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창작물검색용 채널

칸이 돌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칸 만이 '포획' 당했다.

사령관이 두 리리스에게 명령한지 일주일도 채 되지않아 그들의 비밀스러운 계획 하나가 무너졌다.

아니, 사실 그에게는 무너뜨릴 계획이 그 것 뿐이었다. 그들의 작당모의와 자잘한 것들 따위 무엇이 됐든 이 사령관에게 있어선 그저 재밌는 유희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의 손 위에서 굴러갔고 작은 낌새까지 모두 그의 시야 안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알아채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것 만큼은 지키고자 그의 부름에만 응하는 것 이상으로, 먼저 그에게 더더욱 매달리듯 달라붙었다.


"이제야 다들 모였으니 샬럿, 당신도 내일의 연회를 준비하세요. 드레스코드는 꼭 지키도록 해요."


셔츠의 마지막 단추를 채우고 그가 말했다. 아직 몸에 남아있는 거친 여운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비부에는 저릿하고 오싹한 쾌감이 아닌 불쾌한 통증이 맴돌았다. 그리고 너무나 추하게도, 그 통증 마저 기쁘다는 듯 반응하는 고간은 여전히 점액을 한껏 뿜어내고 있는 중이었기에, 그 끈적한 거북함에 못이겨 몸을 말아 웅크렸다.

이전과 같은 달콤한 동침은 더 이상 없었다. 결합부와 좀 더 깊숙한 곳을 부드럽게 밀어올려주는 다정한 움직임은 사냥감을 다루는 듯한 무자비한 일방통행으로 변했고 몸을 섞는 내내 항상 귓가에 속삭여주던 달콤한 말들은 어딘가로 날아가 자취를 감췄다.

그가 나를 그 장소로 데려갔던 날 부터, 본색을 드러냈던 날 부터 난 그의 하반신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고고하고 기품있는 총사대장은 그 날 죽었다.


울고 싶은데 이상하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고개를 베개에 쳐박고 흐느끼는 꼴이 또 다시 우스워 나는 쥐구멍에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으로 애꿎은 침대보를 움켜쥐었다. 

또 정말 우습게도, C구역에서 복귀하고 나갔던 넋이 다시 돌아오게 된 계기는 그와의 동침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나는 그에게 있어, 나만큼은 특별하다 착각했고 다시 그 품에 안긴 채 비집고 들어온 그의 성기가 그 모든 걸 잊게 해주고 혹시 위로라도 해주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 더럽고 이기적인 기대는 물론, 더러운 몸뚱이에 걸맞은 짐승같은 성교에 의해 완전히 박살이 났지만 그렇다고 뒤늦게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고통뿐인 성교 마저도 머리를 제외한 내 몸 만큼은 기쁘다는 듯이 받아들였기에 도망칠 장소와 방법이 있었더라도 되돌아온 맨정신으로는 감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연회라니, 어떻게 이 추한 몸뚱아리를 모두의 눈 앞에 내비칠 수 있을까. 어떻게 감히 치장을 하고 모두의 앞에 나설 수 있을까.


머리를 죄어오는 괴로움에 못이겨 나는 찢어진 채 나뒹구는 옷에 기어가 다급히 주머니를 뒤져 손바닥 크기의 하얀 플라스틱 통을 꺼냈다. 

통의 뚜껑을 열고 그대로 입에 양껏 털어넣는다. 뒤늦게 다프네의 주의사항을 떠올렸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당장 잠들기를 바랐다. 되도록이면 영원히 잠들기를 바랐다.

그러나 쓸데없이 튼튼한 이 추하고 더러운 몸뚱아리는 언제나 그 것을 허락하는 일이 없었다.











