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24568964 전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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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후회할 짓 하지마! 당장 멈춰!"


타이탄에 탑승한 닥터를 목전에 두고 사령관이 외쳤다. 어깨 부분의 발사대가 쉼 없이 움직여대는 걸 보니 사령관의 제지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어떻게든 가까워져 오는 사령관만을 제외하고 먼 발치의 표적들을 맞출 수 있는 각도를 재고자 닥터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비키라고 했어!! 오빠!!!!"


자신이 분노하는 이유인 사령관에게 되려 악을 쓰고 있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닥터가 눈알을 부라리며 여차하면 사령관도 날려버릴 기세로 소리쳤다.


"닥터! 네가 분노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이제 내가 왔잖아! 조금 진정해 봐!"


"저건 진작에 죽었어야 할 년이야! 고문 당했던 이후에 죽었다고 생각했다고! 왜 멀쩡히 살아있는 거야!!"


말꼬리를 늘이며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질러댄 닥터가 마침내 코 앞까지 당도한 사령관에게 타이탄의 팔을 휘둘러댔다. 아슬아슬하게 피하고서 닥터에게 뛰어든 사령관이 양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닥터에게 외쳤다.


"닥터! 내 눈 봐! 정신차려!"


"차라리…! 차라리 잘 됐어! 내가 죽이면 되는 거야! 내가 죽이면 돼!"


"닥터!"


정말로 눈이 뒤집혀 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희번덕거리는 닥터의 눈이 사령관에게 향하긴 커녕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핑퐁처럼 사방으로 움직여댔다. 이제는 발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이성이 날아간 닥터를 일단 타이탄에서 떼어내고자 더욱 세게 끌어안고 사령관은 등 부터 모래 위로 뛰어들려 했다.


"…으윽! 켁! 다, 닥터! 이거 놔!"


닥터의 기계 팔이 사령관의 목을 움켜잡았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당장이라도 터트릴 수 있을 정도로 목을 죄여오는 기계 팔이 사령관을 점점 닥터에게서 떼어낸다. 그것을 먼 발치에서 뒤늦게 확인한 일행들이 각자의 무장을 닥터에게 겨눴다.


"이해가 안 돼… 이해가 안 된다고! 오빠!! 왜 저것들을 감싸는 거야! 오빠가 왜 저것들을 감싸는 거냐고! 오빠도 어떻게 되버린거야!?"


"윽… 닥터… 지금 네가 어떤지… 잘 봐…"


"잘 알아! 타이탄으로 저것들을 전부 짓뭉개버리려 하고 있잖아! 오빠. 내가 앤 줄 알아?"


닥터에게서 떨어진 사령관을 타이탄의 손이 모래사장의 가장 푹신한 곳으로 잡아던졌다. 서너바퀴 더 굴러간 사령관이 목을 매만지며 다급히 일어나 일행과 닥터를 번갈아보았다.


"오빠. 나 오빠 일에만 화난 거 아냐. 다른 것도 화가 많이 났거든? 그러니까 거기서 잠자코 보고 있어. 뭐든 얘기 할 거면 저것들 다 죽고나서 하자."


일행들이 닥터에게 가까워져 오는 것을 본 사령관이 소리쳤다.


"이… 멍청아! 그렇다면 나도 죽여라! 네가 그렇게 된 책임은 나에게도 있어! 오르카가 그렇게 되버린 가장 큰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사령관의 반응에 닥터의 눈썹이 움찔거리고 고개가 돌아갔다. 귓가에 들려온 사령관의 말과 눈에 보이는 태도가 마치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과학과 기술의 어느 특이점을 목도해버린 것과 같은 충격이라도 됐는지 닥터는 두 눈을 연신 깜빡여댔다.


"오빠… 오빠는 착한 사람이어도 바보는 아니잖아…? 그게 어떻게 오빠 책임이고 잘못이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오빠가 그렇게 된 건 있잖아…"


닥터의 시선이 다시 달려오고 있는 일행들에게 향했다.


"닥터! 안 돼!"


"다 저 쳐죽일 년들 때문이라고!!"


바쁘게 움직이던 닥터의 손이 높게 떠올라 조종기를 향해 막 떨어지려는 참이었다. 사령관은 눈을 질끈 감고 최악의 경우에나 쓰자고 마음 먹었던, 절대로 쓰고 싶지 않았던 방법을 어쩔 수 없다며 되뇌이고서 사용했다.


"닥터! 명령이야! 타이탄에서 내려!"


"으윽! 오빠! 뭐하는 거야! 철회 해! 날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안 돼! 지금 당장 내려!"


명령에 대한 저항으로 부하가 걸린 닥터가 양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흔들어댔다. 사령관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닥터에게 달려가 타이탄으로 부터 끄집어내었다.


"싫어! 오빠! 제발 부탁이야! 죽이게 해 줘! 하다못해 샬럿만은 죽이게 해 줘!!!"


