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뽀끄루와 봉봉 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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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도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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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오르카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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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령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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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플레이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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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꾸었다.


그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꿈.


그가 나의 손을 잡아, 나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준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사랑스러운 것은 그가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아 주기 때문이리라. 그와 마주보는 매 순간이 행복에 가득 찬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바라온 순간이기에,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만다.


참 우습다. 항상 꿈꿔왔기에,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만다.


메이가 눈을 뜬다. 푸른 달빛이 작은 창문으로 비쳐들어온다.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뺨에 작은 눈물 한 방울이 흐른다. 사랑하는 그를 만나는 꿈은, 그가 나를 사랑해주는 꿈은 햇살처럼 부드러웠고, 가시처럼 아팠고, 바람처럼 달콤했고, 그렇기에 고통스러웠다.


꿈의 매 순간이 사랑스러웠고, 그것이 꿈이기에 가슴 아팠고, 그럼에도 깨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달콤했고, 그렇기에 깨어날 때마다 단장의 고통을 느꼈다.


이제는 이 꿈이 행복한 꿈인지, 악몽인지 스스로도 모르겠다.


꿈이라는 것은 어찌도 이리 잔혹한 것일까.


오늘도 서글픈 메이의 울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진다.



*

끈적한 빛이 방을 느긋하게 밝혔다.


사령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옆에 누운 아스널이 그의 가슴에 몸을 파묻었다. 탁한 전등이 그녀의 새하얀 나신을 비추었다.


“나날이 좋아지는군, 사령관.”


“오늘은 정말 그냥 쉬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럼에도 거절하지 않지. 그런 그대를 사랑하고 있다.”


개구쟁이처럼 웃은 아스널이 손가락으로 사령관의 가슴을 쓸었다.


“그러니 오늘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겠나?”


“…알잖아.”


“후후. 그래. 그리 대답할 줄 알았다.”



*

매서운 계절이 찾아왔다.


겨울은 제 주제를 모르고 성큼 찾아들었다.


현재 오르카 호는 오호츠크 해의 어느 이름 모를 육지에 정박했다. 오메가가 점령하고 있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정보를 위해 탐지에 걸리지 않을 한계까지 들어가 탐색을 진행했다. 탐색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별의 아이를 만나 도망쳤고, 그나마 수심이 얕은 오호츠크 해에서 간신히 별의 아이를 뿌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별의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수심 깊은 곳에서 우리를 기다렸고, 결국 우리는 러시아의 어느 섬에 정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추운 겨울에 러시아에 머무르게 된 것이 내 인생의 실수다.


“끄으으…”


기지개를 켜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새하얀 설원이 어디까지고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도 하얗고 하얘서, 하늘과 땅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창 밖으로 눈을 헤치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추운 겨울에.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현재 이 섬은 철충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륙 가까이 별의 아이가 접근해 해안가의 철충들이 전부 철수했을 테니 대륙으로 넘어가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지금은 단지 계획 뿐이지만.


아무튼 철충의 위협도 없고 별의 아이가 깊은 해역에서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어 오르카 호는 의도치 않게 휴가를 맞게 되었다.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은 이 때를 틈타 휴가를 즐길 생각인지 맹렬하게 놀기 시작했다. 워울프는 발키리와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을 끌고 스키를 타러 갔고, 스틸라인은 눈싸움을 계획하고 있는 듯 했다. 하치코와 케르베로스, 펜리르는 눈을 보고 텐션이 미친듯이 상승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겨울을 싫어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은 난로 앞에 틀어박혔다. 지금도 창 밖으로 LRL과 알비스, 드라큐리나가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드라큐리나 녀석. 몸도 약한데 괜찮으려나.


삐삐삐삐.


“닥터?”


책상 위의 단말기가 신호를 울렸다. 버튼을 눌러보니 닥터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야호! 오빠 지금 뭐해?]


“뭐하겠냐, 서류 작성 중이지. 보급이 얼마 남았는지 체크하고 부족하면 산 너머 공장에 물자를 수색하러 보낼 생각인데.”


[그건 상관 없는데 지금 작은 문제가 생겼거든?]


“언제는 문제가 없었던 적도 있었나? 저번 달 네 장난의 사후처리 때문에 내 방에 온 서류가 두 장이 넘는데 위에서부터 한번 쭉 읊어보자면…”


[아이 참! 사람이 참 째째하네! 흠흠! 아무튼 지금 이 섬에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섬? 우리가 문제가 아니라 섬이 문제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여기 눈 성분을 분석해 봤는데 멜퓌스 바이러스… 라고 말해도 모르려나. 어쨌든 바이오로이드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어. 옛날에 사라진 바이러스인데 왜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네. 뭐, 치명적인 바이러스라고 해도 열이 조금 나는 정도지만. 게다가 평범한 바이오로이드의 면역력이라면 걸릴 걱정도 없고.]


