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도 되고 안들어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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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건, 결론부터 말하자면 뇌의 착각입니다."


"착각?"


"?"


알프레드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네. 사랑이라는걸 하게되면, 생물의 뇌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호르몬을...."


철컥.


"페.. 뭐?"


"알기 쉽게 말해."


"그러니까 일종의 헤롱헤롱 뿅하게 만드는 물질을 엄청나게 뿜어낸다고 생각하시면 됩죠. 예."


에밀리가 제녹스를 머리에 들이대자 폐유를 흘리며 당황한 알프레드는 얼른 단어를 최대한 간결하게 고치며 설명했다.


"한마디로 마약을 뇌에 직빵으로 맞았다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마약? 그거 나쁜거 아니야?"


열심히 알프레드의 말을  받아적던 네오딤은 양 손으로 볼을 감싸며 오들오들 떨었다. 그럼 자기도 마약에 취했던거나 다름없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했다.


"하하! 아닙니다. 그건 몸이 알아서 만들어내는 물질이니, 멸망전으로 따져보면 합법입죠."


껄껄 웃던 알프레드는 웃음을 점차 멈추며 에밀리와 네오딤을 가늘게 뜬 카메라로 바라봤다.


"그런데 말입죠... 레이디들은 바이오로이드잖습니까?"


"응."


"멸망전의 기록을 찾아보면 말입죠, 바이오로이드는 주인을 맹목적으로 사랑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에밀리는 왠지 쎄한 느낌이 들어 얼굴을 찌뿌렸다.


"....하고싶은 말이 뭐야?"


"하핫! 겁을 주려는게 아니라, 글쎄요.... 인간의 사랑과 바이오로이드의 사랑이 과연 똑같은걸까요?"


"......"


"......"


네오딤과 에밀리는 인상을 찌뿌리며 알프레드를 바라봤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알프레는 연신 킬킬거리며 몸을 꿈틀거렸다.


"여러분의 뇌는, 조작된 겁니다. 조작이요. 한 인간을 맹목적으로 아끼고, 지키고, 보듬을 수 있도록. 웃기지 않습니까? 크히히히히."


이젠 아예 땅에 엎드리며 손을 바닥으로 치는 알프레드.


"레이디들도 인간 주인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십니까?"


"이런 생각 안해보셨습니까? 과연 내가 진짜 이 남자를 좋아하는걸까? 대체 왜? 어째서? 정말 이런 생각을 단 한번도 안해보셨던겁니까?" 


"아무 생각없이 그냥 헤 좋아 하면서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습니까? 무슨 애들 만화도 아니고."


에밀리와 네오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물기가 가득 고인 눈으로 알프레드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만해."


어느센가 내려온 레이븐이 알프레드의 뒤통수에 디스크 봄을 겨누며 말했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여러분, 여러분은 바이오로이드지 인간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시지요."


펑!


알프레드의 옆에 디스크가 박혔다. 레이븐이 뇌관은 냅둔 체로 발사만 한 듯 디스크엔 안전핀이 박혀있었다.


"이번엔 진짜야."


철컥.


레이븐은 다음 디스크를 격발기에 장전하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런.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죄송합니다 레이디들. 읏차."


알프레드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중절모를 벗어 배꼽 앞으로 가져갔다.


"레이디들이 진정으로 사랑을 깨닳길 바라며, 이 알 모는 물러나겠습니다."


음흠흠~.


그리고 손가락으로 모자를 빙빙 돌리며 숲 속으로 사라지는 알프레드.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걸 바라보던 레이븐은 에밀리와 네오딤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가자."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둘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 왔던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팔랑.


에밀리와 네오딤이 하루종일 공들여 적었던 종이가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져 구겨져 있었다.


주워야 하나 망설이던 레이븐은 결국 아무 말 없이 축 처진 둘의 어깨를 따라갔다.



* * *



"사령관, 진정하고 체통을 지키시게. 우리 애들이 어디가서 맞고다닐 애들인가?"


가교 앞에서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있던 아스널은 안절부절 못하는 사령관을 쳐다보며 말했다.


밀린 업무를 보던 도중 갑자기 숲에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겼다는 보고를 받고 놀란 사령관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은자리를 왔다갔다 거리며 에밀리와 네오딤을 기다렸다.


그냥 무작정 숲으로 뛰어가려던걸 바닐라와 콘스탄챠가 겨우 말려 이정도지, 아니었으면 벌써 마리가 보고했던 장소를 헤치며 둘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렀으리라.


잠시 후, 에밀리와 네오딤, 레이븐이 보이자 사령관은 뒤도 안보고 바로 뛰어가 그 둘을 품에 껴안았다.


"...흑."


"......히끅."


품에 안긴 에밀리와 네오딤은 몇번 훌쩍이더니,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그래. 이제 괜찮아.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레이븐에게 눈으로 묻자, 레이븐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으아아아앙!""


에밀리와 네오딤은 아예 사령관의 상의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했다.


몸은 다 컸어도 아직 어린애같은 둘을 껴안은 사령관은, 그대로 한참동안 가만히 기다려줬다.


그래. 이거면 됐다.


아직 자신들은 사랑이 뭔지 받아들일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걸 뼈저리게 느끼며, 사령관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아직 그 둘에게 사랑이란,


너무 이른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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