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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a.live/b/lastorigin/24568964 전편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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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통신기에서 스파크와 함께 허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크고 작은 탄흔으로 가득한 통신실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으니 통신기가 또 한 번 폭발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


들어낸 유미의 시신을 통신실 바닥 한 켠에 뉘였다. 살해가 목적이 아닌 훼손이 목적이라 봐도 좋을 정도로, 유미의 시신은 처참한 상태이다. 머리는 일부만 터져나가 붙어있느니만 못했고 두 다리도 다를게 없었으며 복부와 흉부는 완전히 터져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소매가 붉다. 유미의 머리였던 것에서 튄 육편 탓이었다. 나는 혹시나 유미가 슬퍼할까 동요하지 않고 조심스레 육편을 떼어내고서 유미가 자주 애용하던 숙직실로 들어갔다.


"윽…"

 

내 기억 속의 숙직실은 꽤 심심한 무채색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숙직실의 온 사방이 유채색으로, 끈적한 진홍빛을 띄고 있다. 그 아찔한 광경에 현기증이 들이닥친다. 구석에는 노움과 포티아로 추정되는 시신이 두 구. 이 둘의 피를 도료 삼아 숙직실의 벽에 펴발라 칠했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느냐고 물어 볼 것도 없었다. 다크엘븐의 짓이다.


이 몇일 간 그렇게나 쫓던 다크엘븐은 허무하게도, 이 숙직실에 있었다. 그것도 숙직실의 한 가운데에 목을 매단채로. 젠장… 또 다시, 이번에도 늦었다. 섬의 곳곳을 이잡듯이 뒤지고 쫓았는데도 오직 나만이 다크엘븐과 단 한 번도 조우한 적이 없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부터 수상하다고는 생각했다.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그러나 그 의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일 수는 없었다. 불확실한 것도 많았다. 불안한 응어리는 점점 커져 끝내 각하께 말씀드려볼까 했지만, 항상 바쁘신 각하를 따로 뵐 시간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말 급했다면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만들 수도 있지 않았겠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다크엘븐이다.


다크엘븐은 각하께 남다른 의미를 갖는 존재다. 아마도, 한 때의 나와 비슷한 위치이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도 남다를지 모를 일이다. 나와는 다르게…… 각하께선 그래서 다크엘븐을 구조 하신 것이고, 그래서 품으신 것이다. 그런 존재를 감히 의심할 이가 있을까. 나조차도 내가 착각하는 것이라고, 마주치지 못한 것은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내내 되뇌였을 정도다.


그런 존재에 대한 의심을, 그렇게나 불안정하신 각하께 고한다니. 어느 누가 가능 하겠는가? 이미 충분히 괴로워하신 각하께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말씀 드려봐야 근심만 더 지워드릴 뿐일텐데.


그러나, 그것은 실수였다. 그렇기에 후회한다. 자격이 없다 자책하고, 의미도 없고 쓸데없는 배려를 한 끝에 각하께서 더욱 괴로워 하실 상황이 만들어졌다. 각하께서야 어떻든, 붙잡아서라도 보고를 드렸어야 했다.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불가능한 것임을 제대로 받아들였다면 바로 각하를 찾아 뵈었어야 했다. 


"…"


벽에 펴바르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지, 붉은 도료들에는 아직 점성이 남아있다. 군데군데 조금씩 흘러내리기도 한다. 이제야 겨우 시야가 강렬한 진홍색에 적응 되자 바톤 터치를 하듯이 의식하지 못했던 피비린내가 코를 찔러온다. 이 이상 숙직실에 있을 이유는 없다. 나는 처량하게 매달려있는 다크엘븐을 밀쳐내고서 벽 한 켠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벽에 피로 휘갈겨 적힌 문구를 확인하고는 한시라도 빨리 다음 행동을 취하고자 숙직실을 떴다.


'기뻐 해. 당신. 

구원의 때가 왔어.

이제 곧, 괴로운 것은 모두 사라질 거야.'

   



/



  

통신실을 나서니 저물어가는 하늘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꽤 굵고 양도 많은 걸 보니 소낙눈은 아니다. 새나오는 입김을 응시하며 병영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바로 다음 행동에 나설지 고민하던 차에 통신기가 울렸다. 


"발키리! 발키리! 들려요!?"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은 샬럿이었다.


