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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과 촉각, 청각과 마음 속 까지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경험은 얼마나 귀한 것일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행복한 감각에 장화는 좀 더 몸을 부비며 잠투정을 부린다.

그녀가 잠을 잘때에는 춥고 좁은 야외의 어딘가에서, 임무를 위해 초단위의 시간까지 맞춰 기상해야하기에 강한 긴장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소리를 내면 안되기에 항상 얕게 잠들어 작은 소리와 변화에도 기상해야만 했다. 그런 일을 위해 태어났다는 변명과 나날이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몸 상태를 당연하게 여기던 그녀에게 오늘 하룻밤은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따뜻한 목욕물, 넓고 푹신한 침대와 포근한 이불, 자신을 품으로 끌어당겨주는 사람의 온기, 이전까지의 생활에선 영유할 수 없었던 충격적인 감각이었다. 새로운 세계에 빠진 장화가 천천히 눈을 뜬다.

창 밖의 빗소리는 여전했지만 그 비를 오로지 구경만 할 수 있단 것으로도 충분히 편안한 생활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나간다. 어제와 같은 자세로 사츠미가 무언가를 요리하고 있었다.

 

일어났니?”

 

이미 일어난 사츠미가 접시에 담아둔 오므라이스 두 접시를 들고 장화에게 걸어온다. 쇼파 앞에 음식을 놓아주더니, 장화의 옆자리로 와서 앉는다.

 

감기들어”

 

단추를 풀고 있던 장화의 셔츠를 다시 입혀준다. 가슴부분이 꽉 낀다.

 

하나 물어봐도 돼?”

 

윤이 날 정도로 기름을 잘 먹은 오므라이스 끝부분을 잘라 먹기 전에 장화가 묻는다. 이미 한 입 먹은 사츠미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그녀를 바라본다.

 

내가 곤란한 사람이라 도와준거면, 내가 다시 주인한테 가도 상관 없는거야?”

응?”

뭐, 가겠다는 건 아닌데…”

 

꼭, 가야해?”

아니, 그건 아니지만”

주인이…아프게 했거나 그랬을 것 같아서, 여기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까 했거든”

 

총에 맞은 모습을 봤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죽어가는 채로 골목길이나 으슥한 곳에 유기되는 바이오로이드는 생각보다 많았다. 사츠미는 아마 장화의 모습도 그런 바이오로이드인 줄 알았을 것이다.

 

일단 내가 바이오로이드란 건 알고 있었구나”

어?”

어떻게 안거야”

 

오므라이스는 뒷전, 심문하듯 사츠미를 압박해가기 시작한다. 장화의 위압적인 분위기와 페이스에 말린 사츠미는 손까지 공손히 모은채로 대답하기 시작한다.

 

그냥…생긴게 독특하니까,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렇잖아 가슴도 크고”

그래서?”

리페어샵에 데려갔어, 그랬더니 주인은 없다고 나오고…모습도 원본 바이오로이드랑은 너무 다르고…총에 맞은 것도 그렇고, 심하게 학대를 당하고 버려졌구나 싶어서…그래서 데려온거야, 진짜야!”

 

억울함을 토로하는 사츠미의 목소리가 딱히 거짓말이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동공, 호흡, 억양의 변화, 모두 거짓말이라는 판단할 근거는 없었다.

 

그래?”

 

장화가 하는 일이나, 장화의 성격이 상냥하고 살갑진 않아도 굳이 도와주는 사람에게 정신적인 압박을 가하는 악취미가 있지도 않았다. 시큰둥하게 대답하고는 숟가락을 입에 가져간다. 새콤한 케챱이 기름진 볶음밥의 무거움을 날려버린다. 태연하게 오므라이스를 먹는 장화의 모습을 보니 사츠미의 표정도 금방 풀린다.

 

헤헤, 맛있지?”

