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포반 쏴!”
개활지에서 AA 캐노니어의 활약은 눈부셨다. 그들의 직사포에 철충들은 제 무덤인 줄 모르고 전깃불에 달려드는 날벌레처럼 구워졌다.
“철충이란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군.”
아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자는 캐노니어의 지휘관은 로열 아스널. 폭약이 만들어낸 후폭풍에 그의 긴 머리칼을 나부꼈다.
멋진 그림이나 한편으론 모래와 먼지가 호흡기를 사정없이 강타해 기침을 유발했다.
“대장은 이런 상황에서 잘도 웃네.”
“대장이 어푸어푸 정신 못 차리고 기침하면 적들의 우스갯거리가 되지 않겠나.”
양털 같이 부푼 하늘색 머리칼이 모래폭풍으로 헝클어진 파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로열 아스널을 칭찬했다. 어이없으면서 한편으론 존경스러웠다.
“대장 철충 본대가 다가오고 있어. 이제 후퇴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럼 최대화력으로 한 발 먹여주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자. 퇴각할 동안은 셀주크 부대가 엄호하기로 했다. 에밀리, 제녹스. 기다리다 지쳤지? 드디어 차례다.”
“응… 힘낼게. 돌아가면 사령관이 초콜릿 주기로 했어.”
“뭣? 우리 에이스를 사용하는데 초콜릿? 내가 더 좋은 포상을 내려지게끔 힘을 써보지.”
포병은 전장의 신이다.
“힘이 아니라 보지를 써본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군.”
“대장의 입을 멈출… 무린가. 파니, 에밀리의 귀를 막으세요!”
“맡겨만 둬!”
“놀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얘들아. 사령관은 철충 본대가 확인되는 즉시 철수하랬는 걸!”
다소 어처구니없는 대화를 배경으로, 양 귀를 서로 다른 손으로 막아진 에밀리의 제녹스가 변형. 숨은 포신이 사출, 전개. 더해 상하로 갈라지며 진가를 드러낸다.
파직, 파직. 창색의 고압 전류가 튀겼다. 위아래로 벌어진 포신은, 먹이를 집어삼킬 듯 벌린 용의 턱을 연상케. 누군가 포병의 사격소리를 천둥소리라 묘사했던가.
“사선 상의 철충 완전 침묵.”
고열을 동반한 섬광. 천둥으로 된 용이 지면을 집어삼켰다. 캐노니어 최대화력을 정면에서 마주할 수 있는 건 철충 중에서도 익스큐셔너나 둠 이터 정도리라.
캐노니어 전원 산개. 분대 단위로 나뉘어 부대의 핵심인 로열 아스널과 에밀리가 속한 총원 5인 분대가 신속히 컨테이너에 탑승. 후방의 셀주크 부대가 그들이 이탈하는 동안 철충에게 저지 사격, 비행이 가능한 레이븐이 최후방에서 경계하여 안전을 도모했다.
전장의 고조와 긴장이 풀릴 무렵 파니가 농을 던졌다.
“어라, 대장. 오늘은 그 도발 안 하네?”
“파니, 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말하다니 원망할 거에요….”
비스트헌터가 맹수의 눈으로 파니를 노려봤으나 낙천적인 천성인지라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파니를 공포에 질리게 한 경험은 지휘관의 엉덩이 아래 깔려 실시간으로 얇아지는 사령관을 봤을 때 외에 아직까지 없었다.
“질팡질팡은 관두지.”
“예 역시 하겠죠. 여기서 인간이 끊임없이… 잘못 들었슴다?”
비스트헌터 씩이나 되는 이가 스틸라인의 브라우니 같은 실수를 저지를 만큼 충격적인 대답이었다. 로열 아스널은 자세한 대답 대신 복부를 조심스레 문질렀다.
“어디 다친 거야 대장…?”
정말 걱정돼서 물어보는 에밀리.
“알았다. 최근 밥맛이 좋아서 살찐 거구나. 두드려도 질팡질팡이 아니라 배북이 돼서 도발의 기능성이 상실됐어! 정답이지?”
“아니, 설마. 대장 혹시 임신했어요?”
장난꾸러기 파니와 설마설마하면서 답을 도출해내는 비스트헌터. 그리고.
“후방에 적영, 총원 전투 준비!”
“파니 놀랐어, 셀주크 부대의 포격을 뚫고 쫓아왔다고?”
“레이븐, 적의 이름은?”
“적 개체명, 처형자… 익스큐셔너입니다!”
악명 높은 철충이 양팔의 커다란 검을 휘두르자, 구름이 찢어져 시야가 확보된다. 복수의 시뻘건 눈이 캐노니어 부대를 포착. 컨테이너 후미, 처형인에 가장 가까운 까마귀는 진땀을 흘렸다. 괴물, 현재 인원으로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최대화력인 에밀리의 버스터 캐논도 연달아 발사할 수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
“에밀리, 제녹스에는 몇 명 탈 수 있지?”
“2명. 무리를 하면 3명까지는 어떻게든….”