――――――――――――――――――――――――――――――――――――――――――――――――――








아침 일찍부터 들어선 함교의 분위기는 내가 예상한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직사각형의 커다란 테이블이 함교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다의 푸른 빛을 받으며 함교의 정중앙에 위치 한 채, 새하얀 테이블보 위로 정갈하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나열된 냅킨과 윤이나는 은색 나이프와 포크들이 멀지만 익숙한 과거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


C구역을 겪고 온 내게 있어서 '연회'란 비정상적이고 불길하기 그지 없는 것들을 연상케 했지만, 의외로 멋지게 구색을 갖춘 눈 앞의 풍경에 나는 조금 안도하여 가벼운 한숨을 흘렸다. 분주한 기색없이 하루 아침에 이런 것이 함교에 들어선 것이 놀라웠지만 그 놀라움은 테이블을 막 지나쳐 함교를 나서는 그녀의 얼굴을 통해 납득할 만한 것으로 바뀌었다.


"…소완. 아니…당신은…"


내가 아는 소완이 아닌, 그의 소완이다.

내가 알고있는 소완은 C구역에서 돌아오고 내가 제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 그 행적이 묘연해졌다.

아마도… 짐작은 가지만 그 것을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소완에게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았다.


"이른 시간에 오셨사옵니다. 곧 주인님께서도 자리 하실 것이오니 지정된 자리에서 기다려 주시옵소서."


테이블에 명시되어 있사옵니다. 라고 덧붙이고 소완은 함교를 나섰다.

테이블에 다가가니 작은 명패들이 냅킨 위에 놓여져있었다. 나는 내 이름이 적힌 자리에 의자를 빼고 앉았다.

커다란 그늘이 다가와 위를 보니 한 무리의 고래가 오르카의 위를 지나쳤다.

걱정 근심 없이 노니는 고래들이 조금은 부러워 쓴웃음이 지어졌고, 감히 부럽다고 느끼는 내 자신이 역겨워 몸이 떨렸다. 


자괴감 속에서 얼마간 기다리자 함교의 출입구를 통해 사령관과 지휘관, 참모들이 고운 드레스 차림을 한 채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령관은 말 없이 곧 바로 상석으로 향했지만, 의자에서 일어선 채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는 그녀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마주하기 괴로운 것들이었다. 자업자득이다. 괴로움 마저 지금의 나에게는 사치일 뿐이다. 


"다들, 이렇게 모여줘서 고마워요. 연회의 호스트로서 기쁘기 그지 없네요."


사령관은 상석에 서서 미소지은 채 각 자리에 위치한 우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령관의 말에 우리들은 답하지 않았다.


"자자, 다들 자리에 앉아요. 아, 미리 말하는데 테이블 매너 같은 건 지킬 필요 없어요. 편안하게 즐겨줘요."


사령관이 자리에 앉고 나서야 우리들이 뒤이어 앉았다. 의자를 꺼내는 부산스러운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편안하게 즐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모두가 자리하고 나서도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사령관은 그 또한 재밌다는 듯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상석에서 함교의 곳곳을 돌아보고 있었다.


"실례하겠사옵니다."


침묵만이 흐르는 함교에 소완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가 끌고 온 화사한 키친 카트에는 베르무트와 샴페인, 갖가지 식전빵이 올려져 있었다.

뒤이어 여러 포티아 개체가 각자 아름답게 플레이팅 된 과일들을 들고 함교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 드디어 시작이군. 자 다들 적당히 들어요. 식전 입가심 거리로 배를 불리면 안 돼. 알겠죠?"


샴페인과 과일, 빵에 손을 가져가는 이는 사령관 뿐이었다. 그 누구도 테이블을 화려하게 수놓은 그 것들에 손을 대는 이는 없었다.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는 기색도 없었고, 형형색색의 과일에 눈길을 뺏기지도 않는다. 멍하니 테이블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하고 우리들은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전 분명 즐겨달라고 했는데… 이러면 곤란해요. 이런 자리에서 까지 명령을 들먹이고 싶진 않은데 말이죠."


그 말에 하나, 둘, 쓴웃음을 짓는 사령관의 눈치를 보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 중 가장 작은 체구를 가진 메이는 강아지가 연상되는 너무나도 불안한 기색으로 시선을 가만히 두지 못하다가 마지못해 식기에 손을 댔다.