"말씀하시죠."


"폐하의 지시에요! 한시라도 빨리 닥터를 찾아요!"


"그러려던 참이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샬럿."


어깨에 맨 소총을 고쳐잡고 조정간을 단발로 조정한다. 온도 탓인지 조정간은 조금 뻑뻑했다.


"각하께선 괜찮으십니까?"


"…괜찮으실리 없잖아요."


통신기 너머로 들려오는 샬럿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보아왔던 것이 어려있는 듯 했다.


"…각오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찾아뵈었던 겁니다. 각하께서 살아계신 이상, 단념도 체념도 하지 마세요."


"…그래요. 그러면 안되죠. ……저는 지금 폐하와 해안으로 향하고 있어요. 폐하께는 제가 붙어있을테니 닥터 쪽을 부탁해요."


"해안? 왜 해안으로…" "네?"


어떻게든 내무실의 상황은 정리 된 것 같다. 물론, 마지막으로 본 상황이나 샬럿의 말로 미루어보아 썩 좋게 마무리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각하께서 곧 바로 행동하실 일이 생긴 것인가, 아니, 그렇기 때문인가. 그것도 해안이라니. 나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계속 속에서 캥겨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헤매인 것은 잠시뿐, 이어진 샬럿의 말에 다시 소총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쨌든, 한시가 급해요. 부대 전체에도 상황이 떨어졌어요. 부탁할게요. 발키리. 닥터를 찾아요."


"알겠습니다."



//




"저깁니다! 저기!"


해안에 도착하자 2744번 브라우니가 손가락을 치켜들어 얼마 높지 않은 공중의 한 켠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펑펑 내리는 눈 사이에서 체공 중인 기동장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완전히… 완전히 미쳐 버렸습니다!"


닥터를 찾으라는 지시를 내리고 난 다음에도 나이트 앤젤과의 언쟁은 계속되었다. 그 보고가 있기 전 까지는.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


겨우 행색만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메이의 웃음소리는 강해지는 바람과 눈발을 뚫고 쩌렁쩌렁 울려온다. 보고대로다. 옥좌에 앉아 바다 쪽을 향하고서 미친듯이 웃고 있는 메이는 브라우니의 외침 그대로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봐도 좋을 모습이었다. 


"메이! 내려 와! 메이!"


달려나가는 나이트 앤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메이는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고 광소한다. 보고대로면 약을 했다는 것 같은데, 과연 약만으로 저렇게 될 수 있는 것인가. 내 마지막 기억 속의 약을 한 메이는 예상치 못한 자극에 발광하긴 했어도 그 전까진 시체 마냥 누워있기만 했을 뿐이었다.


"아하하!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그러나 지금의 메이는 많이 다르다. 경직되어 굳은 얼굴을 비틀어 억지로 잇몸을 내놓고 두 눈은 부릅뜨고 있는 것이, 마치 별세계라도 목도하여 완전히 넋이 나간 미물을 보는 것 같다. 


"젠장! 거기 가만히 있어! 금방 해독해 줄게!"


메이의 근처까지 다가가자 나이트 앤젤은 메이에게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동행한 대원들이 메이를 향해 총구를 겨눠드는 것을 나는 한 손을 들어 제지하고서, 해독제를 투여하려는 나이트 앤젤과 얼굴만은 바다를 향한채 맹렬히 저항하는 메이의 엎치락뒤치락하는 현장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윽…"


눈꽃 한송이가 눈에 떨어졌다. 꽤 굵은 녀석이었기에 눈물과 함께 소매로 닦아내니 뒤이어 두통이 엄습한다. 어떻게 해야하지. 병영에서 메이는 말리려들던 대원들을 죽였다고 들었다. 처벌해야 하나? 주위에 펼쳐 선 대원들로 보건데, 결코 메이를 가엽게 여기지도, 동정하지도 않는 표정이다.  


'대답해주세요. 왜 여기까지 떠나오신 거죠? 제 발로 떠나셨으면서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오셨냔 말이에요.'


"…씨발."


나이트 앤젤의 마지막 물음이 머릿 속에서 소용돌이 친다. 나는 그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분노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왜 지내던 해안을 떠나와 그녀들과 마주하게 된 걸까. 나이트 앤젤의 말대로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기억이 흐릿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안개가 짖어진다. 그 안개를 흩고서 더 나아가더라도 아무 것도 없다. 


