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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겨울이 되고 나니 살림이 나아졌다. 거실에 4인용 소파와 27인치 크기의 tv가 들어선 것이다. 홀로그램도 아니고 중고여서 미안하다는 알렉산드라에게 나는 고개를 있는 힘껏 저으며 거실 바닥에 놓인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tv라는 단어는 흔하게 들어왔지만 정작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꽤나 들떠 있었다. 이제 더 많은 정보와 상식을 얻을 수 있겠구나.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 수 있겠어. 바깥 세상에 적응은 나름 됐지만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았어서 그런 기대가 들었고, 심지어 감격스럽기 까지 했다. 작은 협탁 위에 요령 좋게 tv를 설치한 마리아가 소파로 다가와 옆에 앉았다. "도련 님. 전원 켜보실래요?" 그 말만 기다린 나는 마리아가 가르쳐 준 대로 리모콘의 빨간 버튼을 눌렀다.


"시청사 앞에서 다시 보도해 드립니다. 신고 된 시간인 21시가 막 지났습니다. 그러나 4지구에서 6지구에 걸친 대규모 시위대는 지시에 해산할 기미를 보이긴 커녕 점점 세를 늘려가고 있는데요. 이런 식으로 대치가 계속 된다면 강제해산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앗! 말씀드린 순간! 시티 가드 측에서 움직이기 시작 했습니다! 최루탄 입니다! 시위대에 최루탄이 발포 되었습니다! 사유는 시위대의 폭력 행위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폭력 행위 입니다! 비폭력과 평화를 표방하고 나선 이번 시위도 결국엔 폭력 시위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시의 안전 지침에 따라 4, 5, 6지구의 시민 분들께서는 되도록 외출을 삼가시고……"


그래서 하굣길에 사람이 많았던거군. 시위의 원인이 뭔지 짐작은 가지만 그녀들이 있는 자리에서 굳이 입에 올릴 필요는 없었다.


진압부대의 대열이 시위대와 충돌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채널을 돌렸다.


"영거리에서 샬럿의 머스켓이 불을 뿜었으나 요안나의 방패에 막힙니다. 감각적인 플레이 였습니다. 예상이라도 한 걸까요? 줄곧 방패를 몸에 붙이다시피 한 것이 빛을 봤군요. 파고들 구석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백토의 적절한 후방 커버로 인해 좀 처럼 샬럿의 레이피어가 피 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쯤 해서 아탈란테가 활약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 합니다만… 유효타!! 요안나의 듀란달이 샬럿의 상완부를 훑습니다! 제빠르게 샬럿의 전방을 커버하는 아탈란테! 그러나! 이 때만 기다렸다는 듯 백토의 매지컬 핑크 문 라이트가 아탈란테의 방패에 작렬합니다! 위험합니다! 위험해요! 가장자리부터 이지러지는 방패의 에너지 필드가 샬럿, 아탈란테 페어의 위기를 말해주는 듯 합니다!"


"도련 님."


"방패가 분쇄 되고! 그대로 아탈란테가 세로로 양단 당합니다! 남은 것은 샬럿 하나! 요안나, 백토 페어는 상처 하나 없이 건재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보고 계십니까! 언더 독의 반란! 대이변이 일어납니다! 샬럿이 뒤늦게 나마 백토에게 달려들어 보지만 방패를 부메랑 처럼 던진 요안나의 재치있는 플레이에 막힙니다! 요안나, 백토. 동시에 샬럿에게 쇄도! 샬럿! 뛰어난 기량을 가진 개체답게 어떻게든 맞받아 치고 있습니다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런지요! 백토, 다시 한 번 체인소를 전개하고 요안나의 방패를 발판 삼아 도약합니다! 샬럿이 자세를 고쳐 잡습니다. 피하지 않겠다는 걸까요? 명예를 추구한다는 건 좋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어떤가 싶은데요. 샬럿 특유의 명예에 대한 강고할 정도의 고집이 언젠 간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분석이 맞아 떨어지는… 또 한 번 유효타! 백토의 문 라이트를 받아낸 순간 비어버린 샬럿의 복부를 요안나의 듀란달이 꿰뚫고… 곧 바로 샬럿의 목을 떨굽니다! 끝났습니다! 통렬한 한 방이었습니다! 요안나의 표정이 말해줍니다! 얼티밋 콜로세움 챔피언 쉽, 20시즌의 챔피언은 요안나, 백토 페어입니다!"


"도련 님." 마리아가 말했다. "재밌으신가요?" 서글픈 미소를 지은 마리아가 손을 내밀어 내 손에 포갰다. 부드러웠어야 할 마리아의 손바닥은 평소와는 달리 조금 까칠한 느낌이 드는게 이상하여 확인해보니, 마리아의 손 마디 마다 굳은 살이 박혀있다.    


"…아니."


미안. 그렇게 말하고서 tv에 집중하지 않고 초점만 맞춘채, 채널을 돌리다가 다시 전원을 껐다.


"있잖아. 마리아."


"네. 도련 님."


"오늘 학우… 친해진 반 친구들이랑 번화가에 갔었어."


"어머!"


마리아의 서글펐던 표정은 놀람과 기쁨을 반씩 섞은 표정으로 변했다. 그래 뭐, 예상한 반응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꺼낼 말은 전혀 기뻐 할 내용이 아니다. 적어도 내겐 그렇고, 아마 그녀들에게도.


"별 건 없었어. 친구들이랑은… 별 건 그 골목에 있었지. 빨리 집에 가려고 으슥한 곳을 가로 지르려던게 문제였어."


"…안좋은 일이라도 당하셨나요?"


"당했다기보다는… 봤지. 골목에서 바이오로이드 두 명이 여러 남성한테 윤간 당하고 있었어."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바이오로이드, 두 달 전에 봤던 세이프티와 똑같이 생긴 세이프티. 수십 명의 남성에게 둘러싸여 울부짖는 둘의 얼굴이 떠올라 포개져 있던 마리아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마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내밀어온다.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것 보다는 내가 더 걱정이 된다는 표정이다. 그럼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지. 얼굴 쪽의 감각이 무뎌져 잘 알 수 없었기에 마리아가 이런 표정을 지을만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그만 하라고… 하지 말라고 했지."