“그럼 뭐가 문제인데?”


[몸 약한 바이오로이드들은 조심하라는 소리야. 나 같이 평범한 인간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가진 바이오로이드라면 충분히 걸릴 수 있으니까. 설마 LRL이라던가 신나게 밖에서 눈싸움이라던가 하고 있는거 아니지? 나는 다시 연구로 돌아갈 테니까 고생해, 오빠~.]


툭 하고 닥터의 연락이 끊어졌다. 느닷없는 폭탄선고에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콘스탄챠를 호출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콘스탄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주인님. 무슨 일이신가요?]


“저기 밖에서 놀고 있는 것들 당장 데려와.”



*

눈사람을 만들고 있던 세 명을 바이오로이드들을 불러와 정밀 검사를 했다. 이 이름도 복잡한 바이러스의 잠복기간은 사흘 정도. 그렇다면 애들을 사흘 동안 방에 가두어 두어야 하나?


“잠복기간에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


세상 참 좋아졌다.


아무튼 그렇게 검사한 결과 LRL과 알비스는 음성, 드라큐리나는 양성이 나왔고 두 시간 뒤 증상이 나타났다.


“39도.”


“고열이잖아.”


“바이오로이드한테는 미열이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걸린 사람이 드라큐리나 언니라서. 증상 발현도 지나치게 빨라. 이게 바이러스가 변이한건지 드라큐리나 언니 몸이 지나치게 약한건지 모르겠네. 멜퓌스 바이러스는 옛날에 사라져서 기록이 부족하고, 오르카 호에 드라큐리나 언니는 한 명 뿐이니까. 엘라는 밖에 안나갔지?”


“방에서 귤 까먹고 있을거야. 그 멜퓌스 바이러스의 증상이 뭐야?”


닥터가 펜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했다.


“멜퓌스 바이러스는 바이오로이드 체내의 오리진 더스트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해. 그러면 바이오로이드의 신체 능력이 약해지지. 바이오로이드는 인체가 오리진 더스트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오리진 더스트의 활동력이 떨어진 바이오로이드들은 신체 리듬이 깨지고 육체 능력이 떨어져. 그려면 면역계통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사상하부의 뇌하수체에서 스스로의 체온 목표치를 향상시키지. 그러면서 나타나는 증세가 미열에서 고열, 근육통, 오한, 식욕 감퇴, 두통, 기침, 구토…”


“감기 몸살이네?”


“그런거지.”


멜퓌스 바이러스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길래 심각한 바이러스인 줄 알았는데 감기 몸살이라니.


“그래서, 그 멜퓌스 바이러스라는건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예전 전쟁이 한창 심했을 당시에 바이오로이드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바이러스, 생화학 병기야.”


“생화학 병기? 그런게 위험하지 않을 리 없잖아.”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당초 목표는 바이오로이드 체내의 오리진 더스트 수치를 강제로 떨어트려 바이오로이드들을 행동 불능으로 만드는 것이었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지.”


“문제?”


“그 당시 군인이면 인간도 오리진 더스트 강화 수술을 받았거든. 근데 바이러스가 인간만 쏙 빼놓고 공격하겠어? 멜퓌스 바이러스가 한번 터지면 전장에 온갖 인간과 바이오로이드가 거품을 물면서 뒹굴었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전부 다.”


“피아 식별 안되는 병기는 쓸모가 없는데. 개량을 했겠군. 체내 오리진 더스트의 수치를 감소시키는 바이러스면 인간보다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더 치명적이겠지. 그래서 멜퓌스 바이러스를 인간을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개량을 한건가.”


“나는 가끔 오빠가 그렇게 똑똑한 소리를 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


“하지만 막상 인간이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열화시키니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몸살 비슷한 증상만 이끌어 내게 된건가. 원본을 쓰자니 피아 식별이 안되고 열화판은 효과도 낮고 잠복기까지 생겨버리고. 어느 쪽이건 들인 예산에 비해 큰 효과를 보지 못하니 높으신 양반들은 바이러스를 만드느니 바이오로이드를 더 찍어내 전쟁터에 내보내는게 효율적이라 생각했겠지. 그렇게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져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거군. 산하 바이오로이드들의 인권이 아니라 경비가 더 싸다는 이유로 없애다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쓰레기 같은데 설마 정답은 아니겠지?”