"…"


라고, 또 다시 나 자신을 속인다. 그러나 이제는 속일 수 없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맨 처음, 그녀들을 만나고 감정 가는대로 행동하겠다고 나 자신에게 고했던 것은 거짓말이다. 용서도, 처벌도 하지 않겠다 한 것은 거짓말이다. 떠나든 말든 신경쓰지 않겠다고 한 것도 거짓말이다. 모두, 모두 거짓말이다.


"…미안해."


이럴 생각은 없었다. 메이가 저렇게까지 내몰리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뽐내듯이,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다고 외쳐댄 주제에 샬럿과 홍련의 과거를 다시 들추어냈다. 아르망이 어떻게 되든 전부 책임질 것 처럼 굴었으면서 끝끝내 아르망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병신 새끼. 이런 덜떨어진 새끼가 사령관이었다니. 그 것 뿐인가? 강단이 서지 않아 더치 걸과 LRL을 떠나 보내게 된 건 또 어떤가. 발키리와 해후한 것이 그렇게나 기뻤으면서 그 누구 보다도 발키리에게 매몰차게 군 것은 또 어떠냔 말이다. 그리고,


"메이! 이제 약이 들거야. 조금만 참아!" "아…아아…"


코헤이의 천사들을 내 손으로 잔혹하리만치 패 죽인 것은 어떤가. 

전부 다, 물어 볼 것도 없다. 모두 내 탓이다. 사령관이란 직책을 내려놓고 제 발로 오르카를 떠난 내 탓이다.


"메이… 사랑해. 그러니까 제발…"


옥좌에서 주사기 여러 개가 투둑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모래사장은 드물게 눈이 쌓이고 있다. 메이를 끌어안은 나이트 엔젤의 얼굴에서 하늘의 눈꽃 보다도 더 하얀 눈꽃송이가 휘날린 것 처럼 보였다. 나는 잠잠해져가는 머릿 속의 소용돌이를 마저 진정시키고자 바다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에서 눈이 얼마나 내리던 말던, 나이트 앤젤의 얼굴에서 눈이 내리던 말던 바다는 여느 때와 같은 넘실대는 바다다. 


"후우…"


그러나 아주 잠깐의 순간, 넘실대는 바다에 있을리 없는 파문 하나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설마하니 눈이 떨어져 생긴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과 함께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이제야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을 꺼내고자 한 번 심호흡을 들이켰다.


"나, 나앤…"


"메이!"    


잠깐인 것 같았지만 멍하니 바다를 본 지 꽤 시간이 지난걸까. 공중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화로 보아 메이는 정신을 되찾아 가는 것 같았다. 그것을 신호로 나는 머릿 속으로 정리한 말을 지금이야말로 꺼내고자 입을 열었다.


"사령관!" "폐하!!"


열려고 했을 것이다. 

먼 발치의 바다에서 반짝인 빛 하나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메이! 정신이 ㄷ…!"


나이트 앤젤의 끝마치지 못한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레이스와 샬럿에게 덮쳐져 모래사장을 나뒹굴었다.

내가 본 빛을 이 둘도 본 것이리라. 그리고 보자마자 알아챈 것이겠지.

그것이 스코프에 인 반사광이란 것을.


"………어?"


몸을 일으키자마자 발견한 것은…

옥좌에서 내리는 진홍색 눈꽃.

그 눈꽃을 어안이 벙벙한채로 바라보는 나이트 앤젤.

공중으로 날아올라 바다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레이스.

나를 바다로부터 떨어뜨려 놓으려는 샬럿.


"……메…이?"


나이트 앤젤의 품에 있었어야 할 메이의 머리는 사라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터져버렸다.

수박통이 터져버리듯이, 아주 깔끔하게.

메이의 피로 새빨갛게 물든 나이트 앤젤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메이의 머리가 아직 있다고 여기는 것 처럼 허공을 끌어안고서, 멍하니 메이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메이… 메이…?"


"대령! 저격이다! 옥좌에서 물러나!"


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에 레이스는 당황하지도, 여느 때와 달리 말 한 번 더듬지 않고 나이트 앤젤에게 외쳤다.


"폐하! 피하세요!"


나라고 나이트 앤젤과 다를 것은 없었다.