로열 아스널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며 외쳤다.
“비스트헌터, 파니. 그리고 에밀리. 3인은 제녹스에 타서 후퇴하라. 이건 명령이다. 불복종은 용납되지 않는다. 가라, 오르카호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레이븐을 반으로 죽이기 직전인 익스큐셔너의 칼날을 강타하는 20mm 탄환. 미미한 위력이지만 칼날의 속도를 늦추는 데 성공.
로열 아스널은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레이븐에게 고한다.
“최속으로 전장에서 이탈해라. 오르카호에서 증원을 불러와라.”
“하지만 대장, 임신….”
“명령이다.”
“…….”
제녹스에 탑승한 3인도, 레이븐도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명령은 절대.
“안 돼 대장. 혼자 두면 위험해. 함께.”
“에밀리!”
가장 이성적인 비스터헌터가 에밀리를 제지한다.
강제로 제녹스의 컨트롤을 빼앗아, 발버둥치는 에밀리를 힘으로 누르고 이탈.
미련 가득한 얼굴은, 살아서 돌아오세요. 죽으면 용서 안 할 거에요. 그렇게 말하는 듯 싶다.
“임신이라니 얼토당토않지. 최근 밥맛이 좋았을 뿐이다. ”
홀로 익스큐셔너와 마주하니, 놈이 시선을 돌렸다. 무기질적인 눈에서 감정을 읽을 순 없지만 한 사람보다 다수를 처리하는 편이 이득이라 판단했음이 분명했다. 어쩌면 철충끼리도 소중한 사람, 아니 소중한 철충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복수를 위해서 쫓아왔다고 생각하면 꽤 낭만적이다.
버스터 캐논에 쓸려나간 철충 중 익스큐셔너의 연인이라도 있었나 보군. 캐노니어의 대장은 죽기 직전에 놓이니 별 희한한 생각이 다 든다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사격 명령을 내린 나다.”
그러나 순순히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극한의 상황에 몰리니 더더욱 살고 싶다. 뱃속에 새 생명에 이름도 지어주지 못했다. 승산이 0은 아니다. 버스터 캐논을 못 쓰는 제녹스보다 승산이 있었다. 아주 티끌만큼의 승산이나 로열 아스널은 도박을 걸기로 했다.
컨테이너가 공중에서 선회.
‘남은 연료를 모두 불태워라. 목표는 익스큐셔너.’
“컨테이너다!”
놈에게 어쭙잖은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컨테이너째로 때려 박아, 질량으로 짓뭉갠다.
사지의 자유를 빼앗은 뒤 구원을 기다리면 된다.
질 리가 없다. 전장의 신은 최강의 포병대와 함께하고, 캐노니어는 최강의 포병대다.
***
캐노니어 숙소, 아스널의 관물대에서 임신 테스트기가 발견됐다.
두 줄이 선명하게 그어진 테스트기. 두 사람이 교미할 때면 침상이 부러지도록 박아, 고치는 입장도 생각하라며 포츈의 불만을 샀다. 콘돔이 버티지 못한 것도 어쩔 수 없다.
“대장…….”
캐노니어 부대원들은 전원 눈물을 글썽이며 관물대를 정리했다.
지휘관의 코트, 부대원들에 대한 기록, 사령관과 일기.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위한 육아일기.
끝으로 쓰다남은 콘돔 박스.
“아스널…….”
사령관이 나지막히 읊조렸다.
“너무 질책하지 말게, 그대여. 아직 다친 곳이 낫질 않았어.”
질책? 질 체크라면 좋네. 수복실에서 농을 던지는 로열 아스널의 모습에 사령관은 격노했다.
“임신했으면 했다고 말을 했어야지!”
“아니, 그게. 했다고 말하면 안정기에 들 때까지 잠자리를 못 가질 것 아닌가?”
컨테이너로 익스큐서너와 격돌. 지상으로 추락한 아스널과 아이는 기적적으로 무사했다. 정말 전장의 신이 함께했다고밖에 말할 길이 없는 결과였다.
“출산까지 출격 금지. 잠자리도 금지.”
“무슨, 그대여. 임신한 바이오로이드는 나 하나. 모유 플레이를 버릴 생각인가. 사실이라면 제정신인지 의문이 표할 수밖에 없어.”
이를 보고 있던 비스트헌터는 눈물을 흘렸다.
“정말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대장이야… 사령관님 이번 기회에 제대로 기강을 다져주세요.”
사령관도 눈물을 흘렸다.
“아스널, 네가 전에 말한 도발 있잖아.”
“여기서 인간이 끊임없이 나와?”
“그것도 금지. 철충과의 전쟁은 내 대에서 끝낼 거야.”
아이를 전쟁병기로 키우고 싶지도, 아이 앞에서 모친이 다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대, 바이오로이드의 출산은 인간과 똑같이 10개월이다만. 10개월 이내에 철충을 멸종시키지 못한다면 내가 몇 달 더 품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사령관의 격노는 전장의 신도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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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 좋아.
로열 아스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