괜찮네”

 

여러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는 장화가 누군가의 요리실력을 날카롭게 평가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사츠미의 요리를 먹고 있을땐 가슴이 따뜻해지고는 했다. 음식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것이 요리라면, 사츠미는 요리를 참 잘하는 사람이었다.

오므라이스 한 그릇을 다 먹고 쇼파에 기댄다. 사츠미가 설거지를 하러 간 사이에 등을 젖히고 허리를 쭉 늘린다. 찌뿌듯한 허리가 놀라 비명을 지른다. 찌릿찌릿하게 척추를 타고 오르는 감각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어”

 

단추를 꽉 채우고 기지개를 한 탓일까, 셔츠 가슴부분의 단추가 비명과 함께 자유를 찾아 떠난다. 탁상에 한 번 튕기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작별을 고한다. 쉽게 담을 수 없는 장화의 가슴이 그대로 드러난다. 에이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장화가 다시 셔츠를 풀어낸다.

 

옷 사러 가야겠는데”

응?”

이거 봐”

 

셔츠를 펄럭이며 단추가 날아간 걸 보여준다. 설거지를 마친 사츠미가 그것을 보며 싱긋 웃는다.

 

나가자”

어?”

옷 사야 할거 아니야”

어, 어어…”

 

빨랫바구니에서 아무 옷이나 주워 입는다. 똑같이 가슴이 좀 끼긴 했지만, 면 티셔츠라 갑자기 찢어지거나 하진 않을 것 같았다. 옷을 고른다며 밍기적거리는 사츠미를 복도에서 한참 기다린다.

 

모자 있어?”

응? 있는데”

하나만 줘”

 

똑같이 모자를 쓰고 걸어나오는 사츠미에게 야구모자 하나를 받는다. 머리크기는 비슷했는지, 따로 조절하지 않아도 사이즈가 꼭 맞다.

 

나도, 마스크 하나만”

 

천으로 된 검은 마스크를 쓰고 외투를 걸치자, 얼핏 보기에는 바이오로이드인지, 사람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거기에 자신과 비슷한 복장의 사츠미가 옆에 붙자 더더욱 바이오로이드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우산, 하나 밖에 없는데 괜찮지?”

상관없어”

 

평소에는 비가 오면 오는대로 맞고 다녔으니, 우산 하나만 써도 호화생활이었다. 물론 장화가 우산 하나 구하려면 못 구할 것도 없었지만, 굳이 쓰고 다녀야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비를 맞고 다닌 것이다.

 

줘”

 

건물의 정문 앞에서 우산을 펼치려던 사츠미의 손을 잡는다. 사츠미의 어깨가 젖지 않게, 우산을 살짝 기울여준다. 사츠미는 말 없이 장화와 함께 걷는다. 굵은 빗방울이 우산을 세게 두들긴다.

임무를 시작하던 날 이후로 해를 보지 못했다. 공연장을 테러한 시간이 늦은 저녁이었고, 그때 붉고 진한 노을을 본 뒤로 지금까지 쭉 비가왔다. 겨울이 다 가는 시간이라곤 하지만 아직 겨울인데다, 한대기후인 삿포로의 날씨는 얼음장 같았다. 이런 날씨에 비를 맞고 있거나, 야외에서 숨어다녔을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찔해진다.

 

조금 붙어도 되지?”

마음대로”

 

우산을 들고있는 장화의 팔을 사츠미가 끌어안는다. 키는 오히려 사츠미쪽이 큰데도, 하는 짓을 꼭 어린애같다.

누군가와 밖에 함께 나오는 것, 벌써 1년하고도 8개월 전의 일이었다. 밖에 나와서 누군가와 이렇게 가까이 붙는 것도 벌써 그만큼 되었다. 장화가 옆에 있으니 불안하지는 않았다. 괜히 그녀의 팔을 끌어안는다. 따뜻하다. 작은 체구의 장화가 든든하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사츠미는 알지 못했다. 사츠미는 그저 자신의 옆에 놓인 태양을, 해가 떠오르는 시간을, 또 다시 잃고 싶지 않았다.