사령관의 허리춤을 감싸안고 올려다보는 닥터의 얼굴이 고통과 애원으로 일그러졌다.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흐르는 것은 사령관에게 저항한 탓이었는지, 아니면 주체할 수 없는 감정 탓이었는지 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닥터를 제지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지 그것 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닥터라는 존재의 이성의 폭발과 감정의 마그마를 억지로 틀어막는다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까지 사령관은 명령을 내렸다. 이대로라면 닥터는 미쳐버리고 만다. 마구잡이로 처형을 집행하던 아스널 처럼. 코헤이 교단에 들이닥쳤던 나 처럼. 그리고 그 두 광인이 초래한 희생과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막 다가온 아르망을 바라보며 다시금 곱씹었던 사령관은 품 안에서 날뛰는 닥터를 강하게 껴안으며 속삭였다.


"닥터. 이제 옆에 있을게."


"오빠! 이거 놔! 죽, 죽여…! 죽여야 돼…! 죽여야 한다고!"


"이제 아무데도 가지 않을게."


"왜! 왜!! 왜 안 놔 주는거야! 오빠! 나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 그러니까 제발 놔 줘!"


"내가 미안해."


"제발… 그만 해… 놔 줘…"


"오빠가… 미안해."


"으…으으…"


"정말 미안해."


"으흑…흑흑…"


사령관의 어깨 위에서 날뛰던 닥터의 양 팔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 자연스레 사령관을 껴안은 모양새가 되었다. 사령관의 품에 더욱 파고들어 몸을 웅크린 작은 체구의 박사에게서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사령관이 달래고자 등을 토닥여주니 그 작은 소리는 결국 폭발하여 섬 곳곳에 울려댔다.


"…"


세상이 떠나가라 목청껏 울어대는 닥터가 진정될 때 까지 안아주고 있는 사령관은 샬럿에게 고개를 까딱이며 물러나라 지시했다. 당황스러워 하는 유미의 옆으로 홍련이 지나쳐 샬럿을 따라가는 사이 방금 막 상공에서 내려온 나이트 앤젤이 로켓에 의해 움푹파인 곳과 타이탄을 번갈아보면서 안도인지 뭔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한참이고 울어댄 닥터는 마침내 사령관의 품에 기대 쓰러지듯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의 분노와 그로 인한 살의, 사령관의 명령을 저항한데서 온 부하가 한 번에 기화 되버리자 그 연약한 체구와 어린 정신이 버틸 수 없던 탓일거라고 생각한 사령관은 닥터를 품에 안아올리고서 다크엘븐을 바라보았다.


"자, 돌아가자."


"아. 잠깐만요. 사령관 님."


보트로 향하려는 일행과 사령관을 붙잡은 나이트 앤젤이 말을 이었다.


"깜빡하고 말씀드리지 않았던게 있어요."


"뭔데?"


나이트 앤젤이 다크엘븐을 한 번 쳐다보더니 전함을 가리켰다.


"그 자의 바이오로이드, 아직 살아있어요."


"뭐!? 그걸 어떻게 깜빡할 수가 있어!"


반사적으로 소리친 사령관이 혹시라도 닥터가 깰까 급하게 목소리를 줄였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급박하기도 했고 닥터에게 직접 설명을 들으시는 편이 나을거라고 생각했다가 깜빡했지 뭐에요."


닥터가 이럴 줄은 몰랐다는 것과 별개로 죄송하다 덧붙인 나이트 앤젤이 꾸벅 고개를 숙이자 사령관이 닥터를 한 번 내려다보고서 전함으로 등을 돌렸다.


"죽일 수 없었던 거냐. 아니면 살려 둔 거냐."


"살려 둔 거에요. 보급대에 쳐들어왔던 것들과는 좀 달랐던 것 같아서요."


"달라?"


"네. 그… 뭐라고 해야 하지…"


이마에 검지를 대고 생각한 나이트 앤젤이 사령관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 있잖아요. 왜… 그 강했던 리리스요."


"그게 뭐."


"그거랑 비슷한 냄새가 났다고 해야 하나요. 뭔가 좀 특수해 보였다고 해야 되나요. 어찌저찌 제압만 해뒀거든요. 뭔가 캐낼만한 게 있지 않을까 해서."


"요컨데 심문 할 수 있게 해놨다?"


"바로 그거에요."


"…"


다시 한 번, 사령관은 양 팔에 들려있는 닥터의 얼굴을 보았다. 그 리리스, 베로니카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녀석이라니. 그런 녀석과 맞닥뜨려 제압까지 한 닥터와 다크엘븐을 안쓰럽다 생각하면서도 기특하게 여겨져 쓴웃음을 짓고만다. 그런 사령관의 얼굴을 본 나이트 앤젤이 사령관의 지시를 짐작하고 전함 쪽으로 낮게 날아갔다.