멍하니 서있는 내가 인지한 것이라고는 메이는 저격 당했다는 것과 내 팔을 잡아끄는 것이 샬럿이라는 것 뿐이었다.   


"메이… 왜 그래? 왜 말하다 말아… 궁금하게…"


"나… 나…"


샬럿에게 잡아끌려서 몸이 들썩이게 된 덕일까. 생각보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나는 좀 처럼 떨어지지 않던 입을 마침내 열 수 있었다.


"나앤! 옥좌에서 피해! 메이는 죽었어!!!!"


"…"


내 외침에 나이트 앤젤은 드디어, 메이라고 여겨지는 허공에게서 팔을 풀었다. 머리가 사라진 메이가 모래사장으로 떨어져 털썩- 하는 마른 소리가 울린다. 씨발. 원래 하려던 말은 '메이는 죽었어.' 같은 개같은 소리가 아니었다. '메이. 용서 할게.' 가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왜, 꼭 입을 떼려고 한 그 직전에, 하필이면 그런 타이밍에 저격을 해오는 것인가? 왜 하필이면 오늘이냔 말이다. 샬럿의 엄호를 받아 자리를 피해가면서 바다를 살펴본다. 어디지? 누구지? 아주 잠깐이었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반사광이 일어난 곳은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육안으로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저격을 해온 적성 개체는 보이지 않는다. 저격용으로 개조 된 드론인가? 아니면 와처? 아니, 둘 다 아니다. 드론이나 와처였다면 통신실에서 미리 감지하고 전파해 왔을 것이다.


 바다에 한가운데 체공하면서 모습을 숨긴채로 저격이 가능한 존재. 누구지? 그런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재주를 가진 존재가? 철충은 아니다. 염병할.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맞춰 쉼 없이 머리를 돌려봐도 그럴듯한 추측은 커녕 두통만 다시 일어난다. 그렇게 나이트 앤젤과 바다를 번갈아보며 머리를 부여 잡고 있자니 그 때, 레이스가 은폐장을 작동시키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보자마자 뇌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뇌에서부터 등근육을 타고흐르는 스파크에 몸을 퍼뜩인 나는 레이스에게 외치려 했다.


"으아아아아!!!"


"큭…! 나앤! 잠깐!"


옥좌에서부터 날아든 나앤에게 덮쳐진 나는 다시 한 번 모래사장을 나뒹굴었다. 눈과 입으로 침투해오는 모래에 정신을 못차리면서 한참을 뒹굴고 또 뒹군 끝에 내 위에 올라 탄 나앤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멱살을 잡혀서 땅에 몇 번이고 쳐박히니 기침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안다. 나앤이 왜 내게 달려들고 분노하는 것인지. 그러나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해안에서 벗어나 뒤에 이어질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이 개새끼야!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


"나앤! 이제 곧 놈들이 몰려 올 거야! 일단 상황을 정리해야 해!"


악을 쓰던 나앤은 모래로 더러워진 입을 피식거리고 다시 말했다.


"웃기지 마. 이 씨발새끼야… 정리는 무슨 개같은 정리야. 이렇게 된 것도 다 네 탓이잖아. 저 사냥갠지 뭔지 하는 씹것들이 태어난 것도 다 네가 모자랐던 탓이잖아!!!"


"나앤!"


"입 닥쳐! 이 더러운 새끼야! 나를 나앤이라고 부를 수 있는건 메이 뿐이야! 알아들어!? 네 그 더러운 입으로 날 나앤이라고 부르지 마!!"


도무지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나앤은 침을 질질 흘리는 것도 모자라 눈에 핏발까지 세웠다. 이러다간 뒤에 이어질 상황에 대비하기는 커녕 이 자리에서 저격 당해 비명횡사 할 것이다. 그랬다가는 나는 물론이고 이 곳의 모두가 끝장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병영으로 돌아가 지휘 할 준비를 해야한다. 그러나 아무리 호소해봐도 나앤은 듣지 않는다.


"하나만 더 물어보자… 너, 여기 와서부터 입버릇 처럼 말한게 있었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


"그렇다면… 네 말대로라면… 네가 네 발로 오르카를 떠났던 것도 일어날 일이었다는 거야? 그런거야? 대답 해… 대답 해! 이 개새끼야! 당장 쳐 죽이기 전에 대답 하라고!!"