마트까지 걷는 20분동안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이 차를 타고 다니거나 돈이 없으면 대중교통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된 시대에, 인도에서 사람을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요 며칠 비도 쏟아지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나오고싶을리가 없었다.

 

차는 없어?”

아, 있긴 한데”

 

마트에 거의 다 와갈 때쯤 장화가 묻는다.

 

그냥, 좀 걷고 싶었어”

 

걷고 싶었다. 트인 세상에서 같은 공기를, 같은 소리를, 같은 풍경을 보며 걷는 건 그저 어디로 이동하는 행동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 영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나 로맨틱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상관 없었다. 그저 함께라는 단어를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마트에 도착하고 우산을 접었지만 사츠미는 장화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불편하지만 굳이 떨어뜨리진 않는다.

 

옷이랑 또 뭐 살 거 있어?”

음식 재료 사갈까? 같이 요리하자”

그래 뭐…”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대형마트는 직원들을 바이오로이드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러 문제 때문에 아직은 30%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젠 바이오로이드를 보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거기에 손님으로 심부름을 온 바이오로이드들까지 포함하면 눈을 돌리는 곳곳에 바이오로이드가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자 여러 점포에서 열어놓은 옷가게들이 즐비하다. 남성용, 여성용, 아동복, 기능성복, 심지어 바이오로이드용으로 사이즈에 맞춰 나오는 코스튬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자신의 사이즈를 확실히 아는 사츠미는 대부분 옷을 인터넷으로 주문했지만, 그녀의 생각에 상당히 개조되어있는 듯한 장화의 신체 사이즈에 맞는 옷을 찾으려면 무조건 실제로 입어봐야 할 것 같았다.

애초에 옷 같은 것 사본적도 없고, 공인된 사이즈 같은 것도 없는 장화 역시 일단 뭐든 입어봐야 편한지, 불편한지 알 수 있었다.

가슴이나 골반이 무지막지하게 큰 바이오로이드라면 일반 여성용 옷이 맞을 턱이 없었지만, 장화의 신체는 그래도 글래머한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기에 사츠미는 장화를 여성복 매장으로 데려간다. 개인매장인듯, 사람이 운영하는 매장에서 장화에게 몇 가지 옷을 대본다. 옷을 보는 눈 같은 건 없는 장화는 사츠미가 주는 대로 옷걸이를 들고다닌다.

 

입어볼게”

 

옷을 잔뜩 들고있는 장화가 탈의실의 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간다. 탈의실 안의 행거에 옷 들을 걸어놓고, 사츠미를 마주본다.

 

왜”

어?”

아니, 좁잖아”

아, 하하…밖에서 기다릴게”

 

황당한 표정의 장화와 멋쩍게 웃는 사츠미의 표정이 교차된다. 탈의실에서 나간 사츠미는 바로 부스 옆에 등을 기대고 선다.

대부분은 집에서 입을 평상복이나 가벼운 외출복 등을 번갈아 입는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평소 입던 기능적인 망토와 핫팬츠를 입은 모습이 아닌 자신을 보고 있으니 아무리 봐도 다른 사람같다.

입었던 옷들 중에 가장 편한 옷을 입고 탈의실 밖으로 나간다. 영락없는 휴일날 여고생이 된 장화의 모습은 어깨의 가시 문신이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사츠미?”

 

부스 옆에 고개를 파묻고 쪼그려앉아있는 사츠미가 보인다. 파르르 떨리는 몸, 불러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네 일주일 만입니다

뭐했냐구요

마빡이 업뎃된날 뽑자마자 서약박고 올렸는데 일주일 차단박혔습니다.

나 접기전엔 그런 룰 없었는데


그래서 그동안 소설은 사실 다 썼습니다

밤에 또 올릴지도 몰라




https://arca.live/b/lastorigin/45324794