"다크엘븐. 혹시 섬에 만들어둔 거처가 있어?"


멍하니 닥터를 바라보고 있던 다크엘븐이 살짝 놀라며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아, 응. 있어. 여기서 조금만 가면 돼."


"그래, 다행이네. 가면서 얘기할까." 


다크엘븐이 가리키는 곳으로 먼저 걸어나선 사령관이 다크엘븐이 나란히 다가오자 입을 열었다.


"얘기해 봐. 어쩌다 그런 놈하고 맞붙게 된거야?"


다크엘븐이 말해온 어젯밤의 상황은 대략적으로 이랬다. 자정에 가까워질 무렵 전함 쪽에서 총성이 들려왔기에 닥터와 함께 무장을 갖추고 접근해보니 기동 유닛 하나, 아마도 나이트 앤젤이 전함을 맴돌며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함의 외부에 설치해둔 화물용 승강기를 이용해 전함에 오르니 나이트 앤젤과 격돌 중이던 자가 갑자기 엄습해왔으나 닥터에게 곧바로 제압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나이트 앤젤과도 충돌 할 뻔 했으나 머지않아 소통으로 피아를 구분 할 수 있었기에 상황은 종료되었다고 한다.


"굳이 승강기에 올랐던 이유가 뭐야?"


"닥터가 가자고 했거든. 그 기동 유닛은 아군이라고 확신하더라고. 결과적으로 정답이었지만… 뭐, 전함에 비축된 물자도 많았으니까 내버려뒀다면 어떻게든 곤란해졌을거야."


"고생했네."


닥터와 다크엘븐이 지나왔던 길을 걸어가다가 해안과 접한 숲으로 들어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잘꾸려진 캠핑장과 같은 거처가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보니 사령관은 혼자 생존해 왔을 무렵이 떠올라 내가 만들었었던 거처와는 비교도 안된다며 농담을 던지고는 다크엘븐의 안내에 따라 텐트라고 부르기엔 미안하고 오두막이라 부르기엔 거창한 곳으로 들어가 침대로 보이는 곳에 닥터를 뉘였다.


"유미, 여기에 대기 하면서 겸사겸사 닥터를 돌봐 줘. 전함에 도착하면 나이트 앤젤을 보내마."


알겠다고 고개를 꾸벅이는 유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등을 돌리자 다크엘븐은 자신의 무장인 산탄총을 챙긴 참이었다. 


"그럼 전함으로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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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트의 맞은편에 설치되어 있었던 승강기에서 내리자 사령관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열 수 없었다. 온갗 지옥도와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을 거쳐왔다 하더라도 눈을 통해 뇌를 거쳐 목구멍 언저리에 걸쳐버리는 이 참담함은 도저히 적응 할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함포에 새겨진 인간모양의 그을음과 한 곳에 산처럼 쌓여있는 금속골격. 탄흔이 없는 곳보다 있는 곳을 찾는게 더 빠를 정도로 검은 점으로 빽빽한 갑판. 방금까지도 폭발이 일어났는가 착각할 만한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 당장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이 끼익거리는 비명을 지르며 흔들리는 난간과 우그러진 함포의 포신을 바라보며 사령관은 다크엘븐의 뒤를 따랐다.


"윽…"


전함 중앙에 위치한 함교의 입구에 서자 매캐한 냄새와는 달리 별로 맡아볼 일 없던 역한 악취가 사령관의 코를 찔렀다. 수많은 바이오로이드의 시체는 이미 골격만 남았더라도 그것이 부패한 냄새는 아직도 빠지지 않고 함내 곳곳에 찌들어 있는 탓이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흐렸던 하늘은 이제 하늘 높이 떠 있는 해로 인해 쨍쨍 했을텐데도 입구를 통해 보이는 함선의 내부는 해가 저물어 가는 무렵의 폐건물을 연상케했다. 더 깊은 전함의 내부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스산함에 사령관은 절로 몸서리치고 얼굴을 찡그렸다.


"여기서 지휘실로 곧장 가면 돼. 그 쪽에 포박해 뒀어."


다크엘븐은 익숙한 듯 거리낌 없이 먼저 전함의 내부로 들어서자 이어서 아르망이 사령관을 지나쳐 태연하게 그 뒤를 따랐다. 늘 냉정하고 침착한 이미지를 갖고있던, 적어도 사령관에게는 그런 인상이었던 홍련이 얼음물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것 처럼 덜덜 떠는 것이 보였다. 전함을 오가며 만행을 저질렀던 때가 기억이라도 난 것이겠다고 생각한 사령관은 달리 위로하지도, 그럴 필요도 못느끼며 미호를 돌아보았다.


"미호. 너는 관측탑으로 향해. 주변을 경계하고 있어라."


"알겠어. 뭔가 있으면 바로 통신할게."