"네."


마리아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서글프지도, 걱정 어리지도 않았다.


"그랬더니 말이야. 웃더라고.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골목이 떠나가라 웃으니까 어지간히도 시끄러웠어."


그 웃음소리를 머릿 속에서 다시 한 번 재생하자 잠깐 다녔던 초등학교 때의 일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와 다른게 있다면 남성일색이었다는 것과 인원 수 정도일까. 그렇지, 꽤나 불쾌한 냄새도 났었다. 


"그러셨군요…"


"그 다음엔 뭐… 한 명 씩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더라. 바이오로이드의 원래 용도가 어떻고, 에머슨 법을 들먹이면서 말이야. 병신, 쪼다, 별종, 패배자… 들어 볼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다 먹었던 것 같아. 그래도 일단 제지한 이상 윤간 당하던 둘을 책임져야 될 것 같아서… 소란을 피웠어."


"왜…"


"그랬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다행이도 남자들이 흥이 깨졌다면서 물러나더라고. 가볍게 몇 대 맞기야 했지만."


"…왜 그러셨어요?"


"왜 그랬냐니. 그랬어야 하니까. 난 그렇게 배웠으니까."


마리아 너머에 앉은 알렉산드라를 보고 말했다. 알렉산드라는 무덤덤하게 차를 홀짝이고 있다. 아직은 말할 타이밍이 아니란 뜻일거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너희가 직접 '바이오로이드를 해치지 마라.' 라고 가르친 건 아니었지만 말야. 알잖아. 너희가 나한테 정체를 숨겼던 거. 그래서인지 나는 바이오로이드와 같은 인간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아무래도."


가정형으로 말을 마친건 낯 뜨거워서 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에 대한 것을 확정해서 말한다는 것에 저항감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그래서, 알렉산드라. 너에게 묻고 싶어."


찻잔을 찻받침에 내려놓은 알렉산드라가 나를 마주 보았다. 차는 반도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너는 내게 바이오로이드를 인간과 다를 것 없이 여기도록 나를 가르쳤어. '올바른' 교육을 통해서 말이야. 물론… 가르쳤다고 표현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계속 하세요."


"하지만, 봐. 초등학교 때도 그렇고, 저택에서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그래. 심지어 저 tv에서도 그렇지. 바이오로이드는 완전히 인간의 도구야. 아니, 도구 이하지. 강간은 말할 것도 없고 윤간이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 되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폭행이나 살해도 빈번하게 일어나지. 그리고 이런 비윤리적인 행위가 아주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으로 통하고 있어. 즉…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야. 나 처럼 행동하다간 조롱 당하고 욕 먹거나 나아가선 폭행까지 당할 수 있어. 같은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사회인 거야. 사회 통념이 그렇다고. 알렉산드라. 네가 말한 '올바른 것'은 정상적인 것과 거리가 멀어. 이런게 네가 바란 거야? 나보고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면서 잘못된 걸 가르쳐 온거야? 내가 정상적이지 않은 인간이 되길 바란 거야? 그렇지 않아도 난 이미 정상적이지 못한데…"


"…"


"말해 줘. 알렉산드라. 내게 그렇게 가르친 이유가 뭐야?"


얼굴이 화끈거렸다. 화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건만 말하다 보니 얼떨결에 쏘아붙이는 형식이 됐다. 부디 오해하지 말기를 바라며 고개를 숙이고, 나는 가만히 알렉산드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고보니, 지금과 비슷한 구도와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구나. 초등학생 때, 다급히 별채로 돌아왔던 때와 비슷했다. 그 때 그녀들의 정체를 숨긴 이유에 대해 물었더랬지. 그 때는 대답을 듣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대답해 줄까. 내게 숨겨왔던 그 이유가 알렉산드라의 '올바른 교육' 그 자체이다. 즉, 알렉산드라의 한 번의 대답으로 과거의 나와 현재 내가 가진 의문은 모두 해소된다.


5살 부터 17살에 걸쳐 내 인격은 그녀에 의해 규정되고 형성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치 창조주 앞에 선 피조물이라도 된 기분이 들어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다. 만약, 대답해 주지 않는다면 명령을 해볼까.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다고 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뭔가 배신하는 것만 같아 그러지 않기로 했다.   


"도련 님."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알렉산드라는 이미 내 바로 앞 까지 다가와 있었다. "제 교육은 올바른 것이 맞습니다."


"뭐…?"


나도 모르게 톤을 올려버린 목소리는 다소 얼빠지게 들렸다.


"정확히는… 올바라야 하는 겁니다. 그러길 바라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라는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숙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도련 님께선 '올바르게' 자라주셨고요. ……죄송합니다."


"…어떤게?"


나는 이 사회에서 올바르다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것의 어떤 부분이 올바른 것이냐고 따져 물으려 했다. 죄송하다고 덧붙이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잡힐듯 말듯 한 애매한 것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 감각과 다소의 짐작을 품에 안고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부분에만 대답했다.


"제 개인적인 소망을 도련 님께 새기고 말았습니다. 투영으로 끝냈어야 할 것을… 아뇨. 시도 조차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정말로 죄송합니다. 당장 저를 내치신다 해도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알렉산드라가 다시 고개를 든다. 두 눈은 여느 때와 같이 심지 굳지만 살짝 젖어있는 것 처럼도 보인다. 


이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점점 더 촉촉해져 가는 알렉산드라의 눈에 더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알렉산드라가 울어버리고 만다니. 상상이 안된다.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내게 있어 그녀는 언제나 엄격하고 심지 굳고 강건하고 남 몰래 다정한 그녀로 있어줘야 한다. 게다가, 그녀의 말들과 지금의 모습이 내 모든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써도 충분했기에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앉자."


손을 맞잡고 에스코트하듯 그녀를 소파에 앉혔다. 손은 잡은 상태 그대로 팔걸이에 올려둔다.


"보고 싶은 채널 있어?"


tv를 켰다. 알렉산드라의 손이 눈가로 가는 것을 못 본 척 하고 시선은 tv에 고정한다.


"도련 님께서 보고 싶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 뭐야. 얼티밋 콜로세움 보고 싶다고 해도 괜찮아?"


"상관 없어요."