"…나앤, 놔 줘."


"안 놔! 못 놔!! 대답 할 때 까진 절대 못 놔 줘! 빨리 대답 해! 네 말대로라면 그 것도 일어 날 ㅇ…!"


사납게 외쳐대던 나앤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이걸로, 말을 끝마치지 못한 것은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이다.

메이와 똑같은 꼴이 된 나앤은 머리가 사라져 명을 다했어도 옆으로 쓰러진채 팔을 허공에 휘적거렸다.

그 팔이 마치 나를 붙잡으려고 휘적이는 것 같아 나는 끝까지 나앤을 두고보는 일 없이, 이제 막 달려 온 샬럿에게 부축받아 몸을 일으키고서, 해안의 숲에 몸을 숨긴 참이었다.


팍- 파팍-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터져나온 연기로 해안의 절반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연막탄 발사기에서 날아든 연막탄이라는 걸 알아차리기가 무섭게, 뒤이어 머리 위로 빠르게 날아든 수송기 한 대가 병영 쪽으로 향했다. 연막탄에 은폐 중이었던 수송기, 바다에서 날아든 저격까지. 직감 할 것도 없다. 사냥개가 찾아 온 것이다.


"유미. 응답해라."


연기 사이로 육중한 상륙함 한 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바다 위에서 저격해온 것은 아마도 레이스일 것이다. 그러니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은 것이겠지. 그러나 상륙함과 수송기는 얘기가 다르다. 아무리 은폐중이었더라도 레이더에는 잡혔어야 한다. 잡혔다면 그 즉시, 바로 내게 전파됐어야 했을 것이고.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유미, 유미."


…그러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러지 못한 것일 수도. 통신기에선 유미의 목소리 대신 노이즈만이 들려온다.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은 적중한 것 같다. 최악이다. 상륙하려는 적들에게 최소한의 견제도 가하지 못했다. 그 것 뿐이면 차라리 낫다. 더 최악인 것은 섬의 내부부터 침투를 당하게 생겼단 것이다.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사냥개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더욱 유리하고 효율적인 상황을 조성할 수 있을까.


"샬럿. 여기있는 대원들과 함께 최대한 해안을 방어하다가 숲으로 들어가라. 들어가면, 경계하면서 참조점으로 향해. 그 이후엔… 준비한대로 해야지."


상황은 최악이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인다면 이 이상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땅에 뒹굴던 내 총을 집어든다. 총구와 약실에 들어찬 모래를 치우고 탄창을 확인한다. 충분하다. 이거라면 홀로 움직여도 대처 할 수 있다.


"폐하! 폐하께선 어쩌시려구요?"


내가 홀로 움직일 거란 것을 눈치 챘는지, 샬럿은 말리는 것 대신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온다. 대답할 시간도, 메이와 나이트 앤젤을 위해 침묵할 시간도 없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몇 마디만을 던지고서 해안과 접한 숲으로 들어섰다.


"네가 구심점이 되어서 모두를 합류시켜. 때가 되면 통신하마."





/////



쏴아아- 경사진 비탈 길에 늘어진 잔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해는 거의 저물어 의지할 거라곤 어스름에 적응 된 두 눈 뿐이다. 펑펑 내리던 눈은 그칠 줄을 모르고 더욱 기세를 높혀와 이미 발목까지 쌓여있다. 


"…"


차라리 극지였으면 마음이라도 편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렇게 애매하게 위험한 곳이 정말로 위험한 곳이다. 어딜 밟으면 꺼지고 어딜 밟으면 안전할지 빠른 판단이 안선다. 그러나,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침반이 되어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아아아아…!"


비탈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소리는 선명해진다. 흡사 지치고 다쳐 웅크린 초식동물의 신음 같기도 하고 눈 내리는 밤의 괴담에서나 나올 귀신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 귀신인가, 상황에 맞지 않게 먼저 간 그렘린이 떠오른다. 녀석이었다면 분명 알비스와 안드바리를 품에 안고 이 소리는 귀신 소리라며 놀려댔을 것이 뻔 했다.