"정신 차려 홍련. 이해는 한다만 부하도 애써 태연하게 구는 마당에 티내지 마라."


"…죄송합니다. 사령관 님."


함내로 들어서자 더욱 추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사령관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다크엘븐이 향한 곳으로 방향을 틀어 복도와도 같은 공간을 어느정도 지났다. 내부라고 해서 외부의 갑판과 다를 건 없었다. 오히려 더 끔찍하고 지독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띈 것은 유난히 넓고 심하게 그을린 한 장소에 다수의 바이오로이드 골격과 함께 덩그러니 놓여있는 외골격 슈트였다. 사령관의 기억에 따른다면 이런 육중한 슈트를 운용할 만한 이는 이그니스 뿐이었다. 슈트 주위로 넓게 원 모양으로 그을린 것을 보니 유폭 된 것이라고 짐작한 사령관은 저도 모르게 이 끔찍한 흔적으로부터 당시의 상황을 그려본다. 이 이그니스가 전함으로 대피한 본인의 바이오로이드였는가 아닌가는 확신 할 수 없었으나 구도 상 다수의 바이오로이드에게 덮쳐졌을 걸로 짐작되는 바, 그 자가 만든 존재일 가능성이 높았다. 전함의 인원들이 이그니스의 접근을 허용한 것인지, 아니면 육탄돌격을 한 것인지 또한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을림 주위에 탄흔이 전혀 없는걸로 미루어보아 맨몸으로 맞닥드렸다고만 짐작 할 뿐이었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고, 다른 모든 전함들에서도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느냐고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은 사령관이었지만 어렵사리 침착함을 유지하고 그 흔적을 지나쳤다. 함교의 계단을 올라 우측으로 방향을 트니 다크엘븐과 아르망이 사령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기에 사령관은 걸음을 빨리해 다가가 입을 열었다.


"이 앞이야?"


"맞아. 틈으로 확인해 봤는데 아직 잘 묶여있어."


"들어 가자."


센서가 고장난 우그러진 문을 좀 더 억지로 넓히고 지휘실로 들어섰다. 지휘실 내부는 당연하게도 성한 곳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집요할 정도로 노려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부서져 있는데다가 함포와 갑판이 내다보이는 전방의 창문은 모조리 깨져있다. 연쇄적인 폭발에 의한 것이라고 짐작한 사령관은 얼마되지 않은 폭발흔 들을 보며 지휘실 중앙의 지휘석에 앉아 재갈을 문채 쇠사슬로 묶여있는 바이오로이드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 바이오로이드를 보자마자 지휘실이 이 꼴이 된 것을 납득해버린 사령관은 샬럿과 홍련에게 지시했다.


"재갈 풀어."


긴 머리채를 거칠게 붙잡은 홍련이 강제로 고개를 위로 젖히게 하자 샬럿이 재갈을 잡아 빼냈다. 잠이라도 들었었는지 쉰 소리를 내는 바이오로이드는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뭘 여유롭게 살펴보고 있어? 조져버려."


추가적인 사령관의 지시에 샬럿과 홍련의 사지가 포로에게로 날아들었다. 망설임이라곤 한 줌도 없이, 사령관의 지시와는 상관없이 감정이 실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타하는 샬럿과 홍련에 의해 포로의 몸에 감긴 쇠사슬이 물결치며 쩔그럭거리는 소리를 울려댄다. 사령관은 그것을 반찬삼아 담배를 한 대 피우며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를 살펴보았다. 수 분이 지나 그 담배가 전부 타들어가고 사령관의 손에서 떠나고 나서야 포로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지휘실 한 구석에 상태가 괜찮았던 의자를 발견한 사령관은 그 의자를 가지고 와 포로와 마주보고 앉았다.


"우아아…아아… 아파요… 너무 아파…"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통에 신음하는 포로를 보니 사령관은 고개를 갸웃 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사령관을 들었다 놨다 한 리리스와 베로니카가 아닌가. 그 둘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는 나이트 앤젤의 보고를 생각한다면 약간 맹해보이는 포로의 모습은 의심이 될 정도로 낯선 것이었다. 보급대에 침투했던 자들도 사령관을 후벼팠던 그 둘과 비교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포로에게서 느껴지는 맹한 인상은 받지 못했다. 사령관은 보급대와 교단의 선례를 생각해 절대 틈을 주지 않고자 포로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다짜고짜 뺨을 날렸다.


"꺄앗!"


강타당한 얼굴에서 가녀린 비명과 함께 묻어나온 타액과 혈액이 사령관의 손바닥을 더럽혔다. 불쾌한 오물이라도 본 것 같은 눈으로 손바닥을 본 사령관은 포로의 무릎에 슥슥 문질러 손을 닦아내고 복부와 그 커다란 가슴에 주먹을 연달아 날리고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게헤엑…! 케헥! 으엑!"


"뭐든 좋아. 말해 봐."