"…농담이라도 그렇게 대답 하지 마."


그럼 제가 골라도 될까요? 포근한 미소와 함께 말한 마리아가 리모컨을 쥔 손에 손을 포개왔다. 얼떨결에 양 손에 한 명 씩 잡은 모양새가 되어 어느 쪽을 놔야하지 고민하다가,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괜히 의식하지만 않으면 되는 일인 것이다. 게다가, 이런 부끄러운 느낌은 정말 한 때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감정은 찰나의 순간만 머무를 뿐이며 내 안에 자리를 잡는 일은 없다. 치명적인 결손을 끌어 안고 있는 내게는 그렇다. 그것을 확실히 자각하고 있는 지금은 나는 그렇다.


똑바로 tv에 시선을 두고 뇌를 굴려 본다. 알렉산드라의 소망에 대해서다.


현대 사회는 그렇다. 내가 알렉산드라에게 울분을 토하듯이 말한대로, 강간과 윤간 (대상이 바이오로이드이기에 범죄가 아니라고들 한다.) 이 심심치 않게 대놓고 일어나고 그 이하의 학대는 비일비재하며 나아가서는 살해에 까지 이른다. 그 뿐인가. 콜로세움 한복판에서 환성 속에 참살 당한 샬럿과 아탈란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바이오로이드는 그저 인간의 유희거리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공공재로 취급되는 바이오로이드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 소유 바이오로이드는 언뜻 보면 괜찮을 듯 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취급이 더 하다. 내 아버지란 사람이 그 예시다. 비교해 보자면 화장실 타월만도 못한 취급이겠지. 


에머슨 법이 통과된 계기와 인간을 위해 태어났으나 도리어 인간이 설 자리를 빼앗아 버렸다는 아이러니를 보면 이러한 취급이 타당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난 다르다. 나는 명백히 바이오로이드들의 그런 취급과 사회의 통념과 그보다 더 큰 세계에 만연한 바이오로이드 하대 풍조를 거슬렀다. 왜? 알렉산드라의 교육에 의해.


한 가지, 가설을 세워보고 싶다. 돈을 위시로 한 온갖 금전적인 가치가 최고인 현대 사회는 모든 정신적인 가치, 특히 인류애적 가치를 부정하려 하고 부정하고 있다. 따라서 최소 반세기, 1세기 이전에나 추구되었던 가치들, 명언이나 어록, 가치관, 이념들의 편린들은 오늘 날에서는 땡전 한 푼 되지 않는 헛소리로 치부되고 그것들을 펴낸 인물들은 덜떨어진 머저리로 취급 당하며 현대에서 이러한 가치들을 추구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자들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멸시를 당한다. 적어도 내 주변은 그렇다.


그럼에도 알렉산드라는 먼 과거에 치우쳐 존재하던 정신적 가치들을 '올바른 것' 이라 말하며 도덕과 윤리 교육이란 이름 아래 그 '올바른 것'을 내게 주입했다.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어쩌면, 알렉산드라는 세계와 사회에 저항하려 한 것이라고. 그것도 나를 통해서 말이다. 혹은 그녀만의 작은 세계, 이 집에 함께 있는 나만이라도 변하게 하고 싶어서 였을수도 있겠다. (가능성 면에서 본다면 이 쪽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대성공이다. 나는 확실하게 윤간 당하던 '두 명'의 바이오로이드를 구해냈으니까. 17년을 그녀들과 함께 했으니까.


너무 거창한게 아닌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특히나 후자는 자의식 과잉이다. 그러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저항이나 변화를 소망한 것이 아니라면 나를 이렇게 교육하고 길러온 이유가 달리 설명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전자든 후자든 바이오로이드로써는 실격이다. 


바이오로이드라는 제품으로써는 하자투성이, 결손투성이, 폐기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을 거스를 수 없다.' 이 자명한 명제를 부정하려 한, 결코 참작 받을 수 없는 반역자이자 변절자이다.


"도련 님." 


나도 마침 말을 꺼내려던 차에 알렉산드라가 말했다. 인간인 나와 바이오로이드인 그녀 사이에 같은 결손투성이라는 공통분모가 생긴 것 같아 태생적 차이를 넘어 특별하게 까지 보이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물론, 한 때에 지나지 않을…


"응?"


"방금 전에 '난 이미 정상적이지 못한데.' 라고 하셨죠?"


"응."


몇 분 전의 나를 질타한다. 소수자가 된 기분이었어서 인지 아니 뭐, 실제로도 그렇지만… 그래서 다소 자학적으로 굴었던 것 같다.


"그건 무슨 뜻이죠?"


여느 때와 같은 굳은 눈으로 직구를 던지는 알렉산드라를 따라 마리아와 가만히 차만 홀짝이던 소완까지 고개를 돌렸다. 실수했다. 처음 말을 꺼냈을 때 느꼈던 저항감과는 비교도 안되는 거북함이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추위에 여러 벌의 옷을 껴입었지만 정신은 그렇지 못하다. 한꺼풀만 벗겨내도 나체가 되고 만다. 이제부터 피할 겨를도 없이 직접 그 한꺼풀을 벗어던져야 한다니 이렇게 끔찍할 수가 없다.


"도련 님…"


쭉 맞잡고 있던 손에 또 하나의 손을 얹은 알렉산드라가 처음 보는 표정과 처음 듣는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해주세요."  


그런 알렉산드라를 본 나는 생각했다. 감히 그녀들을 상대로 숨기려 들었다고 말이다. 숨길 수도 없었겠지만 숨길 필요도 없었음을 나는 뒤늦게 깨닫고서 어렵사리 입을 뗐다.


"뭐라고 해야 하지… 저택을 나오기 직전부터…"


"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는게 좀 그렇지만… 뭐랄까, 좀… 공허 해."


"공허하다고요?"


"아하하… 이상하지? 그렇게 생각해도 이해할게. 내가 생각해도 난 좀 이상한 거 같으니까. 이 감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비유하자면 밑 빠진 독이 된 느낌이야. 액체로 치환 된 모든 것들을 들이부어도 계속 새어나가 버리는 기분이 들어. 생각해보면 전조는 있었던 것 같아. 예를 들면 저택에서 있었던 일이라던가."


