을 음식은 전부 바닥에 흩뿌려둔 채.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팀장은 소완을 놓고 달렸다.

 갈 곳도 모르고 목적도 모르고

 그렇게 달리다


 급하게 되돌아 왔다.


 소완을 등에 업었다.


 그는 달렸다.

 계속 달렸다.


 네들이 싫어.


 네들이 싫어 이 멍청한 노예년들아.


 난 네들이 싫어.


 온갖 욕을 지껄이며 달렸다.

 자꾸만 눈물이 나와 앞이 안 보였다.



 ...........



 철컥.

 철충의 발소리.


 지휘관은 눈을 떴다.

 그는 전에 창고인 듯 했던 폐허의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앉아 있었다.


 철컥.

 또 철충의 발소리가 들린다.


 지휘관의 흐린 눈이 정면을 응시했다.

 허리 높이의 벽 너머로 나이트칙의 윗부분이 보였다.

 10m도 되지 않을 거리였다.


 나이트칙은 아직 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시일 뿐, 이 자비 없는 살인기계는 곧 그를 발견할 것이다.


 지휘관은 졸린 눈을 깜빡이며 팔을 움직였다. 덜덜 떨리는 손이 허리춤의 권총을 꺼냈다.

 팔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권총을 들어 자신의 턱으로 가져갔다.


 총구가 턱 밑에 닿는다.


 철컥.

 철충의 발소리.


 지휘관은 눈을 감으며 숨을 내쉬었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자기 머리를 겨누고


 머리를 겨누고


 잠시


 그렇게 있다가


 총을 내렸다.


 흐릿하던 눈동자에 일순간 날카로운 빛이 감돈다.


 그는 무거운 팔을 부들부들 들어 올려

 권총으로 나이트칙을 겨눴다.


 철컥.

 철충의 발소리.

 나이트칙이 몸을 돌렸다.

 지휘관을 발견한다.


 타다다당!!

 매서운 총소리와 함께 황금빛 예광탄이 나이트칙을 꿰뚫었다.

 나이트칙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쓰러지자 측면에서 레프리콘이 나타났다.

 달려온 레프리콘은 쓰러진 나이트칙에 다시 한번 총알을 쏟아넣었다.


 나이트칙이 완전히 정지했다.


 레프리콘이 고개를 돌려 지휘관을 보았다.

 지휘관은 그제야 권총을 내리며 실없이 웃었다.


 "그런 걸로는 흠집도 못 낸다면서요."


 레프리콘이 비아냥거렸지만 지휘관은 계속 웃고만 있었다. 그런 그를 이상하게 보던 레프리콘이 말했다.


 "세이프하우스 찾았어요. 예상대로 완전히 무너졌지만...... 그리고 뒤쫓아온 철충무리도 보여요. 15분도 안 돼서 도착할 거예요."


 그녀는 확신했다.


 "그래도 갈 거죠?"


 지휘관은 그저 계속 웃으며 답했다.


 "갈 수 있으면 가는 거지."

 "그냥 죽게 둘 걸 그랬네요."


 차갑게 내뱉은 레프리콘은 나이트칙의 몸뚱이를 발로 밀어 차고 지휘관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지휘관이 실실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레프리콘은 가볍게 그를 일으켜 세웠다.


 "총소리를 들었으니 곧 이쪽으로 몰려들 거예요. 빨리 움직이죠."


 타다다다당!!

 갑자기 총소리가 울려 퍼진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레프리콘과 지휘관의 시선이 총소리가 난 방향으로 향했다.


 "벌레들 거 소리가 아닌데....... 여기도 살아있는 애가 있어?"

 "몇 분 전부터 계속 들리는 총소리예요. 여기 남은 자매는 없을 텐데........ 어쨌든 뭐라도 주의를 끌어주는 사이에 어서 움직여야 해요."


 타다다다당!

 총소리는 멀찌감치 계속 울려댄다.


 "기어나와 겁쟁이들아! 어디 면상 좀 보자!"


 지휘관과 약 1km 떨어진 도심지, 워울프가 도로를 달리며 허공에 총을 갈기고 있다. 두 자동권총이 목표물도 없이 신나게 불을 뿜는다. 기동장치의 구동음도 평소보다 미쳐 날뛴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바퀴가 관광이라도 하는 것마냥 거리를 순회하며 극심한 소음을 터뜨리고 다녔다.


 타다다다다당!!

 축제의 폭죽처럼 요란한 총성에 호프필드의 철충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건물들을 뒤지던 나이트칙 몇 기, 도로 위로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빅칙이 하나.


 워울프의 뒤를 따라다니던 퀵카멜이 인상을 쓰며 궁시렁거렸다.


 "안 그래도 인간 쫓아서 다 몰려들고 있을 텐데 우리가 왜 이런 산 미끼까지 해야-"

 "응? 낙타 대위 뭐라고?"

 "아냐. 넌 하던 거나 마저 해."


 유후~ 워울프가 신이 나서 권총을 갈긴다. 그 소리에 끌린 나이트칙 몇 기가 더 나타났다.

 흥이 잔뜩 오른 워울프가 나이트칙 하나를 향해 인사하듯이 총구를 돌렸다.

 퀵카멜의 눈이 둥그레진다.


 탕! 총성과 함께 나이트칙의 외피에 권총탄이 박혔다.


 주변에 나타났던 철충들이 동시에 붉은 빛을 발하며 그녀들을 향했다.


 "아."


 바보 같은 한 마디와 함께 워울프가 방아쇠를 놓았다. 급가속한 퀵카멜이 그녀의 등을 밀며 소리쳤다.


 "이 멍청아!"

 "나도 모르게 그만."

 "닥치고 달려!"


 나이트칙들이 워울프와 퀵카멜을 쫓아 도로로 뛰쳐나왔다. 부리나케 도망치는 그녀들을 향해 마구 총을 쏘아댄다.

 빅칙이 쏜 탄이 맹렬한 기세로 벽을 부수자 짙은 먼지구름이 터져나왔다. 퀵카멜과 워울프는 먼지 속을 달리며 정신없이 회피기동을 했다. 총탄의 궤적이 먼지를 뚫는 게 보일 정도로 탄이 쏟아졌다.

 워울프가 만들던 소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폐허가 시끄러워진다.


 "진정해 낙타대위, 어쨌든 대장이 말한 대로 했잖아?"

 "시선만 끌랬지 누가 총알 박고 줄줄이 소세지로 따라오게 만들랬어!"

 "그게 그거 아냐?"

 "말이나 못 하면!"


 그렇게 총알비 속에서 그녀들이 투닥거릴 때에,


 그녀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너무 빨라서 보이지 않았다.

 먼지구름이 칼로 도려낸 듯이 갈라진 흔적만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호드의 두 바이오로이드는 그 희미한 기척을 간신히 인지할 수 있다.

 그녀들이 뒤를 보자마자 칸의 통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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