“…100점 만점에 100점이야. 방금 공부라도 해온게 아닌가 싶은데.” 


“아니길 바랬어. 그래서 지금 밖에 그 열화된 멜퓌스 바이러스가 널려있다고?”


“아니길 바랬어.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지 모르겠네. 철충이 깔아놨을 리 없잖아.”


“정말로 그냥 툭 튀어나온 거라고? 어이구야, 돌겠네.”


“여하튼,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구. 이 멜퓌스 바이러스가 무서운 점은 감기 몸살이 아니라 합병증이지. 면역력이 약해지니까 병이 잘 걸리거든. 어쨌든 절대안정! 몸 약할 때는 뭐든 안좋으니까. 곧 세띠 언니가 드라큐리나 언니 간호하러 올거야. 오빠는 세띠 언니가 올 때까지 잠깐 언니를 돌봐줘~.”


그렇게 말한 닥터는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손을 뻗어 드라큐리나의 이마에 손을 얹자 그녀가 가는 신음을 내뱉었다.


“인간… 손… 차가워…”


“네가 뜨거운거지.”


“기분 좋아…”


드라큐리나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배실배실 웃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얌전하면 얼마나 좋아?


드라큐리나의 땀을 닦아주고 물수건을 갈아주고 있자니 세띠가 방으로 들어왔다.


“좋아, 드라큐리나. 간병의 프로가 왔다.”


“…사령관님. 저는 멸종위기동물 구호용 바이오로이드라는거 알고 계시죠?”


“그래도 적어도 나보다는 낫겠지.”


“그렇겠죠.”


“거기는 조금 부정해 줬으면 좋겠다만.”



*

백야처럼 세상을 밝히던 태양이 설원 너머로 가라앉고 밤이 찾아왔다.


“그래서, 치료제 제작은 언제 끝나는거냐?”


[음? 이건 치료제 못 만들어.]


“엉?”


천하의 닥터가 불가능하다는 소리를 한다니, 이건 또 무슨 경우야?


[애초에 멜퓌스 바이러스는 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냐. 멜퓌스 바이러스는 바이오로이드 체내에 침입해서 오리진 더스트를 낮추고 깔끔하게 사멸해버려. 그냥 진짜 오리진 더스트 수치를 낮추기만 하고 사라진다고. 몸살은 멜퓌스 바이러스의 부산물 같은 것이지.]


“과연. 열이 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소리군.”


[그렇지. 그리고 몸살은 약이 없으니까.]


“백신은?”


[과거에도 백신은 제작하지 않았어. 만들기 전에 바이러스 자체를 폐기했거든. 처음부터 내가 다 제작하는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아마 우리가 여기를 떠나는게 더 빠를거야. 과거에 제작했던 기록만 있었어도 금방 만들 수 있을텐데…. 그럴 리 없더라고.]


“하긴. 백신 만드는 것보다 새로운 바이오로이드를 사는게 싸다고 생각하는 족속들인데.”


[아무튼. 멜퓌스 바이러스 열화판은 그리 위험한 바이러스는 아니니까. 감소한 오리진 더스트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돌아와. 영양제 먹고 잠이나 푹 자면 돼. 바이러스가 빨리 사멸해서 바이오로이드 사이에서 퍼지지도 않아서 감염 걱정도 없어. 건강한 바이오로이드는 애초에 걸리지를 않고. 몸 약한 바이오로이드는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말하고, 병에 걸린 바이오로이드들은 약 먹고 격리시키고, 뭐 나머지는 밖에서 눈싸움이라도 하면 되겠지.]


“거 참 태평하시네.”


[안되는걸 골머리 싸매고 고민해도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잖아. 별의 아이는 어떻게 됐어?]


“드론을 보냈어. 수색이 끝나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할 테니 당분간 여기에 머물겠지.”


[그렇다면 내 일은 이제 끝났네. 이 닥터는 당분간 휴가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오빠도 일 쉬엄쉬엄 해. 모처럼 휴가가 생겼는데 너무 일에 묻혀 살면 보기 안좋다고?]


장난스레 웃어보인 닥터가 작게 혀를 내밀고 사라졌다. 


사령관이 한숨을 내쉬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서쪽 하늘을 불태우며 사라지고 노을빛이 설원을 불태웠다. 저 멀리 스키를 타고 돌아오는 워울프 무리의 모습이 보였다. 다들 쉰다고 나도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이 일할 때도, 놀 때도 바쁜 것이 사령관이라는 직책이겠지. 적어도 오늘 잠들기 전까지는 일거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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