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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니아 꼬시기

 

 “부탁이에요, 주인님. 티타니아를 꼬셔주세요!”


 커피를 마시고 있던 사령관의 입에서 물보라가 뿜어져 나왔다.


 삼안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컴패니언을 비롯해, 페어리 시리즈처럼 자매기가 구분돼있다.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고 끔찍이 아껴 일상 업무는 물론이고 전장에서도 뛰어난 효율을 보인다.


 그런 페어리 시리즈의 수장, 오베로니아 레아는 사령관에게 자신의 자매를 유혹해달라고 한 것이다. 이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냐면, 여자친구가 자신의 쌍둥이 동생을 여자친구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곤혹스러워하는 사령관이 할 말을 찾지 못하자, 레아와 함께 왔던 다프네가 나섰다. 품에 들고 있는 두꺼운 종이뭉치가 지금 건넨 제안이 가볍지 않단 걸 반증했다.


 “티타니아 언니가 제조되고 난 뒤 1달간의 행적을 정리해뒀어요. 개인의 자유를 침범하는 거 같아 꺼려왔지만, 지금 이대로 둬선 영영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요.”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사령관이 종이뭉치를 받아들어 천천히 살펴봤다. 맨 첫 장에는 티타니아 행동 관찰일지라고 방학숙제에나 쓰일 제목이 적혀져 있었다. 그 속의 내용물을 들여다보니,

 

 <3월 4일>

 티타니아 언니가 샤워하지 않았다.

 

 “첫 줄 읽어봤는데 돌아가도 돼.”

 “그 후에 내용이 중요해요.”


 레아가 진지한 얼굴로 서류 검토를 요구했다. 한 가지 화제에 집중하게 된 레아는 누가 와도 말릴 수 없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사령관은 하는 수 없이 계속해서 보고서를 넘겨 나갔다.

 

 <3월 5일>

 티타니아 언니의 분노와 증오가 점점 깊어져 간다. 레아 언니와 마주치면 눈을 부라리는 건 물론이고, 실수인 척 사고를 내려 한다. 오늘만 해도 레아 언니가 복도에서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르겠다.

 

 <3월 19일>

 레아 언니가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하자 티타니아 언니가 피자를 들고 왔다. 자신이 먹을 거라고 했으나 유혹할 의도가 분명했다. 굴복한 레아 언니가 무릎을 꿇으며 티타니아 언니에게 피자를 얻어냈다.

 

 <4월 6일>

 주인님을 유혹하기 위해 레아 언니가 큰맘 먹고 오드리님에게 부탁한 수영복이 사라졌다. 티타니아 언니는 그런 건 모르겠다고 대답했으나, 상의 밑 옷 색깔이 바뀌어있었다.

 

 “돌아가.”

 “심각한 이야기 중인데 이러시기에요?”


 사령관의 홀대에 단단히 삐진 레아의 눈썹이 중앙에 모였다. 다프네도 이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주인을 간절히 올려다 봤다.


 뭐 어쩌라는 거지. 사령관의 속마음이었다. 티타니아가 레아에게 분노와 증오를 품고 있는 건 알고 있지만, 이 정도면 건전한 장난에 불과하다. 드론으로 직접적인 공격을 하거나 날붙이를 들고 쫓아오는 건 아니니 감내할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레아와 다프네의 생각은 달랐는지 사령관에게 자신들의 얼굴을 바싹 들이 붙였다.


 “봐요, 여기. 눈 밑에 다크서클 생긴 거 보이세요? 티타니아가 얼마나 절 괴롭혀대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셔야 해요. 사람 피말리게 한다니까요?”

 “맞아요. 레아 언니가 다시 술을 시작하셔서 밤마다 저에게 하소연해요. 의무실 근무에 지장이 가니 꼭 좀 티타니아 언니를 교화해주세요.”

 “다프네? 이야기가 꼭 내가 너에게 피해 주는 것처럼 들리는데?”

 “제, 제가 그렇게 얘기했나요?”


 아군에게 공격당한 레아가 배신감 어린 표정으로 다프네를 쳐다보자, 동생은 황급히 얼버무리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죄송해요, 언니.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설명을 잘 못 하겠네요. 아무튼, 주인님. 그만큼 중대한 일이에요. 의무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 저도요. 이렇게 노화하다 할머니가 되면 주인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는걸요. 물론 오늘 밤은 문제없답니다?”


 부대를 관리하는 게 전략과 전술만 잘 세우면 될 줄 알았는데, 인간관계까지 조율해야 할 줄은 생각 못 했던 사령관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티타니아가 레아를 못되게 구는 건 알겠다. 그런데,


 “다 알겠는데 왜 내가 티타니아를 꼬셔야 하는 거야? 그냥 다른 방을 쓰면 되잖아.”

 “그건 안 돼요.”


 유혹하기 위해 웃음을 띄었던 레아가 손바닥 뒤집듯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티타니아가 절 증오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저 때문에 실패작 취급받고, 연구원들에게 몹쓸 일을 당했으니까. 원망할 대상조차 없었다면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주인님이 있으니까. 언니로서 티타니아를 보듬어주고 싶어요.”

 “레아...”


