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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은 멸망전의 인간님들과는 다른분이니까요."


날 안내해준 바이오로이드가 문앞에 멈춰서서 내게 안으로 들어가길 권해주었다.

여기까지 오는길에 계속 긴장하고 있던 나를 신경써주며 말을 걸어준 저 친절한 바이오로이드가 있음에도

사실 아직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이 앞에 '인간'이 있다.

그 사실이 좀처럼 생각을 멈출 수 없게 하고있다. 

그날, 철충에 쫓겨 터트린 폭약에 갱도가 무너지면서 

익숙한 어둠이 낯선 어둠으로 바뀐 그날,

언젠가 이런날이 올거라 알고있다 생각했는데, 

생각과 현실은 다르단걸 느낀 그날. 

분명 그 어둠에서 구해준건 이 앞에 있는 '인간'이다. 그렇다고 들었다. 

하지만 소모품인 나를, 그가 왜 구해준것인지는 모른다. 

이 안에 들어가면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정말 이 안에 인간은 예전에 보던 인간들과는 다른 인간인걸까? 

아니라면 멸망전의 자매들처럼 노리개로 사용되다 처분되는걸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거부권은 없다. 

뭐가 됬던 그, 이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세력은 나를 구해줬다. 

이제 이 안에 들어가 '인간'을 만나면 목숨값을 치를 수 있을거다. 

부디 그게 갱도속 어둠에서 느낀 고통보다, 

무너진 그 어둠속에서 느낀 절망보다 나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는 모르겠다. 

옆에 있는 고양이귀를 달고있는 새하얀 바아오로이드는 그저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를 돌렸다.


"흠? 뭐냐 페로? 부른적은 없는... 아아"


한명의 인간 남성이 책생에 앉아 무언가 패널을 조작하고 있었다.


"안녕? 구면...이라고 하기엔 넌 날 본 기억이 없겠구나"


그남자는 최후의 '인간'이자 이 오르카의 총사려관


"뭐 인사는 지금부터 다시 하면 되는거니 상관 없겠지"


그리고, 무너진 갱도의 어둠속에서, 살고싶다며 울다 잠든 나를 꺼내준 사람


"인류의 말석이자 오르카호 총사령관이라고 한다."


이 '인간'은 나같은 보잘것없는 작은 바이오로이드에게 과연 무엇을 원할까?


"그리고 지금부터 너의 사장이 될사람이지"


그래, 이 '인간'은 내가 자신을 사장으로...? 사장?


"그럼 우선 자기소개부터 들어볼까?"


멍한 표정으로 인간을 올려다 봤다.

사장? 사장이 뭐지? 이남자는 방금 이 잠수함의 사령관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흠, 생각보다 빠릿빠릿하진 않구만. 긴장한건가?"


"주인님의 어순이 이상했던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느새 문앞에서 해어졌던 새하얀 바이오로드가 바로 뒤에 다가와 있었다.


"어순의 문제는 없었어 페로. 이건 확실하다고. 문장의 끝자리에 찍는 마침표처럼 확실했단말야. 

그리고 난 주인님이 아니라 사장님이라고 불러달라니까?  

뭐 첫 면접에서 긴장하는건 흔히 있는 일이니까 말이지, 하지만 사회는 그런 사정까지 일일이 봐줄정도로 관대하지 않다고 작은친구?"


간신히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다.

뭐가 됬든 난 지금 이자리에서 이 남자에게 평가받는것같다.

여기서 통과하면 어쩌면 아픈꼴은 당하지 않는걸까?

찰나의 희망적인 관측 뒤에 곧 절망감이 따라왔다.

나같은 저가형 소모품 바이오로이드가 과연 인간의 평가를 통과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모든게 처음부.....


"자! 기다려주는 시간은 여기까지!!! 이 친구 아까부터 자기만의 세계로 너무 자주 들어가지 않아??"


"생각이 깊은 구석은 있어보이는군요"


"이봐 주황머리 꼬마 친구, 난 이미 내소개를 했으니 너도 최소한 자기 소개정도는 해야되지 않겠어?"


"더.. 더치.. 내이름은 더치야. 광산에서는 더치걸이라고 불렸어..."


"그래 더치걸, 음 뭔가 어감이 좋은걸? 더치.. 떠치.. 땃치.."


"또 이상한 이름을 지으시려는건 그만두시는게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주인님"


"뭐 이런건 나중에 해도 되는거니까. 그보다 너도 고집 참 쌔다?"


"그래 땃치걸, 이름은 이제 알았으니 이제 할 수 있는 일과 하고싶은 일을 말해줄래?"


"하..할 수 있는 일과 하고싶은 일..?"


"질문에 질문으로 돌려주는건 좋은 대답이 되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나도 질문에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마! 그래 할 수 있는 일과 하고싶은 일! 지금까지 니가 해왔던 일과 니가 앞으로 해보고싶은 일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지금까지 해온일이라면 땅굴에서 굴착작업을 하는게 내 일이었어. 드릴과 다이너마이트로 돌을 부수고 아래로, 아래로 파고 내려가는 일. 그리고.."