한 번 물꼬를 틀기 시작한 고백은 기세를 몰아 더욱 거침 없어지고 그러한 행위가 가져다 주는 부끄러움과 밝히고 싶지 않았던 치부를 직접 고한다는데서 오는 저항감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다소 느낄 법도 한 수치심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나는 그런 꼴을 당했잖아? 강제로 독한 술을 먹고 약을 투여당하고 온갖 폭행에 성적인 고문을 당했어. 단순히 자극과 유희를 위해서… 인간이 인간한테 말이야. 어찌보면 이미 사회에선 흔한 일 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기꺼이 견뎌낼 만한 취급은 아니잖아. 정상인이라면 온갖 후폭풍에 시달렸을 거야. 실제로 나 같은 경우는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키고 있고…" 


"도련 님. 저 보세요."


갑자기 눈에서 왈칵 눈물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은 가까운 과거가 괴롭게 느껴져서라기 보다는 직접 겪었던 그 모든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발 물러서서 조곤조곤 말하고 있는 내가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것만 같아 그 불쾌한 이질감에 몸서리가 쳐진 탓이었다. 알렉산드라의 손가락이 내 뺨을 훑었다. 이미 치부가 터져나온 이상,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 과거를 한 번 더 머릿 속에서 재생 하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근데 있잖아. 단지 그 뿐이야. 정말로… 머릿 속은 상처 하나 나지 않았어. 어쩌면 상처투성이 인데도 느끼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지. 적어도 지금의 내겐 그런 꼴을 당한 뒤에 눈에 보이는 흉터 라고는 발작이 전부야. 조금 비약적으로 보태 보자면 발작만 없었다면 금새 잊어버렸을 정도라고 생각 해. ……아무것도, 그 무엇에도 순간적인 감정 밖에 들지 않아. 심지어는 날 고문 했던 바이오로이드들을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 했는데 오늘에 와서는 정말 아무런 감상도 들지 않아. '그랬던 적도 있었지.' 정도의 감상은 가능할 텐데 그런 것도 없어. 이런 것들 전부 일일히 자각하고 되새기지 않는다면 사실은 전부 없었던 일로 한다더라도 나는 은연 중에 받아들이고 말 것 같아. 그것 만이 아니야. 학교, 첫 친구, 사회 적응, 바이오로이드의 취급, 날 도와 줬던 세이프티, 오늘 윤간 당하던 두 바이오로이드…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희들 까지."


"…"


"난 사실 타들어가는 담배나 양초 같은게 아닐까? 전부 다 타들어가면… 그 때는 순간적인 감정 마저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무서워.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같아. 특히 너희에 대해서 점점 무감정해져 가는 것 같다는 게… 그게 제일 두려워."


겨우 말을 마쳤다. 중간 부터는 거의 무아지경으로 몰아쳤다고 생각한다. 후련함 같은 건 없다. 내 어딘가에서 웅크린 이질감이 뿜어내는 그 불쾌함만 더욱 커졌을 뿐이다. 


"…그래서 정상적이지 못하시다고 말씀 하신 건가요?"


"응. …어쩌면, 좀 더 오래 전 부터 그랬던 걸지도. 그야 고문 당하던 때엔 이미 그런 상태였으니까. 아니면 태생적으로 품고 있던 걸 수도 있겠지. 내 아버지란 인간이 그런 말종이니까. ……난 결손투성이야. 어쩌면 난 처음부터 잘못 되어있던 거야. 그래서 미안해. 너희가 내게 쏟아 준 그 모든 시간을 허사로 만든 것 같아서 정말로… 면목 없어."


"그렇군요."


"응. 웃기지? 본인에 대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게. 웃어도 이해 할게. 썩 재밌는 얘기는 아니지만…"


"도련 님." 살짝 아플 정도로 알렉산드라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진다. "용기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도련 님에 대한 것을 알았으니, 공평하게 제 얘기도 한 번 해볼까 해요. 괜찮으신가요?"


나는 무언으로 답했다. 알렉산드라도 그것을 대답으로 받아들이고 본인의 과거를 읊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라는 상류층에게 수요가 많은 모델이었다. 막 태어난 아이의 보모역 부터 시작해 취학할 연령이 되면 그녀의 진가가 드러나는데 바로 교육이다. 몇몇 가정에서는 치안이 불안정한 현대 사회의 학교에 보내기 보다는 알렉산드라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가정교육만으로 자식의 지식을 충당시켰는데 (여기에 내가 해당된다. 물론 나같은 경우는 치안이 불안정하단 이유로 학교에 나가지 않은게 아니었지만.) 이것이 꽤나 효과가 좋아 저출산에 시달리는 학교에 안그래도 적은 학생수가 더 줄어버리는 역효과가 나버렸다고. 한 몸에 여러 인격이 존재하는 양 주인의 요구에 맞춰 교육 방법과 피교육자에 대한 스탠스, 스타일도 다양 하게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상냥한 어머니 같은 스탠스를 취할 수 있는가 하면 오로지 교육만을 목적으로 한 사무적인 스타일이 있었고 경우에 따라선 아주 엄격한 스타일까지.


'아주 엄격한' 스타일이란 부분을 강조해 말한 알렉산드라가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녀, 내 눈 앞에 있는 알렉산드라는 나와 만나기 이전에 다른 가정에 구매 되었던 바이오로이드였다. 주인은 자식을 교육 할 것을 요구 했고 알렉산드라는 그에 응해 피교육자를 엄하게 가르쳤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버려진다. 이유는 모른다. 알렉산드라는 추측하기로 자신의 능력을 너무 맹신한 전 주인은 끊임없이 완벽에 가까운 요구를 해왔기에 그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못해 충족 시킬 수 없었다고, 이유라면 그것이 유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전 주인은 삼안 산업에 반품을 요청했지만 피교육자인 자식의 교육 이외에도 여러 업무를 담당한 탓에 상품적인 가치가 하락해 버려 다시 삼안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고 결국엔 어설픈 졸부들이나 일부 상류층들이 주로 찾는 고가 바이오로이드 중고 거래터에 팔려나갔으며 (전 주인이란 자는 자신에게 고가를 투자했으나 본전의 50%도 되찾지 못한 것을 분해하여 마지막으로 떠날 때 까지 자신을 가만두지 않았다고 한다.) 내 아버지의 눈에 든 그녀는 이 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련 님. 위로 해드리진 않겠어요. 도울 방법도 모르니 섣불리 돕겠다고 말씀드리지도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알아주세요."


