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들어 있는 숲 속, 단 둘이 오붓하게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한 남녀가 있었다.

 

“이렇게 느긋하게 있는 것도 좋구나”

“그렇네요, 주인님, 전쟁 중에는 지상에서 이렇게 있는 건 꿈도 못꿨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나랑만 와도 괜찮았어? 다른 자매들과도 피크닉을 즐기고 싶었을텐데”

“동생들이랑은 나중에 다시 올거에요. 지금은 주인님과 단 둘이 있고 싶어요♡”

 

 전쟁이 끝나고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자유를 주기로 했다. 그런데 그녀들에게 심어진 세뇌를 제거하는 수슬은 복잡하고 오래걸리며 수술 후 경과를 지켜봐야 해서 한동안 입원해 있어야 했다. 때문에 수술하기 전 사령관은 리리스와 피크닉을 나오기로 한 것이다.

 

 “오늘을 위해서 리리스가 차도 최상급으로 준비하고 과자도 직접 만들어왔어요. 주인님. 어서 드셔주세요”

“고마워, 잘 먹을게.”

 

 차와 과자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던 사령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리리스에게 물었다.

 

“…리리스는 자유를 찾으면 어떨 것 같아?”

“글쎄요. 아마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주인님께선 언제나 저희의 의견을 존중해 주셨으니까요. 언제나처럼 주인님을 호위하고, 동생들을 보살피고, 이렇게 같이 피크닉을 나오고, 그리고…”

“그리고?”

 

 중간에 말을 멈춘 그녀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찻잔과 과자를 옆으로 치웠다. 그리곤 사령관에게 다가가더니 갑작스레 입을 맞췄다.

 

“흐읍…츄릅…쩝…하아하아…그리고 이렇게 주인님과 사랑을 나누고요”

 

 진한 키스를 마치고 사령관에게 달라붙은 그녀는 유혹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단추를 살짝 풀어 오늘을 위해 입고 온 속옷을 보여주었다. 결국 사령관도 더는 참지 못하고 돗자리 위에 눕혔다. 그녀도 그것을 받아들이곤 사령관의 목을 감싸 안으며 요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동안은 못 할 테니까요. 오늘은 평소보다 몇 배로는 사랑해 주셔야 해요♡”

 

 바람에 나뭇잎 휘날리는 소리만이 들리던 적막한 숲 속에, 단풍만큼이나 새빨간 교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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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수복실 안에서 리리스는 눈이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후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아니 되었어야 할 터였다. 그녀는 이제 자유를 얻었다. 이전에 예상했던 데로 크게 다를 건 없었고 자유로워졌다는 것이 크게 체감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뭔가…중요한 걸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든 단 말이지…’

 

 수술이 끝난 후에 그녀는 때때로 사령관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존경스러운 주인이었다. 그런데 그를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이 위화감은 뭐라고 설명을 할 수 없었다.

 

“그, 글쎄. 아마 기분 탓 아닐까? 아! 포츈 언니랑 회의하기로 했는데 늦었네. 빨리 가봐야겠어. 아마 별일 아닐거야! 그럼 난 가볼게!”

 

 이에 대해 닥터에게 물어봐도 그렇게 얼버무리며 피할 뿐이었다. 결국 아무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시간만 흐른 채 퇴원일이 다가왔다. 그리고 퇴원을 기념하여 자매들과 함께 자신을 마중 나와준 사령관을 본 순간 그녀는 뭔가 깨달은 듯 얼어붙고 말았다.

 

‘설마…? 아니야,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언니? 왜 그러세요? 혹시 뭔가 불편하신 거라도 있으세요?”

“아, 아니란다. 잠시 생각 할 게 있었던 것뿐이야. 아, 주인님, 바쁘실 텐데 이렇게 마중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리스야 말로 수고 많았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오늘은 빨리 돌아가서 푹 쉬는게 좋겠어”

“주인님 말씀이 맞아요. 언니. 빨리 돌아가서 쉬는 게 좋겠어요.”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는 자매들을 안심시키며 리리스는 힐끗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다정하게 미소를 짓는 그였지만 그녀에겐 그 미소가 이전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엔 다시 평범한 나날이 이어졌다. 문명의 재건을 위해 힘쓰는 나날이. 아니 정확히는 딱 하나만 빼고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다. 그러나 그 한가지가 여전히 있다고, 자신은 자유를 얻기 이전과 같다고 그녀 스스로 계속 부정했다.

 

‘그럴 리 없어…그럴 리 없어…그냥 잠시 피곤한 것 뿐이야’

 

 애써 부정하며 곧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고 기대하는 그녀였지만 사령관을 마주할 때마다 그 마음은 점점 약해져 갔다. 더는 그를 봐도 두근거리지 않았다. 같이 있어도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이런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을 인정해버린 다면 지금껏 있었던 그와의 추억은 모두 거짓이라 해버리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사령관은 그녀를 호위로 한 채 단 둘이 숲 속으로 산책을 나섰다. 리리스가 수술을 받기 전 둘이 함께 왔었던 그 숲이었다. 아직 마음이 정리가 안된 그녀로서는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경호 임무를 허투루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둘은 그저 묵묵히 걷다가 같이 피크닉을 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한동안 말 없이 서있던 와중에 사령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리리스”

“네, 넷 주인님!”

“여기서 둘이 피크닉 했던 거 기억해?”

“그럼요. 주인님과의 소중한 추억인 걸요. 여기서 같이 차도 마시고 얘기도 나누고 그리고 사랑도 나누고…”

 

 평소처럼 밝아 보이려 노력하는 그녀였지만 그 장소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자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복잡한 심정의 그녀에게는 고통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사령관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말을 이어 나갔다.

 

“최근 날 피하고 있지 않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분명히 해줬으면 좋겠어”

“그런게 아니에요 주인님! 그런게…아닌데…”

 

 그녀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사라져간다. 어쩌면 눈 앞에 사령관도 최근 자신이 이상했단 걸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확실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세뇌가 풀린 뒤론 이전만큼 그와의 잠자리에서 열정적이지 않았고 하는 횟수도 줄었으니까. 그리 생각하며 그의 눈을 본 순간 그녀는 깨달아 버렸다.

 

‘아아, 그렇구나’

 

 아팠다. 고통스러웠다. 씁쓸하지만 다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 눈이 그녀를 찔러왔다. 사령관에게서 받는 고통은 분명 모두 쾌락이었을 터였는데 지금은 그저 순수한 아픔만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껏 부정했던 자신이 어리석게 여겨졌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는 자신이 존경하는 주인님에게 같이 전장을 해쳐온 동료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 생각한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리곤 울먹이며 절망스런 진실을 고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주인님…리리스는…리리스는...이젠 주인님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닦는 그 손에는 과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꼈던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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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스처럼 주인에게 강한 애정을 갖도록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들은 세뇌가 풀리고 자유를 찾으면 그 주인을 사랑하란 명령도 같이 사라지지 않을까 해서 써봤습니다.



얼마전에 쓴 주인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와도 어떤 면에선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누군가를 사랑하는게 강제되지 않았다고 해도 어차피 라오 세계관 지구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사령관 뿐이라 어차피 돌아올테니 해피엔딩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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