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_1화

분열_2화

분열_3화

분열_4화

분열_5화


“듣던 대로 기민하군! 상대로선 부족함이 없다!”


물기가 자욱한 하수도에서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인영이 둘. 상체를 깊이 숙여 바닥을 기다시피 질주하는 칸은 조금이라도 일행들과의 거리를 두기 위해 속도를 높여간다.


‘여기까지 왔다면...’


먹통이 된 GPS로 인해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벌어진 격차를 봐선 되돌아갈 여지는 없다. 쫓기는 와중에도 대원들의 안위를 걱정하던 칸은 시야에 드리우는 거대한 그림자에 출력을 반전시켜 낙하하는 놈의 사선에서 벗어난다.


“레이싱은 즐거우셨나요? 준비운동은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소 이만.”


“...”


리볼버 캐논의 총구를 비스듬히 들어 올리곤 허리를 굽혀 무게중심을 뒤쪽으로 이동시킨다. 칸이 전투에 임하는 이 자세는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재빨리 파고들 수도, 혹은 단발성의 탄환을 박아넣기도 유용한 위치를 선점한다.


“드디어 싸울 마음이 생기셨습니까.”


이에 보답하듯 라인리터 역시 전면부의 양측에서 빛나는 검신을 꺼내 든다. 작렬하는 번개를 입에 문 그 형상은 마치 죄인을 심판하는 길로틴을 연상케 해, 자연스레 보는 이의 오금을 저리게 한다.


“...”


“...”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는 둘.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짐을 기점으로 고개를 들어 포효하는 라인리터. 굶주린 듯한 맹수의 울음소리와 함께 전속력으로 전진한다.


***


3m에 달하는 거구가 앞발을 들어 위협하는 모습은 마주하는 이가 아니고선 도저히 짐작도 불가능하다. 숱한 전장을 뛰어넘은 칸조차도 자신에게 가해지는 압력에 괜스레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받아보시오!”


바닥을 부수듯 달려나간 라인리터는 상반신을 비틀어 사출된 입자를 검처럼 휘두른다. 받아낼 수 없다고 판단한 칸은 급히 뒤꿈치의 바퀴를 역방향으로 회전시켜 거리를 벌린다.


“흐아압~!”


거센 기합 소리와 함께 몇 번이고 휘두른다. 시끄러운 녀석이라 생각한 칸이지만 하수도의 벽면을 두부처럼 내리긋는 절삭력에 방심의 끈을 놓을 순 없는 노릇.


“당당히 맞서시오!!”


앞발을 들어 올려 발길질한 라인리터는 전면부의 빛을 폭발하듯 쏘아내 가로막는 모든 것을 도려내 간다. 자신을 추격하는 파괴적인 광선에 다시 한번 출력을 반전시켜 빈틈을 노리는 칸.


‘가속하기 시작하면 피할 수 없어. 거릴 유지하면서 위치를 선점해야...!’ 


물기가 만연한 바닥을 팔꿈치로 고정해 신속히 전방으로 슬라이딩한다. 머리 위를 훑는 푸른빛의 섬광을 곁눈질한 그녀는 다시금 튕기듯 일어나 라인리터의 옆구리에 주저 없이 탄환을 꽂아 넣는다.


콰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매캐한 화약 내가 코끝을 스친다. 하지만 연기가 걷히고 나타난 라인리터에겐 약간의 그을음만이 남았을 뿐, 오히려 뒷발을 차며 전의를 다지기 시작한다.


“훌륭하다. 과연, 멸망 전부터 살아남은 이유가 있었어.”


“그 정도 거리여도 안되나...”


“기사의 갑주는 주인의 명성과 함께하지. 쉽사리 뚫을 순 없을 거다!”


재차 서로를 노려보는 둘. 눈살을 찌푸린 칸은 추진기의 불꽃을 점화해 선공에 들어간다.