웃음기를 거둔 알렉산드라는 엄격한 교육자일 때 짓는 굳은 표정이었지만 그것이 굉장히 따뜻하게 느껴진 것은 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저 또한 결손투성이라는 걸요. 도련 님과 똑같이…"


"전 주인이란 사람이 이상한 거잖아."


"아뇨. 도련 님. 잊지 말아주세요. 전 바이오로이드 입니다. 주인된 자가 무엇을 요구하던 저희는 그것에 무조건적으로 응하고 충족시켜드려야 해요. 그것이 저희의 의무이고 태어난 이유에요. 좋든… 싫든 간에요…"


내게 교육해오던 것과는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 발언이지 않나 싶었지만 별 말 않기로 했다. 그녀는 위로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 이미 충분히 위로 받은 것 같은 안도감에 휩싸여 있었기에. 더하여 교육자이자 바이오로이드인 그녀가 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는 위로 방법이지만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하자가 있는 제품이며 결손투성이인 것이다. 그러니 참작의 여지는 차고 넘친다고 생각하고 나는 딱히 바이오로이드와 인간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지 않는 인간이니 문제 삼을 필요도 없었다.


"도련 님. 저희도 같아요." 소파에서 막 일어난 참에 마리아가 똑같이 일어나 소완 쪽을 보며 말했다. "소완 양과 저도 '중고' 랍니다."


"그러 하오니 도령. 괘념치 마시어요."


다가온 소완이 팔을 뻗는다. 그 팔에 이끌리듯 소완의 품에 안긴다. 소완에게 마지막으로 안긴 것이 언제지. 초등학생 때로군. 그 사이 키가 참 많이도 자랐음을 턱 끝에 걸친 소완의 머리를 통해 자각한다. 가만히 안겨 있기에도 뭐하고 위로해 오는 그녀들에게 슬슬 응답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여겨 팔을 뻗어 소완을 얼싸안는다. 뒤이어 등 쪽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마리아일 것이다. 


"도련 님…"


옆으로 다가온 알렉산드라가 팔을 벌렸다.


한 밤 중의 밝은 거실에서 서로 얼싸안은 우리 네 명은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려는 펭귄 인 양 일 분을 한 시간 처럼, 한 시간을 하루 처럼 언제까지고 서로의 온기를 주고 받았다. 


…그런, 한 때에 지나지 않을 온기와 위로와 안도감 속에서 나는 하나의 단어를 되뇌이고 있었다.


바이오로이드.


장래는 그녀들과 관련 된 것으로 하자고 생각했다.







/////






"준비는 다 된 거지?"


요 몇 년간 수도 없이 열고 닫아 더 초라해진 대문 앞에서 멈춰섰다.


"네, 도련 님. 퇴근하실 때면 이사는 끝나 있을거에요."


이 12평 짜리 허름한 연립주택도 오늘이 마지막이란 생각에 문 손잡이를 돌리기가 아쉽다.


"바로 새 집으로 오시면 되겠네요."


"응. 그렇네."


"제 제조사가 그렇게 씀씀이가 클 줄은 몰랐어요."


동감이다. 주거지를 요구 했다고 해서 일개 초년차 연구원에게 수백 평 짜리 단독 주택을 쾌척 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정말 어마어마한 복지다. 아무리 내 능력을 유니크 하다며 좋게 봐줬다지만 그런 주택을 선뜻 내주다니. 어지간히도 재산이 썩어나는가 보다. 물론 노동인구가 감소한데에 따른 반사이익도 어느 정도 있겠지. 모듈 개발을 바이오로이드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정말 대견하세요. 도련 님."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은 마리아의 목소리는 잠겼다. 대견 할 것 까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운이 좀 좋았다고 생각한다.


"대견하긴. 전부 너희 덕분인데."


내 대답에 한층 더 감격스러워 졌는지 마리아는 살짝 눈물을 보였다. 반면에 나는 늘 그렇듯 감회나 특별한 감정 따윈 없다. 어디 까지나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다.


"다녀올게. 힘들겠지만 이사 잘 부탁 해."


"맡겨주세요. 소완 양과 알렉사도 오늘로 마지막 출근에 오전이면 끝난다고 하니까요. 힘들 건 없을거에요."


"다행이네."


"전부 도련 님이 대견하게 자라주신 덕인 걸요. 저희를 편하게 해주시겠다니, 솔직히 그 때는 마음만이라도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못미더웠어?"


"아이 참.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멋쩍은 미소를 지은 마리아가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들긴다.   


"알아알아."


"늦으시겠어요. 어서 다녀 오셔요."


"그래. 진짜로 다녀올게."


가볍게 목례하는 마리아를 뒤로 하고 대문을 나선 뒤 엘리베이터에 섰다. 팔을 위로 하고 몸에 남은 잔피로를 기지개로 거의 다 날릴 때가 되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1층을 누르고 손목을 걷어 스마트 워치의 패널을 켰다. 수신 된 메시지는 5건에 그 중 4건이 업무와 관련 된 내용이었다. 따로 놀고 있는 나머지 한 건을 확인한다. '사장 님.' 이라 등록해둔 연락처가 보내 온 메시지였다. 입사 후에 찾아 뵙겠다고 약속해 놓고서 왜 반 년이 넘게 오지 않느냐는 내용이다. 말 없이 이별하기에도 뭐하니 대충 던진 빈 말이었는데 아무래도 사장 님은 진심으로 받아들인 듯 했다. 그 정도로 메시지엔 나를 향한 그리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그의 재산을 불려 준 내 능력 쪽을 그리워 하는 것이겠지만, 내 쪽에서 신세를 진 것도 있고 하니 퇴근 후에 귀가하기 전 잠깐 들르자고 정했다.