그녀를 시작으로, 지휘관들이 일제히 식전메뉴를 '즐겼다.' 명령이란 단어가 들린 이상 별 수 없어진 우리들이었지만 마지못한 기색은 메이와 같았다.


무엇 하나 맛 없는 것이 없었다. 아삭하고 부드러운 식감과 훌륭한 당도를 자랑하는 과일들, 식전주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함에도 충분히 입 안을 만족 시켜주는 베르무트와 샴페인. 입가를 적시는 달콤함에 우리들은 더더욱, 이 의도를 알 수 없는 '연회'가 선사하는 기묘한 분위기에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듯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








드디어 오늘 '연회'의 본격적인 코스가 시작되었다.


풍미가 한가득한 해산물들로 채워진 플레이트 그릇들.

버터를 품은 향긋한 뫼니에르와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육즙이 가득한 샤또브리앙.

우리들을 옭매던 불안을 조금은 녹여주는 포근한 포토푀와 부야베스.


달그락 거리는 소리로 메워진 함교는 소완의 명성에 걸맞는 요리들로 채워진 포만감으로 인해 그 경직된 분위기가 조금은 누그러진 것 처럼 보였다.


소완의 시중을 받으며 와인을 몇 번 홀짝인 사령관이 나와 우리들을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병신같은 년들."


예상치 못한 그 말에 함교를 울리던 식기소리가 멈췄다.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면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커진 동공들이 일제히 사령관을 향했다.


"풉… 아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마저들 들어요."


냅킨으로 얼굴을 가렸어도 들썩이는 그 어깨를 보지 못한 이는 없었다.

식사는 끝났다.

그리고 냅킨 위로 떠오른 그 뒤틀린 눈가가 오늘의 '진짜 연회'의 시작을 고했다.


"아 이런, 내가 웃음이 많아서요. 숨기려고 했는데 참 어렵네. 어때요. 다들 맛있었어요?"


"…연회를 가진 진짜 이유가 뭔가요."


그녀들 중 먼저 입을 연 이는 콘스탄챠였다. 몇 번 깨작였을 뿐인 요리를 바라보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한가하게 이런 연회를 열만한 자원도 더 이상 없고, 저희가 이런 자리에 초대받을 이유 또한 없지 않나요."


"자원…아~ 그래, 자원 말이죠."


사령관은 소완에게 몇마디를 건네고는 일어나 선수를 향하며 작게 말했다.


"명령이다. 자리에서 움직이지마."


그 말에 몇몇 지휘관들을 제외한 나를 포함한 모두가 당황해 하면서도 삐걱이는 움직임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신체에서 자유로운 부위는 오로지 목 뿐이었다. 굳은 몸에서 고개만 돌아가는 모양새가 고장난 태엽인형이라도 된 것 같았다.

명령에 저항하는 몇몇 이들이 내는 신음을 신호 삼아 오르카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기계 장치들을 든 포티아들이 함교로 들어왔다.


"거기 명령 안통하는 년들, 굳이 말 안해도 알겠지만, 알아서 고분고분하게 구는게 좋을거야. 알지?"


사령관이 선수에 다다르자 곧 함교에서 가장 큰 패널이 사령관의 옆에 내려왔다.

포티아들은 움직임이 제한 된 나와 지휘관들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들고 온 장치를 우리들 한명 한명에게 연결하고 있었다.

몸 구석구석을 덮은 차가운 금속제의 장치들에게 체온을 뺏기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즈음, 패널에서 영상이 하나 들어왔다.


"이게…무슨…"


한 무리의 바이오로이드가 결박 된 영상은 두 개로 분할 되어 또 한 무리의 바이오로이드를 비추고, 또 그 수만큼 분할 된 영상들은 그 영상의 수 만큼의 바이오로이드 무리를 비추고 있었다. 

저 영상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뜻하는 것은 하나였다.

완전한 실패. 사령관을 찾지도, 부하들을 안전히 숨기지도 못했다. 