 마음 씀씀이에 감동받은 사령관이 말을 흐리다 본래 화제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내가 왜 꼬셔야 하냐니까?”

 “뭐, 대충 이렇게 왔다갔다 하면 주인님만 생각하느라 저한테 신경 쓸 겨를도 없지 않을까요?”

 “그 손동작 멈춰. 다프네도 보고 있는데 무슨 짓이야.”

 “저희 둘은 경험자라서 괜찮아요, 사령관님.”


 다프네가 괜찮다고 했으나 방향성이 잘못됐다.


 “내가 느낄 수 있는 수치감은 생각 안 하니, 애들아?”

 “그런 분이 저녁만 되면 저희에게 그런 것도 요구하시나요?”


 레아의 일침에 반박할 수 없던 사령관은 보고서 뭉치로 시선을 돌렸다. 얘길 들어보니 페어리 시리즈가 겪는 고충이 생각보다 커 보인다. 자신이 나설 때라는 걸 직감한 사령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수락했다.


 “좋아, 내가 티타니아를 꼬셔볼게.”

 “정말요?”


 화색이 된 레아가 확답을 요구했다.


 “그래. 대신에 아쿠아한테 어떤 지장이 생길지, 리제와 드리아드의 마음이 어떨지도 생각해 봐야 해. 다른 애들은 괜찮대?”

 “아쿠아는 괜찮을 거예요.”


 다프네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키스를 연애 관계의 Z로 알고 있는 아이니, 언니들이 화목하게만 지내도 기뻐할 거예요.”

 “생각해 보니 아쿠아도 슬슬 성교육을 시작할 나이인가?”


 레아가 자뭇 심각한 표정으로 다른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래... 어차피 나중엔 주인님과 연애 관계의 Z를 해야 하니까. 미리 교육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어떻게 생각해, 다프네?”

 “교본이랑 관련 서적을 모아둘까요, 언니?”

 “멈춰. 그 교육 중단이야.”

 “주인님, 어째서? 제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아쿠아도 여자아이인데...”

 “아직 2차 성징도 오지 않은 아이에게 뭘 가르칠 셈이야? 안돼.”


 사령관이 단호하게 반대했음에도 레아와 다프네는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를수록 사고 치기 쉬워요. 어느 정도는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맞아요. 여자의 몸은 복잡하니까 미리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어디까지 허락해줘도 되는지 알아둬야 해요.”


 두 사람의 논리적인 대꾸에 사령관은 그들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좋아, 대신 교육에 쓰일 교본과 서적은 내게 검토를 맡고, 어디까지 설명할 건지 미리 내 앞에서 말해줘. 너무 자극적인 건 안 돼.”


 깐깐한 조건을 들은 레아가 쿡쿡 웃었다.


 “과보호하는 주인님도 너무 귀여우셔.”

 “가장 귀여울 때는 품에 안길 때 아닐까요?”

 “그것도 빼놓을 수 없긴 해.”

 “그만! 그래서 리제와 드리아드는? 두 사람은 허락한대?”

 “리제는 특별하니까, 주인님이 작전을 개시했을 땐 저나 다프네 둘 중 하나가 리제 옆에 붙어서 못 보게 할게요.”

 “드리아드는?”

 “드리아드요?”


 자매의 이름을 들은 다프네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처음 보는 표정에 당황한 사령관이 이유를 묻기도 전에 간호사가 말을 이어나갔다.


 “잘못한 게 있는 사람은 발언권이 없어요.”

 “왜? 무슨 일인데, 드리아드가 뭘 잘못했어?”

 “사소한 일이니까 괜찮아요.”


 지금만큼 다프네의 웃는 얼굴이 무서웠던 적은 없다.


 상세한 이유를 묻고 따지기 전에 레아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어쨌든 본격적으로 계획에 나서는 거죠? 자, 모두 손을 모읍시다. 이번 작전명은 뭐라고 하죠?”

 “첫사랑 사수 궐기는 어때요, 언니?”

 “그건 너무 옛날 영화 느낌이다. 오르카 연애조작단은 어때?”

 “그것도 옛날 느낌이긴 한데... 가장 정확한 거 같네요. 오르카 연애조작단. 어감도 나쁘지 않구요.”

 “애들아,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너희들 설마 지금 이 상황을 즐기는 건 아니지?”


 신나서 작전명을 짜던 두 사람에게 사령관이 궁금한 걸 묻자, 두 사람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서, 설마요, 주인님. 아, 티타니아 때문에 빈혈이...!”

 “레아 언니! 언니가 쓰러질 정도로 고통받는 걸 보니 제 마음이...!”

 “됐어, 알겠어. 작전명은 어찌되든 좋고.”

 “오르카 연애조작단.”


 다시 생생해진 레아가 작전명을 강조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좋다니까? 앞으로-”

 “오르카 연애조작단이요, 주인님.”

 “-아! 오르카 연애조작단 작전, 시작하자고.”


 그리고 세 사람의 손이 모여 하늘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 자세로 굳었고, 가장 먼저 손을 내린 사령관은 조심스럽게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근데 어떻게 꼬셔야 해?”


 다가오는 여자만 상대해도 됐던 사령관은 본인이 직접 꼬시는 법을 몰랐다.


 작전이 시작된 후, 최대의 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