24살. 그녀들과 관련 된 직업을 갖자고 마음 먹은 뒤로 7년이 지났다. 빠르다. 햇수로는 7년이지만 그 중 3,4 년은 365일로 정확히 계산되지 않은 해도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고등학교에서의 2년 좀 넘는 시간은 순식간이었고 전문대학에서의 2년은 그보다 더 한 찰나였다. 친구는 없었다. 고등학교에서의 모든 관계는 고등학교 까지였고 대학교는 말하면 입만 아프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나이대에 어울리는 것들을 소홀히 하게 됐지만 소홀했던 만큼 '바이오로이드' 라는 단어와 가까워지는데 걸리는 시간을 한참이나 단축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 되서 그녀들에게 느끼는 감정과 감상들이 옅어지는 시간은 더욱 빨라졌고 당연히 장래를 그녀들과 관련 된 것으로 정하자고 마음 먹은 첫 이유와 계기도 잊어갔지만 '바이오로이드' 라는 분야 자체가 나와 적성에 맞았는지 나는 거의 매달리듯, 맹목적이라고 할 정도로 하루에 취하는 모든 행위를 지식의 축적과 기술의 연마로 귀결시켰다. 머릿 속을 채찍질하고 다리에 매질을 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정신적인 요소가 하루하루 지워지는 감각 속에서 발버둥치며 오직 '바이오로이드'와 관련 된 지식에 대한 이 열망이 곧 그녀들을 위한 것과 결부되어 있다고 믿는채 나와 그녀들이 지나온 과거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님을 나 자신에게 증명하고자 했다. 좀 더 나중에 이르러서는 그녀들을 위해 바이오로이드를 전공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적성에 맞고 배우는게 재밌어서 전공한 것인지 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됐지만. 


그리고 오늘 날, 결국 나 자신은 설마 'AGS' 와 다를게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여기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인공두뇌에 자신을 인간이라 믿도록 프로그래밍 된 ai를 집어넣고 현대사회에서 할 이유가 없는 사회 실험을 하려던 과학자의 피조물인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비참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한 때에 지나지 않을 비참함이지만 어쨌든, 그녀들에게 고백한 이후 찾아가봤던 정신과 의사는 카운슬링이라는 미명 하에 핀트가 엇나간 처방을 내리고 엇나간 핀트에 걸맞게 복용하면 반나절은 제대로 활동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약이나 처방했다. 덕분에 약이라는 단어가 갖는 사회적인 신뢰도는 내게 처방 된 한 달 분의 약을 절반도 복용하지 않았을 때 무너졌다. 당연히 약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했고 18살 이후로 병원에 가는 일도 없었다. 그 때의 내가 느꼈던 건 한 때의 절망과 한 때의 슬픔과 tv를 들여온 17살의 겨울과 똑닮았지만 역시 한 때에 지나지 않을 그녀들의 온기였다. 


사원증을 터치하고 사옥에 딸린 연구소로 가는 도중 늘 그렇듯 선임연구원의 비아냥이 날아들었다. 나는 가볍게 무시했지만 오늘 만큼은 날 곱게 놔줄 생각이 없는지 선임은 끈덕지게도 달라붙었다. 아무리 초년차 연구원이 받는 파격적인 대우가 못마땅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열등감을 불태울 일인가. 이럴 시간에 본인만의 기술을 개발하거나 실적을 쌓는게 어떻냐고 권유해보려던 참에 타이밍 좋게 바이오로이드 중고 거래소에서 나를 직접 스카웃했던 연구위원이 끼어들었다. 요령 좋게 중재하는 듯 했지만 은근슬쩍 연구위원은 선임을 나무라는 말투였다. 위원이 자리를 떠나고 선임은 경솔한 언행은 자제 했으나 말만 안했지 그 비루한 열등감을 더욱 불태워 내게 들이밀었다. 그 탄내를 못견디겠어서 나는 코 언저리에 손사래 치며 걸음을 빨리 했는데 내 손짓을 본 그는 결국 개새끼라고 복도가 떠나가라 외쳐버렸다. 쯧쯧, 기어이 저지른 것이다. 경비용 워울프 두 개체가 지나쳐갈 때 뒤를 한 번 돌아보고 다시 연구소로 향했다.








"암사자 프로젝트요?" 


내가 말했다. 수석연구원은 주변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추라는 손짓을 했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블랙리버 친구들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왜 제가 자문을 해야 합니까? 제가 그럴만 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요. 게다가, 극비인지는 모르겠는데 수석님 언행을 보니 꽤 비밀스러운 프로젝트 같은데요. 그런 건 어떻게 알고 계신거죠?"


"아, 그게 있잖아. 내 친구가 블랙리버 쪽 연구소에서 일하거든. 개발방향은 잡혔고 진척도 어느 정도 됐는데 모듈 조정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는 영 감을 못잡고 있나 봐. 특히 정신적인 부분 말이야. 자네는 모듈이나 바이오로이드의 정신 조율에 일가견이 있잖아. 뇌도 그렇고. 어때. 자네만 괜찮다면 좀 부탁하고 싶은데. 물론 공짜는 아니야."


"제가 자문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진 않은데요. 여기 삼안에서도 별종 취급 받는데 블랙리버 친구들이 잘도 제 얘길 들어주겠네요."


난처하다는 기색의 수석연구원을 지나치려는데 다시 앞 길을 막아섰다. 수석이란 놈이 대놓고 산업 스파이와 다를게 없는 짓을 한다는게 개탄스럽기 보다는, 내가 자문을 한다해도 블랙리버 측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부분이 더 피곤했다. 아마도 블랙리버 놈들도 여기와 다를 것 없는 취급을 하겠지. 학술적으로 접근 하려는 놈들은 다 그렇다. 뇌과학계의 정설이 어떻고 측두엽이 어떻고 변인엽이나 해마가 어떻다 나불대봤자 내겐 헛소리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해는 한다. 연구원으로서 내가 가진 것은 모듈의 제작법과 나노 머신의 조작법, 물리적인 조정을 위한 메스 사용법 정도이니 별종 소리를 듣는다 해도 모두 수용할 수 있다. 다른 수석이 말했었다. 미술 박물관의 큐레이터나 됐어야 할 놈이 연구소에 발을 들였다고. 100% 동감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바이오로이드 개발의 연구원이 되었으나 그녀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한없이 아티스틱 했다.