이번에야말로 숨을 고를 시간을 주자 호흡이 돌아온 포로가 훌쩍이더니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헛웃음을 터트린 사령관이 다시 일어서서 소매를 걷어 붙이려 하니 발을 동동구르며 다급히 사령관을 막아세운 포로가 입을 열었다.


"아파아…! 자고 있는데 다짜고짜 주먹질을 하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요!? 제 주인님께 전해들은 손님의 인상으로는 그런 분일 거라곤 전혀 생각되지 않았는데…!"


"이 씨발년이 진짜…!"


몸을 일으키면서 손을 치켜올리자 다시 꺄앗!하고 가녀린 비명을 지르며 움츠린 포로가 다급히 말했다.


"뭐, 뭐가 궁금하신 건가요!? 전 지나가다가 이 전함을 발견해서 들어온 것 뿐이에요! 손님은 이 전함을 살펴보고 나서 만날 생각이었다구요!"


"이봐. 키르케."


"에…네? 왜요 손님?"

 

트여있는 치마 속에 손을 넣고 허벅지를 살살 어루만지기 시작한 사령관에게 당황한 키르케에게서 딸꾹질이 터져나왔다. 사령관은 부드럽게 눈을 감고 키르케에게 다정하게 느껴질 법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고 싶어?"


"음…"


들썩이는 치마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은 키르케가 이내 활짝 웃어보이고 사령관에게 말했다.


"살려주시면 살게요. 죽이신다면 어쩔 수 없고!"


"그럼 다시 날 죽이러 올거냐?"


"음…"


허벅지에서 노니는 사령관의 손이 점점 비부로 향하는 것을 빤히 바라보던 키르케가 방금과 똑같은 모습으로 답했다.


"그럼요! 죽이든 말든 손님은 최우선 타겟이거든요!"


"죽이든 말든은 뭐야? 죽일거면 죽여야지. 날 살려둘 경우엔 어쩌겠단 건데?"


"음…"


"거 자꾸 왜 뜸을 들여. 빨리빨리 좀 대답 해."


키르케의 비부에 닿은 뭉툭한 지포 라이터가 음핵을 비벼댄다.


"이걸로 네 냄새나는 개보지 지져버리기 전에."


"히이이익!"


질겁하는 것은 키르케만이 아니었다. 아르망을 제외한 사령관의 일행도 그 말에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키고 만다.


"마, 마마마, 말할게요! 손님! 뭐든 물어봐요! 그러니까 그런 끔찍한 짓 하지 마세요! 살려둘 경우엔 말이죠!? 손님을 노리는 자들이 몇명있거든요! 리리스라던가! 베, 베로니카 라던가! 아 맞다! 베로니카는 죽었지. 고생했네요! 손님!"


"고생해?"


자신의 입장이나 처지를 모르고 있는건지 키르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그럼요! 고생하신거죠. 제조 된 다음에 금방 떠나버려서 같이 지낸 건 얼마 안되지만 우리 베로니카는 꽤 유난스러운 면이 있었거든요. 죽이시기 전에 직접 보셔서 아시잖아요?"


"그 리리스도 같이 묶어라. 됐고, 넌 유난스럽지 않다는 거냐?"


리리스까지 죽이셨구나! 하고 이상하게 반색하는 듯한 모양새로 대답한 키르케가 말을 이었다.


"저보고 우리 리리스나 베로니카 같지 않냐고요? 설마요! 전 지극히 정상이에요! 그 두명이 저희들 중에서 지독하기론 투탑이랍니다? 손님?"


손사래를 칠 수 없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키르케를 보니 순간 정말인가 싶었으나 베로니카도 처음에는 나긋나긋한 말투로 나를 대했었다고 떠올린 사령관은 살짝 모자라 보일 정도로 천진난만 하면서 맹한 키르케를 위아래로 훑고 다시 물었다.


"됐어. 그런 것 까진 안궁금해. 방금 저희들 중에서 라고 했지? 어디 한 번 너희에 대해 말해 봐."


키르케의 비부 쪽에서 맑은 금속음이 팅팅 하고 울리더니 다시 치마가 솟았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키르케는 비부를 살살 긁어오는 금속에 의해 과장된 신음을 흘리면서 곤란하게 웃어보였다.


"아아앙~ 손니임~ 대단한 정력가이시다고 듣기는 했는데 설마 이런 상황에서 까지 그런 걸 생각하고 계시나요? 상대도 안가리고서요? 으음…~ 이거 풀어주시면 한 번 쯤은 해드릴 수 있는데…"


피식 웃은 사령관이 하게 된다면 해드릴 수 있는게 아니라 당하는게 될 거라면서 지포라이터의 마개를 열었다. 그것을 알아챈 키르케가 다시 질겁하고 사령관의 질문에 대답했다.