그 사실에 몇몇 이들은 망연히 패널만을 바라보기만 했고, 또 몇몇 이들은 경악하여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연결된 기계들을 뿌리치면서 온 몸을 뒤틀어댔다.


"뭐, 이해는 해. 누군들 그런 꼴을 당하고 싶겠어. 도망치려는 것도 당연하지."


"크…! 무슨 짓을 하는 것인가! 함대의 위치는 어떻게 알고…!"


"응? 아냐아냐. 니 함대에 숨겨놓은 애들만 있는게 아니고 여기 오르카에 있는 애들도 있는데? 잘 봐."


패널을 가볍게 두드리는 사령관의 그 얼굴은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어린아이를 연상케 했다.

적어도 특정한 부분 만큼은 어린 아이의 그것과 다를게 없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순수한 잔혹함이 가리키는 것이 우리라는 장난감이란 것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어쩔 줄 모르면서도 화면에 비춰진 부하들이 눈에 밟혀 나와 지휘관들은 가만히 의자에 앉은 채 기계 장치들에 둘러 쌓여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흡족해 하면서 사령관을 말을 이었다.


"부던히들 노력했어. 발버둥치는게 눈물겨워서 그냥 놔줄까 하는 생각도 조금 했었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나는 인간이고. 너희는 바이오로이드인데, 도대체 너희가 왜이러나 싶어서 화가 나더라고.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을 위해 태어났잖아. 인간인 내가 너희로 재미 좀 보겠다는데 거 참. 달리 생각해보면 너희에게는 인간에게 온 몸 바쳐 봉사 할 기회인 거 잖아. 근데 기회를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커녕 왜 말을 안듣니? 너희 처음에는 내 말 잘들었잖아. 이제와서 이러기야? 그냥 지시만 했을 때 알아서 말을 들었으면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잖아. 그렇게도 C구역이 싫었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 외도…!"


"그래. 그럼 테마파크 쪽은 포기할게. 대신…"


언젠가 보았던 그 광기어린 표정을 사령관은 만면에 드리운 채 고개를 젖히고 함교가 터져나가라 소리 높여 외쳤다.


"너희가 날 만족시켜 봐!!"









――――――――――――――――――――――――――――――――――――――――――――――――――







"부탁할게. 제발… 부하들 만은 살려 줘."


레오나의 눈가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여러 줄기로 갈라져 떨어졌다. 사령관은 그런 레오나의 머리를 어루듯 살살 쓰다듬었다.

우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을 따라 돌면서 사령관이 신난 기색으로 제의해 온다.


"식사도 했으니 게임이나 해볼까?"


흐느끼는 레오나와 메이를 제외하고 소리를 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령관은 그것을 모두가 동의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게임의 진행을 시작했다.


"처음은 퀴즈. 내가 내는 퀴즈를 맞추면 상을 줄게. 그래, 정답을 맞추면 원하는 걸 들어 줄 수도?"


사령관은 킥킥 소리죽여 웃고는 테이블의 먹다 남은 요리들을 바라보며 첫번째 퀴즈를 내밀었다.


"첫번째 퀴즈, 너희가 오늘 먹은 메뉴를 맞춰 봐. 본인이 먹은 거만 말해도 돼."


"저…정답!"


내가 외쳤다. 프랑스인으로 설정된 나였기에 오늘 먹은 프랑스 요리에 대해서는 이 곳의 다른 이들보다 상세히 알고 있었다.

이 문제를 맞추면 원하는 걸 들어줄지도 모른다. 나는 작은 기대를 품고 첫번 째 문제의 정답을 나열했다.


"가자미를 재료로 한 버터를 곁들인 뫼니에르, 그리고 소의 안심을 재료로 한 샤또브리앙, 그리고…그리고 또…"


반드시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 나도 모르게 입을 더듬고 만다.

살릴 수 있다. 

동료들을 살릴 수 있다.

