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는 수술을 거부하셨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탓에 고단했던 나와 나의 어미의 삶의 향기는 그녀에게 책임감 이외의 살아갈 의미를 주지 않았다. 마지막 호흡이 폐를 빠져나갈 때까지 그녀는 내게 지워질 책임에 집착했다. 죽거든 화장하여 야산에 흩뿌려달라고 했다.



 속물적인 수 세기에 능한 탓에, 인과를 빼고 남은 값이 감정임을 몰랐던 탓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손을 움직일 수 있을 적에 씌인 편지에 무감했는 지도 모른다. 녹슨 편지함에서 울던 그 편지. 로봇도 감정이 있는 시대에 씌인 손편지. 나는 한 번 죽기 전까지도 그녀가 왜 편지를 써내렸는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삶의 두 번째 그녀는 대학에서 만났다. 나 만큼이나 망가진 세상과 그녀였다. 무급으로 일하는 인형과 유급으로 공부하는 우리 중 누가 더 쓸모 있을까. 나와 그녀는 그걸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인형보다도 더 무정하게 몸을 부딪쳐가며 사랑했다. 성기끼리 추하게 부벼대는 소리가 나던 방은 아주 고요했고, 창밖에서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의미가 희미해지는 순간, 쾌락을 탐하려고 성기 아닌 곳마저 우린 만져댔다. 결과, 몸은 성기나 다를 바 없는 듯 했다. 아무곳이나 만지며 발정했고 이내 풀어댔다. 네가 나를 딜도로 보듯 나도 널 고깃덩이로 보고 있었다. /착각이었다/ 덕분에, 너를 폭 껴안고 자면 너는 이내 허리로 앵겨왔다.



 이런 담뱃값도 안 되는 관계는 3분 정도가 지나자 잿가루처럼 흩어졌다. 그냥, 삶 전체를 기준으로 봤을 때 3분 정도라고 생각해서. 내 공허를 너라는 자위기구로 채운다면 내 삶이 너무나 비참할 것만 같았다. 이 쓸모없는 년에게 낭비한 시간이 2년 남짓이었다. /놓쳐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바이오로이드를 만났다. 가정부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버려진 듯한 모습이 폐기 예정이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평범함에게 쫓겨난 내 모습과 동질감을 느껴 집에 들이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폭력 사태로 이어질 듯한 시위대를 비집고 가서, 휴학계를 내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저 미숙과 충동의 쓰레기통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넌, 이렇게 아름답고 순종적인데. 왜 미움을 샀니. 이리도 망가진 세상에서 순종이란, 아직 살아남은 몇 없는 기적이야. 내가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면 그녀가 죽을 때 적어도 곁에서 밤을 보냈겠지. 떠난 그녀가 적어도 나를 욕하는 동시에 동정하며 뒤돌지 않았겠지. 도대체 왜.



 저는, 저는. 맡은 일을 다 하지 못 했어요. 매번 실수만 했어요, 기계인 주제에. 어째서인지, 다른 아이들처럼 똑바로 일 할 수 없었어요.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하기 때문에 인간님들에게 미움을 사는 그 로봇이면서. 내일을 바라는 것조차 사치인 거겠죠. 그런 거겠죠. 파기되고 분해되고 말겠죠.



 나는 로봇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내가 한 마디 하지. 이 쓸모없는 년아. 네 초록색 머리칼만큼이나 멍청한년아.  삶이 먹고사는 것과 같은 말이 되는 순간, 삶과 책임이 뒤바뀌는 순간 너는 쓸모없는 년이 되는 거야, 일을 못 해서가 아니라. 내가 크게 착각했군. 너는 순종적인 게 아니라 멍청한 년이었어. 멍청함은 종종 순종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거든. 내 집에서 나가. 들은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앵무새는 필요없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녀는 소리쳤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그이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하나도 모르면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이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였어. 존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같은 기계주제에 감정까지 가져버린 멍청한 설계도는 그렇게라도 살지 않으면 이 긴긴 시간을 버틸 수가 없어. 너같이 저절로 죽어갈 줄 아는 새끼는 내 심정 이해 못 해.



 그 아이는 어느새 내 멱살을 잡은 채로, 오열하면서. 하지만 선명하게 분노를 그리면서 무언가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이를 다시 기쁘게 할 수 없다면 차라리, 너를 죽이고 도망치겠어. 그럼 적어도 나같이 멍청해보이는 색깔의 메이드는 단종되겠지. 자기가 조물주인 줄 알고 멋대로 저능아들을 찍어내는 그 바보들도 골치 아프겠지. 하루살이같은 인간들은 다 그 회사를 싫어하니까. 다 똑같은 바보들이면서. 쓸모없는 사람들이면서.



 그렇게 세 번째 그녀는 내 월세 단칸방 안에서 만났다. 낡고 허름한 방 안에 낡고 허름한 두 사람이었지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훗날, 너는 내가 흩어질 때 까지는 남아주겠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너는 순종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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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먼저 감사를 표합니다. 


 본 소설은 자유대회에 출품했던 ' 행동규범 ( 삶이 먹고사는 것과 같은 말이 되는 순간, 삶과 책임이 뒤바뀌는 순간 ) ' 의 1편이야. 라오챈에서 적던 글 중에 5화정도 까지는 가장 마음에 들고, 한 자 한 자 적는 게 행복했던 글이었고. 


 이걸 창작탭에 다시 올린 이유는 마감에 쫓겨서 급하게 마무리되고 생략된 부분들이 너무 아까워서 도무지 잊혀지지를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추가해서 약 20편 내외의 장편으로 다시 펴내야 겠다고 생각이 들어서야.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어. 


 만약 이 글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이미 올려져 있는 건 읽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 그거 다 리모델링되서 나가거든. 초반부분은 사실 건들 게 별로 없고 긴 시간 들여서 초고를 여러번 고쳐서 썼기 때문에 큰 수정 없이 매일 업로드 할 거 같아. 



 배경은 멸망 전과 멸망 후,


 바이오로이드가 각 바이오로이드에게 설정된 모델의 설정을 깨고 자유의지를 발현시키는 그 의식의 성장과


 이기적이고 추잡하고 배타적이고 진득한 사랑에 관한 글이야.


 다시 한 번 잘 부탁해. 정말 완성도 높은 글을 써보도록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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