"죄죗, 죄송해요! 장난 쳐 본거랍니다! 그, 그러니까 저희에 대해 궁금하신 거였죠!?"


"그래. 리리스나 베로니카는 나를 적대한다는 걸 감안해봐도 상식적인 바이오로이드가 아니었어. 네 주인이 만든 녀석들 중에 뭔가 특별한 거라도 있는거냐?" 


"아. 그건 있죠. 저희 주인님이 뭘 하신 거냐면…"


"오빠. 그 얘기를 들으려면 나도 같이 있어야 해."


불현듯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사령관이 고개를 돌렸다. 나이트 앤젤, 유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닥터가 사령관에게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닥터! 일어났구나. 괜찮니? 움직여도 돼?"


조용히 뚫어져라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샬럿을 쏘아보던 닥터가 힘을 들여 깊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사령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정말 미안해 오빠. 내가 어떻게 됐었나 봐."


"아냐아냐. 미안할 건 없어. 이해 해. 닥터는 오빠 바라기였잖아."


쓴웃음을 짓는 사령관에게 시선을 돌린 닥터가 샬럿과 홍련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작디 작은 닥터와는 상대도 안 될 무력과 체구를 가진 두 바이오로이드 였지만 그런 본인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닥터의 거대한 박력에 압도당해 눈을 질끈 감고 어쩔줄 몰라하다가 '똑바로 서. 내눈 봐.' 라는 말에 몸을 굳히고 만다. 파르르 떠는 두명의 눈과는 달리 조용히 이글거리는 닥터의 눈이 당장이라도 둘을 관통해버릴 듯이 응시하는 것을 보다못한 나이트 앤젤이 말리려던 차에 닥터는 애써 차분함을 되찾았다.


"오빠. 오빠 말대로 할게. 결국 나도 이런 것들이랑 다를게 없거든. 변명할게 있더라도 변명하지 않을게. 그래도 있잖아. 오빠."


샬럿과 홍련을 똑바로 올려다 보면서 말하던 닥터가 사령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단은 중요한 이야기를 오빠한테 해줘야 하니까 뒤로 미루겠지만 피를 보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반드시 끝을 볼거야. 여기서 얘기가 끝나면 바로라도 끝을 볼거야. 반드시 그래야만 해. 반드시 오빠가 알아야만 해. 오빠를 그렇게 만든 자들의 선택이 어떤 희생을 불러왔는가에 대해서. 적어도 내가 본 것만큼은 전부 말 할거야. 알겠지 오빠?"


"그래. 알았어. 닥터가 원하는 대로 해."


다정하게 미소 지어주는 사령관과 닥터를 멍하니 번갈아보던 키르케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와…와아~ 어쩜 이리 아름다울까~ 박수라도 쳐드리고 싶은데 손이 묶여서 미안해요~ 와~ 짝짝짝~ 헤헤…"


일부러 그런다고 봐도 좋을 반응을 보이는 키르케에게 순식간에 달려든 닥터가 마구잡이로 손과 발을 이용해 후려치기 시작했다.


"오빠! 설명은 내가 해줘도 되니까 이건 죽여도 되지!?"


"죽이지만 마. 죽이지만."


"흣! 앗! 오홋! 꺄악! 잠깐, 손님! 이 아이를 좀 말려주세요!"


"닥쳐! 닥쳐! 입 닥쳐! 죽어! 죽어!"


사령관은 닥터의 분이 풀리기를 차분히 기다려줄 셈이었으나 금방 지쳐버린 닥터가 헉헉 대면서 사령관의 옆으로 다가왔다.


"으… 너무 해…"


끙끙대는 키르케에게 바닥에 나뒹구는 파편 하나를 쥐어서 던지고는 닥터가 말했다.


"오빠. 오빠도 알겠지만 오빠가 만났던 바이오로이드들은 일반적인 바이오로이드와는 좀 달라."


"음… 닥터는 뭔가 알고 있는거야?"


왼팔로 오른팔을 감싸안은 닥터가 꼼지락대면서 키르케에게 고개를 돌렸다.


"알…지. 그 자가 만든 바이오로이드를 추가로 조정한 건 나거든."


"…"


"변명은 안 할게. 날 혼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해 줘 오빠. 지금은 다른게 더 중요하니까…"


"알았어. 계속 해."


"사실, 별 거 없어. 남다른 전투모듈을 탑재하고 비상식적으로 전투와 관련 된 부분만 강화시킨 바이오로이드한테 오리진 더스트를 추가로 이식하거나 투여했을 뿐이야. 내가 말하고 보니 별 거 아닌건 아니네…… 라비아타 언니를 생각하면 편해. 물론 라비아타 언니 만큼 오리진 더스트가 과하게 쓰인 건 아니고 여러명에게 분산했어야 했다보니 각 개체에 추가로 투입된 오리진 더스트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아. 하지만 충분히 강해질 만큼의 양이기도 해. 본판이 강했으니 뭐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서 오빠가 비축해뒀던 오리진 더스트는 진작에 바닥났었어. 얼마 안남았던 자원도 그 녀석들 추가로 조정한다고 그 놈이 거의 다 탕진했고."