더럽고 추해질대로 추해진 내가, 내 손으로 동료들을 살릴 수 있다. 다시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다시 이전처럼 나를 고고하고 기품있는 총사대장으로서 바라보고 대우해 줄 것이다.


"허브를 곁들인 부야베스."


"오~ 정답!"


'잘 아네~ 역시 프랑스제야.' 흥이 오른 그가 박수치면서 내게 다가왔다. 

정답이다! 이것으로 그에게 부하들의 목숨을 부탁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입을 열려던 차였다.


"근데 재료는 틀렸어."


"에?"


그럴 리 없다. 뭍의 식재료와 바다의 식재료가 내는 맛의 차이를 모를 정도로 내 혀는 둔하지 않다.

기억 뿐인 영광이었지만 그 영광을 통해 한 때 나름대로 고급스럽고 우아한 생활을 보장받았던 나다.

그 기억을 통한 확신을 가지고 나는 사령관에게 재차 입을 열었다.


"그…그럴 리 없어요. 확실해요. 분명 식재료도 정답이야. 도대체 어떤 부분이…"


"다시 기회를 줄게. 잘 생각해 봐."


잘 생각해 보라해도, 내 혀와 기억으로는 이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내 정답이 틀렸을 리 없다.

만에 하나 각 재료에 대해 더 상세히 설명하라는 것이라면 그것은 퀴즈라고 볼 수 없다. 나는 소완이 아니다.

입술을 깨물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내 모습의 어디가 보기 좋은건지 사령관은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있다.

요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모든 상식과 지식을 그러모아 조리있는 대답을 위해 문장을 조합하고 있자니 사령관이 말했다.


"힌트를 줄게. 힌트는 오르카와 패널."


오르카와 패널? 이게 힌트라고? 분명 퀴즈는 요리에 대한 것이었다.

씹어삼키는 요리와 잠수함과 기계는 맞물리는 영역이 없다.

제 구실을 못하는 힌트 덕에 애써 쥐어짜 새로 조합한 정답이 날아갔다. 

치고 올라오는 울컥함에 나는 사령관을 쏘아보고 힌트라고 제시 되었던 오르카 내의 함교와 패널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둔기로 얻어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머리를 시작으로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식재료.

오르카.

패널.

패널 속 영상에 비춰지는 함대와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


"서…설마…설마…아…아아…"


"정답은?"


코 앞 까지 머리를 들이민 사령관에게서 도망치듯이 고개를 돌렸다. 몰려오는 구토감에 숨을 쉬기가 어렵다.


"웁…우웁…"


참을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도로 목까지 올라온 위의 내용물을 일 초라도 빨리 게워내고 싶은 마음에 나는 고개를 숙이고 토사물을 터트리듯 토해냈다.


"캬하하하하!!!"


구토를 하는 나를 보고 뒤늦게 낌새를 알아챈 지휘관들이 나와 같이 고개를 숙여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기 시작한다.

방금까지 마지못해 먹으면서도 맛이 좋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역겹게 느껴져 이미 속을 다 게워냈음에도 구토감은 가실줄을 몰랐다.


"아, 역시 소완을 새로 제조하길 잘했어. 식재료에서 오는 차이까지 감쪽같이 덮어버릴 줄이야."


더 게워낼 것이 없어진 탓에 투명한 위액만이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 위액이 떨어지는 곳에 보이는 게워낸 내용물을 다 알고서 자세히 보니, 그것은 뭍과 바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식재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가시적인 사실이 다시금 토악질을 재촉했지만 이미 게워낼 것은 없었고 입을 제외한 다른 곳 또한 흘릴 수 있는 것은 다 흘리고 있는 상태였다.


"거 참 기껏 먹여놨더니…"


콘스탄챠는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된 자신의 얼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사령관을 노려보았다.

그녀라면 혹시 그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들 정도로 그 표정은 험악했다.


"자원이 없으면 어때? 배만 잘 채우면 되지. 여기고 저기고 널린게 고기잖아. 안 그래?"


"너 이 미친놈!"