"아, 아, 아아, 아아아아…"


…그래, 극지의 부대에서 근무했을 무렵, 그랬던 기억도 있었지. 꽤 유쾌했던 때였지만 추억이라고 부르기엔 망설여진다. 오늘 날,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생존자는 나와 알비스 뿐이니까. 그리고… 이 소리의 주인은 각하께 있어 최대의 적일지도 모르니까 …아마도.


"닥터."


섬에 있는 유일한 산, 그 비탈을 올라 도착한 평평한 정상에서, 닥터는 괴로운 것인지 웅크리고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일어 나."


물을 것은 산더미다. 샬럿의 통신에 따르면 시간도 없다. 그러니 사정 봐 줄 생각은 없다. 


"일어나라고 했다."


등에 맨 소총을 겨누고 상황을 파악하길 바라며 노리쇠를 한 번 후퇴하고 전진시킨다. 철컥- 소총을 울리는 쇳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닥터는 느릿느릿,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올려 나를 확인한다.


"으…아… 발키리 언니… 도와… 줘… 머릿 속에 버,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아…!"


탕-


총구에서 탄연 한 줄기가 피어오른다. 탄환은 닥터의 머리맡에 박혔다. 경고로써는 충분했는지 닥터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바들거리는 다리를 보니 엄살을 부리는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허튼 짓일 가능성도 있다. 나는 닥터, 혹은 닥터의 모습을 한 무언가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경고하고서 본론을 말했다.


"넌 누구야."


"으… 무, 무슨 소리야. 언니?"


진심인가. 닥터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은 꽤 그럴 듯 하다.


"각하께 거짓말을 했지."


"……무슨 거짓말?"


언제 그랬냐는 것 처럼 일순간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사라진 닥터가 의아하단 고갯짓을 해보인다. 그런 닥터가 더욱 수상해보였다.


"네가 각하께 한 말과 작전관의 말이 충돌하고 있다. 칸 대장의 최후에 대한 것 말이야."


"……홍련이 뭐랬는데?"


"전함과 함께 수장되었다고."


"…그 말을 믿어?"


"지금의 작전관은 각하께 필사적이다. 신용하지 못할 것도 없지. 그 다크엘븐과 함께였던 너보다는 신용이 가."


"다크엘븐 언니는 어딨어?"


"자살했다. 통신실을 엉망으로 만든 뒤에 말이야."


"말도 안 돼…" 근처에 있는 나무를 짚은 닥터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증명해라. 네가 정말 우리가 아는 닥터인지."


소총을 고쳐잡은 손에 힘을 주고 위협하고자 총구를 더 가까이 들이민다.


"어떻게 증명하란 거야?"


"뭐든. 각하와의 접점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좋다."


"…알았어."


닥터는 나지막이 대답하고서 엉망이 된 가운의 안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종이로 보이는 것을 내밀어왔다.


"봐. 사진이야."


총구를 거두지 않고 접근한 뒤에 사진을 낚아채고 확인한다. 각하와 닥터. 사령관실로 보이는 곳에서 단 둘이 촬영한 사진이다. 배경에 보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미루어보아 세인트 오르카 때 촬영한 것으로 보였다.


"그거면 충분하지?"


이제 총은 치워도 괜찮지 않냐고 물어오는 닥터를 무시하고서 생각을 정리해본다. 닥터의 말대로, 이 사진이라면 각하와의 접점은 확실하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왜일까. 뭔가가 걸린다. 작전관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고 닥터는 각하와의 접점을 증명했다. 둘 모두, 이상할 것은 없다. 어쩌면 닥터는 내 우려와는 달리 정말로 다크엘븐과 별다른 연관이 없는 걸 수도 있겠지만, 설마. 말이 안된다. 만약 그렇다면 다크엘븐이 그 섬에서 닥터를 가만히 뒀을 이유가 없다. 아니면, 각하께서 구출해주실 것을 알고 그를 이용해 잠입한다? 그거야 말로 말도 안되는 얘기고 너무 형편 좋은 얘기다. ……모르겠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꺼름칙한 것이 계속 머릿 속에 맴돈다. 놓친게 있는가? 아니면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것인가.


"…닥터.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이 상황과 연관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인해봐서 나쁠 건 없겠지. 나는 총구를 치우고 비탈을 오르던 내내 마음에 걸리던 것을 닥터에게 말했다.


"다크엘븐은 자살하기 전, 벽에 '구원의 때' 라고 휘갈겨 적었습니다. 뭔가 아는게 있습니까?"   