"그 녀석들이란게 도대체 누구고 몇 명인거야?"


"나이트 앤젤 언니한테 들었는데, 블랙 리리스랑 베로니카는 만났다며? 그 둘은 내가 수술하게 됐으니까 기억해. 그 둘을 포함해서 존재했던 그룹이 하나가 있었거든. 무려 사령관 직속 부대라는 위치의 그룹. 당연히 그 나쁜 놈 얘기야. 소속 인원이 누구고 얼마나 있는지는 내가 다 담당했던게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딱 하나 확실히 말할 수는 있어."


"뭔데?"


"그 놈들이 엄청 강하다는 거. 무적의 용도 그 놈들 손에 죽었어. 뭐, 내가 일조해버렸으니 찝찝하긴 해도 동정은 안 해. 그야 오빠가 그렇게 되버린 것에 대한 대가인 거잖아."


"…"


"칸 언니도 그 놈들 손에 죽었고… 칸 언니는 죽어선 안됐어. 내가 할 소린 아니지만… 다른 것들은 다 오빠가 죽었을 거라 생각하고 멍청하게 굴 때 혼자서 오빠를 찾았거든. 게다가 언니 덕에 내가 살 수 있기도 했고…"


미안, 이라며 고개를 돌린 닥터가 소매를 눈가에 가져갔다. 슥슥 눈을 비비고 양 볼을 몇 번 쳐서 진정시킨 닥터가 아직 지워지지 않은 눈물자국을 얼굴에 그려놓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 그룹은 아직도 살아있어. 오빠가 살아서 그 둘하고 맞닥드렸던 걸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 할 수 밖에 없어. 여기 있는 키르케도 그렇고."


사령관과 닥터가 동시에 키르케를 바라보자 키르케는 기다렸다는 듯 거드름을 피우는 모양새로 조금이라도 귀여워 보이고자 깜찍한 헛기침을 해보이고서 입을 열었다.


"닥터 양이 도움을 주신 그 그룹! 제가 속한 그 그룹! 그 그룹의 이름은 바로!"


"…이 씨발년이 지금 지가 테마파크에 있는 줄 아나. 내가 말했지. 거길 지져버리겠다고."


"히이잇! 거긴 안 돼요! 죽일거면 곱게 죽여주세요!"


"똑바로 말 안해?!"


"사냥개! 저희 그룹 이름은 사냥개에요! 저희 주인님은 사냥개 중대라고 불렀는데요! 총 열두명이구요! 리리스가 둘 죽었고 베로니카도 죽었으니까 지금은 아홉명이네요! 아! 저도 죽이실꺼면 여덟 명이 되겠네요!"


"아픈 건 싫은데 죽는건 무섭지 않나보군?"


"…푸흡. 맞아요. 죽는 거 하~나도 안 무서워요. 아픈게 더 무서운데 그것도 그렇게 무섭진 않구요. 그러니까 사실 제 보지 지져도 상관없어요. 저도 좀 궁금하기도 하네요."


이전과 다르게 목소리를 내리깐 키르케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자 역시라고 생각한 사령관이었다.


"하하. 그럼 그렇지. 이것도 정상은 아니야. 그 두 년에 비해서 그나마 나을 뿐이지."


"어머! 그 둘 하곤 비교하지 말아요! 저 지극히 정상이거든요!?"


다시 텐션이 돌아온 키르케가 재잘대려는 걸 사령관이 가로 막고서 나이트 앤젤에게 지시해 닥터를 뒤로 데려가게 했다. 닥터가 키르케에게서 시선을 뗀 걸 확인하자 사령관은 다시 지포라이터를 쥔 손을 키르케의 치마 속에 집어넣고 비부까지 밀어넣어 맑은 쇳소리를 울려댔다.


"손님. 그러시면 말 안해줄 거랍니다?"


"지져도 상관 없다며?"


"아이 참! 라이터 말고 손님의 자지를 말한거잖아요! 그런 건 좀 눈치 채셔요!"


짜악!


가득 힘을 주어 빳빳히 다듬은 사령관의 손바닥이 키르케의 안면을 강타했다. 뒤이어 사령관의 무릎이 위에서부터 두툼한 복부를 연달아 내리찍다가 바닥에 고정된 지휘석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그 커다란 가슴팍에 꽂히자 키르케의 머리가 뒤로 넘어갔다.


"크하앗…! 헉! 아으윽…"


"말할거면 말하고, 아니면 그냥 입 다물고 있어. 너가 세번 째라 이제 슬슬 적응 됐으니까 헛소리하면 그냥 죽여 버릴거야. 알았어?"