***


물줄기를 가르며 속도를 높인 칸은 하반신에 내장된 긴 칼날을 사출. 고개를 숙여 마주 오는 푸른 검강을 회피하곤 곧장 하수도의 벽면을 따라 준비된 검신을 쏘아 보낸다.


가열된 날붙이가 벽면을 긁으며 번쩍이는 섬광을 새겨간다. 찢어지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로 울부짖는 한 쌍의 늑대가 눈앞으로 쇄도하자, 앞발에 달린 궤도를 회전시키는 라인리터.


“소용없다!”


들어 올린 발을 그대로 콘크리트 바닥으로 내려찍은 그는 칸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 이윽고 날카로운 쇠붙이가 서로를 갉아먹으며 불꽃을 흩날리지만, 칠흑의 성벽은 미동조차 없다. 


끝내 힘을 잃고 튕겨 나간 칸의 공격에 자랑스러운 듯 전면부를 불태우는 라인리터. 하지만 있어야 할 목표물은 빠른 속도로 자신의 다리 사이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


눈앞의 AGS는 조잘조잘 떠드는 모양새완 달리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상대인 모양. 전투가 시작된 뒤부턴 한치의 방심조차 없이 움직임 하나하나에 페인트와 카운터마저 일삼는다.


‘녀석과의 거릴 완벽히 줄여야 해. 저기라면...’


더스트 스톰에서 사출된 칼날은 허망하게 뒹굴었지만, 놈과의 거릴 좁히는 덴 성공했다. 자신의 공격에 맞서고자 앞발이 고정된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 성공적으로 미끄러진 칸은 라인리터의 하복부에 총구를 밀착시켜 그대로 격발시킨다.


콰앙!!!


영거리에서 가해진 공격은 라인리터의 커다란 동체마저도 충격에 붕 뜨게 만든다. 그런 녀석의 뒤쪽으로 빠져나간 칸은 곧바로 상체를 일으켜 추가타를 위해 손을 들어 올리는데.


“...!!”


무언가 잘못됐단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눈앞으로 파고드는 시꺼먼 물체에 피할 새도 없이 손에 든 리볼버 캐논을 들어 올려 방어한다. 시야가 뒤틀릴 정도의 막강한 충격.


“커얽...?! 크읍... 쿨럭...!!!”


넘쳐흐르는 피를 토해내며 고통에 신음하지만, 아파할 시간 따윈 없다. 쉬지 않고 달려드는 발길질에 가슴을 움켜쥐고 추하게 바닥을 굴러다니는 칸. 하지만 라인리터는 그런 그녀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후방으로 물러난다.


“더는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갑작스레 네 개의 발을 굽혀 양측으로 캐터필러를 펼치는 라인리터. 부상으로 쇼크 상태에 빠진 칸이지만 정확히 자신을 향한 채 펼쳐지는 포신의 모습에 필사적으로 다릴 움직인다.


황금빛 흔적을 남기며 내달리는 탄환. 코앞까지 치닫는 사신의 손아귀에 반쯤 망가진 리볼버 캐논을 강제로 격발시킨다. 터져나가는 충격에 몸을 맡긴 채, 그녀는 무의식의 파도에 잠식돼간다.


***


삐이이이이익---


귀를 때리는 이명에 참았던 숨을 터트리는 칸. 핏물이 흐르는 관자놀일 필사적으로 움켜쥐며 고개를 드는 그녀의 눈엔, 시꺼먼 연기를 흩날리는 화창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 상태로 피한 겁니까. 기민한 움직임은 흥미롭지만... 슬슬 시간이 됐군요.”


“시, 시간... 이라고...?”


헐떡이며 곱씹는 칸. 그런 그녀를 거들떠도 보지 않은 라인리터가 말을 이어간다.


“바깥의 상황을 아십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순간, 칸과 라인리터가 있는 지하도 전체가 크게 흔들린다. 처음엔 작은 진동에 불과했지만, 점차 흔들림이 심해지며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 지경.