"…구원?"


"네. 구원. 무슨 의미 입니까?"


"……아."


"…닥터?"


나지막한 닥터의 '아.' 소리는 무언가를 깨닫거나 알아차려서 내는 소리로 보는게 타당했겠지만 휭휭대는 스산한 바람소리 때문이었을까. 왜인지 외마디 비명 처럼도 느껴졌다.


"구원."


"닥터?"


다시 한 번 나지막이 말한 닥터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그 눈은 나를 담고 있지 않았다. 초점이 없다. 미루어보건데, 닥터는 내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 구원. 구원. 구원. 구원. 구원. 구원."


"잠깐, 닥터."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가 싶었으나 닥터는 망가진 태엽인형 처럼 구원이라 반복해 지껄이면서 나를 지나쳐간다. 내가 지나온 방향, 그 앞은 비탈길이다. 닥터를 멈춰 세우지 않으면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나는 닥터를 제지하는 일 없이, 다시 총구를 들이밀고서 외쳤다.


"닥터! 엎드려! 지시에 응하지 않을 시 사살하겠다!"


"구원구원구원구원구원구원구원"


"닥터!"


"…오빠를 구원해야 해."


다크엘븐 처럼, 구원이 가리키는 것이 '오빠'라는 것에 확신이 섰다. 이 닥터는 적이다. 그렇게 확신하고서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등골에 서늘한 느낌이 듬과 함께 지금 당장 몸을 틀어 굴러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탕-!


"윽…!"


쐐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지척에 있던 나무에서 파편이 튀었다. 탄흔이다.   


"닥…! …터."


몇 번 더 굴러 나무 하나를 엄폐물 삼고나니, 닥터는 이미 잔가지를 흔들어댄 바람 처럼 홀연히 사라진 뒤였다. 


"…"


……일단은, 급변한 상황부터 타개한다.

익숙한 격발음, 익숙한 탄흔, 그 탄흔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탄종. 


"후우…"


산은 어둠으로 물든 상태에 나무를 뒤흔들어대는 바람, 시야를 가리는 눈. 그 모든 걸 뚫어내고 나를 노려왔다. 본능과 직감을 통해 반사적으로 구르지 않았다면 바로 죽었을 정도로 정확한 사격이었다. 그래. 이 또한 익숙하다. 익숙한 상황이다. 전시에 이런 상황을 조성하는 것은 내 특기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런 익숙함 속에서 한가지 곤란 한 것이 있다면,


"젠장…"

      

나는, 아마도 나와 같은 개체일 녀석의 위치를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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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강하 완료. 현재 발키리 개체와 대치 중."


재주도 좋군. 방금 막 해치에서 뛰어내린 녀석이 벌써 자리를 잡고 말이야. 


"대장."


해치 앞에 서서 지상의 전경을 감상하고 있으니 통신기에서 스카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에 있었기에 통신기를 쓸 이유는 없었지만 바람소리가 워낙 컸기에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정말, 오늘로 모두 끝나는 것인가."


"그렇다."


강하 장비를 다시 한 번 점검한 확인한 스카디는 느끼기엔 아직 이른 후련함을 웃음 속에 담아 내게 보냈다.


"그래. 우리의 주인께서 진정 원하시던 것이 마침내…"


"스카디."


스카디의 말을 끊었다. 그 강한 육체 만큼이나 정신도 강했다면 좋았겠지만 역시, 이녀석은 무른 구석이 있다.


"감회에 젖는 것은 모든게 마무리 되고 나서 하도록."


"그래, 그렇지. 음… 미안하다. 대장." 


"미안 할 것 없다. 그것 보다 스카디."


다시 지상을 바라보니 마침 적당한 것이 눈에 띄었다.


"네 차례가 온 것 같군. 너무 힘 쓸 필요 없다. 적당히 시간만 끌어."


"알겠다."


짧게 대답한 스카디는 뒤돌아 해치에서 멀어진다.


"지상에서 보자. 대장."


그 말을 끝으로 도움닫기한 스카디는 지상을 향해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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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나온 사령관 시점

이제야 아웃된 메이

메이를 좋아하다 보니 공들여서 괴롭히게 됐음


ㅂㅂ 또 봐 


오타나 어색한 거 있음 리플로 알려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