"육질이 꽤 괜찮았지? 어린 것들로 엄선했거든."


테이블에 남아있던 고기를 한 점 입에 가져가며 사령관이 다음 퀴즈를 제시했다.


"첫번째는 오답처리 할거야. 자 그럼 다음 문제, 너희가 숨겨둔 니네 부하들의 위치를 내가 어떻게 알았을까? 너희 중에 미꾸라지가 있었거든. 누군지 한 번 맞춰 봐."


"말도 안되는 소리야! 저 고기에 대한 것도 전부 거짓말이야! 모두 듣지마!"


마리가 외쳤다. 그녀의 얼굴 또한 콘스탄챠와 다를게 없었다. 이 곳의 모두가 그랬다.


"아, 맞다맞다. 문제를 틀렸으니까 벌칙을 줘야지."


사령관이 손짓하자 근처에 대기 중이던 소완이 귓가의 통신기기에 무어라 중얼거리자 패널에 비추던 수많은 영상 중 하나가 꺼졌다.

그리고, 멀리서부터 울려퍼져 이 함교까지 닿은 처절하고 고통에 겨운 메아리가 우리의 귓가를 두드렸다.


"거짓말 아니야. 자, 두번째 정답은?"


"왜…왜 이러는거야…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울먹이는 메이가 사령관에게 애원하는 눈길을 보냈다. 옥좌의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늘 유지하던 위엄은 더 이상 없었다. 


"두번 말하게 할래? 니들도 이미 다 알고 있잖아. 아니면 뭐, 재미없어? 다른 게임 할래?"


"…정답."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닥터가 입을 열었다. 사령관의 얼굴에 불쾌한 화색이 돌았고 시선만으로 닥터의 이어질 말을 재촉했다.


"샬럿."


"아니야!"


생각지도 못한 닥터의 말에 반사적으로 외쳤다.

목에 남은 이물 때문에 가래가 끓는 소리가 섞였지만 그런 것은 지금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녀들이 부하들을 탈출 시킨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그 상세한 계획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지휘관인 그녀들은 커녕 그 휘하의 바이오로이드들 마저 나를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하지 않는 나날들이 이어져왔다. 

너나 할 것 없이 보내오는 멸시 속에서 접점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날아오는 욕설과 무시 속에서도 눈 앞의 사령관이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들이 탈출 중이라는 사실에 접근하지 못하게 내 몸뚱이를 던졌다. 거기에 사명감 같은 대단한 것은 없었다. 단지 모두에게 속죄하고싶을 뿐이었다.


"…네가 아니면 누군데?"


칼보다도 날카로운 곁눈질로 쏘아보는 닥터를 마주보았지만 얼마안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래, 결국 이 또한 자업자득이다. 지금의 내 처지는 모두 내 선택으로 촉발된 것들이다.


"…그래. 맞아, 나야… 내가 그에게 알렸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게 있다면 저 폭발할 것만 같은 규격 외의 혐오들 마저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겠지. 그걸로 모두가 티끌 만큼이라도 무게를 덜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 할 준비는 되어있다. 아니, 지금의 내게 그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사령관은 이것을 노렸으리라. 나는 입가를 느슨히하고 사령관의 말을 기다렸다. 부디 정답으로 처리해주기를 바랐다.

찰나 간의 침묵이 흐르고 사령관은 곤란하단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틀렸어. 왜 거짓말을 해? 샬럿은 아무것도 안했어. 내 물건이나 빨고 있었지."


사령관이 내게 다가온다. 내 속이 다 들여다 보이기라도 한다는 눈치로 그는 입꼬리를 올리고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샬럿, 그런 식으로라도 발버둥 치는게 가상하네. 좋아… 지금부터는 선택하게 해줄게. 너희의 부하와 샬럿. 둘 중에 고르는거야." 









――――――――――――――――――――――――――――――――――――――――――――――――――





"아르망, 빨리 대답해. 앞으로 내가 할 게임은 몇 개가 남았냐니까? 어서 예지해 봐."