“시작됐군요. 당신의 동료인 스틸라인과 발할라도 슬슬 도착했을 겁니다.”


“무슨 소릴...! 걔들이 여길 왜?!”


커다란 화창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곤 다시 접었던 발을 되돌린다. 그 모습에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칸도 돌아온 더스트 스톰의 칼날을 양측으로 펼쳐 전의를 불태운다.


“제게 이긴다면... 당신의 궁금증을 풀어드리도록 하죠.”


“...AGS는 거짓말 같은 건 안 하겠지?”


“재치까지 겸비하신 분이셨군요. 걱정 마시길. 제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죠.”


그 말을 끝으로 라인리터는 번개처럼 질주한다. 견고한 성벽과도 같은 방금까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다시금 폭주하는 짐승으로 변한 그는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짓뭉개간다.


***


우회 따윈 없는 일직선으로 정직히 돌진하는 라인리터. 하지만 칸 역시도 담판을 지을 생각인지 발끝의 추진기와 함께 골반의 로켓까지 태워가며 정면으로 질주한다.


“훌륭한 기사의 귀감이군! 와라!”


눈가를 적시는 핏물이 되려, 쓰라린 상처를 다듬어가 정신을 각성시킨다. 마주 오는 놈을 향해 발끝의 칼날을 발사시키는 칸. 라인리터의 목소리에 실망의 빛이 감돈다.


“마지막 발악입니까. 좀 전보단 빠르지만 소용없습니다!”


다시 앞발의 궤도를 회전시키며 달리는 라인리터. 이젠 방어조차 하지 않는 그는 속도조차 줄이지 않고 근접한 칼날을 밟아 깨뜨려버린다. 비산하는 파편들 사이로 다시 한번 미끄러지는 칸.


다시 한번 라인리터의 뒤쪽으로 자리 잡은 칸은 자신을 추격하는 뒷발을 차고 올라 놈의 위쪽으로 떠오른다. 그런 그녀의 손엔 어느새 깨져버린 더스트 스톰의 칼날 파편이 쥐여 있다.


“안일하군요, 호드의 칸. 끝입니다!”


동체를 낮춰 접힌 화창을 꺼내 드는 라인리터. 그 모습을 포착한 칸은 하수도의 천장을 발판삼아 쏜살같이 놈의 위로 떨어진다.


“ㅁ, 뭣?!”


“포신만큼은... 외골격으로 두르지 못했나 보지?”


화창의 측면에 꽂아 넣은 칼날을 추락하는 힘까지 실어 내리긋는다. 이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힘을 짜내 포의 각도를 90도로 틀어버리는 칸. 둑이 터지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승리의 축포가 울려 퍼진다.


***


후두둑.


콘크리트 무더기가 한꺼번에 쏟아지며 통로가 무너진다. 화창에 직격으로 당한 천장은 그대로 떨어져 라인리터를 덮쳤으며, 폭발로 날아가 버린 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자신을 괴롭히던 고통은 물론, 뺨을 적시는 물의 감촉과 건조한 곰팡이 냄새, 이리저리 뒤섞이는 시야까지. 제 기능을 잃은 감각들에 그저 잠자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현실.


“살아... 있나. 호드의... 칸...”


저 멀리 콘크리트 더미에서 들려오는 지긋지긋한 목소리. 설마하니 무사하진 않겠지만 완벽히 끝장나지도 않은 모양이다. 암담함을 느끼는 칸에게 라인리터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속삭인다.


“경의를... 표하지... 그대의 승리... 다...”


“...”


어떻게든 입을 벌려보지만, 마취라도 된 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가는 라인리터.


“곧... 스틸라인과 발할라... 둘을 갈라놓기 위한... 작전이 시행된다... 어느 쪽이 이기든... 상관없어... 마지막엔 모두가... 먼지로 사라... 진... (노이즈)”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곤 작동을 멈추는 라인리터. 완전히 행동불능에 빠진 그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칸은 녀석이 한 말을 속으로 되새긴다.