"그러지 말고… 눈 딱 감고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안 됩니다. 더 이상 피곤하게 하지 마세요. 무사 하려거든 그만하시고요."


경고로는 충분했는지 수석은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중간에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 것 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표본이랑 시술대 준비 해 줘. 오늘 저녁은 집에서 먹을거라 빨리 끝낼 거니까 두 번만 할 거야."


마침내 혼자가 됐다. 내 실험실이지만 어찌나 양해도 없이 드나드는 것들이 많은지 좋은 대우를 받는다 해도 초년차가 치이는 것은 숙명이라고 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질린다. 치밀어 오른 짜증을 믹스커피와 함께 목구멍 뒤로 넘기고 실험실 컴퓨터가 세팅한 시술대로 다가섰다. 준비 된 시술대는 두 개. 각각 애니와 아우로라가 마취 된 상태로 준비 되어있다. 바닐라나 포티아가 아니다. 드디어 애니웨어 시리즈로 실험 할 수 있다. 그 동안 몇 번이고 빠짐 없이 서류로 윗선을 들볶은 보람이 있었던 것이다.  


"시작 해볼까."


시간상 직접 시술은 불가능하니 메스는 치운다. 한 세트씩 준비해둔 모듈과 삽입기, 나노 머신을 늘어놓고 다시 한 번 점검한다. 한 세트는 하늘, 나머지 한 세트는 심해이다. 하늘로 세팅 된 것은 아우로라에게, 나노머신의 최종 경로는 전두엽으로 설정한다. 심해로 세팅한 것은 애니에게, 최종 경로는 변연엽으로 설정한다. 기존에는 모듈을 먼저 삽입했지만 이번에는 나노머신부터 투여 후 뇌파의 파형에 변화가 올 때 모듈을 삽입한다. 


과정 자체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유의미한 변화와 결과를 측정하는데에 시간이 걸린다. 설정된 수면 시간 2시간, 변화 되어가는 과정이 또 2시간, 마지막으로 의식이 고정되는데에 1시간으로 총 5시간. 오차는 약 30분 내외다. 뭐 이 정도다. 수면을 취하는 2시간은 개인적인 시간으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시술을 모두 끝내고 실험체들이 깨어나기 전 까지 귀가 후를 계획 해봤다. 저녁은 어디서 먹지. 다들 이사하느라 꽤 지쳤을 테니 외식으로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외식 한다면, 소완이 일해왔던 레스토랑으로 갈까. 학생 시절엔 눈코 뜰 새 없던 탓에 소완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는 현장에서 직접 그 능력을 맛 본 적이 없었다. 소완만 허락 한다면 괜찮겠어. 스마트 워치의 패널을 띄워 계획란에 '외식 예정' 이라 적어두고 알렉산드라에게 연락 했다. 통신음이 4번 째로 들리기 전에 알렉산드라가 응답 했다.


"도련 님. 일하는 중에 전화 주시면 곤란하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마지막 근무 일이면서 빨리 끝나기 까지 하는데도 알렉산드라는 대충 할 생각 따윈 없었던 것 같다. 그녀 답다. 예상했던 바다.


"학원은 어때? 애들이 말 잘 듣고 있어?"


"…잘 들어주었습니다. 평소에는요."


"평소엔?"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파티를 하자고 해서요. 그래서 지금 막 곤란해진 참입니다."


곤란하다고 내뱉은 말에 어울리는 한숨을 쉬는 알렉산드라 였지만 목소리의 톤이 묘하게 높은 걸로 보아 딱히 곤란해 하는 것 같진 않다.


"잠자코 있는게 어때? 인간이 파티를 열어준다는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


"…흔한 일이 아니다 수준이 아니죠.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맞아요. 그게 문제인 겁니다."


아하. 곤란하다는 건 그 쪽이었군. 요컨데 적응이 안된다는 그런 얘기인가. 그런 거라면 문제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이 세상엔 바이오로이드에게 우호적인 인간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네. 그럼 뭐 곤란해 할 거 있나? 나 대하듯 대하고 와. 기회가 왔을 때 맘 껏 즐기고 오라고."


"괜찮으신가요?"


"무슨 소리야?"


"……그, 제가 다른 인간 님들과 어울린다는 부분이…"


"난 또 무슨… 신경 안 써. 착실한 아이들이라며? 우리 알렉산드라에게 친절한 사람은 누구든 환영이야."


"정말로…"  "스마트 워치로 녹화해 놔. 안즐기고 오면 화낼거야."


거기까지만 말하고 알렉산드라가 대답하기 전에 통신을 끊었다. 알렉산드라가 기뻐할 일이 집 외에서도 생긴다니 내 일인 양 즐겁고 기쁘게 다가온다. 물론 한 때이지만 지금은 있는대로 받아들여 알렉산드라가 가질 기쁨을 간접적이나마 공유하고 싶어 바이오로이드에게 우호적인 인간. 바이오로이드에게 우호적인 인간. 그런 문장을 몇 번이고 주문 처럼 읊다가 자리를 일어섰다. 


"으음…"


커피를 몇 잔 더 홀짝이고 새 집에 들일 가구들을 알아보고 있으니 시술대에서 뒤척이는 것이 보였다. 애니였다.


"일어났니?"


실험실에 놓인 의자 하나를 끌어 애니 앞에 앉았다. 애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실험실 치고는 잘꾸며진 장소(실험체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조치이다.)를 이리저리 둘러 보다가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좋아, 애니. 아무 말이나 해볼래? 지금 느껴지는 거라던가. 이 방의 인상에 대해서라던가."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번 실험도 실패였다. 눈여겨 볼 변화는 있었지만 나머지는 기존의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 한 시간 동안의 애니는 일반적인 애니였다. 보안관으로서 가진 다부진 성격으로 거침 없이 말했지만 한 시간이 지나자 애니는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심해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건가. 심해가 갖는 이미지가 이미지인 만큼 예상 했던 반응이었지만 애니 정도 되는 바이오로이드라면 다르지 않을까 기대한 부분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미지를 너무 정직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혹은 애니라는 바이오로이드의 성격이 실은 그다지 다부진게 아니었던 것일지도. 아니면 이미지가 너무 명징했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내 쪽에서 이미지 조율에 실패한게 되는데, 이 부분은 따로 기록해 둬야겠다. 