"…세 개, 아, 아뇨. 다섯 개…"


"틀렸어. 자, 선택 해. 부하들을 갈아버릴래? 아니면…"


테이블과 패널을 번갈아 보는 아르망의 눈이 떨렸다. 그리고 그 눈이 나를 바라보고 나서야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사령관은 포티아들에게 지시해 아르망을 구속하던 장치를 벗겼다. 아르망은 일어서서 소완이 새로 가져온 키친 카트로 향해 송곳같이 생긴 날붙이 하나를 챙겨 내게 다가왔다. 미약한 열기를 품은 숨결이 허벅지 언저리에서 느껴졌다. 내 다리를 붙잡고 무릎을 꿇은 아르망은 손에 든 날붙이를 내 허벅지에 있는 힘껏 내리꽂았다.


"흐! 흐으으!! 크으읍…"


터져나올 것 같은 비명을 참기 위해 깨물고 있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빠르게 선을 그리며 흐르는 피는 하늘거리는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의 가슴팍에 떨어져내렸다.

격통에 휘감긴 허벅지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아르망이 표적에게서 시선을 피하고 있었기에 그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흐느끼는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라면, 단지 박혀있는 날붙이를 다시 빼들기 위해 힘을 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 됐든 내게는 고마운 일이다. 아르망은 날붙이를 뽑아들고 허벅지를 두 세번 더 찌른 뒤에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역시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절대로 맞출 수 없는 퀴즈, 진실게임, 스무고개. 

그 게임들 속에서 이미 내 전신은 엉망이다. 연회용 검보라 빛 드레스는 피로 흠뻑 젖어 살결과 하나가 된 모양새로 달라붙어있었다.

허벅지와 어깨, 하복부와 가슴팍, 손등과 양 팔. 곳곳에 난 자상들이 몸에 적색경고를 보내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의식을 잃어선 안된다. 의식을 잃는 순간, 벌칙은 내가 아닌 부하들을 향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경고에 의지함과 동시에 경계하면서 한창 게임이 진행 중인 장소를 바라보았다.


"레오나, 오늘 네가 먹은 음식은 알비스와 안드바리, 베라로 만들었어. 그럼 여기서 문제, 이 셋은 각각 몇 번째 개체였을까?"


"…흐윽…흑흑…"


"10초 줄게. 자, 몇 번 개체였을까?"


"7…13…16…"


"틀렸어. 자, 선택해."


양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레오나가 사령관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사령관은 레오나에게 격발 장치 같은 것을 쥐어주고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레오나가 장치를 누르는 것을 망설이자 사령관이 사납게 무어라 외쳤다.

그 모습에 기가 죽은 레오나는 한 동안 패널을 바라보더니 굳은 얼굴로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으그그그극…그흐으윽…"


머리부터 시작된 강한 전류가 온 몸을 타고 흐른다. 땀과 피, 입에서 새어나온 침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뒤이어 전신을 죄여오는 압박감에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위태로운 풍선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이, 귀가, 코와 입 안이 비정상적으로 수축한 뒤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팽창해 버릴 것만 같다. 머리와 입이 따로 놀기 시작한 탓에 전류가 약해진 틈을 타 나는 쉰소리로 애원해버렸다.


"그…만…제발…그만 해…"


내가 애원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 앞에서는 게임이 한창 계속 되고 있는 듯 하다. 흐릿한 실루엣들이 서로를 위협하고 고성이 오가고 누군가의 찢어지는 웃음소리가 들렸을 무렵, 손등을 위로 한 채 테이블에 고정되어 있던 손이 날붙이에 관통당했다.

이번 벌칙의 집행자는 누구인가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부정하고 싶어도 방금 전 전기 벌칙이 한계였다. 의식을 잃으면 안된다고 정신을 가다듬은게 무색하게 이젠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다.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고통스럽게 죽이든 그렇지 않든 쉴 수만 있게 해준다면 뭐든 좋다. 확실하게 죽여주겠다고 약속이라도 해준다면 더 구워삶고 가지고 놀아도 좋다.