‘둘을 갈라놓다니 그게 무슨...?! 어서 움직여야... 하는 데...’


좀처럼 움직일 수 없는 몸에 눈살을 찌푸린 칸. 그런 그녀의 뒤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지? 녀석의 동료인가?’


이대로면 당한다고 생각한 칸의 귀엔 전혀 의외의 인물이 등장한다.


“훠우~! 진짜 이길 줄은 몰랐는데요~ 꺄하하핫! 역시 대장님이야.”


경박한 웃음소릴 터트리며 다가온 하이에나. 분명 하수도에 진입한 뒤부터 모습을 감춘 그녀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한 칸이지만 현재로선 마땅히 방법이 없다.


“꺄하핫! 무서워라.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대장님~ 설마하니 제가 움직이지도 못하는 대장한테 폭탄이라도 던질까 봐요~”


능청스럽게 이를 보인 하이에나는 앞으로 나아가 콘크리트 무더기에 깔린 라인리터를 내려다본다.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더니 꼴이 그게 뭡니까? 꺄하핫! 진짜 웃겨.”


“너는... 뭘 꾸미고 있지...?”


“우왓~! 그 꼴인데 아직도 말을 해요?! 아무리 우리 대장님이라지만 조금 소름돋는데...”


힘들게 내뱉은 말에 화들짝 놀라는 하이에나.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양 손바닥을 내보이며 손사래를 친다.


“꾸미긴 뭘 꾸며요~ 당.연.히 우리 대장님 구해주러 왔지~”


“...폭탄은?”


“...”


칸의 물음에 얼굴에 떠오른 웃음기를 지운 하이에나. 이윽고 깊은 한숨을 쉬더니 머릴 긁적인다.


“그 지경에 잘도 봤네요. 네, 맞아요. 지금 폭탄은 없어요. 어딘가에... 좀 쓸 일이 있어서요. 요건 비상용이에요. 뭐, 그래 봤자 대장이 어쩌겠어요~? 다 죽어가는 생쥐 꼴인데.”


천천히 쓰러진 칸을 향하는 하이에나. 이윽고 등에 멘 샷건을 그녀의 머리에 겨누곤 나지막이 읊조린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나요? 대장의 소중한 부하들한테는... 제가 직접 전해드리죠. 걱정 마요. 저쪽의 뭉개진 녀석이랑 같이 장렬히 싸우다 죽었다고 둘러댈 테니.”


눈앞으로 다가온 총구를 바라본 칸은 조용히 눈을 감는다. 유감스럽게도 현재로선 하이에나에게 저항할 수단이 남아있지 않는 상황.


“없어요? 꺄하핫! 마지막까지 대장답네요. 그럼, 잘 가요. 호드의 전설이여, 바이 바이~”


콰앙!!!


***


샷건에서 뿜어져 나온 소리치곤 묘하게 박력이 넘친다. 라인리터가 부순 하수도의 천장이 갈라지며 다시 한번 지면이 추락한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것들도 껴있는 모양.


“아야... 이게 무슨 일임까?! 레프리콘 상뱅님! 노움 상뱅님! 이프리트 뱅자... 으악~?!”


“일병 놈이 건방지게 병장을 깔고 앉아?!”


“레프리콘, 괜찮아요?”


“네... 전 괜찮아요, 노움.”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등장한 4인조. 브라우니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이프리트와 머리를 부여잡은 레프리콘을 옆에서 부축하는 노움. 반가운 이들의 모습에 방금까지 자신을 위협하던 하이에나가 사라진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만 칸이었다.


***


“좀 어때? 아직도 그대로야?”


“꼼짝도 안 해요, 레오나 대장님.”


도심지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으로 산개해 숨어 들은 발할라 대원.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들을 추격하던 스트롱홀드 부대는 움직임을 멈춘 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피해까지 상정한 레오나지만 공격 의사를 전혀 내비치지 않은 그들로 인해 난처하긴 마찬가지.