결국 3시간 쯤 지나서 애니의 정신은 붕괴됐다. 심해에서 무엇을 연상했든 공포에 질린 끝에 더 이상 제대로 된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아우로라는 애니와 반대였다. 다만 반응만 반대였을 뿐 변화되는 과정 자체는 똑같았다. 파티시에 아우로라로 시작해 환희에 미쳐버린 아우로라로 끝맺었다. 애니와 아우로라. 둘 모두 기존의 실험과 같이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뒷처리를 위한 보안 팀을 호출했다. 씨발. 화가 치밀어 올라 시술대를 내려쳤다. 이번 실험에 쓰일 모듈과 나노머신은 상당한 공을 들인 편이었는데 이번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시술 과정을 바꾼 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안돼… 안돼…"


뭐가 문제였지. 자료를 되짚어보며 생각해 봐도 좀 처럼 잘못한 부분을 찾을 수가 없다. 


이래서는… 이래서는 안된다.         


이래서는 그녀의 소망을 이뤄줄 수 없다.


속박으로부터 그녀들을 자유롭게 해줄 수 없다.


보안 팀에 의해 살처분된 두 실험체를 보내고서 옷을 갈아 입는다.


벽에 가로 막힌 기분이다.





//////





3지구에 있는 연립 주택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8지구. 중산층이 주로 모여사는 주상복합들이 늘어서 있는 8지구의 가장 안 쪽에는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홀로 떨어져 다른 분위기를 내는 지역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좀 더 안 쪽으로 들어간 골목에 내 첫 직장이 위치해 있다. 저녁을 먹을 시간 즈음이 되서 나는 씩씩대며 그 첫 직장에서 나왔다. 직원들이든 사장이든 그 곳은 변한 게 없었다. 사장은 본인의 비서인 콘스탄챠와 사무실에서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고 내가 들어왔을 때도 멈추지 않았다. 손님 초대 해놓고 뭐하는 거냐며 눈치를 줘서야 그만 뒀는데 콘스탄챠는 내심 내게 감사해 하는 눈치였다. 여전히 바이오로이드를 좋지 않게 취급하는 듯 했다. 지저분한 인상의 남자가 여성체를 겁탈하는 장면이 불쾌해서였는지 공을 들인 실험이 실패한데서 온 무력감과 분노가 다시 끓어올랐다. 첫 직장에 신세진 것도 있고 내 능력을 가꾸고 발전시키기 위한 투자(실험체 제공)를 아낌 없이 해준 자 였으나 어디까지나 이해관계 였기에 적당히 감정을 자제할 의리 따윈 없었다. 그래서 시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본인이 내게 권하는 진이나 위스키가 그 것이다 라는,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철학을 설파하려는 것에 충분히 비아냥거려 주었다. 당연히 술은 받지 않았다. 난 술 따위 안 마신다.


"개같은게 어디서…"


화풀이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분이 가시질 않아 감정을 추스릴 목적으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3지구에 들어서고 눈이 내리기 시작해 버스 대신 지하철이 낫겠다 싶어 역세권에 속한 번화가에 도착했을 때 걸음을 늦추고 주변을 돌아봤다. 홀로그램으로 꽃단장 한 가로수와 역 앞의 트리가 성탄절이 머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성탄절… 성탄절이라. 성행위를 하기 위한 날로 변질 된 기념일을 머릿 속에서 반복해 읊다가 그녀들을 떠올렸다. 저택을 나온 이래로 올해 성탄절은 누구 한 명 빠지는 일 없이 다 같이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맑게 해준 참이었다.


그리고, 역사로 들어서기 전.


지금 당장 뒤돌아보라고 누군가가 속삭인 것 같았다.


걸음걸이를 다시 늦추고 뒤돌아본다.

인파 속에서 나는 지나쳤던 그 모습을 곧바로 특정한다.

나와 같았는지 그 모습도 나를 특정하고 있다.

내가 특정한 것은 한 여자, 그 모습이 특정한 것은 남자였다.


큰 보폭으로 세 걸음 쯤 되는 거리.

그럼에도 바로 앞에 있는 것 처럼 망막에 선명한 인상.

어둑한 번화가 속에서 가로등 빛에 싸여있어도 선명한 연분홍빛을 띈 아담한 입술.

살짝 올라가 있는 듯한 입 꼬리. 적절한 간격을 두고 위치한 적당한 크기의 눈.

그와 짝을 이뤄 일 자로 곧게 나있는 적당한 밀도의 눈썹.

그 눈썹의 언저리에 걸쳐진 내려앉은 앞 머리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

겨울 바람이 전해오는 라이트 플로랄 계열의 샴푸 향.   

         

가슴이 간질댄다.

뱃 속이 움찔거린다.

수백만 마리의 나비가 안에서 춤추는 것 처럼.


처음으로 느끼는, 난생 처음으로 가득 채워지는 충만함이란 그런 감각이었다.


형형색색의 홀로그램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이 그녀를 제외하고서 색조를 잃어간다.

꺅꺅대는 가족들과 연인들의 소리와 그에 호응하는 듯한 간판들의 기계소리가 멎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발걸음은 그녀에게 향하고 있다.

그녀 또한 내 곁으로 다가온다.

 

나는 직감한다.


운명.


과학과 친한 연구원이란 직업은 이성을 중요시 해야 할텐데 운명같은 불분명한 것을 지껄이느냐고 말해도 별 수 없다. 


애초에 난 과학자라 하기에도 애매한 놈이다.


가슴을 가득 메우는 황홀하다고도 할 수 있는 감각 속에서 나는 스마트 워치를 켰다.


오늘 저녁은 바깥에서 먹겠다는 의미의 메시지를 눈대중으로 작성해 보내고서 나는 그녀와 거리를 좁혔다. 





//////





늦어서 미안해 ㅜㅜ


전개는 머릿 속에 그려놨는데 줄글로 풀기가 영 시원찮아져서 좀 막히고 있어 


아마 2편 안에 끝날 거야.


재밌게 봐 줘~


지금은 피곤해서 퇴고를 못했어 오탈자나 어색한 부분은 천천히 수정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