실루엣으로 간신히 보이던 함교의 인원들이 점점 더 흐려진다.

어디가 함교의 천장이고 바닥인지, 아니면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허벅지 쪽에서 피 이외에 다른 따뜻한 것이 흘러내리는게 느껴졌다.

그게 무엇인지 신경쓰이기 보다는 그 따뜻함이 식은 몸을 조금이라도 덥혀주었기에 나는 내심 감사를 표했다. 이번에는 정답이었나보다.


게임은 계속된다. 몰려와있는 졸음이 점점 더 강해져간다. 아주 조금만이라도 좋으니 수면을 취하게 해줬으면 했다.

내 그런 바램이 닿았는지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계속되는 게임 끝에 결국 정신을 잃은 샬럿을 보고 용이 외쳤다.


"그만하시오! 정말로 그녀를 죽일 셈인가! 이제 충분히 즐겼잖소!"


"응? 샬럿을 이렇게 만든건 니들이잖아. 왜 나한테 그래?"


'정답을 맞추면 됐잖아.'

'아니면 부하들을 고르던가.'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생 사람 잡지 말라는 표정을 짓는 저 얼굴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이런 바람의 대상이 '인간'이었던 탓에 마음 한 구석에서 거북함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게임을 계속할거라면, 그 게임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이길 수 있다면, 그에게 죽일 수 있게 해달라는 명령을 요구할 셈이었다. 신체에 어떠한 부하가 걸리게 되든 그건 걱정거리도 아니다.


"칸…"


기대어오는 레오나를 안아주었다. 다들 위험했지만 이 녀석은 누가봐도 한계였다. 평소에 서로의 관계가 어땠는가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어깨 부근이 축축해지는게 느껴져 나는 안고있는 팔에 좀 더 힘을 주었다.


용은 거세게 사령관을 몰아붙였다. 고풍스러운 말투를 사용하는 탓에 욕설이 섞이진 않았지만 저렇게 보는 이가 무서울 정도로 분노 할 바에는 차라리 욕을 하는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다. 무슨 생각인지 안다. 용은 지금부터 절대 물러서는 일이 없을 것이다.

몰릴대로 몰려버렸기에 오히려 몰아붙인다. 이 이상 '게임'이 계속 되었다가는, 조금 안쓰럽긴 하지만 아무래도 좋을 샬럿과 소중한 부하들이 모두 죽어버린다. 대신할 것이 있으면 부하들을 살려줄 것 같이 구는 건 전부 거짓말이다. 더하여 만족한다면 그만 둘 것 처럼 구는 것도 거짓말이다. 그는 우리를 절대 가만 둘 생각이 없다.


"그리고 뭐, 니들이 싫으면 어쩔거야? 뭐 별 수 있어?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건 이제 너 하나잖아. 아는지는 모르겠는데 알파는 오늘 새벽에 찾아서 잡아죽였고 라비아타는 처형했어. 그리고 저기 벌벌떠는 좆만한 년은 너 처럼 대들 생각은 절대 못할 것 같은데?"


"…크으"


"에휴… 화낸다고 별 수 있니. 니들 태생이 그런데. 아 진짜! 알았어 알았어, 부하들이 그렇게 소중하냐? 그래, 내가 졌다. 딱 한가지 내 요구에 응해주면 이제 그만할게. 이러면 됐지?"


"…말하시오."


"네 함대의 전권을 내게 이양해. 그게 싫으면 자결하던가. 약속하지. 너희 부하들에게도 절대 손대지 않을게."






 


 




――――――――――――――――――――――――――――――――――――――――――――――――――


좀 막 쓰다 보니까 못고치고 지나간게 많을 수도 있음 오타나 어색한 부분 알려주면 수정할게


쓰다보니 샬럿 괴롭히기가 됐네 


재밌게 읽어 줘








https://arca.live/b/lastorigin/22799947?mode=best&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