“저, 정말로 저흴 지원하기 위해서 왔다거나... 는 아니겠죠?”


“베라. 아까도 말했지만... 응?”


질린 표정으로 베라를 바라보던 레오나는 갑작스레 자신의 관측 프레임에 포착되는 미지의 적에 혼비백산한다.


“레오나 대장님! 적습입니다! 뒤쪽이에요!!”


“말도 안돼. 도대체 누가...?!”


계속해서 스트롱홀드의 움직임을 경계하던 그녀다. 때문에, 도시의 외곽에 자리 잡은 녀석들을 예의주시했으나 공격은 다름 아닌 반대편에서 날아들었다.


“스틸라인입니다! 레오나 대장님, 스틸라인의 셀주크가!!”


“확실해?! 걔들이 우릴 왜...?!”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스트롱홀드 부대로도 모자라 이번엔 스틸라인이? 판단이 서지 않아 갈팡질팡하는 레오나의 어깨를 곁에 있던 베라가 힘껏 밀어낸다.


콰앙!!!


“쿨럭... 베라? 베라, 대답해!”


흐르는 피를 거칠게 닦아낸 레오나는 무너진 잔해에 묻힌 베라를 발견한다.


“젠장, 베라! 날 봐! 베라!!”


“대, 대장님... 전 괜찮으니 대원들을...”


쓰러진 베라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꼴사납기 그지없다. 뺨을 세차게 때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서둘러 통신을 연결해 지원을 요청한다.


“발키리! 어딘지는 모르지만 서둘러! 그리고 위생병! 위생병은 지금 당장...”


다시 한번 귀를 때리는 폭음이 울린다. 전과는 조금 소리가 다르지만, 무너지기 시작한 건물에 더는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한 레오나는 베라를 등에 업고는 발을 디딘다.


“ㅁ, 뭐?!”


내디딘 바닥이 힘없이 추락한다. 다친 베라를 끌어안은 레오나는 순식간에 건물의 지하로 짐작되는 곳으로 떨어진다.


“아파...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스틸라인이 갑자기 우릴 왜 공격하는...”


쓰라린 어깨를 부여잡고 일어난 레오나는 뒤쪽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서둘러 권총을 빼 든다.


“누구야? 나오지 않으면 쏘겠어.”


“워, 워~ 진정하라고, 레오나 대장. 나야, 나. 호드의 하이에나.”


“...하이에나? 네가 어째서 여기에?”


궁금증을 표한 레오나는 단말기에서 들려오는 믿을 수 없는 통신에 다시 한번 눈을 치켜뜬다.


『여기는 발할라의 스트롱홀드. 지금부터 전방의 스틸라인을 적으로 판명. 공격을 개시한다. 반복한다. 여기는 발할라의...』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이! 밖에 누구 없어? 내 말 안 들려?! 누구라도 좋으니...!!”


“아, 아~ 아마 지하여서 그렇지 않을까요? 저도 아까부터 통신이 안 되더라고요~”


“쳇...”


혀를 차는 레오나에게 하이에나는 밖으로 향하는 길이라며 반쯤 갈라진 계단을 가리킨다.


“레오나 대장 뒤쪽에 있는 그 계단! 그쪽의 계단을 이용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어!”


“...”


눈살을 찌푸린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늘어진 베라를 어깨에 메고 몸을 돌린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하이에나의 입은 깊은 호선을 그리며 옆으로 찢어진다.


“내가 좀 도와줄까요? 아무리 부대가 다르다지만 대장에게 짐을 맡길 순... 으앗?!”


갑작스레 울리는 발포 음. 무슨 일이 일어난 지 깨닫지 못한 하이에나는 이내 자신의 허벅지를 관통한 흔적에 바닥을 뒹군다.


“아프잖아~!!! 뭐 하는 짓이야, 이게?! 으, 으악~?!”