그리고.. 하고싶은 일.. 이라고 물어본들

그런거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저 하루를 살아왔다

멸망전에도

멸망후에도

인간이 있던 없던 그들의 명령은 나를 떠난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


"하고싶은 일은..."


하지만 지금 내 눈 앞의 '인간'은 내게 하고싶은 일을 물었다.

그러니 난 대답을 내야만한다.

난 무엇을 하고싶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싶지?


"..."


"페로"


"네, 주인님"


"잠깐 나가있으렴"


"알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요세 만난 친구들은 전부 하고싶은게 명확했단 말이지"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녀석,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녀석, 정원을 가꾸고 꽃을 기르고 싶은 녀석, 철충을 부수고 동료를 구하고싶은 녀석"


"바로 바로 어렵지 않게 다들 대답했지. 그러니까 생각하지 못했네, 이 질문이 대답하기 어려울 수 있단걸"


"뭐 당장 하고싶은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러니 질문을 바꿔볼게"


"너는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니 아니면 땅굴속에서 하던일을 계속 하고싶니?"


땅굴

내가 태어나고

내가 살아오고

내가 죽을곳이었던곳

그리고 지금은 그곳을 벗어나 여기 있었다.

늘 의문이었다

우리는 왜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는가

벗어나고 싶었고, 벗어날 수 있었지만 벗어나지 못했다.

멸망전에는 인간의 명령을 벗어나지 못해

멸망후에는 철충의 위협을 벗어나지 못해

우리는, 나는 계속 바닥으로 바닥으로

땅속 깊은곳까지 나만의 굴을 팠고

그 안에서 죽을 운명이었다.



분명 다시 지하로 돌아가 굴착을 할 때

포기했던거다.

아니 좀더 사실대로 말하자면 비웃었다.

내 처지를, 멸망한 인간을, 싸우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을

나약한 우리는 인간에게, 그 다음은 철충에게, 마지막은 죽음에게 짓밟힐 뿐이다.

그럿다면 돌아가자.

처절한 싸움이 싫다.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괴롭고 싶지 않다.

이젠 나만의 굴을 파자. 그리고 거기서 죽자.

이게 나의 결말이었다.

나는 태어나 살아가며 해야할 일들을 명령 받았지만

끝맺음은 명령받지 않았다.

그러니 나의 자유는 어떻게 죽을것인가

그걸 결정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더치걸.."


"..무너진 갱도속에서, 구해줘서 고마워...요 인간..님"


오만했던거다.


"그날... 그 어둠속에서.. 이제 정말 죽는구나..."


드디어 마지막이 찾아왔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어둠속에서....흐읍읍"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천천히 죽는걸 기다린다는걸..흐읍"


그제서야 살아가는것에 지쳐 잊고있었던

살아가는것을 포기하자 찾아온 죽음의 공포가


"나....흐으으앙..! 아무것도.. 계속 땅만 파면서 그저.. 으아아앙"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너무 비참해서 처다보지 않았던 내가

땅굴 가장 밑 바닥에 스스로 감추고 있던 내가

나를 마주봤다.


"죽고싶지 않았어..! 그렇게 죽고싶지 않았어..!!"


그렇기에 울부짖었다.

검은 공간에 비명을 채웠다.

내 발치를 눈물로 채웠다

내가 여기있다고

아직 살아있다고

아직 살고싶다고


"다시는.. 다시는 그런일은 하고 싶지 않아... 흐아아앙!"


"..그래.. 뭐 그런건 그날 니 얼굴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었어.."


울부지었다.

그날 흘렸던 눈물 만큼

하지만 그날과는 다른점은

그땐 울다 지쳐 쓰러져 느끼지 못했던, 아니 인식하지 못했던

따뜻한 품이 내곁에 있었다.



"뭐 하고싶은일 정하지 못했지만, 하기 싫은 일은 알았으니 됐겠지"


"울고싶은 만큼 울어두라고 더치걸"


"흐아앙..흐으윽읍"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시티가드라고 자칭한 머리가 3개, 아니 머리만한 가슴을 2개 단 바이오로이드와 

흰머리의 멍해보이는 소녀 바이오로이드가 호루라기를 물고 들어와 인간을 잡아가려고 하는 일이 있었다.

그 난장판 속에 인간, 사령..관? 아니


"일단 얘를 대리고 오르카를 돌면서 설명좀 해주렴 페로"


"알겠습니다 주인님"


"주인님이 아니라 사장님이라고 불러달라니까?"


사장님은 나를 페로라는 하얀 바이오로이드에게 맡겼다.


"땃치걸, 오르카에 탄걸 환영한다. 나중에 다시..아아악 켈베로스!! 그러니까 지금 말을 건건 그런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


"저흰 일단 나가보져 더치걸씨, 오르카는 생각보다 넓어서 길을 익히는데 조금 거릴 수 있답니다"


"응, 고마워.. 페로"


분명 지금까진 안좋은 일들 뿐이었지만


"어머, 이제야 이름을 불러주시는건가요?"



그래도 살고 싶었다.

땅굴을 파는 더치걸이 아닌

어둠속에서 고독하게  죽어가는 외톨이가 아닌 


"아! 땃취걸! 면접은 나중에 다시 볼거니까 그때까진 해보고싶은일을 둘러봐야된다?!"


이곳에선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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