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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프리콘."

 "왜요."

 "이거 괜찮슴까?"


 브라우니가 입간판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레프리콘이 어깨를 으쓱이며 되물었다.


 "너는 아까부터 뭐 그리 불만이 많아요. 또 뭐가 문제인데요."

 "아니, 가게 이름이 브라리콘이라니, 아무리 봐도 이상하지 말임다."


 레프리콘은 태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이상한데요. 브라우니의 브라, 레프리콘의 리콘, 절반씩 땄잖아요."

 "굳이 꼭 그렇게 딸 필요는......."

 "그럼 순서 바꿔서 레프우니 할래요?"

 "눈이 반쪽이라 센스도 반쪽나신 검까."


 심기가 불편할 법도 한 말이었지만 레프리콘은 피식 웃기만 했다.

 그녀의 붉은 단발머리를 대각선으로 감싼 고글이 안대처럼 오른눈을 감싸고 있었다.

 그 아래로 길게 뿌리내린 상처가 오른쪽 얼굴 전체를 조각내놓았다.


 척봐도 흉측해보이는 인상이지만 넉살좋은 미소만큼은 푸근하다.


 "불평은 그만하고 머리나 좀 감아요. 슬슬 감을 때 됐잖아요."


 레프리콘의 지적에 브라우니가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옆머리가 윤기로 번들거린다. 단 한 번 만졌을 뿐인데 기름기가 손에 잔뜩 묻어나온다.

 온몸을 두텁게 감싼 누더기 같은 옷에서도 누린내가 날 것이 분명하다.


 그걸 뻔히 알고도 브라우니는 애처럼 칭얼거리며 귀찮은 기색을 드러냈다.


 "얼마 전에 감았잖슴까. 물도 아껴야 하는데."

 "일주일 전에 감고 안 감았잖아요. 물은 내 거 줄 테니까 잔말 말고 감고 와요. 몸도 좀 닦고."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 손님 본답시고 이렇게 단장할 필요 있슴까?"

 "혹시나 손님이 왔는데 우리들이 꼬질꼬질한 모습인 거 보다 낫잖아요."


 레프리콘은 또 싱긋 웃는다. 어쩜 그리도 긍정적으로 웃는지 태양처럼 보일 정도다.

 브라우니는 햇빛에 정화되는 흡혈귀마냥 질색하더니 결국 물통을 챙겨 폐가로 향했다.

 떠나는 브라우니를 향해 레프리콘이 소리친다.


 "씻기 전에 주위에 칙 처리하는 거 잊지 마요!"

 "알겠슴다~"


 브라우니가 멀어지자 레프리콘이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담배였다.


 "저거, 30년 전만해도 더 귀염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실실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더니 능숙하게 성냥불을 켰다.

 담배에 불이 붙고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녀의 하나 남은 눈동자가 리어카 안을 훑어보았다.


 "충분하겠죠."


 손가락이 리어카 안의 식재료를 일일이 하나씩 집어가며 수를 셌다.


 "스팸, 있고. 비스킷, 있고. 사탕 두 봉지. 스위트콘, 과일 통조림 있고......... 비장의 누텔라, 잘 있네요."


 레프리콘이 안심한 듯이 담배연기를 뿜었다. 그녀는 곧바로 두터운 담요를 덮어 리어카를 가렸다.

 리어카 앞에는 주위에 버려진 널빤지를 모아 만든 간판이 서있다.

 어눌한 글씨로 '브라리콘 포장마차'라고 쓰여있다. 앞에 조그맣게 세워둔 입간판에도 똑같이 쓰여있다.

 그 아래 놓인 건 굴러다니던 박스를 모아 만든 위태로운 테이블이 전부였다.


 그게 그녀들이 가게라고 말한 것의 실체였다.

 그 조잡한 구성물이 폐허가 된 항구에 덩그라니 서있다.


 그 외에는 오직 먼지와 적막뿐.


 그러나 비굴한 기색도, 위태로운 몸짓도 없다.

 레프리콘은 느긋하게 담배를 빨며 하늘을 보았다.

 파랗게 개인 하늘에 햇빛이 자애롭게 빛난다.


 어쩜 이리도 평온한지.


 탕!!


 한 발의 날카로운 총성이 울려퍼진다.

 레프리콘은 마침 잘 됐다는 듯이 브라우니가 떠난 방향을 향해 소리쳤다.


 "뭔 칙이에요?"

 "나이트임다!"

 "올 때 다리 한 쪽만 떼어 와요! 불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에이...... 알겠슴다!"


 브라우니는 영 귀찮다는 투였지만 레프리콘은 여전히 웃고만 있었다.

 그녀의 느긋한 시선이 항구의 폐허를 지나쳐 바다로 향했다.


 간만에 밝은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바다였다.

 그 한 가운데에 거대한 배가 한 척 떠있었다. 배라기보다는 요새에 가까운 크기였다. 물고기처럼 유선형으로 빠진 부드러운 윤곽을 보니 잠수함이 틀림없었다.