고통에 신음하는 그녀에게 재차 날아드는 탄환. 눈물을 머금은 하이에나는 급히 뒤꿈치의 추진기를 이용해 사각으로 사라진다.


“무슨 짓이야, 레오나 대장! 아군을 쏘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넌 내가 바보로 보이나 봐? 방금의 포격은 위협에 불과했어. 건물을 무너뜨릴 정도가 아니란 소리야. 네 꿍꿍이가 뭔진 모르겠지만 놈들이 우리 발할라와 스틸라인을 이간질하려는 속셈인 건 안 봐도 뻔하네.”


근처 기둥에 베라를 눕힌 레오나는 권총을 들어 올려 하이에나가 몸을 숨긴 망가진 차량을 조준한다.


“그래서? 네가 입을 열려면 앞으로 구멍을 몇 개나 더 뚫어야 할까?”


“아하하... 그만해, 무서우니까~ 알았어, 알았어. 항복! 항복이야!”


두 손을 번쩍 들어 귀에 붙인 하이에나는 과장된 몸짓으로 천천히 레오나를 향해 걸어온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절뚝이는 무릎과 동시에 바닥에 새겨지는 핏자국이 절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탕!


“씨이바알~!!!!”


반대쪽 다리마저 쏴버리는 레오나로 인해 바닥을 한번 더 나뒹구는 하이에나. 하지만 권총을 쥔 레오나의 표정은 한없이 차갑기만 하다.


“이해를 못 했나 보네. 네 항복을 받아주겠단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굳이 네 자백에 시간 들일 생각도 없고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흐익?!”


코앞에서 바닥에 박히는 탄환에 정신이 번쩍 든 하이에나. 아무래도 이 여자를 너무 얕본 모양이다. 급히 들어 올린 샷건으로 천장을 쏜 그녀는 필사적으로 기어 가까운 기둥 뒤로 몸을 숨긴다.


“...쿨럭! 그래, 그게 네 대답이겠지?”


하이에나가 쏜 천장에서 쏟아진 먼지와 돌가루가 시야를 가리지만 그 덕에 바깥으로 향하는 작은 구멍이 생겨난다. 곁눈질한 레오나는 생각보다 높은 거리에 혀를 차고 만다.


“계획이 바뀌었어. 널 끝장내고 무기를 뺏어 직접 길을 만드는 게 더 나을 것 같네.”


“꺄하핫! 너무 그렇게 매정하게 굴지 마~ 나 같은 놈이 지휘관 개체랑 또 언제 싸워보겠어. 느긋하게 있다 가라... 고!”


손에 쥔 샷건을 레오나가 서 있는 자리로 겨누곤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다. 지휘에만 특화된 저년은 피할 수 없... 을 텐데...?


사방을 가득 채운 먼지가 내달리는 샷건 탄환과 함께 파헤쳐진다. 하지만 어째선지 있어야 할 쓰러진 레오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 어디 간 거야?! 분명히 저기에...”


눈을 크게 뜬 하이에나는 서둘러 더럽혀진 바닥을 뒹굴어 몸을 숨긴다. 방금까지 그녀가 기댄 자리의 측면에서 날아든 탄환이 기둥에 박혀 먼지를 일으킨다.


“잽싸네. 하긴, 호드 애들 특징이지.”


나타난 레오나의 뒤로는 사방으로 빛의 입자를 흩뿌리는 전투 관측 프레임이 특유의 구동 음을 울리며 펼쳐져 있다.


“하지만 미숙해. 속도라면 워울프가, 화력이라면 퀵카멜이, 엄폐라면 탈론 페더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잖아? 너, 죽을 거야.”


“하, 하하... 개새끼가!!”


한껏 찡그린 얼굴을 든 하이에나의 표정은 살의와 굴욕으로 뒤덮여 흉측한 모양새다.


“얼른 끝내자. 나도 바쁜 몸이야. 너 따위를 상대할 시간은 없어.”





전투씬이 여러분의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항상 부족한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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