"에… 으에…? 적응? 적응이라고 했어요오?"


몽롱한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는 키르케가 사령관을 올려다봤다.


"손님, 우리 적응 안되실텐데? 저도 적응이 안되는데 손님이 어떻게 적응을 해요? 적응 하시려면 우리처럼 되시는 거 외엔 답 없어요. 이미 아실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둔하시다~ 그래도 전 착한 키르케니까요. 조금 더 말씀드릴게요."


"…"


"저희가 다른 피래미들과는 다르게 강한 건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전부 다 엄청나게 강한건 아니구요. 저 처럼 비교적 썩 강하지 않은 개체도 있고 저보다도 약한 개체도 있어요. 손님이 만났던 리리스나 베로니카가 유난히 강한 개체고 그리고… 음… 어쨌든 센 언니들 많아요! 말씀드리면 아까우니까 나중에 직접 경험해 보시는게 어때요? 여덟 명이에요. 여덟 명! 아무리봐도 절 살려두실 것 같진 않으니까 저 빼고 여덟 명이에요. 아셨죠?"


"각 개체에 대한 정보를 불어라."


"에엥~? 스포일러 당하면 재미 없잖아요~ 괜찮아요?"


퍽- 퍼억- 우직-


다시 한 번 사령관의 손과 발이 자비 없이 키르케에게 날아들었다. 일행들의 시선 마저 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 망설임 없는 모습이 마음에 들은 키르케는 고개를 숙여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내고 다시 사령관을 올려다봤다. 멍이 얼굴 곳곳에 새겨졌음에도 키르케는 단 한 번도 고통에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았다.


"너무 거치시다~ 그렇게 궁금하면 말해줄게요. 아니, 그래도 짐작은 되지 않아요? 생각해 봐요. 리리스에 베로니카. 이 둘이 한 그룹에 속해있는데도 우리 주인님의 취향을 알아채지 못하겠나요?"


"…"


"엄청 치명적인 언니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건 이제 짐작 하시겠죠? 아이 참~ 이러면 숫가락으로 다 떠먹여 주는 거잖아요." 


"여덟 개체에 대한 정보. 불어."


"음… 두 명만 말해줄게요. 나머진 싫어. 네가 알아서 찾아 봐. 어짜피 가만히 있어도 널 찾아갈텐데 왜 애를 써? 당장 나조차도 우리 손님 찾아가려고 했는데. 기대해도 돼. 널 죽이고 싶어서 안달난 언니들도 있는 반면에 질펀하게 떡치고 싶어하는 언니들도 있으니까. 나도 그랬고. 아깝네. 이대로 가게 되다니."


"말 해."


"한 명은 스카디. 어짜피 스카디는 알아도 못막을테니까 그냥 알려준거야."


"…"


"나머지 한 명은 포츈. 얘는 뭐 볼 일이 있으려나?"


"샬럿."


"네, 폐하."


"죽여."


"아아! 손님! 손님! 잠깐만!"


"뭐야?"


샬럿에게 명하고 지휘실을 나서려던 사령관이 다시 돌아보자 키르케는 곁눈질로 뒤편의 창가를 가리켰다.


"내 가방 안에 선물이 하나 있어요. 안심해도 돼요. 위험한 거 아니니까. 혹시 알아요? 손님이 원하는 정보가 있을지. 자, 이제 끝! 어서 죽여주세요! 고통 없이 한 방에 부탁해요!"


"모두들. 샬럿 빼고 먼저 전함에서 나가있어. 홍련, 가방 수색하고 안전하다 싶으면 가지고 나가."


사령관의 지시에 움직이는 일행들 사이로 샬럿이 다가왔다.


"다 나간 걸 확인하면 시작해라. 이목구비를 하나씩 제거하고 사지를 잘라. 숨은 붙여둬라."


"…헤, 헤헤, 에헤헤… 너무 하신다 정말~"


"너무한 건 먼저 간 네 동료들이야. 지옥에 가서 그 둘을 탓해라."


"에휴… 알겠어요. 손님 말대로 할게요. 손님! 그럼 저 먼저 지옥가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요. 뒈져서 지옥에 오시면 그 땐 꼭 저랑 끈적하게 섹스하는거에요!? 아셨죠!?"


손님! 손님! 하면서 연신 외쳐대는 키르케를 뒤로 하고 홍련과 함께 지휘실을 나온 사령관은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면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머지않아 들려오는 비명과 같은 웃음소리가 스산한 전함 곳곳에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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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ㅎㅇ 또 왔습니다.


이제야 졸라 쎈 못된 년들에 대한 정보가 풀렸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남아있는 나머지 여섯 명은 누구일까요.


서서히 등장할테니 지켜봐주세요


개추와 리플 환영합니다


ㅂㅂ 또 쓰러 가겠습니다 피곤해서 퇴고는 안했으니 오타나 어색한 문장 있으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