 엄청나게 큰 잠수함.


 "오르카........ 그럴싸하네요."


 그녀가 중얼거리며 담배연기를 뱉으려는 찰나, 브라우니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불렀다.


 "레프리콘!"

 "왜요?"

 "또 담배피는 거 아님까?!"

 "그럴 리가요! 어서 씻기나 해요!"

 "진짜지 말임다? 또 걸리면 진짜 다 엎어버릴 거지 말임다!"

 "하하하!"


 레프리콘은 크게 웃더니 문득 입을 가렸다. 거센 기침에 어깨가 들썩였다. 레프리콘은 기침소리를 숨기려 세게 입을 막았다.

 기침은 목구멍을 한참 동안 할퀴고 나서야 멎었다.


 레프리콘은 천천히 입에서 손을 뗐다. 손바닥에 검붉은 핏방울이 묻어있었다.


 잠시 멈춰있던 그녀는 곧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나 이미 필터까지 거의 다 타들어가 있다.


 "몇 개비 안 남았는데."


 그녀는 한숨 쉬듯이 담배를 뱉고는 지근지근 밟아 리어카 아래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날렵하게 향수를 뿌려 담배향을 지울 찰나, 브라우니가 폐가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젖은 갈색머리카락이 미역처럼 늘어져있었다. 품에는 큼직한 철충 다리 하나가 안겨있다.


 레프리콘은 태연하게 향수병을 숨기며 물었다.


 "뭘 그렇게 금방 씻어요?"

 "씻을래도 뭐가 있어야 씻지 말임다. 그래도 나름 벅벅 닦았슴다."


 브라우니가 철충 다리를 바닥에 대충 던져놓더니 너덜너덜한 셔츠를 위로 말아올리며 속살을 보여주었다. 군살 없는 배부터 비교적 풍성한 젖가슴까지, 충분했다. 털관리까지는 사치일 테니.

 레프리콘은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요. 굳이 안 보여줘도 돼요. 감기 걸리지 말고 제대로 입어요."


 브라우니는 셔츠를 내리더니 갑자기 코를 킁킁거렸다.


 "무슨 냄새 나지 않슴까?"

 "아. 향수 뿌렸어요. 냄새 날까봐. 저도 요새 별로 못 씼었으니까요."

 "또 담배 태운 거 아님까?!"


 브라우니가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그 다람쥐 같은 얼굴을 보고도 레프리콘은 여전히 태연했다.


 "에이, 아니라니까요. 너 요새 너무 의심이 많아요."

 "촉이 오는데 말임다!"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어서 그 다리나 들고 와요."


 브라우니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레프리콘을 흘겨보더니 결국 표정을 풀었다. 그녀가 철충 다리를 집어들고 오며 바다를 보았다.


 "저거 오르카인가 뭔가에서 정말 자매들이 올 것 같슴까?"

 "오겠죠. 방금 네가 총 쐈잖아요. 총소리가 났는데 확인 안 하고 넘어갈 수 있나요? 무려 최후의 인간씩이나 되는 게 타고 있다는데."

 "우르르 몰려와서 우리도 병력으로 편입해버리면 어떡함까."


 근심걱정이 가득한 브라우니의 눈동자를 보며 레프리콘은 또 피식 웃는다.


 "걱정 마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든 탈출시켜 줄 테니까. 그보다는 우르르 몰려올 자매들 입맛을 어떻게 뿅 가게 해줄지나 생각해보죠."

 "아. 먹여줄 때 내 맛집탐방기도 꽂아주는 거 잊지 말지 말임다. 어제 잠도 안 자고 옮겨 써놓았슴다."

 "그걸 여태 쓰고 있었어요? 난 또 종일 부스럭거리고 있길래 자위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레프리콘이 문득 눈에 힘을 주었다.

 오르카에서 검은 점 몇 개가 떠올랐다. 분명 정찰에 나선 바이오로이드이리라.


 "음, 그런데 확실히 너무 많으면 재료가 모자라니 인원제한은 있어야겠는데요."


 그녀가 리어카 구석에서 조그만 화이트보드를 꺼냈다.


 "10명 정도가 적당할까요?"

 "너무 많지 않슴까? 거덜날 것 같지 말임다."

 "그래도 이렇게 손님이 많을 기회가 언제 있겠어요. 운 좋아야 10년에 두 명이었는데. 이번에는 우리의 맛을 알아주는 자매들이 있을 거예요 분명."

 "솔직히 저 배에 정상적인 요리사 자매 하나만 있어도 우리는-"

 "쉿, 닥치세요 브라우니. 요리는 자신감이 중요한 거에요."


 브라우니는 영 못 미더운 눈치다.

 그래도 레프리콘은 활짝 웃는다.


 "자 그럼, 어디 손님을 모집해봐요. 재미있어 보이는 자매로 열 명 뽑아보죠."

 "근데 우리 가게이름 진짜 브라리콘으로 계속 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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